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기야 조선군이나 의병들보다 훨씬 잘 싸울 수 밖에 없지. 목검을 든 일본 병졸 포로 하나가 진짜 창칼로 무장한 조선군 10명을 가볍게 때려눕힌다고 난중일기에도 나와 있음. 평지에서 육박전이 벌어지면 그건 더 이상 전투가 아닌 일방적인 도륙이었음. 실제로 임진왜란 때 조선이 일본을 상대로 지상전에서 승리한 전투는 모두 산성이나 성에서 수성하며 거든 승리임. 야전에서 붙어 이긴적은 단 한번도 없음. 용인전투에서는 5만의 조선군이 평지에서 3000일본군과 싸우다가 도륙났음.
김제군수 정담, 나주판관 이복남, 의병장 황박이 이끄는 조선의 병사들이 안코쿠지의 대군과 싸워 전멸할때까지 싸운 웅치전투입니다. 왜장 안코쿠지는 전사한 조선의 전사들을 묻어주고 弔朝鮮國忠肝義膽 표목을 세웠다고 합니다. 우리는 웅치에서 목숨바쳐 싸운 조선의 영웅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행주대접은 3000명으로 3만의 군대를 이긴 전투라서 전투비율이 1:10이다보니 높게 처주는 것이고 웅치이치 전투보다 전투의 중요도가 많이 떨어졌죠. 웅치 이치 전투는 행주대첩 이전에 조선 육군이 최초로 대승을 거든 전투이자 첫번째 전라도 점령을 향한 진격로였던 웅치 이치고개에서 대승을 하면서 전라도 점령이 좌절된 전투였죠. 조선군은 전라도 절도사는 이광이었고 이치전투 조선군 야전지휘관은 광주 목사 권율 선봉장 황진 후군장은 황박 총 벙력은 2000명 이었고 일본군 오대로(히데요시 5대 다이묘)의 고바야카와가 최정예 사병으로 조직된 3000 병력이었죠. 웅치전투 조선군 야전지휘관은 정담 선봉장은 이복남 후군장은 황박 병력은 7000명 일본군 고바야카와의 가신 다이묘 안코쿠지가 이끄는 부대로 병력은 1만
일본 장수 중 고니시가 실제로 전쟁을 막으려고 온갖 수를 다 썼음. 기독교 믿는데다 내전 끝나고 조선이랑 평화롭게 거래할 생각에 들떠있었는데 주군이었던 노망 난 원숭이가 갑자기 전쟁한다 지랄하고 자기가세웠던 평화로운 노후가 박살날 위기에 고니시는 전장만큼은 막아보려고 온갖 수를 다 썼지만 실패했음. 동래성애서도 길만 비켜주면 아무런 피해도 안 끼치고 그냥 지나갈 테니 제발 길 좀 비켜달라는 부탁도 했고
그런 사람이 있었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이죠. 우리나라에 배치된 200개의 핵을 빼면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할거라고 봤죠 그리고는 정부가 북한을 몰래 원조해주는 댓가로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졌고 그로인해 노벨평화상을 받았죠. 그리고 북한은 원조받은 돈으로 핵을 개발했죠. 문재인 때도 같은 일을 반복했죠 다 팩트라서 찾아보세요
저 때 항왜가 워낙 많았어서 ㅎ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죠. 또 웃긴게 사무라이들 중엔 본인 실력이 좋으면 주군을 자주 바꾸는게 당연하게 여기기도 했으니. 심지어 항왜군들이 겁나 잘싸웠다는 ㅋ 실록에 보면 항왜군 하나가 선조한테 자기가 가토 측근들을 잘 아니까 암살 시도 한번 해 보겠다고까지 얘기하죠 ㅋㅋ 왜군 입장에서보면 아주 골 때림 ㅋ
임진왜란이 세키가하라 전투 이전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임진왜란에 참전하지 않았을뿐 그 당시 도요토미와 전쟁 중이지 않았습니다. 항왜 중에 이미 일본 내에서 성리학을 배웠을 정도로 지식 수준이 높은 김충선 같은 인물도 있으나 단순히 히데요시의 통일에 반발심을 가진 채로 조선에 투항하던 왜인들도 실제 있었습니다. 전국시대에서 무사들이 주인을 바꾸는 것은 일반적이진 않았으나 또 아주 이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회사 이직 수준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무력으로 통일 한 후 조선을 침략했기 때문에, 일본 내부에도 도요토미히데요시라면 이를 부득부득 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이들은 임진왜란 발발 후 강제로 참전했다가 조선으로 건너와 항왜가 되기도 했지만, 사실 대부분은 전쟁 초기에 사망했습니다. 도요토미가 조금이라도 의심갈 만 한 사람들은 일찌감치 미끼로 활용하거나 가장 위험한 지역에 투입하여 화살받이로 썼기 때문입니다.
