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vs 서울 명동대성당! 어떤 점이 다를까? [하늘과 땅을 잇는 집, 성당건축_초이스] 1회 - 하느님의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 수원교구 김진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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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4 ноя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12

  • @이순용-o6i
    @이순용-o6i 2 года назад +4

    김진태❤~~♡♡신부님은💝하늘💝~하느님께많은사랑과은총받으신분이십니다
    신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그라시아-r8o
    @그라시아-r8o 2 года назад +6

    성당건축과역사
    좋은정보주셔서감사드립니다

  • @이순용-o6i
    @이순용-o6i 2 года назад +5

    하늘하느님❤예수님❤성모님❤사랑합니다❤💖💝🤗⛪🧚‍♀️🌍🌍

  • @myrmoi
    @myrmoi Год назад

    음향 문제에 있어서... 해외에는 아직도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육성으로만 강론을 하는 곳들이 종종 있습니다. 의외로 뒤에서도 목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어느 정도 한계는 있어서 저같이 귀가 안 좋으면 웅웅 거리는 소리로 들립니다. 그리고 정교회도 그렇지만, 카톨릭에서도 일부 예식이 노래 부르듯 읽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읽으면 뒤에서도 훨씬 더 쉽게 목소리를 분간할 수가 있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정교회에서도 기도문을 챈트식으로 읽는 것을 들었는데 뒤에서도 잘 들립니다. 때문에 강론을 펼치는 곳이 신자석까지 들어와 있는 것은 이런 웅웅 거리는 것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고 나머지는 챈트 식으로 진행해서 뒤에서도 들리도록 한 것이 더 적절한 설명이라고 보입니다.

  • @김영희-y3b7s
    @김영희-y3b7s 2 года назад +8

    찬미예수님
    하느님아버지 찬미와영광 받으소서 아멘
    신부님 너~무 좋은 성당 도움이 되는
    말씀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주님의 은총 많이받으세요
    티없으신 성모마리아님의 사랑으로
    영.육 간에 건강하세요 아멘
    평화를빕니다 ~

  • @VIP-sc6dz
    @VIP-sc6dz 2 года назад +1

    이 나라를 제게 주십시오 예수님

  • @tinavino1575
    @tinavino1575 2 года назад

    노트르담은 그 지역 군주가 찾기 쉽도록 왕궁 근처에 같은 높이로 지어서 왕실과 함께 발전하겠다는 뜻을 가졌고, 이는 서양 대성당 공통점. 반대로 유독 명동성당만 조선왕조 사당을 내려다보는 명당 자리에 당시 서울에서 대형건물로서는 가장 높은 위치에 굳이 지어서 왕실을 깔아뭉갠다는 의지를 보임. 수도 중심 대성당을 언덕 위에 짓는 법이 원래는 가톨릭에
    없었음. 그래선지 구한말~일제시대 내내 조선 가톨릭은 독립운동에 무관심을 넘어 적대적이었고 조선총독부에 열성적으로 협조함. 박정희 독재정권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국 천주교가 민족발전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함.

    • @yoonjohnbap.j.5534
      @yoonjohnbap.j.5534 2 года назад +1

      천주교 전례 초기 명례방 모임이 있었던 곳에 명동성당 터를 잡은 것이지, 무슨 왕실을 깔아뭉갠다는 의지라는 둥 개신교 목사들 사고 방식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소리 지어 내지 말어. 조선총독부에 열성적으로 협조?? 이런 개신교 목사에게 제대로 세뇌 당한 가련한 인생을 무슨 방법으로 구원할고?? ㅉㅉㅉ

    • @tinavino1575
      @tinavino1575 2 года назад +1

      나는 불교에 가깝구요. 상식인데 몰랐나요? 이 땅의 가톨릭의 영광은 민주화투쟁으로 비로소 시작된 겁니다. 왕실 항의에도 영희전 지맥에 지은 게 명동성당이고요, 지금도 성당 안내문에 '당시 서울 어디서든 보이는 건물'로 지은 겁니다. 명동성당 주교는 안중근 의사를 폄하하고 이토 히로부미 조문을 갔으며 수녀들이 조화를 만들었습니다. 명동성당 주교는 안중근 친척의 거사계획도 총독부에 밀고해서 성당 부지를 넓혔죠. 조선 가톨릭은 성직자 명령으로 3.1운동 불참한 유일한 종교였고, 일본 가톨릭이 개인이라도 신사참배 거부했지만 조선가톨릭은
      만장일치 신사참배했습니다. 당시는 조선 제사는 아직도 우상숭배로 금지되었죠. .
      인사동 뒷골목 승동교회에는 자랑스런 안내문이 있죠. 3.1운동 계획 의논장소라고. 평지에서 애국혼이 높았던 개신교 덕에 일제시대 그리스도의 이미지가 좋게 유지되었어요.

    • @tinavino1575
      @tinavino1575 2 года назад +1

      단적으로 3.1절에 가톨릭 미사에서 무슨 아름다운 일화 말하던가요? 당시 만세운동
      참여하던 신학생을 사제들이 퇴학시켰는데

    • @tinavino1575
      @tinavino1575 2 года назад +1

      그리고 반말, 욕설하지 마세요. 그렇게 배웠습니까?

    • @tinavino1575
      @tinavino1575 2 года назад +1

      명례방은 구실일 뿐 . 외방전도회가 바티칸 감독 없이 사제 흉내내던 자생적 사제조직에다 배교의혹 컸던 명례방을 당시에 인정할 리가 없죠. 이승훈이 언제 시복되었죠? 명동성당은 안내문처럼 서울에서 제일 높은 위치란 게 중요했고, 이는 유럽 대성당에는 없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