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시대의 동이가 고대의 동이와 다르다고 선을 긋는 풍토가 언젠가부터 한국역사학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닐가능성이 크죠. 동이족역사를 서서히 포기하는 한국 동이족역사를 야금야금 먹어가는 중국 일반시민들이 정신 차리고 감시해야 합니다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PrettyT-rex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그렇게 안 배웠습니다. 역사학이라는게 그렇게 완벽하게 단절적으로 단정 짓는게 더 이상한거 같습니다. 흔히 선진시대 동이지역이라는 산동반동지역에서도 고인돌,비파형동검 다 나오고 백제는 래이에서 왔다고 양직공도에도 써져 있는데 우리하고 연관성을 끊을만한 단서를 부탁드려봅니다
@@bgkhan4475 산동에서 고인돌, 비파형 동검이 나왔다고 산동지역의 주민과 한반도인이 같은 계통인 것은 아님. 그렇다면 산동에서 출토되는 중국계 고분은 어떻게 설명할거??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식 무덤이 나오는 것처럼 한반도인 일부가 산동지역에 정착해서 고인돌을 만들었을 수 있기 때문임. 즉 교류와 단발적 이주의 흔적일 수 있다 이것임. 양직공도의 내용이 절대적 진리임? 고대 중국인은 자기 중심적으로 이민족을 해석하곤 했음. 그래서 주변의 이민족들이 자신들의 분파이자 떨어져 나간 무리들이라고 기록한 것임. 백제가 산동의 래이라는 표현 또한 그런 것들 중 하나임. 고구려도 고신씨의 후예, 신라도 진나라 사람들의 후예라고도 기록했지. 근데 고고학적으로 틀렸잖아?? 이 말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중국인이 세운 왕조가 될 뿐임. 산동의 동이가 한반도인과 같은 계통이라고 말하려면, 산동과 한반도의 종족들이 서로 동질적이었음을 나타내는 지표가 있어야함. (고구려와 백제 관계처럼.)
좋은 자료이네요.... 문사님 감사합니다. 화이팅입니다. 그리고 고대에 여러 기록 중에서 현재 우리 영토를 무엇으로 불었는지 찾아주세요... 한은 우리것으로 봐야 하지만 반도라는 용어는 일제가 조선사편수회 조직전에 명칭이 반도라는 명칭을 붙여서 우리 한국사를 대륙역사를 반도사로 바꾼것이니 바로 고쳐서 불러야 합니다.
저 곳은.... 황하 지류가 바뀌기전, 이전 황하가 흐르던 곳 같은데... 천문관측지가 발해만인 백제와 상대 관측지가 양자강 하류인 신라의 중간쯤 지점 같군요,...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문구 용산문화등... 중국이 그토록 지우려한 동이의 흔적이 이렇게 공통연구로 나오니 의외이면서 고무적이네요
@@유유자적-h7o백제가 서에서 동으로 확장했다면 일본은 동에서 서로 확장했지요. 백제와 일본이 민족적으로 완전한 계승 관계라고 하기엔 어렵겠지만, 그 속성은 서로 통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왕족도 백제 왕족의 일파고, 국명도 백제에서 온 것이기에. 중원 내륙세력과 반도 내륙세력에 밀려 자취를 감춘 해양세력이 부흥했다고 보는 것이 역사의 큰 흐름을 볼 때 부합합니다.
산둥반도가 백제의 본토입니다. 대륙백제설이 아닌...본이 중국대륙입니다. 그럼 고구려백제신라가 중국의 역사입니까?라고 물어 보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정답은 대륙의 주인이 본래 우리 조상이었다 입니다.... 이제 이씨조선과 일본총독부가 만든 반도사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막국수-i9w 득구야.. 왜 환빠라고 욕하고 싶은 모양인데?? 환단고기를 읽어는 봤냐?? ㅋㅋㅋㅋ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 40대 이상이나 지금 젋은 세대들이 배운 역사는 일제 조선 총독부 산하 조선사 편수회 소속 일본인 학자 쓰다 쇼우키치, 이마니시 류, 시라토리 구라키치, 쓰에마스 야스카즈 등이 만든 식민 사관론을 친일파 매국노 이병도, 신석호가 일본인 사학자들에게 배우고 그들이 해방 후 퇴출되지 못하고 국사학계 태두로 불리우고 그들의 논조를 지금껏 역사 책과 국사 교과서로 배워 온 거야.... 독립운동가 홍범도 오동진 장군이 왜 환단고기를 편찬하는데 지원을 했겠냐??
