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24] 3차 전쟁 개전! 초반은 소배압의 압승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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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9 сен 2024
  • 우리의 역사 조선왕조실록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전달하기 위해서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영상을 제작하면서 실제 내용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축약하거나 추가한 부분이 있으니 그 점 양해 바랍니다.
    영상 내 오류나 기타 수정해야 할 사항이 보이신다면 댓글을 통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후 제가 모아서 고정댓글에 게시해 다른 시청자분들이 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훗날 종합본 영상을 만들 때 수정사항들을 반영해 더 좋은 영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BGM]
    메이플스토리 BGM 호영 - 괴력난신
    메이플스토리 BGM 호영 - 선유산기슭
    메이플스토리 BGM 아랫마을 - 금지된 절벽
    메이플스토리 BGM 고스트파크 - 고스트하우스
    메이플스토리 BGM - 까막산
    메이플스토리 BGM - 미남법사의 사원
    메이플스토리 BGM - 퀘스트 중 긴급상황
    메이플스토리 BGM - 네트의 피라미드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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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플스토리 BGM - 에레브 수련의 숲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엘리니아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흩어진 시간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거상 BGM - 조선 필드
    BGM팩토리 - 보드게임의 세계 - 장기
    [참고서적]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 박시백 / 휴머니스트
    '조선국왕 이야기' - 임용한 / 혜안
    '조선왕조실록 1 태조~세종 편' - 이성무 / 살림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박영규 / 웅진지식하우스
    '1분 조선왕조실록 1: 태조~태종' - 정명섭 / 21세기북스
    '왕, 왕비, 참모로 산다는 것' - 신병주 / 매일경제신문사
    [참고자료]
    (유튜브) 최태성 1TV - 전설의 한능검 고급
    (유튜브) 황현필 한국사 - 조선사
    (유튜브) 임용한TV

Комментарии • 102

  • @2345pok
    @2345pok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8

    현종이 점점 성장한듯합니다

  • @kimjh_mathedu
    @kimjh_mathedu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8

    재미있는 영상과 함께 자세한 설명 제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 드라마 고거전 보면서 김훈·최질의 난까지 너무 많은 회차가 방영된 것 같아 어제까지 방영한 것을 포함해 남은 4회 동안 3차 전쟁 과정이 다소 흐지부지될까 우려되지만, 보충 영상으로 시청하기에 너무나 좋은 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 @sonson4320
      @sonson432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4회 남았어요?
      이제 시작인거 같아은데~
      설마 .
      강조, 최질만 기억에 남는건가요

  • @user-li6uk7hg4l
    @user-li6uk7hg4l 6 месяцев назад +76

    소배압이 마지막 침공때 펼친 무모하게 보이는 기동전을 펼친 이유는 지난 3번의 공방전의 교훈으로 나온 건데..
    그걸 나레이션 몇 마디로 퉁치고 넘기다니..진짜 제작비 부족보다는 연출과 작가의 역량 부족이다..

    • @inseopshim590
      @inseopshim59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오호리 드라마 이야기 아닌가요??

    • @user-ef1mx1xf8l
      @user-ef1mx1xf8l 6 месяцев назад +8

      ​@@오호리난독 어쩌면 좋아요

    • @HanwhaEagles-
      @HanwhaEagles- 6 месяцев назад +9

      @@오호리 누가봐도 드라마 까는 글인데 왜 여기서함 ㅇㅈㄹ하노 같은 고려거란전쟁 다루니깐 이야기하는거지

    • @user-wh5yc9uq9p
      @user-wh5yc9uq9p 6 месяцев назад

      ㅋㅋㅋㅋㅋ😂

    • @user-xp5ll2tt3w
      @user-xp5ll2tt3w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오호리존나 멍청하네 ㅋㅋㅋㅋ

