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바꾸기 위해서, 바라는 마음을 내고 이 공부를 임하게 되면 계속 그 생각에 머물게 되요. 인연따라 허용되어 지고 있는 삶을 그냥 마음으로 허용하고 살아가면 됩니다. 내가 할게 없구나. 내가 하는것이 아니구나. 나라고 할만한것이 없구나 라는 그 아상을 내려놓고 살아가야죠. 깨달음? 이미 내 마음이 곧 부처인데 그것을 못보고 확인도 안한체 살아가는것이니 괴로움이 찾아오지요. 전부다 실체화 해서 진짜구나 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니 괴로운거에요. 현실이 진짜같으니 현실은 꿈입니다. 이 꿈과 같은 현실이 곧 나에게 진실인것은 내 삶이 곧 인연이고 인연따라 온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야 법계의 뜻대로 사는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소서. 이와 같습니다. 내 뜻대로가 아닌 법계의 뜻대로 인연대로 인연따라 현실을 살아가야지요. 아무문제가 없어요. 문제 있는바 문제가 없어요.. 지금 이대로 완전합니다. 진짜 완전합니다. 우주, 지구, 하늘 이 모든것이 허공안에 다들어 있자나요. 허공안에 다 들어 있자나요. 끝이 있나요?? 끝이 있는지 없는지 알수없어요. 이 알수없는 마하반야바라밀을 의지해야죠. 마하반야바라밀 비교할수없는 없는 최상의 깨달음. 이것이 진정한 나에요... 내 작은 몸둥이가 내가 아니에요.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자나요. 여기서 딱 깨어나야지요. 자유롭게 놓여나세요.❤
몇년째 법문을 들었지만 통 하는건 한마디~^^ 그것도 늘 듣던 말인데 어느날 그 한마디가 확 통하는게 그게 시절인연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법문에 질문이 왜 많은지 ~^^ 시험치는것도 아닌데... 스님께 죄송 하지만 제가 불면증이 심한데 스님 법문 때문에 다 나은건 같은데요~😅😅😅 그래도 계속 듣다보면 또 새롭게 귀가 열리니 참 좋습니다 물론 숙면에도 좋고요 ~^^ 늘 아미타불🙏🙏🙏
"자신의 본성을 보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묻습니다. "그것은 오직 때가 되지 않아서입니다". 답 합니다. "본성은 무엇입니까?" 죽음을 맛 보아야 하는 현재의 모습 그 내가 아닌, 창조 이전부터 영원한 진리로 존재하는 나의 본 모습. 자신의 생명 근간. 창조주입니다. 창조는 모두 말씀에서 탄생되나, 창조시 유일하게 인간의 탄생은 창조주께서 직접 숨을 쉬는 코를 통하여 몸에 들어 오셔서, 비로서 인간인 "나" 생명이 됐습니다. 이것은 홀로 존재하시는 창조주께서 직접 인간의 근간이 되시니, 인간은 창조 이전부터의 존재이며, 더불어 말로 생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거룩한 "나" 입니다. 그러나 최초에 생명과 함께 자율성을 부여 받은 인간은 탐욕과 자만으로 창조주께서 금기하는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을 행하는 원죄를 저질러, 새로운 탐욕의 작은 나를 겉 모습으로 형성합니다. 우리는 거룩하고 영원한 [본연의 나]와 탐욕으로 거역의 죄악을 저지른 [작은 나]를 동시에 갖추게 됩니다. [선한 나. 탐욕의 나] 이 둘은 함께 존재하며, 언제나 작은 나는 나. 전체를 대표하여 사고하고 행동하며 양심과 거룩함을 덮어버리고, 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일생을 다 합니다. 우리는 거역 탐욕이 아닌, 본연의 모습으로 양심. 밝게. 경건히 거룩히 살아가야 겠습니다. 그렇기 위해서 거역의 산물인 [작은 나]. 욕망의 나를 중심한 삶에서 깨달음으로 벗어나 본연으로 "나"로 돌아가야합니다. "깨달음" "'큰 나" "참된 나"는. 지금 현실에서 자명한 진리로서 존재합니다. 