한국 가문 문장들은 왕족을 제외하고 공식적으로 사용 할 수 없는 것들이었음. 한국은 옛날 고대시대부터 봉건제 국가가 아니라 중앙집권체제라 함부로 가문의 문장을 사용했다가는 왕가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멸문을 당할수 있었다고함. 때문에 왕가의 국가적인 심벌 외에는 가문마다 문장을 사용해서는 안되었음. 저 문장들도 대부분 최근에 만들어진 것임. 최근 서울대 조형연구소에 따르면 다양한 가문들이 각 가훈과 가풍을 바탕으로 문장을 만드는 의뢰를 하고있다고 함.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고 이러한 작업이 가문의 소속감을 강화하고, 고유의 전통과 개성을 살릴수 있을테니... 여튼 이러하니 자기 가문 심벌이 없다고 상심하지 마시길..
진주 하씨인데 진주 하씨(晉州 河氏)는 하공진(河拱辰)을 시조로 하는 시랑공파(侍郞公波), 하진(河珍)을 시조로 하는 사직공파(司直公波), 하성(河成)을 시조로 하는 단계공파(丹溪公波)가 있다. 1451년(문종 1) 진주 하씨(晋州河氏) 최초의 족보 《경태보(景泰譜)》 서문에 진주(晋州)의 토성으로 백제시대(百濟時代)에 타주(陀州)로 불릴 때부터 사대부(士大夫)의 문벌이었다고 하나 입증할 문헌은 없다. 시랑공파(侍郞公波) - 시조 하공진(河拱辰)은 고려 성종 때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되었고, 목종 때 중랑장(中郎將), 현종 때 좌사시랑(左司侍郞)을 역임했으며, 사후에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郎)으로 추증되었다.[1] 11세손 하륜(河崙)이 조선 개국공신으로 태종(太宗)조에 영의정(領議政)에 올랐다. 사직공파(司直公波) - 시조 하진(河珍)은 고려 정종(靖宗)과 문종(文宗)대에 사직(司直)을 지냈다. 9세손 하즙(河楫)이 1324년(충숙왕 11) 문과에 급제하여 찬성사(贊成事)로 치사하고 진주군(晉州君)에 봉해졌다. 10세손 하윤원(河允源)이 공민왕 때 전리총랑(典理摠郞)으로서 개경수복공신이 되었다. 12세손 하연(河演)이 조선 세종(世宗)조에 영의정에 올랐다. 단계공파(丹溪公波) - 시조 하성(河成)은 고려 때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8세손 하위지(河緯地)는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이다. 라고 하네
@@rarira12 생각이없나;; 글을 읽어봐 일제시대때 일본문양을 따라 사용하기 시작한거고 여기에서 흑백을 가르려면 있냐 없냐의 단순한 구분만 들어가야지 극단적인이라는 꾸며주는말이 왜 나오냐는 말이지 ;; 한 가문에서 쓰이는 대표 엠블럼도 하나로 정해져있고 형식도 엇 비슷하게 제작되는데 도데체 극단적이라는 차이점은 어디서 둘수 있냐는말이지 ;; 국어문제가 아니라 제발 생각좀하고 답달아
@@정다진-l1i 극단적인 문양과 극단적이지 않은 문양의 차이는 어디서 판단할 수 있는거죠? 가문간의 문양을 보시면 모두 비슷한 형식을 띕니다 극단적으로 화려하거나 가문마다 가지고 있는 형식이 극단적으로 많지않죠 모두 하나의 가문엠블럼을 가지고 있거나 아예 없거나 둘중하나입니다 즉 있냐 없냐의 차이죠 백과 흑을 나눌때 극단적인 백이나 극단적인 흑을 설명할수 있습니까?
Sensi Vil 말씀하신 ‘극단적인’ 이라는 말은 뒤에 ‘문양’을 꾸며주는 말인데 위에 보시면 ‘극단적인’ 이라는 말은 없어요. ‘극단적으로’ 라는 말이 부사로 쓰여서 뒤의 문장 전체를 받는 걸로 보이는데 다시 말씀 드리면 원 댓글 분이 말씀하신 의도가 저에게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저는 반남박씨 반남박씨의 시조는 박응주이며 신라 박혁거세의 후손이다 고려시대에는 지방 호족 중 최고위직에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사대부의 주축이 된다 현재 이 가문의 묘는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에 있다 (많은 관리들을 배출했는데 대표적으로 조선시대 12명의 박씨 상신 중 7명이 반남박씨) + 박항서 감독님은 반남박씨
재밋네요 전 진주강씨 28대손 인데 강이식장군님이 시조시고 진주강씨들 원시조는 삼황오제중 염제 신농씨라는 분인데 전에 저도 성씨 한번 파봤는데 모든 성씨가 강씨에서 퍼졌다고 본듯 합니다. 진짠지는 모르겠지만요.. 또 한마디 하자면 역사는 왜 시조님과 비슷한 시기의 을지문덕만 알아주는지 .. 궁금하네요 저희 시조님도 멋진 분이셨던거 같은데... 옛날 역사 드라마에도 나왓었는데.. 을지문덕만 알아주는 더러운 역사.. 후손인 나라도 알고 있어야지...
제 짧은 소견으로는 한국에 똑같은 성씨가 많은 이유가 물론 조선후기에 족보를 매매해서 이기도 하지만 서양이나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은 왕권이나 한 가문을 정복(?)하면 그 가문의 사람이 살아남지 못하게 거의 다 죽이는데 우리나라는 흡수(ex. 가야->신라, 삼국통일, 고구려->조선 등등) 시켰던 문화여서 같은 성씨가 많은게 생명을 소중히여기고 평화, 화합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를 보여주기도 한다라고 하는 말도 있는데 사실 매매 보다는 저는 이 이론이 더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되요~ 양반 뿐만 아니라 일반 양민, 그리고 내시까지도 족보는 있다고 알고있어서....
