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여단은 마드리드 수성전에서 꽤 활약을 합니다만 나중에 소련의 개입으로 분열되고 결국은 해체되죠. 유럽 뿐 아니라 남미 등 세계의 지식인들이 모였고 일본인도 있었다고 하죠. 하지만 국제여단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국으로 돌아가서는 사회주의자로 의심받아서 탄압을 받게 되죠. 영상에서 말한대로 2차 세계대전에서 입은 피해는 더 많았겠죠.
이들이 훗날 2차대전때 싸울여력이 없어서 중립을 지키게 된 결과, 유럽내 가장 오래 살아남은 파시스트 국가가 된건 아이러니죠. 2차대전때도 웃긴게, 영미연합국에 대해선 중립, 소련에 대해선 참전을 한게 스페인... 이후 서구에선 잊혀진 전쟁으로 기억되는 냉전후 최초 전쟁인 625전쟁.... 스페인에선 관심이 엄청높았다고 하더군요.. 그결과 피카소 한국전쟁 그림이 나오게 되는것. 자기들 내전중 학살과 오버랩 된거 겠죠. 또 흔히 막장 당나라군대로 인식됬던 이탈리아 군대가, 여기 스페인내전서는 엄청나게 잔혹했다고 하더군요... 자기들이 열세인 서구와 싸울때나 코미디군대이지, 스페인내전과, 혹은 아프리카 부족군을 상대할땐 악마의 군대였다고... 뭐 일본제국군도 아시아서 비슷하죠..
당시 프랑코 부대 쪽에 모로코 식민지 출신 군인들이 많았는데 스페인 식민정책에 대한 반감 때문에 엄청나게 잔인했다고 함..정부군 쪽의 국제여단은 전세계 의용군 연합이다보니 언어소통이 잘 안되고 오합지졸인 경우가 많았고, 그나마 멕시코가 적극 지원해줘서 3년이나마 내전 때 버텼었음
스페인 내전...2차 대전의 최종 리허설... 정말 와 닿는 표현이네요...좋은 동영상 감사합니다.~ (혹시 나중에 스페인에 가게 된다면 스페인 내전을 기억/기념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박물관이나 기념관등이 많나요? 독일에 갔을때는 2차 대전을 기억하는 장소나 기념관 박물관등을 많이 본것 같아서요. 스페인도 그런가 해서요)
안녕하세요.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가 집권한 이후 줄곧 공산당의 위협으로부터 스페인을 구해낸 해방전쟁으로 기억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독일의 경우와 비교한다면 기념관이나 박물관이 많이 부족합니다. 스페인 내전을 다루는 박물관의 경우에도 스페인 내전을 전체적으로 다룬다기보다는 스페인 내전 와중의 해당 지역의 역사를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페인 카르타헤나에 위치한 박물관이 대표적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
사실 공화파는 초중기 까진 이념갈등으로 서로 티격태격 해도 그래도 노동자들의 사회를 만들자는 같은 생각들을 가진 사회주의자들이니까 다 같이 최소한의 협력 정도는 하자는 생각이 강해 상호간 불화를 일으킬 선은 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일례로 통일마르크스주의 노선에 입당하여 그들과 같이 전투를 하러 다니던 조지 오웰이 바르셀로나를 지나며 그 곳을 점령한 아나키스트들을 만나 식사도 얻어 먹고 서로 덕담을 나누는 등 공화파 내 여러 분파들이 사이가 나빴다고 보긴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문제는 소련을 등에 업은 스페인 공산당의 스탈린주의자들이 권력을 얻고 나서가 문제였죠. 이들은 자기 정신적 지도자(스탈린) 처럼 남을 비방하고 의심하고 모략하고 숙청하는 등 공화파 내에서 온갖 패악질을 벌이죠. 그 후 전력이 감소하여 전세가 불리해지자 이들은 모조리 소련으로 망명을 갑니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게 망할 스탈린주의자들이 망쳤죠.
@@룰루하잉-x3s 레닌과 트로츠키가 구상한 공산주의와 스탈린이 구상한 공산주의는 다릅니다. 일단 레닌의 정치 구조는 비록 일당제지만 그래도 하부의 의견이 상부로 전달되는 형식을 취했고 그 과정에서는 여러 의견이 수렴 될 수 있는 제도 방식을 취했습니다. 레닌 시절 공산주의가 서구에서 일당 독재로 여겨진 부분은 적백내전으로 일어난 전시공산주의 체제에서 비롯한 여러 사상들의 공격에 대한 지대한 방어적 태도 때문인데 이에 신생 소련이란 국가 자체 무너뜨리려는 왕당파와 사회혁명당 세력과 볼셰비키 정책에 비타협적인 멘셰비키와 아나키스트들을 막기 위함에 있었죠. 이에 레닌 스스로도 전시에는 체제 감시부서인 체카에 과도한 힘을 쏟는 등의 독선적인 인물이였으나 그 반면 체제가 안정 되던 말년엔 멘셰비키와 아나키스트들의 정치 활동을 용인했으며 국제사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보존하고 주둔하던 아이러니한 인물이기도 했죠. (이는 지극히 우파적 관점으로 레닌 전기를 쓴 로버트 서비스 조차 독재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같이 실현 시키고자한 대단한 인물이라 칭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가 암살 미수로 발생한 부상과 지병이 겹쳐 전시공산주의 체제 시절의 부정적인 면모만 대부분 쌓인 채 사망하게 됩니다. 이에 레닌이 구상한 국제사회주의와 소비에트 민주정은 미완성이 되었고 이에 스탈린은 레닌의 전시공산주의 체제를 자신이 구상한 일인 독재 체제에 절대적으로 도입하여 대폭 강화 시켜 소련을 운용하게 됩니다. 이런 스탈린이 구상한 체제에 대비되어 레닌이 이루고자한 궁극적 목표를 더 발전 시킨 것이 바로 트로츠키가 구상한 국제사회주의 혁명론 (영구혁명론)과 다당제 소비에트 평의회 (프롤레타리아 민주정)였고 실제 트로츠키는 멘셰비키에 입당 때부터 레닌을 따라 볼셰비키가 되기까지 단 한번도 민주적 입장을 배제한 적이 없습니다. (단 트로츠키도 마냥 온건한 인물은 아니라서 소련의 전시 물자 배분 정책에 반하는 자영농들의 상당부를 쓸어버리는데 앞장서긴 했지만 이는 다수의 자영농민들 세력을 뒤에 엎고 아예 대놓고 반국가 노선을 주도한 사회혁명당의 세력 축소를 위한 결과물이기도 했죠.) 하지만 트로츠키는 점차 스탈린이 지배하는 당에서 서서히 배제되기 시작했고 그가 이은 레닌의 유지는 스탈린에 의해 주도적으로 좌익 모험주의라 폄하 당했으며 그가 구상한 다당제 평의회 제도는 소련의 적성 세력들이 원하는 서구식 자본주의 제도로 취급하여 그를 배반자와 모략자로 몰아 쫒아냅니다. 그러나 자존심 강한 트로츠키는 이에 굴하지 않고 여러 국가들 사이에 망명하면서 스탈린 체제를 비판했고 결국 스탈린을 배후로한 멕시코에서 암살자에게 죽임 당하는 걸로 레닌이 구상한 트로츠키가 이루고자한 국제사회주의와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완전히 끝나게 됩니다.