가 보셨군요...전 아들과 함께 7~8년 전에 전적비를 찾아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전 솔직히 웅치, 이치 전투를 알지 못했습니다. 근데 초등학교 다니던 아들 놈이 역사도리라...웅치 이치 전투 얘기를 제게 하며 그 전적비를 가보고 싶다고 해서...가게 되었는데...그 중요한 전투...그 많은 선조들의 희생으로 지켜낸 전투인데 너무 관리되지 않고 초라하여 맘이 많이 상했었습니다. 지금은 웅치, 이치 전투에 대해 나름 많이 알려졌고, 잊지 않고, 기억하며 감사하는 분들이 많이 생겨 좋습니다.
전국시대 통일이 된지 얼마안된 시기였기 때문에 저당시 조선은 북방 정예기병들이나 북방 을 겪어보지않은 병사들,장군들이 다수였으므로 실전경험이 전무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일본은 지금껏 싸우다 통일되고 조선으로 넘어온케이스에 전공을세워야 출세길이 열리는 시대였기때문에 배경이 전무한 병사들은 더 활약하기위해 분투했죠.. 그러다보니 평균적 경험이나 능력면이나 배경 면에서 일본군들이 뛰어날수밖에 없긴 했습니다
백년을 전쟁하던 놈들인데 전투 기술은 당연히 높았을거고 오랜시간 하나의 나라로 뭉쳐지지 못하고 각 영지의 다이묘들이 먹고 먹히는 와중에 앙심을 품은 놈들도 있고 용병처럼 떠돌던 놈들도 있고 하나의 국가라는 개념이 없었을 거고 간혹 학식이 높아 조선을 높이? 보던 놈들도 있고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건데 결국 조선에 투항하면서 좋은 이유를 다가져다 붙여서 했을건데 ㅋㅋ 그래도 조선 입장에서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으니 뭐 나름 좋은 현상 이었을거 같네요
좌수영이 넘어갔으면 지금 우리는? 기어코 한국말쓰는 한국인으로 살기위해 싸웠을 것이다. 왜냐면, 역사가 보여준다. 수십년 몽골지배에서 전국토 뿌리까지 유린당했음에도 강화에서 살아남은 고려왕조는 비루했어도 자존을 지키고 살아남아 공민왕시대를 맞이했더랬다. 역사를 잊지말자!!!
항왜에 대해 여러 요인들이 있을 수 있는데 (일본 내부에서 적대관계나 입지/ 유교or불교 등 문화적 선진성에 대한 동경) 굉장히 현실적으로 가면 세율부터가 살인적인 일본에 비해 훨씬 인간적이었음. 조선의 작은 정부지향이 왜란 초기에 보여준 것처럼 단점도 많았지만, 공납의 폐단같이 여러 현실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세종의 연분9등법처럼 일반백성의 부담을 최대한 낮추려고 노력하는게 국시였고 군사훈련이나 토목사업도 그런 차원에서 자제할 정도였으니 전국시대내내 군사비 부담에 갈려나가고, 에도막부시대까지도 지방에서 경제력 뽑아다 참근교대제로 에도에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농민들 부담율 살인적으로 높았던게 일본이라
@@OOnameooo11 전근대 사회에서 유교는 동아시아에서 선진적인 통치 이데올로기였음. 인의예지신을 비롯한 사람의 도리를 이야기했으니. 지난 20세기 일부 국가에서 '평등'을 내세운 맑시즘이 유행했던거처럼. 이상향, 꿈, 희망을 이야기 했으니. 이건 그게 실재하는지와는 상관이 없음. 형이상학적인 논의라. 결과적으로 성리학이 조선을 망치고 시대에 뒤쳐지게 한 것과, 그걸 추구했던 사람들의 열망은 다른 문제. 맑시즘도 성리학교 이상일 뿐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반면에 그래서 조선은 어떤 나라보다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인간적인 동지애, 인류애, 가족애 등등). 그 유산은 현재 대한민국에 이어지고, 어느 나라에도 부끄럽지 않은 인간적인 문화로 남음.
@@smile6428 우리 조상들이 너님들 정도도 안될 만큼 생각이 부족하지는 않았음. 특히나 조선은 기본적으로 왕권과 신권이 지금의 3권 분립만큼이나 막강하게 대립 견제하는 구조(재미있는 건 왕권이 신권보다 강할 때가 오히려 안정기/부흥기였다는 점). 그래서 사초는 생뚱맞은 다수의 사관들이 서로 제 멋대로 쓰고, 왕 죽은 다음에 취합해서 기록함. 조선왕조가 500년 갈 수 있었던 게 그냥 막 그런 게 아님. 사초들을 왕이 자기 입맛대로 기록을 수정하려고 하면 그 자체로 하나의 사화가 되어 버렸던 게 조선의 실록 기록 절차임. 크로스체크는 이미 당대에서 왕 별로 실록 편찬할 때 다 병행된 걸로 봐도 무방할 듯. 물론 그렇게 해도 오류가 있긴 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당대에 국제사회에서 가장 왜곡 없이 정확한 기록물은 조선왕조실록일 것임.
진안 웅치가 임진왜란 향방을 가른 5대 전투중 하나이다....이날 3중 방어선에서 사력을 다해 왜군에 대항한 조선의 병사들과 항왜병사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목숨걸고 지킨나라를 공짜로 또 넘겨주는중..
