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바그라티온 작전이 내용이 복잡해서 영상을 어떻게 구성해야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 막상 다 만들어놓고 보니 별로 고생한 티가 안나네요...(허무ㅋㅋ) 이번 영상에는 단순히 글 만으로 설명하면 이해가 쉽지 않을것 같아 지도 설명을 많이 넣었습니다.
쿠르스크 공방전이후에 독일은 사실상 손실된 물자와 병력이 보충이 되질 않았고 절호의 기회를 놓칠 소련군이 아니었죠. 결국 이 전술은 독일이 소련에 해준 전격전인데 전쟁막판에 소련이 똑같은 방법으로 갚아준 전술이죠 전차부대가 신속히 진격해서 적 지휘부와 보급선을 끊어 버리면 약해진 부대를 후속부대가 정리한다는 작전.. 그게 바로 전격전의 기본
@에러 네 모든 좌파라고 하는건 좀 그렇긴 합니다.마찬가지로 모든 우파가 우파적성격을 지닌다고 볼수없으며 추구방향과 농도에따라 많이 나뉘므로 모든 이라는것은 않맞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대체적으로 가장 많은 범주를 말씀드린것인데 예를 들면 우파는 배가불러 나태한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모든 우파가 아닌것과 같은 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차대전은 사실상 독소전쟁이 70프로를 차지 하는듯 실제 히틀러의 광기에서 세계를 구한건 소련이란 생각도 든다 .. 노르망디고 벌지전투고 롬멜의 북아프리카 전선을 모두 합쳐도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물량과 인명손실을 따라갈수 있을지 .. 거기에 쿠르스크전투에 바그라티온에 모스크바 공방전, 레닌그라드 탈환에 숨차다
독소전쟁은....독일이 이길 가능성이 70%가 넘었습니다... 당시 독일로서도 하는게 맞았고 모스크바 점령하고 우랄공장이 있는 우랄산맥까지 공격하는데에 집중하여 만약 이게 성공했다면 러시아는 대패 했을것이고 스탈린그라드도 버리고 수도를 블라디 보스토크로 옮겼을 것 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부분의 소련군을 상실 한 것이고 서남부에 있는 스탈린그라드 등지의 땅까지 잃고 천연자원(석유,석탄,철광)들도 부족한 상황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공이 잘못되었고 작전이 너무 많이 미뤄진것 또한 잘못되었습니다. 서부전선에 모델을 남부집단군 사령관으로, 북부와 중부를 각각 만슈타인, 구데리안에게 맞기고 작전 개시일을 3월~4월 북부와 중부를 주공으로 모스크바를 9월 이전에 함락시킬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전이 계속 미루어졌고 히틀러의 지휘또한 무능했습니다.
그 당시 독일 국력으로는 이중화는 별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영국 본토 항공전이 패배했으니 독일이 영국을 먹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공군과 해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육군에 갈 돈을 해군과 공군에 투자하려고 했지만 등 뒤에 소련이 있으니 육군을 줄이기 너무 부담스러웠던 거죠 그 당시 소련과 독일이 불가침 조약을 맺을 때 전 세계가 놀란게 절대 손을 잡지 않을 것 같은 국가가 손을 잡아서 놀란겁니다. 그만큼 둘은 언젠간 싸우게 되겠지 라고 생각하던거죠 다만 소련은 대숙청의 여파로 군이 상당히 약해져있었고 스탈린은 회복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히틀러가 그 약점은 놓치지 않았던 거죠 즉 약해진 소련군을 기습적으로 공격해서 등 뒤의 폭탄 제거 +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 코카서스 지방의 유전지대 등 독일의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자원문제 해결 + 히틀러의 정치적인 공산당 타도 등등 결국 벌어질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련도 1930년대부터 핵물학에 관심이 많았고 1942년부터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같은 핵보유국이 되는데는 시간문제였습니다. 바로 1949년에 리틀보이의 3,400배에 해당되는 핵개발에 성공해 이후로 기네스북에 오른 차르봄바까지 만들었습니다.
물량차이말고도 상징적으로 당시 독소군의 차이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미제트럭과 차량으로 움직이는 소련군과 여전히 말이 없으면 꼼짝 못하는 독일군과의 비교를 드는 분석이 기억나네요. 우리가 현재아는 독일처럼 당시 독일군은 넉넉한 이들이 아닌 오히려 가난한 군대이죠. 뒤늦게 후퇴를 할려고해도 기동성에서 뛰어난 소련군에게 따라잡히고 포위당해 일망타진당하는 일이 빈번하죠. 게다가 제공권 우위도 없으니 독일군으로선 연료및 군수물자등등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서 진작에 방어선을 제대로 구축하고 겨기로 전선을 후퇴, 축소시켰어야했죠.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나중 전리품신세가되어 모스크바 거리를 행군하며 시베리아로 끌려간 포로들이 만일 훗날 오데르전선이나 베를린방어에 제대로 전력을 보존한채 모델원수나 하인리치 장군같은 방어전의 귀재들의 지휘하에 투입되었더라면 아마 소련이 전후패권을 잡지못했을지도 모르죠.
2차 대전 나치스 정권 제3제국(Das Dritten Reich)의 독일의 결정적 패전의 원인은 독소전이고 Bagration(바그라치온)작전은 독일 국방군(OKW)의 최종적으로 등골뼈를 부셔 독일군의 마지막 힘까지도 모조리 붕괴되고 나치스 정권의 종말을 고하는 전투였습니다. 독소전쟁으로 나치독일과 공산소련의 모든역량이 동부전선의 거대한 용광로 속으로 빨려 녹아들어가고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였습니다.
독일이 1941년이후 동부전선에서 전투를 치루는 만5년동안 서부유럽전선은 이딸리아가 항복하던 1943년 하반기에서 1944년 상반기 까지 미국의 독일본토 전략폭격과 북아프리카를 제외하면 비교적으로 서유럽은 조용한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미 영국의 양국 공군의 전략폭격도 미미한편에 그쳤으며, 독일 군수산업기반을 파괴하는데 있어서 약1.7%정도의 성공확률이었으며, 독일의 정치적 전쟁수행의지를 꺽고 전쟁수행능력을 좌절시키기에는 별다른 손실을 입히지는 못하였다는것이며, 암암리에 독일의 소련침공을 지지하고 지원하며, 미국은 독일을 지원할 군수물자를 비공식적으로 생산하고 렌드리스까지 하고있었습니다. 사실 미국은 비공식적으로 독일편 이었으며, 결론적으로 적으로 간주한 적성국이 독일이 아니라 소련이었습니다. 1945년이 되자 미군과 영국군은 패망해가는 독일군의 전투수행능력을 보존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제차소련공격을 준비하기까지이르렀습니다. 왜 패튼장군 같은 미군의 고위급 장성에 있는 사람이 독일을 도와서 소련을 쳐야한다고 말했을까? 도 조금은 생각해봐야합니다.
@@petrusgim1604미/영의 전략폭격은 산업기반의 파괴뿐만 아니라 독일 국민들의 사기 저하 및 전체적인 생산력의 저하를 불러왔음. 잔존 독일군 모아서 소련 통수치려고 한건 처칠 혼자 생각해낸거고 미국/영국군 장성들은 그거 듣고 이게 무슨 개소리지? 하면서 무시함. 그리고 미국이 랜드리스를 독일에도 시전했다? 자료부터 들고오슈.