오직 "참된 나"만이 영원 진리이며, 탐욕의 작은 나와 모든 존재는 무상하며 고통이며 허상일 뿐입니다. 부처께서는 무상고무아을 설 합니다. 깨달음은 법.불성.성령.진리.다르마.양심.궁극의평화 등으로서, 본질은 하나이지만, 시간. 역사 종교 지역 인종 등 다양함에 의해서 여러 형태로 불려집니다. 참된 깨달음. 본성을 찾다. 확철대오. 빛과 하나 되다. 등 우리 모두는 깨달음으로 본성을 찾아, 모두가 태초의 진리가 되어야, 이 고통의 세상은 끝을 봅니다. 빛과 어둠은 하나로 합치지 못합니다. 끝없는 참된 선행으로 모든 과업을 벗고 정화 되어 태초에 창조된 본연으로 돌아가야만, 동시에 자신의 본 모습 "큰 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본 모습이 당연히 들어난것입니다. 들어나지 않음은 무엇도 없슴이 진리입니다. 본성. 그 구체적인 본 모습은 무한히 텅 비어있습니다. 그러니 모든것. 일체. 영원조차 "본성" "나"를 공격할 수 없으며, 무료함도 없으며, 오직 지금에만 존재하는 궁극의 평화입니다. 만일 본성에 행복. 아름다움. 화려함. 감동. 기쁨.그 무엇이라도 존재 한다면, 또는 언급 된다면, 또는 인간의 상상이 존재한다면.. 그 상태는 수 조 억년만 지나도 그 본성은 스스로 무료하거나 싫증이 날 것입니다. 부작용이 생깁니다. 그러니 "텅" 비어있음은 완벽입니다. 진리는 진리합니다. 세상은 자신의 욕심으로 스스로 빛. 깨달음을 성취하려 하나. 그것은 논리에도 어긋나 이룰 수 없습니다. 실제 현실에서 빛과 어둠을 섞어 합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참된 선행으로 수 없이 지나온 시간에서 자신이 쌓아 놓은 죄업을 모두 씻어야합니다. 그래야 밝은 빛, 진리가 발현 되어 들어납니다. 깨달음을 얻는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든 예외 없으며 누구도 제외 없습니다. 빛이 발현되는 깨달음을.깊은 방에 들어 앉아서 오직 스스로 이루려 함은 끝없는 고통과 괴로움의 연속뿐입니다. 부처께서도 자신의 수 만 생을 말씀하십니다. 그 수 만 생에서 [악]을 버리고 [선]으로 살아오고, 또 살아와서, 결국 마지막에는 때가 되어 광명을 이루신 것입니다. 아주 오랜시간 인류는 잘못된 편견과 깨닫지 못한 이들에 의한 잘못된 가르침이 만연합니다. 그것이 현 시대에 깨달음이 거의 실종된 이유입니다. 심지어 깨달음의 지도자라는 이들이, 참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정 합니다. 예수께서 부처께서 지금도 성경과 불경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이해가 어려우니 부정하고 또는 참뜻을 알지 못하니 궤변을 설하고, 자신도 이해 못하는 모순된 어려운 강론을 마구 펼칩니다. 길잡이 소경은 모두에게 비극입니다. 깨달음은 "참된 선" 실행이 관건입니다. 이에 병행하여 "바른 수행"으로 자연적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저 앉아서 기다림으로는 무엇도 이룸이 없음이 진리입니다. 어느날 방송에서 폐지를 주어 모아 생활하고, 매달 일정분의 금액을 이웃에 돕는 지체장애인을 봅니다. 그 주변분은 인터뷰에서 말합니다. "어렵고 딱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먼저 돌보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젊은분의 삶은 이미 세상의 스승입니다. 그는 깨달음을 얻은 분이니 이미 무엇도 부족합이 없습니다. 깨달은이는 당연히 서로 알아봅니다. 깨달은이는 끝 없이 지혜가 생겨나 어지럽지 않게 세상을 살아갑니다. 깨달음은 권위. 감동. 거룩함. 고고함. 그 무엇도 아닙니다. 나의 것을 아무 인연 없는 저 사람을 위해 모두 내어 놓고, 모두 하나 되는 것입니다. 빛이 되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하면, 일단 그 몸과. 