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aka_kon 전에 역사스페셜에서 저는 좀 본 내용들이라 이해는 잘 되는편이네요. 예전 역사스페셜 같은거 요즘은 구글지도나 드론촬영하면 더 상세한 프로그램 제작이 만들어질텐데~ 제가 돈 좀 모으면 역사방송국 세울게요~ 1만년 우리역사를 살려내야죠~ 그럼 아마 전세계가 모두 형제고 하나가 될 듯도 하죠~?? 스키타이,흉노,훈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신라와 관계가 깊고 고구려,예맥,멕시코등 아메리카, 백제,동남아,몽골등은 또 한 무리고~ 옥저,동예등은 또 러시아나 캄차카반도로 이동했고... 역사 알아가다보면 화가 났다 재미있다 감동했다 막 그래요~!
드디어 구독자 천명 넘었네요! 감축드립니다!!! 칠지도와 인물화상경만 보더라도 너무나 명확한데 기가 막히네요 ㅎㅎ 지금도 제2의 슈퍼스타를 꿈꾸며 위작 만드는법과 유물 조작법등을 연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제 구독자 만명을 위하여 좋은 영상 앞으로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늘 시청해 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덕분에 드디어 천 명을 돌파했습니다!!^^ 이젠 재생시간 4천시간을 목표로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ㅎㅎ (앞으로 천 시간 남았네요!! 웃쌰!!) 그냥 대놓고 적혀있는 것도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숨겨두는 꼴이니... 늘 답답하기 그지없네요..^^
구독자 천명이 넘어섰군요. 축하의 말씀드립니다. 항상 좋은 퀄리티의 컨텐츠 라 생각하고있었습니다. 저 또한 구독자로서 앞으로 더 발전하시길 기원합니다. 이번영상에서 제가 코멘트할 내용은 일본에서 인물화상경을 국보로 지정했다는것만 봐도 백제, 무령왕 과 왜, 케이타이의 관계가 보통관계가 아니며 더욱더 긴밀한 관계였음을 나타내는 유력한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 좀더 덧붙이면 무령왕은 그리고 그 후손들은 현재 일본천황가계도의 핵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무령왕은 왜왕 무였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보여집니다. 478년 보낸 상표문의 내용을 봐도 그렇고 당대 백제 동성왕과의 관계를 봐도 그렇고 말이죠. 다만 아쉬운것은 백제 사서가 반도내에는 현존하지가 않아 당시상황과 왜와의 관계에 대한 기록이 없어 확실한 증거가 부족한것이 흠입니다. 이것이 한일사학계를 서로 다른 말을 하게끔 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고 있다 보여집니다. 인물화상경, 칠지도, 신찬성씨록 정도로 간접적인 증거로 보는정도로 머물고 있는데 어디선가 백제사서가 나와준다면 바로 백제와 왜가 한집안이었다는것 그리고 갈등과 협력의 역사를 푸는 열쇠가 될꺼라 보여집니다. 백제 사서가 백제가 멸망한 후 일본으로 건너간것은 맞는데 그후 소실이 된것이 너무나 안타깝네요. 삼국의 역사서 중에서 저는 백제사가 가장 중요한 역사서라 생각합니다.
축하의 말씀 감사합니다!! 정말 이렇게 늘 응원해 주시는 덕분에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만들어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오래 갈 수 있는 채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있는 자료들이라도 옳바르게 해석하고 옳바르게 가르치기만 해도 지금과는 사뭇 다른 역사가 보일 것 같은데, 때로는 교묘히, 때로는 대놓고 허튼소리로 역사를 어지럽히는 지금의 모습에 너무도 한탄스럽니다.