@@룰루하잉-x3s 물론 레닌과 트로츠키가 했던 체제 수호에 대한 대응 방식은 그래도 서구에선 나쁜 이미지로 비쳐지긴 하는 건 부정하지 못 하나 이런 과정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에서도 충분히 일어난 바 있는데 당시 북군은 남부의 반란을 손쉽게 진압하기 위해 온갖 면화 농장과 심지어 농민들의 농토까지 무참히 파괴하고 이에 저항하는 자들도 모조리 학살하며 죽인 사례를 예로 들수 있죠. 게다가 당시 대통령인 링컨도 북군 행위의 과격함을 비판하는 언론들을 마구잡이로 통제하고 억압했습니다. 이것이 자칭 민주주의 국가가 한 짓이고 이 모든게 노예제를 철폐하고 국민의 자유를 위한 과정이라 포장됬습니다. 하지만 정작 남부인들 사이 흑인 노예제 문제와 하등 상관 없던 애꿋은 농민들은 목숨과 재산에 엄청난 피해를 봤고 지금도 남부가 낙후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흑인에 대한 극심한 반감은 덤이였죠. 소련과 대비할 정도는 아니나 적어도 민주주의를 자칭하는 국가가 할만 한 짓은 아닙니다. 이렇듯 국가주의적 사고는 공산주의가 아닌 민주주의 국가에도 충분히 등장하며 사실상 양당제이며 절대적으로 우파적 관점으로 쏠려있는 미국은 일당제와 다를바 없죠.
엘클라시코경기(레알마드리드VS바르셀로나FC)를 보면 스페인내전에 있었던 지역감정이 남아있죠 +캄프누 경기장에서 카탈루냐어로 고성방가를 하고 응원가를 부르는 이유도 스페인 내전이후(?)에 프랑코 장군이 카탈루냐 지역을 점령한 후 카탈루냐어를 못쓰게 하였답니다 그래서 캄프누에서는 아무런 제약을 안받으니 카탈루냐어를 자유롭게 쓴다 하더군요
프랑코는 여타 경제 개발 독재자들에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했습니다. 당시 CNT(전국노동연맹, 아나키즘 노동조합단체)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던 스페인의 자랑거리인 바르셀로나(카탈루냐)의 제조업을 빨갱이들 숙청한다며 다 쑥대밭으로 갈아버린 장본인이고 잔혹한 학살에 타협을 모르는 고압적 성격은 미국의 마셜 플랜 원조 지원국에서 고의 배제 당하게 만들어 스페인은 미국의 막강한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혜택을 톡톡히 받은 국가들은 전부 강대국으로 성장했죠. 특히 서독) 실제 프랑코 정권 40년에 이룬 경제 성장은 대한민국 박정희 정권 19년 동안 이룬 것과 비교해도 그 역량은 10분에 1도 채 안 됩니다. 단지 스페인이 경제적으로 충분히 자립하기 좋은 땅이라서 서서히 알아서 성장한거고 발전을 프랑코가 주도 했다고 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스페인 좌파 뿐만 아니라 우파들도 부정하는 점이고 극우들이나 업적이라 우겨되고 있죠.
@@standlikearock8834 그 당시에 공산주의자는 지금의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 북한같은 체계의 나라들처럼 되는것을 이상향 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공산주의는 지금의 중국과 북한의 모델과는 틀렸습니다 모든 공산주의자들이 이상을 꿈꾸면서 공산주의 국가를 실현 시켰지만 결과는 중국과 북한같은 나라들로 대변되죠 그렇지만 최초에 공산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사상가들이 추구한 모델은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유토피아적인 세상이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틀렸죠 그래서 20세기에 이미 사회주의는 실패한 이론이라는 것이 검증된 거죠 그러나 초창기 그들이 추구했던 공산주의는 모두가 함께 불평한 것 없이 잘 살아 보자고 하는 굉장히 순수하면서 바람직한 생각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사회주의를 추구하는것 자체가 나쁜 사람이라고 는 할 수가 없죠
@@user_gehcijjehfjejncj 흠...지금 쓰신 내용이 무슨 뜻인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리는 결과가 좋다고 믿어지면 과정은 나빠도 괜찮다? 그런데 더 생각해 보니 모든 역사적인 사회변혁에 완벽한 과정이 있었다고는 할 수 없겠네요. 하지만 문제는 공산주의 이상향을 그리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무력혁명을 수단으로 그리고 있었죠. 그리고 그들의 잔인성 입니다. 왜냐하면 유물론을 기반으로 하기때문에.
