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고요.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못 배운게 분통이터져요. 이성계가 회군으로 뭐했냐? 책을 태우고 백성은 개돼지 가장 문제성있겠 네요. 해방후에도 일본이 역사왜 곡을 한것을 셜대교슈들깃대잡고 왜곡된 역사교육70년. 쫌팽이 선 조들로 규정한꼴. 또한번 멍한 한 국인으로 못박아버렸네요.일본이 한국인 기를꺽으려고 명산에쇠말 뚝 박은것 지금도 찾아내 뽑는다. 지난세월 수난의 한국인들이이제 명예회복을 시켜드리는것같아요
요샌 학교에서 안배우나요?옛날 역사스페셜봄 그래도. 백제 성덕태자가 일본서기 썼고 거기선 거의 신으로 모시죠. 철기.글자.의식주 차.도자기.염색 옷감 직인과 기구등 모든 장인들 데리고가서. 베틀에서 절구까지. 일본 마츠리가 백제축제예요. 삼국게 다 있어요. 가야도.백제는 담로 신라방 신라통신사등 신라에서 기와도 얻어갔었죠. 고구려 마지막 왕자도 거기로 갔죠. 전교조 티비프로들 다 왜곡만 하니.
굉장히 흥미롭네요 백제는 알려지지않은 부분도 많고 아직도 연구해야할 부분도 많은듯해요 중국, 일본등지에 백제흔적이 뿌려져 있으니.. 일본에도 오사카중심 남백제촌,북백제촌, 백제역, 백제대교,백제천, 백제야, 백제정류장, 난백제소학교 현재도 공식행정지명:백제사정, 백제 우체국 등등 많지요 아직도 미스터리한 백제사
@@junsooify 히라노신사 제신들이 백제 왕 혹은 백제인이라는 사실은 에도 시대 저명한 국학자인 한노부토모(1775~1846)가 그의 저서 『번신고』에서 증명했고 동양사학자 나이토 코난(1866~1934)도 『긴기 지방의 신사』(1930)에서 같은 주장을 했다합니다.
난 일개 무명의 시민이지만 대학교에서 배우고 또 역사학도로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생 교수등은 진짜 크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웅대하게 번성하고 위세 작은 게 아니었는데 또 증거 뚜렷한데 니들 모두 뭘 보고 배우길래 침묵하고 거짓말을 지껄이나..... 니놈들은 만고역적이다. 참으로 분하고 슬프다. 우리 역사는 학문은 몽땅 다시 써야 하고 다시 정립돼야 할 것이다. 진짜 이젠 우리 역사 우리 땅을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친일 매국노 카르텔이 지난 100년간 장악해온 대한민국 (역사) 교육을 이제는 배달겨레 백성들이 되찾을 때가 드디어 왔다 ! 역사부터 먼저 바로 잡고 언론, 정치, 사법부, 경제계 등등 하나씩 동시다발적으로 원상복구 시켜야 할 시간이 드디어 100년 만에 돌아 왔다 ! 경축 남북평화통일 2025 !
@@booksbogo 다른 학자들 견해로 25사도 왜곡된게 많다고 하는데 뭐가 진실인지 와닿지 않네요. 우리 선조들이 기록을 잘하였다고 하는데 조선시대 수서령 말고도 일제가 1910년 강제병합 후 제일먼저 우리 역사관련 사서들을 수거하여 모은게 51종20만권을 제외하고도 사서및 도첩등 국보급 유물을 가져간게 수만점에 이른다하고요. 나머지 사서를 고르고 골라 학자들이 재편하여 최종적으로 총독부 승인및 감수를 걷히는 과정을 통하여 오늘날 국사가 되었네요
와 충격입니다 쇼크 오네 ㅋㅋ 그럼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건 도대체 뭡니까? 전라도가 백제땅이라고 평생 배웠고 지금애들도 그래 가르치는데 이건뭐 반도에 가둬놓은 역사야? ㅋㅋ 진짜 생각의 틀자제가 흔들린다 역사교육의 편협과 사실의 확장 가능성 사이에서 오는 소름과 흥분감 ㅎㅎㅎ 와우
중국 공산당이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동이족과 고구려 및 한민족들과 관련된 모든 자국의 지명들을 바꾸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조상의 옛 영토를 추적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영상에서 보여주신 중국의 옛지도들이 차후에 우리가 조상의 역사를 추적하는데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중국 본토의 옛 지도들이 사라지기 전에 수집해야 하겠습니다. 각 지역 대학 도서관이나 연구 기관들 및 고서적방 등에서 찿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면, 당이 명령을 내리면 이와같은 역사자료들을 없애는 것은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근데요..지명하고..그지명에 잠들어있는 유물하고..모든 기록이 일치해야 비로서 명백히 증명 되는 것인데요.. 지금 지명은 일치 합니다. 그러면 중공 현장에가서 유적을 조사해봐야합니다. 그래서 증거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남겨진 유민들과..그 터전을 되찾아야 합니다.
@@booksbogo 아 남조시대로 추정되는 향로들과 엇비슷하던데 관련이 없다면 흥미롭네요. 청나라가 한족을 지배하는 과정에 이러한 역사서들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18세기 조선의 국학 일본의 국학 정한론이 한족의 문화를 정리하고 다른 한편으로 제압하고자 사고전서를 비롯 모종강 삼국지 그리고 만주원류고와 같은 뿌리 찾기까지 방대한 작업이 있었고 그러한 분위기가 조선, 일본에도 나타난 것 아닐까하는 의문을 가져봅니다.
@@taeyeonjeon 고구리사략이라는 박창화선생님이 일본황실서고에서 몰래 필사한 역사서에보면, 삼국사기에는 없는 무령왕 피살사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무령왕 첩이 시기하여 무령왕을 피살하고 그 아들 성왕이 아버지죽음을 감추고 왕에 올라 3년을 보내죠. 무령왕릉에 자세히보면 참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을정도로 정식 왕릉이라기에 많이 부족합니다. 광개토태왕릉과 비교해서도 의아한 건이 많지요. 장수왕때 광개토태왕 아버지묘를 안장할때 영락 호를 쓰고, 이름을 거론하지않는데, 무령왕에는 호가 아닌 이름 사마를 쓰고있고, 또 사마의 "마"자도 한자도 다릅니다. 그리고 글자도 무슨 초등학생이 휘갈긴 정도로 대충 쓴 글씨일정도로 한 나라의 왕묘같지가 않지요. 또한, 실제 무령왕릉 지석에서는 묘지땅값에 쓸 돈다발이 나오는데, 왕이 자기땅에 무슨 돈을 지불하겠습니까? 여기까지보면 어떤 추론에서 얘기한, 아들 성왕 눈치를 보던, 무령왕 충신이 당시 대륙백제땅이 아닌, 백제 담로중 한곳이나, 아닌 제3의 땅(한반도 공주)에 몰래, 급하게 만든 묘지가 아니냐라는 추론도 있는데,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고구리사략의 일식기록도 실제 고구려나, 백제,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합니다.문제는 고구리사략이 현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나오지않는 더 많은 방대하면서도, 중국역사서와도 일치되는 내용이 많은데, 현 한국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활을 만들때 사용한게 물소뿔인데, 물소는 한반도에는 있지도 않았고 중국 남부 지역에서나 보던 동물임. 수입해서 썼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많은 물소뿔을 수입했다는건 말이 안됨. 국가의 가장 중요한 무기를 만드는걸 해외에 의존했다는건 말이 안되거든. 이치에 맞지 않으면 의심을 하는게 정상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정상적인 사람이 많지 않은거 같다.
