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k5o 저때 신라를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신라의 운명은 진작에 끝났죠 그 참에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 시켰어야 했어요 진짜 광개토대왕 이라면 가능 했을텐데...신라도 구원해줘 백제도 멸망 직전까지 몰아 놓고도 봐줘 우리 광개토대왕님은 너무 자비로웠어요 저 신라놈들이 먼훗날 은혜를 원수로 갚을지 알았다면 진작 쳐죽였을텐데 말이죠ㅜㅜ
제가 알기론 고조선 때 연의 침공으로 요하 지역 전체를 뺏겼다가 광개토대왕 때 요동 지역을 다시 되찾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 지도에서는 요동 지역을 계속 고구려가 점유하고 있던 걸로 나와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 관련 역사 좋아하는 분들 중에 요동 지역이 왜 위의 영토로 그려져 있냐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여기에 대해 정확하게 짚어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멸망시키면 반란에 대비하고 그 지역을 지배할 주둔군이 있어야합니다. 하지만 당시 고구려는 위아래로 많은 전선을 두고 있었고, 특히 당시 후연에 맞써려면 남부전선을 안정화시켜야했죠. 물론 고구려의 국력은 강했지만 당시 통일할 수 있는 여건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에 독자적인 천하관을 강조하여 주변국을 종속국(신하국)으로 삼아 간접 지배하는 것이 고구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통치방식이었습니다.
만약 광개토태왕께서 한 30년만 아니 20년만 더 사셨다면 고구려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요?그리고 또 한가지 만약 당태종 이세민.백제 근초고왕.고구려 광개토태왕.신라 진흥왕이 같은시기에 나라를 다스렸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 가 됐을까요?(능력치는 그대로 하고)각자 최전성기의 정복군주들이니!월드컵축구로 치면 죽음의조 인거 같은데요!ㅋㅋㅋㅋㅋ
적어도 고구려가 질일은 절대 없을듯. 고구려 멸망 원인으로 가장 큰게 당시 고구려왕인 보장왕은 그냥 연개소문이 세워논 바지사장이였고 연개소문 사후에 자식들간에 내분이 일어나서 패배한 쪽이 당나라군 이끌고 고구려로 들어옴. 근데 문제는 이때 맞서싸웠음 적어도 망하진 않았을텐데. 연개소문 자식으로서 정통성과 명분을 내세우니 성주들이 줄줄이 항복하고 오히려 당군뒤에 서서 같이 진격해왔다고 함. 이때가 이미 쇠락한 시기인걸 감안해도 수나라나 당나라와 맞짱더던 국가라 전성기 기준으로하면 백제나 신라가 조금 후달리긴할거임.
@@kinhuisjq123 신라는 상대가 연합한 전투에서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음. 망상 ㄴㄴ.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임나 왜 3국 연합군 신라에게 몰살. 아막성 전투에서 고구려 백제 왜 3국 연합군 신라에게 몰살. 신라는 이걸로 끝나지 않고 일본 본토까지 쳐들어가서 왜왕의 항복까지 받아냄. 이후에도 몇차례 더 일본 본토를 쳐들어간 기록이 일본사료에 나옴. 동북아 최강 전투력을 자랑한 국가라는 이야기. 백제가 신라에게 허구헌날 짓밟힌 이유가 있음.
광개토대왕릉비에서 태왕의 죽음을 두고 '안가기국'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임금의 수레가 더이상 가지 못하고 나라를 버리셨다'고 해석할 수 있는데 안가는 임금의 죽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고도의 문구이죠. 여기서 추정하기론 아마 태왕은 고된 정복사업으로 인한 과로가 아닐까싶습니다. 39세에 사망했지만 당시에는 평균수명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뒤이어 즉위한 장수왕이 말도 안되게 장수를 해버려서 크게 비교되는듯 합니다.
불가능함. 광개토 시절의 저 초원지대의 인구는 많아야 5만호임. 거기에 반해 삼한은 인구가 10만호임. 고구려보다 3배 이상 많았음. 그리고 삼한까지 먹었다 한들 삼한에 비등할 정도의 인구를 가진 왜가 후방에 존재하기 때문에 고구려에게는 늘상 골치가 될 수 밖에 없음. 막는데만 급급해지는거. 그래서 신라를 남겨 후방의 왜와의 완충지대로 삼았던 거고 이 사이가 계속 유지가 되었으면 상호간에 좋았을지 모르겠는데 연개소문이 뒤통수를 치면서 사실상 둘 사이는 완전히 끝장남.