  • @user-nl2vc5yj5e
    @user-nl2vc5yj5e 6 месяцев назад +9

    멋진 영상과 함께 활기차게 출발합니다 (오늘도 화이팅)😂😂😂

  • @user-comfortable_sound
    @user-comfortable_sound 6 месяцев назад +9

    준배압 인생캐릭터 경신
    조폭보스 전문배우였는데
    연기 스펙트럼 넓힌건 배우로써의 최고의 발전이지

  • @user-dm9xg4ff6t
    @user-dm9xg4ff6t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경험은 역시 무시못하는거 같습니다 현종이 성군이 되기까지 어려운시련을 해처나오는 모습이 배울점인거같습니다

  • @happyend449
    @happyend449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4

    수공이 사실이었고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면 발목이나 종아리정도 잠기지않았을까합니다.
    그정도만 되도 병력기동이 힘들고 그 겨울에 갑자기 찬물이 들이닥친다면...

    • @user-ix1le6cy5b
      @user-ix1le6cy5b 6 месяцев назад +6

      그거면 엄청난 성과임 한겨울 그 찬물에 발만 담궈보셈 지옥이 따로없음ㄹㅇㅋㅋㅋㅋ

    • @minakim8754
      @minakim8754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거란이 툭하면 고려를 공격해 왔을때가 강이 얼어붙는 겨울이라고 하니까 아마 강감찬 장군께서도 그 점을 노려서 소가죽으로 강물을 틀어막으면서 병사들과 얼음을 부셔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멍청한 소배압은 평소대로 아무 문제없이 얼어붙은 강을 건너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일텐데 이걸 보면 강감찬 장군의 세심한 전략, 지략이 대단하신 듯. 그래서 전쟁은 무신의 싸움 기술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고 했나 봅니다. 강감찬 장군의 지혜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현종께서 그를 상원수로 임명, 전쟁터로 보내셨겠는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 @user-jv3mg6ny1o
    @user-jv3mg6ny1o 6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이 채널… 너무너무 좋습니다~

  • @user-dp8xs5do9s
    @user-dp8xs5do9s 6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저때 겨울전투라 얼마나 추웠을까..

  • @Life-bx1eb
    @Life-bx1eb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30만에 가까운 병력인데..
    개경에는 고작 5백이라니;;

  • @user-byuljeonnam
    @user-byuljeonnam 6 месяцев назад +9

    근데, 거란의 모로가도 개경전략은 이미 2차 때 겪어서...
    정신적 충격이 비교적 덜 한 것도 있는 듯하네요...

  • @user-ji2mm6pk7q
    @user-ji2mm6pk7q 6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이놈의 드라마는 기병과 보병도 구분을 못합니다. 분명 중기병이라 해 놓고 나무 울창한 울퉁불퉁 산 속에서 보병들이 칼쌈질을 하는데 코에이에서 대박친 삼국지게임 영걸전 흉내를 냅니다. 20명 정도가 치고박고 싸우는데 시청자가 잘 알아서 곱하기 100으로 하고 2천명으로 감상하랍니다. 고려 중기병이 최선전으로 달려가는데 열댓마리가 뚜벅뚜벅 가고있고 그 뒤에 창을 든 보병 50명정도가 따라갑니다. 이런걸 왜 넷플릭스에 올려놓는지 대략난감합니다. 어이그 진짜 작품 꼬라지하고는......낮 뜨겁고 민망해서리....

  • @ILoveDalgona
    @ILoveDalgona 6 месяцев назад +7

    벌써 다음화가 보이네요 ㅋㅋㅋㅋ

  • @user-nh1ue5pq4z
    @user-nh1ue5pq4z 6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소배압 맘에들어요 연기

  • @HappyUnderBoss
    @HappyUnderBoss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잘 보고 갑니다!