고대사는 한일이 거의 공유되어왔죠...가야.백제.신라등 이미 일본에 영토를 가지고 있었고 일본토착민 죠몽인 조져가며 기득권 가져간거고..어찌보면 이렇게 일본을 먹고 다시 그 가야백제신라등 후예가 한국을 먹고 이런거고...일제때 문화재를 가지고 가고 싶어하는건 당연한거고 당시 ㅄ조선은 조선왕조실록외엔 고대서엔 관심없었습니다..쭝궈에 사대하는 조선에겐 고대서는 독이니까 가져가던 말던 냅뒀다는건 모르나요???물론 현대에 와서는 다 가져갔다 ㅈㄹㅈㄹ하죠...머 이것도 당연하겠지만 그 시대의 관점을 현대의 관점으로 보는것도 웃기다는거...그리고 일본에 문화재가 있다는것도 당연한거죠...그 열도에 이미 백제.신라.가야가 있었으니까...거기에 조선은 우리문화재 개판으로 관리했지만 일본은 철저히 관리해왔죠...탓을 하려면 먼저 ㅄ같았던 조선을 탓하고 그다음 일본을 욕하시길...한국사람들은 역사를 ㅄ같이 배워서 항상 피해자 코스프레만 하니참...
맥제(=백제) 고구리(맥족) 정통성을 이으므로 '맥제'라 한 것이고, 부여(부리) 정통성을 이으므로 성을 다 '부여'라 해서 '부여풍' ''부여융' 등 왕들 이름이 다 '부여씨'였다. 사비성에서 망할 때 나라이름도 '남부여'였다. 부여국과 맥족(고구리) 정체성을 가진 나라였다. 1. 1400년 버텨온 백제유물 목화자단기국(木畵紫檀棊局) 일본 나라현의 도다이지(東大寺) 창고 쇼소인(正倉院)에는 1400년 된 백제와 신라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다. 법당내에는 신라의 주공들이 만든 높이50m, 10m의 청동불이 있고, 신라의 보물이 비파, 가위도 있다. 그 중 660년 경 의자왕(641-662)이 당시 일본실력자인 내대신(內大臣) 후지와라 가마타리(藤原鎌足)에게 선물했다는 바둑판은 백제의 백미다. 굉장히 단단하고 내구성이 좋은 스리랑카산 자단(장미목)으로 튼튼하게 만들었다. 바둑판 양옆으로는 코끼리,낙타 등이 상아로 새겨져 있고, 바둑알도 상아로 만들어져 국제적 세력과 문화가 집합된 백제문물의 우수성을 보여준다. 흑기자(黑棊子)=감아발루기자(紺牙撥鏤棊子), 백기자(白棊子)=홍아발루기자(紅牙撥鏤棊子)라고 일컫는데, 코끼리 상아에 특수기술로 감색과 홍물을 들이고 양면에 꽃가지를 입에 물고 날아가는 새(吉鳥)를 아로새겼다. 바둑을 둘 때 바둑알 뻬닫이가 서로 함께 열리고 닫히게 되어있다. 2. 중국 전주와 한국 전주 판박이~~ 전주 안의 기린불, 완산, 화산, 안덕, 태명 등 지명까지 꼭 닮았다. 본디 신라땅이던 대륙 전주의 지명을 전북 전주에 그대로 이식한 것.. 3. 광저우 백제허 홍콩, 마카오에서 현재까지도 '백제'라는 지역명이 쓰이고 있다. 중국 남녕시 백제진 '백제허' 지역에 남아있는 백제흔적이 TV에 방영되기도 했다. 이곳은 에 적혀져 있던 백제 22담로 중 하나이다. 4. 중국본토수복용 대만군사지도(1964) 산동반도 태산 아래에 백마강과 사수(사비성 소재)가 있고 백마강은 황하와 만나는데, 그곳에 '황산'이 존재한다. 갯벌이다. 백제 계백장군의 5천 결사대가 바로 이 갯벌 '황산벌'에서 신라 김유신군과 마지막 일전을 벌였다. 사서에 "태산의 서쪽이 웅진"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딱 맞아떨어진다. 작은 곰은 '웅'이지만, 큰 곰을 나타낼 때 '곰 비肥(살찔 비)' 자를 쓴다. '肥성'이 바로 '곰성'='웅진성'!! 백제 패망뒤 백제왕자 부여융과 신라가 만나서 "너희는 평생 신라의 노예국이 된다"는 서약을 했던 곳 '백마관'도 지도상에 보인다. 역사 배울 때 '금강'이라 배우곤 하는데, 어떤 사서에도 '금강'이라 적힌 데가 없다. 다 '백강'이라 표시되어 있다. 반도사학이 유일정통사학으로 굳어버린 대한민국 역사계가 제맘대로 "'백강'이 '금강'이려니~" 하고 스스로도 속고, 민중도 속이는 거다.
1. 일본의 딴지 자단이 동아시아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고, 바둑판 옆면을 상아로 상감한 낙타와 같은 서역이나 남방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의 그림으로 미루어 서역과 교역을 하고 있는 당나라제일 것이라고 일인들은 주장한다. 설사 백제에서 건너온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당나라에서 만든 제품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백제의 작품임이 틀림없다. 가장 중요한 근거는 바둑판에 찍힌 바둑판 화점이다. 바둑판의 점을 우리는 예부터 화점(花點)이라 했다. 꽃수무늬 형상이다. 일본은 점을 쿡 찍어놓고 별점(星點)이라고 부른다. 중국은 점을 찍기도 하고 x로 표시하기도 했다. 목화자단기국의 화점은 17개다. 일본바둑의 성점은 9개, 중국바둑은 5개, 티베트 바둑은 12개다. 오늘날 한중일은 9개로 통일되었지만 우리는 왜정 강점기 때까지만 해도 조선식 순장을 두었다. 순장바둑판의 화점이 17개인 것이다. 목화자단기국이 당나라 제품이라면 그들이 그들의 전통인 점 5개를 찍었을 것 아닌가. 백제를 위해서 서비스했다고? 그들이 무엇이 아쉬워서 변방의 소국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있었겠는가. 백제의 기술 수준이 목화자단기국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일인들의 주장은 백제의 금속 세공술의 정수라 할 금동대향로와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 일축하고도 남는다. 일본이나 중국이나 목화자단기국이 백제의 제품이 아니라고 강변하면서도 17개의 화점에 대한 답변은 내놓지 못한다. 2. 한국 반도사학계 이케우치 히로시, 쓰다 소키치, 이마니시 류, 구로이타 가쓰미, 가루베 지온, 이병도-신석호 같은 일제 역사사기꾼들의 뜻을 받드는 사학계가 지금 대한민국의 유일한 정통역사학설로 '반도사학(총도부 관제사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 불리한 것(중국 일본의 역사왜곡 영토침략)은 다 받아들이고, 한국에 유리한 것(태백일사 등 고기, 삼국사기와 중국25사 등 사서기록, 일식기록 등 천문기록)은 다 내친다. 우리가 놀라운 백제유물 바둑판(목화자단기국)을 미디어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만약 백제가 산둥반도를 점령 (잠시나마) 했을 수도 있겠지만… 1. 시기적으로 언제인지 2. 그 때 중국의 왕조는 3. 유물들은? 4. 우리나라에 있는 공주와 부여에 남아있는 왕궁들은 또 뭐며.. 종합적인 고찰을 해야지.. 너무 단편을 가지고 전체를 해석하려는 것 같네요!