마음부터 참된 사랑과 희생과 노력으로 완전히 갖추어져야합니다. 페지젊은이처럼. 예수처럼. 고타마싯다르타 처럼.... 우리 주위엔 스스로 인지하든 못하든 깨달은이 상당수 존재합니다. 그러니 이 세상이 악으로 멸되지 않고, 심판으로 멸되지 않고, 아직도 약한 불빛으로 지속합니다. 아직도 "멸"되지 않고 존속함은 참으로 깊게 새겨야합니다. 깨달은 이를 거부하는것은 용서 되나, 모독하는 것은 용서 받지 못합니다. 깨달음은 거룩한 영 입니다. 깨달음. 다시 설명하자면. 죽음으로 사라지는 작은 나를 넘어. 우리 근간의 본성. 큰'나"로 돌아가서, 고통. 괴로움. 시간. 모두 사라진 완전한 본연의 상태입니다. 깨달음은 오직 내 안으로 "나"에 몰입합니다. 오직 "나" 만 잡고 모두 버립니다. 재화.명에.목적.가치.성취. 등 세상 것. 자신의 것은 모두 버립니다. 그렇치 않으면 사흘후 오직 죽음만 남습니다. 참된 선으로 존재하고, 생활하고, 경건히 침묵으로 수행하십시요. 허망한 자신은 모두 버리고 선행으로 가득한 이는 참된 수행을 병행하여 "본연의 나" 드러나고 "궁극의 평화"로 영원히 오직 지금만 존재합니다. 고통 괴로움 죽음이 "나"에게 침입 발생할 시간이 없고. 영원히 라는 단어도 소용되지 않고. 오직. 지금에만 존재합니다. 인간은 세상의 끝이 오기전에, 사흘내에 모두 다 깨달아야합니다. 아무것도 믿지 말고, 아무것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자신에 몰입합니다. 자신에게만 있습니다. [어미가 새끼에게 댓가를 바라지 않고 젖을 주듯이, 주위에 베픈 작은 선행 하나가, 삼년 용맹정진 일곱배 보다 큰 효과로 깨달음의 시간이 단축돼 다가옵니다.] 프란치스코---
깔끔명쾌 😊
너무넘넘 ❤
재미있게 😊
잘들었습니다
법상쉼 귀한 법문 감사합니다 나마스테
법상스님 항상 감사합니다
언제나 감사히 소중히 시청합니다!!!
스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스님의 법문이 조금식
귀로 들어와서
너무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덕분입니다🙏🙏🙏
법상스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스님의 법문이 너무 와 닿네요. 감사, 감사 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법상스님 💙
항상 고맙고 감사합니다 🙏
매~순간이 편안함
아직은 약간에
흔들림이 있는
늘상 편안함의 모든것이
법상스님
법문 덕분입니다 ㅎㅎ
법상스님 감사합니다 😜
늘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법문 경청하고
있습니다 자타일시성불도합시다🙏🤗🌻
스님
감사합니다🙏🙏🙏
법상스님
귀하신 법문 👍 👍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
건강하세요 스님 ❤❤
이젠 가끔 직접 뵈러 갈것입니다. 스님곁에서 법문 들으면 와 닿는것이 확실히 좋기 때문에 기회를 잘 만들게요
방편들이 화려해진 불교 😅 에고는 항상 잔머리, 지름길, 이기고 싶어해 그렇게 된건가 싶기도...오히려 멀리 돌아서 저처럼 도착하면 다행인데 더 멀리가기도 하고
스님 귀하신 법문 감사드립니다.🙏🙏🙏
0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 🙏🙏
큰힘이 되어주신 부처님 법문
말씀 감사드립니다 😊
스님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찬탄합니다 ()
법상스님 깨어남의 법문 감사합니다.🙏🙏🙏3
🌈上求菩提下化衆生
🈳일체만법이 한마음바탕에서 인연따라 일어났다 사라졌다 할 뿐! 스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스님 감사드립니다 ()()()
하루라도 법문을 안 들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것 같습니다. ^^
감사합니다.