고담덕이 아니라 모용담덕. 그 출자가 명확하지 않음. 현재 제일 유력한 설은 당시 고구려가 선비족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선비족의 왕자가 고구려에 와서 왕이 되었던게 아닌가하는 가설이 있음. 실제 광개토 대왕비문을 보면 부여의 시조설은 나오는데 광개토의 직계 조상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음. 이건 고구려 왕통이 광개토때 완전히 교체가 되었을 가능성을 의미하는 부분임.
인구상황을 보면 불가능한 것을 알 수 있음. 삼한의 인구 10만호, 광개토 대왕 시절 고구려 인구 3만호. 삼한의 인구가 3배 이상 많음. 일본 역시도 10만호에 육박. 군대의 힘이 인구에서 나온다면 고구려는 한번의 전투는 어떻게 치루는게 가능해도 인구빨로 밀어붙이는 인해전술은 견뎌낼 수 없음. 장수왕때 북연이 멸망당하고 그 유민들이 고구려로 대거 유입되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한 덕에 강성해질 수 있었던 거지, 그 이전에는 조또 없는 허접탱이 국가였음. 참고로 북연의 유민들이 유입된 숫자가 원 고구려 주민의 3배 이상 많았던 것으로 추정됨.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로 망명한 유민의 행렬이 80리나 되었다고 함. 10리가 4키로임. 유민행렬이 무려 24키로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숫자가 고구려에 유입이 되면서 인종구성을 완전히 바꾸어 버림. 지금으로 치면 동남아 국가가 멸망당한 후 그들 유민들 2억명이 한반도에 망명온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됨. 원주민 숫자를 압도적으로 뛰어넘는 엄청난 북연 유민들의 유입으로 고구려가 강성해질 수 있었던 것이고, 이때부터 반도에서 미친듯이 전쟁을 일으키는게 가능해진것.
고구려의 힘으로는 신라를 멸망시키는게 불가능함. 신라는 상대가 연합해서 싸운 전투에서는 단 한번도 패배한 전투가 없음. 하물며 고구려 단독으로 싸우는 것을 신라가 대단하게 생각하지는 않음. 즉, 고구려는 신라를 치고 싶어도 능력이 안되서 못 친거. 유일하게 광개토 대왕시절에 왜인들이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것을 감당하지 못해 구원을 요청한적 외에는 딱히 고구려를 대단하게 생각해본적이 없음. 그나마도 진흥왕시절에 고구려가 멸망당할뻔한 것을 신라가 구원해주면서 은원은 완전히 해결함.
고구려가 원래 조공하나는 반도에서 제일 잘했음. 제일 못한게 신라였고. 그래서 김부식이 신라가 뒤늦게 중화를 받아들였다고 맹비난한거고. 물론 김부식은 신라가 유럽계 문명국가였다는 사실은 아예 몰랐으니 그럴만했지만. 유럽 문명과 동일한 생활을 한 신라가 중국 문명을 수용할 이유가 전혀 없거든.
조곤조곤하고 푸근한 목소리에... 개그요소 가득한 그림체라니.... 넘 좋습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얼마나 전쟁을 잘했냐면... 그렇게 치열하게 전쟁들을 엄청나게 많이했던 전쟁시대였던 삼국시대의 기록인 삼국사기에서 대놓고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엄청나게 전쟁을 잘한다는 소문을 백제의 아신왕이 들었다"고 할 정도였음 ㅎㄷㄷ;;
이거 한편으로 끝내기에는 부족한거 같은데요 후편 만들어주시면 안될까요 ㅠㅠ
히라님이 만드신 이 그림으로,,,,, 광개토대왕이 추후 10만원권 지폐에 들어가면 좋겠네요,,,,, 전선이 양쪽으로 나뉘었음에도 매우 잘 싸웠군요!!! 와우 한국판 K-알렉산더^^
십만원은이승만 아닌가?싶네요
@KJ깽이와식 사임당5는 진짜 말이되나요ㅠ
@@이승진-g7o 친일파 청산은커녕 살길 뚫어주고 한국전쟁 초반 잘싸우고있다 국민기만하고 한강다리 끊고 도망간작자가 화폐에 새겨질급이라 보십니까.
