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공주록] 급조된 공주로 청나라 도르곤의 부인이 되었다 환황녀가 되어버린 비극적 운명, 의순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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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14 ноя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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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궁중비사
급조된 공주로 청나라 도르곤의 부인이 되었다 환황녀가 되어버린 비극적 운명
의순공주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태종은 인조에게서 항복을 받기 전 몇 가지 요구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중에는 명나라와 단교할 것, 왕의 큰아들과 둘째 아들, 대신들의 아들들을 인질로 보낼 것, 청이 명을 공격할 때 군대를 파견해 도울 것, 성첩을 수리하지 말 것, 청나라에 사대할 것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패전국 조선은 이런 조건들을 무조건 수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항복조건 중에는 ‘내외의 여러 신하들과 혼인하여 화친을 공고히 할 것’이라는 내용도 들어 있었습니다.
혼인을 통하여 양국간의 우호를 증진시키자는 주장이었지만 실제는 조선의 처녀들을 청나라에 바치라는 요구였는데 조선이 항복한 1637년 겨울에 청나라는 사신을 파견했습니다.
인조를 새롭게 왕으로 책봉하기 위해서였는데 인조는 병자호란의 항복 조건에 따라 명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했고, 그 증거로 명나라에서 받은 고명, 옥새 등을 청나라에 바쳤습니다.
청나라는 그것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새로 만들었고 사신을 파견해 청에서 만든 고명과 옥새를 주면서 인조를 새롭게 조선 국왕으로 책봉하고자 했습니다.
청나라의 사신은 정사 한 명과 부사 두 명을 대표로 하였는데 정사는 영아아대였고, 부사는 마부달과 대운이며 수행한 통역관은 정명수라는 조선 사람이었습니다.
청나라의 사신 영아아대와 마부달 그리고 대운이 심양을 출발한 때는 인조 15년인 1637년 11월 1일로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의식을 치른 지 약 9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병자호란 이후 최초로 조선에 온 청나라 칙사는 조선을 길들이려고 수많은 요구조건을 내세웠는데 그중의 하나가 방기로 방기란 ‘방직기생’으로 수청을 드는 기생이었습니다.
과거 명나라 칙사들이 조선에 올 때는 지방의 기생들이 환영연에 동원되어 노래하고 춤을 추기는 했지만 수청을 드는 일은 없었는데 청나라 칙사는 갑자기 방기를 들이라고 요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