솔직히 이탈리아가 독일과 상의도 없이 발칸침공하는 병크를 저질러서 바르바로사 작전이 1달정도 연기됬고 겨울이 오기전에 레닌그라드,모스크바를 먹어야했던 독일 입장에서는 금쪽같은 1달이 이탈리아때문에 날아가고 결국은 모스크바,스탈린그라드에서 패해서 승전가능성이 사라지고 쿠르스크에서 승전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고 노르망디,바그타리온으로 관짝에 못 박혔죠.
"전쟁 시작전 우리 정보국은 나에게 소련에는 예비 병력을 포함해서 최대 160개 사단과 3000대의 전차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200개 사단과 만대의 전차를 파괴했으며, 이제 우리 앞에는 600개의 사단과 3만대의 전차가 있다." -아돌프 히틀러, 쿠르스크 전투 이후
@@ssamjanghannip 딱히 랜드리스가 아니어도 독일 입장에서는 소련은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에 참가했던 17개의 기갑사단 중(차량화사단 12개는 제외) 7기갑사단을 예를 들어볼게요. 우선 편제숫자는 41년 6월 20일 기준으로 장교 400명 병 14,000명 전차 265량 장갑차 95대 특수목적차량 144대 트럭 1,866대 입니다 이상태로 바르바로사 작전을 시작했는데 7기갑사단의 이동경로는 너무 길고 멀었습니다. 거의 1,700km를 달려 가는 동안 그야말로 소모되어 갔는데 여기는 험한 이동경로로 푹풍우나 가을장마 기간에는 더욱 이동이 어려웠습니다. 7기갑사단은 41년 6월 22일 뢰첸에서 시작해서 칼바리야,알리투스,빌뉴스,말라제치나,스말랴비치,르펠,샨노,비텝스크,데미도프,두홉시나,데도보,글루시코보,뱌지마,카르마노보,그자츠크,클린,야흐로마까지 이동하는데 총 6개월이 걸렸고 그 동안 여덟 번의 전투에 참전했는데 특히 8월에는 두홉시나에서 소련의 이반 코네프 장군의 19군과 전투에서 전차만 70대를 잃었어요 덤으로 사단의 전투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연료, 탄약, 부품 등의 공급에도 문제가 많았고요. 9월 부터는 기관차, 화물차, 인력으로 이루어지는 보급이 너무 부족해서 보급을 담당한 트럭의 경우 1941년 6월 22일에 50만대 수준이었던 트럭이 11월 15일에는 13,500대로 급격하게 감소했습니다. 열차 수는 2,333량에서 1월 쯤에는 1,420량으로 줄었고요 그리고 42년 1월 23일 기준으로 장교 64명 병 5,133명 전차 9대 장갑가 5대 특수목적차량 7대 트럭은 200대 이하입니다. 이때 부대원 손실률을 보면 사망이 2,055명 부상 5,737명 실종 313명 질병 1,089명으로 총 9,194명이 전력 이탈이고요. 병력손실률은 63% 물자손실율은 95%정도로 이미 모스크바 도달 했을 때는 더 이상 작전이 불가능 했을 겁니다. 이렇게 당시 크게 보는게 아닌 각각 부대의 하나씩만 보더라도 이미 8월부터 병력 고갈의 신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소련 겨울이 일찍 찾아온것도 이유 중 하나이지만 이것도 예측 가능한 것이 3~4년 마다 반복해서 나타났기에 충분히 예상도 가능했고요. 결과론이지만 겨울이 일찍 올 수도 있다는 기상관측 보고서도 소수지만 있습니다. 날씨의 영향도 있긴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예상 가능했기에 제대로 준비 하지 않은 독일이 자멸했다고 보는게 더 정확할 거 같습니다. 게다가 독일이 뻘짓 안했으면 이겼다, 겨울이 일찍 안왔으면 이겼다 등은 솔직히 변명도 안되는데 소련도 대숙청이나 스탈린의 말도 안되는 공격 명령 등 소련도 초기에 뻘짓이 독일보다 많으면 많았고요. 추운 나라 쳐들어갈 때 방한 장비를 준비하는건 당연한건데 그걸 안했다는건 탱크로 싸울 건데 기름은 안챙겼다 수준의 말도 안되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이때 모스크바 공방전 때는 랜드리스가 제대로 이루지지 않은 시기였죠. 즉 애초에 독일 국력으로는 무리가 있다고 보는게 정확할 겁니다.
근대 소련 안쳤으면 나중에 대숙청 여파 끝난 소련군한테 선제타격 당할 확률이 높았어요.. 애초에 둘 다 서로를 안믿었어요 다만 스탈린 입장에서는 대숙청의 여파로 정리되지 않은 소련군이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죠.. 그리고 영국을 타격하기 위해서는 육군보다는 공군과 해군에게 대규모 투자를 해야하는데 인구부터가 3배 이상 차이나는 소련을 등 뒤에 두고 육군을 줄이기는 부담이 너무 컸을 겁니다. 즉 약해진 소련을 기습공격해서 등 뒤에 폭탄 제거와 동시에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나 코카서스 지방의 석유 등 각종 자원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히틀러의 정치적 이유인 공산당 타도 등을 이룩할 수 있었기에 히틀러 입장에서는 참기 힘든 유혹이었을 거에요
그나마 그들은1955년이 되면 귀향합니다만 그들이 있던 빈자리를 대신 메꾼건 소련내 1953년 철권정치의 대가 소련 제2대 서기장인 스딸린 사망후 소련 제3대 서기장 니키따 후루시초프가 정권을 잡은후 공산정권에 반대하는 반공주의자 척결과 정치인사들과 적국 독일에 잡혔던 수백만명의 소련군 포로들과 스딸린에 반기를 들어 독일군의 포로가 된후 반향하여 독일편에 가담했던 수십만명의 소련군들이 그 자리를 대신 메꾸게 됩니다. 소련군 포로들 중에선 소련으로 귀향과 강제송환에 오히려 반대했다고 합니다 소련의 서기장인 이오시프 스딸린은 6,25전쟁의 주범인 김성주(김일성)등과 우리나라 역사와도 매우 관련있는 인물이며, 제2차 세계대전(대조국해방전쟁)에서 히틀러를 이겼던 스딸린이 죽던해가 1953년이며, 같은해에 우리나라가 휴전을 맞이해 휴전상태가 지금까지 이르렀다는점입니다. 장기간 휴전이라는 전세계 유일의 냉전시대 유물을 그대로 가진 대한민국입니다. 6,25전쟁 휴전65주년 스딸린 사망65주년
독일이 패배한건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독일의 암호기계인 에니그마의 원리를 연합군이 알게 되고 독일군의 모든 암호를 해독하고 있었다는걸 전쟁이 끝날때 까지 독일은 몰랐다는것..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는데 연합군은 독일군의 모든 작전을 이미 알고 있어서 결과는 뻔한거였슴
뭔가 단순히 판단하기에는 어려운면이 많지~ 히틀러의 현진지사수병은 분명 중요한순간에 개같이 작용한건 맞는데 그로인해 얻은 이득도 많았거든, 나치와 독일 군부는 물론 일반 독일인들도 폴란드는 손봐야하는 존재로 여긴건 사실이니... 그때 그때로서는 합리적이라 생각됐던 판단이 결과적으로 개같이 작용한게 많고... 뭐라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기 힘든게 역사인듯
이 영상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가 있음.. 소련군이 비스와강 동쪽에 도달하여 바르샤바 공격을 주저한건 독일군의 저항이 심해서가 아니고 국제공산화 전략의 일환이었음. 당시 바르샤바에는 영국 주재 폴란드 임시정부의 지시를 받는 시민군이 독일에 봉기하고 있었으며 만약 바르샤바가 (소련군에의해) 해방될경우 친영.미계 폴란드 정부가 들어설 것을 우려한 스탈린이 시민군 봉기가 독일군에 의해 완전 궤멸될때까지 기다렸다가 친소 루블린 망명정부 인사들을 대동하고 바르샤바에 입성하여 폴란드를 공산화시켜 버린 것임
과거에는 명예와 권력욕이 있으며 두뇌회전이 좋은 인간들이 지배자가 되는게 일반적이다. 현시대는 전쟁위험이 크게 없으므로 독불장군이나 권력욕있는 인간이 아닌 부정부패없는 청렴하고 자기관리 철저한사람을 원한다. 당시 독일이 원한 사람은 히틀러였을뿐. . 독일인의 자존심을 회복시키는 연설가로서는 뛰어났지만 그 역할만 하고 떠났어야했다. .