안녕하세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질문해 주신 부분에 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어서 댓글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프랑코와 히틀러가 스페인의 참전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협상에 임했던 것은 사실인데요. 이 때 프랑코가 참전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참전에 대한 댓가로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예를 들어 지브롤터에 대한 지배권 인정), 내전 이후 스페인의 상황이 대규모 전쟁에 참전하기에는 실제로 무리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쨌든 협상은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공식적으로는 참전하지 않았지만, 스페인은 비공식적으로 추축국을 여러방면으로 소소하게나마 지원하긴 했습니다. 답변이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프랑코 쓰레기가 유럽에서 나름 최고 라고 평가 받던 바르셀로나의 제조업을 빨갱이들 숙청 (당시 바르셀로나는 아나키즘 노동조합 단체인 CNT가 지지를 크게 받던 지역이였고 당연히 그 곳에 살던 주민 다수가 사회주의자들이였음) 합다시고 숙련 노동자들 잡아다 죄다 총살해서 그런 것 또한 무적함대 이래로 이름있던 조선업도 전부 말아 쳐먹은 것도 덤 이딴 쓰레기 독재자만 안 나왔어도 유럽 내 제조업과 조선업 분야에서는 영국과 1~2위를 다퉜을텐데 프랑코 개새x 그 악에 대한 업보인지 당시 동맹국이라면 개나 소나 주던 미국의 기술 자원 퍼주기 전략인 마셜 플랜 원조 국가에 리스트의 유럽 중에 혼자 빠짐 엌ㅋㅋ (전쟁 후 온갖 산업이 쑥밭이 된 서독은 이 시기를 잘타서 미국의 온갖 기술과 자원을 몰빵 받고는 유럽의 강대국으로 다시 군림함)
잠시, 영국의 패권주의 따른 2차대전 이전의 상황은 히틀러가 체코도 먹고 오스트리아도 먹고 세르비아도 먹고 그러는 과정에서 결국은 폴란드를 점렴하여 전쟁의 촉발요인이되었고, 히틀러는 영국과 전쟁을 원하지 않았음에도 폴란드를 점령함에 터져버린 사안 대해 너무 너무 단순한 내전으로만 침 하는게 아쉽네요
저기에서 세비야가 겁나 중요한것은 스페인 최대 군항이있었음 그리고 처음에 조기 진압이 가능했는데 공화국 관료의 꼰대 마인드가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도시는 공화국군이 장악하고 있어서 쉽지 않다고 판단 겁나 띵까띵까 놀다가 쿠데타군이 농업지역 북부, 남부를 효과적으로 점령할수 있었음 그리고 국제여단의 지원한 사람들의 마지막은 않좋은 결말이 되었음 미국에서 지원한 병사는 돌아올수 없도록 시민권 박탈, 소련은 굴리크 그러니까 노동교화소에 보내고 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 시민권 박탈됨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의 방관적 태도가 결과적으로는 2차대전에서 영국을 구하게 되죠. 공화파가 승리했다면 히틀러는 거의 확실히 프랑스 점령 이후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했을 겁니다. 그러면 지브롤터는 별 수 없이 독일에게 넘어갔겠죠. 지브롤터가 독일 손에 들어가면 곧 지중해가 독일 손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레반트와 중동의 유전지대도 독일 손에 들어감을 의미하죠.
스페인 단순히 식민지 왕창 만들고도 폭망한 나라로만 유명한데 뭐 맞긴 하지만 그 폭망한 과정을 돌이켜 보면 굉장히 슬프다. 특히 스페인 내전의 역사나 그 이후의 스페인 역사는 정말 비극이다. 난 개인적으로 아직도 스페인의 적폐청산은 이뤄지지 못했다본다. 그리운 공화국은 이제 역사로만 남았다. 유럽 그 어떤 나라도 실현하지 못한 도전을 했으나 시대가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이기심이 이상을 짓밟았다. 다시 공화국의 보랏빛 깃발을 볼 날이 올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 내전을 지나치게 파시즘과 사회주의의 대리전 적인 성격으로 파악하는데 스페인 내전의 결과를 지나치게 외부의 개입으로 해석하는건 위험하다고 생각함. 개인적으로 내전에서 공화파가 밀린 이유를 스탈린주의와 아나키즘의 갈등 같은 이데올로기적 측면이나 파시스트 세력의 지원때문으로 보기 보다는 스페인 민심이 이미 공화국을 떠나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실제로도 대부분 군인들(스페인은 제대로 된 열강이 아닌 3류 국가라 총병력 수도 그렇게 많지 않음)이나 도시에 있는 팔랑헤 무장단체 정도가 반란군 병력의 최대치인 반면 공화국 정부는 잔존한 공화국군 외에 무장경찰이나 아나키스트 무장단체를 비롯 사회주의 청년단체 같은 준군사조직을 어마어마하게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화국 정부의 실책으로 무장 지급이 늦어졌다는 것을 고려해도 산술적으로는 전투가 성립될 수 없음. 그럼에도 반란군이 초기에 막대한 병력을 손에넣었다는 것은, 많은 청년들이 반란군에 징병 혹은 자원입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결국 좌파가 분열했다는 것은 부차적인 이유고, 지극히 스페인적인 이유, 그러니까 공화국 정부의 정책 실패와 분쟁조정의 실패로 인한 대혼란이 스페인 국민들의 실제적인 반응으로 이어졌다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함. 결론을 따지면 스페인 사람들은 내전 이전부터 혼란스러운 상황을 누군가 타개해주길 원했던거고, 그때 프랑코가 정적들의 사고와 같은 운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바탕으로 그 자리를 차지한거고 프랑코가 그 자리를 차지한 이후에는 자신의 정적 제거와 국민들의 지지로 전쟁을 수행하는 밑바탕이 되었다고 봄. 결과적으로 스페인 내전은 그냥 스페인 내전임. 뭔가 엄청난 외부 이데올로기나 전세계적 정세와 같은 논리를 끌어오지 않아도 설명할 수 있는, 다만 표면적으로는 범세계적 이데올로기 집단 간의 전쟁이라는 점에서 리허설이라고 평가받을 수는 있지만.
스페인 내전은 선 대 악의 싸움이 아니라 악 대 악의 싸움입니다. 당시 각 진영 내의 유력한 파벌 중 민간인 학살 같은 전쟁범죄로부터 자유로운 세력은 거의 없었습니다.(굳이 대자면 바스크 지방정부 정도인데 얘네는 내전 초반에 리타이어) 훗날 프랑코 사망 이후 우파와 좌파가 침묵협약을 맺어서 딜을 한 것은 내전이 터질까봐 두려웠던 것도 있고, 그 외에도 우파건 좌파건 스페인 국민인 이상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피의자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 내전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시는군요~ ~~~~스페인 내전 시작의 근본적 원인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 올리신것은 아니죠? ----------------------------------------------------------------------제말의 증거는 제일 하단에 기록했습니다 ------공산주의 사상이 휩슬던 유럽에서 특히 스페인은 상층부의 지식층과 교수 공무원들(특히 경찰--한국도?)의 대부분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스페인 군부는 어린 16세부터 독자적인 군인 양성프로그램을 운영했던 관계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고위 장성들은 상당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결정적 사건은, 소련과의 은밀한 내통과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독식하며 군부에 대한 대대적인 공산주의자들의 교체에 따라 폭발하게 된것입니다 유럽 독일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내전이 시작되었으며 .....이때 공산화 되었던 소련은 최신예 t54 탱크 수백대와 특수부대 병력까지 투입했습니다 만약. 공화정으로 위장한 공산주의자들이 유럽에 교두보를 만들어 공산사회를 만들었다면 --지금의 인권을 중요시하는 서유럽 전체가 공산화 되었을것이며, 자유주의 자체는 존재조차 하지 않했겠죠 --그리고 전쟁후 공화정 세력을 숙청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소련과 내통한 적색 국제여단과 내통한 공산주의자들과 부역자들을 색출해 제거한 것입니다 스페인은 엄밀히 말하면~~~~~~~~공화정으로 위장한~대부분의 공산주의 지도층과 자유민주주의의 프랑코군부 와의 싸움이었습니다 --------위키백과ㅡ, 국제여단이란 ---------1936년 9월 스페인 공산당은 스페인 내전에서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외국인 의용군을 요청하였다. 프랑스 공산당을 통해 소련에 전달된 이 요청에 따라 코민테른의 선전가 빌리 뮌젠베르그는 서방측에 의용군 지원을 요청한다. 공산주의자가 아닌 의용군 지원자는 내무인민위원회의 보안 심문을 거쳐야 했다.[9]
글 그림이 모두 알찬 내용이네요. 구독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컨텐츠 부탁합니다.