1:20 아주 소수의 특정계층을 제외하고는 남북국시대 까지 성씨개념이 거의 없었어요 심지어 고려 건국자 왕건도 지방 귀족출신이지만 성이 없었을 정도로 9세기... 까지만 해도 성이라는게 최상위계층 아니고선 없었어요. (원래 왕건도 고려를 개국 하기 이전에 왕이라는 성을 쓰지도 않았고, 건이라는 이름을 쓰지도 않았었음. 개국하면서 성은 왕이요 이름은 건이라 칭한것임) 고려가 개국되고 한반도가 고려에 통일이 되고서부터 왕건이 지방의 호족들에게 사성(성을 내려줌)을 하며 성씨제도가 시작되었다고 보는게 정설입니다. 11세기에 들어서서 봉미제도가 시행되고 본격적으로 성씨 제도가 자리를 잡죠. 아주 소수의 특정계층을 제외하고는 성씨개념이 거의 없었어요 4:03 위와같은 이유로 여말선초 시기에 10%정도만 성씨가 있었고 (그렇다고 양인이 10% 천민이 90%인것은 아닙니다.) 조선초기에 양인에게 꾸준히 사성을 하죠. (양인이었어도 성이 없었음.) 조선조에서는 흔히들 양반, 권문세족만 성씨를 가졌다고 오해하는게 이는 틀린것이고 비자유민 계층인 천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성씨가 있었습니다. 그게 16세기 (왜란이전) 기준으로 60%입니다.(성씨 있는사람이 60%) 또한 16세기 까지만해도 양반 양인 중인 천민 이런 개념이 아니라 자유민계층인 양인(지배계층이거나 지배받지 않는 계층), 비자유민 계층 천민(피지배계층) 으로만 나뉘었습니다 (조선의 근간인 경국대전에 양인과 천민밖에 없음) 양반 양인 중인 천민 이런건 호란까지 겪고 나서 17세 중엽부터 문벌화의 영향으로 나타납니다. (양인 계층이 세분화됨.) 정리하자면 조선은 지배계층,자유민(양인)이 피지배계층, 비자유민(천민) 보다 많았으며 양인들 태반이 성이 있었다. 그러므로 흔히 알려진 "90%는 가짜 성씨에 대부분이 천민출신" 라는건 잘못된 사실이다. 한국 3대 성씨는 김이박. 세분화 하면 김해김씨, 경주김씨, 밀양박씨, 전주이씨, 경주이씨 5대 성씨. 굳이 따지자면 족보매매, 족보위조, 공명첩, 갑오개혁 등으로 성씨를 가진 가짜 성씨는 위의 5대 성씨에 집중되어있으며, 5대 성씨 인구만 해도 대한민국 인구의 30%에 육박함. 그러나 가짜 성씨를 가졌다고 하여 100% 천민이라는 말은 아님. 이에 관한 정확한 산술적 수치는 추산이 불가능함. (양인이었어도 성이 없었으나 족보를 위조, 매매하기도 하여 성을 만든이들도 많았음.) 5대 성씨의 인구는 정상적인 친족관계로써는 이 인구가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함. (5대성씨가 대한민국 인구 30%... 김해김씨만해도 대한민국 인구 8~9% 인데... 대한민국 8~9%가 김수로의 후손이라는게 말이 되나...) 성이 없었다 하는것이 꼭 천민을 뜻하는건 상당한 오해임.
저거 가문문양 옛부터 전해내려온 종문이 아닙니다. www.donga.com/news/View?gid=74986138&date=20151124 각 종가의 이미지를 고려하여 10년 전쯤에 종가문화 브랜드화 일환으로 디자인 되었습니다. 트위터에서도 이것과 관련된 글을 봤는데, 조선같은 시대에 일본같은 종문을 내세웠다간 반역으로 몰렸을 거라던데, 꽤나 공감이 갔습니다.
근데 뭐 이게 그렇게 큰 의미있는게 아님 성씨 있다고 자기 집안이 양반이라고 주장하지만 양반의 4대손까지 만 양반입니다. 그나마도 실질적으로 양반으로 인정 받는 경우는 경북 안동 마을 같이 5대조 이상의 제사를 받들거나 제사를 다른 집에 비해 매우 성대하게 지내면 어느정는 양반 후손이고 그리고 왕족이라 주장하시는 분들 (특히 전주이씨들) 왕족은 대군은 4대손 군은 3대손까지 왕족이고 그나마 정말로 직계 자손 정도면 종친으로 인정 받고 나머지는 떨이임 참고로 대원군의 자손은 직계라도 왕족에 포함(덕흥 대원군파 같은 경우) 그리고 실질적인 조선 왕실 그러니깐 고종 황제의 후손들이 진짜 왕족임 그리고 지금 해마다 종묘에서 제사 지낼 때 왕 차림으로 지내는 “황사손 이원”이라는 분이 왕실 대표임
우리 가문은 조오금 무서워요.
어이 형씨라고...
스턴 걸지마
ㅋㅋㅋㅋㅋㅋ
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형 왜그래 무섭게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옛날부터 우리나라도 왕겜처럼
가문 문장 쓰면서 가언까지 썻으면 진짜 개멋있었겠다
"광주 이씨는 언제나 빚을 갚지" 이렇게
안동김씨는 언제나 근자감으로 충만하지 이게 다 긴또깐때문이다 이렇게?