스탈린그라드 전투 승리와 바그라티온 작전의 승리는 모두 시베리아 병단의 서진으로 가능하게 된 승리였다. 시베리아 군단을 서진할 수 잇었던 것은 할힌골 전투 (1939년)승리로 일제 관동군과 잠정적 휴전때문이었다. 할힌골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쥬코프 장군은 이후 모스크바 총사령부로 올라가 전쟁을 지휘하게 되었고 이곳 저곳 급한 곳에 전선 사령관으로 파견되어 독일군의 공세를 막아내면서 전략가로서 재능을 확인받게 되었다. 할힌골 전투의 의미는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다. 할힌골 전투를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한국인 공작원의 활약 때문이었다. 로만 킴 Роман Николаевич Ким 은 모스크바 주재 일본대사관에 침투하여 일본 관동군의 정보와 정세파악에 대해서 낱낱이 빼내어 할힌골 전투를 준비하던 쥬코프 장군에게 제공된다. 첩보를 분석하여 철저하게 일본 관동군의 약점을 파악한 쥬코프는 할힌골 전투에서 관동군을 대파하게되었다. 그 때까지 대규모 전투에서 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관동군은 큰 충격을 받고 주둔하고 있던 지역에 머무르면서 별다른 군사행동을 취하지 못하다가 패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수백만명에 달하던 관동군이 왜 패전까지 별다른 작전을 실시하지 못한 이유를 로만 킴의 첩보공작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조선인 항일투쟁은 빛나는 결과를 이끌어내었다. 친일파 매국노들이 주장하듯이 우리 해방은 미군의 핵폭탄으로 거저 얻어진 것이 절대로 아니다.
0106 sonm 그쪽또한 독일을 과소평가하시면안되죠 ㅋ 2차세계대전이후 미군 개인화기 소련개인화기의 모태가되는게 독일무기고 세계적인 명품소총인 ak47이 독일소총에서 탄생한건 아시나 그리고 독일이 약 5개국가를 상대하다보니 생산량이 적어보이는거지 사실은 생산한거 싹다 전선으로보내서 하루만에 전투기 30대가량 없어지는등 그래서 그런거지 전유럽을 지배하고 있다는 상태에서 미국이랑 붙으면 이기거나 미국이 먼저 협상해올겁니다 소련전선에만 300만명의 군인을 투입했는데도 서부전선에서 막혀서 독일에 입성은 하였으나 베를린 근처도못온게 미군입니다 소련이 엄청난 인해전술로 식량부족 탄약부족으로 소련에 항복한거지
1대1로 붙는다 치면 루마니아같은 추축 동맹 애들도 빼야지. 플로에스티 유전도 사용못할테고 기름없는 독일이 뭘하겟나. 쿠르스크 전투까진 소련이 사실상 독일이랑 혼자싸웠고 랜드리스 붙어서 바그라티온으로 몰아붙인건데 독일이랑 소련 혼자 뜬다해도 독일이 국력으로 소련을 못이겨요. 개개인 장구나 무기의 질이 좋았어도 그렇게 압도적인 것도 아니였고 온갖 파생형 출허에 생산성을 포기하니 유럽의 대부분을 차지한 독일이 gdp나 철강생산에서 소련을 압도했는데도 무기생산에선 오히려 뒤졌는데... 43년이나 와서야 쳐발리니기 시작하니까 총력전 연설 하면서 생산효율개선이 되서 망정이지 그전까지 독일은 비효율의 극치였음. 무튼 프랑스 1대1은 가능해도 영국을 비롯한 소련 미국이랑 붙는건 국력 차이가 엄청나서 안댐.. 독일은 BOB 진거부터 답이 없었음
지금에 와서야 히틀러의 무지와 무능을 탓하는 사람이 많지만 당시에는 히틀러의 그런 독단적이고 무지한 작전이 오히려 히틀러의 천재성이라고 선전하여 많은 히틀러 추종자들은 그렇게 열광했다가 그대로 멸망했다. 지금 우리 사회도 이렇게 허상을 가지고 사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태극기를 휘두르면서 박정희를 추종하며 자신들 만이 진정한 애국자인냥 믿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말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 우리 겨레가 박정희만 없었더라고 지금쯤 덴마크, 노르웨이, 벨기에 핀란드 처럼 작지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선진민주복지 부국이 되어있을 것이다.
애초 말도 안되는 소리 히틀러처럼 앞뒤 상황을 모르는 것처럼 좌파분들이 생각만 있다면 북유럽과 비교를 못하지ㅋ 넓은 영토에 광대한 자원 그에 비해 적은 인구 그런데 우리나라는 좁은 영토에 없다고 봐야되는 자원에 너무 많은 인구를 우리나라가 복지를 감당할 수 있을까?좌파들은 달콤한 꿈에 빠져 북유럽을 상상하지만 생각이 있다면 하면 안되는 꿈을 꾸고있다
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바그라티온 작전이 내용이 복잡해서 영상을 어떻게 구성해야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 막상 다 만들어놓고 보니 별로 고생한 티가 안나네요...(허무ㅋㅋ)
이번 영상에는 단순히 글 만으로 설명하면 이해가 쉽지 않을것 같아 지도 설명을 많이 넣었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많이 기다리긴 했지만 알펀티비 덕분에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또 기다릴게요 ㅜㅜ
바그라티온 작전이 복잡내용이죠 이해합니다
다음에는 무슨내용인가요???
너무재밌어여 다음편을 기대해여ㅎㅎ
목빠지게 기다렸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쿠르스크 공방전이후에 독일은 사실상 손실된 물자와 병력이 보충이 되질 않았고 절호의 기회를 놓칠 소련군이 아니었죠. 결국 이 전술은 독일이 소련에 해준 전격전인데 전쟁막판에 소련이 똑같은 방법으로 갚아준 전술이죠 전차부대가 신속히 진격해서 적 지휘부와 보급선을 끊어 버리면 약해진 부대를 후속부대가 정리한다는 작전.. 그게 바로 전격전의 기본
히틀러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결사항전만을 요구했던것과 독일군 최고사령부의 의견도 무시한채 자신을 최고사령관 자리에 앉히고 독일군의 후퇴를 막으며 오직 결사항전으로 적을 막으라는 식의 명령으로 동부전선의 독일군은 말 그대로 사형장에 끌려가는 비참한 꼴이 돼 버렸죠ㅡㅡ
좌파하고 비슷해요.미군철수시키고 북한한테 길열어주면 이기는줄 알아요
독일군부의 문제점은 그런 히틀러를 지지하고 그와 함께 바이마르 공화국을 무너뜨릴정도로 생각이 없다는 데에 있죠.