역사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배경 애니메이션의 기술과 센스가 완전 프로급이네요. 특히 1:41 쿠데타 세력의 눈이 깜빡 빛나는 모습은 작지만 압권입니다 ㅎㅎㅎ. 계속 기대됩니다~~~
너무 좋은 영상이에요! 감사합니다!! ㅠㅠ
썸네일 타이틀을 단 9분만에 이해시켜주시네요 :) 오늘도 유익했습니다! (초반 편집도 뭔가 가득해지고 퀄리티도 박수👏🏻)
엄청나게 잘봤습니다. 조지오웰 에세이 읽다가 스페인 내전이 궁금해서 들어왔는데 이해가 너무 잘되네요. 이런 퀄리티라면 앞으로 굉장히 잘되실것 같네요. 응원해요^^
저도요^^
너무 잘봤습니다~~~정말 재밋고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해주시는듯^^!
국제여단은 마드리드 수성전에서 꽤 활약을 합니다만 나중에 소련의 개입으로 분열되고 결국은 해체되죠. 유럽 뿐 아니라 남미 등 세계의 지식인들이 모였고 일본인도 있었다고 하죠. 하지만 국제여단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국으로 돌아가서는 사회주의자로 의심받아서 탄압을 받게 되죠. 영상에서 말한대로 2차 세계대전에서 입은 피해는 더 많았겠죠.
내용이며 편집이며 굉장히 좋았어요! 구독 박습니다~
훌륭하십니다
스페인 내전 여러가지로 참 궁금했었는데...👍👍👍
항상 궁금한 주제였어요. 감사합니다 :)
스페인 내전 책 읽고있는데 영상에서 깔끔하게 정리하니까 책읽는 속도도 나고 좋습니다. 다른 영상들도 잘 챙겨볼게요~ 감사합니다
이들이 훗날 2차대전때 싸울여력이 없어서 중립을 지키게 된 결과, 유럽내 가장 오래 살아남은 파시스트 국가가 된건 아이러니죠. 2차대전때도 웃긴게, 영미연합국에 대해선 중립, 소련에 대해선 참전을 한게 스페인...
이후 서구에선 잊혀진 전쟁으로 기억되는 냉전후 최초 전쟁인 625전쟁.... 스페인에선 관심이 엄청높았다고 하더군요.. 그결과 피카소 한국전쟁 그림이 나오게 되는것. 자기들 내전중 학살과 오버랩 된거 겠죠.
또 흔히 막장 당나라군대로 인식됬던 이탈리아 군대가, 여기 스페인내전서는 엄청나게 잔혹했다고 하더군요... 자기들이 열세인 서구와 싸울때나 코미디군대이지, 스페인내전과, 혹은 아프리카 부족군을 상대할땐 악마의 군대였다고... 뭐 일본제국군도 아시아서 비슷하죠..
포르투갈이 마지막 파시스트나라 아님? 햇갈리노
당시 프랑코 부대 쪽에 모로코 식민지 출신 군인들이 많았는데 스페인 식민정책에 대한 반감 때문에 엄청나게 잔인했다고 함..정부군 쪽의 국제여단은 전세계 의용군 연합이다보니 언어소통이 잘 안되고 오합지졸인 경우가 많았고, 그나마 멕시코가 적극 지원해줘서 3년이나마 내전 때 버텼었음
국제여단은 그래도 대부분이 1차대전 참전자여서(예비군). 군사훈련만 하고 바로 투입가능했다고 합니다. 바르셀로나를 지킬때도 이들이 한몫 했죠
스페인은 독소전에서 청색여단을 파견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의용군이었을 뿐 공식적인 참전국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공식적으로 참전했다면 전후에 소련이 가만 뒀을 리가..
구독자수가 많이늘었으면좋겠어엽!!!배울게 많다
스페인 내전 잘 보고 갑니당~~~~~
알찬 영상 잘 보구 갑니당. 구독했어욤☺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쓴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영화로도 나왔었지요.
세기의 명배우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
사람은 가고 없지만 이름은 남아있네요.
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있는...(감동.감동!!)
감사히 잘 볼게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ㅠ
Tmi. 조지오웰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진짜 알고 싶었던 거네요.
영상 전공자이신가요 퀄리티 대박적이네요...
감사합니다
우와 진짜 이해가 잘 됐어요 영상 감사합니다
스페인 내전...2차 대전의 최종 리허설... 정말 와 닿는 표현이네요...좋은 동영상 감사합니다.~
(혹시 나중에 스페인에 가게 된다면 스페인 내전을 기억/기념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박물관이나 기념관등이 많나요? 독일에 갔을때는 2차 대전을 기억하는 장소나 기념관 박물관등을 많이 본것 같아서요. 스페인도 그런가 해서요)
안녕하세요.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가 집권한 이후 줄곧 공산당의 위협으로부터 스페인을 구해낸 해방전쟁으로 기억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독일의 경우와 비교한다면 기념관이나 박물관이 많이 부족합니다. 스페인 내전을 다루는 박물관의 경우에도 스페인 내전을 전체적으로 다룬다기보다는 스페인 내전 와중의 해당 지역의 역사를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페인 카르타헤나에 위치한 박물관이 대표적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
영상 잘 보았고 구독하고 갑니다.
정말 재미있어요. 주요 역사사건도 좋지만 인물들 사이의 이야기도 별도의 동영상으로 제작한다면 더 나은 이해와 흥미를 불러 올 것 같네요.
역사는 정말 아이러니하지만...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만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고 있으면 보는 이를 압도하는 강렬함이 느껴집니다.
그것은 피카소라는 화가 이전에, 스페인 내전이라는 처참함 때문이 아닐까요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당ㅎㅎㅎ 흥하셨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으면서 세력 구도가 정리가 안 되어서 머리 아팠던 적이 있는데 읽기 전에 이 영상을 보고 읽어볼 걸 그랬어요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 과정(히틀러의 집권과정 이후)도 궁금해요! 부탁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 다뤄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영화 토지와자유를 보다가
내전이 궁금해서 검색들어
왔는데 매우 정리가 잘된거
같습니다
프랑코가 내부 통일을 잘 한 면도 있는데, 국민군에 팔랑헤, 왕당파(카를리스트, 알폰소 지지자)들을 통합하였고, 공화파는 반면 분열되어있었고 내부 숙청과 교회를 탄압하였지요.