  • @gcs1554
    @gcs1554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1

    고려는 20만정도는 쉽게 뽑아내는데 조선은 왜 10만정도 뽑는것도 힘들어 했을까

    • @user-l479lo5e
      @user-l479lo5e 6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조선도 그 정도 군사 몇번 뽑긴한데 그중 용인 전투가 한국사에서 역대 최악의 패배 전투로 손꼽힘

    • @user-gc4of9ne1b
      @user-gc4of9ne1b 6 месяцев назад

      @@user-l479lo5e 조선은 군사는 많았으나 그중에 1만5천빼고는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였음

    • @minakim8754
      @minakim8754 6 месяцев назад

      고려의 힘을 약화시켜야 감히 주변국을 넘보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여진족 출신인 이성계가 명나라와 짜고서 조선을 중국의 속국으로 삼아 사대정책을 고수했던 것이지요. 얼마나 찌질하면 바다로 나가는 것까지 금지 시켰다고 합니다. 그냥 해외로 나가서 많은 문물을 수입, 수출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해 버렸던 겁니다. 백성들을 눈뜬 장님, 귀머거리로 만들어야 자신들의 권력이 영원할 테니까. 중국이며 일본도 안전하고. 지금은 나라를 반으로 잘라 놓아 힘을 더 빼버렸으니까 더욱더 안전하겠지요.

    • @user-mr8bu5eu1o
      @user-mr8bu5eu1o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무기와 식량만 충분하면 16세에서 40세 징병하면 100만도 가능했죠 무기와 식량이 부족해서 입니다

    • @user-ve1mk8pk9f
      @user-ve1mk8pk9f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농본 국가에다가 국민들 눈치를 많이봐서 그럼

  • @asiadasmr888
    @asiadasmr888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캬 항상 재미있게봅니다

  • @kurosangi2891
    @kurosangi2891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

    @5:17 그 시절에 댐을 만드는건 불가능합니다... 현대에서도 최첨단 엔지니어 기술을 써도 몇년이 걸리는데... 기록이 그렇게 되있는게 안타깝네요

  • @user-ki7tb5dw2w
    @user-ki7tb5dw2w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

    현종의 애민정치 3차고여전쟁후 태평성대였다

  • @TheKody2002
    @TheKody2002 6 месяцев назад +4

    3차 전에 전투가 저렇게 많았구나ㅋㅋ 나래이션이랑 대사 한 마디로 다 날려먹어서 몰랐네:

  • @Allin7days
    @Allin7days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흥화진을 7번 치고도 못 이기고, 고려가 20만을 북쪽에 가지고 있는데 10만으로 개성으로 진격하는게 전략인가? ㅋㅋ
    이런 행동이 거란의 3차 침략도 실패하게 했지요.
    거란의 3차 침입은 일단 전쟁을 해서 이길 수 없었는데 침략한 어리석은 짓...

    • @justice8192
      @justice8192 6 месяцев назад

      고려는 국왕에 대한 충성도가 강해서 임금만 인질로 잡으면 굴복이 가능함

    • @user-wp2hm2qz9t
      @user-wp2hm2qz9t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고구려, 백제, 신라, 후백제, 발해 등
      앞선 우리민족의 나라들이
      왕 잡히고 멸망함.
      이미 발해를 멸망시켜본 거란이기에 고려를 너무
      멸망시키고픈 마음에
      왕 잡아서 끝내려는 전략을 쓴거죠.
      만약 개경에 얼빵한 개2 목종이
      있었다면 성공했겠지만,
      다행히 똘똘한 현종이 있어서
      거란의 작전은 실패하고,
      퇴각하다가
      강감찬한테 귀주에서 몰살당하고
      거란은 멸망하게 되죠

  • @Whee87
    @Whee87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과거에 저 전술을 겪였으면 미리 대비해놨을 거 같은데 그러진 못한 듯싶네요

  • @user-wv1nq9go
    @user-wv1nq9go 6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야율팔가의 배수진 삽질로 인해 소배압은 대패합니다 ㅠ ㅋ

  • @user-mz5hu1kv6e
    @user-mz5hu1kv6e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침락 받아서 내 탕에서 전쟁을 했다면 무조건 진것이다.
    목숨을 잃은 백성, 청야작전으로 집과 도시는 모두 불다고, 농지는 황폐화, 남은 재물은 모두 약탈 당하고...