헛소리 자꾸 하지 마세요 그런 논리로 가면 우리 역사 전체가 중국 사에 편입 됩니다,,예전 강성 했던 만주 지역 이민족 이 세운 수 많은 국가들의 역사가 지금 전부 중국 역사로 통일 된 거 모르세요, 딱 하나 첨언 하면 북경이 백제 본진이면 거기서 하다 못해 환두 대도 한 자루라도 나와야 하지 않나요,, 중국 애들 지금 자기네 유물 유적도 하도 많아 창고에서 보관 대기 중인데 우리 유물 유적 발굴 하여 파괴 할 여유가 있을 까요,, 정신 좀 차립시다 엉터리 유튜버들 마이크에 놀아 나지 말고,,시간 있음 중국이나 대만 국립 박물관에 가서 보고 오세요 우리 유물 하고 얼마나 비교 되는지,,
중국의 역사학자 허광웨의 저서에 중에 주장한 부여가 산둥반도에서 시작했다는 잘못된 정보가 있네요. 우리가 주장해야할 부분이 백제역사이기에 그냥 넘어 갑니다. 하지만 중국사학자들은 일정부분 역사적 사실를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 슬적 역사를 왜곡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중국의 진짜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면서, 사실만은 인용을 하되, 잘못된 부분은 지적하고, 우리의 역사를 올렸으면 합니다. 수고하십시요^^
신당서 구당서에 백제 서쪽 경계를 월주라고 나와요 백제의 담로 중 하나에요 백제가 망하기전까지 일본도 백제 지방정권으로 보면 돼요 백제출신 흑치상지 장군 묘지명에도 본래 부여씨인데 흑치국에 봉해져서 흑치씨로 삼았다라고 나와요 여러 사료를 대충 훑어 보면 담로제를 어떻게 운영했는지도 짐작이 가요 백제 왕족들 직계 방계왕족들이 어떤 지역에 봉해지면 그 지역명을 성씨로 삼는 걸 알 수 있어요 백제 대성팔족 이 귀족들도 세력이 막강해서 상당한 세력을 가진 걸로 보여져요 부여족들은 정말 뛰어난 거 같아요
사서의 기록지명의 문자는 뜻글자가 아니라 소리문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해(海)의 고대음은 ᄀᆞᄅᆞ-->가라 입니다. 즉 바다가 아닙니다. 가라의 의미는 해(태양), 크다(大/高)등 입니다. 삼한의 한(韓)의 고대음도 같습니다. 즉 해(海)=한(韓,漢)이 성립합니다. 발해(勃海)의 국호도 발가라-->말가라(ㅁ/ㅂ교체)-->말갈(=마한)의 다른표기 음차 입니다. 해(海)를 건너다는, 바다를 건너는 것이 아니라 가라땅 혹은 한(韓)의 땅을 지나야 이른다는 말 일 수도 있습니다. 백제(百濟)의 국호는 맥제/막제(ㅁ/ㅂ교체)로 음으로도 부를수 있고, 맥/막의 고대음은 크다(大, 高)의 뜻이고 제(濟)의 고대음은 *ʔsliːl-->gslal-->gasala-->가살>가싀>가시의 음이 유추됩니다. 이는 예족의 예(濊), 왜(倭)와 같은 소리 입니다. 해(海)의 고대음 가라와 같은음 입니다. 즉 백제는 '마라가라, 마라가시'의 소리로 추정됩니다. 동이를 형이(荊夷), 극이(棘夷)라고도 했습니다. 가시족의 음차표기 입니다. (荊, 棘=가시) 동이의 고대음을 알면 사서의 해석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그 중국 무덤 개수가 2개인가 ? 3기 인가 됨 몇백기가 아님 그리고 그 유물 전부 일제 강점기 시절 발굴됨 또 자세히 보면 그 중국식 무덤들이 고구려식 무덤에 더 가까움 그안에서 중국 유물이 몇개 발견 된거임 그리고 그 중국 유물도 3세기 4세기 때임 먼가 이상하다고 생각 안함? 기원전 중국 무덤이 아니라 3세기 4세기 그때 까지 낙랑군이 있다고 생각 한다면 저도 더이상 할말이 없음.
여러 기록에 그 존재가 분명히 전하는 백제의 대륙영토는 아마도 고대 그리스의 소아시아 해안 식민지나 바이킹의 서유럽 정착지들과 유사한 형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페르시아 제국이 팽창하며 서진할 때, 소아시아 해안의 그리스 식민지들은 모두 몰락했습니다. 중세 후기 유럽의 세력이 재편될 때에도 바이킹의 영지들은 각지에 동화 또는 흡수되었습니다. 백제의 대륙 영역을 역사적 사실로 공인하려면,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언제부터 존재하였고 언제 사라졌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연운항에서 발견된 백제계 무덤들이 7세기로 편년된다면 그 정체를 설명하기가 더욱 곤란합니다. 중국이 분열되어 있었던 6세기까지야, 북위와의 전쟁 기록도 있으니 백제의 해안지역 지배가 납득 가능한 역사상이지만, 7세기에는 중국이 통일되었음에도, 백만 대군으로 고려를 침략할 정도였던 수당제국이 정작 고려보다 훨씬 가까운, 중국 동해안의 백제 영토는 그냥 두었다는 말인지? 봉건적 책봉 관계로서 그것을 인정했었다 해도, 결국 660년 황해를 건너 한반도의 백제 도성을 공격하던 시점에서는 어떠했었는지? 규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관련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백제인이 거주했던 땅이라는 사실과, 백제왕국이 지배하는 봉강=영토라는 사실은 다른 개념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차이나타운을 중국 영토라고 할 수는 없는 것처럼요.
고구리의 영토는 하북 즉 황하 이북에서 백제와 치열 하게 다투어 산동을 뺏고 백제는 하남 황하이남으로 밀려 천도 하게 된 걸 겁니다 당은 낙양 옹주 한중 사천일대 자리잡아 황하 주변 고구려와 백제와 세력 다툼하다 현재 남경 인근의 동신라와 손잡고 고구리와 백제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백제태자가 당과 싸우다 죽은 곳이 낙양 북쪽 북망산!!! 북경엔 동서남북에 고려영 고려촌등의 지명과 군대 주둔지(영)의 유물 유적 유적터와 고려식 성곽터가 쏟아집니다 호남 광주에는 현 중국의 호남과 광저우 지방에는 신라 김씨촌 최씨촌도 수십개가 넘게 천년이상 그터에서 살았다는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최씨는 중국의 성씨가 아니라 신라부터 시작된 성씨입니다 등등 유적 유물 유적터 사서 사서의 지명들은 문화혁명 일제의 역사말살 조선의 고려역사말살 등에도 살아남아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letitbe2125 판타지 소설을 쓰는건 자유지만, 그것을 역사와 혼동한다면 본인만 바보가 될 뿐입니다. 북망산은 백제 태자가 당과 싸운곳이 아니라, 백제가 망하고 당에 붙들려간 후 죽어서 묻힌 공동묘지입니다. 북경 일대의 고려 관련 지명은 그 정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데, 개인적으로는 태조왕대의 요서 10성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정합니다. 대체 무슨 사실을 밝히고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역사는 그렇게 띄엄띄엄 망상한다고 공인되는게 아닙니다.
