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영천성을 탈환한 권응수 장군은 "군사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말을 하는 자, 적을 만났을 때 다섯 걸음 이상 물러나는 자, 장수의 명령을 듣지 않는 자, 전투 중 대열을 벗어나는 자는 목을 벤다."는 군율을 정하여 전투마다 승승장구하였습니다. 과거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군율이 매우 엄격해서 명령을 거역하고 도망치면 처형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거나 지나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명령을 무시하고 누군가 도망치기 시작하면 전체 병사들이 동요하고 무너져 몰살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에서는 집단항명을 하거나 전장에서 도망친 부대를 상대로 10분의 1을 처벌(사실상 처형)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읍참마속"이라는 일화처럼 제갈량은 아끼던 마속을 명령 위반죄로 울면서 참수하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탈영범도 군율에 따라 참수했습니다. 늙은 부모를 모셔야 하니 살려 달라고 울면서 애원했음에도... 😭 미국 건국의 아버지 워싱턴 장군도 탈영범을 교수형에 처했습니다. 꼬임에 넘어 간 것으로 보이는 한 명은 사면하고... 역사상 패배가 드물었던 강력한 군대는 대부분 군율이 매우 엄하였습니다. 더구나 지휘관이 멀찍이 물러나 뒤에서 지휘하지 않고 "고려의 이순신 양규 장군"이나 "조선 세조 때 위패를 모시고 추앙한 최영 장군",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처럼 앞장 서서 돌격하고 지휘하는 경우에는 군율이 엄격해도 부하들이 잘 따르고 사기가 높아 연전연승합니다. 🙂 (이에 비하면 5만 대군을 이끌고 가서 중국이 무서워 최무선의 신무기인 화포나 활 한 번 쏘아보지 않고 섬에 숨어 온갖 핑계를 대면서 돌아가게 해달라고 징징대다가 결국 반역을 일으킨 이성계는 쫄보입니다. 장군이 날씨 핑계라니요? 장마철에는 왜구가 안 쳐들어 오고, 혹시 쳐들어 오면 이성계는 활을 핑계로 싸우지 않고 도망쳤나요? 전투란 승리를 못 하더라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적에게 인식시켜도 성공입니다. 고려의 양규와 최영 장군, 조선의 이순신 장군은 모두 살신구국의 정신으로 겨레와 나라를 지켰습니다. 이성계가 진정 명장이고, 겨레를 위한다면 이 정도는 해야죠. 당당하게 고구려의 기개를 이어 받은 고려와는 달리 500년을 중국만을 섬기며, 사실상 속국과 다름없는, 허약한 나라로 만들어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만든 원흉은 쫄보 이성계입니다. 고려사는 승자인 이성계 일파가 쓴 글로서 반역을 정당화하려고 최영 장군은 폄하하고, 이성계는 과대 포장하여 미화하였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죽하면 조선 세조는 최영 장군의 위패를 모시게 했고, 조선 후기 해동명장전에는 이성계 대신 최영 장군을 넣었을까요? )
@@실버선장-q4r 대고려국이 대몽 항쟁을 끝으로 기상을 바로세우려 달리더니 이성계와 같은 역적 따위가 우리 민족의 기상을 막았다. 요동은 응당 우리의 것이어야 했어! 우리 고려민족이 다 죽는한이 있더라도 요동은 응당 우리 것으로 매듭지어야 했다. 요동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고려정신, 제국정신이 사라진 것이다. 썩어빠진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선택된 그 뿌리깊은 사대주의가 조선을 일자외교 고립에 빠지게 했다. 사대주의가 실리를 위해 채택된 정치 외교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세종대에 이르러선 명의황제의 명으로 명나라에 군마 7000마리를. 열 번에 나누어서 보냈다. 그렇게 조공과 책봉이 이뤄진 것이다. 절대 조공책봉은 무역이라 할 수도 없고. 실리외교라 할 수도 없다. 조공책봉 외교에 기대어 대국에 의지하니 임진왜란과 같은 전란 때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으며. 병자호란때는 임금이 머리를 조아린 것이 아닌가? 이런 말이 있다. 평화를 유지하려면 전쟁을 준비하라. 그러한 준비를 하려면 마음가짐과 정신이 우선인 것이다. "고려정신" 그것이 미중전쟁중인 지금 우리가 이어받아야 하는 사상이다.
