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26연대 흙바닥 구 막사에서 낯에 훈련받고 밤에는 신 막사 공사하고, 전방 자대생활 중 도끼 만행 사건으로 씹겁하고(실제 전쟁 날 줄 알았음), 엄청나게 빳다 맞고, 정말 32개월 개 고생하다 제대했지만,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진심 이였음. 70년대 군대생활 이야기하면 눈물나서 못함니다. 전방 통신방카공사....
74년 입대 34개월 보름했네요. 철원 6사단. 개고생하고 사단 CP 부관참모부에서 근무했습니다. 말씀하신 벙커작업도 일주일 해봤네요. ㅎ 아침먹고 물.자갈.모래 등을 질통에 지고 산 정상에 가서 퍼놓고 내려와 점심먹고 또 다녀오면 됩니다. 그런데 보초.집합. 빳다 없지요. 가끔 막걸리도 주지요. ㅎㅎ 자대보다 더 좋습니다. 거지.상거지떼 맞습니다^^ 산에 올라갈때 물통 진놈만 따라갑니다. 중간에 다 쳐먹고 올라가면 반통도 안되요. 모래.자갈도 다 흘리고 남는거 반도 안되지요. 때리면 맞는게 더 편합니다. 무식한 개.돼지들 이라고요? ㅋㅋ 서울법대도 있고 일류대가 즐비합니다. 명색이 사단본부인데. 비리? 많았지요. 잘 압니다. 비밀도 많구요. 인사. 병력통제하니 돈이 따라 다닙니다. 월남전의 교훈이 군을 바꿨지요. 구타금지. 군간부 교육.고급화 등. 여기 다 못씁니다. 전역전 영농교육. 해외파견 근로자 중장비교육. 급식개선. 비리척결. 장교.하사관 출신지 학력 확인 등. 77년 전역 당시 진짜 많이 바뀌고 좋아 지는 걸 봤지요. 또 밤새워 일 했습니다. 전방에서 피눈물나게 고생들 하셨습니다. 나는 감히 비교 못합니다.
야, 여기서 전설의 빵카작업 이야기를 들을 줄이야! 코페스님께서 70객이신 줄은 몰랐네요. 세멘, 모래, 물만이 아니고 쇠로 된 형틀은 무게가 80킬로나 되는데 그것도 사람이 끌어올렸지요. 식사추진이 늦어지면 새벽 2시에 저녁을 먹기도 하고 진짜 꽃제비 + 돌격대였지요. 저 벙커는 중대별 진지로 교통로에 의해 각 중대, 대대 등 제대들이 연결됩니다. 화스트 베이스가 발령되면 2시간 내에 완전군장 및 자재를 탑재해서 이 방어진지로 투입됩니다. 겨울엔 자대의 잔류병력들이 비닐 주머니에 담은 밥에 반찬(깍두기, 미역무침)을 박은 주먹밥을 주는데 산 밑에서 받아오는 식사추진조들이 가져오면 얼어서 완전히 돌덩어리입니다. 이빨이 안 들어가서 부숴먹다가 금방 추워서 몸이 덜덜 떨립니다. 전 소대원이 "이따위 걸 사람 먹으라고 주냐!"하고 고함치면서 전부 다 버린 적도 있습니다. 다만, 오륙십년대의 군영에선 선임들의 구타가 좀더 심하고 가혹했다고 들었습니다. 말년 병장이 자대 전입 시 3개월을 매일 밤 화장실 뒤에서 두 시간 동안 곡괭이 자루에 맞았던 경험을 국방일보에 올린 것을 보고 놀랐지요. 구타근절을 위한 캠페인의 실화담이었지요. 지금도 장성들은 병을 한낱 소모품으로 보고 있겠지요. 병력의 소중함이 더해가는 이즈음인데...
북한은 아직도 철책을 군인들 투입해 건설하고 있는데? 지금 얘기하는 우리의 70년대 상황을 북한군의 지금 상황이네. 탈북민들의 증언 그대로네. 우리는 과거지만 북한은 11:47 현실이라는 사실이고 군비리도 북한상황일거고 지금은 인권타령하는 군대라 상상도 못하는 세상이고. 그때 지었으니 그동안 사용한거 아닌가?
지금 70대 어르신들이 고생 많이 하신거네요... 감사합니다!
58년생으로 36개월 군생활! 그래도 자부심은 만땅!
저게 청죽회 장성 서욱이가 저지른거죠. 저거 해 놓고 육참총장되고 경계과학화 중국제로 다 셋팅해서 실시간으로 중국으로 경계 정보가 그대로 다 넘어가게 했다능 ㅠㅜ
그런 첩자들은 일반에 공론화해서 퇴출시켜야 합니다 국회에 알려서 청문회를 열게하던지
코패스님을 항상 응원 합니다 감사합니다 👍
80년대도 무척 힘들었습니다
✔ 12:53 5/18...연고대생...채널...