이하늘 동의합니다.
@에러 사회주의를 원하는 사람은 거의다 공산주의를 원한다고 봐도됨.공산주의 거부반응있는 사람도 많음.그런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임.사회주의가 공산주의가는 과도기이며 한국에서는 공산주의와 동일하다고 보면됨.일례로 사회주의가 자리잡은곳은 예외없이 엄청난 인권탄압이 일상화됨
@에러 네 모든 좌파라고 하는건 좀 그렇긴 합니다.마찬가지로 모든 우파가 우파적성격을 지닌다고 볼수없으며 추구방향과 농도에따라 많이 나뉘므로 모든 이라는것은 않맞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대체적으로 가장 많은 범주를 말씀드린것인데 예를 들면 우파는 배가불러 나태한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모든 우파가 아닌것과 같은 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차대전은 사실상 독소전쟁이 70프로를 차지 하는듯 실제 히틀러의 광기에서 세계를 구한건 소련이란 생각도 든다 ..
노르망디고 벌지전투고 롬멜의 북아프리카 전선을 모두 합쳐도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물량과 인명손실을 따라갈수 있을지 ..
거기에 쿠르스크전투에 바그라티온에 모스크바 공방전, 레닌그라드 탈환에 숨차다
레닌그라드 900일 포위로 엄청난 러시아인이 굶어죽었다고 하죠
미국이 먹여주고 입혀주고 무기까지 쥐어준것일 뿐이고, 교전비로 보면 사실상 독일한테 양학당하며 말 그대로 스탈린의 광기로 인민들의 피로 쓴 반쪽짜리 승리지. 장담컨데 넌 그저 반미, 반서구 프로파간다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병신이라는거.
정말 유익한 내용 감사합니다!
애초에 히틀러가 뻘짓 안했어도 독일 못이기는 싸움이었다 국력의 차이라는게 전쟁 몇년 승리로 채워지는게 아니다
맞는 말임
이길수 있었음
이래서 모르겠으면 전문가한테 맡기라고 하는 거구나.
너무 오래 기다렸습니다.그리고 좋은 자료 항상 감사드립니다.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이번에도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넘 잘만들었어요~~굿굿굿
감사합니다 ^^
원래 독재자는 간언을 듣지 않죠.
늘 잘보고 있습니다! 수고와 노력에 감사합니다!^^
이미 지나간 상황이지만, 발터 모델 원수가 보여서 그런가 그 장군이 활약했던 화성 작전 당시의 영상도 있음 좋겠네요~
만슈타인,룸멜 이많은명장들은 국가와 선임을 잘못만난 죄ㅠ
룸멜 아프리카원정 지원 안와서 히틀러 암살서에 사인하고 들켜서 자살했음 .
병신을 국가총수로 올려놓은 죄
어짜피 만슈타인은 히틀러 없었으면 그저그런 장군으로 남아 전역했을운명
구데리안도 종전후 10년 정도 밖에 못살음
@@뽈롱-r2c 1953년 종전후 8년뒤 사망...
감사합니다. 늘 즐감하고 있어요. ^^♡
굿굿굿~~ 이번편도 잘보고 갑니다~!
빨리 올려주세요 현기증난단 말이에요
저도 빨리 올리고 싶은데...이게 사람 정신을 갉아먹는 작업이라 ;;;;ㅋㅋㅋㅋ
ㅠㅠ 언제쯤 히로시마까지보게될까요? 알펀님 2차대전정리영상은 역사덕후로써 언제봐도 잼있네요 ㅎㅎ 항상 영상 더 빨리보고싶어지게되네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항상 업데 기다리며 잘보고 있습니다~
진짜 너무 재미있어요 ㅠㅠ
업데이트 된거보고 잠잘시간도 아껴서 봅니다 ㅎㅎ
나머지는 언제쯤 나오나요. 참 능력있는 유튜버들 많아.
나 개인적으로는 태평양 전쟁보다 유럽전쟁이 훨씬 재미있고 흥미로와요.
물론 전쟁이 재미있다는게 말이 안되는 소리지만 전개과정이 훨씬 더
전략이 필요한것 같아서......
마자요 태평양 전쟁 나오면 좀 대충 이해하고 넘어가고 유럽전쟁 나오면 갑자기 집중력 높아짐 ㅋㅋㅋㅋㅋ
잘보고 있습니다. ㅎㅎ
재미있게 봤어요.
역시 알펀티비님 기다렸어요 쵝오@@
오래 기다렸따리~
재밋게 보겟습니다~~
감사합니다.
암틀러가 주변의 말을 잘 들었다면..오히려 역사는 끔찍해졌을 수도 있었겠네요
저도 보면서 히틀러 병신이 조금만 똑똑했어도 역사가 바꼈을꺼라 생각했습니다
울펜슈타인 현실될뻔햇어
근데 바르바로사 작전때는 히틀러가 개입한게 아니라 독일 군부가 소련 개무시하고 12주 안에 전쟁 끝내니 뭐니 개같은 소리하면서 시작한 전쟁이라.. 42년 하계 공세때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순간 이미 거의 끝난거임 히틀러가 각성했어도 걍 종전만 늦어지는 수준
독선과 오만....지도자가 제일 경계해야 할 사고방식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히틀러는 잘하는게 지휘관 조지는거
지휘관 조지는건 스탈린 따라갈자 없다!
아무리 봐도 히틀러는 무능하다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한사람에 의해 유럽내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저렇게 말아먹기는 힘들텐데 말이죠
일단 영상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시청해주시는 명문고님 감사합니다
근데 히틀러도 문제이지만 히틀러를 제어할수 있다고 믿은 독일 수뇌부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게다가 독소전쟁을 찬성한 장성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전쟁끝나고 책임을 히틀러에게 전부 떠넘긴 쓰레기들도 많고요.
독소전쟁은....독일이 이길 가능성이 70%가 넘었습니다... 당시 독일로서도 하는게 맞았고 모스크바 점령하고 우랄공장이 있는 우랄산맥까지 공격하는데에 집중하여 만약 이게 성공했다면 러시아는 대패 했을것이고 스탈린그라드도 버리고 수도를 블라디 보스토크로 옮겼을 것 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부분의 소련군을 상실 한 것이고 서남부에 있는 스탈린그라드 등지의 땅까지 잃고 천연자원(석유,석탄,철광)들도 부족한 상황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공이 잘못되었고 작전이 너무 많이 미뤄진것 또한 잘못되었습니다. 서부전선에 모델을 남부집단군 사령관으로, 북부와 중부를 각각 만슈타인, 구데리안에게 맞기고 작전 개시일을 3월~4월 북부와 중부를 주공으로 모스크바를 9월 이전에 함락시킬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전이 계속 미루어졌고 히틀러의 지휘또한 무능했습니다.
AP HEAT 그 70프로를 인종차별, 초토화작전등의 대량학살과 인종청소, 1000만건의 강간으로 소련의 승률을 대폭 올려주고 그만큼 독일의 승률을 대폭 낮춰줬죠.