@@본본-d8m 라니스터가요? 아니면 광주 이씨가?
@@Jacobson5837 그래서 아버지를 죽인게 빚 갚으려고..?
읍..으읍...
겨울이 온다.
현풍 곽씨 33대손입니다.
높은 문관출신,의병,독립투사,이사장(?)님들이 많으시네요.
보아하니 똑똑하고 돈이 많아야 할 수 있는 직종들인데 조상님 왜 저에게는....
또륵...
청주 곽씨 입니다.
저도 동일합니다....
가난 ㅠ
오 동족이군
지나가던 현풍곽씨입니다.
계속 지나갈게용
어머...전 제갈공명 87대손인데...하...ㅋ
(제갈공명 후손은 제씨,갈씨,제갈씨가 있음..난 제씨..)
저는 경주 이씨인데 삼성전자의 회장 이신 그분이랑 같은 가문입니다. 저도... 또르르
요약 : 본인이 속한 길드역사 읽어보고 소개해봅시다
옛날에 학교다닐 때 선생님이 사람이 많은 본관일수록 진퉁보다 그 집안 노비출신일 확률이 높다고 하시던데.
그거 얘기할 때 반에 네 명이나 있던 김해 김씨 친구들이 떫떠름 해 했던 기억이 나네요.
노비면 어때. 종가같이 고리타분하게 사는것보다. 변화에 마춰 변해가는게 좋지. 종가집 가면... 어우... 고리타분..
@@미숫가루찌개 진짜베기 종갓집은 오히려 깝깝한거 더 없대요. 만들어진 집들이 되려 호들갑을 많이 떤댑니다.
@@Meister-Lee 어쩐지. 제사끝나면 놀자판이긴 하더라고요.
이번 추석쯤에 많이 알려진게 집안의 차례상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많이 나오더라고요
뭐, 종가 제사 참여 안하면 다 방계거나 떠중이것쥬
저.. 저희가문에 정철이라는 분있네요.....
조상님 왜 그 글을 지으셨나요 힘들어요ㅠㅠㅠ
술마시고 글 지어서 국어 광탈하게하신 시조...
관동별곡 ㅋㅋㅋ
애초에 그런 시조를 국어시험에 포함시킨 인간들이 문제임
그러게 외웠어야지
@@junesix2494 뭐 틀릴 수도 있지ㅋㅋㅋㅋㅋㅋ 수능 끝났으니 응원이나 해줘라 좀
청주 한씨인데
전 국무총리 (37대)한명수 (38대)한덕수
두분이랑 명으로부터 조선국호받아온
한명희 그리고 전 국방부 장관, 그외의 조선의 한씨왕비랑 같네요
저도청주한씨인데
전 해주 최씨 입니다
문장을 보니 더 저의 성씨에 자부심을 느끼네요
@왁두련ᄂ아 해주최씨는 충렬공파 없을텐데.. 경주최씨 충렬공파는 들어봤어도 해주는 못들어봤어요
왁두련ᄂ아 근본없는집안ㅋㅋㅋㅋㅋ
승지공파에여
전 해주 오씨 입니다
어짜피 니네 조상아님 족보 다 산건데 ㅋㅋ
한국 가문 문장들은 왕족을 제외하고 공식적으로 사용 할 수 없는 것들이었음. 한국은 옛날 고대시대부터 봉건제 국가가 아니라 중앙집권체제라 함부로 가문의 문장을 사용했다가는 왕가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멸문을 당할수 있었다고함. 때문에 왕가의 국가적인 심벌 외에는 가문마다 문장을 사용해서는 안되었음. 저 문장들도 대부분 최근에 만들어진 것임. 최근 서울대 조형연구소에 따르면 다양한 가문들이 각 가훈과 가풍을 바탕으로 문장을 만드는 의뢰를 하고있다고 함.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고 이러한 작업이 가문의 소속감을 강화하고, 고유의 전통과 개성을 살릴수 있을테니... 여튼 이러하니 자기 가문 심벌이 없다고 상심하지 마시길..
그니까요. 최근에 만들어진거니까요. 없는게 대부분이죠
전주김씨 있냐?.. 찾아보니까 친척이 야발 김정은 김정일 김영남 이자나 취한다 씌발
조선민주주의린민공화국을 위하여!
전주김씨 김관진 장관 있잖아요
덕수 이씨입니다.
충무공 할아버님과 율곡 할아버님이 선조십니다.
저는 남양 홍씨입니다. 저희도 고구려 때 넘어온 8학사 가문인데 원주 원씨도 그랬군요.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ㅎㅎ
대흥이씨는 전주이씨에서 분관해나왔는데 이성계의 조선개국을 반대한 고려말기 예문관제학을 맡으신 대흥군 이연계님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냥 간단히 말해서 이성계의 쿠데타가 일으킨게 마음에 안들어서 개호로자슥 하고 나오셨답니다 ㅋㅋㅋ
나는 전주이씨인데 증조부신가 고조부신가께서 천민인데 돈좀모아다가 샀는데 전쟁중에 유실되서 족보가없다고하셨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할아버지가 땅남겨주셔서 불만없음 ㅎ;
땅이 족보따위보다 몇십배는 낫지ㅋㅋㅋ 암ㅋㅋㅋㅋ
족보 다 구라임요
사람이름은 구축함 유도탄고속함 잠수함에만 쓰는걸로 알고있음 호위함 상륙함 군수지원함 구조함 초계함 이런거보면 호수이름 산정상이름 섬에름 지역이름임
사람 확실히 본게임이 도움많이 되죠?ㅋ
@@tmdgnsdl1373 본게임이 뭐임?? 해군출신이라 그런건데
강릉 함씨의 함필규씨는 대체..