@@booksbogo 그 책 나오자 마자 사서 봤고요.. 현재 다시 읽고 있습니다 흉노와 가야 신라와의 관계에 대한 책도 읽고 있고요! 제가 생각하는 것은 그 책에서 주장하는 결과에 대한 제 해석은 지배계층 (흉노, 고조선 유민, 등등 북방 유목민의 유입) 유민의 이동설에 의한 것이 더 합리적 생각이 드네요 (아직 더 많은 책을 읽어서 다양한 관점의 해석을 봐야겠죠) 예를 들면 영국이 미국에 이민 많이 갔잖아요 거기에 영국 도시 이름 그대로 쓰는 경우도 많고 ‘뉴’를 붙이는 경우도 많고요 역사라는 것이 사건, 사실에 대한 해석의 차이이니 어떤 것이 더 논리적이냐가 중요하겠죠? 님은 님데로 더 많은 공부를 해서 자기 논리를 더 발전 시키길 바랍니다
백제의 팔대국성 집성촌이 다 산동지방에 있습니다. 그중하니인 国국씨 산동성 치박 쯔보시에 국씨 집성촌이 있습니다. 현재도 있는 실제행정구역명입니다. 淄博市博山区白塔镇国家村、淄博市临淄区齐都镇国家村 또한 산동 연태 옌타이시에 가면 해씨, 사씨 집성촌이 있습니다. 1, 山东龙口市解家村 2,山东省惠民县滋角镇解家村 3, 山东青岛即墨市龙泉街道解家村 4, 山东省青岛市黄岛区红石崖街道解家村. 1, 山东省烟台市蓬莱区小门家镇沙家村 2, 山东省潍坊市青州市邵庄镇沙家村 목씨도 있습니다. 山东省德州市陵县碱店乡木家村: 황산벌은 산동성 빈주의 황산벌입니다. 지금도 교통의 요지이고 평원과 黄山 교차 지역입니다.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키고 만든 5곳의 도독부: 熊津웅진, 东明동명, 德安덕안, 马韩마한, 金连금련 중에 동명은 현재의 산동성 东明县 동명현, 德州 德安县 덕주 덕안현입니다. 현재도 있는 지명이지요. 웅진, 마한, 금련은 산둥반도 외에 한반도, 중국 하북성 지명이지요. 재미있는것은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이들 성씨들이 발음이 비슷한 한자의 다른 성으로 바꿨다는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대단하십니다... 계속 애써 주세요
고맙습니다!!!
동감요~!!!
국사책보면서 의심만 하고 있던걸 요즘 해소하네요. 국사연구에 대해서는 국가단위로 연구를 지원 해야하는데 식민사학자들 한테만 지원하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ㅡ3
훌륭합니다!
역사학자들, 나라에서도
하지 않는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려 애써는
모습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나라가 따로 있는게 아닙니다.
내가 모여서 나라가 됩니다.
나라 욕은 제 얼굴에 침뱉기...
나라가 안하는 것은 내가 안하는 거죠
@@변화무상 내가모여서 민족이되고 민족이 나라이다
장개석의 말이 맞았구나. 일제시대에 장개석이 우리의 독립투사들과의 대화에서 "대륙전체가 동이족의 땅인 것을 독립투사들이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도 백제인의 후손이라고 했다.
대만사람한테 인증받아 오세요
@@heyjoehandrix4182 윗글 중국 등소평도 한말이고 중국에서도 기록되어 있어요.
@ HeyJoe Handrix
무식하네 ㅋㅋㅋ 그걸 왜 인증을 받아와 검색만 해도 나오는 걸
@@heyjoehandrix4182 빡대가리
맞고요.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못 배운게 분통이터져요. 이성계가 회군으로 뭐했냐? 책을 태우고 백성은 개돼지 가장 문제성있겠
네요. 해방후에도 일본이 역사왜 곡을 한것을 셜대교슈들깃대잡고 왜곡된 역사교육70년. 쫌팽이 선 조들로 규정한꼴. 또한번 멍한 한 국인으로 못박아버렸네요.일본이 한국인 기를꺽으려고 명산에쇠말 뚝 박은것 지금도 찾아내 뽑는다.
지난세월 수난의 한국인들이이제 명예회복을 시켜드리는것같아요
정말 이런내용들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전 부터 제가 의문이었던 것들이 조금씩 풀리네요.
더욱더 접하지 못하셨던 놀라운 영상들이 준비중입니다
백제사는 추적하기 가장 어렵던데
대단하십니다
존경을 드립니다.
요샌 학교에서 안배우나요?옛날 역사스페셜봄 그래도.
백제 성덕태자가 일본서기 썼고 거기선
거의 신으로 모시죠.
철기.글자.의식주 차.도자기.염색 옷감 직인과 기구등 모든 장인들 데리고가서.
베틀에서 절구까지.
일본 마츠리가 백제축제예요.
삼국게 다 있어요.
가야도.백제는 담로
신라방 신라통신사등 신라에서 기와도 얻어갔었죠.
고구려 마지막 왕자도 거기로 갔죠.
전교조 티비프로들
다 왜곡만 하니.
백제의 기술력~ 문화 찬란하구나👍👍👍
구독했습니다
조상을 빼앗겼고 역사를 빼앗겼고 영토를 잃었고 문화재를 빼앗겼고
문화도 서서히 잃어가고 있지만 눈 밝은 한국인들이 아직 남아 있어서 다행입니다.
22담로는 알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지도를 보면서
설명해주실때 소름이 돋았습니다
우리의 잊혀진 역사
반드시 되찾아야 합니다
더욱 가슴웅장한 영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로 검색이 많이 되어, 많은이들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booksbogo 직접 댓글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ㅜㅜ
예전 역사스페셜 전편 다봣는데 역사학자들이 편가르기가 심한듯
물론 역사도 전수받고 물려주고 해석하느 것이라지만 식민사관이 많이묻어있죠
이건 좌우 진형떠나야함 전 진보이지만
역사학은 너무 잘못된거같음 근대사야
그렇다쳐도 환단고기도 검증해야 할부분이 많지만 학자라함은 가능성 있고 우리가 그시대를 살아보지 않았다면
찾아보고 자꾸 증거 그리고 학술적토론이 있어야 그게 아니다 맞다가 되는것인데
한쪽주장이 너무강하니 이런것이 자꾸생기고 그러는듯
@@GO-it8zf 맞아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가능성을 열고 봐야죠
모든 가능성을 열고 본 후에
판단하는게 맞는데
이상하게 기존 강단사학자들은
"인정을 못한다" 이런 태도만 보이죠
@@이종환-x7j 이게 모든게 정치적 프레임 묻으면 국민들도 덮어두고 반대 정치인도 이게 바껴야
역사학도 좀더 활발해지고 토론도 만하지고 교류도 많아질드해요
예전 김정민교수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그분거 책 영상 다찿아보고
설득력있다 토론도 해보고 당장 바뀌지 않아도 노력하는게 멋져 보였고 응원도 보냈거든요
어느순간부터 영상이나 그런게 뜸하시더니 요근래 찾아보니
거이 극우적으로 모습이 바뀌었더라구요
그모습보고 믿음이 확떨어지더라구요
역사학자는 역사로 얘기해야지 정치색 들어가면 신뢰가 떨어지죠
안타까운 사례입니다
역사는 역사로 싸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하죠
그렇다고 날조는 안됩니다
삼국의 일식기록이 모두 대륙에 있었다는것에 더이상 말이 필요없네요
잊혀지고 묻혀지고 왜곡되어있던 역사가 드러나기 시작하니 민족의 혼이 되살아나고있나 봅니다
굉장히 흥미롭네요
백제는 알려지지않은 부분도 많고 아직도 연구해야할 부분도 많은듯해요
중국, 일본등지에 백제흔적이 뿌려져 있으니..