구데리안의 '기갑부대 독립'과 만슈타인의 '낫질작전'이라는 당시 시대를 앞서간 정신나간 계책을 히틀러가 안받아들였으면 애초에 벨기에에서 독일군은 뻘짓하고 1차대전 양상으로 흘러갔을 겁니다.
질보다 양...
아무리 독일군이 일당백이라도 물량작전에는 당할수없슴...
독일이 소련 일개사단을 물리치면 다음에는 2,3개사단이 물려오니 당할재간이 없었슴...
바그라티온 작전때는 독일과 소련간의 질적 차이가 별로 안났을걸요?
소련군은 기계화가 모두 완료된 강군입니다만...?
심지어 무기의 질까지도 앞서있던걸 장교와 교리의 부실함때문에 밀린거지
후반은 독일이 더 답없지 말만 사단이지 병력은 연대 1개 뿐이였음ㅋㅋㅋㅋㅋㅋ
단순히 양뿐만 아니라 질적에서도 소련이 독일을 압도했죠
T34/76 이런 전차가 아니라
T34/85전차에 IS-2전차는 웬만한 독일군의 6호전차 티거랑 쾨니히스티거(티거2)에 필적하면서도 수량도 많았죠
대장정의 끝이 거의 다 와가네요. 여지껏 봤던 방송국 다큐 보다도 낫습니다 대단하심
알펀형 기다렸어. 매번 고생 많어 형.
독일이 전선 이중화만 아니였다면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막았을려나??휴전후 3차대전 벌어졌을까요??ㅎㅎ
잼나는 세계대전 두둥탁!!!
그 당시 독일 국력으로는 이중화는 별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영국 본토 항공전이 패배했으니 독일이 영국을 먹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공군과 해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육군에 갈 돈을 해군과 공군에 투자하려고 했지만 등 뒤에 소련이 있으니 육군을 줄이기 너무 부담스러웠던 거죠 그 당시 소련과 독일이 불가침 조약을 맺을 때 전 세계가 놀란게 절대 손을 잡지 않을 것 같은 국가가 손을 잡아서 놀란겁니다. 그만큼 둘은 언젠간 싸우게 되겠지 라고 생각하던거죠 다만 소련은 대숙청의 여파로 군이 상당히 약해져있었고 스탈린은 회복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히틀러가 그 약점은 놓치지 않았던 거죠 즉 약해진 소련군을 기습적으로 공격해서 등 뒤의 폭탄 제거 +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 코카서스 지방의 유전지대 등 독일의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자원문제 해결 + 히틀러의 정치적인 공산당 타도 등등 결국 벌어질 싸움이었습니다.
핵꿀잼
알펀님 밀덕으로써 정말 감사하게 영상 시청중입니다
여쭐것이있는데 영상들에 쓰이는 대전 영상들은 보통 어디서 퍼오시나요? 출처가 어떻게 되죠?? 원본영상도 좀 보고싶어서 이렇게여쭙니다
유튜브에서 검색하기도 하고 더 나은 화질을 구하거나 다큐나 영화는 직접 구하기도 해요~
종전후 서방 연합국은 바그라티온 작전을 면밀히 분석합니다 결론은 소련의 무자비한 전략 기동전을 막을건 전술핵 뿐이 없다
그러나 소련도 1930년대부터 핵물학에 관심이 많았고 1942년부터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같은 핵보유국이 되는데는 시간문제였습니다. 바로 1949년에 리틀보이의 3,400배에 해당되는 핵개발에 성공해 이후로 기네스북에 오른 차르봄바까지 만들었습니다.
@@petrusgim1604 리틀보이가 TNT 16kt급이고 RDS-1이 22kt급이었는데 무슨 개소리일까
@@로시난테-k9i 차르봄바는 TNT 50Mt. 다시말해 500000000t입니다.
존시나 크죠.기네스북에 오른 미친놈입니디.
정말 잘 만들었네요 다음편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다음편은 레이테만 해전 예정입니다.
물량차이말고도 상징적으로 당시 독소군의 차이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미제트럭과 차량으로 움직이는 소련군과 여전히 말이 없으면 꼼짝 못하는 독일군과의 비교를 드는 분석이 기억나네요. 우리가 현재아는 독일처럼 당시 독일군은 넉넉한 이들이 아닌 오히려 가난한 군대이죠. 뒤늦게 후퇴를 할려고해도 기동성에서 뛰어난 소련군에게 따라잡히고 포위당해 일망타진당하는 일이 빈번하죠. 게다가 제공권 우위도 없으니 독일군으로선 연료및 군수물자등등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서 진작에 방어선을 제대로 구축하고 겨기로 전선을 후퇴, 축소시켰어야했죠.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나중 전리품신세가되어 모스크바 거리를 행군하며 시베리아로 끌려간 포로들이 만일 훗날 오데르전선이나 베를린방어에 제대로 전력을 보존한채 모델원수나 하인리치 장군같은 방어전의 귀재들의 지휘하에 투입되었더라면 아마 소련이 전후패권을 잡지못했을지도 모르죠.
소련의 지리는 차량 생산력도...
실제로는 독일이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결정적으로 패전의 위기에 처했는데 왜사람들은 노르망디 때문에 독일이 패전했다고 믿는걸까....
2차 대전 나치스 정권 제3제국(Das Dritten Reich)의 독일의 결정적 패전의 원인은 독소전이고 Bagration(바그라치온)작전은 독일 국방군(OKW)의 최종적으로 등골뼈를 부셔 독일군의 마지막 힘까지도 모조리 붕괴되고 나치스 정권의 종말을 고하는 전투였습니다. 독소전쟁으로 나치독일과 공산소련의 모든역량이 동부전선의 거대한 용광로 속으로 빨려 녹아들어가고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였습니다.
독일이 1941년이후 동부전선에서 전투를 치루는 만5년동안 서부유럽전선은 이딸리아가 항복하던 1943년 하반기에서 1944년 상반기 까지 미국의 독일본토 전략폭격과 북아프리카를 제외하면 비교적으로 서유럽은 조용한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미 영국의 양국 공군의 전략폭격도 미미한편에 그쳤으며, 독일 군수산업기반을 파괴하는데 있어서 약1.7%정도의 성공확률이었으며, 독일의 정치적 전쟁수행의지를 꺽고 전쟁수행능력을 좌절시키기에는 별다른 손실을 입히지는 못하였다는것이며, 암암리에 독일의 소련침공을 지지하고 지원하며, 미국은 독일을 지원할 군수물자를 비공식적으로 생산하고 렌드리스까지 하고있었습니다. 사실 미국은 비공식적으로 독일편 이었으며, 결론적으로 적으로 간주한 적성국이 독일이 아니라 소련이었습니다. 1945년이 되자 미군과 영국군은 패망해가는 독일군의 전투수행능력을 보존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제차소련공격을 준비하기까지이르렀습니다. 왜 패튼장군 같은 미군의 고위급 장성에 있는 사람이 독일을 도와서 소련을 쳐야한다고 말했을까? 도 조금은 생각해봐야합니다.
@@petrusgim1604미/영의 전략폭격은 산업기반의 파괴뿐만 아니라 독일 국민들의 사기 저하 및 전체적인 생산력의 저하를 불러왔음. 잔존 독일군 모아서 소련 통수치려고 한건 처칠 혼자 생각해낸거고 미국/영국군 장성들은 그거 듣고 이게 무슨 개소리지? 하면서 무시함.
그리고 미국이 랜드리스를 독일에도 시전했다? 자료부터 들고오슈.
