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의 지역구분은 조선이나 고려와는 약간 달랐다고 봅니다. 지금과 달리 9주가 있었고 당시 상주는 지금의 상주시와는 달리 넓었고 지금의 괴산 보은 문경 영주 등 산악이 발달한 지역을 세력권에 넣었고 문화적으로 점이 지역의 특성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화북면에서 괴산 청천면 송면리를 따라가면 선유동 구곡과 제수리치가 있고 이곳을 넘어가면 바로 쌍곡이며 충주나 괴산읍 그리고 바로 음성군이고 바로 이천이나 안성으로 갈 수 있지요. 지금도 군사적인 이동통로로 활용할 수 있고 괴산에 군사학교가 들어서고 특전사나 지역방위 사단이 있어 좋은 훈련장소이며 일제때 그리고 해방공간 6.25 땐 월악산과 연결 빨치산의 근거지였다고 합니다.
성의 크기가 워낙 커지기도했고, 축성성격이 달라지는것도 있고, 통치이념이 달라지기도하고, 전략이 달라지기도했지요, 수원화성이나 남한산성 등 방어체계보면 분명 발전한부분도 있고 왜란 이후에는 왜성의 장점을 가져와서 모서리 취약점을 강화하기도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곽의 시대가 저물어가니 우리 군사체계에서 군사학이라는 학문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고려시대는 주로 삼국시대 성들을 재활용 하는 경우가 많았고 토성을 많이 쌓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산성 입보에서 읍성체제로 변하면서 거주지 자체를 지키는 방식으로 변함. 저런 신라산성들은 요충지이긴 해도 규모가 작아 조선시대에는 거의 쓸모가 없어집니다. 대전 계족산성 같은 경우는 조선시대에 봉화대로 쓰였습니다.
사적님😮 우리 역사 황족, 왕족의 연표?를 개인적으로 정리 중 입니다.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1) 건국, 멸망, 출생, 즉위, 사망 등등 각종 기록 들을 예전 시대는 대부분 음력으로 기록했나요? (2) 지금 우리가 기록하고, 현대 시각으로 해석하는 기준이 현재의 양력?으로 다시 수정? 해서 봐야하나요? (3) 가끔 율리우스력도 기록하던데.. 그레고리력도 있구요.. 사적님께서는 과거 기록들을 현재의 양력으로 바꿔서 봐야한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대부분의 자료는 연호와 음력이지요, 그래서 모든자료에는 여부를 기재되어 있습니다. 제 영상의 모든 날짜도 음력입니다, 필요한 경우만 양력으로 변환하고 양력이라 따로 기재하지요😌 당시에는 달의모습으로 국사가 진행됐기때문에 음력으로 표기해야 당시분위기와 과정과 결과를 조금더 가까이 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시청감사드립니다😌
상당한 전문가 시네요
열심히 공부하고있습니다😌
저희집 근처가 나와서 반갑네요 큰집가는길에 산성이 있어 궁금했는데 어렸을때 견훤산성이라고 아버지가 말씀해주셨고 그때 당시 태조왕건을 재미있게 보고있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심지어 지난주에도 보고왔네요ㅎ
이제 제 아들이 조금 더 크면 알려줘야겠습니다~😊
오 멋진 이야기입니다 대를이은 구전이라니요😄
초여름 수목이 초록 빛을 띨 때, 비가 많이 온 다음날 새벽에 견훤 산성에 올라보면, 속리산 사이로 안개가 끼어 반지의 제왕이 따로 없습니다.
삼년산성보다 훨씬 신비로운 모습이더군요.
근처의 화북도 십승지의 하나일 껍니다.
답사할때는 겨울
온전히 과거를 느끼고 싶을때는 여름에 걸쳐 방문하지요, 우리 여름산수의 풍경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비루한 어휘력이 한스러울따름입니다😌
통일신라의 지역구분은 조선이나 고려와는 약간 달랐다고 봅니다.
지금과 달리 9주가 있었고 당시 상주는 지금의 상주시와는 달리 넓었고 지금의 괴산 보은 문경 영주 등 산악이 발달한 지역을 세력권에 넣었고 문화적으로 점이 지역의 특성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화북면에서 괴산 청천면 송면리를 따라가면 선유동 구곡과 제수리치가 있고 이곳을 넘어가면 바로 쌍곡이며 충주나 괴산읍 그리고 바로 음성군이고 바로 이천이나 안성으로 갈 수 있지요.
