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 전 저는 버스에서 당신이 말한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서 깨닫고 지하철 화장실로 달려가 펑펑 울었어요. 그게 무언가 읽으며 느낀 첫 쾌감이었고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났을 때 저는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근데 마르셀이 신발 끈을 묶으려다가 할머니의 부재를 온몸으로 깨달은 것처럼 저에게 오늘이 그런 날인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작가와 함께 하다 보니 제가 얼마나 당신에게 큰 영향을 받았었는지 잠시 잊어버렸어요. 오늘 오래 전에 했던 이 라이브가 생각나서 다시 찾아 들었는데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보면서 또 울었네요. 이데올로기가 없는 하늘에서 평안하시지요. 당신이 괴테와 마주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던 것처럼 저도 당신과 마주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도 괴테와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 지도 모르겠네요. 잊지 않겠습니다. 항상 기억할게요.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해요.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 합니다." 현생을 살아가다보면, 자연스레 남을 미워하고, 판단하게 되는데요. 많이 생각하게 되네요. 난 왜 비난을 하는가? 난 누군가의 안개를 생각하고 있는가? 내가 영원하리라, 확고부동히 믿고 있는 것은 없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인간은 안개속을 나아가는 자다” 인간의 모순과 모호성을 담고 있네요. 사람은 선과 악으로 나뉠 수 없고 선과 악이 공존한 양자상태 같아요. 카뮈는 부조리를 ‘양자’ 상태라고 했죠. 세계란 인간이 정의 내릴 수 없는 비이성적인 것이며 사람을 선과 악으로 재단하고 판단 할 수 없다고 보았죠. 인간은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입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누군가를 볼때 그의 결함을 보고 나쁘다고 오해하다가도 장점을 보면 또 좋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누군가에겐 선한 일이 누군가에겐 나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겐 나쁜 사람이라 생각 될 수도 있죠.어제의 나쁜일이 오늘의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죠 카뮈는 알제리에도 프랑스에서도 소속 되지 못했고 영원한 좌익도 우익도 아니었어요 .동료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아내와도 이혼을 겪고 당대 사람들에게 미움 받기도 했죠. 몇차례 위기를 겪었음에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살아냈죠. 카뮈가 대단한건 시류에 편승할 법도 한데 만인에게 인정 받을 수 있는 욕망을 버리고, 당대 평가에 휘둘리지 않았고 다수의 사람들이 믿었던 정의를 떠나 자신만의 길을 걸었어요. 사르트르는 그를 배신자라 여겼지만 (그도 자기만의 안개 속을 걸어가고 있기에 당대엔 사르트르가 옳다고 믿는 안개가 있었죠. ) 저는 카뮈가 인간의 모순됨과 모호성, 부조리를 알기에 어떤 것에 ’지속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 것 같아요. 카뮈는 세계란 비이성적인 부조리와 안개속을 걷는 인간의 모호성에 대해 받아들였던게 아닐까 저는 그 무엇도 판단하고 평가하고 싶지 않아졌어요, 무언가를 옳다고 맹목적으로 믿고 싶을때면 카뮈를 떠올리고 사르트르를 떠올려요. 마치 어떤 사건과 사람의 어떤 일부분을 사진 찍어 남기는 기억의 편린들이 사르트르가 말한 “타인은 지옥이다”의 행위 같아요.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은 계속 재생되는 영상인데, 순간 순간의 사진으로 남겨 기억한다면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싶어요. 내가 순간 포착한 그 사진 속의 모습은 그 사람의 최악일 수 있고 나또한 마찬가지겠죠, 그러나 삶은 지속되고 계속 지나가고 나도 타인도 과거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실패를 해왔는 줄 모르죠, 인간은 많은 실수를 해왔고 잘 못을 했지만 그 과거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했던 노력은 자신만 알겠죠. 평가하는 타인이 지옥이 된다는 이야기, 나아가 사르트르는 타인이 나에게 해를 끼쳐서 지옥이라는게 아니라 타인이 나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나를 바라보고 인식할때 타인이 지옥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에게 지옥이 되지 않기위해 함부로 평가하지 말아야겠다, 시간이 지나 모든게 명확해질때까지 보류하고 느리게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되네요. “인간은 안개속을 나아가는 자” 처럼 말이에요. 