무령왕의 생부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저는 곤지왕이라고 믿습니다. 곤지가 동성왕, 무령왕을 모두 왕으로 만든 분이죠, 게이타이 덴노는 오진의 5대 후손이라고 하는데 왕자의 신분이 아닌 조선의 철종 같은 분입니다. 백제계 혼혈일 가능성이 크고 무령왕과 형제 처럼 지냈음은 다들 인정합니다. 혈연적인 동생인지 아닌지는 논란이 있고 곤지에게 5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일 가능성은 적습니다. 확실한 것은 무령왕이 죽었을때 목관을 보낸 것이 게이타이라는 점입니다. 아키히토 상왕이 공주 무령왕릉을 참배하는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하는데 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일본을 미워하는 분이 많음은 아는데 이분은 식민지배에 유감을 표시한 유일한 천황입니다.
오늘도 시청과 소중한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제 무령왕과 케이타와의 관계를 정확히 알아내는 데에 있어서, 무령왕의 가계, 케이타이의 가계 등 수많은 것들을 명백히 밝히지 않는 한 아직은 뭐라 하기는 힘들 수 있겠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명백한 것은, 무령왕과 케이타이가 어떠한 이유에서든 '형 동생'이라는 표현을 쓰며 '선물'을 주고받는 가까운 사이라는 것이죠. 그 점이 크게 부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키히토의 공주 방문을 막는 것은 국민 여론 보다는 한일 정치 세력들이 아닐까 싶네요. 예전 칸무텐노 발언이 없었다면 또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발언을 자신의 생일 때 갑자기 했을 정도라면, 무령왕릉 앞에서는 어떤 발언을 할지 긴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 판단할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방문을 받아드려서 만천하에 백제 후손이 일본 왕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공개하는 것이 자존심 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하네요.
지나가다 한자 적습니다. 무령왕의 생부는 개로왕이 맞다 보여집니다. 한국사학자들은 무령왕의 생부를 곤지로 보는데 일본사학자들은 개로왕으로 보고 있죠. 일단 역사서 기록대로 본다면 일본서기에 나와있는데로 개로왕의 자식이 유력합니다. 또한 왜왕 무를 무령왕으로 본다면 더더욱 곤지가 맞지 않습니다. 왜왕 무가 478년 남조에 보낸 상표문을 보더라도 아버지와 형이 갑자기 상을 당하여 수습하고 이제는 고구려를 정복할 때가 되었다는 표현하죠. 당시 왕조에서 유교식 3년상을 진행했음을 알수있습니다. 그렇다면 475년 사망한 개로왕이 무령왕, 왜왕 무의 아버지 일 가능성이 더 크다 보여집니다. 곤지는 삼국사기에 백제로 477년 귀환해서 1년 뒤에 죽었다고 되어있죠. 형동생이라 는것이 꼭 같은 배를 맞대고 낳은 자식이어야 가까운 관계는 아닙니다. 미루어 볼때 케이타이와 무령왕은 가까운 4촌관계이고 어머니가 같을 가능성마져 있습니다. 곤지가 개로왕의 왕비를 데리고 도왜하여 무령왕을 낳았다고도 하니 말이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무령왕은 왜열도에서 이미 왜왕 무로서 치정하다가 라이벌 동성왕을 제거하고 백제로 귀환해 왕위에 오른것이라 볼수있습니다. 오히려 동성왕이 곤지의 친아들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시기 백제의 동성왕과 왜왕 무 와의 관계를 미루어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서로가 삼한의 패자라고 중국 남조에 어필하고 있죠. (물론 동성왕은 가만있는데 왜왕 무가 열등감을 갖고 있는것으로 보여집니다. ) 이러한 관계속에서 왜왕 무 가 백제 내부의 내통세력을 이용해 동성왕을 제거하고 귀환하여 무령왕으로 등극한 것으로 봅니다.
무령왕이 개로왕의 아들이라 함은 고구려에 대한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상징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소설 잘 쓰는 분은 곤지가 개로왕의 후궁과 간통하여 낳은 아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곤지가 아들 2명을 백제 왕으로 만들고 일본 내의 입지도 강화시킨 흥선대원군 같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백제가 망하지 않았다면, 현재 나라 구성이 어떻게 됐을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신라는 왜 일본쪽은 손을 안댔을까 싶기도하고. 섬이라서 어려웠던건가 싶기도하고. 역사관련 영상들을 보다보면 이것저것 의문점이나, 궁금증이 많이 생기네요. 어쨋든, 부디 유튜브의 수혜를 받아 더욱 흥하는 채널이 되길. 한방만 터지면 10만은 금방이던데.후...