울나라에 유일무이 한 정복군주 광개토대왕님을 화폐에 추가 시켜주고 울나라의 성웅 이순신 장군님을 승격 시켜주어야 합니다 꼴랑 백원짜리가 뭐냐
@@kinhuisjq123 이미 정해진화폐라 바꾸긴힘들듯싶어요 100김구 500 이이
1000 안창호 5000이승만 10000세종
50000광개 100000??이순신
제 개인적사견이니 너무기분나빠하진마시길
대부분의 사람들이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은 많이 아는데 문자왕이랑 안장왕은 잘 모르는거같아서 그분들에 대한 영상도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장수왕이 늙어서 문자명왕 당해서 갇혀서 죽었다는게 그러네요 귄력이 참 무섭네요 유리왕 추모왕 죽였다는설 백제 온조가 소서노 죽였다는설
과로로 쓰러진게 아닐까 싶다
풍토병일 가능성이 크죠 전장에서 오랫동안 풍찬노숙을 했으니
양쪽에서 난리부르스를 쳐대서 양쪽을 다 후린 광개토태왕 정말 대단하신거같습니다
양면전쟁은 보통 꺼리는데
야 시끄럽다 공평하게 빵 빡 딱 퍽
근데 광개토대왕도 딱 한번 위기에 빠진 적 있아요ㅋㅋㅋ 신라 구원을 위해 5만 군사를 파병했을 때 후연이 요동 뒷치기해서 신성을 포함해 700리 땅을 잃었는데 신라 구원전이 끝나자마자 바로 보복 들어가서 빼앗긴 땅 다시 되찾았으니 위기라 말할 정도도 아니었지만요..
@@인생-k5o 저때 신라를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신라의 운명은 진작에 끝났죠 그 참에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 시켰어야 했어요 진짜 광개토대왕 이라면 가능 했을텐데...신라도 구원해줘 백제도 멸망 직전까지 몰아 놓고도 봐줘 우리 광개토대왕님은 너무 자비로웠어요 저 신라놈들이 먼훗날 은혜를 원수로 갚을지 알았다면 진작 쳐죽였을텐데 말이죠ㅜㅜ
@@kinhuisjq123봐준게 아니라 못한겁니다. 뭐 부루마블 하는 것도 아니고 봐주기는요...나라를 통째로 점령하는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게요 후대사람이 자세한 내믹을 알수 업서나 개인차는 있지만 제생각 연개소문은 왕을죽인 폭군 ㆍ김춘추 ㆍ김유신 2인자가 승리 했네요 고구려가 통일 했서야 ㅎ
제가 알기론 고조선 때 연의 침공으로 요하 지역 전체를 뺏겼다가 광개토대왕 때 요동 지역을 다시 되찾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 지도에서는 요동 지역을 계속 고구려가 점유하고 있던 걸로 나와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 관련 역사 좋아하는 분들 중에 요동 지역이 왜 위의 영토로 그려져 있냐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여기에 대해 정확하게 짚어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막이랑 말풍선이랑 갭모에가 있어서 더 재미있어요 ㅎㅎ
아신왕도 능력 있었는데 상대가 너무 안좋았죠 시대를 잘못 태어났음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그림이 예술입니다.ㅠㅅㅠ
요절한 게 너무 안타까운 군주
고맙습니다!
아신도 능력이 뛰어났는데 담덕의 능력이 압도적이었을듯
한 10년정도 이라도 더 사셨더라면 아마도 고구려뿐만 아니라 한반도 역사가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그때 차라리 백제와 신라를 영원히 접수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역시 해보네요.
불가능함. 백제는 점령 가능하겠지만 신라는 안됨.
광개토대왕 입장에서 설마 신라가 고구려 멸망에 쐐기를 박겠어? 했겠죠 저 작은나라가
잼써요~~:)
아들에게 수명을 몰빵당한 태왕...
그야말로 남정북벌... 위세가 ㅎㄷㄷ 했군요.
거꾸로 보면 상대 잘못 만나 개피본 근성가이 아신왕...
타입캐스트로 더빙하신건가요?