그야 우파 이데올로기는 서로 간의 합의점이 많은 반면 좌파 이데올로기는 분파 간 사이에서 성향이 완전 극과 극을 달리는지라 (크게는 CNT 같이 자유지상적 사회주의부터 기독교 사회주의자까지... 가히 물과 기름 수준) 통합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나 그 후 쓴 글을 보는것도 스페인 내전을 아는 데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광화국 정부에 의한 다른 좌파 세력들 숙청과 미심쩍은 소련의 군사 개입이 기억에 남네요.
맞습니다.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으면 스페인 내전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층적인 전쟁이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실 공화파는 초중기 까진 이념갈등으로 서로 티격태격 해도 그래도 노동자들의 사회를 만들자는 같은 생각들을 가진 사회주의자들이니까 다 같이 최소한의 협력 정도는 하자는 생각이 강해 상호간 불화를 일으킬 선은 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일례로 통일마르크스주의 노선에 입당하여 그들과 같이 전투를 하러 다니던 조지 오웰이 바르셀로나를 지나며 그 곳을 점령한 아나키스트들을 만나 식사도 얻어 먹고 서로 덕담을 나누는 등 공화파 내 여러 분파들이 사이가 나빴다고 보긴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문제는 소련을 등에 업은 스페인 공산당의 스탈린주의자들이 권력을 얻고 나서가 문제였죠. 이들은 자기 정신적 지도자(스탈린) 처럼 남을 비방하고 의심하고 모략하고 숙청하는 등 공화파 내에서 온갖 패악질을 벌이죠. 그 후 전력이 감소하여 전세가 불리해지자 이들은 모조리 소련으로 망명을 갑니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게 망할 스탈린주의자들이 망쳤죠.
@@blackdragonangrycat 스탈린 주의자가 망친거라기보단 공산주의가 결국 그런식으로 흐르는게 아닐까요??지금까지의 모든 역사가 증명하고 있죠
@@룰루하잉-x3s
레닌과 트로츠키가 구상한 공산주의와 스탈린이 구상한 공산주의는 다릅니다. 일단 레닌의 정치 구조는 비록 일당제지만 그래도 하부의 의견이 상부로 전달되는 형식을 취했고 그 과정에서는 여러 의견이 수렴 될 수 있는 제도 방식을 취했습니다. 레닌 시절 공산주의가 서구에서 일당 독재로 여겨진 부분은 적백내전으로 일어난 전시공산주의 체제에서 비롯한 여러 사상들의 공격에 대한 지대한 방어적 태도 때문인데 이에 신생 소련이란 국가 자체 무너뜨리려는 왕당파와 사회혁명당 세력과 볼셰비키 정책에 비타협적인 멘셰비키와 아나키스트들을 막기 위함에 있었죠. 이에 레닌 스스로도 전시에는 체제 감시부서인 체카에 과도한 힘을 쏟는 등의 독선적인 인물이였으나 그 반면 체제가 안정 되던 말년엔 멘셰비키와 아나키스트들의 정치 활동을 용인했으며 국제사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보존하고 주둔하던 아이러니한 인물이기도 했죠. (이는 지극히 우파적 관점으로 레닌 전기를 쓴 로버트 서비스 조차 독재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같이 실현 시키고자한 대단한 인물이라 칭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가 암살 미수로 발생한 부상과 지병이 겹쳐 전시공산주의 체제 시절의 부정적인 면모만 대부분 쌓인 채 사망하게 됩니다. 이에 레닌이 구상한 국제사회주의와 소비에트 민주정은 미완성이 되었고 이에 스탈린은 레닌의 전시공산주의 체제를 자신이 구상한 일인 독재 체제에 절대적으로 도입하여 대폭 강화 시켜 소련을 운용하게 됩니다.
이런 스탈린이 구상한 체제에 대비되어 레닌이 이루고자한 궁극적 목표를 더 발전 시킨 것이 바로 트로츠키가 구상한 국제사회주의 혁명론 (영구혁명론)과 다당제 소비에트 평의회 (프롤레타리아 민주정)였고 실제 트로츠키는 멘셰비키에 입당 때부터 레닌을 따라 볼셰비키가 되기까지 단 한번도 민주적 입장을 배제한 적이 없습니다. (단 트로츠키도 마냥 온건한 인물은 아니라서 소련의 전시 물자 배분 정책에 반하는 자영농들의 상당부를 쓸어버리는데 앞장서긴 했지만 이는 다수의 자영농민들 세력을 뒤에 엎고 아예 대놓고 반국가 노선을 주도한 사회혁명당의 세력 축소를 위한 결과물이기도 했죠.) 하지만 트로츠키는 점차 스탈린이 지배하는 당에서 서서히 배제되기 시작했고 그가 이은 레닌의 유지는 스탈린에 의해 주도적으로 좌익 모험주의라 폄하 당했으며 그가 구상한 다당제 평의회 제도는 소련의 적성 세력들이 원하는 서구식 자본주의 제도로 취급하여 그를 배반자와 모략자로 몰아 쫒아냅니다. 그러나 자존심 강한 트로츠키는 이에 굴하지 않고 여러 국가들 사이에 망명하면서 스탈린 체제를 비판했고 결국 스탈린을 배후로한 멕시코에서 암살자에게 죽임 당하는 걸로 레닌이 구상한 트로츠키가 이루고자한 국제사회주의와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완전히 끝나게 됩니다.
@@룰루하잉-x3s
물론 레닌과 트로츠키가 했던 체제 수호에 대한 대응 방식은 그래도 서구에선 나쁜 이미지로 비쳐지긴 하는 건 부정하지 못 하나 이런 과정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에서도 충분히 일어난 바 있는데 당시 북군은 남부의 반란을 손쉽게 진압하기 위해 온갖 면화 농장과 심지어 농민들의 농토까지 무참히 파괴하고 이에 저항하는 자들도 모조리 학살하며 죽인 사례를 예로 들수 있죠. 게다가 당시 대통령인 링컨도 북군 행위의 과격함을 비판하는 언론들을 마구잡이로 통제하고 억압했습니다. 이것이 자칭 민주주의 국가가 한 짓이고 이 모든게 노예제를 철폐하고 국민의 자유를 위한 과정이라 포장됬습니다. 하지만 정작 남부인들 사이 흑인 노예제 문제와 하등 상관 없던 애꿋은 농민들은 목숨과 재산에 엄청난 피해를 봤고 지금도 남부가 낙후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흑인에 대한 극심한 반감은 덤이였죠. 소련과 대비할 정도는 아니나 적어도 민주주의를 자칭하는 국가가 할만 한 짓은 아닙니다. 이렇듯 국가주의적 사고는 공산주의가 아닌 민주주의 국가에도 충분히 등장하며 사실상 양당제이며 절대적으로 우파적 관점으로 쏠려있는 미국은 일당제와 다를바 없죠.