@@pandalee2298 문재인과 윤석열
ㄹㅇ 중국한테 나라 다 빼앗기는데도 형님의 나라다 ㅇㅈㄹ 하고 있음@@pandalee2298
@@MADCULTURE00중국? 지금은 어떻게 봐도 일본에 넘겨주는 중 아니냐?ㅋㅋㅋ오죽하면 현정부가 조선총독부라는 소리까지 나오겠냐
@@MADCULTURE00 20년간 중국한테 한해에 50조씩 흑자보고 일본한테 30조씩 적자봤는데 뭔 쌉소리야 니들은 좀 댓글만 달지 말고 공부좀 해라
범죄도시에서 양태역할
악인전에서 살인자역할
진짜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다
킹덤에서도 나옴
양태 역할 했던 배우가 악인전에도 나오고 한산에도 나온지 몰랐네요
돼지의왕진짜끝내줌
킹덤에서 개멋지게나옴ㅋㅋ
연장쓰는 역할이 많으시군
저 수많은 사람이 지켜낸 이나라 그들의 이름 한자 없구나..
안타까울뿐입니다
선조가 지랑 같이 도망간 대신들 내시들은 공신첩에 싣고 의병들은 푸대접.
그냥 남자는 국가를 위해 가는겨.
이게 성차별이라면 니말이 맞다.
@@anonymous-yx6kf성차별 맞음ㅇㅇ
@@dopejyp4794니 프랑스 가라.
항왜 수가 적지 않았고 싸우는 것도 용맹 했다고 함
대표적 인물 김충선과 그 후손들
싸우기야 조선군이나 의병들보다 훨씬 잘 싸울 수 밖에 없지.
목검을 든 일본 병졸 포로 하나가 진짜 창칼로 무장한 조선군 10명을 가볍게 때려눕힌다고 난중일기에도 나와 있음. 평지에서 육박전이 벌어지면 그건 더 이상 전투가 아닌 일방적인 도륙이었음. 실제로 임진왜란 때 조선이 일본을 상대로 지상전에서 승리한 전투는 모두 산성이나 성에서 수성하며 거든 승리임. 야전에서 붙어 이긴적은 단 한번도 없음. 용인전투에서는 5만의 조선군이 평지에서 3000일본군과 싸우다가 도륙났음.
순왜가 더 많았음 조선왕국은 노예제사회 였기 때문임
사야가(김충선)가 3천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투항했죠.
사야가가 이끄는 부대가 조총부대이고 임진왜란끝나고 조선에 조총부대 만드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명분없는 전쟁을 일으킨 풍신수길에 반발을 일으킨 항왜들이 많았죠.
반대로 조선에 침 뱉고 일본으로 떠난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topjimmy9687 을사오적같은 매국노들
항왜 VS 순왜
애초에 군벌연합이라 원팀이 아니지. 도쿠가와이에야스도 안따라왔고.
@@topjimmy9687 있었'겠'지요ㅋㅋㅋㅋ
김제군수 정담, 나주판관 이복남, 의병장 황박이 이끄는 조선의 병사들이 안코쿠지의 대군과 싸워 전멸할때까지 싸운 웅치전투입니다. 왜장 안코쿠지는 전사한 조선의 전사들을 묻어주고 弔朝鮮國忠肝義膽 표목을 세웠다고 합니다. 우리는 웅치에서 목숨바쳐 싸운 조선의 영웅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전라도 관군ㆍ전라도 의병이 싸워 이긴 전투인데 영화엔 뜬금없이 서울, 강원도 말투가 나오는 뭣 같은 영화.
@@sunlyanghuh5202전라도 사투리쓰는 순간 영화장르 황산벌됨.
@@sunlyanghuh5202그렇게따지면 400년전 중세한국어로해야지 안그러냐 ㅋㅋ
그 덕분에 임란때 보급창 역활을 하던 전라도를 지킬수 있었고 전라 좌수영,우수영도
건재해 한산에서 와키를 꾀어내어 점심도 먹기전에 개박살내 전쟁의 판도를 바꿈
@@sunlyanghuh5202 그 시절 각 지역별 말은 정확하게 알고??
웅치전투 황진 장군님과 병사분들 감사합니다. 필승!
참고로 권율 장군이 가장 자랑스러워 했던 전투는 행주대첩이 아니라 웅치 이치 전투였다고 하죠
행주대접은 3000명으로 3만의 군대를 이긴 전투라서 전투비율이 1:10이다보니 높게 처주는 것이고 웅치이치 전투보다 전투의 중요도가 많이 떨어졌죠.
웅치 이치 전투는 행주대첩 이전에 조선 육군이 최초로 대승을 거든 전투이자 첫번째 전라도 점령을 향한 진격로였던 웅치 이치고개에서 대승을 하면서 전라도 점령이 좌절된 전투였죠.
조선군은 전라도 절도사는 이광이었고
이치전투
조선군 야전지휘관은 광주 목사 권율 선봉장 황진 후군장은 황박 총 벙력은 2000명 이었고
일본군 오대로(히데요시 5대 다이묘)의 고바야카와가 최정예 사병으로 조직된 3000 병력이었죠.