03:05 ㅋㅋㅋㅋ TV 나레이션에 나올 목소리로 빤스런.ㅋㅋㅋ
이름도 간지.. 담덕
아신왕 상남자 그 자체네
아신왕이 왕이라도 외삼촌 진무에게 반말로 명령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역사에 정말 만약이란 말이 없다는게 슬프네요
광개토태왕께서 조금이라도 더 계셨다면
어찌되었을지...
성우 목소리 너무 좋음.
이전 영상도 이분 목소리로 다 바꿔주삼.
진짜 괴물이다 무슨 군주가 직접 전쟁에 나서서 다 쓸어버리냐;;
과장된 기록이다 고대일수록 신빙성이 없어 용도 나오고 하늘을 날고 알에서 깨어나는데 저것또한 장수왕이 찬양하는것 후손왜곡 그런것
호태왕은 분열된 중국을 상대한 군주였죠. 통일 수제국을 상대한 영양왕이 더 대단합니다.
10만원권 광개토대왕이나 안창호 선생 갑시다.
광개토대왕은 kdx 1차선함정에 명명 1함대소속
도산 안창호함은 몇년전 잠수함에 명명되었죠
@@지민철-h7h 세종대왕함도 있는데 안될건 없죠 5만원권이 신사임당인데 10만원권에 못들어갈 이유도 없고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의 국가기틀 덕에 나타난 두 명군
정복군주 광개토태왕
수성군주 장수태왕
두명의 명군이 나와 고구려가 100년 이상의 전성기를 누볐죠.
다음편은 혹시 장수왕인가요? 오오ㅗㅇ 진짜 그러면 좋겠다
광개토대왕이 정복군주라면 장수왕은 경제운용을 잘하는 왕이였죠
광개토대왕:자 아들아 내 뒤를 이어라
장수왕:네.
수십년뒤
고구려 신하:전하 태자마마가 사망하였나이다.
장수왕:뭣이??? 하... 태손이란 칭호를 나운에게 내리노라
고나운(문자명왕):아이고... 아버지 이리 일찍가시면 어찌합니까...
이거....아신왕 인물사 열전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늘 궁금했는데 첫번째 도입부 음악 제목이 뭔가여?
눈 질끈~ 감고
아신왕을 처단하고 백제멸망시킨 후
신라까지 평정하고 대고구려를 만들었으면...
하는 후대 대부분이 아쉬워하는 대목.
그러면 만주가 여전히 우리땅이 되었을텐데...
저 당시에 광개토대왕은 백제신라가야를 멸망시켜 한반도를 통일할 생각을 안한걸까요
못한걸까요 아님 햇지만 할 필요성을 못느꼇을까요 궁금하네요
당시에는 이미 종속된 나라들이니, 인구나 전통에따라 언제든 반란이 일어날수 있는 타국은 그냥 복종시키는 것이 좋은 판단이었을듯.. 역사는 결과이지만 광개토시대에는 이미 백제 신라 가야가 속국이나 다름없으니 이미 정복했다 생각했을겁니다
@@휴-f8b 연나라도 정복할수 있었는데 그타이밍에 왜군이 쳐들어왔지
멸망시키면 반란에 대비하고 그 지역을 지배할 주둔군이 있어야합니다. 하지만 당시 고구려는 위아래로 많은 전선을 두고 있었고, 특히 당시 후연에 맞써려면 남부전선을 안정화시켜야했죠. 물론 고구려의 국력은 강했지만 당시 통일할 수 있는 여건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에 독자적인 천하관을 강조하여 주변국을 종속국(신하국)으로 삼아 간접 지배하는 것이 고구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통치방식이었습니다.
당시에 인구수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서 백제신라가야까지 파견보낼 사람도 부족했음.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음. 그리고 39살밖에 못살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을테니..
동방최고의 정복군주
배경음악 제목좀?
레인 오브 엠파이어에서는 금색 등급 영웅으로 나오시죠
진지한 목소리로 빤스런을 했다고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드디어 전쟁의 신이 등장했구나
만약 광개토태왕께서 한 30년만 아니 20년만 더 사셨다면 고구려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요?그리고 또 한가지 만약 당태종 이세민.백제 근초고왕.고구려 광개토태왕.신라 진흥왕이 같은시기에 나라를 다스렸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 가 됐을까요?(능력치는 그대로 하고)각자 최전성기의 정복군주들이니!월드컵축구로 치면 죽음의조 인거 같은데요!ㅋㅋㅋㅋㅋ
적어도 신라는 멸망 했을 겁니다 진흥왕 저거 통수만 오지게 칠줄 알지 무력이나 통솔력 정치등등...능력치가 광개토대왕 근초고왕에 비비지도 못해요
@@kinhuisjq123 저도 그렇게 생각이 되네요!근초고왕이 대야성쪽으로 들어가고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수군을 이용해서 소백산맥이 아닌 낙동강을 타고 내려와서 백제와 같이 쳤다면 아마 신라는 버티기가 힘들었을듯 합니다.
