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고유익한삶 잘못알고 것이 있는 것 같은데 브라질 한국관련 행사나 기념일 전부 한인회가 힘 쓴겁니다. 그게 벌써 20년이 다되가요 브라질 최초의 한국 관련 행사도 상파울루 주정부와 한인회가 합작해서 기획했고 그게 매년 이어져 여기까지 온겁니다 브라질 한인분들이 최초 한국의날 기념 행사를 위해서 자체 모금까지 해서 행사를 치뤄냈던 것도 모르시겠죠 한국 문화원은 그저 알리미 역할을 할 뿐이지 주도적으로 행사를 기획하는 기관은 아녜요 브라질 한국 행사 관련 역사 찾아보시면 좀 아실 겁니다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예여 다 한인회 분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합니다 정부는 그저 도울일 있으면 돕는 수준이지 능동적으로 주도해서 기획하는 일은 없어요
정서적으로 완전 달라서 오히려 통하는거임 외국 살다 보니 느낀건 동양인들은 동질감에 끌리고 서양애들은 새로운 거에 끌리는 편임 자존감 떨어지는 애들이 한국 벌게 뭐있다고 여행오는거 이해 안간다 하는데 내 서양 친구들은 다름에 매력을 느끼고 와서 대만족 하고감 ㅋㅋㅋ 유럽 당연히 좋은데 멋진 성당, 고대건물, 자연경관 보는것도 하루이틀 몇달 지나면 멋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불편함 ㅋㅋㅋㅋ
한류 현상에 대해 이제는 어리둥절해 하거나 믿기 힘들다는 인식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원래 모습이 발현되고 있다고 인식해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는 일제 식민 사관과 중화 사대 사관에 의해 우리 민족의 역사가 한반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배웠기 때문에 한류열풍에 대해 어리둥절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역사는 대륙사와 해양사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좁은 반도에 갇힌채 외세의 침략만 당한 것이 아니라 넓은 대륙과 바다를 지배했습니다. 고조선의 강역은 중국의 동부 지역, 내몽골 지역, 발해만 지역, 만주 지역, 한반도를 포괄했습니다. 고조선의 유물인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의 분포 범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만주 지역과 내몽골, 발해만 지역을, 백제가 중국의 동부지역과 남부지역, 한반도의 서쪽 지역, 일본을 장악했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 모본왕 본기] 2년(서기 49년) [후한서] [광무제 본기] 25년(서기 49년) [후한서] [동이열전] [삼국사기] [고구려 태조왕 본기] 3년(서기 55년) 고구려 1대 태왕 추모왕(주몽)의 연호는 ‘다물’입니다. 다물은 옛 땅을 되찾는것을 뜻하는 ‘다시 무르다, 되물리다’입니다. 즉 고구려는 고조선의 땅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서쪽을 공략했습니다. 모본왕때 고구려가 후한을 공격한 지역은 북경을 포함한 화북 지역입니다. 그런데 요동태수가 화친을 청했다는 것은 후한이 전쟁에서 지고 항복한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동태수입니다. 고구려가 후한의 화북 지역을 공격했을때 고구려의 맞상대가 요동태수였다는 것은 그 지역이 요동지역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즉 고대의 요동은 북경 인근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인식하는 요동은 요나라때부터 굳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고구려는 모본왕때 후한의 요동을 공격해서 요서 지역까지 차지했고, 태조왕때 요서에 10개의 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고구려는 요동 지역을 두고 중국과 1진 1퇴를 반복하다가 광개토태왕때 요동을 완전히 장악합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때 수당군이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입니다. 그런데 왜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어디서 군대가 집결하겠습니까? 당연히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겠죠? 하지만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 고구려와 수당과의 국경이 북경 근처였기 때문에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고대 요동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과 달라집니다. 