영상도 깔끔하고 내용도 깔끔한데 왜 이제 안거지?
너무 재밌어요
수고했어요
너무재밌엉
자기전듣기좋은 최고의 asmr
마지막에 머리가 띵하네요... 군부정권을 피해 프랑스로 도망쳤는데 다시 2차세계대전으로 히틀러가 다시 프랑스 함락...
엘클라시코경기(레알마드리드VS바르셀로나FC)를 보면 스페인내전에 있었던 지역감정이 남아있죠
+캄프누 경기장에서 카탈루냐어로 고성방가를 하고 응원가를 부르는 이유도 스페인 내전이후(?)에 프랑코 장군이 카탈루냐 지역을 점령한 후 카탈루냐어를 못쓰게 하였답니다 그래서 캄프누에서는 아무런 제약을 안받으니 카탈루냐어를 자유롭게 쓴다 하더군요
도시이름들이 친숙한데 이게 다 축구 때문이구나 ㅋㅋ
담고있는 내용이 좋은가? O
화면의 밀도,애니메이션이 이쁜가? O
딕션이 좋고 목소리가 좋은가? O
측정 결과 10만따리 진입 허가되었습니다 ㄱㄱㄱㄱㄱ
굿 굿 컨텐츠 ㅇㅇ
5Min History
우연히 알게되엇는데 너무 재밋고 편집도 너무 잘하셔서 계속 정주행하고 잇어요ㅎㅎㅎㅎ임고생인데 개론서에는 함축되거나 샐약된 내막을 자세히 알게되서 더욱 재밌고 유익해요ㅠㅠㅠ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랑코의 경제 업적은 어떤가요??
프랑코는 여타 경제 개발 독재자들에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했습니다. 당시 CNT(전국노동연맹, 아나키즘 노동조합단체)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던 스페인의 자랑거리인 바르셀로나(카탈루냐)의 제조업을 빨갱이들 숙청한다며 다 쑥대밭으로 갈아버린 장본인이고 잔혹한 학살에 타협을 모르는 고압적 성격은 미국의 마셜 플랜 원조 지원국에서 고의 배제 당하게 만들어 스페인은 미국의 막강한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혜택을 톡톡히 받은 국가들은 전부 강대국으로 성장했죠. 특히 서독)
실제 프랑코 정권 40년에 이룬 경제 성장은 대한민국 박정희 정권 19년 동안 이룬 것과 비교해도 그 역량은 10분에 1도 채 안 됩니다. 단지 스페인이 경제적으로 충분히 자립하기 좋은 땅이라서 서서히 알아서 성장한거고 발전을 프랑코가 주도 했다고 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스페인 좌파 뿐만 아니라 우파들도 부정하는 점이고 극우들이나 업적이라 우겨되고 있죠.
BLACK DRAGON & ANGRY CAT 답변 감사드립니다
헤밍웨이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리는 제목에 항상 궁금증이 있었는데 그 말인 즉슨 우리가 누구를 위해서 이런 내전을 치루냐
누구를 위해서 우리가 이런 희생을 치루고 있냐의 은유 표현인거 아닌가요??
공산주의자인 헤밍웨이가 그런 생각을 했을리가?
@@standlikearock8834 그 당시에 공산주의자는 지금의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 북한같은 체계의 나라들처럼 되는것을 이상향 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공산주의는 지금의 중국과 북한의 모델과는 틀렸습니다 모든 공산주의자들이 이상을 꿈꾸면서 공산주의 국가를 실현 시켰지만 결과는 중국과 북한같은 나라들로 대변되죠 그렇지만 최초에 공산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사상가들이 추구한 모델은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유토피아적인 세상이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틀렸죠
그래서 20세기에 이미 사회주의는 실패한 이론이라는 것이 검증된 거죠
그러나 초창기 그들이 추구했던 공산주의는 모두가 함께 불평한 것 없이 잘 살아 보자고 하는 굉장히 순수하면서 바람직한 생각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사회주의를 추구하는것 자체가 나쁜 사람이라고 는 할 수가 없죠
@@user_gehcijjehfjejncj 흠...지금 쓰신 내용이 무슨 뜻인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리는 결과가 좋다고 믿어지면 과정은 나빠도 괜찮다? 그런데 더 생각해 보니 모든 역사적인 사회변혁에 완벽한 과정이 있었다고는 할 수 없겠네요. 하지만 문제는 공산주의 이상향을 그리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무력혁명을 수단으로 그리고 있었죠. 그리고 그들의 잔인성 입니다. 왜냐하면 유물론을 기반으로 하기때문에.
@@standlikearock8834 듣고 보니 그러네요 🤔🤔🤔
그런데 이렇게 추축국의 도움을 받은 프랑코가 왜 2차세계대전에서는 추축국의 편을 들지 않았을까요?
안녕하세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질문해 주신 부분에 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어서 댓글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프랑코와 히틀러가 스페인의 참전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협상에 임했던 것은 사실인데요. 이 때 프랑코가 참전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참전에 대한 댓가로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예를 들어 지브롤터에 대한 지배권 인정), 내전 이후 스페인의 상황이 대규모 전쟁에 참전하기에는 실제로 무리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쨌든 협상은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공식적으로는 참전하지 않았지만, 스페인은 비공식적으로 추축국을 여러방면으로 소소하게나마 지원하긴 했습니다.
답변이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historytogether 답변 감사드립니다! 역사에 if는 가정하기 어렵지만 스페인이 적극적으로 추축국이 되더라도 2차세계대전의 결말이 달라졌을지...참 애매하군요ㅎㅎ
@@historytogether 그당시 스페인의 위상은 유럽에서 어느정도였을까요? 퇴물? 그래도 무시못할 파워? 이탈리아보단 아랫급 같은데..
당시 내전 직후 피폐해진 상태라, 국력으로 따지자면 이탈리아보다 아래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historytogether 감사합니다!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이민갔더니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 ㄷㄷ
조지오웰의 카탈로니아찬가를 읽기 전 배경 지식으로 잘 배우고갑니다.
프랑코는 히틀러, 무솔리니에게 이정도 지원을 받았으면서 왜 2차대전에서 추축국에 참여는 안한건가요?