적어도 고구려가 질일은 절대 없을듯.
고구려 멸망 원인으로 가장 큰게 당시 고구려왕인 보장왕은 그냥 연개소문이 세워논 바지사장이였고 연개소문 사후에 자식들간에 내분이 일어나서 패배한 쪽이 당나라군 이끌고 고구려로 들어옴. 근데 문제는 이때 맞서싸웠음 적어도 망하진 않았을텐데. 연개소문 자식으로서 정통성과 명분을 내세우니 성주들이 줄줄이 항복하고 오히려 당군뒤에 서서 같이 진격해왔다고 함. 이때가 이미 쇠락한 시기인걸 감안해도 수나라나 당나라와 맞짱더던 국가라 전성기 기준으로하면 백제나 신라가 조금 후달리긴할거임.
@@kinhuisjq123 신라는 상대가 연합한 전투에서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음. 망상 ㄴㄴ.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임나 왜 3국 연합군 신라에게 몰살. 아막성 전투에서 고구려 백제 왜 3국 연합군 신라에게 몰살. 신라는 이걸로 끝나지 않고 일본 본토까지 쳐들어가서 왜왕의 항복까지 받아냄. 이후에도 몇차례 더 일본 본토를 쳐들어간 기록이 일본사료에 나옴. 동북아 최강 전투력을 자랑한 국가라는 이야기. 백제가 신라에게 허구헌날 짓밟힌 이유가 있음.
@@정선영-f4k 신라만 멸망하는것은 아니죠. 고구려도 버티기힘들었을것입니다.
고구려 최전성기가 중국에서 최고로 혼란스러웠을때였거든요
아~ 옛날이여~
담덕은 군신인 한신의 재림
너무 빨리 가셨음ㅠㅅㅠ
안타까운 정복군주 30년만 더 살았어도 저당시 영토는 달라졌을겁니다 .
여러분들 광개토태왕 이후 고구려의 왕의 호칭을 태왕이라고 불렸답니다.
대왕님이 오래오래 사셨어야 했는데... 아쉽다
내물 마립간 아닌가요?
이사금은 내믈마립간이 즉위하고 칭호를 바꾸어서 미립간이 맞지 않나 생각하네요.
삼국사기에서는 눌지왕이 최초의 마립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내물왕 때 시작됐을 수도 있고, 이사금과 마립간이 혼재된 시기였을 수도 있겠죠.
@@gentriker 아하......
역시 전쟁병기 답다..ㅎㄷㄷ
광개토태왕 이름도 간지임ㅋㅋ
👍
후연을 거의멸망시킨거죠
대륙을 호령하던 우리민족이 어쩌다 허리가 잘려 반도안에만 웅크리고 앉아있는가
ㅅㄹ?
빈집털이한거지
대륙을 언제호령했나요 ㅋㅋ
만주빼면 먹은적 없음
ㅋㅋㅋ 약 좀 그만해 그러다 뒤져
이분 전에 영화리뷰 하시던 분 같은데 아닌가?
한국사 👍👍 이때 삼국통일 했어야 합니다
근데 오래 전 역사스페셜인가 어딘가에서 본 거에 따르면 고구려는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고 복속시키는 정도로 통일이라고 여겼다고 하네요. 너무 오래 전이라...
광개토대왕:백제의 왕은 무릎을 끓어라
아신왕:예...
알렉산더도 그렇고, 광대토대왕의 죽음 역시 천도 준비로 인해 정치, 경제적으로 위협을 느낀 권세가들이 전장에서 시해한 것이 아닐까요.. 그래야 전사나 자연사로 자연스레 기록하여 의심을 피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렇다기에는 아들인 장수왕이 역대급 왕권을 가져서... 라는 짧은 소견입니다 ㅎ
@@Kim_Doohan 피바람이 불고 나서 대왕의 후손들은 기묘한 죽음을 맞게 되죠..