북경 근처에 요동과 요서 지역이 있었던 것입니다.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 [삼국사기] [백제 동성왕 본기] 10년(서기 488년) [자치통감] 영명 6년(서기 488년) [남제서] [남제서] [백제전] 동성왕이 북위의 군사를 물리치는데 공을 세운 백제 장수들에게 관직을 수여하고 이를 남제에 통보한 국서가 나온다. 그 중 한 구절은 라는 것이다. 면중왕에서 도한왕으로 승진시켰다는 것으로 백제 황제 수하에 서열에 따른 여러 왕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로 승진시켰다고 [남제서]는 말하고 있다. [송서] [백제전] [송서]에는 백제 개로왕 여경이 송나라에 라고 요청했다는 기사가 있다. 그러나 요청했다는 것은 윤색이고, 사실은 통보한 것이다. 흉노는 황제인 대칸이 중앙을 다스리고, 우현왕과 좌현왕이 좌우 강역을 다스렸는데, 대륙과 반도와 해양에 걸친 대제국 백제도 넓은 강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백제 임금 아래 우현왕과 좌현왕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중국에도 알려져 있어서 [양서] [백제 열전]에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구당서] [백제전]에는 라고 해서 백제왕이 거주하는 왕성이 둘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동왕성은 한반도, 서왕성은 대륙에 있었을 것이다. 백제는 요서와 일본은 물론 각지에 담로(후국)를 갖고 있던 황제국이었다. [통전] [백제전] 요서군과 진평군이 오늘날의 유성, 북평(북경) 사이라고 위치까지 표시해 놓음 [양서] [백제전] 여기에서 백제가 도읍을 대륙에서 반도로 옮긴 것인지는 연구가 필요해 보임 [북사] [백제전]에는 라고 되어있고, [주서] [백제전]에는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 백제 본국이 중국의 왼쪽에 있을 수 없으므로 중국 내부에 백제의 영토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남제서] [백제전]에 의하면 백제 장군들이 북위와 싸워 승리한 후 남제가 광양, 조선, 대방, 광릉, 청하, 성양의 태수직을 백제 장군들에게 제수했다. 물론 실제로는 동성왕이 제수한 후 남제에 통보한 것이다. 광양은 현재의 하북성 융화로서 난하 상류 유역이고, 광릉은 현재의 강소성 양주 지역이며, 청하는 현재 산동성 익도이다. 그리고 하남성에는 아직도 백제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 [수서]에는 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백제가 동아시아 국제 해상 교역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중국 북부 요서 지방과 남부 광서성 장족 자치구에는 라는 지명과 한반도 관련 유물들이 존재한다. 베트남 인접 지역 광서성 장족 자치주 옹영현에는 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그리고 전라도에서만 보이는 맷돌, 외다리 방아, 서낭당 등이 있다. 안에는 가 있다. 라는 지명은 과거 군사적 목적의 성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이곳에 백제성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광서성 장족 자치주 남령으로부터 3시간이나 걸리는 산촌에는 라는 지명이 아직도 사용된다. 그런데 그 곳 주민들은 를 가 아니라 로 발음한다. 즉 백제는 고조선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중국 대륙의 북부 요서부터 동부와 남부 광서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담로국을 설치한 것이다. 고구려에는 다물(담울=담으로 친 울타리, 즉 고구려 성을 뜻함) 정신이 있었다면 백제에는 담로가 있었던 것이다.
현지 한인회 분들이 진짜 노력 많이 하신 결과임
한국문화원 공무원들의 노력도 평가해야죠.
@@즐겁고유익한삶 잘못알고 것이 있는 것 같은데 브라질 한국관련 행사나 기념일 전부 한인회가 힘 쓴겁니다.
그게 벌써 20년이 다되가요
브라질 최초의 한국 관련 행사도 상파울루 주정부와 한인회가 합작해서 기획했고 그게 매년 이어져 여기까지 온겁니다
브라질 한인분들이 최초 한국의날 기념 행사를 위해서 자체 모금까지 해서 행사를 치뤄냈던 것도 모르시겠죠
한국 문화원은 그저 알리미 역할을 할 뿐이지 주도적으로 행사를 기획하는 기관은 아녜요
브라질 한국 행사 관련 역사 찾아보시면 좀 아실 겁니다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예여
다 한인회 분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합니다
정부는 그저 도울일 있으면 돕는 수준이지 능동적으로 주도해서 기획하는 일은 없어요
@@즐겁고유익한삶 이분 말씀이 맞음. 미국에서도 한국 행사하는거 대부분 다 한인회에서 다함
진짜 BTS.블랙핑크. 아이돌들한테 큰절 올려야된다...
