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주님께 답변드립니다. “십일조”란 소득의 십분지 일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에서 히브리어 “마아셀”이란 어휘에서 기원되었습니다. 이를 신약 헬라어에서는 “데카테에”라고 번역하였고, 영어에서는“타이쓰(Tithe)”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구약성경 창세기 14:20절에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 대제사장에게 소득의 십일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으며 말라기 3:10에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고 말씀합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말하는 ‘온전한 십일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성경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현대와 같은 복잡한 회계, 급여 체계 속에서 자기의 수익을 계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드릴 때는 경제구조 자체가 간단했습니다. 양을 치는 사람은 1년이 지나 불어난 숫자에서 십일조를 드렸으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1년 소출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여기에 들어간 인건비를 뺄 것인가? 아니면 타작하는 데 도와준 이웃 사람의 품삯을 계산한 뒤 십일조를 할 것인가? 아닌가?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생산 활동에 수반되는 부대 비용을 제하고 자기의 수익으로 잡아야 하는지 아니면, 제하기 전에 모두를 수익으로 잡아야 하는지?(오늘날 전체 매출액의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 부대 경비를 제외한 순수 소득의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 성경은 분명한 선을 긋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는 십일조가 아니라 십이조(2/10)를 바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신앙이 없어서가 아니라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 십일조를 바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십일조에 대하여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정확한 1/10은 아닙니다. 저는 성도님이 자유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성도님의 마음입니다. '이 모든 재산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 것이다' '이 모든 수입은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주셔서 가지게 된 열매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이 재물을 주셨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오직 그 분만으로 살 수 있다' '이 재물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이다' 등의 고백이 더 중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매출의 십일조, 수익의 십일조 모두 드리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온전한 십일조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수익과 매출의 절반 5/10 조를 드려도 드리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는 더러운 외식의 껍데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수입금의 십일조도 십일조요, 매출의 십일조도 십일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산골목장 외로운 양치기 / 심만섭 목사 올림 답글
“십일조”란 소득의 십분지 일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에서 히브리어 “마아셀”이란 어휘에서 기원되었습니다. 이를 신약 헬라어에서는 “데카테에”라고 번역하였고, 영어에서는“타이쓰(Tithe)”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구약성경 창세기 14:20절에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 대제사장에게 소득의 십일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으며 말라기 3:10에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고 말씀합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말하는 ‘온전한 십일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성경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현대와 같은 복잡한 회계, 급여 체계 속에서 자기의 수익을 계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드릴 때는 경제구조 자체가 간단했습니다. 양을 치는 사람은 1년이 지나 불어난 숫자에서 십일조를 드렸으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1년 소출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여기에 들어간 인건비를 뺄 것인가? 아니면 타작하는 데 도와준 이웃 사람의 품삯을 계산한 뒤 십일조를 할 것인가? 아닌가?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생산 활동에 수반되는 부대 비용을 제하고 자기의 수익으로 잡아야 하는지 아니면, 제하기 전에 모두를 수익으로 잡아야 하는지?(오늘날 전체 매출액의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 부대 경비를 제외한 순수 소득의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 성경은 분명한 선을 긋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는 십일조가 아니라 십이조(2/10)를 바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신앙이 없어서가 아니라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 십일조를 바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십일조에 대하여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정확한 1/10은 아닙니다. 저는 성도님이 자유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성도님의 마음입니다. '이 모든 재산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 것이다' '이 모든 수입은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주셔서 가지게 된 열매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이 재물을 주셨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오직 그 분만으로 살 수 있다' '이 재물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이다' 등의 고백이 더 중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매출의 십일조, 수익의 십일조 모두 드리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온전한 십일조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수익과 매출의 절반 5/10 조를 드려도 드리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는 더러운 외식의 껍데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수입금의 십일조도 십일조요, 매출의 십일조도 십일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산골목장 외로운 양치기 / 심만섭 목사 올림
윤기주님께 답변드립니다.