응원의 말씀 감사합니다~!! 더 힘 내서 오래가는 채널이 될 수 있게 힘 써보겠습니다!! 덧붙여, 신라도 열도에 많이 진출했다고 봅니다. 가야부터 시작하여 신라로 이어졌다가 제일 후발주자인 백제가 끝내 장악한 흐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신라의 흔적이 많아요. 소가씨가 주목 받기 전부터 가야 혹은 신라계라고 하는 모노노베씨 세력이 오래 전부터 자리잡고 있었던 것만 해도 그렇고. 백제 세력이 불교를 도입했다고 하지만 신라계 가문에서 일본 역사를 대표하는 큰 스님들이 나오는 것 등 신라가 열도에 진출했다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봅니다. 우리가 신라를 생각 못하고, 일본이 자꾸 가야의 역사를 왜곡하려는 것이 한편으로는 백제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후발주자로 들어온 백제가 앞선 왕조인 가야와 신라 세력에 대한 흔적을 최대한 지우려 했던 것의 연장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후대의 교육으로만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볼 수록 같은 대륙에 살고 인근에 사는 사이에서 비슷한 복장과 문화, 다름은 있어도 별개의 언어가 아닌 유사한 언어까지 있던 세력들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중국과 일본 등을 별개의 나라로 인식하는 것과 비교할 만큼 타국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또한 그렇게 적국, 타국이라는 개념만 있다면 부여 혈통이 이어져 내려왔다는 이야기 자체를 부정했을텐데 그렇지도 않구요. 아무리 북한이 싫어도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과 다른 것 처럼 어느정도의 동질감은 간직해 왔다고 봅니다. 일본사에서 신라를 적국이라고 하는 것 등이야 말로 후대의 교육이지 않을까 싶네요.
@@osaka_kon 앗, 제 말은 신라가 왜 일본쪽으로 진출을 안했는지가 아니라, 백제를 망하게 할때, 왜 일본쪽 백제의 잔당?이랄까 그쪽을 싹 밀어내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었어요. 그랬다면, 지금 일본도 우리나라였을까, 백제가 안망했다면, 한반도 일부분을 포함한 일본까지 같은 말을 쓰는 제 3의 나라가 됐을까... 아니면 결국 일본? 콘상님 말씀대로라면, 일본쪽은 어쨋든 백제가 신라를 이겼다는 걸까요. 백제가 주가됐다면, 또 어째서 말과 글은 달라졌을까, 그 시절에도 말이 조금씩은 달랐을까...등등등 과거의 일이다보니, 이것저것 여러가지 의문으로 상상하는 재미는 있습니다. 그런의미에서도, 이런 역사 관련 영상 제작해주시는분들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공부가 쉬운일이 아닌데.... 직접 몸으로 뛰시고, 수 많은 자료 조사와 대조등등... 부디 몸 건강히 흥하소서.
@@cats_tail 663년 백강 전투 패배 이후 나당연합군이 일본을 침략할 것이라고 일본도 두려움이 많았는데 당의 애초 목표가 고구려를 차지하는 것이고 당의 외곽 지역의 전쟁도 만만치않아 포기하고 나당전쟁도 진것이죠. 당이 약해서 신라에게 진 것이 아니라 포기라고 저는 봅니다. 측천무후가 전쟁을 선호하지 않은 이유도 있습니다. 발해가 그 덕에 건국이 되었어요.
늘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오래갈 수 있는 채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
오늘도 시청해주시고, 댓글도 남겨주셨네요! 늘 감사합니다!!
오우ㅡ천명
승승장구 합시다
늘
말없이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천 명을 드디어!!!ㅎㅎ 늘 이렇게 시청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의 힘이 크다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구독자 일천명...감축드립니다..덕분에 좋은 영상들 많이 보고 있습니다.ㅎ
이렇게 꾸준히 응원해 주시는 덕분입니다!! 오래오래 갈 수 있는 채널이 되길 바래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께요!!
