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위해 모든 걸 바친 어머니, 마지막엔 고시원에서 홀로 눈물 지었다… 노년 | 가족 | 희생 | 헌신 | 외로움 | 고시원 | 딸 | 손주 | 경제적 어려움 | 부모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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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8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5

  • @황지영-q8q
    @황지영-q8q 13 дней назад +1

    수십년 가슴에 담아 두고 말 못했던 걸 처음 밝히려 하니 눈물부터 흐르네요, 필자는 조금 일찍 23살에 연상녀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 당시 80년초 공부를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학창시절 총학생회장을 했던 사람이 고졸이라는 명함으로 좋은 곳의 직장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아서 나보다는 더 많은 수입을 거둘 수 있는 여자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퇴근 후 학원갔다가 새벽까지 공부를 했고 아내는 나의 학원비와 교제비를 벌기 위해 동분서주 하다보니 맹장염에 걸렸는데 초기 조치를 못해 맹장이 터진 후 수술을 했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어 나팔관에 염증이 있어 유산이 잦았고 결론적으로 자식을 생산하지 못했습니다. 나이 40쯤 우리 부부의 노년에 도움이 될까 싶어 사내아이를 입양해서 키웠습니다. 5살 짜리엿습니다 입양한 후 곧 교육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유치원 학원 3과목 보습 그리고 초등학교때는 학원수업을 시켰고 중학교 1학년때는 개인과외를 시켰습니다. 애 초등 1년때 아내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뇌수술로 인한 58일 입원했으며 그 후유증으로부터 시음시음 앓기 시작하더니 애 대학교 1년 때 쓰러져 간농화로 인한 간수술 후 13일 중환자실 그리고 41일 병원입원 병원비를 감당하기 쉽지 않았던 것은 간병을 하다보니 가게 문을 닫는 일이 잦았고 집을 팔아 아이의 학비와 기숙사비 그리고 책값 용돈등 단 한번도 기일을 어긴적이 없었으며 해달라는 것도 싫은 내색없이 최선을 다해 키웠고 그리고 국립대학 컴퓨터를 자퇴하고 군입대를 하고 제대를 한 후 서울로 상경을 했습니다. 공부를 해서 좋은 곳에 취직을 하겠다고 해서 생활에 필요한 것을 매월 먹을 것과 고시원비를 보내주었는데 애가 서울 상경한 후 3개월 만에 아내는 쓰러져 오른쪽이 마비되었고 치매까지 겹치더니 어느 날 열이 40도 까지 올라 병원에 입원했으나 중환자실 담당 의사는 좀처럼 열이 내려가지 않는다면 온 몸에 얼음덩이를 차고 11일 후 열이 내려갔고 일반병실로 옮겨 왔을 때 언어소통이 되지 않는 상태로 퇴원하여 14년간 침대를 신세를 졌으며 살려보려고 할 짓 안할 짓 다해가며 대소변 4년간 내면서까지 노력했으나 아내는 5년전 만산홍엽이 눈물처럼 쏟아지던 날 11월5일 코로나 발병 이틀 전 모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마지막 눈을 감을 때 한쪽 눈은 뜬 채 하늘 나라로 가벼렸습니다. 무려 22년간 경제적 물질적 어려움을 겪으며 내색 한 번 안하고 키웠던 놈인데 서울 잠실 교통회관에서 결혼식을 한 다음 날 인연도 끊고 전화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표면적 나이가 많고 가난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요 또한 결혼식에 아빠 친인척과 아내쪽의 친인척이 안 왔다는 이유를 대면서 생욕된욕을 퍼 붓더라고요 사실 22년간 지인들과 지우들과 처가와도 왕래와 소통이 없었으니 결혼식에 와 달라고 청첩장을 보내는 것은 속보이는 짓이라 가까운 사람 11명에게만 청첩장을 전달했고 그리고 제 지인들이 보내준 축의금 100만원을 전달했으나 그 돈마저 다시 보내면서 인연을 끊자고 하더라고요 세상의 이 허무와 상실과 배신한 인간의 노력은 허사였고 인간이라면 이렇게 까지 할 수 있는가 싶어 약 6개월간 술로 살았습니다. 대장암 수술을 받고 완치 판정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는데도 술을 먹지 않으면 잠을 청할 수가 없었고 한동안 우울증이 심해 후화와 자책이 뒤범벅되어 눈물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29년을 키웠지만 나에게 보내 준 돈은 결혼식 양복 사라고 보내 준 20만원이 전부며 그리고 창원 상견례 갔을때 카드를 지참 못해 차용한 돈 10만원을 포함한 30만원이 다며 이제 제 나이 60대 후반 저 역시 홀몸으로서 고독사 아니면 어느 변방을 떠돌다가 외로이 고요이 눈을 감겠지요 옛말에 짐승은 키우되 사람을 키우지 말라는 성현들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평생 가슴에만 담고 살려고 했는데 이 분의 사연을 들으면서 이제 나도 그간 나의 아픔과 상처를 한 번쯤은 세상에 드러내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국가의 도움으로 근근히 버티고 살지만 나의 주검은 시신기증로서 이 세상의 내 삶이 끝날 것입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네요 배은망덕한 놈 용서가 쉽지 않네요 건강하십시오 -hwjipark@gmail.com/황지영-

    • @MagicWindow2024
      @MagicWindow2024  11 дней назад

      마음이 많이 힘드신가 봐요... 때론 듣기 싫은 소리도 있지만, 그 속에서 필요한 지혜를 얻을 때도 있는 것 같아요. 힘내세요! 응원할게요! 🙏💖

  • @김영희고맙습니다
    @김영희고맙습니다 13 дней назад +1

    고마워요~~

    • @MagicWindow2024
      @MagicWindow2024  11 дней назад

      별말씀을요~ 감사한 마음 전해주셔서 제가 더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