@@지수신-j6l 백제영토는 신라가 가졌습니다 본방 이었던 대륙백제가 무너지자, 22담로 도 자연스레 약해졌다고 kbs다큐에 나옵니다. 일식최적관측지와 역사서,지명으로도 남아있는 단서가 많은데 아직도 대륙백제에 의문을 가지고 계시네요,, 유물을 찾는것은 모택동의 문화재파괴 사건 이후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바이킹은 이베리아 반도를돌아 지중해에서 까지 약탈했으명 동쪽으로 강을 타고 머리에 보트를 이고 흑해까지 무역과 약탈을 했으며 바이킹 중 앵글족과 색슨(작센)족은 원주민을 몰아내고 현재 잉글리쉬 유니온의 연합국가가 됐구요 10세기는 북해를 지배하는 거대국가를 건설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바이킹이 여러번 기마민족에 밀려 남하한건 아시죠 님 삼국지에 나오는 백제성(영안)은 백제성이 맞아요 소설이 늦게 쓰여졌으니 부풀리기한 위촉오 에 고대성터를 갖다가 쓰면서 스스로 오류로 인식도 못한거죠 제가 조금씩의 오류가 있을지는 몰라도 고대지명 그것도 달랑한두개 나오는게 아니라 중국 고대사서 삼국사기 삼국유사 대만박물관에 소장된 고대 지도들에 쏟아집니다 중국내륙에 집성촌 넘침니다 중국이 고구려 동북공정으로 지내 국가중 일부라 우기는게 단순히 조작하려는게 아니라 천년가까이 황하이북을 지배했기에 한족의 역사를 쓰려면 어쩔수 없는 겁니다 김치의 원형과 가까운절임 채소는 산동과 월족 묘족등 백제의 영향을 받은 살아남은 소수민족들의 음식이며 중국입장에서 고대 백제 신라 고구리의 영토의 상다수를 현재점유하고 있으니 자기네 역사라 우기기 시작하는 겁니다 하화족 한족의 역사가 너무 허섭해 동이족 대륙에 존재하던 동이족의 역사를 끌어 올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하 은 주 이후로 생각나는 대로 한 조 송 명 그외 분열 시기의 소국 몇개 말고 통일왕조는 전부 침략이민족이거나 대륙에 있던 동이족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고구려멸망후 산동에 이정기 유민들과 나라를 세운건 어떻게 설명하려구요! 그외도 대륙에서 동이족이 세운 국가는 수십개인데 한족이라 칭한국가는 손에 꼽힙니다 요 금 청 말고 대체 어디서 동이족들이 튀어 나온겁니까? 애초에 하화족 스스로 주장하는 뿌리가 섬서 황하 인근과 화산 근처에 살던 소수 부족인데...
반도사관에 입각한 모든 학문적 성과가 무너집니다.물론 그것도 일제시대에 완성한 거겠지만.....강단사학계는 유연한 집단이 아니에요. 아마 이런 주제로 논문 내놓으면 찍혀서 학부 졸업도 못할지도......카르텔이 어마어마하죠. 중고교 다닐때 역사교과서 첫장에 등장하던 동이족분포도도 요즘은 다 지웠더라고요. 관련성을 끊어 버리려는거죠. 어이가 없습니다. 학문이 아니에요
신라의 원효와 의상이 천축으로 불경을 구하고 깨달음을 얻고자 가던중 돌아왔다는 이야기나 의상이 수차례 당에 유학갔다 왔다는 것이나 고대 한반도에서 배도 안타고 육로로 개인이 갈 수 있는 길인가 의문이 든다! 주로 섬서 종남산 화엄종에서 공구했는데 장안 아래 산맥이다 남경이나 무한의 신라에서 왔다갔다 했다고 본다 원효는 중간에 돌아가 서경 경주인근에 사찰과 새로운 종파를 설립한것이다
몽골의 남하와 삼별초 항쟁시 에 북경을 나와 강화에서 항전하다 왕이 항복하며 개경으로 옮겨 지내으며 만주대평지와 산간의 경계가 되는 간도 지방으로 경계가 그어지고 대륙에서 영향을 잃어가다 고리말 북경수복을 위해 군을 파병했으나 이성계의 배신으로 몽고의 원이 완전 점유 이후 명이 그대로 가져간 거라 보입니다 마치 청이 망하며 중공이 만주를 그대로 가지고 간 것처럼 말입니다
날조된 역사를 배웠으니 지금세상이 이렇게 혼잡하고 어지러은것이다.
_도대체 이 논쟁은 언제쯤 끝이 보일런지_
_대한민국 사학자들은 왜 연구하지 않는지_
_답답하다 답답해_
그들은 해방후 한국국적으로 신분세탁한 일본 세력입니다.
현재 한국의 정치,법조,언론,대학등 권력을 유지하면서 역사왜곡가 함께
재차 일본의 한국식민지화 진출을 위해 노력중입니다!!!
이들을 발본색원해서 처단해야 한국이 바른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덕일 역사 TV 추천드립니다
우리나라 강단사학계의 현실이 궁금하시면 방문해보세요
@@육뱅이 개소리라고 생각하는 그 머리는 소머리 같은데...
@@육뱅이 일반적인 개소리가 아니니까 해봐야지.
그게 학자의 자세지. 지금의 사학계는 그저 꼰대, 기득권으로 밖에 안보인다.
고맙습니다. 사람은 거짓을 말하기도 하지만, 유물은 사실을 이야기 합니다.
참고문헌을 밝혀주셔서 감사합니다 플러스코리아 쪽에 성훈칼럼니스트 글과 관련해서 여러 글을 좀 읽어보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
상고시대의 동이가 고대의 동이와 다르다고 선을 긋는 풍토가 언젠가부터 한국역사학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닐가능성이 크죠.
동이족역사를 서서히 포기하는 한국
동이족역사를 야금야금 먹어가는 중국
일반시민들이 정신 차리고 감시해야 합니다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다같은 고조선(숙신ㆍ산융)의 九黎(九夷)였는데 어찌 분리 할수 있는지 고조선의 역사를 찾는날을 고대해 보겠습니다.
은주 시대의 동이와 진한 이후의 동이는 다른게 맞음ㅇㅇ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긴 뭔ㅋㅋㅋㅋ
같다고 보는게 사실이 아니지
@@PrettyT-rex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그렇게 안 배웠습니다. 역사학이라는게 그렇게 완벽하게 단절적으로 단정 짓는게 더 이상한거 같습니다. 흔히 선진시대 동이지역이라는 산동반동지역에서도 고인돌,비파형동검 다 나오고 백제는 래이에서 왔다고 양직공도에도 써져 있는데 우리하고 연관성을 끊을만한 단서를 부탁드려봅니다
@@PrettyT-rex 이건 뭘알고 하는소리인지.