많이...시청했었는데...
어느날...갑~~~~~~자기...채널이...사라졌습니다...
저들이...감추고싶은...진실이니...
지금은 코페스 정보 채널로 부활 중에요 많이 시청해 주세요.
@@cofes
그러셨군요...어쩐지...목소리가...귀에...낮설지...않았습니다...
응원...합니다....건강...조심하시구요...🍀🍀🍀🍀🍀
논산 26연대 흙바닥 구 막사에서 낯에 훈련받고 밤에는 신 막사 공사하고, 전방 자대생활 중 도끼 만행 사건으로 씹겁하고(실제 전쟁 날 줄 알았음), 엄청나게 빳다 맞고, 정말 32개월 개 고생하다 제대했지만,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진심 이였음. 70년대 군대생활 이야기하면 눈물나서 못함니다. 전방 통신방카공사....
그때가 북괴보다 열등했던 전력을 극복한다고 벙커작업을 한국군 창설이후 최대로 많이 했었다고 들었습니다.
손톱깎고 머리카락 잘라서 유품으로 만들었던..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충성!
며느리 데리고 면회왔던 할머니가 전쟁난다고 하니까 씨받아야 한다고 울고불고해서 씨받는 시간을 줬다는 이웃부대 이야기도 ㅎㅎ
부대마다 주둔지 책임 벙커가 있어서 전군이 다했지요. 후방빼고 ㅎ
땅굴사건. 도끼사건... 소소한 교전. 또 월남전 패망으로 바짝 위기의식이 높을 때 입니다.
좋은방송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90년도 초반에 군대 생활을 했는데 그 때도 고참들의 폭력등으로 힘들었읍니다.
군생활 할 때 연천의 모 부대로 진지 보수 작업하러 간 적 있었는데 벙커에 완공날짜랑
연대장 노태X라고 적혀 있는 거 보고 선임이 "이거 공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청 고생했을 듯" "끌려와서 개고생"
"밑에 사람들 엄청 고생시켰구나" 말하던 게 생각나네요
동반자님 많은 영상 정보 감사합니다 👹👹👹👍
그 당시 강원도 산골에서 다경험해 본 사람입니다. 교육훈련과 공사와 작업가운데 날아간 청춘의 한 부분이지만 그래도 젊었기에 악으로 깡으로견뎠습니다.
나이들어 쇠약해진 몸이지만 마음만은 그 시절 그대로인데 지나간 젊은 날이 그리울 뿐이네요.
늙어가고 병들어 가는 몸이지만, 그 당시에는 모두 다 그런 엄청난 고통을 이겨 낸 강건한 육체들의 소유자였죠.
정말 억울하게 흘러간 시간이었죠.
74년 입대 34개월 보름했네요. 철원 6사단.
개고생하고 사단 CP 부관참모부에서 근무했습니다. 말씀하신 벙커작업도 일주일 해봤네요. ㅎ 아침먹고 물.자갈.모래 등을 질통에 지고 산 정상에 가서 퍼놓고 내려와 점심먹고 또 다녀오면 됩니다.
그런데 보초.집합. 빳다 없지요. 가끔 막걸리도 주지요. ㅎㅎ 자대보다 더 좋습니다. 거지.상거지떼 맞습니다^^ 산에 올라갈때 물통 진놈만 따라갑니다. 중간에 다 쳐먹고 올라가면 반통도 안되요. 모래.자갈도 다 흘리고 남는거 반도 안되지요. 때리면 맞는게 더 편합니다.
무식한 개.돼지들 이라고요? ㅋㅋ
서울법대도 있고 일류대가 즐비합니다. 명색이 사단본부인데.
비리? 많았지요. 잘 압니다. 비밀도 많구요. 인사. 병력통제하니 돈이 따라 다닙니다.
월남전의 교훈이 군을 바꿨지요. 구타금지. 군간부 교육.고급화 등.
여기 다 못씁니다.
전역전 영농교육. 해외파견 근로자 중장비교육. 급식개선. 비리척결. 장교.하사관 출신지 학력 확인 등.
77년 전역 당시 진짜 많이 바뀌고 좋아 지는 걸 봤지요. 또 밤새워 일 했습니다.
전방에서 피눈물나게 고생들 하셨습니다. 나는 감히 비교 못합니다.
1986.12.1 입대 공군 병 396기 임니다.. 양평 용문산 정상에서 근무했습니다(35개월).. 😊
78년도 7월 한여름
논산 28년대 입소해서
맷집 좋아보인다는 이유로 지명받아 1소대 "향도"라는거,
혹독한 매받이 했어
여기서 살아나갈수 있을까
걱정들기도 했엏지
향도라는게 그게 뭔지
잘몰랐거든
야, 여기서 전설의 빵카작업 이야기를 들을 줄이야! 코페스님께서 70객이신 줄은 몰랐네요.