“십일조”란 소득의 십분지 일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에서 히브리어 “마아셀”이란 어휘에서 기원되었습니다. 이를 신약 헬라어에서는 “데카테에”라고 번역하였고, 영어에서는“타이쓰(Tithe)”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구약성경 창세기 14:20절에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 대제사장에게 소득의 십일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으며 말라기 3:10에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고 말씀합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말하는 ‘온전한 십일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성경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현대와 같은 복잡한 회계, 급여 체계 속에서 자기의 수익을 계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드릴 때는 경제구조 자체가 간단했습니다. 양을 치는 사람은 1년이 지나 불어난 숫자에서 십일조를 드렸으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1년 소출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여기에 들어간 인건비를 뺄 것인가? 아니면 타작하는 데 도와준 이웃 사람의 품삯을 계산한 뒤 십일조를 할 것인가? 아닌가?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생산 활동에 수반되는 부대 비용을 제하고 자기의 수익으로 잡아야 하는지 아니면, 제하기 전에 모두를 수익으로 잡아야 하는지?(오늘날 전체 매출액의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 부대 경비를 제외한 순수 소득의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 성경은 분명한 선을 긋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는 십일조가 아니라 십이조(2/10)를 바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신앙이 없어서가 아니라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 십일조를 바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십일조에 대하여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정확한 1/10은 아닙니다. 저는 성도님이 자유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성도님의 마음입니다.
'이 모든 재산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 것이다' '이 모든 수입은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주셔서 가지게 된 열매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이 재물을 주셨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오직 그 분만으로 살 수 있다' '이 재물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이다' 등의 고백이 더 중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매출의 십일조, 수익의 십일조 모두 드리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온전한 십일조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수익과 매출의 절반 5/10 조를 드려도 드리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는 더러운 외식의 껍데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수입금의 십일조도 십일조요, 매출의 십일조도 십일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산골목장 외로운 양치기 / 심만섭 목사 올림
답글
십일조는 총수익의 십일조라 하던데요
그러면 마트같은데는 망해야 정상이지요
여기에 대한 답변해주실분 계신가요
“십일조”란 소득의 십분지 일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에서 히브리어 “마아셀”이란 어휘에서 기원되었습니다. 이를 신약 헬라어에서는 “데카테에”라고 번역하였고, 영어에서는“타이쓰(Tithe)”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구약성경 창세기 14:20절에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 대제사장에게 소득의 십일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으며 말라기 3:10에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고 말씀합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말하는 ‘온전한 십일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성경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현대와 같은 복잡한 회계, 급여 체계 속에서 자기의 수익을 계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드릴 때는 경제구조 자체가 간단했습니다. 양을 치는 사람은 1년이 지나 불어난 숫자에서 십일조를 드렸으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1년 소출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여기에 들어간 인건비를 뺄 것인가? 아니면 타작하는 데 도와준 이웃 사람의 품삯을 계산한 뒤 십일조를 할 것인가? 아닌가?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생산 활동에 수반되는 부대 비용을 제하고 자기의 수익으로 잡아야 하는지 아니면, 제하기 전에 모두를 수익으로 잡아야 하는지?(오늘날 전체 매출액의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 부대 경비를 제외한 순수 소득의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 성경은 분명한 선을 긋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는 십일조가 아니라 십이조(2/10)를 바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신앙이 없어서가 아니라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 십일조를 바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십일조에 대하여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정확한 1/10은 아닙니다. 저는 성도님이 자유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성도님의 마음입니다.
'이 모든 재산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 것이다' '이 모든 수입은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주셔서 가지게 된 열매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이 재물을 주셨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오직 그 분만으로 살 수 있다' '이 재물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이다' 등의 고백이 더 중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매출의 십일조, 수익의 십일조 모두 드리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온전한 십일조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수익과 매출의 절반 5/10 조를 드려도 드리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는 더러운 외식의 껍데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수입금의 십일조도 십일조요, 매출의 십일조도 십일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산골목장 외로운 양치기 / 심만섭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