웅치전투
조선군 야전지휘관은 정담 선봉장은 이복남 후군장은 황박 병력은 7000명
일본군 고바야카와의 가신 다이묘 안코쿠지가 이끄는 부대로 병력은 1만
웅치 이치는 황진 장군이 병사 500으로 웅치 안덕원전투에서 안코쿠지 1만명 몰아내고 이치에서는 최선봉에서 입구컷 하고 무쌍찍으면서 막아낸 전투라 권율장군이 많이 가려졌죠
직접 들은 것이오?
@@허군-y4n 권율의 사위 이항복이 쓴 문집인 백사집에 실려있죠
@@허군-y4n기록에 있다. 그것도 못 믿을꺼면 종교나 수학도 믿지마.
전쟁 안 일어나게 막는 사람도 있음
굴종한다고 일어날 전쟁이 안 일어나는게 아님.. 전쟁 없는 평화란 없고 힘이 없으면 일어나는게 전쟁임.
일본 장수 중 고니시가 실제로 전쟁을 막으려고 온갖 수를 다 썼음.
기독교 믿는데다 내전 끝나고 조선이랑 평화롭게 거래할 생각에 들떠있었는데 주군이었던 노망 난 원숭이가 갑자기 전쟁한다 지랄하고 자기가세웠던 평화로운 노후가 박살날 위기에 고니시는 전장만큼은 막아보려고 온갖 수를 다 썼지만 실패했음.
동래성애서도 길만 비켜주면 아무런 피해도 안 끼치고 그냥 지나갈 테니 제발 길 좀 비켜달라는 부탁도 했고
그런 사람이 있었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이죠. 우리나라에 배치된 200개의 핵을 빼면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할거라고 봤죠 그리고는 정부가 북한을 몰래 원조해주는 댓가로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졌고 그로인해 노벨평화상을 받았죠. 그리고 북한은 원조받은 돈으로 핵을 개발했죠. 문재인 때도 같은 일을 반복했죠 다 팩트라서 찾아보세요
@@JihoChoi-dw5sy 그런 사람들이 있어도 결국 힘 없는 그들의 힘은 아무 것도 이뤄내지 못했음. 조선에 평화도 세계의 평화도. 결국 힘 있는 누군가가 주도해서 우리에게 평화를 쥐어준거고 지켜준거임.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법은 적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주는 법밖에 없음. 감히 덤빌 생각을 못하게 하는 것. 적에게 압도적인 패배를 안겨줄 전력이든 압도적인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승리든.
웅치고개(전북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1천명의 관군. 의병이 힘을 합쳐 호남을 지켜내었다
임진왜란 최초 육전 승리
그러고 보면 전라도는 참 장수 인물이 없어요... 그래도 늘 장수를이 건너와 보호해주는거 보면 나름 복이라면 복이겠지요.
@@기맛깔ㅋㅋㅋ코딱지만한나라에 지역나눠서 까려는 틀들이 문제
@@changukmun7656 역시 반박은 못하죠?ㅋㅋ 까려는게 아니라 펙트를 말해도 삐딱하게 들으려 하니 장수가 없지요..
@@기맛깔 농사만 짓던곳에서 장수가 나오는게 이상한거 아닌가?
@@tdjfghjhioh45dffc443 중청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상경 어디 옛날 농사 안짓는 곳 있었슈?ㅋㅋㅋㅋ 전라도만 농사 지어서 장수가 없었구나.. 나오면 그게 이상하고 ㅋㅋ 이이 기지?
항왜 전쟁이 끝나고 일본도 조선에도 속하지못하고 죽은 불쌍한 사람들
이괄때 살아남았으면 병자호란에서 어떤 활약들을 했을지 참 섭섭하네요. 나름 정예병들이였는데
임진왜란 끝나고 벼슬 받아 땅받고 이땅에 뿌리내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현재도 그 마을이 존재하고 일본에서 촬영온적도 있어요
@@홍-w6r병자호란때까지 가면 항왜로 유명한 김충선도 60대 할아버지가 된 이후라...
아닌데.. ㅇㅈ 받은 사람들도 많았둠 그 전투력까지 버릴 정도로 j선은 아님 뭐 이후 평화에 젖어 현 대한민국처럼 개억까 ㅈ망트리 탔지만 ㅋ
인정 못받고 무시당한 사람들이 이괄에게 붙었고.. 나머지는 누구시냐 유명하신 분.. 그 분 말 듣고 참고 견딤...그게 다다, 무작정 조선인으로 받아 들이지 않았음
웅치, 이치 전투 그리고 이순신 장군님의 매드 무비. 삼위일체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시대를 밝게 비춰주는 수많은 별들에게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김성규배우닝 천의 얼굴~~
웅치 이치전투가 패했다면 이순신도...왜란의 결과도 달라졌을 수 있었을정도로 중요한 전투...황진장군님 감사합니다.
웅치 전투, 이치에서 승리, 진주 대첩 등으로 전라도 방어에 성공, 왜 육군의 현지 보급과 전쟁 지속 능력을 차단하고 조선군의 보급과 전쟁 지속 능력을 지킴으로서 임란 극복의 초석이됨.