@@bgkhan4475 산동에서 고인돌, 비파형 동검이 나왔다고 산동지역의 주민과 한반도인이 같은 계통인 것은 아님. 그렇다면 산동에서 출토되는 중국계 고분은 어떻게 설명할거??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식 무덤이 나오는 것처럼 한반도인 일부가 산동지역에 정착해서 고인돌을 만들었을 수 있기 때문임. 즉 교류와 단발적 이주의 흔적일 수 있다 이것임.
양직공도의 내용이 절대적 진리임?
고대 중국인은 자기 중심적으로 이민족을 해석하곤 했음. 그래서 주변의 이민족들이 자신들의 분파이자 떨어져 나간 무리들이라고 기록한 것임. 백제가 산동의 래이라는 표현 또한 그런 것들 중 하나임. 고구려도 고신씨의 후예, 신라도 진나라 사람들의 후예라고도 기록했지. 근데 고고학적으로 틀렸잖아??
이 말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중국인이 세운 왕조가 될 뿐임.
산동의 동이가 한반도인과 같은 계통이라고 말하려면,
산동과 한반도의 종족들이 서로 동질적이었음을 나타내는 지표가 있어야함. (고구려와 백제 관계처럼.)
좋은 자료이네요.... 문사님 감사합니다. 화이팅입니다. 그리고 고대에 여러 기록 중에서
현재 우리 영토를 무엇으로 불었는지 찾아주세요... 한은 우리것으로 봐야 하지만
반도라는 용어는 일제가 조선사편수회 조직전에 명칭이 반도라는 명칭을 붙여서
우리 한국사를 대륙역사를 반도사로 바꾼것이니 바로 고쳐서 불러야 합니다.
장보고의 고향이 영파인데. 이곳이 강소성에 있는 지역입니다. 백제가 당,신라에게 망하고 백제땅은 신라가 차지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맞습니다 고구려의 강역은 후에 발해가 가져갔습니다
@@amytom9223 대진국도 거란한테 뒷통수 당함...
역사서에 산둥반도의 망한 백제의 땅을 발해와 신라가 나누어 가졌다라고 나옵니다~~^^b
@@bokbokjun9767 맞습니다
@@librastella4379베트남이 월남이니까
베트남 위쪽이 월나라죠.
월나라 옆동네가 오나라
삼국지의 오나라가
동오니까
저 곳은.... 황하 지류가 바뀌기전, 이전 황하가 흐르던 곳 같은데... 천문관측지가 발해만인 백제와 상대 관측지가 양자강 하류인 신라의 중간쯤 지점 같군요,...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문구 용산문화등... 중국이 그토록 지우려한 동이의 흔적이 이렇게 공통연구로 나오니 의외이면서 고무적이네요
용기있는 영상감사드립니다 저도 든든히 서포트 하겠습니다
요서, 산둥지역이 본래 백제 본거지고 한반도, 열도, 대만, 제주도등이 담로라고 생각하는게 맞는것같네요.
700년 역사의 백제가 한반도에서 왕궁터와 무열왕 무덤을 제외한 왕족무덤이 있는지...
그시절 대만은 "왜" 나라 일수 있습니다~
왜와 일본은 다른 나라였습니다~
일본이 중국점령했던땅과 일치하군요
우연이겠죠??
@@유유자적-h7o백제가 서에서 동으로 확장했다면 일본은 동에서 서로 확장했지요.
백제와 일본이 민족적으로 완전한 계승 관계라고 하기엔 어렵겠지만, 그 속성은 서로 통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왕족도 백제 왕족의 일파고, 국명도 백제에서 온 것이기에.
중원 내륙세력과 반도 내륙세력에 밀려 자취를 감춘 해양세력이 부흥했다고 보는 것이 역사의 큰 흐름을 볼 때 부합합니다.
산둥반도가 백제의 본토입니다. 대륙백제설이 아닌...본이 중국대륙입니다.
그럼 고구려백제신라가 중국의 역사입니까?라고 물어 보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정답은 대륙의 주인이 본래 우리 조상이었다 입니다....
이제 이씨조선과 일본총독부가 만든 반도사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또 대륙백제란 말도 마치 금나라의 중원 領土를 '중원 금나라'라고 부르지 않듯이 대륙 백제란 말을 쓰지 말고 산동과 강소, 하북성 동부를 백제의 강역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대륙'백제라는 용어가 좀 애매한 것 같아요. 중국땅 동쪽과 북쪽, 만주 남쪽 요하지역, 한반도 서쪽 해안지방들을 점령하며 해양 무역을 점령했던 것이지 대륙중심 국가였던 것은 아닙니다.
@@OYT0724 아니오. 애시당초 대륙에서 일어서 반도 렬도까지 경영한 것이 맞지요.
중공의 말도 안 되는 속지주의 어거지에 말려들 필요가 없지요.
산동 사람들도 자신들은 중국인이 아니라고 한다네요~
그들도 그곳에 쭉 살아온 자신들의 조상이 누구인지 알고 있으나 현재 공산당 체제에서 돌려 말하고 있는 것일테죠~
가장 효과적으로 우리 역사의 의문점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삼국시대 백제가 실제 중국대륙에 있었음을 무덤유적으로 증명하였음!!
ㅋㅋㅋㅋㅋ백제 귀족들이 해외 여행 갔다가 객사해 묻혔다 넘겨짚겠지요. 아님 백제 무덤이 아니라 오나라나 양나라 무덤이라고 우기든가. 지나인들이 신라 무덤이라 우기니 거기 동조하든가.
@@류동명-n9m 님은 미국여행 갔다 죽으면 미국에다 무덤만듦??? 말이 되냐???
멍청한소리들 작작하고
저 무덤들 제작시기나 보고와서
헛소리들 하든가!
항상 잘보고있습니다.
힘내시어 더 많은 내용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타깝기만 합니다. 후학들이 꼭 밝혀주길 ㅡㅡㅡ
백제는 대륙에 있었고 동방의 로마같은 나라였습니다. 대륙백제는 설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막국수-i9w 무슨내용인지 읽어나 보고 말해라
@@막국수-i9w 일제가 왜곡한 교과서를 아직 배우고 있음.요즘 인터넷에서 자료가 널렸어.공부 좀 해라
@@막국수-i9w 득구야~ 백제 대륙의 역사 내용은 삼국사기와 중국정통사서 18권에 다 나와있는 사실이란다....환단고기까지 갈 필요도 없단다...