비타 민씨 누구얔ㅋㅋㄱㄱㅋㄱㅋㅋㅋ 아놬ㄱㅋㅋㅋㅋ
떡볶 이씨
고성이가 참판공파 31대손인데 다른 파벌 중에 한분이 이괄의 난할때 그 이괄입니다 ㅋㅋㅋㅋㅋ 조상님은 이육할아버지까진 들었는데 그 위로는 한고조때쯤에 한반도로 넘어오신분이 뿌리 내렸다고 어릴때부터 귀에 딱지생길때까지 들음
가문 문장은 다 최근에 만들어 진거죠? 방패 문양 나올때 부터가 뭔가 근,현대 느낌이;;
집안마다 다르다고 알고 있어요. 대대로 대문앞에 붙이던 문장인 경우도있고 후대에 만든 것도 있고
경주 이씨 상서공파입니다 현재 아버지께서 할아버지랑 종파모임갔을때 이건희(삼성회장)을만났다더군요
같은 경주 이가네요 저는 익재공팝니다
호옹 신기하다
지랄 ㄴ ㅋㅋ
이건희 쓰러져서 침대에 들어누은지가 몇년인데
@@kina_8011 저희할아버지 젊으셨을때입니다^^ 아버지는 10대이셧고요
풍기 정씨 우리나라에 1000명있음..
와우
와 이 정도면 ㄹㅇ 친척급이넹
족보나 성씨의 대해서는 조선후기에 들어서서 일반 농민들이 선비나 귀족의 족보를 사서 써서 조선 시대때의 10퍼센트만 성씨가 없는 것 입니다 .
10%? 아닐텐데
4:37
성주 배씨입니다 저희는 신라 개국공신 중에 건국할 때 6명의 영주 중 하나라고 하더라고요 이후 고려,조선을 세울 때에도 줄을 잘 서서 개국공신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경주 이씨... 유명인 중에 이명박, 이건희, 이재명 님 계시네요. ㅋ
ㅋㅋㅋㅋㅋㅌㅋㅋㅋㅋ스케일이 다르네 ㅋㅋㅋ
감옥살이에, 비리뇌물, 조폭에 라인업 화려하누 ㅋㅋ
Cloud 9 그냥 커버 올리는 트수리머 입니다.
가카가 가족 ㅋㅋㅋㅋ
나는 함열 남궁씨 대사성공파 33대손인데 남궁씨가 딱 5만따리라서 대한민국 0.1%라고 생각할 때마다 나름 자부심 생김
우리 순천 김씨는 길드마크가 없음....
왕을 만든 킹 메이트에 문관인데
와 순천김씨 태어나서 같은가문 처음보네
Rltp
인동장씨 외천공파 15세손인데 고조부님까지 대한제국에서 당상관을 지내시다가 증조부 때 가세가 기운 케이스입니다. 옛날에야 가문이니 족보니 그런게 중요했지만, 요새 그런게 유의미하지는 않죠 ㅋㅋ
진주 강씨 모여라!!
거 진주 강씨는 아니고 진주 사는데 슬쩍 모여도 됩니까
은열공파입니다 손!
강씨는 아닌데. 경상도라 껴도 되나요.
승지공파 입니다 손좀
전 박사공파입니다
안동권씨 권율장군님
문과보단 무과가 많은집안
엄마는 김해김씨시고 할머니는 낭주최씨
안동권씨 현재 당주님이 저희 파라서 친척인데 우리가 큰집?인가 작은집인가그렇다고하고 오라하셨는데 안동으로 안가셨다고 하셨고 우리 할버지에 할버지에 할버지인가 호패가 할머니집에 있음 금속으로 되있는데 어떤 나쁜련이 망가뜨림
길드가 아니라 혈맹이죠 ㅎㅎ
연안 김씨요. 인목대비 시절 다 돌아가실 뻔 했는데 어떻게 이어져 왔습니다.
연안김씨 찾았네 ㅋㅋ
김해 김씨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많은 성씨이며 전체 김씨의 41.7%를 차지하고 있다.
금관가야의 일족이며 김수로왕이 선조이다.
현재 여러 분파로 갈라져 있다.
금녕김씨 인데 김해김씨에서 떨어져 나와서 50만명정도 있음,, 피는 갱상도인데 집은 전라도 ㅋㅋㅋ사람들이 쓰잘데없이 지역감정유발하면 줘까라하고 찬물끼얹기 ㅋㅋㅋㅋㅋ멍청한쉐리들이나 하는 지역감정
Schulz V. 네다홍
@@11박 싸우자고? 너 멍청하다고? 말을 해줘 하나만하게
나 경주 김씨
약간 가문마다 전설 비스무리한게 있는데 우리 파평 윤씨 같은 경우에는 잉어를 먹지 않는다고 하네여 ㅋㅋㅋㅋㅋㅋ
진주강씨 레전드야 형 무슨 청와대 표식같음
@@여심용광로 그럼 전 강씨가 아닌갑네요
@@lltl4622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진주 하씨인데 같은 진주네요 ㅋㅋ
강씨는 다 소추
덕수 이씨 문정공파 24대손입니다. 우리조상 시조가 이돈수라는 분인데 최우 무신정권시절에 중랑장을 지낸걸로 나오더라고요.