쿤테라가 말한 길위의 인간으로서 안개속을 걸어가는 사람이 될 것인지 , 지나간 안개 명확한 길위에서 지나온 인간들의 실수와 잘못을 평가만 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안개속에선 누구나 판단력이 흐려지고 안개가 걷히고 나면 판단력이 명확해질 수 있겠죠 미래의 인류가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죠. 우리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의 실체를 모르니까요. 리히트 책방님 저만 알고 싶은 북튜버세요 ㅎㅎ 사유하는 부분이 깊어서 이게 재독의 효과구나 싶어서 다시 읽기를 자극하게 되네요. 몇주째 리히트 책방님 책리뷰 듣다가 도서관가서 밀란 쿤테라의 , ,을 빌려 읽었네요 아직 다 못읽었지만 진짜 밀란 쿤테라의 팬이 될 것 같아요.. 궁금 한게 있는데 두 거장 사르트르 vs 카뮈 실존주의 철학과 부조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의 차이점과 공통점에대해 리뷰 해주실 수 있나요,, 관련 책을 읽고 다른 북투버를 통해 들어보긴 했는데 아 이것이다 ! 하고 명확해지는게 없네요 리히트님 생각도 궁금합니다. :)
정말 귀한 생각의 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 궁금한 점은 리히트님의 영상을 보고 이걸 공짜로(?) 알아가도 되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뭔가 무의 상태로 책을 읽어야 얻어가는 게 많을 것 같은데, 리히트님이 말씀해주시는 중점요소들을 알고 읽으면 그 배움이 덜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6-7년 전 저는 버스에서 당신이 말한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서 깨닫고 지하철 화장실로 달려가 펑펑 울었어요. 그게 무언가 읽으며 느낀 첫 쾌감이었고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났을 때 저는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근데 마르셀이 신발 끈을 묶으려다가 할머니의 부재를 온몸으로 깨달은 것처럼 저에게 오늘이 그런 날인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작가와 함께 하다 보니 제가 얼마나 당신에게 큰 영향을 받았었는지 잠시 잊어버렸어요. 오늘 오래 전에 했던 이 라이브가 생각나서 다시 찾아 들었는데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보면서 또 울었네요. 이데올로기가 없는 하늘에서 평안하시지요. 당신이 괴테와 마주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던 것처럼 저도 당신과 마주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도 괴테와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 지도 모르겠네요. 잊지 않겠습니다. 항상 기억할게요.
거듭남.
감정의 구비구비를 겪으셨네요..
표현이 마치 시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해요.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 합니다." 현생을 살아가다보면, 자연스레 남을 미워하고, 판단하게 되는데요. 많이 생각하게 되네요. 난 왜 비난을 하는가? 난 누군가의 안개를 생각하고 있는가? 내가 영원하리라, 확고부동히 믿고 있는 것은 없는가?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와 찐 감동
항상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드립니다!
참존가를 읽으면서 이렇게 어려운 책은 별로라고 생각만 했는데
이렇게 설명을 들으니까 또 제 확고했던 생각을 깨부셔주네요
영상 너무 감사합니다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뭉클한 감정으로 잘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드립니다!
참존가 7장은 정말 😢
저는 읽으면서 카레닌에게 가장 다정한 죽음을 주기 위해 앞다리의 정맥을 찾던 토마시가 안개속에서도 사랑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나아가는것 같았어요
오래전에 진행했던 라이브 클립 맞죠? 기억이 가물가물 나네요 :)
넵 맞습니다ㅎㅎ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인간은 안개속을 나아가는 자다”
인간의 모순과 모호성을 담고 있네요.
사람은 선과 악으로 나뉠 수 없고 선과 악이 공존한 양자상태 같아요. 카뮈는 부조리를 ‘양자’ 상태라고 했죠. 세계란 인간이 정의 내릴 수 없는 비이성적인 것이며 사람을 선과 악으로 재단하고 판단 할 수 없다고 보았죠. 인간은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입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누군가를 볼때 그의 결함을 보고 나쁘다고 오해하다가도 장점을 보면 또 좋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누군가에겐 선한 일이 누군가에겐 나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겐 나쁜 사람이라 생각 될 수도 있죠.어제의 나쁜일이 오늘의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죠
카뮈는 알제리에도 프랑스에서도 소속 되지 못했고 영원한 좌익도 우익도 아니었어요 .동료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아내와도 이혼을 겪고 당대 사람들에게 미움 받기도 했죠. 몇차례 위기를 겪었음에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살아냈죠.