한국문화의 위상이 이렇게 성장한데에는 아이돌의 역할이 8할을 했다고본다
싸이도요^^
아시아는 물론 유럽도 한국문화에대한 관심이 뜨겁지만 특히 남미의 반응과 열정은 정말 뜨겁다 그들의 민족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열정적임
와 대박
삼~~바🎶🎵신나네 🎶🎵
이럴때 일수록
겸손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10만명 총 누적 관객인지 알았어요 하루만에 10만명이라니 엄청 대단해요
브라질 분들 감사합니다 ^^
한국문화원 공무원분들 최고👍🏻 한인분들 최고👍🏻
Beautiful ❤❤❤
와~~~브라질에 영원한 평화를~
굿!👍
우와 ~ 많이도 모였네
대세라더니. 진짜 맞네
한류의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르네... 이미 어떤 곳은 사그라졌지만, 다른 곳은 활활 타오르는... 이게 계속 로테이션 하듯 반복... 영원한 한류가 되다...!
딴거보다 브라질리언들이 태권도 베이스로 새로운 유파 창설하는거 기대된다
일본 유도에서 주짓수 파생시켰는데
이사람들 격투기랑 축구에 진심임
저런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어 기쁘고 반면 한국내 정권의 놀라운 친일 행각에 더 놀랍니다. 일부 친일 권력자들이 나라를 망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와..아이돌이 간것도아닌데 하루 10만명은 대단하네ㄷㄷㄷ
이 정도 인기면 한국 축제 할때마다 경찰이랑 안전요원 배치는 필수겠네..........잘못하면 압사한다
하루가 다르게 대한민국은 내부에서 썩어가고있는데 ㅉㅉㅉ
저출산에 국짐에 뭐 나라 망하고 있는
한국인과 라틴계사람들이 좀 정서적으로 맞는부분이 있는것 같습니다.
일본인이 가장 많이 이민 간 나라가 브라질이라는데 의외로 아시아와 잘 맞는 부분이 있는가봅니다.
정서적으로 완전 달라서 오히려 통하는거임
외국 살다 보니 느낀건 동양인들은 동질감에 끌리고
서양애들은 새로운 거에 끌리는 편임
자존감 떨어지는 애들이 한국 벌게 뭐있다고 여행오는거 이해 안간다 하는데
내 서양 친구들은 다름에 매력을 느끼고 와서 대만족 하고감 ㅋㅋㅋ
유럽 당연히 좋은데 멋진 성당, 고대건물, 자연경관 보는것도 하루이틀
몇달 지나면 멋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불편함 ㅋㅋㅋㅋ
@@Z3r0CO01-x 화가 많네
그건 어느나라 사람이나 다마찬가지 아닌가 외국어느 나라나 아무리 좋은경관 이라도 몆달지내다 보면 다식상해 지는거 아닌가@@최지훈-p6d6s
정서적으로 완전히 반대입니다 이상한소리 하지마세요 ㅋㅋ
서진이네 저기 가면 24시 영업해도 부족하겠구나
한류 현상에 대해 이제는 어리둥절해 하거나 믿기 힘들다는 인식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원래 모습이 발현되고 있다고 인식해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는 일제 식민 사관과 중화 사대 사관에 의해 우리 민족의 역사가 한반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배웠기 때문에 한류열풍에 대해 어리둥절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역사는 대륙사와 해양사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좁은 반도에 갇힌채 외세의 침략만 당한 것이 아니라 넓은 대륙과 바다를 지배했습니다.
고조선의 강역은 중국의 동부 지역, 내몽골 지역, 발해만 지역, 만주 지역, 한반도를 포괄했습니다. 고조선의 유물인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의 분포 범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만주 지역과 내몽골, 발해만 지역을, 백제가 중국의 동부지역과 남부지역, 한반도의 서쪽 지역, 일본을 장악했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 모본왕 본기] 2년(서기 49년)
[후한서] [광무제 본기] 25년(서기 49년)
[후한서] [동이열전]
[삼국사기] [고구려 태조왕 본기] 3년(서기 55년)
고구려 1대 태왕 추모왕(주몽)의 연호는 ‘다물’입니다. 다물은 옛 땅을 되찾는것을 뜻하는 ‘다시 무르다, 되물리다’입니다. 즉 고구려는 고조선의 땅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서쪽을 공략했습니다.
모본왕때 고구려가 후한을 공격한 지역은 북경을 포함한 화북 지역입니다. 그런데 요동태수가 화친을 청했다는 것은 후한이 전쟁에서 지고 항복한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동태수입니다.