나 우계 이씨인데 찾아보니까 배우 이성민이 우계이씨임 근데 서운한점:문양이 없음
처음에 나온 원연이라는 분은 스펙 개쩌는 먼치킨 의병장 중 한 명임. 진짜 형인 원균하고는 평가가 다른 인물
저 가문 문장은 언제부터 있던거에요?
근대에 와서 각 가문 문중들이 창작한건가?
처음 보고 일본 전국시대 장수들 가문기인줄알았음
나도 전국시대 무장들 깃발같다고 생각함. 지금도 일본은 번의 흔적이 남아서 현이나 시 문양보면 예전 무장들 가문꺼랑 비슷함.
@@조민흠1 아 그러면 근/현대에 와서 후손들이 상징물로 만든게 아니라 고려~조선 같은 중세부터 엄연히 존재한 문장이라는거죠?
@@코리앤더-y6h 2002년에 만들어진거임
조선은 중앙집권국가라 가문문장따윈없음 반국가행위라 중범죄임
저는 신안주씨인데 성리학을 만드신 주자(주희) 할아버지에 증손이신 주잠 할아버지가 송나라때 원나라 간섭을 피해서 고려때 오셨대요
개성왕씨인데 아무도 안믿어서 서운...
반가워요 저도 개성왕씨랍니다~^^
진주 강씨
강감찬 장군님 존경합니다....
덕분에 제가 이렇게 편안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aventador_7 저도 진주 강씨입니다
진주 하씨인데
진주 하씨(晉州 河氏)는 하공진(河拱辰)을 시조로 하는 시랑공파(侍郞公波), 하진(河珍)을 시조로 하는 사직공파(司直公波), 하성(河成)을 시조로 하는 단계공파(丹溪公波)가 있다.
1451년(문종 1) 진주 하씨(晋州河氏) 최초의 족보 《경태보(景泰譜)》 서문에 진주(晋州)의 토성으로 백제시대(百濟時代)에 타주(陀州)로 불릴 때부터 사대부(士大夫)의 문벌이었다고 하나 입증할 문헌은 없다.
시랑공파(侍郞公波) - 시조 하공진(河拱辰)은 고려 성종 때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되었고, 목종 때 중랑장(中郎將), 현종 때 좌사시랑(左司侍郞)을 역임했으며, 사후에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郎)으로 추증되었다.[1]
11세손 하륜(河崙)이 조선 개국공신으로 태종(太宗)조에 영의정(領議政)에 올랐다.
사직공파(司直公波) - 시조 하진(河珍)은 고려 정종(靖宗)과 문종(文宗)대에 사직(司直)을 지냈다.
9세손 하즙(河楫)이 1324년(충숙왕 11) 문과에 급제하여 찬성사(贊成事)로 치사하고 진주군(晉州君)에 봉해졌다.
10세손 하윤원(河允源)이 공민왕 때 전리총랑(典理摠郞)으로서 개경수복공신이 되었다.
12세손 하연(河演)이 조선 세종(世宗)조에 영의정에 올랐다.
단계공파(丹溪公波) - 시조 하성(河成)은 고려 때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8세손 하위지(河緯地)는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이다.
라고 하네
가문문장은 원래 조선에선 쓰지 않았습니다.
일제시대 때 일본은 다 자기 가문 문양을 쓰니깐 일제에 달라붙은 친일 가문들이 우리도 만들어 쓰자 했던게 유래입니다. 극단적으로 자기 가문 문양이 있다? 친일파 집안에 가깝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문양이 있냐 없냐 문제지 극단적인 문양은 도데체 무슨 문양임 ㅋㅋㅋㅋ
@@rarira12 생각이없나;; 글을 읽어봐 일제시대때 일본문양을 따라 사용하기 시작한거고 여기에서 흑백을 가르려면 있냐 없냐의 단순한 구분만 들어가야지 극단적인이라는 꾸며주는말이 왜 나오냐는 말이지 ;;
한 가문에서 쓰이는 대표 엠블럼도 하나로 정해져있고 형식도 엇 비슷하게 제작되는데 도데체 극단적이라는 차이점은 어디서 둘수 있냐는말이지 ;; 국어문제가 아니라 제발 생각좀하고 답달아
Sensi Vil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 이 뜻 같아보이네요 전
@@정다진-l1i 극단적인 문양과 극단적이지 않은 문양의 차이는 어디서 판단할 수 있는거죠? 가문간의 문양을 보시면 모두 비슷한 형식을 띕니다 극단적으로 화려하거나 가문마다 가지고 있는 형식이 극단적으로 많지않죠 모두 하나의 가문엠블럼을 가지고 있거나 아예 없거나 둘중하나입니다 즉 있냐 없냐의 차이죠
백과 흑을 나눌때 극단적인 백이나 극단적인 흑을 설명할수 있습니까?
Sensi Vil 말씀하신 ‘극단적인’ 이라는 말은 뒤에 ‘문양’을 꾸며주는 말인데 위에 보시면 ‘극단적인’ 이라는 말은 없어요. ‘극단적으로’ 라는 말이 부사로 쓰여서 뒤의 문장 전체를 받는 걸로 보이는데 다시 말씀 드리면 원 댓글 분이 말씀하신 의도가 저에게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같은 본관이라도 분파가 다를 수도 있어요! 전 박씨 중에 소수인 순천 박씨인데 아버지께서 전에 알려주시길 저희 조상이 사육신 박팽년이시고 충정공파 19대손이래요 뭔가 멋나는 것 같아요 ㅋㅋㅋ
청풍 김씨..... 국어 젬병이라서 맨날 나오던 김유정 작가님 싫어했는데 후손이였누;;
안녕하세요. 먼 가족이네요.