고구려는 하북(강 하 자를 쓰는 유일한 강 황하)를 경계로 백제와 세력다툼을 벌였다 생각됩니다
당은 병주 태항산맥의 자연적 방어선으로 고구려와 맞선 것으로 보이구요
낙양과 팔관 인근 지역들의 고대 지명들이 증명하는 듯요
@@막국수-i9w 득구야.. 왜 환빠라고 욕하고 싶은 모양인데?? 환단고기를 읽어는 봤냐?? ㅋㅋㅋㅋ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 40대 이상이나 지금 젋은 세대들이 배운 역사는 일제 조선 총독부 산하 조선사 편수회 소속 일본인 학자 쓰다 쇼우키치, 이마니시 류, 시라토리 구라키치, 쓰에마스 야스카즈 등이 만든 식민 사관론을 친일파 매국노 이병도, 신석호가 일본인 사학자들에게 배우고 그들이 해방 후 퇴출되지 못하고 국사학계 태두로 불리우고 그들의 논조를 지금껏 역사 책과 국사 교과서로 배워 온 거야.... 독립운동가 홍범도 오동진 장군이 왜 환단고기를 편찬하는데 지원을 했겠냐??
역사적 자료가 있고 이제 유물까지 발견되었으니 학생들에게 가르쳐야됩니다 22개 담로는 사실이었다는것도
22담로가 사실이였다는건 다 알죠 위치가 중요하죠
중국 연안 지역에 백제 및 신라의 영토가 많이 있었습니다.
백제의 영토를 저렇게 잡으면 산동반도의 신라는 어찌 설명합니까?
감사합니다
천문 시뮬레이션 돌려보면 삼국이 지금의 중국대륙위치로 나오는데 상당히 의미있는 유적이네요
유럽의 해상국가로 베네치아가 있었다면 극동의 해상국가로 백제가 있었네요. 지난 영상들에서 좀 애매한 주장들이 있었는데 이번에 깔끔히 정리된 것 같습니다.
내용이 넘사벽 이네요^^
명백히 자료가 있는데 조선 이후 역사학자들은 식민사관에 파뭍혀 헤어나오질 못 하는구나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청해진 장보고의 법화원이 산동반도에 있어요. 대륙백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쯤 제대로된 우리 역사를 배울수 있을까
한국이 중국,일본을 국력으로 굴복 시킬수 있을때 즉, 무식하게 말하자면 전쟁을 해도 이길수 있을때
이로써 신라 백제가 대륙에 뿌리를 두고 천문기록이 진실을 밝혀 주었다.
백제는 북경 근처가 본진이고 그남쪽은 신라 영토였고 북경 그 위에는 고구려 영토 고로 고구려 신라 백제 전부 대륙에 존재했었음
헛소리 자꾸 하지 마세요 그런 논리로 가면 우리 역사 전체가 중국 사에 편입 됩니다,,예전 강성 했던 만주 지역 이민족 이 세운 수 많은 국가들의 역사가 지금 전부 중국 역사로 통일 된 거 모르세요, 딱 하나 첨언 하면 북경이 백제 본진이면 거기서 하다 못해 환두 대도 한 자루라도 나와야 하지 않나요,, 중국 애들 지금 자기네 유물 유적도 하도 많아 창고에서 보관 대기 중인데 우리 유물 유적 발굴 하여 파괴 할 여유가 있을 까요,, 정신 좀 차립시다 엉터리 유튜버들 마이크에 놀아 나지 말고,,시간 있음 중국이나 대만 국립 박물관에 가서 보고 오세요 우리 유물 하고 얼마나 비교 되는지,,
감사합니다ㆍ
응원합니다.
역시 백제와 신라는 중국남동부지역을 차지하고있엇다는게 명확해지네요~오월을 압박침탈했다는 사서 기록의 증거인ㅎ
연구할 사료가 많이 없어져서 연구를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중국의 역사학자 허광웨의 저서에 중에 주장한 부여가 산둥반도에서 시작했다는 잘못된 정보가 있네요.
우리가 주장해야할 부분이 백제역사이기에 그냥 넘어 갑니다.
하지만 중국사학자들은 일정부분 역사적 사실를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 슬적 역사를 왜곡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중국의 진짜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면서,
사실만은 인용을 하되, 잘못된 부분은 지적하고, 우리의 역사를 올렸으면 합니다.
수고하십시요^^
산동반도와 산서성 하북성 하남성 섬서성일대가 불리지국 즉 옥저의 본토입니다.
옥저는 졸본부여의 제후국입니다.
옥저왕은 불리지로 고주몽의 아버지입니다.
곧 옥저는 북부여 (북제)의 후손이니 이곳이 부여라 설명해도 과히 벗어나는 주장은 아니라고 봅니다.
백제는 한반도에 없었습니다. 대륙 남쪽을 장악했지요. 대륙 남서쪽은 신라, 대륙 북쪽과 만주 그리고 중앙아시아는 고구려가 장악했구요.
그럼 무령 왕릉은 중국 에서 파묘해 와서 다시 공주에 묻었나 봅니다, 그런 논리면 우리 삼국사가 다 중국사가 되는데요,,
@@mylee7680그 무령왕릉은 귀족의 한가문입니다.
@@mylee7680 반도백제에 무덤이 너무없다는생각안드심??지방왕이였던것 호족이라칭합시다
👍
그럼 미추홀도 인천 미추홀이 아니고 중국 대륙 미추홀인가??
그건 아니지만 일본 나라는 한반도의 나라에서 파생된 소국인건 맞음
미추홀은 대륙 산동성 연성시
신당서 구당서에 백제 서쪽 경계를 월주라고 나와요
백제의 담로 중 하나에요
백제가 망하기전까지 일본도 백제 지방정권으로 보면 돼요
백제출신 흑치상지 장군 묘지명에도 본래 부여씨인데 흑치국에 봉해져서 흑치씨로 삼았다라고 나와요
여러 사료를 대충 훑어 보면 담로제를 어떻게 운영했는지도 짐작이 가요
백제 왕족들 직계 방계왕족들이 어떤 지역에 봉해지면 그 지역명을 성씨로 삼는 걸 알 수 있어요
백제 대성팔족 이 귀족들도 세력이 막강해서 상당한 세력을 가진 걸로 보여져요
부여족들은 정말 뛰어난 거 같아요
4:48 광양 청하 성양 광릉태수로 삼았다 했는데 한반도에는 그 명칭이 없는데 중국에 딱 백제 위치에 있네요 하하하
흥미진진합니다.