특사님 구독자 1천명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드디어 드디어!!! 천 명을 돌파했습니다!!! 꾸준히 들러주시고 댓글 남겨주시는 덕분에 큰 힘 얻어서 올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콘상님~
오늘 영상 좋아여
재밌어용~!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명백한 것들도 거론 안 하는 건 일본에서나 그러라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사학자들이 아무말 없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사학자라는 명찰을 달고 직무를 유기하고, 진실을 호도하는 죄는 분명 가볍지 않으리라 믿어보렵니다~!
@@osaka_kon 싹다 각시탈이 다시 등장해서 해결해주면 좋겠어요.
죠용히~~~ 하나둘씩~~~
@@osaka_kon 전에 역사스페셜에서 저는 좀 본 내용들이라 이해는 잘 되는편이네요.
예전 역사스페셜 같은거 요즘은 구글지도나 드론촬영하면 더 상세한 프로그램 제작이 만들어질텐데~
제가 돈 좀 모으면 역사방송국 세울게요~
1만년 우리역사를 살려내야죠~
그럼 아마 전세계가 모두 형제고 하나가 될 듯도 하죠~??
스키타이,흉노,훈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신라와 관계가 깊고
고구려,예맥,멕시코등 아메리카, 백제,동남아,몽골등은 또 한 무리고~
옥저,동예등은 또 러시아나 캄차카반도로 이동했고...
역사 알아가다보면 화가 났다 재미있다 감동했다 막 그래요~!
드디어 구독자 천명 넘었네요! 감축드립니다!!!
칠지도와 인물화상경만 보더라도 너무나 명확한데 기가 막히네요 ㅎㅎ
지금도 제2의 슈퍼스타를 꿈꾸며 위작 만드는법과 유물 조작법등을 연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제 구독자 만명을 위하여 좋은 영상 앞으로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늘 시청해 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덕분에 드디어 천 명을 돌파했습니다!!^^ 이젠 재생시간 4천시간을 목표로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ㅎㅎ (앞으로 천 시간 남았네요!! 웃쌰!!)
그냥 대놓고 적혀있는 것도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숨겨두는 꼴이니... 늘 답답하기 그지없네요..^^
저도 한일 고대사에 아주 관심이 많고 유튜브나 관련 서적도 읽어 보았습니다 ~ 나라, 오사카, 쿄토에도 여러 번 가 보았습니다 ~ 기회되면 일본에서 함께 한번 가 보고 싶습니다 ^^
네~!!^^ 많이 부족하지만, 일정 맞으면 같이 돌아보셔도 참 좋을 거 같네요~~^^ 답사팀을 꾸려도 재밌을 것 같고..ㅎㅎ 저는 선생님들 모시는 운전수가 되겠습니다!!^^
@@osaka_kon 앗~!!!
저두 언제쯤 가보고 싶은데
유적지답사차요~
좀 나중에나 될듯요~~
캬 드디어 1000명 구독자 넘으셨네요. 제가 다 감개무량! 축하드려요!
ㅎㅎ 감사합니다~~!! 드디어 천 명 돌파!!! 이제 재생시간 4천시간을 위해 고고고!!!
소중한 컨텐츠 아주 잘봤습니다. 음악도 목소리도 너무나 영상과 잘 어울리네요. 구독자 천명 축하합니다. 1만, 10만, 100만 까지 쭉~ 떡상!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이렇게 응원해 주시니 분명 1만...음...!! 도달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일본인들ㅋㅋ 고맙습니다~
ㅋ ㅋ
ㅎㅎ 센스~~! ㅎ 언제까지 그럴지 끝까지 가보고 싶네요 ㅎㅎ 정보도 넘치는 시대가 되면서, 지금까지 처럼 억지 부리며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점점 자승자박하는 꼴로 될 거라 믿습니다. 고대 유물 조작해서 발굴하던 꼴이 분명 머지 않아 드러나게 될 거라 믿습니다!