1:05 평택임씨입니다...근데 안보이네요...하하하 우리나라에 10만명 정도 밖에 없다고 들어서 궁금해서 이유없이 서치 해보았는데 그래도 잘 보고 갑니당😍
전주 이씨 왜없어!! 마크 찾아보니까 넘모 멋지구만! 전주 이씨 모여랏>
월평대군파 18대손 입니다
반갑군요ㅋㅋ
The
저는 반남박씨
반남박씨의 시조는 박응주이며 신라 박혁거세의 후손이다 고려시대에는 지방 호족 중 최고위직에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사대부의 주축이 된다 현재 이 가문의 묘는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에 있다 (많은 관리들을 배출했는데 대표적으로 조선시대 12명의 박씨 상신 중 7명이 반남박씨)
+ 박항서 감독님은 반남박씨
유튜브까마귀 드뎌 찾았다 반남박씨!
@@육구칠사 엌ㅋㅋㅋㅋ
청주 한씨는 마크에 ㅎ 하나 들어가있음 ㅋㅋㅋ
아부지는 김이고 엄마는 한씨인데 웃긴건 군대갔을때 나보고 청주사람같다고 했음 ㅋㅋㅋㅋㅋㅋㅋㅋ
ㅎ
한씨는 1개뿐이 없지용
이거보고 찾아봤는데 조상중에 독립운동하신분들이 계심. 뿌듯
조상 중에
을사오적도 있고
독립투사들도 있으심
제사때 멱살 잡으셨겠는데..
성주 도씨
그 전에 도도라는 사람이 백제 성왕 목을 잘랐답니다.
믿거조 크루의 한양 조씨입니다. 예전부터 조광조 선조님은 걸러졌었습니다....ㅠㅠ
어차피 전부 족보 사고팔고 개족보인데 뭐
재밋네요
전 진주강씨 28대손 인데 강이식장군님이 시조시고 진주강씨들 원시조는 삼황오제중 염제 신농씨라는 분인데
전에 저도 성씨 한번 파봤는데 모든 성씨가 강씨에서 퍼졌다고 본듯 합니다.
진짠지는 모르겠지만요..
또 한마디 하자면 역사는 왜 시조님과 비슷한 시기의 을지문덕만 알아주는지 .. 궁금하네요
저희 시조님도 멋진 분이셨던거 같은데... 옛날 역사 드라마에도 나왓었는데..
을지문덕만 알아주는 더러운 역사..
후손인 나라도 알고 있어야지...
남원 윤씨 찾습니다
엇!!!안녕하세요 남원윤씨 27대손 영(永)○ 돌림 윤은광입니다
ㅋㅋㅋㅋㅋㅋ 여기서 종친회하고 있어 ㅋㅋㅋㅋ
제 짧은 소견으로는 한국에 똑같은 성씨가 많은 이유가 물론 조선후기에 족보를 매매해서 이기도 하지만 서양이나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은 왕권이나 한 가문을 정복(?)하면 그 가문의 사람이 살아남지 못하게 거의 다 죽이는데 우리나라는 흡수(ex. 가야->신라, 삼국통일, 고구려->조선 등등) 시켰던 문화여서 같은 성씨가 많은게 생명을 소중히여기고 평화, 화합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를 보여주기도 한다라고 하는 말도 있는데 사실 매매 보다는 저는 이 이론이 더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되요~ 양반 뿐만 아니라 일반 양민, 그리고 내시까지도 족보는 있다고 알고있어서....
안동 김씨 있을까...
어르신들에게 욕먹는 성씨중하나인데..
세도정치때문인가 ㅋㅋㅋㅋㅋㅋ
김조순이....
안도김씨 전부가 아니라 장김이라고 있는데 장김 외에 안동김씨는 딱히 특권 이런건 없었다함 그런데 세도정치한 장김만 욕해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싸잡아서 피해봄
아하
저는 여산 송씨인데 저희 집안은 다 체육쪽이랑 관련이 깊은데 나머지 사람들은 왠지모르겠지만 정치인이 많더군요
저도 여산송씨 ㅎㅎ
저도 체육적인 여산송씨임 저 힘이쎔
나도 반에서 못해도 2등1등 왔다갔다 할정도 힘은쎔(충고로 여산송씨 지신공파 30세손)
청송심씨는??
양천 허씨
가야 김수로왕의 아내가 인도에서 왔는데 제사지낼 사람없다고 둘째아들한테 김씨아닌 허씨준게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엇 저도 양천ㅎ
원주 원씨임..
나도 원주 원씨
저도
저도 원주 원씨인데
청안이씨
고려 공민왕때 공민왕보고 놀지말고 일하라고 욕하다가
제주도로 유배갔으나 탐라에서 반란을 진압하다 사망
그후 청안공에 봉해짐
그래서 내가 윗사람한테 욕을잘함
경주 최씨~!
경주 최~~~~~
최씨특: 너 어디최씨야? 꼭물어봄 ㅋㅋ
경주 최씨 나옴? 경주 최씨가 최가의 최초 인걸로 아는데 아닌가 ㅋㅋㅋㅋㅋ
모든 최씨 시조가 최치원인걸로 알고있었눈뎅
1:20
아주 소수의 특정계층을 제외하고는 남북국시대 까지 성씨개념이 거의 없었어요
심지어 고려 건국자 왕건도 지방 귀족출신이지만 성이 없었을 정도로 9세기...
까지만 해도 성이라는게 최상위계층 아니고선 없었어요.