법상스님귀한법문에빠저살아감니다.스님 감사드림니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무엇을 바꾸기 위해서, 바라는 마음을 내고 이 공부를 임하게 되면 계속 그 생각에 머물게 되요. 인연따라 허용되어 지고 있는 삶을 그냥 마음으로 허용하고 살아가면 됩니다. 내가 할게 없구나. 내가 하는것이 아니구나. 나라고 할만한것이 없구나 라는 그 아상을 내려놓고 살아가야죠. 깨달음? 이미 내 마음이 곧 부처인데 그것을 못보고 확인도 안한체 살아가는것이니
괴로움이 찾아오지요. 전부다 실체화 해서 진짜구나 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니 괴로운거에요. 현실이 진짜같으니 현실은 꿈입니다.
이 꿈과 같은 현실이 곧 나에게 진실인것은 내 삶이 곧 인연이고 인연따라 온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야 법계의 뜻대로 사는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소서. 이와 같습니다.
내 뜻대로가 아닌 법계의 뜻대로 인연대로 인연따라 현실을 살아가야지요. 아무문제가 없어요. 문제 있는바 문제가 없어요.. 지금 이대로 완전합니다. 진짜 완전합니다.
우주, 지구, 하늘 이 모든것이 허공안에 다들어 있자나요.
허공안에 다 들어 있자나요.
끝이 있나요?? 끝이 있는지 없는지 알수없어요. 이 알수없는 마하반야바라밀을 의지해야죠.
마하반야바라밀 비교할수없는 없는 최상의 깨달음. 이것이 진정한 나에요...
내 작은 몸둥이가 내가 아니에요.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자나요. 여기서 딱 깨어나야지요. 자유롭게 놓여나세요.❤
스님의 법문
3년째입니다.
수준있는
법문덕택으로
많이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졌답니다.
전라도 끝자락
시골땅에서지만
많은 힘을
얻고 있어요.
확연한 깨달음은
아직 없지만
스님말씀은 헤아집니다.
법상스님!
항상 건강하십시요!
오늘 또 감사합니다__((()))__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법상스님
일본에서
스님법문잘듣고있읍니다
항상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귀한법문!감사합니다ㆍ스님건강하세요ㆍ
오늘도 감사합니다 ❤❤❤
오늘오 감사합니다^^ 매일 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고 아바타로서 이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분별하는 내가 아닌 본래면목, 허공법신이 부처이고 일심이다. 스님, 지혜로운 법문 알 수 있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귀한법문 들어도 들어도 늘 새롭고 그냥 신 나고요
고요히 마음이 꽁짝못하며
샤르르 이 마음이 뭔지?
조용히 감사함이 올라오며
매일매일 감사하며
조심조심 살살 살아갑니다
법상스님 감사합니다
합장배례
스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불법 만나 급한 마음에 스님 말씀대로 살았네요ㅠ
정신이 번쩍...되돌아 봅니다
유머까지 겸비하신 좋은 말씀! 깨달음과 즐거움이 함께네요
스님~감사합니다~^^💖
1:30
눈앞이라는 것은 우주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이 허공법신이라는 바다위에서 생기고
사라진다 파도처럼..
여기서 삶의 모든 것들이 왔다간다..
삼라만상 이 우주전체가 눈앞에서 왔다간다..🙏🙏
스님🙏항상 감사드립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
비내리는 목욕일 법문듣기 딱~! 좋은날~
눈 또롱또롱 뜨고, 집중, 몰입~
언제나 새로운 설법
스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법상스님 용기를 주셔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스님 귀하신 법문 감사합니다
법상스님 귀한법문 감사합니다...
스님 소중한 법문 감사합니다
🙏 🙏🙏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법상이 묻고 법륜이 설하다 꼭 진행부탁드립니다. 스님❤
귀한 법문 감사히 잘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인연따라 왔다가 그냥갑니다.
♥♥♥♥♥24.7.15
오직 모를뿐.btn 육조단경과 붓다 보고올께요 스님(얼음)감사합니다 스님(얼음땡)ㅋㅋ
42:10집착과 욕심은 인생의 어느순간 내가 만든거다
❤🧡💛💚💙💜
법상스님 부처님 법문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
귀한법문ㅡ넘ㅡ고맙습니다.