세멘, 모래, 물만이 아니고 쇠로 된 형틀은 무게가 80킬로나 되는데 그것도 사람이 끌어올렸지요.
식사추진이 늦어지면 새벽 2시에 저녁을 먹기도 하고 진짜 꽃제비 + 돌격대였지요.
저 벙커는 중대별 진지로 교통로에 의해 각 중대, 대대 등 제대들이 연결됩니다.
화스트 베이스가 발령되면 2시간 내에 완전군장 및 자재를 탑재해서 이 방어진지로 투입됩니다.
겨울엔 자대의 잔류병력들이 비닐 주머니에 담은 밥에 반찬(깍두기, 미역무침)을 박은 주먹밥을 주는데
산 밑에서 받아오는 식사추진조들이 가져오면 얼어서 완전히 돌덩어리입니다.
이빨이 안 들어가서 부숴먹다가 금방 추워서 몸이 덜덜 떨립니다.
전 소대원이 "이따위 걸 사람 먹으라고 주냐!"하고 고함치면서 전부 다 버린 적도 있습니다.
다만, 오륙십년대의 군영에선 선임들의 구타가 좀더 심하고 가혹했다고 들었습니다.
말년 병장이 자대 전입 시 3개월을 매일 밤 화장실 뒤에서 두 시간 동안 곡괭이 자루에 맞았던 경험을
국방일보에 올린 것을 보고 놀랐지요. 구타근절을 위한 캠페인의 실화담이었지요.
지금도 장성들은 병을 한낱 소모품으로 보고 있겠지요. 병력의 소중함이 더해가는 이즈음인데...
보병부대 출신이시네요. 고생 많았군요.
60년대만 해도 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횡포가 심했던거지 큰 공사는 없었죠.
수송부는 지원병들이 종종 있었는데 대부분이 글 모르는 경우가 있었죠 기술병들이라.
일조점호때부터 빳다 취침중에도 빳다
거지 같아도 작업가는 것이 자대에 있는 것 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했지요. (점호, 훈련이 없었어요)
점호가 왜 없어요 본문 들어 보세요. 말뚝보초까지 ㅠㅜ
아따 오늘은 논란의 주제군요 ㅎㅎㅎ 저도 최전방 구막사에서 생활했는데 150명이 같이 잤습니다. 내가 있었던데가 제일 힘들었다 ㅎㅎ
지금은 벙커, 구조물 철거하면 군출신민간업자들에게 돈이 짭짤...
현역장성들과 상부상조,,,,,ㅎㅎ
결론이 군대 가지 말라는걸로 들림
군대를 좀먹는 청죽회 고정간첩 장군들 색출하라는 이야기 임.
과거를 지금과 비교하면 오류입니다. 그 땐 그럴수 밖에 없던 시절입니다. 군시절에 한이 많았던 건 이해합니다.
과거는 떨렁 떨어져 있는게 아니고 과거의 누적이 현재입니다. 그 시절이 힘 들었던 거 알아 달라고 예기 하는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고는 있어야 한단 예기일 겁니다.
비교라기보단 재해석과 반성, 어리석음의 반복에 대한 경계이겠지요.
과거 고생을 티내려는거 아니고 현재를 가벼이 할 생각없어요.
그렇다고 무지한 과거가 결코 무가치하지는 않습니다.
70대의 구시대 노인들이지만 국내 부동산.현금 보유의 60% 이상이 60대 이후 시대들 소유입니다.
한국의 문제는 역사의식 어쩌구 하면서도 행동은 과거를 자꾸 잊으려고 한다는거.. 옛날에 있었던 사실을 잊어버리니 또 반복...큰 사고가 터지면 잠깐 반짝 하다가 시간 지나면 또 잊어버리고 반복발생...
전방벙커를 요 일부러부시는지 1 모르지만 도로내고 주택짓거라 그러겠지요
9.19 합의로 철거
@@cofes
오뚜기 다 없애고 장벽 부수고... 그냥 열어 논 거지요.
북한은 아직도 철책을 군인들 투입해 건설하고 있는데? 지금 얘기하는 우리의 70년대 상황을 북한군의 지금 상황이네. 탈북민들의 증언 그대로네. 우리는 과거지만 북한은 11:47 현실이라는 사실이고 군비리도 북한상황일거고 지금은 인권타령하는 군대라 상상도 못하는 세상이고. 그때 지었으니 그동안 사용한거 아닌가?
지금도 똥죽회 똥별들은 병사들의 목숨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많이 염려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