(원래 왕건도 고려를 개국 하기 이전에 왕이라는 성을 쓰지도 않았고, 건이라는 이름을 쓰지도 않았었음. 개국하면서 성은 왕이요 이름은 건이라 칭한것임)
고려가 개국되고 한반도가 고려에 통일이 되고서부터 왕건이 지방의 호족들에게 사성(성을 내려줌)을 하며 성씨제도가 시작되었다고 보는게 정설입니다.
11세기에 들어서서 봉미제도가 시행되고 본격적으로 성씨 제도가 자리를 잡죠.
아주 소수의 특정계층을 제외하고는 성씨개념이 거의 없었어요
4:03
위와같은 이유로 여말선초 시기에 10%정도만 성씨가 있었고
(그렇다고 양인이 10% 천민이 90%인것은 아닙니다.)
조선초기에 양인에게 꾸준히 사성을 하죠. (양인이었어도 성이 없었음.)
조선조에서는 흔히들 양반, 권문세족만 성씨를 가졌다고 오해하는게 이는 틀린것이고
비자유민 계층인 천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성씨가 있었습니다.
그게 16세기 (왜란이전) 기준으로 60%입니다.(성씨 있는사람이 60%)
또한 16세기 까지만해도 양반 양인 중인 천민 이런 개념이 아니라
자유민계층인 양인(지배계층이거나 지배받지 않는 계층), 비자유민 계층 천민(피지배계층) 으로만 나뉘었습니다
(조선의 근간인 경국대전에 양인과 천민밖에 없음)
양반 양인 중인 천민 이런건 호란까지 겪고 나서 17세 중엽부터 문벌화의 영향으로 나타납니다.
(양인 계층이 세분화됨.)
정리하자면
조선은 지배계층,자유민(양인)이 피지배계층, 비자유민(천민) 보다 많았으며 양인들 태반이 성이 있었다.
그러므로 흔히 알려진 "90%는 가짜 성씨에 대부분이 천민출신" 라는건 잘못된 사실이다.
한국 3대 성씨는 김이박. 세분화 하면 김해김씨, 경주김씨, 밀양박씨, 전주이씨, 경주이씨 5대 성씨.
굳이 따지자면 족보매매, 족보위조, 공명첩, 갑오개혁 등으로 성씨를 가진 가짜 성씨는 위의 5대 성씨에 집중되어있으며, 5대 성씨 인구만 해도 대한민국 인구의 30%에 육박함. 그러나 가짜 성씨를 가졌다고 하여 100% 천민이라는 말은 아님. 이에 관한 정확한 산술적 수치는 추산이 불가능함. (양인이었어도 성이 없었으나 족보를 위조, 매매하기도 하여 성을 만든이들도 많았음.)
5대 성씨의 인구는 정상적인 친족관계로써는 이 인구가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함.
(5대성씨가 대한민국 인구 30%... 김해김씨만해도 대한민국 인구 8~9% 인데... 대한민국 8~9%가 김수로의 후손이라는게 말이 되나...)
성이 없었다 하는것이 꼭 천민을 뜻하는건 상당한 오해임.
가문의 문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ㅋㅋㅋㅋ 그런거 없어. 그냥 현대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
동주최씨(였던것. 지금은 철원으로 바뀜;) 원외공파 33대손입니다.
시조는 최준옹 고려 개국공신이고
원외공파의 파조인 최양은 고려말 장군이였던 무민공 최영의 고조부네요. 근데 우리는 길드마크가 없음ㅠ
0:01 한라함 백두함 이런거하자
천강홍의장군 곽재우함?
김두한함이나 심영함이 좋슘돠
@@서형준-m9m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마리야
@@TTing-wallbam 명의 허준함
@아춛 팔도함도 괜찮을듯
대한민국 가문들의 종문 생성시기가 언제쯤일까요? 예전에는 없다가 일제 시대를 겪으면서 일본의 영향을 받아 생겼을 수도 있나요? 아니면 전통적으로 과거(시조, 중시조)부터 생겼을 까요?
춘천 박씨 25대손
울 아버지가 24대손이고 대학교교수님이 26~30(?)대손이여서 아버지한테 조상님 이라고 하셨다함
복어형님 저는 원주원씨 시중공계 여서 원나라 시절에 고려로 넘어온 사신에서 비롯된 가문입니다. 확실히 형님말씀대로 토착 세력 성씨는 찾기가 매우 어렵군요 ㅎㅎㅎ
우리 가문은 의령 남씨야 아직도 시골집가면 족보가 있는데 한자로만 드릅게 많이 써있고 족보 책이 진짜 씝고전책이라서 건들지도 못해 본건 딱 한번인데 자주 볼수가 없어 ㅋㅋ
ㅎㅇ 저도 의령남씨임! 전 강무공파인데 님은 오디임?
광천동씨 손~
한국에는 4천2백여명정도 있고 려말에 명나라 접위사로 와서 북청에 정착했고 현재 유명인은 태양(동영배)정도? 과거에는 잘 모르겠네요 동탁이랑 한자는 같은데..... 동탁의 본관을 몰라서..... 시조는 후한의 유학자 동중서라고 하네요
저 혹시 썸네일 정도전의 조재현 아닌가요.... 성범죄자를 썸네일로...
여러분 한국어자동자막 키고봐보세요
복어형 딕션 오짐
Hoxy여산 송씨인 사람?
나여 여산송씨 지신공파
나
영월 엄씨인데 충의공 칭호 받은 성씨라 강원도 영월에 가보시면 충절의 고장이라는 명칭 붙이며 제 성씨가 충절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난 묘금도 유 씨야!
