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근 목사님, 팔레스타인 땅은 제 1차 세계 대전 까지는 오스만 터키의 땅이었습니다. 그 땅이 별 볼일 없으니 황무지로 있다가 18세기 후반 부터 여기 저기서 몰려들기 시작 했다 해도 그들은 대부분이 오스만 터기의 지배아래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1차 세계 대전에서 터키가 독일 편에 서서 망하는 바람에 영토가 쪼그라 들어 현재의 아나톨리아 반도가 튀르키예(터키)가 되었지만 팔레스타인 땅이 결코 임자없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오스만 터키의 영역이 유럽의 일부와 현재의 이라크 지역, 팔레스타인과 이집트, 튀니지 까지 오스만 터키의 영역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행하신다는 걸 저도 믿습니다. 그치만 요즘 이스라엘의 행태를 보면 성경적이지도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구요 그들이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하는 거 보면요 과거에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한 걸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를 단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기도를 해 주고 축복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눈을 가리 신 것은 우리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서이며 이방인들의 수가 차기까지 허락하신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행할 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눈이 가려진 것을 안타까와하며 그 수건이 벗겨지도록 하나님의 애통하시는 마음을 구하며 기도해야할 줄 믿습니다ㅠㅠ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며 판단해서는 물질 세계의 배후에 존재하는 영적 상황을 분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적 전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들을 말씀에 의거하여 적용하고 생각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 안에 있는 백성이고 그 언약의 말씀을 지금 폭풍 같은 상황 가운데서도 절대 주권으로 지키시며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넘어짐으로 인해 말씀을 받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대속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을 말씀의 성취의 개념에서 바라보고 기도할 수 있도록 간구해야할 줄 믿습니다~^^
@@김혜란-w9s7m 근데요 이스라엘 주변 아랍권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알고 있구요 또 사라가 죽은 후에 아브라함이 그두라에게서 아들 넷을 낳았는데 그들도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스마엘도 큰 민족을 이룰 거라고 축복하셨습니다. 글구 요르단은 롯의 두 딸들이 낳은 아들로써 아브라함의 후손은 아니지만 이들도 같은 히브리인입니다. 이집트와 터키는 함의 후손이지만 시리아, 이란은 셈의 후손이구요 이스라엘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인데 서로 씨를 말릴려고 싸우는 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식빵집사-n4c 예, 맞습니다! 이스마엘도 예언대로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한 가족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이을 약속의 씨(이삭의 후손)를 없애려는 선택받지 못한 자(이스마엘의 후손)의 질투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전지구적 영적 흐름을 주도하며 이어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때에도 재림때에도 이 말씀의 성취를 막으려는 엄청난 세력들의 배후 조종에 의해 전세계가 고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말씀의 성취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되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고 둘이 원수된 것을 육체로 허무셨습니다. 십자가의 화목과 용서가 모든 어둠의 통치자들을 깨뜨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진 이 십자가의 승리를 온 땅, 특별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 이 진리를 몰라서 고통하는 온 땅에 선포하며 가장 기쁜 복음의 소식을 전하러 더 빨리 나가야겠습니다!