웅치전투에서 영웅들이 많이 나왔죠. 또 다른 이순신장군도 있었고... 몸바쳐 지켜주신 선조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런 선조들을 욕되게 하는 무리들이 수백년이 지난 현재에도 존재하니 통탄할 일이죠.
이괄의 난때 항왜가 싹다 붙어서 죽지않았다면 호란때 크게 활약했을텐데.
그건 능양군이 말아먹은거고 1등공신 이괄을 변경 책임자로 붙여놨으면 잘 대접이나 해주던가
@@hongsukbeum 그쵸... 진짜 쉽세들..
그럼 호란때 최소 50-60 ㅡㅡ 그정도는 잘 싸워도 어렵지
역사에서 상상이 주는 줄거움이 있지만,이런것까지
항왜 숫자가 얼마나 됫나요?
불의는 나라를 따지지 않고!! 불의는 언제나 살아남아 명맥을 이어간다!!
그 말이 좋지.. " 의를 향한 마음만 있음 됐다 "
감사합니다! 불의를 보지 못하고 나라를 배신해가면서까지 의를 지키는 당신들에게 감사합니다.
나라를 배산한게 아니고, 애초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반감을 가진 애들이였음. 왜란 끝나고 20년이후 일본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장악하게됨
근데 조선에선 이들을 병자호란 방패막이로 쓰거나 토사구팽 숙청했죠 ㅋㅋ 조선은 여러모로 레전드 나라입니다.
뭐래 다 벼슬받고 조선인들하고 결혼해서 후손많이 남김
버린건
항왜중 난에 참여한 놈들이 많아서 그런거고
그 란을 진압한거도 정2품 사야가 항왜였음
상당히 잘해줌
조선의 세율은 1할이었고 지주몫까지 2할넘지못함
초중반까지는 위민국가였음
영화는 영화로
임진왜란 자체가 명분이 모호하고 다이묘들 힘 빼려고 군사 차출한거라 반발이 심했는데 출정가고보니 명예에 죽고사는 사무라이들이 민간인이나 썰고있으니 사기가 높진 않았음
도오토미가 조선인 귀코를 베어오면 포상금을 지급한다고 해서 민간인들 많이 죽음😢
명분은 만드는 것이지
명분이 없거나 모호하다라는 약자 코스프레는 그만.........조선이 망한 이유이지요...약자 코스프레
뭐래 ㅋㅋ 사무라이들 미화된게 명예에 죽고 산다는거지 ㅋㅋ 실태는 여자는 사람 취급 안했고 강간을 일삼고 강도 짓도 마다하지않음
@@호시니 자기들도 이건 아니라 생각했는지 목숨은 앗아가지 않고 코만 베어가는 경우가 있었다 합니다. 웹툰 '칼부림'에서 이것이 고증된 바 있는데, 엄청 놀란 기억이 있어요
@@길냥시급식구셔틀동 사실 무사도란 개념이 전국시대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정설이긴 하죠.. 저때의 일본군의 행적은 가히 야만적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니
저때 일본의 항왜들은 조선을 위해 싸운게 아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서군과 적대적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쪽의 동군쪽이라서 그렇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저 때 항왜가 워낙 많았어서 ㅎ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죠.
또 웃긴게 사무라이들 중엔 본인 실력이 좋으면 주군을 자주 바꾸는게 당연하게 여기기도 했으니.
심지어 항왜군들이 겁나 잘싸웠다는 ㅋ
실록에 보면 항왜군 하나가 선조한테 자기가 가토 측근들을 잘 아니까 암살 시도 한번 해 보겠다고까지 얘기하죠 ㅋㅋ 왜군 입장에서보면 아주 골 때림 ㅋ
임진왜란이 세키가하라 전투 이전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임진왜란에 참전하지 않았을뿐 그 당시 도요토미와 전쟁 중이지 않았습니다. 항왜 중에 이미 일본 내에서 성리학을 배웠을 정도로 지식 수준이 높은 김충선 같은 인물도 있으나 단순히 히데요시의 통일에 반발심을 가진 채로 조선에 투항하던 왜인들도 실제 있었습니다. 전국시대에서 무사들이 주인을 바꾸는 것은 일반적이진 않았으나 또 아주 이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회사 이직 수준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말도 안되게 사람을 죽이니 정상적인 생각을 가지면 반대 생각을 한사람도 있을겁니다
여러 케이스들이 있겟지 당시 일본에서는 말로만 외치던 무사도를 조선에서 처음 보고 감복해서 투항한 사람도 많다고 들음
임진왜란이 세키가하라보다 앞서서 발생했습니다.
수많은 우리 선조분들과... 저렇게 정의를 위해 싸워주신 항왜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합니다...
권율 황진장군 의병고경명 웅치 이치 전투
고바야카와 다카카케
김충선 진짜 멋진 일본장군 출신 우리나라를 위해서 같이 싸워준 일본인들 대단하다
감동의 아우토반이야~!!