일본이 일제시대 때 중국을 차지한 구역과 거의 일치하네...
백제의 대륙영토가 아니고 대륙에 백제가 있었고 그동쪽에 신라 북쪽에 고구려가 있었다! 그러므로 삼국과 가야는 대륙에 있었고 그후 통일신라 가 중원을 음산산맥 북쪽에 발해가 있었다! 반도의 백제유적은 식민사관과 반도사관의 산물이라 봐야 할것이다!
질문: 이 영상에서 대륙 신라의 영토를 그리시오. 답변 가능하십니까?
이씨 조선의 성리학 학자들과 왕조의 역사 말살 정책이 너무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탓인 듯합니다
그 놈의 권력이 뭔지 나라 정기까지 끊었단 말인가
이씨 조선은 역사를 왜곡하지 않았습니다.
왕조실록 읽어보시면 누가'역사를 왜곡시켰는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손문일당과 일제와 한국식민삿낙자들이 왜곡시킨 결과입니다.
사서의 기록지명의 문자는 뜻글자가 아니라 소리문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해(海)의 고대음은 ᄀᆞᄅᆞ-->가라 입니다. 즉 바다가 아닙니다.
가라의 의미는 해(태양), 크다(大/高)등 입니다. 삼한의 한(韓)의 고대음도 같습니다. 즉 해(海)=한(韓,漢)이 성립합니다.
발해(勃海)의 국호도 발가라-->말가라(ㅁ/ㅂ교체)-->말갈(=마한)의 다른표기 음차 입니다.
해(海)를 건너다는, 바다를 건너는 것이 아니라 가라땅 혹은 한(韓)의 땅을 지나야 이른다는 말 일 수도 있습니다.
백제(百濟)의 국호는 맥제/막제(ㅁ/ㅂ교체)로 음으로도 부를수 있고, 맥/막의 고대음은 크다(大, 高)의 뜻이고 제(濟)의 고대음은 *ʔsliːl-->gslal-->gasala-->가살>가싀>가시의 음이 유추됩니다. 이는 예족의 예(濊), 왜(倭)와 같은 소리 입니다. 해(海)의 고대음 가라와 같은음 입니다.
즉 백제는 '마라가라, 마라가시'의 소리로 추정됩니다. 동이를 형이(荊夷), 극이(棘夷)라고도 했습니다. 가시족의 음차표기 입니다. (荊, 棘=가시)
동이의 고대음을 알면 사서의 해석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항상영상게시일시를 화면자막에 명기해주세요
답답합니다.
언제나 우리의 역사가
제대로 밝혀질지 ᆢ
반드시 밝혀주십시오.
일제로부터 독립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식민역사를 그대로 배우고 있단말인가?ㅜㅜ
아무리 식민사관으로 감추려 해도 결국 역사는 밝혀지기 마련..
❤
여기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중국은 어디를 말하는건가요? 이 시기에??
대륙 백제설 부인하던 유툽들 이젠 발악 못하게 되어 꼬소미다.
사마천의 사기부터해는 바다가 아니고 강이나 큰호수를 뜨싸고 실제로 고지도에 그렇게 표시되어 있어요.
해를 바로정의 하는게 중요합니다.
0:18 스크린샷
2:10 백제 위치 와 성,
왕 거소.
강소성에서 백제인의 무덤이 대량으로 발견됐으면 그곳이 백제 영토였나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단순하고도 당연한 논리일텐데, 중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어떻게든 그런 해석을 피하는 것 ㄹㅇ루다가 역겹다.
지금 한반도도 반쪽으로 나뉘어 살고있는 모습을 삼국 선조들이보면 얼마나 안타까울 까요
대륙백제 대륙신라 모두 진실임니다. 이제 역사광복합시다
다시는 쪼그라들지않도록 ~고토 회복 하는 날까지~~
고대 동이의강역은 산동반도 즉 상나라의 우측지역이다.
백제가 태수를 임명하고 왜 남제에 추인을 받았나요?? 백제가 남제의 제후국 으로 보여지네요
저리되면 궁금한게... 나당연합군의 반도백제 본토침공시 저긴 왜 역습하지않았나..본토가 날아갈판인데.. 기록이 없을수가 없다봄.. 또 그정도 대규모 협공. 침공을 안들키고 할수있나?
혹시 본토백제망학난뒤 저지역에 대한 당의 인수작업 기록은 없는지..
남아있는 백제 관련 역사서가 삼국사기 말고는 없지 않나요. 남아있는 자료가 많지 않고 일본왕실 도서관에 백제 기록 자료들이 많지만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지 않고 있습니다.
백제의 동쪽에 신라가 있었다면, 대륙에 불가할 것이고, 한반도 동쪽에 짜투리로 존재해야 하는데 가능한가여?
중국에 고려초 삼국시대까진 햔국인들이 중국에서 사업했죠.
아무리 역사를 감추고 왜곡을 해도 진실을 가릴 수 없다. 우리 민족이 활동하던 무대는 현재 중국이다.
평평한 큰 돌판이 자연석인지 인공석인지도 연구해야..... 인공석이라면 돌 가공술이 온돌과도 연결되니까
멍청 한 한사람중에멍청이
백제는 한방도 포함 중국에(도) 있었다
조명 조청과의 속국 즉 사대관계와 과거의 사대관계는 달랐다고 하던데 어쩌면 실효 지배는 백제가 했지만 사대관계에 있기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책봉받은 걸지도? 랄까
찬란했던 백제는 없어졌지만
혼은 우리들의 피에 남았다.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 역사책은 뭐니?
문통이 바꾸지않을까 기대했었는데 5년이나 지났지만 감감무소식,,,,차라리 기대를 안했다면 실망도 없었지
진짜 우리나라 강단 고대국사학자 놈들은 고대 지도도 안 보고 학생들 가르키나?
강소성 백제무덤은 백제가 대륙에 있었다는 증거라면서
평양 중국식유물은 낙랑군=평양 증거라는 거 왜 인정 못 함???