일본에도 오사카중심 남백제촌,북백제촌, 백제역, 백제대교,백제천, 백제야, 백제정류장, 난백제소학교
현재도 공식행정지명:백제사정, 백제 우체국
등등 많지요
아직도 미스터리한 백제사
맞습니다 일본열도는 백제담로였다가 일본으로 국명을 바꿉니다
오사카 근처 히라노신사 에서 일본인한테 물어보 여기 모셔진 신들 모두 백제인 후지와라 라고 말해주었음. 환단고기 내용과 일치. 부여의 의라왕이 오사카왔었고 백제가 망한후 오사카로 유민이 왔었다는.. 근데 이런내용 식민사학자들이 알면 또 난리 칠텐데 어쩌지요?
@@junsooify
히라노신사 제신들이 백제 왕 혹은 백제인이라는 사실은 에도 시대 저명한 국학자인 한노부토모(1775~1846)가 그의 저서 『번신고』에서 증명했고
동양사학자 나이토 코난(1866~1934)도 『긴기 지방의 신사』(1930)에서 같은 주장을 했다합니다.
@@bleee1 근데 일본극우는 왜싸가지가 업나요?
고조선문명부터 다시 시작해야할듯..일제시대에 불타 없어진 수많은 고서에 답이 있을것 같은데 안타깝네요. 나라팔아먹은 인간들의 후손들이 역사계를 장악하고 있으니..ㅠㅠ
조선시대 때 수서령이라 캐서 한민족의 수많은 고서들을 다 불태웟다 역사 좀 제대로 알어라 한민족의 역사를 파괴한건 조선 소중화 유교 성리학 탈레반들이다
@@공무원-i1q 수서 목록 봤나? 주자학 이념과 배치되는 책들만 모은 그 수서분과 왜적이 온 나라를 뒤져 종류별로 나눠 모조리 불태운 20만권 역사서가 같은 급이냐?
그러케요! 이런글나오면 혐한하는 실업자노무들이 벌떼같이달려드니.
@@공무원-i1q 토촥왜구집단서식지대구경북신천지조선족한ㅁㄹ 추가요~^^
분명한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실제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걸 근거로 새로운 역사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배달국, 단군조선, 고구려, 백제, 발해, 신라, 고려 ,조선 모두 새로운 검증이 필요합니다.
ruclips.net/user/c%EC%9D%B4%EB%8D%95%EC%9D%BC%EC%97%AD%EC%82%ACTV
이덕일의 역사TV 입니다.
이분이 이미 우리나라 역사를 새롭게 검증했습니다.
돈벌이용 슈렉 역사학자들이 절대 인증을 안하죠..
역사학계를 식민사관들이 다 잡고 있어서 힘들지 싶습니다.이를 반박하는 역사학자님이 계시는데 유튜브 이덕일TV를 운영하시는 이덕일 선생님이십니다.제발 일본 서기를 맹신하고.이나라를 좀 먹는 친일세력 청산했음 좋겠네요
삼국사기 불신하고... 일본서기 맹신하는.. 어찌 웃지 못하는 주류사학자들은...😡
그러니까요,,, 전부 다 싹!!! 갈아엎어야 할 거예요.....
다는 커녕 지금 이땅도
ㅠㅠ
책보고 입니다. 해당 링크의 제 영상을 반드시 시청해주시고, 전체 영상을 보셔야 훨씬 이해가 쉽습니다. ruclips.net/video/eXZd1kj45ao/видео.html
나무 원산지가 쓰리랑카이고 코끼리가 보이는것 화려한장식등 인도물건처럼보이내요
안녕하세요 최근 사이트를 알고 구독중입니다. 내용을 잘 정리해서 전달하시는 능력이 훌륭하시네요. 제 아래 댓글 꼭참조해주세요. 저와 개인적으로 아무관계가 없는 개인연구자 분입니다.
난 일개 무명의 시민이지만 대학교에서 배우고 또 역사학도로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생 교수등은 진짜 크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웅대하게 번성하고 위세 작은 게 아니었는데 또 증거 뚜렷한데 니들 모두 뭘 보고 배우길래 침묵하고 거짓말을 지껄이나.....
니놈들은 만고역적이다.
참으로 분하고 슬프다.
우리 역사는 학문은 몽땅 다시 써야 하고 다시 정립돼야 할 것이다. 진짜 이젠 우리 역사 우리 땅을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쪽팔리고 체면 상하니까 그러지 않을까요?
설령 자기가 틀렸다는걸 알아도 이미 수십년간 제자들에게 그렇게 가르쳐왔으니
친일 매국노 카르텔이
지난 100년간 장악해온
대한민국 (역사) 교육을
이제는 배달겨레 백성들이
되찾을 때가 드디어 왔다 !
역사부터 먼저 바로 잡고
언론, 정치, 사법부, 경제계 등등
하나씩 동시다발적으로 원상복구 시켜야 할
시간이 드디어 100년 만에 돌아 왔다 !
경축 남북평화통일 2025 !
@@yoshitsune1184 ...전세계 거의 모두를 점령하고 영원할 거 같은 몽골....어디갔니? 멍청한 질문 좀 하지마라....ㅋㅋㅋ
@@yoshitsune1184 ...원나라 몇년이나 유지했니? 고구려는? 좀 깝죽대지 말거래이? 정신차리라고?
@@yoshitsune1184 그리고 ...고구려는 당나라에 한번에 멸망당한게 아니란다...아그야.....ㅋㅋㅋ
내 세세히 일러줄 이유도 없고....니 알아봤자 아득바득 뎀빌거...꿀밤때리기도 뭐하고...ㅋㅋㅋ
잠이나 쳐 자그라.
안타깝게도 옛 고서들이 우리에겐 남아있지 않지만 일본 국내청 서고나 신사 등에는 많이 남아있을것 같습니다. 일본에도 극우파가 아닌 시민단체나 학자들이 있으니 이들과 협력하여 고대사를 되찾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현재 삼국사기 중국25사만으로도 한국의 왜곡된 역사책을 고치기에 충분합니다. 역사학계에 자리잡아 변치않은 친일파들이 문제입니다. 일본으로부터도 꾸준히 지원을 받고있습니다
@@booksbogo 한국 역사계에 친일파가 어딨낰ㅋㅋㅋ다 북한돈 먹고 큰 종북사관 새끼들 뿐인뎈ㅋㅋㅋㅋㅋㅋ
@@booksbogo 다른 학자들 견해로 25사도 왜곡된게 많다고 하는데 뭐가 진실인지 와닿지 않네요. 우리 선조들이 기록을 잘하였다고 하는데 조선시대 수서령 말고도 일제가 1910년 강제병합 후 제일먼저 우리 역사관련 사서들을 수거하여 모은게 51종20만권을 제외하고도 사서및 도첩등 국보급 유물을 가져간게 수만점에 이른다하고요. 나머지 사서를 고르고 골라 학자들이 재편하여 최종적으로 총독부 승인및 감수를 걷히는 과정을 통하여 오늘날 국사가 되었네요
@@센겔열역학 ㅉㅉㅉ 부역자 후손이심?