이성계가 덕장이라기 보단 신흥사대부 눈에 그냥 자기말 잘들어주는 무력일뿐 딱히 덕장이라고 신흥사대부들이 좋아한게 아닌것 같지만요 실제로 최유의 덕흥군 군대와 싸울때 고려 장수들이 우물쭈물하자 이성계가 버럭 화를 내며 '장수란 자들이 어찌 그리 몸을 사리는가?' 라며 말하는데 그걸 들은 주변 장수들이 '그렇게 잘하면 자네가 혼자 나가 적과 싸워라' 라고 했다죠 이때 최영이 이성계에게 '말을 할때는 신중하고 차분히, 냉정히 말해야 하네' 하며 일러주었다죠 딱히 이성계만 마음씨 좋고 덕이 있는건 아닌것 같아 보입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꾸벅
감사합니다^
임진왜란 때 영천성을 탈환한 권응수 장군은 "군사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말을 하는 자, 적을 만났을 때 다섯 걸음 이상 물러나는 자, 장수의 명령을 듣지 않는 자, 전투 중 대열을 벗어나는 자는 목을 벤다."는 군율을 정하여 전투마다 승승장구하였습니다.
과거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군율이 매우 엄격해서 명령을 거역하고 도망치면 처형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거나 지나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명령을 무시하고 누군가 도망치기 시작하면 전체 병사들이 동요하고 무너져 몰살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에서는 집단항명을 하거나 전장에서 도망친 부대를 상대로 10분의 1을 처벌(사실상 처형)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읍참마속"이라는 일화처럼 제갈량은 아끼던 마속을 명령 위반죄로 울면서 참수하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탈영범도 군율에 따라 참수했습니다. 늙은 부모를 모셔야 하니 살려 달라고 울면서 애원했음에도... 😭
미국 건국의 아버지 워싱턴 장군도 탈영범을 교수형에 처했습니다. 꼬임에 넘어 간 것으로 보이는 한 명은 사면하고...
역사상 패배가 드물었던 강력한 군대는 대부분 군율이 매우 엄하였습니다.
더구나 지휘관이 멀찍이 물러나 뒤에서 지휘하지 않고 "고려의 이순신 양규 장군"이나 "조선 세조 때 위패를 모시고 추앙한 최영 장군",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처럼 앞장 서서 돌격하고 지휘하는 경우에는 군율이 엄격해도 부하들이 잘 따르고 사기가 높아 연전연승합니다. 🙂
(이에 비하면 5만 대군을 이끌고 가서 중국이 무서워 최무선의 신무기인 화포나 활 한 번 쏘아보지 않고 섬에 숨어 온갖 핑계를 대면서 돌아가게 해달라고 징징대다가 결국 반역을 일으킨 이성계는 쫄보입니다. 장군이 날씨 핑계라니요? 장마철에는 왜구가 안 쳐들어 오고, 혹시 쳐들어 오면 이성계는 활을 핑계로 싸우지 않고 도망쳤나요? 전투란 승리를 못 하더라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적에게 인식시켜도 성공입니다. 고려의 양규와 최영 장군, 조선의 이순신 장군은 모두 살신구국의 정신으로 겨레와 나라를 지켰습니다. 이성계가 진정 명장이고, 겨레를 위한다면 이 정도는 해야죠. 당당하게 고구려의 기개를 이어 받은 고려와는 달리 500년을 중국만을 섬기며, 사실상 속국과 다름없는, 허약한 나라로 만들어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만든 원흉은 쫄보 이성계입니다. 고려사는 승자인 이성계 일파가 쓴 글로서 반역을 정당화하려고 최영 장군은 폄하하고, 이성계는 과대 포장하여 미화하였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죽하면 조선 세조는 최영 장군의 위패를 모시게 했고, 조선 후기 해동명장전에는 이성계 대신 최영 장군을 넣었을까요? )
고려군 5만+군마 약 2만은 요동을 정벌하기에 충분하진 않더라도 그렇게 작은 군대도 아닙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보병 30,000과 기병 4,000(또는 보병 43,000과 기병 3,000 설도 있음)을 이끌고 원정을 시작하여 수십만 병력의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쿠데타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를 칭찬하고 최영 장군을 폄하하는 교육을 받아 온 이유는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이 자신들의 쿠데타를 정당화하려고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당대 세계 최강이었던 몽골 군대는 연대 책임이 적용되어 탈주자가 나왔을 때는 10명으로 구성된 최소 단위인(지금의 분대에 해당) 아르반의 구성원들이 모두 참수당했습니다.