압도적인 ㅡ센스 유머
다시 시청해봐도
당신은 댓글의 왕입니다
ㅎㅎㅎㅎ
정주행중. 감사. 👍
와우..!! 정주행~~!! 감사합니다!! 재밌을만한 게 많으면 좋겠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78번째 귀한 영상 잘보았습니다
에고고 언제든 그저 들러만 주셔도 감사하죠~!! 늘 큰 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자 천명이 넘어섰군요. 축하의 말씀드립니다. 항상 좋은 퀄리티의 컨텐츠 라 생각하고있었습니다. 저 또한 구독자로서 앞으로 더 발전하시길 기원합니다.
이번영상에서 제가 코멘트할 내용은 일본에서 인물화상경을 국보로 지정했다는것만 봐도 백제, 무령왕 과 왜, 케이타이의 관계가 보통관계가 아니며 더욱더 긴밀한 관계였음을 나타내는 유력한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 좀더 덧붙이면 무령왕은 그리고 그 후손들은 현재 일본천황가계도의 핵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무령왕은 왜왕 무였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보여집니다. 478년 보낸 상표문의 내용을 봐도 그렇고 당대 백제 동성왕과의 관계를 봐도 그렇고 말이죠.
다만 아쉬운것은 백제 사서가 반도내에는 현존하지가 않아 당시상황과 왜와의 관계에 대한 기록이 없어 확실한 증거가 부족한것이 흠입니다. 이것이 한일사학계를 서로 다른 말을 하게끔 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고 있다 보여집니다. 인물화상경, 칠지도, 신찬성씨록 정도로 간접적인 증거로 보는정도로 머물고 있는데 어디선가 백제사서가 나와준다면 바로 백제와 왜가 한집안이었다는것 그리고 갈등과 협력의 역사를 푸는 열쇠가 될꺼라 보여집니다. 백제 사서가 백제가 멸망한 후 일본으로 건너간것은 맞는데 그후 소실이 된것이 너무나 안타깝네요.
삼국의 역사서 중에서 저는 백제사가 가장 중요한 역사서라 생각합니다.
축하의 말씀 감사합니다!! 정말 이렇게 늘 응원해 주시는 덕분에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만들어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오래 갈 수 있는 채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있는 자료들이라도 옳바르게 해석하고 옳바르게 가르치기만 해도 지금과는 사뭇 다른 역사가 보일 것 같은데,
때로는 교묘히, 때로는 대놓고 허튼소리로 역사를 어지럽히는 지금의 모습에 너무도 한탄스럽니다.
거기서 동쪽으로 내려가면서 동쪽으로 이동하시면 구마노네?
구키네 집에서 차리는 해적 사업장있던...
'구키네 집에서 차리는 해적 사업장있던' 이 말씀을 이해를 못 했네요. 무슨 말씀이셨는지요?
@@osaka_kon 구키 요시타카 가문이 바로 구마노 수군, 즉 구마노 해적이었잖아요?
구마노 별당으로 내려간 후지와라 방계 후손들
무령왕의 생부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저는 곤지왕이라고 믿습니다. 곤지가 동성왕, 무령왕을 모두 왕으로 만든 분이죠, 게이타이 덴노는 오진의 5대 후손이라고 하는데 왕자의 신분이 아닌 조선의 철종 같은 분입니다. 백제계 혼혈일 가능성이 크고 무령왕과 형제 처럼 지냈음은 다들 인정합니다. 혈연적인 동생인지 아닌지는 논란이 있고 곤지에게 5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일 가능성은 적습니다. 확실한 것은 무령왕이 죽었을때 목관을 보낸 것이 게이타이라는 점입니다. 아키히토 상왕이 공주 무령왕릉을 참배하는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하는데 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일본을 미워하는 분이 많음은 아는데 이분은 식민지배에 유감을 표시한 유일한 천황입니다.