법상스님ㅡ계셔서ㅡ참ㅡ
다행입니다.건강하세요.❤
스님 법문 언제나 잘 듣고 있는 애청자로서 오랜만에 감사인사 드리려~최근 영상 댓글창을 찾았는데 닫겨 있어서 여기로 와서 인사드립니다^^스님의 깊은뜻임을 헤아립니다~팔풍에 흔들리지 않을 인격~언제나 힘이 나게 하는 진정한 법문 깊이 깊이 감사드리며~정진하겠습니다~
문자너신후 도반님들. 좋아요. 도눌러주시면고맙겠읍니다❤스님건강하십십시요😂
스님~ 안심 법문 감사드립니다🙏🙏🙏
스님()
항상 감사합니다()()
스님
귀하신 법문 감사드립니다 🙏👍
1:01:14 오늘도 새롭게 배우고 깨우칩니다.
있는이대로 이미 허용된대로 받아들입니다.
오늘도 귀한 법문을 설해주셔서 깊이깊이 감사드립니다! 법상스님🌸🌼🌸
몇년째 법문을 들었지만 통 하는건 한마디~^^ 그것도 늘 듣던 말인데 어느날 그 한마디가 확 통하는게 그게 시절인연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법문에 질문이 왜 많은지 ~^^ 시험치는것도 아닌데... 스님께 죄송 하지만 제가 불면증이 심한데 스님 법문 때문에 다 나은건 같은데요~😅😅😅 그래도 계속 듣다보면 또 새롭게 귀가 열리니 참 좋습니다 물론 숙면에도 좋고요 ~^^ 늘 아미타불🙏🙏🙏
마음공부의 부작용이 많이 있나봐요.
스승님때문에 법에 눈이 밝은 분들도 많다는거요^^
각자 시절인연이 되야만 되는 공부이기에.
안타까운 마음은 시절인연에 맡겨야겠죠...ㅎ
오늘도 귀한 법문 감사랑합니다🩷
법상스님~좋은 법문 너무 감사합니다😊😊
스님 늘 건강하셔요. 🙏🙏🙏
1 20:15 요즘 저의 맘을 정확히 파악해서 말씀에 주셨네요
볼게 많으니 급히 봐야 한다는 조급증이 좀 있었어요
최소 6개월까진 한개의법문이 모든 법문을 대표하니😅
2 한가지든 제맘에 와닿는 법문은 반복해서라도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불법승 삼보에 귀의합니다(-💞-)
소중하고 삶의 길잡이가 되는 존귀한 법문 감사드립니다(-💞-)
귀한 법문 참으로 감사합니다 🙏
견성.무분별지.참나자리가 동정간에.몽중간에.숙면간에도 항상 뚜렷한 즉 잠재의식.무의식간에도 뚜렷한 마음자리 챙기기위해 노력 하고 있습니다
스님 감사히 듣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인로왕보살 임종영가영접
옴제세제야 도미니 도제삿다야 훔바탁~항마 감사합니다
네 스님 이제 마지막 스승 이십니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긴 시간의법운 감사감사합니다 너무힘드실것같아요 항상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1:23:55
본성을 짚어 말씀하실 때
공적영지의 에너지가 그대로 실려 있네요
함께 공명합니다
감사합니다💕
🙏🙏🙏법상스님 법문에 올인합니다🥰🥰
🙏🙏🙏법상스님 법문,시절인연으로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게 됨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깊이 새겨듣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_()()()_
정말 감사합니다 🙏 소중한 법문 잘 듣고 갑니다 😊😊😊
너무나 와닿는 법문입니다! 견성과 보임의 끝이없는데…
🤍🤍🤍
소리가 작아요
예전처럼 볼륨 높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이크가 문제인듯 합니다
"자신의 본성을 보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묻습니다. "그것은 오직 때가 되지 않아서입니다". 답 합니다.
"본성은 무엇입니까?" 죽음을 맛 보아야 하는 현재의 모습 그 내가 아닌, 창조 이전부터 영원한 진리로 존재하는 나의 본 모습. 자신의 생명 근간. 창조주입니다.