스페인 내전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면 앤터니의 비버의 책을 추천합니다. 단 읽기 전에 단단히 각오는 해야 할 겁니다. 너무 끔찍해서 책 덮어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녜요.
진짜 이베리아 반도는 신대륙 개척 후에 내리막만 걷는구나 ㅠ
잔인한 신대륙 개척의 업보아닐까요
@@tkwkah77 미국은 잘나감.
미원주민 5천~1억 학살.
프랑코 쓰레기가 유럽에서 나름 최고 라고 평가 받던 바르셀로나의 제조업을 빨갱이들 숙청 (당시 바르셀로나는 아나키즘 노동조합 단체인 CNT가 지지를 크게 받던 지역이였고 당연히 그 곳에 살던 주민 다수가 사회주의자들이였음) 합다시고 숙련 노동자들 잡아다 죄다 총살해서 그런 것 또한 무적함대 이래로 이름있던 조선업도 전부 말아 쳐먹은 것도 덤 이딴 쓰레기 독재자만 안 나왔어도 유럽 내 제조업과 조선업 분야에서는 영국과 1~2위를 다퉜을텐데 프랑코 개새x 그 악에 대한 업보인지 당시 동맹국이라면 개나 소나 주던 미국의 기술 자원 퍼주기 전략인 마셜 플랜 원조 국가에 리스트의 유럽 중에 혼자 빠짐 엌ㅋㅋ (전쟁 후 온갖 산업이 쑥밭이 된 서독은 이 시기를 잘타서 미국의 온갖 기술과 자원을 몰빵 받고는 유럽의 강대국으로 다시 군림함)
그래도 스페인은 포르투갈만큼 몰락하지는 않았...
@@rnc3249
포르투갈은 사회당의 활약으로 최근에 소생 중인 걸로 보임
러우전쟁은 앞으로의 전략무기 트렌드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아주 유용한 사건임 드론전쟁이 우크라이나가 아닌 2차 한국전쟁에서 터졌다고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기갑전력이 무사하다고 보장할 수가 없었을거임
1934년 쯤에 우익정부에 대항해서 좌익세력이 총파업을 선언할 때
꽤 큰 규모의 무력분쟁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설명안하셨네요.
사실 소련의 "지원"은 공화국의 금을 대가로...
숙청과사회주의
.....
어떻게 보면 아나키즘의 리즈 시절이라는거
잠시, 영국의 패권주의 따른 2차대전 이전의 상황은 히틀러가 체코도 먹고 오스트리아도 먹고 세르비아도 먹고 그러는 과정에서 결국은 폴란드를 점렴하여 전쟁의 촉발요인이되었고, 히틀러는 영국과 전쟁을 원하지 않았음에도 폴란드를 점령함에 터져버린 사안 대해 너무 너무 단순한 내전으로만 침 하는게 아쉽네요
저기에서 세비야가 겁나 중요한것은
스페인 최대 군항이있었음
그리고 처음에 조기 진압이 가능했는데
공화국 관료의 꼰대 마인드가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도시는 공화국군이 장악하고 있어서 쉽지 않다고 판단 겁나 띵까띵까 놀다가
쿠데타군이 농업지역 북부, 남부를 효과적으로 점령할수 있었음
그리고 국제여단의 지원한 사람들의
마지막은 않좋은 결말이 되었음
미국에서 지원한 병사는 돌아올수 없도록 시민권 박탈, 소련은 굴리크
그러니까 노동교화소에 보내고
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 시민권
박탈됨
스탈린: 독일놈들의 저 미친 대전차포는 왜이렇게 쎄냐
?????:세계제일!!!!!!!!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의 방관적 태도가 결과적으로는 2차대전에서 영국을 구하게 되죠. 공화파가 승리했다면 히틀러는 거의 확실히 프랑스 점령 이후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했을 겁니다. 그러면 지브롤터는 별 수 없이 독일에게 넘어갔겠죠. 지브롤터가 독일 손에 들어가면 곧 지중해가 독일 손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레반트와 중동의 유전지대도 독일 손에 들어감을 의미하죠.
무고한 게르니카 국민들 상대로 생체실험이라니.......
결국 프랑코와 히틀러의 사이는 틀어지게 되는데.... (이유가 뭐였죠??)
안녕하세요. 결정적인 원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코가 히틀러의 편에 서서 참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궁금증을 해소하시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
@@historytogether 흠... 프랑코가 히틀러편에 서지 않은 이유가... 기억이 안나서... 일단 답변 고마워요~
호이를 하다보면 잊을 수 없는 우리 스페인
FDR이 스페인 내전 터지자마자 지원을 했더라면 유럽 대륙의 운명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텐데... ㅎㅎㅎ
스페인까지 2차대전참전했다면 미국-영국vs독일의 전쟁터가 되었거나 스페인의 주요도시들도 독일처럼 파괴되었을듯
재미잇네요 라틴도 참 ㅁ 동북아 3국도 쿠데타 필요 ㅎ
다큐를
많이보길
목소리 진짜 힘없고 별론데
내용은 진짜 알차고 요약 잘해놈...
와우...
지금의 시리아 내전을 보는거 같네요..
ㅎㅎ 재미있어요
국제여단이 별 도움이 안됐다고요?
국민파, 공화파 양쪽모두 군대가 막장인 상황에서 수만명의 인적지원은 생각보다 큰 도움이거든요?
거기다 의용군 상당수는 1차대전 참전용사에요
그냥 민간인이 아니란거죠
스페인의 비극이지만 결국 이 전쟁때문에 엘클라시코라는 세계축구사에 남을 더비가 탄생되었지
인류의 양심에 오점을.찍은
2개 전쟁ㅡ스페인 내전 과 베트남 전쟁
6:18
숀펜형이 거기서 왜 나와?
게르니카 폭격이 피카소 그림 때문에 유명하지만 민간인이 많이 희생된건 아니죠. 2차대전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은 민간인 최소 10만명이 죽었으니까요.
다른 유럽국가들은 지리같은거 볼때 어색한데 스페인은 축구때문에 친숙함 ㅋㅋㅋ
스페인 단순히 식민지 왕창 만들고도 폭망한 나라로만 유명한데 뭐 맞긴 하지만 그 폭망한 과정을 돌이켜 보면 굉장히 슬프다. 특히 스페인 내전의 역사나 그 이후의 스페인 역사는 정말 비극이다. 난 개인적으로 아직도 스페인의 적폐청산은 이뤄지지 못했다본다. 그리운 공화국은 이제 역사로만 남았다. 유럽 그 어떤 나라도 실현하지 못한 도전을 했으나 시대가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이기심이 이상을 짓밟았다. 다시 공화국의 보랏빛 깃발을 볼 날이 올 수 있을까?