카뮈가 대단한건 시류에 편승할 법도 한데 만인에게 인정 받을 수 있는 욕망을 버리고, 당대 평가에 휘둘리지 않았고 다수의 사람들이 믿었던 정의를 떠나 자신만의 길을 걸었어요.
사르트르는 그를 배신자라 여겼지만 (그도 자기만의 안개 속을 걸어가고 있기에 당대엔 사르트르가 옳다고 믿는 안개가 있었죠. ) 저는 카뮈가 인간의 모순됨과 모호성, 부조리를 알기에 어떤 것에 ’지속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 것 같아요. 카뮈는 세계란 비이성적인 부조리와 안개속을 걷는 인간의 모호성에 대해 받아들였던게 아닐까
저는 그 무엇도 판단하고 평가하고 싶지 않아졌어요, 무언가를 옳다고 맹목적으로 믿고 싶을때면 카뮈를 떠올리고 사르트르를 떠올려요. 마치 어떤 사건과 사람의 어떤 일부분을 사진 찍어 남기는 기억의 편린들이 사르트르가 말한 “타인은 지옥이다”의 행위 같아요.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은 계속 재생되는 영상인데, 순간 순간의 사진으로 남겨 기억한다면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싶어요. 내가 순간 포착한 그 사진 속의 모습은 그 사람의 최악일 수 있고 나또한 마찬가지겠죠, 그러나 삶은 지속되고 계속 지나가고 나도 타인도 과거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실패를 해왔는 줄 모르죠,
인간은 많은 실수를 해왔고 잘 못을 했지만 그 과거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했던 노력은 자신만 알겠죠. 평가하는 타인이 지옥이 된다는 이야기, 나아가 사르트르는 타인이 나에게 해를 끼쳐서 지옥이라는게 아니라 타인이 나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나를 바라보고 인식할때 타인이 지옥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에게 지옥이 되지 않기위해 함부로 평가하지 말아야겠다, 시간이 지나 모든게 명확해질때까지 보류하고 느리게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되네요.
“인간은 안개속을 나아가는 자” 처럼 말이에요.
쿤테라가 말한 길위의 인간으로서 안개속을 걸어가는 사람이 될 것인지 , 지나간 안개 명확한 길위에서 지나온 인간들의 실수와 잘못을 평가만 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안개속에선 누구나 판단력이 흐려지고 안개가 걷히고 나면 판단력이 명확해질 수 있겠죠 미래의 인류가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죠. 우리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의 실체를 모르니까요.
리히트 책방님 저만 알고 싶은 북튜버세요 ㅎㅎ
사유하는 부분이 깊어서 이게 재독의 효과구나 싶어서 다시 읽기를 자극하게 되네요.
몇주째 리히트 책방님 책리뷰 듣다가 도서관가서 밀란 쿤테라의 , ,을 빌려 읽었네요 아직 다 못읽었지만 진짜 밀란 쿤테라의 팬이 될 것 같아요..
궁금 한게 있는데
두 거장 사르트르 vs 카뮈
실존주의 철학과 부조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의 차이점과 공통점에대해 리뷰 해주실 수 있나요,, 관련 책을 읽고 다른 북투버를 통해 들어보긴 했는데 아 이것이다 ! 하고 명확해지는게 없네요 리히트님 생각도 궁금합니다. :)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쿤데라의 모든 책을 다 읽어보셔서 더 큰 기쁨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라이브 때 오셔서 해주실 수 있을까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 영상 보고 책 샀습니다 ㅎㅎ
잘 보고 있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말 귀한 생각의 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 궁금한 점은 리히트님의 영상을 보고 이걸 공짜로(?) 알아가도 되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뭔가 무의 상태로 책을 읽어야 얻어가는 게 많을 것 같은데, 리히트님이 말씀해주시는 중점요소들을 알고 읽으면 그 배움이 덜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그게 걸리신다면 읽고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