@@센겔열역학 북한 돈을 누가 받았는지 근거를 제시바랍니다.
받은게 확실하다면 국가보안법 위반이군요.
선조님 말씀 **
도둑질 하지마라
거짓말 하지마라
비루하게 살지마라
인류 역사이래 지금까지
동이 한국인 선조님 역사를
누가 붓질 하였는지 지구 끝까지 찾아내는 그날까지 **
대한국민 만세 **
일본왕실 서고에 거의 모든 우리역사책 있다고 생각됨
미국 대학에서 소유중인 고서들
목록도 확인이 가능한가요?
멋진 설명이십니다. 진짜 놀랍네요~
백제 의자왕 바둑판의 재료(자단, 상아)를 보거나 새겨진 무늬(낙타, 코끼리 등)을 보면 백제가 재료를 외국에서 수입한게 아니라 동남아에 설치되어 있던 담로로 부터 가져온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흥해라! 흥해라!👏👏👏👏
감사합니다!
지금,만들어도,,저렇게,정교하게 하기가 엄청 힘들겠네요,,,
예 손재주들이 엄청납니다. 작동까지 다 되게끔
문화는시대상을나타내는대 정교하고 아름다운바둑판만봐도 그나라가얼마나잘살았고문화수준이높았는지 알수있겠네요
역시..책보고님^^
국민이 일어서야 할때인듯? 우리 자녀에게 역사를 가르쳐 학교에서 선생들에게 반박할수 있는 자녀를 키워야 할때. 현 중국 역사날조 하는것 보면.
국민들이 점점 더 깨달아 가고 있어 보입니다.
이렇게 애써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감사하지요~^^!!!
포르투갈 스페인이 전세계에 식민지 건설했듯이 수 당이 나오기전에 5호 16국 시절에 신라 고구려 백제가 중국에 식민지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죠...
과대망상도 적당히
역사서 교차검증하면 쉽게 알수
있는데 ㅎ
질 떨어지네요
개소리하고 있네.🤣
@@gilmore7091 뭐가 개소리인지 말해줄래여?
@@김상민-f9p 그 조작많은 역사서를 ㅋㅋㅋ 고
교체 검증? ㅋㅋㅋㅋㅋ
저시절 물건이라고 해도 어쩜저리 잘만들어 놓았을까
네 보관 참 잘했습니다 당시 플라스틱만 없지 나무와 철기주형으로 움직이게 별걸 다 만들었습니다
일제시대때 잃어버린 역사들을 다시 되찾기를...
@@나만의하루-x8s 팩트를 때리면 우야노.....
문무대왕이 자신은 흉노 투후김일제의 후손이라고 새긴 비석을 후손인 조선후기의 유생들이 반으로 쪼개버렸지요. 참으로 못난 놈들
일본뒤에 딥스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중국에 사대하느라 중국영토의 역사를 지우려고 했다는데 ㅠㅠ
언젠가 기필코 되찾아 와야 할 우리의 문화재입니다
저건 약탈한게 아니고 백제왕이 선물로 준건데 어떻게 찾아옵니까??
뜨겁습니다,감사합니다
그런 유물을 이어받고 보관하는게 중요한데 우리는 왜 그런 전통을 이어서 계승을 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섬나라 라서 외침이없었기때문아닐까요 우리나라는몽골침략으로 황룡사구층목탑이소실되었구요 임진조일전쟁때많은 문화재가불타거나 약탈해갔지요 한일합방후 노골적으로왕묘를파헤치고문화재를훔쳐갔읍니다 경부선공사현장에서 수많은고려청자등부장품을가져갔다고합니다 한일관계청산은 우리문화재 반환부터 시작되어야합니다
대한민국이 독립을 못했다면 일본은 현재 중국이랑 백제역사를 가지고 영토분쟁을 하고있을 수도 있겠네요 백제의 역사를 언제쯤 회복할 수 있을까요
우리조상의 유물을 우리가 자유로이 볼 수 없다니..
외부강연을 두번째 들어면서 요기도 찾아왔어요.. ㅎㅎ
어서오세요
웅진>비성>사비성
소름 완전 똑같다
대륙에 있어야 완전 똑같음
서양 해적이 1000척이 넘는 배를
가지고 도둑질하러 다닙니까?
와~ 바둑판 정말 멋지네여.
역시 우리 조상님들은 대단 하셨어요~♥
새롭네요 점 점 빠져드네요.
엄청난 영상들 계속 업로드됩니다 구독 알람준비하세요
탐라가 담로에서 유래된 명칭인 것으로 연결이 되면서
제주가 백제의 땅이었구나를 자연스레 생각하게 됩니다.
제주에 살면서 궁금했었는데 이제사 실마리가 잡히네요
백제는 예전에 백제라 발음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주도를 예전에 탐라라 했다고 하니까
제는 탐라 담라 담ㄹ 뭐 이렇게 비슷하게 읽었겠죠
한자로 표기하면서 제가 되었겠죠
다시 되찾을수다면.....생각만으로도 기쁘네요...
매번 놀라운 자료 잘 보고 있습니다. 혹시 지도 공유 가능할까요?
막 사용하세요 널리널리 우리의 것입니다
지도 다운 받을 수 있나요?
커뮤니티 혹은 coo2.net 고지도 다운실에 있습니다
저나무가 현재도 가장 비싼나무에요
잘알고 계시네요 오랜시간 저리 튼튼하네요
명사 담(담장)과 방언 땀(근방,주변)의 뿌리는 담로의 "담"이 아닐까 싶습니다.
담로의 "담"은 구획이나 부분을 의미하고 "로"는 땅을 의미한다면
백제의 담로는 중국에서 말하는 제후국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라는
야무진 상상도 해보게 됩니다.
진짜 중요한 문화재는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일본
이나라들이 갖고있다
중요한것은 그들이 결코
깊이 감추어둔 이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는것이다
그들의 장난질이 들통나기
때문인것이다
인류사를 그들이 엉망으로
만들었다는것이 탄로나면
지구촌이 발칵 뒤집실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재미있네요.
이렇게 큰 나라 였다니 놀랄일입니다
중국.일본놈들 정말 화납니다
이렇게 대단한 한국을 지금의 작은 한국으로 역사를 작게 표현하여 한국의 위대함을 죽여 놓았군요
그래서 한반도에 백제왕들의 무덤이 없음.
영상잘보았습니다.787년전 한반도에는 어떤 국가가있었는지
고대국가 유물이 발굴되는것과 가야국의 유물이 출토되는것 또한 궁금합니다.
타 링크된 영상에서 설명하였습니다~~ 시청부탁드립니다
저는 처음 듣네요 "맥제" ~~ 오호...신기하네요 맥족이 고구려라고 들었는데
주몽의 비, 고구려건국을 도왔던 소서노의 아들들이 맥제,백제를 건국합니다. 다같이 맥을 잇고 있습니다
일제시대때 다 털어간거죠. 경주에서 달구자 수십대로 3달열흘 털어서 구미 왜관으로 털어 가다가 석굴암도 털었는데 무너질것같아 중단 했다 경주에 사셨던 돌아가신 어머님 말씀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는군요...