좋은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ᆢ "이방인의 때"에 대해서는 오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방인의 때의 주요 특징은 예루살렘이 이방인의 압제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B.C 586년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침공했을 때부터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바로 그때까지입니다. 아직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예루살렘은 회교사원이 버젓이 자리하고 그들의 실제적인 통제하에 있습니다. 아직은 이방인의 때입니다.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강조하신 말씀은 종말과 관련된 세 때였다. 곧 예루살렘의 멸망이 있게 될 '징벌의 날'과 '이방인의 때'와 이 땅에 다시 오실 '재림의 날'이었다. 이중에서 '이방인의 때'는 '징벌의 날'과 '재림의 날'을 이어주는 중간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이방인의 때'가 시작되는 시점은 분명하다. 비록 주후 132년 바르 코흐바의 주도 하에 일어났던 또 한 차례의 로마항쟁으로 일시적인 회복이 있었긴 했지만, 이스라엘이 주권을 상실한 채 이방인들에게 짓밟히기 시작한 것은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파괴된 때였다. 그 이후 예루살렘은 세계를 지배했던 일곱 제국(로마; 비잔틴; 이슬람; 십자군; 마물룩; 오스만 터키; 영국)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렇다면 '이방인의 때'는 언제 끝나는 것인가? 그에 대하여 누가복음 본문은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이방인의 때'가 '재림의 날'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것(눅 21:27)이고, 다른 하나는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예루살렘이 이방인들에게 밟힌다는 것(눅 21:24)이다. 전자가 인류구원의 최종 완성과 관련되는 것이라면, 후자는 구원의 수단으로서 이스라엘의 역할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방인의 때'가 끝나는 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을 위한 전제이다. 그러면서 그것은 또한 예루살렘의 회복이라는 가시적 증거와 관련이 있다. '이방인의 때'가 찼음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역사의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방인의 때'가 끝났음을 보여주는 증거로서의 예루살렘 회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모든 역사는 최종적인 결과와 함께 그것을 향한 과정들로 구성된다. 그래서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Rome was not built in a day)는 말이 생겼다. '이방인의 때'에도 그런 역사공식이 적용된다. '재림의 날'이 '이방인의 때'가 완전히 끝났음을 알리는 최종 증거라면, 예루살렘의 회복은 '이방인의 때'가 끝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과정으로서의 증거들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무화과나무 비유는 그런 점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눅 21:29-30). 여기에서의 '여름'은 '재림의 날'을 의미하고, 그것이 가까이 다가옴을 알려주는 '싹'은 예루살렘의 회복으로 이해할 수 있다(눅 21:30). 봄철에 싹을 내기 시작하는 무화과나무는 여름의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여름'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카이츠'는 '마지막'을 의미하는 '케츠'와 발음이 비슷하다. 이스라엘에서 여름은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계절이다. 무화과나무의 새싹이 마지막 계절인 여름의 도래를 알리는 것처럼, 예루살렘의 회복도 '이방인의 때'가 끝나고 있음을 알려주는 바로미터인 셈이다. '이방인의 때'에서 '때'로 번역된 헬라어 '카이로이'는 '카이로스'의 복수형이다. 헬라어에서 시간은 '카이로스'와 '크로노스'로 구별된다. 결정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카이로스'는 정량적이고 순차적인 시간인 '크로노스'와는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이런 두 종류의 시간은 단지 이해를 위한 분석일 뿐이지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방인의 때'는 '카이로스'로서 하나님의 결정적인 사건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런 사건들은 '크로노스'라는 물량적 시간 속에 담겨져 있다. '재림의 날'이 카이로스 중의 카이로스라고 한다면, 예루살렘의 회복은 '크로노스' 속에 담겨있는 과정들로서의 '카이로스'로 이해할 수 있다. 복수형 '카이로이'가 사용된 것도 그런 의미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주후 70년과 135년 두 차례에 걸친 로마의 예루살렘 파괴는 유대인들이 전 세계로 흩어지는 결과를 가져온 사건으로 '이방인의 때'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그렇게 시작된 '이방인의 때'는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과 1967년 예루살렘 관할권의 회복으로 그 기간이 끝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런 일련의 사건들은 마지막 때인 '재림의 날'이 가까이 도래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징조이기도 하다. *권혁승 박사(서울신대 구약학 명예교수)의 논문 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성경역사적인 사건속에 현재 하나님의 역사의 계입하심을 너무 정날하게 자제히 심도깊게 다뤄주신 말씀 가슴깊히 잘 들었습니다. 순종으로 때론 복종으로 주님 앞에 엎드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재공하신 기독문화 연구소 감사합니다.