그 중국 무덤 개수가 2개인가 ? 3기 인가 됨 몇백기가 아님 그리고 그 유물 전부 일제 강점기 시절 발굴됨 또 자세히 보면 그 중국식 무덤들이 고구려식 무덤에 더 가까움 그안에서 중국 유물이 몇개 발견 된거임 그리고 그 중국 유물도 3세기 4세기 때임 먼가 이상하다고 생각 안함? 기원전 중국 무덤이 아니라 3세기 4세기 그때 까지 낙랑군이 있다고 생각 한다면 저도 더이상 할말이 없음.
백제 영역인건 아는데 한반도와 바다를 끼고 있어서 영속을 못한게 한이네.. 한반도와 산동반도 사이에 육지영토 있었음 이리 되지 않았을것...
소선오가두아들을데리고남하한곳은 한반도가아닌 대륙이였다 고구려의첫도음도 오녀산성이아니고 의무려산서쪽( 지금의의무려산아님) 이엿으니 그남쪽이 어디였겠는가
중국을 왜 '지나'라고 하나요?
중국에서 백제 서쪽 신라는 없어지게 하는 것은 찰못이 아닐까요? 유투버 우리역사 history가 양자강 근처에서 오래된 고성 , 금성을 구글 지도로 찾았읍니다. 이는 거기가 신라 땅이라는 것이지묘.
학자로의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 국내 사학을 주름잡고 있으니.... 참 문제네요...
북부여, 동부여(고구려). 높은부여, 새부여. 東은 우리 옛말로 새, 높(놉)은 우리 옛말이며 北 혹은 高.
만약에 중국 땅을 맘데로 조사 할수만 있다면 한국 역사 매국노들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이번 정부는 역사를 바로 세웠원 합니다
한반도의 백제는 22담로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연개소문에게 쫓긴 당태종이 숨은 "숙성宿城"도 보이네~
여러 기록에 그 존재가 분명히 전하는 백제의 대륙영토는
아마도 고대 그리스의 소아시아 해안 식민지나 바이킹의 서유럽 정착지들과 유사한 형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페르시아 제국이 팽창하며 서진할 때, 소아시아 해안의 그리스 식민지들은 모두 몰락했습니다.
중세 후기 유럽의 세력이 재편될 때에도 바이킹의 영지들은 각지에 동화 또는 흡수되었습니다.
백제의 대륙 영역을 역사적 사실로 공인하려면,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언제부터 존재하였고 언제 사라졌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연운항에서 발견된 백제계 무덤들이 7세기로 편년된다면 그 정체를 설명하기가 더욱 곤란합니다.
중국이 분열되어 있었던 6세기까지야, 북위와의 전쟁 기록도 있으니 백제의 해안지역 지배가 납득 가능한 역사상이지만,
7세기에는 중국이 통일되었음에도, 백만 대군으로 고려를 침략할 정도였던 수당제국이
정작 고려보다 훨씬 가까운, 중국 동해안의 백제 영토는 그냥 두었다는 말인지?
봉건적 책봉 관계로서 그것을 인정했었다 해도, 결국 660년 황해를 건너 한반도의 백제 도성을 공격하던 시점에서는 어떠했었는지?
규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관련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백제인이 거주했던 땅이라는 사실과, 백제왕국이 지배하는 봉강=영토라는 사실은 다른 개념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차이나타운을 중국 영토라고 할 수는 없는 것처럼요.
고구리의 영토는 하북 즉 황하 이북에서 백제와 치열 하게 다투어 산동을 뺏고 백제는 하남 황하이남으로 밀려 천도 하게 된 걸 겁니다
당은 낙양 옹주 한중 사천일대 자리잡아 황하 주변 고구려와 백제와 세력 다툼하다 현재 남경 인근의 동신라와 손잡고 고구리와 백제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백제태자가 당과 싸우다 죽은 곳이 낙양 북쪽 북망산!!!
북경엔 동서남북에 고려영 고려촌등의 지명과 군대 주둔지(영)의 유물 유적 유적터와 고려식 성곽터가 쏟아집니다
호남 광주에는 현 중국의 호남과 광저우 지방에는 신라 김씨촌 최씨촌도 수십개가 넘게 천년이상 그터에서 살았다는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최씨는 중국의 성씨가 아니라 신라부터 시작된 성씨입니다
등등 유적 유물 유적터 사서 사서의 지명들은 문화혁명 일제의 역사말살 조선의 고려역사말살 등에도 살아남아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letitbe2125 판타지 소설을 쓰는건 자유지만, 그것을 역사와 혼동한다면 본인만 바보가 될 뿐입니다.
북망산은 백제 태자가 당과 싸운곳이 아니라, 백제가 망하고 당에 붙들려간 후 죽어서 묻힌 공동묘지입니다.
북경 일대의 고려 관련 지명은 그 정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데, 개인적으로는 태조왕대의 요서 10성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정합니다.
대체 무슨 사실을 밝히고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역사는 그렇게 띄엄띄엄 망상한다고 공인되는게 아닙니다.
@@지수신-j6l 백제영토는 신라가 가졌습니다
본방 이었던 대륙백제가 무너지자, 22담로 도 자연스레 약해졌다고 kbs다큐에 나옵니다.