-소 -오 이거 왜 다 사라졋나
나도 저렇게 근엄하고 멋지게
말하고 싶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무력으로 통일 한 후 조선을 침략했기 때문에, 일본 내부에도 도요토미히데요시라면 이를 부득부득 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이들은 임진왜란 발발 후 강제로 참전했다가 조선으로 건너와 항왜가 되기도 했지만, 사실 대부분은 전쟁 초기에 사망했습니다. 도요토미가 조금이라도 의심갈 만 한 사람들은 일찌감치 미끼로 활용하거나 가장 위험한 지역에 투입하여 화살받이로 썼기 때문입니다.
항왜는 수천명에 이르렀다.
악인전에서 나오던 그분이네~ 살벌하던데~~~ 연기 잘 하신당~~~
오늘 친구랑 얘기라다 말 쌈을 좀 했는뎅. 비굴한 평화보다 떳떳한 전쟁이 낮다고 하던데요. 어떤게 더 정답이까요?
선 굵은 연기를 보여주는 조연급 배우지만,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많은 관객들에게 연기로 인정받는 진정한 액션 배우네... 굿~~
순국 선열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준사가 웅치 이치 지킴에 큰힘이
되었다
솔직히 노량에선 저 준사 역할이 이순신보다도 더 존재감 있었다
홍사부님 동방쌍룡24수로 임진왜란때도 활약하셨구나…
완주하고 진안 사이에 있는 웅치 에 웅치 전적비 가 아직도 있죠 비포장 도로 라서 올라갈때 한참 꼬불꼬불 한 길 올라가야합
가 보셨군요...전 아들과 함께 7~8년 전에 전적비를 찾아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전 솔직히 웅치, 이치 전투를 알지 못했습니다. 근데 초등학교 다니던 아들 놈이 역사도리라...웅치 이치 전투 얘기를 제게 하며 그 전적비를 가보고 싶다고 해서...가게 되었는데...그 중요한 전투...그 많은 선조들의 희생으로 지켜낸 전투인데 너무 관리되지 않고 초라하여 맘이 많이 상했었습니다. 지금은 웅치, 이치 전투에 대해 나름 많이 알려졌고, 잊지 않고, 기억하며 감사하는 분들이 많이 생겨 좋습니다.
아시가루가 태반이던 항왜가 우리 정예병 수준이었다던데 대체 그 시대 일본은 뭐하던 동네였을까
전국시대 통일이 된지 얼마안된 시기였기 때문에 저당시 조선은 북방 정예기병들이나 북방 을 겪어보지않은 병사들,장군들이 다수였으므로 실전경험이 전무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일본은 지금껏 싸우다 통일되고 조선으로 넘어온케이스에 전공을세워야 출세길이 열리는 시대였기때문에
배경이 전무한 병사들은 더 활약하기위해 분투했죠..
그러다보니 평균적 경험이나 능력면이나 배경 면에서
일본군들이 뛰어날수밖에 없긴 했습니다
지들끼리 죽어라 싸우면서 진짜들만 남음
저때 일본군은 ㅈㄴ 강하긴하지 산전수전 다 겪은 진짜들만 남았으니
오다 노부나가 때부터 근 20년간 전쟁만 하던 놈들이라 전투력 맥스;;;
밥먹고 전쟁만 하던 시절
백년을 전쟁하던 놈들인데 전투 기술은 당연히 높았을거고 오랜시간 하나의 나라로 뭉쳐지지 못하고 각 영지의 다이묘들이 먹고 먹히는 와중에 앙심을 품은 놈들도 있고 용병처럼 떠돌던 놈들도 있고 하나의 국가라는 개념이 없었을 거고 간혹 학식이 높아 조선을 높이? 보던 놈들도 있고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건데 결국 조선에 투항하면서 좋은 이유를 다가져다 붙여서 했을건데 ㅋㅋ 그래도 조선 입장에서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으니 뭐 나름 좋은 현상 이었을거 같네요
동방쌍룡~~👍👍👍👍👍
오늘날의 항왜가 우크라입장에선 자유러시아대대랑 일맥상통한거죠
와 어떻게 저 머리를 하고도 잘생겼냐..
저건 강동원도 소화하기 힘든데..
준사는 명량대첩때 장군의 상선에 승선하였다가
왜의 선봉장인 마다시(구루지마)가 물에 떠다니는 것을 발견하고 장군께 알려서 건져내어 토막내 그 머리를 효수하는데 큰 도움이 됨.
웅치
현재 곰치재를 말하죠.
전북 완주군 소양면과 진안군 부귀면의 경계
영상에 나오는 저분들이 비록 웅치전투에서 몰사하셨지만 그 덕에 전주가 살았죠.
지금은 전적비가 우뚝 솟아 그때를 기립니다.
웅치 이치 전투인가
웅취
오..그 전설의 웅치전투
혹시
저 전투의 리더가
용장 황진 장군님인가요?
@@youngjkim8244 맞아요!
웅치 이치전투의 영웅 황진장군님
이순신 도 있지만 기록되지 않은 백성도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나라 조총과 거북선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서양에서는 항공모함 떠다니고 있었으니 ㅋㅋ
정확히는 한국에서 천주교 박해하고있을때 런던에 지하철생김ㅋㅋㅋㅋ
1490년대부터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함.