최영은 용장, 이성계는 덕장이었군요! 와우
이 것도.. 통합본 내주실 거죠 ...ㅠㅠ???
제가 재생목록 만들어서 듣고 있어용 ㅠㅠㅠ
네~^^ 이번주 토요일 밤 10시에 몰아보기 업로드예정이오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용의 눈물에서, 이천우 조영무와 항상 세트로 등장하는 "조온"이 영상에 나오는 조인벽의 아들이자, 이성계 누나의 양아들이죠. 그래서 태조가 그래도 조카라고 예뻐 해 줬는데 뒤통수 쳤다고 노발대발
👍
이 양반아~승자의 기록만으로 최영을 폄하하나?
저렇게 선택을 받는게 이성계에게 좋았을까요? 이성계 스타일에 왕이 됬다고 흥청망청 마음대로 즐기며 산 것도 아니고 나중엔 아들들끼리 칼부림나고 뒷방 노인네가 되 쓸쓸히 죽었으니....
왕족이라는게 솔직히 저주 받은 운명이지.
@@에스카노르-i8j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냥 저주받은거지
감사합니다 교수님
@@동해병신련119조선에 대한 아니 자학사관이 대단하시네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권싸움에 형제,친인척간은 물론이고 부자간 다툼도 비일비재합니다,
@@실버선장-q4r 대고려국이 대몽 항쟁을 끝으로 기상을 바로세우려 달리더니 이성계와 같은 역적 따위가 우리 민족의 기상을 막았다. 요동은 응당 우리의 것이어야 했어! 우리 고려민족이 다 죽는한이 있더라도 요동은 응당 우리 것으로 매듭지어야 했다. 요동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고려정신, 제국정신이 사라진 것이다. 썩어빠진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선택된 그 뿌리깊은 사대주의가 조선을 일자외교 고립에 빠지게 했다. 사대주의가 실리를 위해 채택된 정치 외교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세종대에 이르러선 명의황제의 명으로 명나라에 군마 7000마리를. 열 번에 나누어서 보냈다. 그렇게 조공과 책봉이 이뤄진 것이다. 절대 조공책봉은 무역이라 할 수도 없고. 실리외교라 할 수도 없다. 조공책봉 외교에 기대어 대국에 의지하니 임진왜란과 같은 전란 때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으며. 병자호란때는 임금이 머리를 조아린 것이 아닌가? 이런 말이 있다. 평화를 유지하려면 전쟁을 준비하라. 그러한 준비를 하려면 마음가짐과 정신이 우선인 것이다. "고려정신" 그것이 미중전쟁중인 지금 우리가 이어받아야 하는 사상이다.
이성계가 덕장이라기 보단 신흥사대부 눈에 그냥 자기말 잘들어주는 무력일뿐 딱히 덕장이라고 신흥사대부들이 좋아한게 아닌것 같지만요
실제로 최유의 덕흥군 군대와 싸울때 고려 장수들이 우물쭈물하자 이성계가 버럭 화를 내며
'장수란 자들이 어찌 그리 몸을 사리는가?'
라며 말하는데 그걸 들은 주변 장수들이
'그렇게 잘하면 자네가 혼자 나가 적과 싸워라'
라고 했다죠
이때 최영이 이성계에게
'말을 할때는 신중하고 차분히, 냉정히 말해야 하네'
하며 일러주었다죠
딱히 이성계만 마음씨 좋고 덕이 있는건 아닌것 같아 보입니다
그렇죠. 그래도 자기 성격 못 죽이는 사람들 허다 한데 이성계가 이후에 성질 감추는 거 보면 보통 놈은 아닌거같아요
찜꽁 ㅋㅋ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