정말 아름답고, 수준이 높았네요 백제의 문화의 문화재는 ㅎㅎㅎ
우리가 아는 북망산
장안의 화제의 장안도
친구따라 강남 간다에 강남도 서울 강남이 아니라
다 중국에 있는 지명
삼국중에 젤 작아 보였던 나라가
고구려 신라에게 안먹히고 당당히 버티고 있었던 이유가 다있었음
후에 백제특집 한번 하겠습니다!
@@booksbogo ㄳ합니다
와 충격입니다 쇼크 오네 ㅋㅋ
그럼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건 도대체 뭡니까? 전라도가 백제땅이라고 평생 배웠고 지금애들도 그래 가르치는데 이건뭐 반도에 가둬놓은 역사야? ㅋㅋ
진짜 생각의 틀자제가 흔들린다
역사교육의 편협과 사실의 확장 가능성 사이에서 오는 소름과 흥분감 ㅎㅎㅎ 와우
백제란 나라가 진짜 해상제국이었다는게 느껴진다
놀랍습니다.
허기사 7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움직임을보면 이런 쪼맨한 반도에서 살아가고있다는게 신기하긴했었네요.
그니껜 맹그는거보다 지키는게 더중요한거임.
🍀🍀🍀🍀🍀
러시아 바이칼호수 부리야트 공화국이 부여다. 부리야트인들은 자신들이부여국의 후손이고... 부여국의 계파인 코리족이 고구려 세웠다고 말한다.
전원철 박사님도 그리말씀하셨지요
우리나라 고대사의 비밀이 정말궁금하네요..
바둑알하나하나가 보물이네
빼앗긴 잘못이 80% . 국민이 나라 구할때다, 멍청하면 나라살림 거들난다,
역사학자라고 이름을 날렸던 사람들 전부 이름까지도 다 싹 날려야 할듯
정창원의 세계 正倉院の世界 しょうそういんのせかい발음 좋으세요.
지귀한 내용 강사해요
캐나다에도 런던시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대륙의 영토에서 축소되어 한반도에 그 동일한 지명이 남게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잃어버렸는지를 알면 답이나온다.
중국 공산당이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동이족과 고구려 및 한민족들과 관련된 모든 자국의 지명들을 바꾸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조상의 옛 영토를 추적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영상에서 보여주신 중국의 옛지도들이 차후에 우리가 조상의 역사를 추적하는데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중국 본토의 옛 지도들이 사라지기 전에 수집해야 하겠습니다. 각 지역 대학 도서관이나 연구 기관들 및 고서적방 등에서 찿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면, 당이 명령을 내리면 이와같은 역사자료들을 없애는 것은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열도 침몰할 때 우리문화재 구조 뜩수부대를 파견해야 할 이유다.
근데요..지명하고..그지명에 잠들어있는 유물하고..모든 기록이 일치해야 비로서 명백히 증명 되는 것인데요..
지금 지명은 일치 합니다.
그러면 중공 현장에가서 유적을 조사해봐야합니다.
그래서 증거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남겨진 유민들과..그 터전을 되찾아야 합니다.
중국 화교가 말하기를 그런곳에 안내하기만 해도 사형이라네요. 저도 들은 이야깁니다.
문화대혁명은 중국역사가 아닌 우리 역사자료들을 없애고 부순게 맞음
@@희주-x7k전 분서갱유도 그런게 아닐까 의심함.
@@청천무 분서갱유는 유방이 진시황(동이족이란 말 있던데)을 음해하기 위해 만들었다던데 가능성 있는 얘기 같네요
중국애들이 퍽이나 협조해주겠다
그놈들 하는짓보면 날조가 도가 든놈들인데
임진란과 근세 침략시 노략질 해간 것들 ㅡ 언젠가는 모두 회수해야한다.
1,400여년전의 백제의 정교하고 아름답고 뛰어난 기술을 보니 얼마나 뛰어난 민족이였는지 정말 놀랍습니다. 대만 박물관에 가면 엄청난 중국의 유물들이 다 옮겨가 있다고 들었는데 결국 우리 선조들의 것이였을것 같네요. 고구려, 백제, 신라 우리 선조님들
목화자단기국~♥
삼국 시대 때 인도 이런데랑 교류 했으니까. 신라 때 이슬람 애들도 왔었다는데.
이게 현지에 살고 있는 인프라를 구성하여 규모화하여 연구하면 좋을듯
동영상 몇개 보앗는데 너무 충격적이라...어후..
일제가 만들고 친일파가 이어받은 한국사!
@@booksbogo 제가 황영필 선생님꺼도 자주 보는데 그분도 진심으로 하시는분 같은데 이런 주제는 없던거 같은데 혼란스럽네요
@@booksbogo 황형필 ;;
다 알고있는데요
그안에는 우리나라
국보는 B급에요
최상급 국보는 그안에
다있다는 사실~~
너무 한스럽네요~ㅠㅠ
7:30 이와지시마가 아니고 아와지시마요~ 淡路島
아와지 ..아이코 그렇군요 추후 항상 조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니까 얼마나 일본 애들이 한국 와서 눈이 돌아갔을까요. 그러니 죄다 가져갔지. 그리고 나서 아주 꽁꽁 숨겨놓음.
저런바둑판이있다면 분명히 기보도있을껀데 그건왜안보이는건지?
진귀한 내용
저 코끼리가 뚜껑에 있는 금, 은 새긴 검은 옻칠 케이스, 미얀마에서 지금도 비슷한거 팔아요. Burma lacquer. 다른 다리의 동물 디자인도 비슷합니다. 거기서 바둑을 알리는 없고 22 담로에서 oem, 주문 생산한 것인듯하네요.
Oem !!!
금동향로가 남조와 깊은 관련이 있고 해동공자라는 표현이 뭔가를 이야기해주는데 근초고왕의 소금장원, 무왕의 금마저가 단서가 되지 않을까요? 고구려의 미천왕도 소금장수고요. 검은 없었나요?
향로는 남조와 관련이 없습니다 추후관련 내용올리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금은 사실 당대의 부를 축조하던 재산입니다.
조선시대때 이순신도 이로써 식량을 조달하였고
고려,신라때 또한 제일 물목의 대상이었습니다.
@@booksbogo 아 남조시대로 추정되는 향로들과 엇비슷하던데 관련이 없다면 흥미롭네요. 청나라가 한족을 지배하는 과정에 이러한 역사서들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18세기 조선의 국학 일본의 국학 정한론이 한족의 문화를 정리하고 다른 한편으로 제압하고자 사고전서를 비롯 모종강 삼국지 그리고 만주원류고와 같은 뿌리 찾기까지 방대한 작업이 있었고 그러한 분위기가 조선, 일본에도 나타난 것 아닐까하는 의문을 가져봅니다.
처음 접하는 사실이라 혼란스럽네요.
그렇다면 현재 중국의 옛 백제영토에서
공주,부여 그밖에 담로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 유사한 유물들이 발견 되고있는건가요?
맞습니다 무녕왕릉과 동일한무덤들이 넘치며 중국은 55년만에 망한 양나라꺼라고 주장합니다
@@booksbogo 마지막 왕도가 대륙에 있었다면 의자왕이전 무령왕릉은 왜 공주에 있었던 것일까요.
무령왕도 담로의 제후왕인가요.