지금도 군사적인 이동통로로 활용할 수 있고 괴산에 군사학교가 들어서고 특전사나 지역방위 사단이 있어 좋은 훈련장소이며 일제때 그리고 해방공간 6.25 땐 월악산과 연결 빨치산의 근거지였다고 합니다.
오 자세한 덧글 감사드립니다😄
와! 천년도 전에 인구도, 장비도, 먹을것도 모든게 부족했을텐데 어떻게 저런 대공사를 했는지? 오직 가축과 사람의 손으로 했을텐데 말이죠.
적은 인력으로 얼마나 고생했을지 감도 안옵니다. 어지간한 산마다 모두 산성, 유물산포지로 가득한데
어떻게 이 많은걸 했는지 모르겠네요😮
옛날 옛적 이야기 감사합니다.
시청 감사드립니다😌
십여년 전에 저 성에 올라서 문장대 바라보고 찍은 사진을 간직하고 있읍니다. 거의 변한게 없군요. 또 다른 소백산맥의 통로인건 처음 알았네요. 잘 봤습니다.
오 멋진 배경이네요😄 법주사가 진흥왕 때니 역시 신라의성 이네요😌
상주에 살면 함 가보려고 햇는데 기회가 없었습니다. 설명듣고 가면 이해가 많이 갈것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르는 재미 답사하는 재미가 있는 성입니다, 주인공은 희미하지만, 지형학적으로 뚜렷한곳이네요😄
반도의 강산, 발품에 촬영하고 다시 편집하고 불과 몇 분에 불과하지만 그 노고가 얼마나 큰 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고맙게 잘 보고 있습니다.
좋은말씀 감사드립니다😌 짐지고 올라가는게 가끔씩 혼이 나가게 합니다😄;
아 드디어 드론촬영을 시작하셨군요.
축하합니다.
이제 방구석에서 영상만으로도
직관적으로 지리를 이해하는데
큰도움이 되겠네요.
드론이 참 좋은것 같습니다, 벌써 업그레이드의 욕구가 생기네요😄
지금도 32번국지도를 따라 괴산 청천 송면등으류 갈수있고
997번 지방도따라서는 상주용화에서 37번국도를 만나서 보은 괴산 속리산 청주로 갈수있죠
드론까지 사용한 역사적 설명 ᆢ높은 퀄리티의 영상 ᆢ진심존경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사적돌 매영상마다 열정적인 부분이 눈에보입니다 ㆍ구독자 폭발할듯 ᆢ그리되실겁니다 ㆍ
오 바라는 바입니다😄 덕담 감사드립니다다😌
성곽의 나라라는 우리나라 산성에 대한 설명을 삼국의 정세, 지형적 특징과 함께 답사로 보여 주시니 시공간적으로 이해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취향에 맞으시는것 같아 제게도 보람됩니다, 시청 감사드립니다😄
중부내륙 피해서 저 길로 가면 중간에 방지턱이 좀 많긴 한데 ㅎ 드라이브하기 좋고 예쁜 계곡도 참 많고 힐링되더라고요. 선형이 참 절묘한 가도였겠다 싶었습니다. 근처에 화령장전투 기념관도 있던데 6.25이야기도 언젠가 부탁드립니다 ㅎ
안강 포항 전투 시나리오 촬영 다 되어 있는데
한국전쟁 영상들의 조회수가 너무 충격적이라 올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6월에는 시리즈 완결하려고합니다 3-4편될듯하네요
잘보고 갑니다:)
시청 감사드려요😄
발굴작업은 멈춘걸까요?
아니면 다 끝났을까요?
넉달전 갔었을땐 인력이 많았거든요
추운데 고생하셨어요 ^^
작년 8월-12월 발굴조사했어요, 성곽이나 장대지도 뭔가 많이 나올것 같습니다😄
이제 바이크의 계절이네요
이곳은
옛부터 현대에까지 교통로이지요
방어의 장점도있지만 소수의병력
을 응용할수 있는산성중에 하나라
생각이 들곤합니다
또한 신라가견곤한 산성을축성했다면
백제를 견제하기 위함이였을가요
산성축성한 위치나 모든면에있어서 백
제의 세력권이 더큰다는 생각이들곤 합니다😊
백제도 470년 이전에는 통로로 삼았을만한곳이네요😄
또 다른 탐방지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 시청 감사드립니다😌 다음영상에서는 세종대왕 태실 모셔오겠습니다
저 시대 성곽은 저렇게 대단한데 어떻게 갈수록 낮아지고 형편 없어지냐고...