ㅂㅅ이 아는척 오지네ㅋㅋ
He stia 꼬우면 자료 들고오시던가 ㅎ
언제 쯤 연재 시리즈가 끝날까요?
올해안에 끝나긴 어려워보이는데...잘 모르겠네요...내년초쯤...
중일전쟁 에피소드는 왜 안할까 8년동안 전쟁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바르샤바 근처의 강은 비스툴라 강인가요?
알펀티비님 구독자 숫자도 보이게 해주세요.
구독자는 어느정도 많아지면 공개할게요 ㅎㅎ;
항상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혹시 목소리(자막읽어주는) 입히는 프로그램이 있나요?
tts 프로그램
이라고 검색하시면 됩니다~
@@rfuntv2217 헉 빠른 답변 감사합니다
진짜 이정도되면 자기네들이 패망할걸 알고있었을텐데...참...
솔직히 이탈리아가 독일과 상의도 없이 발칸침공하는 병크를 저질러서 바르바로사 작전이 1달정도 연기됬고 겨울이 오기전에 레닌그라드,모스크바를 먹어야했던 독일 입장에서는 금쪽같은 1달이 이탈리아때문에 날아가고 결국은 모스크바,스탈린그라드에서 패해서 승전가능성이 사라지고 쿠르스크에서
승전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고 노르망디,바그타리온으로 관짝에 못 박혔죠.
그런데 이탈리아는 중간에 도리어 연합국으로 갈아탔기에
2분 07초 미하일 투하쳅스키의 출생 년도 표기가 잘못되었습니다.
생몰연도가 아니라 총참모장 재임기간입니다
@@HDunicorns 아이쿠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 했습니다. 그런 줄은 몰랐네요...
어떤 기간인지 나와있지 않아서 생몰년도로 생각했네요..
늦었어도 영상이 재밌어서 좋아요 눌렀구요. 하트줘잉~~
영상에서 나온 얼굴모양의 영토가 잘리는 걸 보니 진짜 사형선고가 내려진 죽기 전 3천 죄수의 모습을 닮았네...
영상편집프로그램 뭐쓰세요?
베가스 사용합니다
이게 히틀러와 스탈린의 차이임 히틀러는 유능하면 전부 자르고 스탈린은 유능한 장교는 몇몇 남겨뒀다는것
히틀러가 유능하고 전방 지휘관들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동부에 올인할수잇었다면
소련군은 오합지졸이였을거임
쏘오련의 붉은 군대는 세계제일!!!!!!!
응~ 그 붉은 군대 전차 땅크로 6.25 쳐들어와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어~
@@eezn5779 뭐지 군대가 강하다는거라 탱크 지원이랑 뭔 상관?
한일병탄전 가쓰라 데프트조약과 6,25전쟁전 에치슨 라인을 공부해봐.
미국과 일본이 우리의 역사를 두번이나 강간했어.
난 이해가 안되는게 미국이 왜 가쓰라테프트 조약따위를 맺었는가였다
어차피 스페인 두둘겨패서 필리핀 뺏어갔는데 조밥 일본따위가 뭐라고 미국꺼인 필리핀을 인정하네마네함?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거더라
조선 먹는거 봐줄태니 러시아하고 전쟁해라 차관줄께 이거였어 필리핀은 핑계고
소련 전차들의 주포 구경이 커서 무지 강할거라 생각한다면 그생각 접어두자
소련의 85mm포를 테스트한 결과
독일의 75mm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는 결과가 나왔으니 IS-2의 122mm도 독일의 88mm 혹은 105mm곡사포 수준일것이라 생각한다
"전쟁 시작전 우리 정보국은 나에게 소련에는 예비 병력을 포함해서 최대 160개 사단과 3000대의 전차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200개 사단과 만대의 전차를 파괴했으며, 이제 우리 앞에는 600개의 사단과 3만대의 전차가 있다."
-아돌프 히틀러, 쿠르스크 전투 이후
오오!! 정말 오랜만에 독소전쟁사가 나왔네요. 히틀러가 병크짓을 안했다면 과연 독일이 이겼을까요?
못이겼죠 랜드리스가 있는한 독일은 어떤일을 해도 소련을 못이겨요
애초에 히틀러가 폴란드에 선전포고한 것 부터가 병크...
@@ssamjanghannip 랜드리스가 있어도 군대가 저따구면...흐으으음
@@ssamjanghannip 딱히 랜드리스가 아니어도 독일 입장에서는 소련은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에 참가했던 17개의 기갑사단 중(차량화사단 12개는 제외) 7기갑사단을 예를 들어볼게요. 우선 편제숫자는 41년 6월 20일 기준으로 장교 400명 병 14,000명 전차 265량 장갑차 95대 특수목적차량 144대 트럭 1,866대 입니다 이상태로 바르바로사 작전을 시작했는데 7기갑사단의 이동경로는 너무 길고 멀었습니다.
거의 1,700km를 달려 가는 동안 그야말로 소모되어 갔는데 여기는 험한 이동경로로 푹풍우나 가을장마 기간에는 더욱 이동이 어려웠습니다. 7기갑사단은 41년 6월 22일 뢰첸에서 시작해서 칼바리야,알리투스,빌뉴스,말라제치나,스말랴비치,르펠,샨노,비텝스크,데미도프,두홉시나,데도보,글루시코보,뱌지마,카르마노보,그자츠크,클린,야흐로마까지 이동하는데 총 6개월이 걸렸고 그 동안 여덟 번의 전투에 참전했는데
특히 8월에는 두홉시나에서 소련의 이반 코네프 장군의 19군과 전투에서 전차만 70대를 잃었어요 덤으로 사단의 전투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연료, 탄약, 부품 등의 공급에도 문제가 많았고요.
9월 부터는 기관차, 화물차, 인력으로 이루어지는 보급이 너무 부족해서 보급을 담당한 트럭의 경우 1941년 6월 22일에 50만대 수준이었던 트럭이 11월 15일에는 13,500대로 급격하게 감소했습니다.
열차 수는 2,333량에서 1월 쯤에는 1,420량으로 줄었고요 그리고 42년 1월 23일 기준으로 장교 64명 병 5,133명 전차 9대 장갑가 5대 특수목적차량 7대 트럭은 200대 이하입니다. 이때 부대원 손실률을 보면 사망이 2,055명 부상 5,737명 실종 313명 질병 1,089명으로 총 9,194명이 전력 이탈이고요. 병력손실률은 63% 물자손실율은 95%정도로 이미 모스크바 도달 했을 때는 더 이상 작전이 불가능 했을 겁니다.
이렇게 당시 크게 보는게 아닌 각각 부대의 하나씩만 보더라도 이미 8월부터 병력 고갈의 신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소련 겨울이 일찍 찾아온것도 이유 중 하나이지만 이것도 예측 가능한 것이 3~4년 마다 반복해서 나타났기에 충분히 예상도 가능했고요.
결과론이지만 겨울이 일찍 올 수도 있다는 기상관측 보고서도 소수지만 있습니다. 날씨의 영향도 있긴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예상 가능했기에 제대로 준비 하지 않은 독일이 자멸했다고 보는게 더 정확할 거 같습니다.
게다가 독일이 뻘짓 안했으면 이겼다, 겨울이 일찍 안왔으면 이겼다 등은 솔직히 변명도 안되는데 소련도 대숙청이나 스탈린의 말도 안되는 공격 명령 등 소련도 초기에 뻘짓이 독일보다 많으면 많았고요.
