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 그러나 그런 광해군이 허균, 이항복과 이덕형, 그리고 이원익 같이 비록 반대파 이지만 그래도 그를 지지한 사람들을 숙청해 주변에 적을 만들었고, 김개시와 이이첨에게 놀아났으며 또 궁궐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매관매직을 했던것은 절대로 부정하기 힘든 그의 실책이죠.
지금 우리가 보는 궁궐들과는 다르게 매우 화려하고 아름답네요. 마룻대를 금으로 덮고 청기와에 적기와에 기둥에는 금색용도 그려져있고... 조선초기 궁궐들도 저런 느낌이었겠죠? 지금 남아있는 궁궐 건물들중 2층 테라스가 있는 건 경회루 주합루 정도인데 저 때는 아주 자연스러웠군요
광해군은 마음을 좀더 강하게 먹고 일을 해나갔다면 인조반정같은건 일어나지않았을거임 세조 - 한명회 처럼 좀 잔인하더라도 숙청을 단행했어야함 후세에 욕을 먹더라도 자기아들의 대에서 편안한 정치를 할수있게 했어야함 인목대비부터 죽이고 반란의 조짐을 감지했다면 능양군도 섬으로 유배보내버리고 본인뜻에 반한 사대부들을 불러서 대거 숙청을 단행했어야함 조선 초기에 학자로써 정치가로써 외교가로써 인품이 뛰어났던 정도전을 왜? 이방원이 죽였을까요? 왕권의 강화도 목적이었겠지만 자기 아들이 정치를 할때 최대의 걸림돌이었기에 죽였죠 그래서 용의눈물이라고 하잖아요 ㅋ
조선의 중심은 대륙인데.. 연산군 실록에 한양에 양을 기르는자가 많아 양이 궁궐로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이를 문책해야 한다는 상소가 있었으나 연산군은 꾸짖지 말라 하였다. 연산군 착함. 양은 초목이 있어야 하거늘...조선은 반도가 아님. 이후 양을 기르는 수를 제한 하였음.
너무 귀한 영상 감사합니다. 12:15 에 나오는 청기와 궁궐도의 경우 어느 그림인지 알 수 있을까요? 동궐도를 뒤져봤는데 선정전이랑 달라서 어느 그림인지 궁금해요 금색 장식이 이채로워요
5:50 그러나 그런 광해군이 허균, 이항복과 이덕형, 그리고 이원익 같이 비록 반대파 이지만 그래도 그를 지지한 사람들을 숙청해 주변에 적을 만들었고, 김개시와 이이첨에게 놀아났으며 또 궁궐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매관매직을 했던것은 절대로 부정하기 힘든 그의 실책이죠.
잘 보았습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창덕궁 대화재 때 인경궁 광정전인
선정전 건물은 불타지않아
청기와가 남아 있는 건가요?
아님 불탔다가 재건때
경훈각은 청기와로 올리지않았는데 선정전만
청기와로 만든 건가요?
멋지네요.구독 하고 갑니다. 채널 목표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궁궐들과는 다르게 매우 화려하고 아름답네요. 마룻대를 금으로 덮고 청기와에 적기와에 기둥에는 금색용도 그려져있고... 조선초기 궁궐들도 저런 느낌이었겠죠? 지금 남아있는 궁궐 건물들중 2층 테라스가 있는 건 경회루 주합루 정도인데 저 때는 아주 자연스러웠군요
근데 문제는 바로 전쟁 직후에 궁궐을 건설한게 문제임.
창덕궁과 창경궁이야 원래 그 이전부터 존재했었던 궁궐들이니 재건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인경궁과 경희궁은 대체 왜 지은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감. 차라리 그돈으로 경복궁이나 재건해야지... 광해군도 참 모지리였나봄..
광해군은 유연한 조선 초기로의 회귀를 원하였다니... 정말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광해군...
파고 들수록 보면...
참 인생 파란만장하다... ㅠ
재밋네요
저 청기와를 만들려고 화약의 재료인 염초를 날려 먹다니....
상당히 전문적 지식을 갖추신 분이네요 ~~~♥
유교의 상도와 권도에 관한 적절한 예시를 들어서 잘 기억하고 갑니다
그러나 오성과한음, 그리고 이원익 같은 인재들을 쫓아낸게 큰 실수임.
광해군은 마음을 좀더 강하게 먹고 일을 해나갔다면 인조반정같은건 일어나지않았을거임
세조 - 한명회 처럼 좀 잔인하더라도 숙청을 단행했어야함 후세에 욕을 먹더라도 자기아들의 대에서 편안한 정치를 할수있게 했어야함
인목대비부터 죽이고 반란의 조짐을 감지했다면 능양군도 섬으로 유배보내버리고 본인뜻에 반한 사대부들을 불러서 대거 숙청을 단행했어야함
조선 초기에 학자로써 정치가로써 외교가로써 인품이 뛰어났던 정도전을 왜? 이방원이 죽였을까요? 왕권의 강화도 목적이었겠지만 자기 아들이 정치를 할때 최대의 걸림돌이었기에 죽였죠
그래서 용의눈물이라고 하잖아요 ㅋ
그런 사람이 상궁 김개시한테 홀려서 오성과 한음 같은 인재들을 숙청 하셨나? ㅉㅉㅉ
조선의 닶없는 역사를 듣고자면 속에서 욕지기가 올라옴
조선의 중심은 대륙인데..
연산군 실록에 한양에 양을 기르는자가 많아 양이 궁궐로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이를 문책해야 한다는 상소가 있었으나 연산군은 꾸짖지 말라 하였다.
연산군 착함. 양은 초목이 있어야 하거늘...조선은 반도가 아님.
이후 양을 기르는 수를 제한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