고구려가 후한의 화북 지역을 공격했을때 고구려의 맞상대가 요동태수였다는 것은 그 지역이 요동지역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즉 고대의 요동은 북경 인근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인식하는 요동은 요나라때부터 굳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고구려는 모본왕때 후한의 요동을 공격해서 요서 지역까지 차지했고, 태조왕때 요서에 10개의 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고구려는 요동 지역을 두고 중국과 1진 1퇴를 반복하다가 광개토태왕때 요동을 완전히 장악합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때 수당군이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입니다. 그런데 왜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어디서 군대가 집결하겠습니까? 당연히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겠죠? 하지만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 고구려와 수당과의 국경이 북경 근처였기 때문에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고대 요동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과 달라집니다. 북경 근처에 요동과 요서 지역이 있었던 것입니다.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
[삼국사기] [백제 동성왕 본기] 10년(서기 488년)
[자치통감] 영명 6년(서기 488년)
[남제서]
[남제서] [백제전]
동성왕이 북위의 군사를 물리치는데 공을 세운 백제 장수들에게 관직을 수여하고 이를 남제에 통보한 국서가 나온다. 그 중 한 구절은 라는 것이다. 면중왕에서 도한왕으로 승진시켰다는 것으로 백제 황제 수하에 서열에 따른 여러 왕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로 승진시켰다고 [남제서]는 말하고 있다.
[송서] [백제전]
[송서]에는 백제 개로왕 여경이 송나라에 라고 요청했다는 기사가 있다. 그러나 요청했다는 것은 윤색이고, 사실은 통보한 것이다. 흉노는 황제인 대칸이 중앙을 다스리고, 우현왕과 좌현왕이 좌우 강역을 다스렸는데, 대륙과 반도와 해양에 걸친 대제국 백제도 넓은 강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백제 임금 아래 우현왕과 좌현왕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중국에도 알려져 있어서 [양서] [백제 열전]에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구당서] [백제전]에는 라고 해서 백제왕이 거주하는 왕성이 둘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동왕성은 한반도, 서왕성은 대륙에 있었을 것이다. 백제는 요서와 일본은 물론 각지에 담로(후국)를 갖고 있던 황제국이었다.
[통전] [백제전]
요서군과 진평군이 오늘날의 유성, 북평(북경) 사이라고 위치까지 표시해 놓음
[양서] [백제전]
여기에서 백제가 도읍을 대륙에서 반도로 옮긴 것인지는 연구가 필요해 보임
[북사] [백제전]에는 라고 되어있고, [주서] [백제전]에는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 백제 본국이 중국의 왼쪽에 있을 수 없으므로 중국 내부에 백제의 영토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남제서] [백제전]에 의하면 백제 장군들이 북위와 싸워 승리한 후 남제가 광양, 조선, 대방, 광릉, 청하, 성양의 태수직을 백제 장군들에게 제수했다. 물론 실제로는 동성왕이 제수한 후 남제에 통보한 것이다. 광양은 현재의 하북성 융화로서 난하 상류 유역이고, 광릉은 현재의 강소성 양주 지역이며, 청하는 현재 산동성 익도이다. 그리고 하남성에는 아직도 백제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
[수서]에는 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백제가 동아시아 국제 해상 교역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중국 북부 요서 지방과 남부 광서성 장족 자치구에는 라는 지명과 한반도 관련 유물들이 존재한다.
베트남 인접 지역 광서성 장족 자치주 옹영현에는 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그리고 전라도에서만 보이는 맷돌, 외다리 방아, 서낭당 등이 있다. 안에는 가 있다. 라는 지명은 과거 군사적 목적의 성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이곳에 백제성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광서성 장족 자치주 남령으로부터 3시간이나 걸리는 산촌에는 라는 지명이 아직도 사용된다. 그런데 그 곳 주민들은 를 가 아니라 로 발음한다. 즉 백제는 고조선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중국 대륙의 북부 요서부터 동부와 남부 광서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담로국을 설치한 것이다. 고구려에는 다물(담울=담으로 친 울타리, 즉 고구려 성을 뜻함) 정신이 있었다면 백제에는 담로가 있었던 것이다.
저기 중공 사람들이 한복입고 숟가락 얻지말길~~
패밀리킴 덕분이다.
겸 손 하 고 예 의 바 른 한 국 인 이 됩 시 다
저기 겨울아닌가?
하긴 우리 한국아니면 무기와 약-
으로 코로나와 전쟁을 억지 시키니~~
이민가자
한국어강사 안구하나?
한복 과 쌈바 라 쌈박 하다
브라질하면 웃통까고 쓰레빠신고 핸드폰 훔치는애만 생각남 ㅋㅋㅋ
멘트 미찐거냐 나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