광개토대왕릉비에서 태왕의 죽음을 두고 '안가기국'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임금의 수레가 더이상 가지 못하고 나라를 버리셨다'고 해석할 수 있는데 안가는 임금의 죽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고도의 문구이죠. 여기서 추정하기론 아마 태왕은 고된 정복사업으로 인한 과로가 아닐까싶습니다. 39세에 사망했지만 당시에는 평균수명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뒤이어 즉위한 장수왕이 말도 안되게 장수를 해버려서 크게 비교되는듯 합니다.
지금 저 고구려 영토에서 기름이 나옴ㅋㅋㅋ
??: 므~으어라!!!
모용수 3부자 풍발 아신왕 고운: 드아암더어어억!!!
진짜 고구려가 통일했어야했는데 에휴..
넘 아까비 70까지만 사셨어도
광개토대왕 때 삼국통일이 되었다면 어땠을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
불가능함. 광개토 시절의 저 초원지대의 인구는 많아야 5만호임. 거기에 반해 삼한은 인구가 10만호임. 고구려보다 3배 이상 많았음. 그리고 삼한까지 먹었다 한들 삼한에 비등할 정도의 인구를 가진 왜가 후방에 존재하기 때문에 고구려에게는 늘상 골치가 될 수 밖에 없음. 막는데만 급급해지는거. 그래서 신라를 남겨 후방의 왜와의 완충지대로 삼았던 거고 이 사이가 계속 유지가 되었으면 상호간에 좋았을지 모르겠는데 연개소문이 뒤통수를 치면서 사실상 둘 사이는 완전히 끝장남.
우리역사 통틀어 가장 정복군주 다웠던 왕ㅋㅋ
한국판 손책느낌
만주벌판 달려라!
고작 백년 차지하려고 죽이고 죽고 하다니 동료 적군도 뒤바뀌는데
저때 신라가 멸망했어야 했는데
고담덕 이름도 강해보임
백제, 신라 정리됐으면 화북도 정복 가능했을텐데
고담덕이 아니라 모용담덕. 그 출자가 명확하지 않음. 현재 제일 유력한 설은 당시 고구려가 선비족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선비족의 왕자가 고구려에 와서 왕이 되었던게 아닌가하는 가설이 있음. 실제 광개토 대왕비문을 보면 부여의 시조설은 나오는데 광개토의 직계 조상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음. 이건 고구려 왕통이 광개토때 완전히 교체가 되었을 가능성을 의미하는 부분임.
@@fuckingkoreahell 유력한 설 = 느그 생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검막리 중국과 일본 사학계 그리고 한국의 일부 학계에서도 같은 생각임.
@@fuckingkoreahell 일본과 중국 사학계가 우리역사를 좋게 해석해 줄거 같음?ㅋㅋ 차라리 러시아가 그렇다하면 모르겠는데
아신왕 ㅋㅋ
조선시대에 사학자들이 기록한건 한줄인데요 부모 초상후 100일만에 전쟁하러 나간 불효막심한 왕..... 얼마나 한심한 조선의 성리학자들입니까?
왜 화폐에는 조선시대사람만 있는걸까?
전그래서 지금정치인들 정신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주몽도 39에 죽고 담덕도 39에 죽어버렸네
둘다 전투를 잘하는 왕이였죠
담덕!
뭐~~~광개토대왕??
그 인간이 삼국시대 최강 군주라고??
글쎄다
그 인간이 최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종대왕의 라이벌
9:54 역사는 돌고도네ㅋㅋ 수나라의 양제도 요동에서 저짓거리 하다가 망하지 않았나
아 백제 신라 무너뜨렸어야 했는데.
고구려가 백제 신라만 무너 뜨리면 일본까지도
고구려 정복 충분히 가능했을거라고 봅니다.