이때가 대항해 시대 시작할때라
근데 제국주의 시대가 오는 1900년대 이전까지만해도 유럽이 제대로 힘을 못쓴건 사실임.
제대로된 식민지배도 1800년대 중후반부터 산업혁명시작될때 불붙기 시작했으니...
전쟁을하면 서로서로 상대방에 투항해서 싸우는 병사들이 생긴다.
각 군에 불만 세력들은 적 세력에 붙겠지요..
일본에도 항왜가 있었듯이,
조선에도 일본의 앞잡이 한 인물들도 많았다고 들었음..
@@천공하빈순왜들이죠
웅치이치 전투야말로 매우 저평가된 전투
호남방어에 결정적인 역할
다들 연기며 목소리톤이며 지리네
좌수영이 넘어갔으면 지금 우리는? 기어코 한국말쓰는 한국인으로 살기위해 싸웠을 것이다. 왜냐면, 역사가 보여준다. 수십년 몽골지배에서 전국토 뿌리까지 유린당했음에도 강화에서 살아남은 고려왕조는 비루했어도 자존을 지키고 살아남아 공민왕시대를 맞이했더랬다.
역사를 잊지말자!!!
항왜에 대해 여러 요인들이 있을 수 있는데
(일본 내부에서 적대관계나 입지/ 유교or불교 등 문화적 선진성에 대한 동경)
굉장히 현실적으로 가면 세율부터가 살인적인 일본에 비해 훨씬 인간적이었음.
조선의 작은 정부지향이 왜란 초기에 보여준 것처럼 단점도 많았지만,
공납의 폐단같이 여러 현실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세종의 연분9등법처럼 일반백성의 부담을 최대한 낮추려고 노력하는게 국시였고
군사훈련이나 토목사업도 그런 차원에서 자제할 정도였으니
전국시대내내 군사비 부담에 갈려나가고,
에도막부시대까지도 지방에서 경제력 뽑아다 참근교대제로 에도에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농민들 부담율 살인적으로 높았던게 일본이라
일본은 기본 50% 세율
조선은 법적으론 10%
좀만 수탈이 일어나면 바로 아사 ㅎ
@@xtreemsjyu50퍼면 거기 다이묘는 성군임
유교가 선진..?
@@OOnameooo11 전근대 사회에서 유교는 동아시아에서 선진적인 통치 이데올로기였음. 인의예지신을 비롯한 사람의 도리를 이야기했으니.
지난 20세기 일부 국가에서 '평등'을 내세운 맑시즘이 유행했던거처럼.
이상향, 꿈, 희망을 이야기 했으니.
이건 그게 실재하는지와는 상관이 없음.
형이상학적인 논의라.
결과적으로 성리학이 조선을 망치고 시대에 뒤쳐지게 한 것과, 그걸 추구했던 사람들의 열망은 다른 문제.
맑시즘도 성리학교 이상일 뿐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반면에 그래서 조선은 어떤 나라보다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인간적인 동지애, 인류애, 가족애 등등). 그 유산은 현재 대한민국에 이어지고, 어느 나라에도 부끄럽지 않은 인간적인 문화로 남음.
@@OOnameooo11 ㅇㅇ 선진
인본주의적 사상이 유교인데 유교를 서열주의로만 생각하는 멍청한 인간들이 있어서 문제지 니처럼
도끼꺼내겠소!
황진 장군님 영화로 볼수 있겠군요
웅치전투의 전개
임란전에 일본 통일전쟁시기 일본 사극보면 자기 영주가 죽으면 다 자결하거니 죽임 당하고...와 장난아님 ...진짜 항왜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료에는 임진왜란이라고 절대 기록되지 않았다.. 임진란 이라고 기록되어있다.. 다만 저 왜가 그왜인지 일본이 그 일본을 꼭 밝혀햐 할것이 후학들이 숙제다 .
지금 토왜들이 마구 설치고 있는것이 한스럽네.. 웅치전투에서 목숨 바쳐 싸우신 선조들께 너무나 죄송스럽다!!!!
항왜 김충선 후손인 이번 파리 올림픽 여자유도 김지수가 열심히 파이팅한 모습이 생각나는 영상이네요
장첸 왼팔 아니냐?
마동석 노리던 연쇄살인마고
저의 조상님이 항왜장수 철포장 사야가입니다.
임진때 실제로 자수한 왜군들이 조총 무기 사용법도 알려주고. 이순신장군님이 왜군 포로들 죽이지 않고 잘 돌봐줘서 조선군을 위해 싸웠다는게ㅜ거짓말이 아니었군요.
동방쌍룡24수는 임진왜란때도 활약을 했군요
역사는 권력을 잡은 사람이 기록한다. 지금 일어 나는 일들도 서로 말이 다른데 조선시데에는 생각이 모두 똑갔을까. 생각이 같았다면 권력으로 역사를 기록 했겠죠.