28:11 28:11 28:12
그렇습니다 조목조목 옳으신말씀 입니다
일깨워주신 목사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확고한 믿음을 갖게 해
주신 하나님께 찬양
드립니다.
그렇구말구요 맞습니다
아멘!!아버지께서 내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였도다란 말씀이 생각납니다 무지한 백성때문에 애통하여 기도합니다 예수님 예루살렘을 깨우시고 평화가 정착되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동감합니다
이스라엘을 성경관점에서 알려주셔서 귀에 쏙쏙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말씀이 성취될것을 믿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2천년전에 오신 예수님인것을 받아들이도록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제대로 보기를 기도합니다❤ 1:08:32
아멘 아멘
아멘, 이스라엘의 예수님께로 돌아오기만을
우린 기도해야합니다^^
세상논리로,언론이,,, 뭘알겠어요
주님손에 답이있슴다 할렐루야^^
그러니까요 바른말씀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 소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회복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샬롬
예수님의 지상재림은 유대인의 회심이 일어날 7년 대환란중에 있지만
공중재림하여 전세계 참성도들의 휴거가 일어날 그 날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 하는 크리스천이 되야하는데 그런 진짜는 너무 귀합니다. 저는 태극집회에 가서 목격만 했던 EQ미달 이지만 무덥고 뜨거운 광장에서 70이 훨씬 넘을 연세에 눈물로 통곡하며 기도하시는 분을 보았습니다.
유대인들과 같이 30여년을 일해보니
그들의 삶의 관점은 성경적 세계관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 입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일반인들은 아랍 이스라엘에 대해서 무지하고 무식하기에 하나님의 세계 이스라엘에 대해 전혀 아는것이없으니 당치도않은 말만 지껄이고 있을뿐입니다 목사님을 통해 중요한 심도있는 역사를 알게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러니까요 맞습니다
예수님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축복해야한다 이스라엘이 잘되어야 온세계가 잘됩니다
ㅜ싯히다 유대인들 바로 모두 하나같이 악하다.민족성이 왜 독일에서 죽였나 ..10분 공감 될만 .ㅁ 악질이고 건민 사상의 끝 제발 정신차리고 공부해라.
아멘아멘~!! 할렐루야😅
이스라엘이여 영원하라
이스라엘에 대하여 세밀하게 알려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목사님~♡♡♡넘,넘 감사드립니다 늘 주님의 평안이 깃들기를 소원합니다~!!🙏🙏🙏
살인좀비흰신 666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아멘 마라나타 ❤
혹시 디도 장군때문에 폼페이가 망한게 하닌가 하는 생각이 듬. 아니 이탈리아는 그 죄를 어떻게 다 갚으려고 하는지 모름 설상가상으로 로마에 교황이 또아리를 틀고 잇으니 적그리스도영이 이 나라에 충만 할수 밖에... 우리 이태리 선교사님들 힘냅시다.
두나라
정리입니다계20:11-15
3:11 12^^
계시록 2:9, 계 3:9
성경적 관점으로 본 이스라엘의 역사가 이젠 이해가 됩니다. 마지막 때를 분명히 밝혀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무화과나무를 보라 한 것의 기준은
1948년 독립때?
1967년 이스라엘 회복 때?
언제로 봐야 하나요?
목사님 감사합니다🇮🇱🇮🇱🇮🇱🇮🇱🇮🇱🇮🇱🇮🇱🙏
유석근 목사님, 팔레스타인 땅은 제 1차 세계 대전 까지는 오스만 터키의 땅이었습니다.
그 땅이 별 볼일 없으니 황무지로 있다가 18세기 후반 부터 여기 저기서 몰려들기 시작 했다 해도 그들은 대부분이 오스만 터기의 지배아래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1차 세계 대전에서 터키가 독일 편에 서서 망하는 바람에 영토가 쪼그라 들어 현재의 아나톨리아 반도가 튀르키예(터키)가 되었지만
팔레스타인 땅이 결코 임자없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오스만 터키의 영역이 유럽의 일부와 현재의 이라크 지역, 팔레스타인과 이집트, 튀니지 까지 오스만 터키의 영역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행하신다는 걸 저도 믿습니다.