오늘도 시청과 소중한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제 무령왕과 케이타와의 관계를 정확히 알아내는 데에 있어서, 무령왕의 가계, 케이타이의 가계 등 수많은 것들을 명백히 밝히지 않는 한 아직은 뭐라 하기는 힘들 수 있겠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명백한 것은, 무령왕과 케이타이가 어떠한 이유에서든 '형 동생'이라는 표현을 쓰며 '선물'을 주고받는 가까운 사이라는 것이죠. 그 점이 크게 부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키히토의 공주 방문을 막는 것은 국민 여론 보다는 한일 정치 세력들이 아닐까 싶네요. 예전 칸무텐노 발언이 없었다면 또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발언을 자신의 생일 때 갑자기 했을 정도라면, 무령왕릉 앞에서는 어떤 발언을 할지 긴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 판단할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방문을 받아드려서 만천하에 백제 후손이 일본 왕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공개하는 것이 자존심 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하네요.
지나가다 한자 적습니다. 무령왕의 생부는 개로왕이 맞다 보여집니다. 한국사학자들은 무령왕의 생부를 곤지로 보는데 일본사학자들은 개로왕으로 보고 있죠. 일단 역사서 기록대로 본다면 일본서기에 나와있는데로 개로왕의 자식이 유력합니다. 또한 왜왕 무를 무령왕으로 본다면 더더욱 곤지가 맞지 않습니다. 왜왕 무가 478년 남조에 보낸 상표문을 보더라도 아버지와 형이 갑자기 상을 당하여 수습하고 이제는 고구려를 정복할 때가 되었다는 표현하죠. 당시 왕조에서 유교식 3년상을 진행했음을 알수있습니다. 그렇다면 475년 사망한 개로왕이 무령왕, 왜왕 무의 아버지 일 가능성이 더 크다 보여집니다. 곤지는 삼국사기에 백제로 477년 귀환해서 1년 뒤에 죽었다고 되어있죠.
형동생이라 는것이 꼭 같은 배를 맞대고 낳은 자식이어야 가까운 관계는 아닙니다. 미루어 볼때 케이타이와 무령왕은 가까운 4촌관계이고 어머니가 같을 가능성마져 있습니다. 곤지가 개로왕의 왕비를 데리고 도왜하여 무령왕을 낳았다고도 하니 말이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무령왕은 왜열도에서 이미 왜왕 무로서 치정하다가 라이벌 동성왕을 제거하고 백제로 귀환해 왕위에 오른것이라 볼수있습니다. 오히려 동성왕이 곤지의 친아들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시기 백제의 동성왕과 왜왕 무 와의 관계를 미루어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서로가 삼한의 패자라고 중국 남조에 어필하고 있죠. (물론 동성왕은 가만있는데 왜왕 무가 열등감을 갖고 있는것으로 보여집니다. ) 이러한 관계속에서 왜왕 무 가 백제 내부의 내통세력을 이용해 동성왕을 제거하고 귀환하여 무령왕으로 등극한 것으로 봅니다.
@@osaka_kon 오히려 일본내에서 천황의 방한을 막는것이 아닌지 의문입니다. 우리야 일왕이 방한하여 무령왕릉에 참배를 하던 별 관심이 없는데 일본이 더 강하게 반대할듯 해요.
무령왕이 개로왕의 아들이라 함은 고구려에 대한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상징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소설 잘 쓰는 분은 곤지가 개로왕의 후궁과 간통하여 낳은 아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곤지가 아들 2명을 백제 왕으로 만들고 일본 내의 입지도 강화시킨 흥선대원군 같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부여씨의 통치 방식이 형은 본토. 동생들은 지방 영지. 절대 다른 씨족들에게 주지 않았어요. 왜의 경제력이 조선의 배로 커지면서 왜에 있던 동생 부여씨들이 경제력 바탕으로 백제 말기부터 백제를 넘어온 거죠.
백제가 망하지 않았다면, 현재 나라 구성이 어떻게 됐을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신라는 왜 일본쪽은 손을 안댔을까 싶기도하고. 섬이라서 어려웠던건가 싶기도하고.
역사관련 영상들을 보다보면 이것저것 의문점이나, 궁금증이 많이 생기네요.