공감합니다 ㅋㅋㅋㅋ 현2024년 도승지인 비서실장 꼬라지만봐도 이지랄인데 뭔 조선시대 도승지하나 못굴려서 왕조실록이 사실만 기록됐겠습니까 서로의 역사서를 비교해보고 거기에 크로스체크되는 부분만 재기록하는게 맞다고봅니다
@@smile6428 우리 조상들이 너님들 정도도 안될 만큼 생각이 부족하지는 않았음. 특히나 조선은 기본적으로 왕권과 신권이 지금의 3권 분립만큼이나 막강하게 대립 견제하는 구조(재미있는 건 왕권이 신권보다 강할 때가 오히려 안정기/부흥기였다는 점). 그래서 사초는 생뚱맞은 다수의 사관들이 서로 제 멋대로 쓰고, 왕 죽은 다음에 취합해서 기록함. 조선왕조가 500년 갈 수 있었던 게 그냥 막 그런 게 아님. 사초들을 왕이 자기 입맛대로 기록을 수정하려고 하면 그 자체로 하나의 사화가 되어 버렸던 게 조선의 실록 기록 절차임. 크로스체크는 이미 당대에서 왕 별로 실록 편찬할 때 다 병행된 걸로 봐도 무방할 듯. 물론 그렇게 해도 오류가 있긴 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당대에 국제사회에서 가장 왜곡 없이 정확한 기록물은 조선왕조실록일 것임.
??: 아~ 감동의 아우토반이야~!
이순신만큼 위대한 황진장군님ㅠ
??: 양태야~~ 도끼꺼내라
하잇! 오야붕
그래서 저사람은 진짜 착한사람?
ㅇㅇ 3편내내 나온 사람임
명량에서 칼 2개 쓰는 일본말 쓰는 조선 수군이 저 사람역할임
조선 전쟁을 반대하던 자들인데, 우리 입장에서는 착한 사람이죠,
예전에 중국 학자가 이런소리를 한적있죠
나는 중국을 사랑하는 것이지 공산당을 사랑하는것이 아니다. 이건 침략전쟁임 911테러처럼 명분도 없고 단지 정복전쟁은 침략쪽이 가해자고 잘못하는거임 착한사람을 떠나서 정상인임 딴사람들은 미친놈들이고
이준혁배우님 연기력 진짜 ㄷㄷㄷ
동방쌍룡의 창시자이기도 하죠
웅치.이치전투 황진장군도 잊지말아야할 영웅이십니다.
저 항왜는 김남길과 김아중이 살렸다.
그냥 그렇다.
무율이 스승님이 여기서 전쟁을하시는군요..그때모습과 다르네요.왠지 겹쳐지는것도같고..
인적으로 이치. 웅치 전쟁을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 특히 의병들과 황진장군 활약을...
이 전쟁에서 우리가 졌지만 왜군 장군이 의병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모두 묻어주었단다 얼마나 치열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ㅊ의병들 존경합니다
나라를지키기위해 목숨을바쳤건만 지금은?
진짜 역시에 큰 족적을 남긴 항왜는 무다구치 렌야 ㅎ
임진왜란때 죽어라 일본 막아서 나라지켰으면 정신차리고 나라를 더 보강시켜야지.. 결국은 뺏기고...
이괄의 난이 성공한 세계관의 조선은 더 나았을까?
웅치 전투의 영웅 황진 장군덕에 좌수영이 보호됨~~!!!! 안탑깝게도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하자마지 성이 함락됨...!!!
일본 식민지때 실제론 조선이 근대화되고 기근으로 굶어죽던 백성 없어지고 노비들도 모두 해방돼 교육까지 받게되었단게 아이러니
개소리는 니 일기장에... 그 일기장은 꼭 후손에게 남기고.
저런 일본인은 우리가 보살펴야 한다.
그니까 옷 줄때 입으랬지! ^^
저분이 우리 시조가 돼는 뷴이십니다 의룡하씨
홍대홍 스승님
여기가 어디오?
아 병원이오 안심하세요...
히데요시때문에 몰락당한 가문들이 항왜가 됐다고 들었는데 대충
황진 장군님 이십니다
오늘의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는 저 분들을 뵐 면목이 없을 겁니다. 아 대한민국 영원하라~
사야가^^
영화제목이 머다요?
이순신장군 나오는 (한산)입니다
@@Questions-e9h 답변감사드려유~~
동방쌍룡 쓸줄아는데도 죽다니ㅠ
이준혁 배우 좋아하는데 뭔가 이준혁 배우나오면 흥행 대박난 영화를 거의 못 본거 같음
항왜 일본 본영에서 부터
쇼군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적이었던 자들이 전쟁에서 지고 강제로 흡수당하고
조선에서도 1진에 세워버림
그래서 적이였던 히데요시 보다는
조선군에 투항하여 함깨싸움
나중에는 관직도 하사받고
출세까지 함!
와..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웅치 전적지가 여기서 나오는구나..ㅋㅋㅋㅋㅋ
황진 장군을 잊지 말아야한다
이 영화를 보러 극장을 갔는데..글쎄..
너무 한산 했어..
항왜가 1만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
웅치를 통과하면 바로 전주성인디...
먼가 이상해...
지금의 발칸포에 해당하는 조총보다 멀리 나가는 불화살포가 있었는데 이를 대규모 제작하여 사용했으면 왜군 꼼짝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