아니면 백제왕이 여기저기 살다가 의자왕이 마지막에 대륙에 있었던 것일까요
@@taeyeonjeon 고구리사략이라는 박창화선생님이 일본황실서고에서 몰래 필사한 역사서에보면, 삼국사기에는 없는 무령왕 피살사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무령왕 첩이 시기하여 무령왕을 피살하고 그 아들 성왕이 아버지죽음을 감추고 왕에 올라 3년을 보내죠. 무령왕릉에 자세히보면 참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을정도로 정식 왕릉이라기에 많이 부족합니다. 광개토태왕릉과 비교해서도 의아한 건이 많지요. 장수왕때 광개토태왕 아버지묘를 안장할때 영락 호를 쓰고, 이름을 거론하지않는데, 무령왕에는 호가 아닌 이름 사마를 쓰고있고, 또 사마의 "마"자도 한자도 다릅니다. 그리고 글자도 무슨 초등학생이 휘갈긴 정도로 대충 쓴 글씨일정도로 한 나라의 왕묘같지가 않지요. 또한, 실제 무령왕릉 지석에서는 묘지땅값에 쓸 돈다발이 나오는데, 왕이 자기땅에 무슨 돈을 지불하겠습니까? 여기까지보면 어떤 추론에서 얘기한, 아들 성왕 눈치를 보던, 무령왕 충신이 당시 대륙백제땅이 아닌, 백제 담로중 한곳이나, 아닌 제3의 땅(한반도 공주)에 몰래, 급하게 만든 묘지가 아니냐라는 추론도 있는데,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고구리사략의 일식기록도 실제 고구려나, 백제,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합니다.문제는 고구리사략이 현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나오지않는 더 많은 방대하면서도, 중국역사서와도 일치되는 내용이 많은데, 현 한국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낙화암 3천궁녀 의자왕하면 떠오르는 단어... 의자왕을 폄하하려는 일본사관들의 전략이겠지요?
낙화암 그렇게 좁은곳에서 3천명의 궁녀가 강물에 몸을 던지다는게 말이 되는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우리가 활을 만들때 사용한게 물소뿔인데, 물소는 한반도에는 있지도 않았고 중국 남부 지역에서나 보던 동물임. 수입해서 썼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많은 물소뿔을 수입했다는건 말이 안됨. 국가의 가장 중요한 무기를 만드는걸 해외에 의존했다는건 말이 안되거든. 이치에 맞지 않으면 의심을 하는게 정상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정상적인 사람이 많지 않은거 같다.
네 맥궁,, 맥족 맥제, 맥고구려입니다
우리나라꺼 돌려 받아야 해요..
오늘 백제문화단지 갔다왔는데...일제 강점기때 문화재가 얼마나 많이 약탈 당했을까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는데 돌려 받을 수 는 없겠죠...
고대사는 한일이 거의 공유되어왔죠...가야.백제.신라등 이미 일본에 영토를 가지고 있었고 일본토착민 죠몽인 조져가며 기득권 가져간거고..어찌보면 이렇게 일본을 먹고 다시 그 가야백제신라등 후예가 한국을 먹고 이런거고...일제때 문화재를 가지고 가고 싶어하는건 당연한거고 당시 ㅄ조선은 조선왕조실록외엔 고대서엔 관심없었습니다..쭝궈에 사대하는 조선에겐 고대서는 독이니까 가져가던 말던 냅뒀다는건 모르나요???물론 현대에 와서는 다 가져갔다 ㅈㄹㅈㄹ하죠...머 이것도 당연하겠지만 그 시대의 관점을 현대의 관점으로 보는것도 웃기다는거...그리고 일본에 문화재가 있다는것도 당연한거죠...그 열도에 이미 백제.신라.가야가 있었으니까...거기에 조선은 우리문화재 개판으로 관리했지만 일본은 철저히 관리해왔죠...탓을 하려면 먼저 ㅄ같았던 조선을 탓하고 그다음 일본을 욕하시길...한국사람들은 역사를 ㅄ같이 배워서 항상 피해자 코스프레만 하니참...
@@mrperfect9963 뇌피셜이 엄청나네..
@@홍익인간이되라쫌 수준이 다른거겠지...
맥제(=백제)
고구리(맥족) 정통성을 이으므로 '맥제'라 한 것이고, 부여(부리) 정통성을 이으므로 성을 다 '부여'라 해서 '부여풍' ''부여융' 등 왕들 이름이 다 '부여씨'였다. 사비성에서 망할 때 나라이름도 '남부여'였다. 부여국과 맥족(고구리) 정체성을 가진 나라였다.
1. 1400년 버텨온 백제유물 목화자단기국(木畵紫檀棊局)
일본 나라현의 도다이지(東大寺) 창고 쇼소인(正倉院)에는 1400년 된 백제와 신라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다. 법당내에는 신라의 주공들이 만든 높이50m, 10m의 청동불이 있고, 신라의 보물이 비파, 가위도 있다.
그 중 660년 경 의자왕(641-662)이 당시 일본실력자인 내대신(內大臣) 후지와라 가마타리(藤原鎌足)에게 선물했다는 바둑판은 백제의 백미다. 굉장히 단단하고 내구성이 좋은 스리랑카산 자단(장미목)으로 튼튼하게 만들었다. 바둑판 양옆으로는 코끼리,낙타 등이 상아로 새겨져 있고, 바둑알도 상아로 만들어져 국제적 세력과 문화가 집합된 백제문물의 우수성을 보여준다.
흑기자(黑棊子)=감아발루기자(紺牙撥鏤棊子), 백기자(白棊子)=홍아발루기자(紅牙撥鏤棊子)라고 일컫는데, 코끼리 상아에 특수기술로 감색과 홍물을 들이고 양면에 꽃가지를 입에 물고 날아가는 새(吉鳥)를 아로새겼다.
바둑을 둘 때 바둑알 뻬닫이가 서로 함께 열리고 닫히게 되어있다.
2. 중국 전주와 한국 전주 판박이~~
전주 안의 기린불, 완산, 화산, 안덕, 태명 등 지명까지 꼭 닮았다. 본디 신라땅이던 대륙 전주의 지명을 전북 전주에 그대로 이식한 것..
3. 광저우 백제허
홍콩, 마카오에서 현재까지도 '백제'라는 지역명이 쓰이고 있다. 중국 남녕시 백제진 '백제허' 지역에 남아있는 백제흔적이 TV에 방영되기도 했다. 이곳은 에 적혀져 있던 백제 22담로 중 하나이다.
4. 중국본토수복용 대만군사지도(1964)
산동반도 태산 아래에 백마강과 사수(사비성 소재)가 있고 백마강은 황하와 만나는데, 그곳에 '황산'이 존재한다. 갯벌이다. 백제 계백장군의 5천 결사대가 바로 이 갯벌 '황산벌'에서 신라 김유신군과 마지막 일전을 벌였다.
사서에 "태산의 서쪽이 웅진"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딱 맞아떨어진다. 작은 곰은 '웅'이지만, 큰 곰을 나타낼 때 '곰 비肥(살찔 비)' 자를 쓴다. '肥성'이 바로 '곰성'='웅진성'!!
백제 패망뒤 백제왕자 부여융과 신라가 만나서 "너희는 평생 신라의 노예국이 된다"는 서약을 했던 곳 '백마관'도 지도상에 보인다.
역사 배울 때 '금강'이라 배우곤 하는데, 어떤 사서에도 '금강'이라 적힌 데가 없다. 다 '백강'이라 표시되어 있다. 반도사학이 유일정통사학으로 굳어버린 대한민국 역사계가 제맘대로 "'백강'이 '금강'이려니~" 하고 스스로도 속고, 민중도 속이는 거다.
