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Blockbuster 037] 중세와 르네상스1_ 중세 전반기 500년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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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9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33

  • @ανθρωπος-η2π
    @ανθρωπος-η2π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감사합니다❤

  • @리얼티베어
    @리얼티베어 2 года назад

    감사합니다..^^

  • @leeseungmok_83
    @leeseungmok_83 4 года назад +10

    1:02 [교황]
    3:54 [교황] 교황권 밖의 "켈트 기독교"
    4:45 [샤를마뉴 시대] 이슬람 제국 등장
    5:24 [샤를마뉴 시대] 프랑크왕국과 샤를마뉴 대제
    6:14 [샤를마뉴 시대] 카롤링거 르네상스 with 학교s
    7:03 [중세 초기의 논쟁들] 성상파괴 논쟁
    8:27 [중세 초기의 논쟁들] 성찬 논쟁 + 신블26화(성만찬논쟁)
    9:14 [중세 초기의 논쟁들] 이중예정 논쟁
    10:11 [쇠락과 부패] 세속/교황권력 약화
    11:00 [쇠락과 부패] 개혁운동 in 수도원
    12:17 [동서교회의 분열] 8c 성상파괴 논쟁
    13:02 [동서교회의 분열] 1054년 필리오케 논쟁 + 누룩함유율 논쟁
    13:35 [동서교회의 분열] 정치적 이유
    14:25 [홍쌤의 플러스] 균형잡힌 기독교 교파 큰 그림정리 + 추천도서;;;;;

    • @warinlife79
      @warinlife79 4 года назад +2

      누룩함유율 논쟁 ㅋㅋㅋㅋㅋ
      매번 감사합니다^^

    • @stephenj3152
      @stephenj3152 2 года назад

      누륰ㅋㅋ 함유율ㅋㅋㅋㅋㅋㅋㅋ 정리 감사합니다!

  • @angelraf5822
    @angelraf5822 3 года назад +5

    저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보다가 여기 와서 기독교 사를 처음부터 쭉~~보고 있는데,
    그 동안 서양사를 기독교사 관점에서 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하고 보니 많은 도움이 됩니다.
    특히 홍샘 설명은 너무나 명쾌하고 또 말씀을 너무 잘해서 집중과 이해도 최고입니다.

  • @이화-m8c
    @이화-m8c Год назад

    구독하고 갑니다 ~

  • @수니-h1t
    @수니-h1t 4 года назад +6

    교회의 역사와 이름들 정리 고맙습니다. 물흐르듯 설명도 좋지만 글로 정리해주시는 것도 고맙습니다!

  • @warinlife79
    @warinlife79 4 года назад +10

    자막과 내용에 약간의 오류가 있어 설명으로 정정합니다. 죄송합니다^^;;
    13:00 필리오케 논쟁이 크게 불거진 것은 9세기 후반입니다.
    그 논쟁이 1054년에 최종분열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묶어서 설명하다보니 필리오케 논쟁이 1054년인 것처럼 설명과 자막이 나갔네요.
    8세기후반 : 성상논쟁
    9세기후반 : 필리오케 논쟁
    1054년 : 최종분열
    이렇게 정리하시면 되겠습니다.

  • @홍준호-n2o
    @홍준호-n2o 4 года назад +4

    정말 최고의 핵심 액기스 같은 정리 입니다 ㅎㅎ

  • @노상윤-l2m
    @노상윤-l2m 4 года назад +5

    순수성을 지키는 것만해도 개혁 운동이 된다는 사실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 @88rider082
    @88rider082 4 года назад +4

    안녕하세요. 신학블록버스터 정말 잘 듣고있습니다. 혹시, 재생목록이 순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순서 거꾸로 정돈은 안될까요? 자동재생해두고 듣는데, 거꾸로 내려가서..

    • @TheResearchfor_KoreanChurch
      @TheResearchfor_KoreanChurch  4 года назад +2

      순서를 거꾸로 하면 최근 영상일수록 가장 아래쪽에 내려가는 문제가 생깁니다...최신 영상이 가장 먼저 보이는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 주소서...

  • @박소현-o9w
    @박소현-o9w 4 года назад +4

    1분에 대략 27년을 다뤄주는 거네요 ㅎㅎㅎㅎ
    꽉차있습당

    • @warinlife79
      @warinlife79 4 года назад +3

      ^^*

    • @warinlife79
      @warinlife79 4 года назад +2

      동명이인인가 했더니 빵소였네ㅋㅋㅋ

  • @lee5846
    @lee5846 4 года назад +4

    맥클로우 삼천년사 -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는 평이 있던데 원서가 아니라도 괜찮을까요? 곤잘레스 다 읽고 읽으려 하는데 망설이고 있습니다 ㅠ ..

    • @warinlife79
      @warinlife79 4 года назад +4

      ㅠㅠ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는 매우 온건한 표현일 정도로 번역이 좋지 않아요...
      번역의 질 문제도 있지만 맥클로흐의 영어가 워낙 난해하다고 하니 원서로 보기에도 꽤 힘든 책일 듯 합니다.
      후스토 곤잘레스가 쉽고 재밌게 잘 쓰였고 번역도 좋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맥클로흐의 장점은 많은 양의 희귀정보, 독특한 관점입니다.
      후스토 책으로 뼈대를 잡아놓으셨으니, 정 읽고 싶으시면 사서 읽으시면서 정보 보충 차원에서만 읽으셔도 괜찮을 거 같긴 하구요^^