성의 크기가 워낙 커지기도했고, 축성성격이 달라지는것도 있고, 통치이념이 달라지기도하고, 전략이 달라지기도했지요,
수원화성이나 남한산성 등 방어체계보면 분명 발전한부분도 있고
왜란 이후에는 왜성의 장점을 가져와서 모서리 취약점을 강화하기도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곽의 시대가 저물어가니 우리 군사체계에서 군사학이라는 학문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고려시대는 주로 삼국시대 성들을 재활용 하는 경우가 많았고 토성을 많이 쌓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산성 입보에서 읍성체제로 변하면서 거주지 자체를 지키는 방식으로 변함. 저런 신라산성들은 요충지이긴 해도 규모가 작아 조선시대에는 거의 쓸모가 없어집니다. 대전 계족산성 같은 경우는 조선시대에 봉화대로 쓰였습니다.
안녕하세요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대본 구성이 상당히 문어체적인 것 같습니다. 구어체스럽게 풀어서 비정 초축 등 이런 단어들말고 최대한 쉬운 단어를 쓰면
비전공자도 조금 더 재밌게 볼 것 같아요.
의견을 한 번 드려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처음에 쉬운단어로 썼더니 많은분들께서 성토하셔서🥲 부득이하게 쓰고있습니다. 대중성을 높이기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쓰는데 족족 비추로돌아오니 이게 참 어렵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더욱 쉽게 가려합니다😄
견훤산성에서 조금만가면 밤티재고 밤티재넘으면 상주 용화 보은 괴산..
그리고 견훤산성에서 바로 괴산으로 갈수있죠 청천면
속리산 가는길, 예전에는 많이 갔었는데 요즘은 통 못갔네요😄
속리산 청화산 대아산 사이가 십승지라해서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이 손꼽은곳이죠
이중환은 청화산을 좋아해서 호도 청화거사죠
오 영상에도 나옵니다😄
최근에 발굴조사가 있었나 보군요. 제가 방문했을 때엔 구름에 속리산이 가려 온전한 경치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23년 8월-12월 조사했습니다. 골짜기 건물지와 우물 했고, 초석은 있는데 기와가 없는 고려시대건물 2곳과 석축으로 보강한 우물, 신라 초기 기와들이 나왔습니다😌
원주에도 견훤산성이 있습니다.
오 은행나무 옆에 있지요 😄
외진곳이라서 그런지 다행히 성벽이 온존하네요😊
상태가 아주 좋지요, 더 무너지기전에 보완해서 탐방지로 삼으면 좋을것 같습니다😄
여기 지금도 교통로죠
보은과 괴산 청천가는길이죠
딱 견훤산성 앞에서 갈라지지요😮
견훤하면 떠오르는 것이 삼국유사에 나오는 지렁이 설화인데 일본의 고사기(712)에 나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삼국유사의 설화 중에는 이처럼 일본에서 발견되는 것이 좀 있는데 연대상 열도에서 반도로 온 것이라고 봐야지요.
그 중에는 수로왕 설화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시조가 별개로 나오는 가라와 남가라가 삼국유사에 와서 6 가야의 시조가 같다는 이야기로 부풀려 진 것은 역사적 사실로 보기 힘듭니다.
□□가야란 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시청 감사드립니다😌
go to moon
사적님😮 우리 역사 황족, 왕족의 연표?를 개인적으로 정리 중 입니다.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1)
건국, 멸망, 출생, 즉위, 사망 등등 각종 기록 들을 예전 시대는 대부분 음력으로 기록했나요?
(2)
지금 우리가 기록하고, 현대 시각으로 해석하는 기준이 현재의 양력?으로 다시 수정? 해서 봐야하나요?
(3)
가끔 율리우스력도 기록하던데.. 그레고리력도 있구요.. 사적님께서는 과거 기록들을 현재의 양력으로 바꿔서 봐야한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대부분의 자료는 연호와 음력이지요, 그래서 모든자료에는 여부를 기재되어 있습니다.
제 영상의 모든 날짜도 음력입니다, 필요한 경우만 양력으로 변환하고 양력이라 따로 기재하지요😌
당시에는 달의모습으로 국사가 진행됐기때문에 음력으로 표기해야 당시분위기와 과정과 결과를 조금더 가까이 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