  • @user-oq3th4mf4d
    @user-oq3th4mf4d 6 месяцев назад

    ❤❤❤

  • @user-cr1xh9tb7z
    @user-cr1xh9tb7z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역주야 영상 고맙다

  • @user-wp2hm2qz9t
    @user-wp2hm2qz9t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다음화 없나유?

  • @user-qf8fg5ht3y
    @user-qf8fg5ht3y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2

    우리가 생각하는 살수대첩과 같은 수공은 현대 과학 기술로도 불가능함

    • @user-hn2sz7hh6j
      @user-hn2sz7hh6j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이건 요즘에는 다 알지 않을까요?
      그래서 추론으로 저런 수공 기록은 다 도하때 싸운걸로 보죠

    • @user-wp2hm2qz9t
      @user-wp2hm2qz9t 6 месяцев назад

      강을 말이나
      사람이 건널때
      상류에서 물을 막았다 터뜨리면
      일시적으로 물량이 늘어나
      허우적 대는 거임.
      그럴때 반대편에서 대기하던
      화살부대가 쏘고
      기어나오면 창칼로 무찌르는 거임.
      살수대첩이든
      귀주대첩이든
      옛날 수공작전은 그런거임.
      지금처럼 대규모 댐이나
      보를 만들었다가 터뜨려
      수장시키는거는 아님.
      장마때나 태풍때
      부칸놈들이 상류댐을
      경고없이 방류하면
      하류지역 남한 주민들이
      강가에 있다가
      늘어난 물살에 떠내려 가는 거랑
      비슷함

  • @user-yy5pb1dx4g
    @user-yy5pb1dx4g 6 месяцев назад

    당시 거란제국의 군사력이 세계 1위였기 때문에, 거란제국의 사르마트 바야르(소배압) 장군이 초반에 압도할수있었음. 후에는 결국 고려가 끝까지 항쟁하면서 고려가 살아남음.

  • @user-hn2sz7hh6j
    @user-hn2sz7hh6j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6차로 나뉘어서 보면... 6차는 거의 고려 압승이던데....
    3.4.5 지지부진한 거 보고 수도직공전략 세운거 같긴하지만요

    • @KKang_KK
      @KKang_KK 6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건 아니고요. 3,4,5차때 요나라는 반란으로 고려에 집중 하지 못 할 때임. 수도까지 진격할 병력이 아니라 국지전 병력임. 그러다 평정 하고 다시 고려로 남하할 계획을 수립하여 10만을 동원 하는 거에요. 아무리 요나라가 당시 강국 이라고 해도 10만의 병력을 매번 동원 할 수는 없죠. 직도전략을 쓴 것은 2차 전쟁때 개성까지 가본 경험이 있기 때문. 사실 2차때만 해도 고려가 얼마나 큰나라 인지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알려면 포로를 잡아서 대충 위치를 잡고 길을 찾는 것 외에는 없죠. 정확히 수도까지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대 중간에 보급 기지 없이 간다는 것은 부담이 되니 보급을 확보할 기지를 확보 하려고 한거고....한번 개성을 점령하고 보니 생각 보다 국경에서 멀지 않은 것을 파악 하고 3차때는 직도 전략을 쓴 거죠. 2차때 현종 잡으로 가다 이미 수천리는 남하 했다는 거짓말에 속은 것 보면 거란은 고려가 그렇게 작은 나라인지 파악 못 했을 가능성이 높음.

  • @kah764
    @kah764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병자호란도 그렇게….

  • @user-go7tr5mx8b
    @user-go7tr5mx8b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소배압 이미지가 김준배 배우를 고증 하셨군요 ㅎㅎ

  • @jjk5179
    @jjk5179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사실 수도 어택땅은 거란만 한건 아니었고 고수전쟁 1차전의 별동대, 병자호란 떄도 있긴 했음
    성공 케이스가 병자호란이 유일하긴 했으니 그렇지.