창조는 모두 말씀에서 탄생되나, 창조시 유일하게 인간의 탄생은 창조주께서 직접 숨을 쉬는 코를 통하여 몸에 들어 오셔서, 비로서 인간인 "나" 생명이 됐습니다.
이것은 홀로 존재하시는 창조주께서 직접 인간의 근간이 되시니, 인간은 창조 이전부터의 존재이며, 더불어 말로 생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거룩한 "나" 입니다.
그러나 최초에 생명과 함께 자율성을 부여 받은 인간은 탐욕과 자만으로 창조주께서 금기하는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을 행하는 원죄를 저질러, 새로운 탐욕의
작은 나를 겉 모습으로 형성합니다.
우리는 거룩하고 영원한 [본연의 나]와 탐욕으로 거역의 죄악을 저지른 [작은 나]를 동시에 갖추게 됩니다. [선한 나. 탐욕의 나] 이 둘은 함께 존재하며,
언제나 작은 나는 나. 전체를 대표하여 사고하고 행동하며 양심과 거룩함을 덮어버리고, 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일생을 다 합니다.
우리는 거역 탐욕이 아닌, 본연의 모습으로 양심. 밝게. 경건히 거룩히 살아가야 겠습니다. 그렇기 위해서 거역의 산물인 [작은 나]. 욕망의 나를 중심한 삶에서
깨달음으로 벗어나 본연으로 "나"로 돌아가야합니다. "깨달음" "'큰 나" "참된 나"는. 지금 현실에서 자명한 진리로서 존재합니다.
오직 "참된 나"만이 영원 진리이며, 탐욕의 작은 나와 모든 존재는 무상하며 고통이며 허상일 뿐입니다. 부처께서는 무상고무아을 설 합니다.
깨달음은 법.불성.성령.진리.다르마.양심.궁극의평화 등으로서, 본질은 하나이지만, 시간. 역사 종교 지역 인종 등 다양함에 의해서 여러 형태로 불려집니다.
참된 깨달음. 본성을 찾다. 확철대오. 빛과 하나 되다. 등 우리 모두는 깨달음으로 본성을 찾아, 모두가 태초의 진리가 되어야, 이 고통의 세상은 끝을 봅니다.
빛과 어둠은 하나로 합치지 못합니다. 끝없는 참된 선행으로 모든 과업을 벗고 정화 되어 태초에 창조된 본연으로 돌아가야만, 동시에 자신의 본 모습 "큰 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본 모습이 당연히 들어난것입니다. 들어나지 않음은 무엇도 없슴이 진리입니다.
본성. 그 구체적인 본 모습은 무한히 텅 비어있습니다. 그러니 모든것. 일체. 영원조차 "본성" "나"를 공격할 수 없으며, 무료함도 없으며, 오직 지금에만 존재하는
궁극의 평화입니다. 만일 본성에 행복. 아름다움. 화려함. 감동. 기쁨.그 무엇이라도 존재 한다면, 또는 언급 된다면, 또는 인간의 상상이 존재한다면..
그 상태는 수 조 억년만 지나도 그 본성은 스스로 무료하거나 싫증이 날 것입니다. 부작용이 생깁니다. 그러니 "텅" 비어있음은 완벽입니다. 진리는 진리합니다.
세상은 자신의 욕심으로 스스로 빛. 깨달음을 성취하려 하나. 그것은 논리에도 어긋나 이룰 수 없습니다. 실제 현실에서 빛과 어둠을 섞어 합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참된 선행으로 수 없이 지나온 시간에서 자신이 쌓아 놓은 죄업을 모두 씻어야합니다. 그래야 밝은 빛, 진리가 발현 되어 들어납니다. 깨달음을 얻는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든 예외 없으며 누구도 제외 없습니다. 빛이 발현되는 깨달음을.깊은 방에 들어 앉아서 오직 스스로 이루려 함은 끝없는 고통과 괴로움의 연속뿐입니다.