인구상황을 보면 불가능한 것을 알 수 있음. 삼한의 인구 10만호, 광개토 대왕 시절 고구려 인구 3만호. 삼한의 인구가 3배 이상 많음. 일본 역시도 10만호에 육박. 군대의 힘이 인구에서 나온다면 고구려는 한번의 전투는 어떻게 치루는게 가능해도 인구빨로 밀어붙이는 인해전술은 견뎌낼 수 없음. 장수왕때 북연이 멸망당하고 그 유민들이 고구려로 대거 유입되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한 덕에 강성해질 수 있었던 거지, 그 이전에는 조또 없는 허접탱이 국가였음. 참고로 북연의 유민들이 유입된 숫자가 원 고구려 주민의 3배 이상 많았던 것으로 추정됨.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로 망명한 유민의 행렬이 80리나 되었다고 함. 10리가 4키로임. 유민행렬이 무려 24키로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숫자가 고구려에 유입이 되면서 인종구성을 완전히 바꾸어 버림.
지금으로 치면 동남아 국가가 멸망당한 후 그들 유민들 2억명이 한반도에 망명온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됨. 원주민 숫자를 압도적으로 뛰어넘는 엄청난 북연 유민들의 유입으로 고구려가 강성해질 수 있었던 것이고, 이때부터 반도에서 미친듯이 전쟁을 일으키는게 가능해진것.
갸륵하게 여기지말고 신라를 박살내서 고구려 땅으로 만들었어야함ㅋㅋㅋ 배신때리는 놈들 갸륵하긴 개뿔ㅋㅋ
고구려의 힘으로는 신라를 멸망시키는게 불가능함. 신라는 상대가 연합해서 싸운 전투에서는 단 한번도 패배한 전투가 없음. 하물며 고구려 단독으로 싸우는 것을 신라가 대단하게 생각하지는 않음. 즉, 고구려는 신라를 치고 싶어도 능력이 안되서 못 친거. 유일하게 광개토 대왕시절에 왜인들이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것을 감당하지 못해 구원을 요청한적 외에는 딱히 고구려를 대단하게 생각해본적이 없음. 그나마도 진흥왕시절에 고구려가 멸망당할뻔한 것을 신라가 구원해주면서 은원은 완전히 해결함.
아니 광개토대왕도 후연에 조공을 바치면서까지 남진정책을 하였다면 이거 영류왕과 조금은 비슷한데 그래도 영류왕보다는 나은게 책력과 경관파괴까지는 안했다는게 다르지 에휴
고구려가 원래 조공하나는 반도에서 제일 잘했음. 제일 못한게 신라였고. 그래서 김부식이 신라가 뒤늦게 중화를 받아들였다고 맹비난한거고. 물론 김부식은 신라가 유럽계 문명국가였다는 사실은 아예 몰랐으니 그럴만했지만. 유럽 문명과 동일한 생활을 한 신라가 중국 문명을 수용할 이유가 전혀 없거든.
고구려 평야은 지금의 북한평야아니거늘
좁은한반토로 그림을 보여주냐.
평양은 대륙에 이었고 멸망시기에도
천도했지만 지금의 요동에 있었거늘. . .
에라이~
결과적으로 고구려는 중국땅에 있었음으로 중국사라는 이야기인데 지금 중국 학자들도 그 내용을 많이 공개를 하고 있는 중임. 조만간에 그 이론을 적용해서 고구려가 중국사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으로 예상됨.
k알렉산더ㅋㅋ
이제 나이를 먹으니 침략과 정복을 잘했다는게 좋게 보이지를 않네요
저도 동감은 하지만 어쩔 수 없던 시기임에는 분명했으니까요.
히스토리님 살짝 오류인거같은데 당시 백제는 대륙백제로 한반도 백제는 장수왕때 공격한거고 광개토태왕 당시에 백제는 대륙백제 지금의 산동쪽 요서지역을 공격한걸로 알고있습니다.
아 환뽕 취한다
당시 산동에는 남연이, 요서는 후연이 있었습니다. 교차검증해서 당시 그 지역에 백제는 없었습니다. 대륙백제설을 뒷받침하기에는 기록뿐만 아니라 어떠한 유적, 유물도 출토된바 없는데 어찌 오류라 할 수 있나요.
키아. 역시 세계 최대의 중국 단일성씨 강씨다운 주장이로다. 껄껄껄. 화교들 답게 한국 역사를 난도질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구나. 화교출신임이 부끄러워 고구려에는 있지도 않은 강씨성을 창조하여 강이식이라는 가장의 인물을 시조로 만든 성씨공정의 대표가문.
강개토개왕
하 너무 잔인해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일본애들도 위대한 정복군주라고 일본군 장군들 가르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