    • @marinerok596
      @marinerok596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병자호란도 임진왜란에 허약해진 덕도 보고 대포가 있으니 가능했지 600년전 처럼 말과 화살만 가지고 닥돌했음 대패당햇음

    • @user-ve1mk8pk9f
      @user-ve1mk8pk9f 6 месяцев назад

      능양군 이 븅신은 튀는것도 못하노

    • @user-hm3ip4yk5b
      @user-hm3ip4yk5b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영상에도 나와있듯이 발해때도 그랬었죠

    • @user-wp2hm2qz9t
      @user-wp2hm2qz9t 6 месяцев назад

      당나라도 고구려 멸망시킬때
      바로 평양으로 직공했죠

    • @jjk5179
      @jjk5179 6 месяцев назад

      @@user-wp2hm2qz9t 고당3차전은 신성-부여-국내성-금산 전투까지 이겨놓고 남쪽의 신라와 합세해서 직공한거엿을꺼에요

  • @user-et6zr4jj7q
    @user-et6zr4jj7q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그야말로 야수의 심정으로 올인 베팅.. ^^;

  • @cho.4630
    @cho.463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3:32 강찬찬 회군으로 강씨왕조 탄생도 재미 있었을듯 ㅋㅋㅋㅋ

    • @fair-korea
      @fair-korea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노잼

    • @takoeatsall
      @takoeatsall 6 месяцев назад

      강조 강감찬 강민첨 왜 다 강씨노

  • @kaki-kaki-
    @kaki-kaki- 6 месяцев назад

    근데 광개토태왕님이나 발해때 제외하고 우리가 외국의 땅에서 전쟁한적은 거의 없는듯 죄다 한반도내에서 싸우고 지킴 거참

  • @sieg3047
    @sieg3047 6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삼교천 전투를 강민첨 장군이 주도한걸로 알고 있는데 아니었나요>

    • @user-eb6ke1ll9c
      @user-eb6ke1ll9c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

      강 감찬 상원수 명을받아 부원수 강 민첨 장군이 전투를 치러서 대승을 거둔겁니다

    • @sieg3047
      @sieg3047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user-eb6ke1ll9c 그건 알죠

  • @user-rl1yc6nk2j
    @user-rl1yc6nk2j 6 месяцев назад +4

    딱히 소배압이 초반부 압승된게 없어보이는뎅
    군사를 미끼로 쓰고 성함락없이 개경으로 직공간다는게 오히려 무모한
    전략인거 같다 전략부터가 무모했다.
    저런 전략이면 이미 패배한거임.

  • @tjdcjf6311
    @tjdcjf6311 6 месяцев назад +5

    고려가 황제국인데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 @user-nv9qy8ko5y
      @user-nv9qy8ko5y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저도 그게 아쉽다고 생각해요 고구려나 발해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던것에 반해 고려는 연호 조금 쓰다가 중국 연호를 쓰니 황제국으로서 위엄이 떨어져보여요
      그리고 주제와 관련없는 이야기지만 조선은 왜 제후국 제도를 고집했는가 의문이에요 명나라 사신이 왔을때만 굽실거리고 사신이 가면 칭호라도 황제국 칭호를 쓰지 굳이 천세, 판서, 전하 이런 표현을 고집했나 의문이에요

    • @ginojang6680
      @ginojang668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정확하지는 않지만 쉽게 설명하면, 내부에서는 황제국으로 칭하고, 외부에서는 연호 사용 - 형제국 혹은 부모국 외교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정책을 취함. 황제국은 이래야 하고 제후국은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게 명확히 이분적으로 나누어지지 도 않음. 내부에서도 제후국 이었던 조선 조차도 왕의 시호를 조 종 같이 황제국 시호를 사용함

    • @onethe9739
      @onethe9739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실리가 중요하니까요. 거란과 송의 제후국을 자처하면서 조공무역으로 득을 많이 봤거든요. 고려사신이 온다고 하면 학을 뗄 정도로 ㅎㅎ 국내에선 황제니까 뭐 고려 스스로도 아쉬움이 없었을 겁니다

    • @user-rc6dv8mm2h
      @user-rc6dv8mm2h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왕건이랑 왕소가 썼음

    • @user-dk9cs2rj4k
      @user-dk9cs2rj4k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user-nv9qy8ko5y명의 사대질서로 임진왜란 전까지 소규모 븍방 소요 외에는 평화 시대였는데 마다할 이유가… 평화롭다는 말은 왕조 유지가 그만큼 쉽다는 뜻암

  • @user-ve5qj2no5n
    @user-ve5qj2no5n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소배압이란 분이 키가 컷다네요 9척이라고 하니 대략 2m70ㄷㄷ 거짓말 같은 키죠...