그치만 요즘 이스라엘의 행태를 보면 성경적이지도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구요
그들이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하는 거 보면요 과거에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한 걸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를 단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기도를 해 주고 축복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눈을 가리 신 것은 우리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서이며 이방인들의 수가 차기까지 허락하신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행할 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눈이 가려진 것을 안타까와하며 그 수건이 벗겨지도록 하나님의 애통하시는 마음을 구하며 기도해야할 줄 믿습니다ㅠㅠ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며 판단해서는 물질 세계의 배후에 존재하는 영적 상황을 분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적 전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들을 말씀에 의거하여 적용하고 생각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 안에 있는 백성이고 그 언약의 말씀을 지금 폭풍 같은 상황 가운데서도 절대 주권으로 지키시며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넘어짐으로 인해 말씀을 받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대속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을 말씀의 성취의 개념에서 바라보고 기도할 수 있도록 간구해야할 줄 믿습니다~^^
@@김혜란-w9s7m 근데요 이스라엘 주변 아랍권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알고 있구요 또 사라가 죽은 후에 아브라함이 그두라에게서 아들 넷을 낳았는데 그들도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스마엘도 큰 민족을 이룰 거라고 축복하셨습니다.
글구 요르단은 롯의 두 딸들이 낳은 아들로써 아브라함의 후손은 아니지만 이들도 같은 히브리인입니다.
이집트와 터키는 함의 후손이지만 시리아, 이란은 셈의 후손이구요 이스라엘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인데 서로 씨를 말릴려고 싸우는 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식빵집사-n4c 예, 맞습니다! 이스마엘도 예언대로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한 가족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이을 약속의 씨(이삭의 후손)를 없애려는 선택받지 못한 자(이스마엘의 후손)의 질투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전지구적 영적 흐름을 주도하며 이어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때에도 재림때에도 이 말씀의 성취를 막으려는 엄청난 세력들의 배후 조종에 의해 전세계가 고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말씀의 성취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되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고 둘이 원수된 것을 육체로 허무셨습니다.
십자가의 화목과 용서가 모든 어둠의 통치자들을 깨뜨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진 이 십자가의 승리를 온 땅, 특별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 이 진리를 몰라서 고통하는 온 땅에 선포하며 가장 기쁜 복음의 소식을 전하러 더 빨리 나가야겠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예수를 믿는자들이 아닌거로 알고있습니다.
이미 이스라엘에서는 랍비를 하나님으로 믿는데 ~그들의 어린아이와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사건을 동조할수는 없죠.
예수님은 말씀은 어린아이와 과부를 죽이라고 명령한적이 없습니다.
@@박윤경-s1p
맞습니다! 이스라엘 정부 지도자들이 대부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언론 미디어에서 얘기하는 것들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되고 잘 분별하는 지혜가 너무나 필요한 때입니다!
하마스든 헤즈볼라든 현대 이스라엘과 관련한 전쟁 이야기는 마 24:7 외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현대 이스라엘과 종말론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오래 전의 중동 전쟁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가, 규모가 작은 이번 전쟁에 대해서는 왜 그리 호들갑일까요?
암이 이기는 경우가 더 많은데 모르는 모양입니다
좋은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ᆢ
"이방인의 때"에 대해서는 오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방인의 때의 주요 특징은 예루살렘이 이방인의 압제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B.C 586년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침공했을 때부터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바로 그때까지입니다.
아직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예루살렘은 회교사원이 버젓이 자리하고 그들의 실제적인 통제하에 있습니다.
아직은 이방인의 때입니다.