추운 나라 쳐들어갈 때 방한 장비를 준비하는건 당연한건데 그걸 안했다는건 탱크로 싸울 건데 기름은 안챙겼다 수준의 말도 안되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이때 모스크바 공방전 때는 랜드리스가 제대로 이루지지 않은 시기였죠. 즉 애초에 독일 국력으로는 무리가 있다고 보는게 정확할 겁니다.
@@두리번-g3o 모스크바 꼴박이 아니라 스몰렌스크에서 멈추고 기방 들어가면서 식량 끊었으면 몰랐죠
롬멜장군 죽으신게 참....
히틀러가 장군들의 명령을 받아들여도 달라지는건 별로 없엇을 것입니다.붉은군대는 기동력과 화력에서 독일군을 압도햇거든요
아무리 고니, 평경장 같은 타짜라도 상대가 판돈으로 현찰 한 1000억원쯤 가져오면 이길 수 가 없음
히틀러는 전략 사령관 자질은 없고
돌격대 중령 정도 해야하는 인물이다
소련만 뒷통수 안쳤어도 미국은 소련에 맞기고 영국만 상대하면 지지는 않았다
그것도 해상함대 수준을 보면...
근대 소련 안쳤으면 나중에 대숙청 여파 끝난 소련군한테 선제타격 당할 확률이 높았어요.. 애초에 둘 다 서로를 안믿었어요 다만 스탈린 입장에서는 대숙청의 여파로 정리되지 않은 소련군이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죠.. 그리고 영국을 타격하기 위해서는 육군보다는 공군과 해군에게 대규모 투자를 해야하는데 인구부터가 3배 이상 차이나는 소련을 등 뒤에 두고 육군을 줄이기는 부담이 너무 컸을 겁니다.
즉 약해진 소련을 기습공격해서 등 뒤에 폭탄 제거와 동시에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나 코카서스 지방의 석유 등 각종 자원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히틀러의 정치적 이유인 공산당 타도 등을 이룩할 수 있었기에 히틀러 입장에서는 참기 힘든 유혹이었을 거에요
히틀러가 서부 유럽을 먼저 공격하는것이 아닌, 소련부터 공격하였으면, 지금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아시아는 일본이 있었기에, 시베리아에서 조우했을 지도..
지휘관이 중요하지 히틀러의 오만
미국이 2차대전에 개입 함으로써 이미 독일은 게임오버가 되었다.
히틀러 이새낀 해임 존나 좋아하네 존나 해임달인줄
머야 이게 영화냐
모스크바에서 행진한 6만명의 독일군 포로는 강제노동으로 고통받습니다
그나마 그들은1955년이 되면 귀향합니다만 그들이 있던 빈자리를 대신 메꾼건 소련내 1953년 철권정치의 대가 소련 제2대 서기장인 스딸린 사망후 소련 제3대 서기장 니키따 후루시초프가 정권을 잡은후 공산정권에 반대하는 반공주의자 척결과 정치인사들과 적국 독일에 잡혔던 수백만명의 소련군 포로들과 스딸린에 반기를 들어 독일군의 포로가 된후 반향하여 독일편에 가담했던 수십만명의 소련군들이 그 자리를 대신 메꾸게 됩니다. 소련군 포로들 중에선 소련으로 귀향과 강제송환에 오히려 반대했다고 합니다
소련의 서기장인 이오시프 스딸린은 6,25전쟁의 주범인 김성주(김일성)등과 우리나라 역사와도 매우 관련있는 인물이며,
제2차 세계대전(대조국해방전쟁)에서 히틀러를 이겼던 스딸린이 죽던해가 1953년이며, 같은해에 우리나라가 휴전을 맞이해 휴전상태가 지금까지 이르렀다는점입니다. 장기간 휴전이라는 전세계 유일의 냉전시대 유물을 그대로 가진 대한민국입니다. 6,25전쟁 휴전65주년 스딸린 사망65주년
@@petrusgim1604 흐루쇼프는 집권후 굴라그에서 노역중이던 죄수들 대량으로 사면시켰는데 왠 개소리일까
쥐잡듯이 굴린건 스탈린이고
스탈린이 한짓을 모두 되돌리고 스탈린을 부정한 흐루시쵸프가 왜 욕을먹지...
히틀러와 스탈린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스탈린은 본인이 군재의 병신인걸 깨닫고 주코프에게 모든걸 맡긴 반면 히틀러는 죽을때까지 자신이 병신인걸 몰랐던 차이인듯하다
아니면 병신인걸 알았지만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 했을 수 도 그게 어디 쉽나
소비에트 연방 우라!!!
???: 꼬우면 독일 해라
그냥 안 할께요
독일이 패배한건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독일의 암호기계인 에니그마의 원리를 연합군이 알게 되고 독일군의 모든 암호를 해독하고 있었다는걸 전쟁이 끝날때 까지 독일은 몰랐다는것..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는데 연합군은 독일군의 모든 작전을 이미 알고 있어서 결과는 뻔한거였슴
유보트때문에 랜드리스가 소련에 잘 전달되지 않았으나 그 덕분에 1942~3년 이후 서서히 전달량이 늘어났죠.
뭔가 단순히 판단하기에는 어려운면이 많지~ 히틀러의 현진지사수병은 분명 중요한순간에 개같이 작용한건 맞는데 그로인해 얻은 이득도 많았거든, 나치와 독일 군부는 물론 일반 독일인들도 폴란드는 손봐야하는 존재로 여긴건 사실이니... 그때 그때로서는 합리적이라 생각됐던 판단이 결과적으로 개같이 작용한게 많고... 뭐라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기 힘든게 역사인듯
이 영상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가 있음.. 소련군이 비스와강 동쪽에 도달하여 바르샤바 공격을 주저한건 독일군의 저항이 심해서가 아니고 국제공산화 전략의 일환이었음. 당시 바르샤바에는 영국 주재 폴란드 임시정부의 지시를 받는 시민군이 독일에 봉기하고 있었으며 만약 바르샤바가 (소련군에의해) 해방될경우 친영.미계 폴란드 정부가 들어설 것을 우려한 스탈린이 시민군 봉기가 독일군에 의해 완전 궤멸될때까지 기다렸다가 친소 루블린 망명정부 인사들을 대동하고 바르샤바에 입성하여 폴란드를 공산화시켜 버린 것임
바르샤바까지 갈 생각도 없었는데 너무 잘 밀려서 거기까지 가게된거고 그게 바르샤바 근처까지가 공세종말점이었음 출처 글렌츠의 독소전쟁사
롬멜은 음독자살했는데?
음독자살을 숨기기 위해 위장한 교통사고
@@ES_COOKIES 롬멜의 데스마스크(죽은 이의 얼굴에 석고등을 부어 만든 조각? 가면?)에 보면 눈이 녹아내린듯한 흔적이 있습니다
다굴에 장사없다..ㄷㄷ
과거에는 명예와 권력욕이 있으며 두뇌회전이 좋은 인간들이 지배자가 되는게 일반적이다.
현시대는 전쟁위험이 크게 없으므로 독불장군이나 권력욕있는 인간이 아닌 부정부패없는 청렴하고 자기관리 철저한사람을 원한다.
당시 독일이 원한 사람은 히틀러였을뿐. .
독일인의 자존심을 회복시키는 연설가로서는 뛰어났지만 그 역할만 하고 떠났어야했다. .