    • @ROCKY-tn8re
      @ROCKY-tn8re 4 месяца назад

      그당시랑 지금이라 1척의 기준이 다름 현기준으로보면 20cm가 1척정도임

    • @user-ve5qj2no5n
      @user-ve5qj2no5n 4 месяца назад

      @@ROCKY-tn8re 아하 20cm군요 그래도 저시대에 180이면 엄청큰건데 ㅎ

  • @YhMo-mb8yx
    @YhMo-mb8yx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포에니 1차 전쟁 로마승
    포에니 2차 전쟁 개털리고가까스로 로마승 (한니발)
    포에니 3차 전쟁 카르타고분전멸망 로마승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고거 1차 전쟁 고려 개털림 거란 거이승리
    고거 2차 전쟁 고려 분전 거란 거이승리
    고거 3차 전쟁 고려 일격카운터 고려승 거란멸망각

    • @user-zq6tu4ey2c
      @user-zq6tu4ey2c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생각해보니까 포에니2차전쟁에서 로마전략이 거란이랑 비슷한데
      거란은 멸망하고 로마는 대역전 햇네 ㅋㅋㅋ

  • @bro4783
    @bro4783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고려도 저정돈데 조선은진짜... 한반도역사에 나와선안됬던 국가다.. 전쟁에거 이긴거 ㅈ도없고 개맞기만한 한반도 유일역사

    • @user-cw8pm2mz6m
      @user-cw8pm2mz6m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조선은 이순신장군 권율 김시민 빼면 늘 두들겨 맞았죠

    • @user-li6uk7hg4l
      @user-li6uk7hg4l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조선 초창기에는 군사력 엄청 강했습니다. 현재의 압록강과 두만강의 국경을 확립한 것이 세종 때였고.
      대마도를 정벌하여, 일본 해적의 칩입을 완전히 봉쇄해버리고요.
      그 이후로 임진왜란 전까지 북쪽의 국경에서 여진과의 작은 약탈을 위한 침입말고는 큰 전쟁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평화시기에 개편한 군제도와 일본군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임진왜란 초기에 크게 패한거고요..

    • @ykokog1813
      @ykokog1813 6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임진왜란은 200년간 평화와 히총통의 비이성적인 전쟁 때문이었다고 쉴드 칠수 있지만 인조 이후 부터는 고구려 때부터 이어온 명성을 죄다 날려먹어서 할말이 없죠.

    • @ililililili7327
      @ililililili7327 6 месяцев назад

      고려 전성기때만 보고 판단하긴 좀 그런데.. 이 이후 고려는 몇백년동안 몽골간섭기임 조선도 초창기에 대마도 정벌하고 여진족 토벌하려고 북쪽으로 진군하기도한적있음

    • @everland6752
      @everland6752 6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냥 아시아 국가들 전반적으로 답이 없었던거 같은데... 메이지 유신이후 군부가 장악한 일본도 정상으로 보임? ㅋㅋㅋ 자국민도 존나게 갈려나갔는데...

  • @bono1603
    @bono1603 6 месяцев назад

    도순검사와 도통사의 차이가 뭔지 아시는분~~

  • @user-ry3vm7bn9y
    @user-ry3vm7bn9y 6 месяцев назад

    국뽕소배압이첫번째 전쟁을피하고 현종의목을친다는 이전략은소배압이성공한겁니다

  • @user-zp8nx4mq8e
    @user-zp8nx4mq8e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국뽕빼면 초반전술은 소배압이 이긴거가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