1. 일본의 딴지
자단이 동아시아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고, 바둑판 옆면을 상아로 상감한 낙타와 같은 서역이나 남방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의 그림으로 미루어 서역과 교역을 하고 있는 당나라제일 것이라고 일인들은 주장한다. 설사 백제에서 건너온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당나라에서 만든 제품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백제의 작품임이 틀림없다. 가장 중요한 근거는 바둑판에 찍힌 바둑판 화점이다. 바둑판의 점을 우리는 예부터 화점(花點)이라 했다. 꽃수무늬 형상이다. 일본은 점을 쿡 찍어놓고 별점(星點)이라고 부른다. 중국은 점을 찍기도 하고 x로 표시하기도 했다. 목화자단기국의 화점은 17개다. 일본바둑의 성점은 9개, 중국바둑은 5개, 티베트 바둑은 12개다. 오늘날 한중일은 9개로 통일되었지만 우리는 왜정 강점기 때까지만 해도 조선식 순장을 두었다. 순장바둑판의 화점이 17개인 것이다. 목화자단기국이 당나라 제품이라면 그들이 그들의 전통인 점 5개를 찍었을 것 아닌가. 백제를 위해서 서비스했다고? 그들이 무엇이 아쉬워서 변방의 소국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있었겠는가. 백제의 기술 수준이 목화자단기국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일인들의 주장은 백제의 금속 세공술의 정수라 할 금동대향로와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 일축하고도 남는다.
일본이나 중국이나 목화자단기국이 백제의 제품이 아니라고 강변하면서도 17개의 화점에 대한 답변은 내놓지 못한다.
2. 한국 반도사학계
이케우치 히로시, 쓰다 소키치, 이마니시 류, 구로이타 가쓰미, 가루베 지온, 이병도-신석호 같은 일제 역사사기꾼들의 뜻을 받드는 사학계가 지금 대한민국의 유일한 정통역사학설로 '반도사학(총도부 관제사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 불리한 것(중국 일본의 역사왜곡 영토침략)은 다 받아들이고, 한국에 유리한 것(태백일사 등 고기, 삼국사기와 중국25사 등 사서기록, 일식기록 등 천문기록)은 다 내친다. 우리가 놀라운 백제유물 바둑판(목화자단기국)을 미디어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안가져간게 없구만~
실재적으로 숨겨둔 우리역사서도~
엄청 많을듯 합니다~ㅉㅉㅉ
삼국사기에서는 초기에 십제로 시작했는데 왜 백제로 바뀌었을까요?
백제가 한남국이라는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기록은 후대에 가감되어 쓰여지므로 가장중요한건 과학적검증과 교차되는 지리명칭이라 봅니다
삼국사기를 신라가 작성해서 그러나?>
@@amirhanabatamurmahkto9373 이설이 좀 일리있는것 같네요
역사 이래 우리나라의 가장 치욕은...일제 치하 무려 36년간 이죠...이 모든 원인임..
중국 사서에 일부분 빼고는
언급이 되지않은 이유가 뭔가요?
그 광활한 지역을 통치하는데
언급하는 빈도가 적은것은 설명이
되지않네요
중국 사서가 자신들의 자존심 때문에 조작된 것이란 말이 있음.
@@sohgyu 중국 사서 전체를
부정하는것은 지나친거죠.
일부는 자기 기준에서 집필한할수
있지만
@@김상민-f9p 연구자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고요. 전 중국 사서 연구해본적이 없음.
@@sohgyu 춘추필법이라고 다들 들어 보셨건데
만약 백제가 산둥반도를 점령 (잠시나마) 했을 수도 있겠지만…
1. 시기적으로 언제인지
2. 그 때 중국의 왕조는
3. 유물들은?
4. 우리나라에 있는 공주와 부여에 남아있는 왕궁들은 또 뭐며..
종합적인 고찰을 해야지..
너무 단편을 가지고 전체를 해석하려는 것 같네요!
과학적 기록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일식기록상 산둥반도에서 건국하고 망햇습니다. 지역명이 수두룩하고, 유물도 일치합니다. 추후 더 영상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과학기록증명을 무시하시나요?
@@booksbogo 그 책 나오자 마자 사서 봤고요..
현재 다시 읽고 있습니다
흉노와 가야 신라와의 관계에 대한 책도 읽고 있고요!
제가 생각하는 것은
그 책에서 주장하는 결과에 대한 제 해석은
지배계층 (흉노, 고조선 유민, 등등 북방 유목민의 유입) 유민의 이동설에 의한 것이 더 합리적 생각이 드네요 (아직 더 많은 책을 읽어서 다양한 관점의 해석을 봐야겠죠)
예를 들면
영국이 미국에 이민 많이 갔잖아요
거기에 영국 도시 이름 그대로 쓰는 경우도 많고 ‘뉴’를 붙이는 경우도 많고요
역사라는 것이 사건, 사실에 대한
해석의 차이이니
어떤 것이 더 논리적이냐가 중요하겠죠?
님은 님데로 더 많은 공부를 해서
자기 논리를 더 발전 시키길 바랍니다
백제의 팔대국성 집성촌이 다 산동지방에 있습니다. 그중하니인 国국씨 산동성 치박 쯔보시에 국씨 집성촌이 있습니다. 현재도 있는 실제행정구역명입니다. 淄博市博山区白塔镇国家村、淄博市临淄区齐都镇国家村 또한 산동 연태 옌타이시에 가면 해씨, 사씨 집성촌이 있습니다. 1, 山东龙口市解家村 2,山东省惠民县滋角镇解家村
3, 山东青岛即墨市龙泉街道解家村 4, 山东省青岛市黄岛区红石崖街道解家村.
1, 山东省烟台市蓬莱区小门家镇沙家村 2, 山东省潍坊市青州市邵庄镇沙家村
목씨도 있습니다.
山东省德州市陵县碱店乡木家村:
황산벌은 산동성 빈주의 황산벌입니다. 지금도 교통의 요지이고 평원과 黄山 교차 지역입니다.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키고 만든 5곳의 도독부: 熊津웅진, 东明동명, 德安덕안, 马韩마한, 金连금련 중에 동명은 현재의 산동성 东明县 동명현, 德州 德安县 덕주 덕안현입니다. 현재도 있는 지명이지요. 웅진, 마한, 금련은 산둥반도 외에 한반도, 중국 하북성 지명이지요.
재미있는것은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이들 성씨들이 발음이 비슷한 한자의 다른 성으로 바꿨다는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일식기록 =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
일본이 한글은 왜 안훔쳐갓을까? 어째뜬 문화제는 큰돌덩어리로 만들어야지.
백제 땅이 중국 산동에 있었다는게 맞겠네
특공대 모집합니다.
일본 가라 안기 직전에 일본 황실 도서관 털 특공대원 모집합니다
특수절도 예비죄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ㅎㅎ
출토 유물은 어떻게 말씀하실지 궁금하네요,,,
과학기록,지명기록, 다음 유물과 무덤기록을 다룹니다
중국의 날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합니다. 이젠 아예 한민족의 정체성마저 부정하는 동북공정을 하는데, 우리가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되는지.
백제의 유물 정말 아름답네요 일본이 다 훔쳐간 건가? 😢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본존을 기중하게 생각하는 나라가 강대국이다. 침략과 약탈만 당한 나라 어디?
한국 전시회를 일본 전시회로 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