대충히틀러코게박살낸작전
사실상 미국 , 소련 양국하고 전쟁한것 자체가 실패한거지 최소한 한곳하고만 전쟁했어야지
그시절에는 독일국민 90%가 히틀러를 찬양했다니,쇄뇌가 무섭다
정치가가 전쟁하면 좆되는거임. 전쟁은 군인에게 경제는 기업인에게..
우.르.야
나폴레옹은 부하 때문에 정복 실패하고 히틀러는 지 때문에 사기적인 부하들 잡아서 망하고 나폴레옹에 나치 부하들이 있었어야됬어
철의심장 헛소리;;;
어우야...
나폴레옹에 히틀러부하들이라니...
새삼 핀란드가 독일의 동맹국인게 낯설다 ㅋㅋ 우리도 일제식민지여서 동맹국이던데 ㅋㅋ
그런데 왜 1943~1945년에 이탈리아는 일제의 적이었고 바돌리오의 이탈리아 역시 영국 소련의 동지였다고 하나요???다들
롬멜 해임에 모자라 숙청까지 하면 어뜩하니 암틀러야
스탈린그라드 전투 승리와 바그라티온 작전의 승리는 모두 시베리아 병단의 서진으로 가능하게 된 승리였다. 시베리아 군단을 서진할 수 잇었던 것은 할힌골 전투 (1939년)승리로 일제 관동군과 잠정적 휴전때문이었다. 할힌골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쥬코프 장군은 이후 모스크바 총사령부로 올라가 전쟁을 지휘하게 되었고 이곳 저곳 급한 곳에 전선 사령관으로 파견되어 독일군의 공세를 막아내면서 전략가로서 재능을 확인받게 되었다. 할힌골 전투의 의미는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다. 할힌골 전투를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한국인 공작원의 활약 때문이었다. 로만 킴 Роман Николаевич Ким 은 모스크바 주재 일본대사관에 침투하여 일본 관동군의 정보와 정세파악에 대해서 낱낱이 빼내어 할힌골 전투를 준비하던 쥬코프 장군에게 제공된다. 첩보를 분석하여 철저하게 일본 관동군의 약점을 파악한 쥬코프는 할힌골 전투에서 관동군을 대파하게되었다. 그 때까지 대규모 전투에서 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관동군은 큰 충격을 받고 주둔하고 있던 지역에 머무르면서 별다른 군사행동을 취하지 못하다가 패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수백만명에 달하던 관동군이 왜 패전까지 별다른 작전을 실시하지 못한 이유를 로만 킴의 첩보공작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조선인 항일투쟁은 빛나는 결과를 이끌어내었다. 친일파 매국노들이 주장하듯이 우리 해방은 미군의 핵폭탄으로 거저 얻어진 것이 절대로 아니다.
너무 기다럈어요ㅠㅠ
머 숫자부터 딸리네
애고, ㅉㅉ.
전쟁의 전자도 모르는
인간이 전쟁을 총지휘했으니
이길수가 있나.
독일과 일본은 닮은점이 너무많다 호전적이고 잔인한게 ............... 그러나 그들머리위에는 미국과 소련이 있다
7000대vs40대 ㅋㅋ
진짜 전쟁은 소련이 다해먹었는데. 정작 뒤에서 손가락만 빨면서 쳐발렷던 연합국은 독일 뒷통수친걸로 끝냇죠. 그래놓고 이제와선 영화에서 지들이 전쟁을 다해놓은것마냥 말함.
독일은 사실상 세계를 주도하던 강대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과 혼자서싸웠기에 패배한거임 미국이든 소련이든 1:1로싸웠으면 무조건이겼음
독소전쟁이야말로 2차 대전 그 자체라고 보면됩니다.
0106 sonm 그쪽또한 독일을 과소평가하시면안되죠 ㅋ 2차세계대전이후 미군 개인화기 소련개인화기의 모태가되는게 독일무기고 세계적인 명품소총인 ak47이 독일소총에서 탄생한건 아시나 그리고 독일이 약 5개국가를 상대하다보니 생산량이 적어보이는거지 사실은 생산한거 싹다 전선으로보내서 하루만에 전투기 30대가량 없어지는등 그래서 그런거지 전유럽을 지배하고 있다는 상태에서 미국이랑 붙으면 이기거나 미국이 먼저 협상해올겁니다 소련전선에만 300만명의 군인을 투입했는데도 서부전선에서 막혀서 독일에 입성은 하였으나 베를린 근처도못온게 미군입니다 소련이 엄청난 인해전술로 식량부족 탄약부족으로 소련에 항복한거지
0106 sonm 말뜻을 이해못하시나요? 러시아에서 생산된ak47이 독일소총을 모태로탄생된 소총이라니까요? 그리고 미국은 못이긴다칩시다 그럼 소련 영국은 어떻게 생각하시죠?
1대1로 붙는다 치면 루마니아같은 추축 동맹 애들도 빼야지. 플로에스티 유전도 사용못할테고 기름없는 독일이 뭘하겟나. 쿠르스크 전투까진 소련이 사실상 독일이랑 혼자싸웠고
랜드리스 붙어서 바그라티온으로 몰아붙인건데 독일이랑 소련 혼자 뜬다해도 독일이 국력으로 소련을 못이겨요.
개개인 장구나 무기의 질이 좋았어도 그렇게 압도적인 것도 아니였고 온갖 파생형 출허에 생산성을 포기하니 유럽의 대부분을 차지한 독일이 gdp나 철강생산에서 소련을 압도했는데도 무기생산에선 오히려 뒤졌는데... 43년이나 와서야 쳐발리니기 시작하니까 총력전 연설 하면서 생산효율개선이 되서 망정이지 그전까지 독일은 비효율의 극치였음. 무튼 프랑스 1대1은 가능해도 영국을 비롯한 소련 미국이랑 붙는건 국력 차이가 엄청나서 안댐.. 독일은 BOB 진거부터 답이 없었음
@한세건 지중해 정리되고 43년 중반아마 쿠르스크 전쯤이나 전투가 시작했을때부터 신나게 보급받기 시작했을겁니다. 그전에도 받긴했는데 43~45년대에 받은양에 비하면 뭐...
지금에 와서야 히틀러의 무지와 무능을 탓하는 사람이 많지만 당시에는 히틀러의 그런 독단적이고 무지한 작전이 오히려 히틀러의 천재성이라고 선전하여 많은 히틀러 추종자들은 그렇게 열광했다가 그대로 멸망했다. 지금 우리 사회도 이렇게 허상을 가지고 사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태극기를 휘두르면서 박정희를 추종하며 자신들 만이 진정한 애국자인냥 믿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말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 우리 겨레가 박정희만 없었더라고 지금쯤 덴마크, 노르웨이, 벨기에 핀란드 처럼 작지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선진민주복지 부국이 되어있을 것이다.
애초 말도 안되는 소리
히틀러처럼 앞뒤 상황을 모르는 것처럼 좌파분들이 생각만 있다면 북유럽과 비교를 못하지ㅋ 넓은 영토에 광대한 자원 그에 비해 적은 인구 그런데 우리나라는 좁은 영토에 없다고 봐야되는 자원에 너무 많은 인구를 우리나라가 복지를 감당할 수 있을까?좌파들은 달콤한 꿈에 빠져 북유럽을 상상하지만 생각이 있다면 하면 안되는 꿈을 꾸고있다
지랄하고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