승리하면 반란아니지않나
프랑코의 사후에는 얼마든지 재평가가 될 수 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 내전을 지나치게 파시즘과 사회주의의 대리전 적인 성격으로 파악하는데 스페인 내전의 결과를 지나치게 외부의 개입으로 해석하는건 위험하다고 생각함. 개인적으로 내전에서 공화파가 밀린 이유를 스탈린주의와 아나키즘의 갈등 같은 이데올로기적 측면이나 파시스트 세력의 지원때문으로 보기 보다는 스페인 민심이 이미 공화국을 떠나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실제로도 대부분 군인들(스페인은 제대로 된 열강이 아닌 3류 국가라 총병력 수도 그렇게 많지 않음)이나 도시에 있는 팔랑헤 무장단체 정도가 반란군 병력의 최대치인 반면 공화국 정부는 잔존한 공화국군 외에 무장경찰이나 아나키스트 무장단체를 비롯 사회주의 청년단체 같은 준군사조직을 어마어마하게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화국 정부의 실책으로 무장 지급이 늦어졌다는 것을 고려해도 산술적으로는 전투가 성립될 수 없음. 그럼에도 반란군이 초기에 막대한 병력을 손에넣었다는 것은, 많은 청년들이 반란군에 징병 혹은 자원입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결국 좌파가 분열했다는 것은 부차적인 이유고, 지극히 스페인적인 이유, 그러니까 공화국 정부의 정책 실패와 분쟁조정의 실패로 인한 대혼란이 스페인 국민들의 실제적인 반응으로 이어졌다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함.
결론을 따지면 스페인 사람들은 내전 이전부터 혼란스러운 상황을 누군가 타개해주길 원했던거고, 그때 프랑코가 정적들의 사고와 같은 운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바탕으로 그 자리를 차지한거고 프랑코가 그 자리를 차지한 이후에는 자신의 정적 제거와 국민들의 지지로 전쟁을 수행하는 밑바탕이 되었다고 봄. 결과적으로 스페인 내전은 그냥 스페인 내전임. 뭔가 엄청난 외부 이데올로기나 전세계적 정세와 같은 논리를 끌어오지 않아도 설명할 수 있는, 다만 표면적으로는 범세계적 이데올로기 집단 간의 전쟁이라는 점에서 리허설이라고 평가받을 수는 있지만.
프랑코 총통 오늘날 스페인을 만든 작은거인 자유의 수호자
???: 공산당 할거야 안할거야?
안하겠소!! 닷씨는 안하겠소!!
세계시는
그냥
배운걸
장기적 내전 보다는 독재가 ㅎ
나중에 세계대전때 히틀러가 프랑코에게
참전을 요구함 그렇나 프랑코가 참전대가를
요구함 아프리카 일부를 양도할것을 요구
협상은 결렬 후에 히틀러가 프랑코는
은혜를 모른는 인간이라고 분도함
그러나 스페인도 의용군 2개사단 당시 러시아전에 보냄 그정도선으로 선긋기
함
허밍웨이 참가 안하지 않았나 근데 웃긴 이야기지만 학살은 공화국이 먼저했음 수천명의 신부들을 처형함 그래서 우익이 집결하게 된거임 글구 학살은 서로함 프랑코가 욕을 먹긴하지만 저 다양한 세력을 모을수 있는 사람이 그뿐이란것도 인정해야함
스페인 내전에서 히틀러가 자신감을 얻게됨
리틀 독소전쟁
스페인 내전은 선 대 악의 싸움이 아니라 악 대 악의 싸움입니다. 당시 각 진영 내의 유력한 파벌 중 민간인 학살 같은 전쟁범죄로부터 자유로운 세력은 거의 없었습니다.(굳이 대자면 바스크 지방정부 정도인데 얘네는 내전 초반에 리타이어)
훗날 프랑코 사망 이후 우파와 좌파가 침묵협약을 맺어서 딜을 한 것은 내전이 터질까봐 두려웠던 것도 있고, 그 외에도 우파건 좌파건 스페인 국민인 이상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피의자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치가
끝나고
이테리도
끝나고
유ㅡ익
75년까지 프랑코정권이 계속 유지된게 신기하네 ㅋ
이번 영상은 평소와 달리 너무 편파적으로 공화파만을 지지하시는 듯합니다.
사회주의자들도 스페인민간인들을 많이 죽였죠. ㅋㅋ
민초들이 불쌍하다 ㅠㅠ
스페인 내전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시는군요~
~~~~스페인 내전 시작의 근본적 원인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 올리신것은 아니죠?
----------------------------------------------------------------------제말의 증거는 제일 하단에 기록했습니다
------공산주의 사상이 휩슬던 유럽에서 특히 스페인은 상층부의 지식층과 교수 공무원들(특히 경찰--한국도?)의
대부분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스페인 군부는 어린 16세부터 독자적인 군인 양성프로그램을 운영했던 관계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고위 장성들은 상당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결정적 사건은, 소련과의 은밀한 내통과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독식하며 군부에 대한 대대적인 공산주의자들의 교체에 따라 폭발하게 된것입니다
유럽 독일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내전이 시작되었으며
.....이때 공산화 되었던 소련은 최신예 t54 탱크 수백대와 특수부대 병력까지 투입했습니다
만약. 공화정으로 위장한 공산주의자들이 유럽에 교두보를 만들어 공산사회를 만들었다면
--지금의 인권을 중요시하는 서유럽 전체가 공산화 되었을것이며, 자유주의 자체는 존재조차 하지 않했겠죠
--그리고 전쟁후 공화정 세력을 숙청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소련과 내통한 적색 국제여단과 내통한 공산주의자들과 부역자들을 색출해 제거한 것입니다
스페인은 엄밀히 말하면~~~~~~~~공화정으로 위장한~대부분의 공산주의 지도층과 자유민주주의의 프랑코군부 와의 싸움이었습니다
--------위키백과ㅡ, 국제여단이란
---------1936년 9월 스페인 공산당은 스페인 내전에서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외국인 의용군을 요청하였다. 프랑스 공산당을 통해 소련에 전달된 이 요청에 따라 코민테른의 선전가 빌리 뮌젠베르그는 서방측에 의용군 지원을 요청한다. 공산주의자가 아닌 의용군 지원자는 내무인민위원회의 보안 심문을 거쳐야 했다.[9]
Cnt가 공산당 소속 노조로 보이냐
공화파가 아니라 공산당으로 알고있는대...공화국이 아닌 공산주의 국가였던걸로 알고있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