부처께서도 자신의 수 만 생을 말씀하십니다. 그 수 만 생에서 [악]을 버리고 [선]으로 살아오고, 또 살아와서, 결국 마지막에는 때가 되어 광명을 이루신 것입니다.
아주 오랜시간 인류는 잘못된 편견과 깨닫지 못한 이들에 의한 잘못된 가르침이 만연합니다. 그것이 현 시대에 깨달음이 거의 실종된 이유입니다.
심지어 깨달음의 지도자라는 이들이, 참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정 합니다. 예수께서 부처께서 지금도 성경과 불경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이해가 어려우니
부정하고 또는 참뜻을 알지 못하니 궤변을 설하고, 자신도 이해 못하는 모순된 어려운 강론을 마구 펼칩니다. 길잡이 소경은 모두에게 비극입니다.
깨달음은 "참된 선" 실행이 관건입니다. 이에 병행하여 "바른 수행"으로 자연적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저 앉아서 기다림으로는 무엇도 이룸이 없음이 진리입니다.
어느날 방송에서 폐지를 주어 모아 생활하고, 매달 일정분의 금액을 이웃에 돕는 지체장애인을 봅니다. 그 주변분은 인터뷰에서 말합니다. "어렵고 딱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먼저 돌보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젊은분의 삶은 이미 세상의 스승입니다. 그는 깨달음을 얻은 분이니 이미 무엇도 부족합이 없습니다.
깨달은이는 당연히 서로 알아봅니다. 깨달은이는 끝 없이 지혜가 생겨나 어지럽지 않게 세상을 살아갑니다.
깨달음은 권위. 감동. 거룩함. 고고함. 그 무엇도 아닙니다. 나의 것을 아무 인연 없는 저 사람을 위해 모두 내어 놓고, 모두 하나 되는 것입니다. 빛이 되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하면, 일단 그 몸과. 마음부터 참된 사랑과 희생과 노력으로 완전히 갖추어져야합니다. 페지젊은이처럼. 예수처럼. 고타마싯다르타 처럼....
우리 주위엔 스스로 인지하든 못하든 깨달은이 상당수 존재합니다. 그러니 이 세상이 악으로 멸되지 않고, 심판으로 멸되지 않고, 아직도 약한 불빛으로 지속합니다.
아직도 "멸"되지 않고 존속함은 참으로 깊게 새겨야합니다. 깨달은 이를 거부하는것은 용서 되나, 모독하는 것은 용서 받지 못합니다. 깨달음은 거룩한 영 입니다.
깨달음. 다시 설명하자면. 죽음으로 사라지는 작은 나를 넘어. 우리 근간의 본성. 큰'나"로 돌아가서, 고통. 괴로움. 시간. 모두 사라진 완전한 본연의 상태입니다.
깨달음은 오직 내 안으로 "나"에 몰입합니다. 오직 "나" 만 잡고 모두 버립니다. 재화.명에.목적.가치.성취. 등 세상 것. 자신의 것은 모두 버립니다.
그렇치 않으면 사흘후 오직 죽음만 남습니다. 참된 선으로 존재하고, 생활하고, 경건히 침묵으로 수행하십시요.
허망한 자신은 모두 버리고 선행으로 가득한 이는 참된 수행을 병행하여 "본연의 나" 드러나고 "궁극의 평화"로 영원히 오직 지금만 존재합니다.
고통 괴로움 죽음이 "나"에게 침입 발생할 시간이 없고. 영원히 라는 단어도 소용되지 않고. 오직. 지금에만 존재합니다.
인간은 세상의 끝이 오기전에, 사흘내에 모두 다 깨달아야합니다. 아무것도 믿지 말고, 아무것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자신에 몰입합니다. 자신에게만 있습니다.
[어미가 새끼에게 댓가를 바라지 않고 젖을 주듯이, 주위에 베픈 작은 선행 하나가, 삼년 용맹정진 일곱배 보다 큰 효과로 깨달음의 시간이 단축돼 다가옵니다.]
프란치스코---
허공법신비로자나불,
마하반야바라밀.
정진바라밀하겠.습니다.
감사감사합니다.
종좀 안치면 안되시나
스님!감사합니다 ㆍ
스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스님
감사합니다 💚
❤스님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