  • @김선민-b8m
    @김선민-b8m 4 года назад +6

    영상도 정말 좋지만, 댓글로 다른 분들의 질문 - 홍쌤의 답변도 큰 도움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 질문을 남긴다면, 1. 예루살렘 교구가 다른 4개 교구에 비해 약화된 이유는 아무래도 도시 규모에 따르는 경제적인 이유일까요? + 2. 라트람누스의 성찬론에 대한 주장은 츠빙글리의 상징설과 동일하게 보아도 될런지요? ^^

    • @warinlife79
      @warinlife79 4 года назад +4

      1. 말씀하신대로, 예루살렘은 로마제국에서 변방이었고 다른 교구 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번성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점차 성지로서의 상징적 의미만 남고 교구로서의 중요성은 약화되어 갑니다.
      2. 네. 성찬의 의미는 종교개혁기에 화체설, 공재설, 영적임재설, 기념설로 나뉘어지지만, 크게 보면 성찬에 주님의 임재가 있는가, 기념인가 하는 두 가지 입장에서 파생되는 것이지요. 중세교회 때부터 이미 그 논쟁이 있었던 것입니다.

  • @jk0922
    @jk0922 4 года назад +4

    지금은 로마 주교를 콘클라베를 통해서 뽑는데 이런 관습은 어떻게 나왔나요? 천주교에서는 사제들이 자신의 라인 위를 따라가면 사도가 나온다고 하고 영상에 나온 것처럼 로마 주교는 그 뿌리가 베드로에게 있다고 하는데 외부사람이 교황으로 선출되어 로마로 들어올 때 어떻게 그들은 정당성을 유지해왔는지도 궁금하네요.

    • @warinlife79
      @warinlife79 4 года назад +5

      콘클라베를 통한 선출은 다음시간에 다루게 되는 교황발 개혁 중에서 니콜라오2세 때의 주요 개혁 내용입니다.
      적법하게 선출되었다면 혈통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비뇽 교황청 시절에는 교황의 절대다수가 프랑스인이 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이후에 교황을 이탈리아인으로 세우라는 이탈리아 민중들의 요구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교황청이 이탈리아에 있었기 때문에 대체로 이탈리아인 교황을 선호하는 지역 정서는 있었겠지요. 실제로 역대 교황의 대다수는 이탈리아인이었습니다.

  • @stj1473
    @stj1473 3 года назад

    화체설은 프로테스탄트에서 사용하고
    가톨릭에서는 성변화라고 합니다
    정확한 표현이 중요합니다

  • @shinhyounglee2138
    @shinhyounglee2138 4 года назад +5

    언제나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TK님의 Previously on 을 못들어서 아쉽습니다..
    성상 논쟁에서 항상 혼란스러운게, 지금은 카톨릭에서 성상같이 마리아상이나 예수님 상을 적극 활용하잖아요.. 동서방 교회 분열때는 안그랬는지? 또 언제부터 서방교회에서도 그런 상을 활용한건지 궁금합니다.

    • @warinlife79
      @warinlife79 4 года назад +9

      저도 이 부분이 중세교회를 공부할 때 제일 헷갈리는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교회사 대부분의 시간동안 동서방교회 모두 성상을 사용해 왔습니다. (정도차는 있습니다. 확연히 더 중시하고 강조하는 쪽은 동방교회입니다.)
      다만 일정시간동안 성상을 금지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동서방이 시기가 달랐고 그래서 그때마다 그게 동서방교회 간에 갈등요인이 되었던 걸로 볼 수 있습니다.
      8세기 경에 동로마제국의 황제 레오3세가 성상을 금지해서 동방교회 사제들과 갈등을 빚게 됩니다. 이때는 서방교회가 성상을 사용하고 있었지요. (동방 - 성상금지, 서방 - 성상사용)
      곧 상황이 반대로 바뀝니다. 동로마제국은 여제 이레네 때에 다시 성상금지령을 폐지하고 성상사용을 재개합니다. 이 때 서유럽에서는 프랑크제국의 샤를마뉴가 패권을 잡고 있었는데 이 때 샤를마뉴는 성상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이 때 샤를마뉴가 성상사용을 금지한 이유 중 하나가 동방교회의 관습이 샤를마뉴의 귀에 전해질 때 그들이 성상을 '숭배'한다고 이해해서 경악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동방교회는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를 뜻하는 latreia(숭배)와 성상에 드리는 존경을 뜻하는 proskynesis(흠숭)을 개념적으로 구별했는데 이 차이가 라틴어로 번역되지 못해서 샤를마뉴는 동방교회가 성상을 신처럼 경배한다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794년 프랑크푸르트공의회에서 서방교회는 성상사용에 대한 비판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게 동방교회를 분노하게 한 것이지요. (동방 - 성상사용, 서방 - 성상금지) 12:38 그걸 너무 축약해서 설명하니 이렇게 되었네요. ㅋㅋ
      서방교회의 성상금지 분위기는 샤를마뉴 이후 점차 사라집니다.
      동방교회는 레오5세 때 한번 더 성상파괴운동이 일었다가 테오도라 여제 때 다시 성상사용이 복구되고요.
      이후 동서방교회는 강조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성상을 사용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성상문제는 동서방교회가 분열되는 데에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동서방교회의 차이점이 되지 않았습니다.)

    • @shinhyounglee2138
      @shinhyounglee2138 4 года назад +5

      Soonjoo Hong 수십년된 의문을 한방에 날려주셨네요. 감사합니다. ^^

  • @209tv9
    @209tv9 4 года назад +3

    홍샘. 페이스북 메세지를 확인바랍니다. ^^

    • @warinlife79
      @warinlife79 4 года назад +1

      확인했습니다. 메시지 감사합니다ㅜㅜ

  • @이화-m8c
    @이화-m8c Год назад

    내용을 핵심정리 문자로 보내주시면 안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