평산 신씨는 고려를 새운 결정적인 인물인 신숭겸이 시조 입니다
근현대 대표 인물로는 신립, 신사임당, 신돌석, 신해철, 연애인 신동엽, 시인 신동엽, 배우 신현준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있는 90퍼센트는 원래 후손이 아니라는 사실...(어쩌면 나도)
예안김씨 인터넷에서 아무리 찾아도 안보입니다 2000년 기준 15000여명 된다는데 어디 없으신가요ㅜㅜ
함열 남궁씨입니다.
가문 문장 같은 거 없습니다.
파평윤씨 성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위키피디아에서 보니까 조선시대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했데 형
문장은 사륜안이랑 윤회안 섞은거 같고..
(그 외 주요인물은 많지만 쓰기 귀찮음)
잉어 못 먹는 성씨
@@윤진환-v7l (잉어킹이 파평윤씨를 좋아합니다)
술 잘먹기로 유명
청송 심씨 입니다
역대 가장 왕비를 많이 배출하기도 한 가문이라는 저희 할아버지피셜...
실제로 세종대왕님의 (수많은) 반려 중 한 분이 청송 심씨였다고 합니다
심영이 청송 심씨
해주 오씨, 고려 때 송나라 대학사이신 오인유 할아버지께서 오셨다가 해주에 정착함. 원래 오씨는 오나라 왕족이라고 함...
3:40 강릉 유씨 군수공파 27대손입니다
성씨가 갑자기 만들어졌다고 말하기엔 17세기에 홍어잡던 사람도 성씨가 있던데... 19세기 후반에 섬 개척한 사람들도 성씨가 있었고
성씨에 관심 없다고
뭐가 중요하냐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가문인 사람 못 봄
사람이 자기 뿌리를 찾는게 당연한거고
외국인들도 자기가 ㅇㅇ계 ㅇㅇ인 이라고 하는데
@@seeitfar ?나는 성씨에 관심 많고 울누님은 성씨에 관심없는데, 그럼 나는 갖고 온 자식임?ㅋㅋㅋ
우리집은 족보가 있는데, 내가 족보 있다고 하니까 누가 그러데 돈주고 샀을 가능성도 있다고
근데 족보 사는 사람들은 당시 가문이 없는 돈많은 사람들이였어야 하는데
유산이 많은것도 아니고 시골 깡촌에 살던 사람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족보를 샀을꺼라고는 생각되지 않음
수원백씨는 중국 고대 전설(?)속 황제의 16세손이 시조라고...
현원이었나? 전설이죠. 완전 고대사에 나오는 거의 전설급입니다. 은 주 시댜 이전의 상고시대적 존재라고 하네요. ㅎㅎㅎㅎㅎㅎ
경주 이씨 국당공파 40대손 입니다ㅎㅎ
반가워요 저는 경주 이씨 익제공파에요ㅎㅎ
조선시대 유명한 양반집안 성씨가 많은게
갑오개혁 이후 그 집안 노비들이 성씨를 양반 성씨를 따르게 되면서 많아진건가요?
지금 현재 김이박최는 거진 노비 출신 이였다 라고 보면 됩니다...
저는 함안 조씨라서 네이버나 인터넷에다가 함안 조씨라고 쳐봤는데 문장이 없어요...
저거 가문문양 옛부터 전해내려온 종문이 아닙니다.
www.donga.com/news/View?gid=74986138&date=20151124 각 종가의 이미지를 고려하여 10년 전쯤에 종가문화 브랜드화 일환으로 디자인 되었습니다.
트위터에서도 이것과 관련된 글을 봤는데, 조선같은 시대에 일본같은 종문을 내세웠다간 반역으로 몰렸을 거라던데, 꽤나 공감이 갔습니다.
남양 홍씨입니다. 8학사중 한 가문입니다
밀양 박씨는 무슨 스타워즈 은하제국에 나오는 심볼로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듯..
우리나라 성씨 개념이 원래 고려 개국때 왕건이 호족들한테 나눠준게 시작
유튜브에서 족보찾기라니 ㅋㅋㅋㅋ
저는 아무래도 노비집안에서 근대화 되면서 성을 암 거나 쓴게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족보에 이름이 없고 조부모도 금방 사망한 정황상) 파평 윤씨입니다.
파평윤씨 엠블럼 냄비받힘입니다 ㅋㅋㅋㅋㅋ
근데 뭐 이게 그렇게 큰 의미있는게 아님 성씨 있다고 자기 집안이 양반이라고 주장하지만 양반의 4대손까지 만 양반입니다. 그나마도 실질적으로 양반으로 인정 받는 경우는 경북 안동 마을 같이 5대조 이상의 제사를 받들거나 제사를 다른 집에 비해 매우 성대하게 지내면 어느정는 양반 후손이고
그리고 왕족이라 주장하시는 분들 (특히 전주이씨들) 왕족은 대군은 4대손 군은 3대손까지 왕족이고 그나마 정말로 직계 자손 정도면 종친으로 인정 받고 나머지는 떨이임 참고로 대원군의 자손은 직계라도 왕족에 포함(덕흥 대원군파 같은 경우) 그리고 실질적인 조선 왕실 그러니깐 고종 황제의 후손들이 진짜 왕족임 그리고 지금 해마다 종묘에서 제사 지낼 때 왕 차림으로 지내는 “황사손 이원”이라는 분이 왕실 대표임
초계 변씨인데 이순신의 어머니가 초계 변씨라고 나오네요 우와앙
저 문장들 대다수가 일제시대 이후에 만든것들이고, 특히 일본식 가몬의 영향을 깊게 받아서 형태도 그런 느낌이 강함. 솔직히 근본도 없는데 그냥 없애고 안쓰는 쪽이 나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