일식최적관측지와 역사서,지명으로도 남아있는 단서가 많은데 아직도 대륙백제에 의문을 가지고 계시네요,,
유물을 찾는것은 모택동의 문화재파괴 사건 이후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지수신-j6l 좀 착각할수는 있지만 사실이 앖어지지는 않습니다 낙양 일대의 지명은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습ㄴ다 고대 사찰들 역시 살아남아 역사를 증명합니다
바이킹은 이베리아 반도를돌아 지중해에서 까지 약탈했으명 동쪽으로 강을 타고 머리에 보트를 이고 흑해까지 무역과 약탈을 했으며
바이킹 중 앵글족과 색슨(작센)족은 원주민을 몰아내고 현재 잉글리쉬 유니온의 연합국가가 됐구요
10세기는 북해를 지배하는 거대국가를 건설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바이킹이 여러번 기마민족에 밀려 남하한건 아시죠
님 삼국지에 나오는 백제성(영안)은 백제성이 맞아요 소설이 늦게 쓰여졌으니 부풀리기한 위촉오 에 고대성터를 갖다가 쓰면서 스스로 오류로 인식도 못한거죠
제가 조금씩의 오류가 있을지는 몰라도
고대지명 그것도 달랑한두개 나오는게 아니라
중국 고대사서 삼국사기 삼국유사 대만박물관에 소장된 고대 지도들에 쏟아집니다
중국내륙에 집성촌 넘침니다
중국이 고구려 동북공정으로 지내 국가중 일부라 우기는게 단순히 조작하려는게 아니라 천년가까이 황하이북을 지배했기에 한족의 역사를 쓰려면 어쩔수 없는 겁니다
김치의 원형과 가까운절임 채소는 산동과 월족 묘족등 백제의 영향을 받은 살아남은 소수민족들의 음식이며 중국입장에서 고대 백제 신라 고구리의 영토의 상다수를 현재점유하고 있으니 자기네 역사라 우기기 시작하는 겁니다
하화족 한족의 역사가 너무 허섭해 동이족 대륙에 존재하던 동이족의 역사를 끌어 올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하 은 주 이후로 생각나는 대로 한 조 송 명 그외 분열 시기의 소국 몇개 말고 통일왕조는 전부 침략이민족이거나 대륙에 있던 동이족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고구려멸망후 산동에 이정기 유민들과 나라를 세운건 어떻게 설명하려구요!
그외도 대륙에서 동이족이 세운 국가는 수십개인데 한족이라 칭한국가는 손에 꼽힙니다
요 금 청 말고 대체 어디서 동이족들이 튀어 나온겁니까?
애초에 하화족 스스로 주장하는 뿌리가 섬서 황하 인근과 화산 근처에 살던 소수 부족인데...
넘치는 사료와 유물들을 연구하면 될텐데 왜 안하는지?
반도사관에 입각한 모든 학문적 성과가 무너집니다.물론 그것도 일제시대에 완성한 거겠지만.....강단사학계는 유연한 집단이 아니에요. 아마 이런 주제로 논문 내놓으면 찍혀서 학부 졸업도 못할지도......카르텔이 어마어마하죠. 중고교 다닐때 역사교과서 첫장에 등장하던 동이족분포도도 요즘은 다 지웠더라고요. 관련성을 끊어 버리려는거죠. 어이가 없습니다. 학문이 아니에요
예전에 유튜브 댓글에 어떤분이 모택동이던가? 예전에 절대 한국역사는 건들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었다고
그걸 건드는 순간 지들 역사는 뿌리도 없는 오랑캐 역사가 되어버린다고.. 글을 올려두셨는데.. 정말 중국은 역사가 없는것 같네요.
저우언라이 아닐까요? 문화재 다 파괴한게 모택동입니다.
백제가 대륙백제를 유지한 것은 로마가 북아프리카를 경영한 것과 비슷하다.
자꾸 유민이니 뭐니 하는데
위치로 봤을때 저렇게 중요한 지역을 한낱 유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는게 말이됨? 무덤군이라면 그 지역을 그 사람들이 지배했다고 봐야지
갑자기 생각난거데
신라 갈문왕은 갑자기 튀어나와 성골의 양자 즉 성골이 되고 손자는 신라에서 왕 칭호를 처음 쓴 지증왕이 됩니다 기록에 말에 완전무장해서 왔다 쓰여 있습니다
신라의 원효와 의상이 천축으로 불경을 구하고 깨달음을 얻고자 가던중 돌아왔다는 이야기나 의상이 수차례 당에 유학갔다 왔다는 것이나 고대 한반도에서 배도 안타고 육로로 개인이 갈 수 있는 길인가 의문이 든다!
주로 섬서 종남산 화엄종에서 공구했는데 장안 아래 산맥이다 남경이나 무한의 신라에서 왔다갔다 했다고 본다
원효는 중간에 돌아가 서경 경주인근에 사찰과 새로운 종파를 설립한것이다
중국에 있는 한민족들을 찾고 알려서 독립운동을 해야한다
통일신라까진
대륙에 영토가있었고 고려가 건국되면서
아마도 대륙영토가 없어진듯...
고려도 대륙에있었습니다
몽골의 남하와 삼별초 항쟁시 에 북경을 나와 강화에서 항전하다 왕이 항복하며 개경으로 옮겨 지내으며 만주대평지와 산간의 경계가 되는 간도 지방으로 경계가 그어지고 대륙에서 영향을 잃어가다 고리말 북경수복을 위해 군을 파병했으나 이성계의 배신으로 몽고의 원이 완전 점유
이후 명이 그대로 가져간 거라 보입니다
마치 청이 망하며 중공이 만주를 그대로 가지고 간 것처럼 말입니다
@@letitbe2125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중국에 삼국타운이있엇다...미국에 코리아 차닝나 일본타운이ㅛ다
진짜가 나타났습니다
소가 대선 씨름판에 나오고 있다
유튜브 용담메시지 ...
강병이 백만?
같은계열이다 하면 될것을 꼭 싸가지 없게 별종이라지
두성은 공주와 사비를 각각 말하는 것
모두 바다를 건너야 이를수 있다는 말은 어떻게 설명할건지?
옛날 중국사서의 바다를 건너는건 황하를 건너는 겁니다.
강소성 절강성 절라도 광동성 광주
남만족 남도백제계연맹
왜 눈물을 흘리냐?
꿈을 꾸었습니다
슬픈 꿈이더냐?
아닙니다. 망상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국민들은 보았습니다
국뽕이더냐?
아닙니다. 그건 질병입니다.
이 영상을 보고 국뽕 타령한다는 놈이 질병 그자체라는 말이 적절.
아이고야 한심.
웃긴게 왕씨 고려나 이씨 조선도 대륙에 주인이었다는 사실
인천시 강화군 하점면 에서도 볼수있는 무덤양식
22담로
동북공정에 사용되는 중국어용학자책인듯하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부여가 한민족의 고유한 원류가 아니라 중국 산동성에서 발흥한 소수민족이라는 것이니 저런 학설이 뒷받침이 되어 만들어지는게 동북공정이다. 한마디로 개같은 책이라는거다.
백제가 중국지방정부라는 증거 라고 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