어쨋든, 부디 유튜브의 수혜를 받아 더욱 흥하는 채널이 되길. 한방만 터지면 10만은 금방이던데.후...
우리는 백제, 고구려, 신라가 한민족이고 고대에도 강한 유대관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보지만 이것은 후대의 교육이고 일본사를 보면 신라는 적국, 백제는 모국, 친정 엄마 같은 존재로 묘사합니다. 신라가 세토 내해, 대마도까지 침략한 기록도 있습니다.
응원의 말씀 감사합니다~!! 더 힘 내서 오래가는 채널이 될 수 있게 힘 써보겠습니다!!
덧붙여, 신라도 열도에 많이 진출했다고 봅니다. 가야부터 시작하여 신라로 이어졌다가 제일 후발주자인 백제가
끝내 장악한 흐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신라의 흔적이 많아요. 소가씨가 주목 받기 전부터 가야 혹은 신라계라고 하는 모노노베씨 세력이 오래 전부터 자리잡고 있었던 것만 해도 그렇고. 백제 세력이 불교를 도입했다고 하지만 신라계 가문에서 일본 역사를 대표하는 큰 스님들이 나오는 것 등 신라가 열도에 진출했다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봅니다. 우리가 신라를 생각 못하고, 일본이 자꾸 가야의 역사를 왜곡하려는 것이 한편으로는 백제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후발주자로 들어온 백제가 앞선 왕조인 가야와 신라 세력에 대한 흔적을 최대한 지우려 했던 것의 연장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후대의 교육으로만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볼 수록 같은 대륙에 살고 인근에 사는 사이에서 비슷한 복장과 문화, 다름은 있어도 별개의 언어가 아닌 유사한 언어까지 있던 세력들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중국과 일본 등을 별개의 나라로 인식하는 것과 비교할 만큼 타국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또한 그렇게 적국, 타국이라는 개념만 있다면 부여 혈통이 이어져 내려왔다는 이야기 자체를 부정했을텐데 그렇지도 않구요. 아무리 북한이 싫어도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과 다른 것 처럼 어느정도의 동질감은 간직해 왔다고 봅니다. 일본사에서 신라를 적국이라고 하는 것 등이야 말로 후대의 교육이지 않을까 싶네요.
@@osaka_kon 앗, 제 말은 신라가 왜 일본쪽으로 진출을 안했는지가 아니라, 백제를 망하게 할때, 왜 일본쪽 백제의 잔당?이랄까 그쪽을 싹 밀어내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었어요. 그랬다면, 지금 일본도 우리나라였을까, 백제가 안망했다면, 한반도 일부분을 포함한 일본까지 같은 말을 쓰는 제 3의 나라가 됐을까... 아니면 결국 일본?
콘상님 말씀대로라면, 일본쪽은 어쨋든 백제가 신라를 이겼다는 걸까요. 백제가 주가됐다면, 또 어째서 말과 글은 달라졌을까, 그 시절에도 말이 조금씩은 달랐을까...등등등
과거의 일이다보니, 이것저것 여러가지 의문으로 상상하는 재미는 있습니다.
그런의미에서도, 이런 역사 관련 영상 제작해주시는분들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공부가 쉬운일이 아닌데.... 직접 몸으로 뛰시고, 수 많은 자료 조사와 대조등등... 부디 몸 건강히 흥하소서.
@@cats_tail
663년 백강 전투 패배 이후 나당연합군이 일본을 침략할 것이라고 일본도 두려움이 많았는데 당의 애초 목표가 고구려를 차지하는 것이고 당의 외곽 지역의 전쟁도 만만치않아 포기하고 나당전쟁도 진것이죠. 당이 약해서 신라에게 진 것이 아니라 포기라고 저는 봅니다. 측천무후가 전쟁을 선호하지 않은 이유도 있습니다. 발해가 그 덕에 건국이 되었어요.
고대 천왕가는 개로왕부터 시작했다고 보는게타당하다
그이전은 가야 신라 가 혼제했고
편년에 대한 일본의 편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