이방인의 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방인의 때' 이해 방법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강조하신 말씀은 종말과 관련된 세 때였다. 곧 예루살렘의 멸망이 있게 될 '징벌의 날'과 '이방인의 때'와 이 땅에 다시 오실 '재림의 날'이었다. 이중에서 '이방인의 때'는 '징벌의 날'과 '재림의 날'을 이어주는 중간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이방인의 때'가 시작되는 시점은 분명하다. 비록 주후 132년 바르 코흐바의 주도 하에 일어났던 또 한 차례의 로마항쟁으로 일시적인 회복이 있었긴 했지만, 이스라엘이 주권을 상실한 채 이방인들에게 짓밟히기 시작한 것은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파괴된 때였다. 그 이후 예루살렘은 세계를 지배했던 일곱 제국(로마; 비잔틴; 이슬람; 십자군; 마물룩; 오스만 터키; 영국)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렇다면 '이방인의 때'는 언제 끝나는 것인가? 그에 대하여 누가복음 본문은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이방인의 때'가 '재림의 날'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것(눅 21:27)이고, 다른 하나는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예루살렘이 이방인들에게 밟힌다는 것(눅 21:24)이다. 전자가 인류구원의 최종 완성과 관련되는 것이라면, 후자는 구원의 수단으로서 이스라엘의 역할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방인의 때'가 끝나는 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을 위한 전제이다. 그러면서 그것은 또한 예루살렘의 회복이라는 가시적 증거와 관련이 있다. '이방인의 때'가 찼음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역사의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방인의 때'가 끝났음을 보여주는 증거로서의 예루살렘 회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모든 역사는 최종적인 결과와 함께 그것을 향한 과정들로 구성된다. 그래서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Rome was not built in a day)는 말이 생겼다. '이방인의 때'에도 그런 역사공식이 적용된다. '재림의 날'이 '이방인의 때'가 완전히 끝났음을 알리는 최종 증거라면, 예루살렘의 회복은 '이방인의 때'가 끝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과정으로서의 증거들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무화과나무 비유는 그런 점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눅 21:29-30). 여기에서의 '여름'은 '재림의 날'을 의미하고, 그것이 가까이 다가옴을 알려주는 '싹'은 예루살렘의 회복으로 이해할 수 있다(눅 21:30). 봄철에 싹을 내기 시작하는 무화과나무는 여름의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여름'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카이츠'는 '마지막'을 의미하는 '케츠'와 발음이 비슷하다. 이스라엘에서 여름은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계절이다. 무화과나무의 새싹이 마지막 계절인 여름의 도래를 알리는 것처럼, 예루살렘의 회복도 '이방인의 때'가 끝나고 있음을 알려주는 바로미터인 셈이다.
'이방인의 때'에서 '때'로 번역된 헬라어 '카이로이'는 '카이로스'의 복수형이다. 헬라어에서 시간은 '카이로스'와 '크로노스'로 구별된다. 결정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카이로스'는 정량적이고 순차적인 시간인 '크로노스'와는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이런 두 종류의 시간은 단지 이해를 위한 분석일 뿐이지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방인의 때'는 '카이로스'로서 하나님의 결정적인 사건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런 사건들은 '크로노스'라는 물량적 시간 속에 담겨져 있다. '재림의 날'이 카이로스 중의 카이로스라고 한다면, 예루살렘의 회복은 '크로노스' 속에 담겨있는 과정들로서의 '카이로스'로 이해할 수 있다. 복수형 '카이로이'가 사용된 것도 그런 의미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주후 70년과 135년 두 차례에 걸친 로마의 예루살렘 파괴는 유대인들이 전 세계로 흩어지는 결과를 가져온 사건으로 '이방인의 때'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그렇게 시작된 '이방인의 때'는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과 1967년 예루살렘 관할권의 회복으로 그 기간이 끝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런 일련의 사건들은 마지막 때인 '재림의 날'이 가까이 도래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징조이기도 하다.
*권혁승 박사(서울신대 구약학 명예교수)의 논문 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사랑침례교회 정동수목사님김포 영광교회 박영민민목사 말씀도 들어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