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때 정벌했어야 했음 저 당시 요동일대에는 많은 고려인이 살고 있었어요 공민왕때 장사성의 난때 원의 요청에 의해서 고려군이 파병했을때 16명의 장수와 2천의 군사를 파명했으나 요동에서 고려군을 추가 모집했서 2만3천의 대군이 됐습니다. 그만큼 당시 요동지역에는 고려인이 많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안정화도 쉽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리고 싸워보니 명군이나 홍건적보다 강하다는 장사성의 군대가 생각만큼 전투력이 강하지 않았기에 최영은 요동 정벌이 가능하다 본겁니다. 고려에 10만 요동에 10만 20만이면 지킬수 있다고 본거죠
일차 원정때 점령했던 지역은 바로 철수했습니다. 점령하자 마자 그냥 철군했습니다. 2차 원정을 시작할 무렵엔 아무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성계 병력이 요동성으로 출병했을때에는 대략 15000명 ~20000명 정도뿐이니 5만에서 십만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정보입니다.
이 말이 일리가 있는게... 제2차 요동정벌군이 보급부대 포함해서 5만 이었음... 최영이 위화도 회군한 이성계 막은 군사가 5,000도 안 됐다... 말 그대로 고려 전군 탈탈 털어서 갔다는 소리... 근데 보급부대 없이 7일치 식량만 가지고 간 1차 원정군이 5-10만? 말도 안ㄷㅚ는 소리임... 보급부대는 최소한도로 잡아도 전투부대의 1/2은 잡아야 함... 5만명 중 실ㅈㅔ로 싸울 수 있는 군사는 많이야 3만 5천... 그게 보통 본대의
우리가 말해야 하는 건 ‘독도는 우리땅’이 아니고 ‘간도는 우리땅’이라는 거임... 독도는 가만 놔둬도 우리땅인 데... 한국의 영토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는 헌법부터 뜯어 고쳐야 함... 1979년 평양을 방문한 마오쩌둥이 김일송에게 ‘간도는 오래 전부터 조선의 영토이니 원한다면 돌려줄 의향이 있다’ 이게 중국 외교부가 공개한 공식 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임... 공민왕도 간도가 우리땅이라고 생각했으니 수복하려고 한 거임...
요동 요서의 요는 변방, 즉 국가의 끝지역을 말합니다. 이 말은 국가의 영토크기에 따라 요동요서의 위치가 계속 달라진다는거지요. 고구려초기때만해도 중국의 영토는 지금처럼 크지 않았고 여러 민족이 난립하던 시기였고 현재의 북경은 당시에 중국에 속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동북쪽에 치우쳐있지요. 북경을 완전한 중국땅으로 인식하게 된건 명나라때 주원장사후 황위를 찬탈한 영락제때부터입니다. 원래 영락제는 황자시절에 황위다툼에서 배제되며 변방인 북경에 살게된것인데 그가 황제가 되자 그의 본거지인 북경으로 수도를 옮겼고 이로서 북경이 중국역사의 중심이 된거지요. 중국땅 전체로 보면 북경은 너무 북쪽에 위치해 있죠.
@@ego6929 황하 본류는 주기적인 범람으로 바뀌었는데 춘추전국시대엔 황하가 북경쪽으로 흘렀어요.애초에 황하로 연결되었고 화북평야로 이어진 같은 문화권이였고 북경은 연나라가 위치했던 곳이고 만리장성 이남이며 저 지역에서 발견되는 청동기는 전형적인 중국식 청동기임. 애초에 신석기시대부터 요서내륙지역이 사막화되고 해안선을 따라가는 좁은 길은 뻘밭이라 만주랑 중국대륙은 차단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음
고려의 최전성기인 문종 시기 정도 아니면 사실상 고려가 요동을 편입시킬 국력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입장에서 요동은 가지고 와봐야 중국 통일왕조에게 끊임없이 침공당할 땅입니다. 지킬수가 없음. 딱 하나 요동을 편입하고 지킬수 있는 상황이라면 일본을 병탄해서 일본의 군사자원과 생산력을 등에 업고 할 수는 있겠지요. 그리고 일본 왜구의 벌쳐질로 중국 대륙의 해안가를 어지럽힌다면 가능 할 수도 있었겠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불가능하죠.
고려 때부터 북진이 어려워진 건 9-11세기에 걸친 소빙하기로 만주가 생산력이 급감하면서 발해인들 수십만이 고려로 유입되었고 남은 발해인은 요,금에 의해 강제이주당하고 민족말살 당해서 현지 예맥계 집단이 절멸한 게 큼. 인프라랑 거점 구축을 처음부터 다시해야하는 지경이였음
@@Gogury 해전을 많이한 이유는 제해권을 중요시하기 때문임.예나 지금이나 사람, 식량 운반은 배를 통해 운반하는 게 육로로 운반하는 것보다 몇십배 효율이 좋아요. 한국의 지명이 중국이랑 비슷해지는 건 후기신라 때 지명을 한화 즉 한자를 이용해 중국식으로 바꿧기 때문임. 그 이전엔 삼국이나 삼국이 등장하기 이전의 지명을 중구난방으로 쓰고 한자 표기 방법도 다 달랐는데 '나주' '상주' '명주' 이런식으로 후기 신라 때 전국토가 다 지명이 이렇게 바뀜. 망상도 적당히 좀
오녀산성 지키던 원나라장수 이름이 고안위네요. 만주 살던 고씨면..고구려 고씨 후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나라 발해상온 고청명 같은 사람도 거란군 소속 발해유민들로 구성된 부대 이끌고 고려 침공하는데 왔다가 거기서 죽었으니.. 자기 조상이 누군지도 모르고 사는 유민후손들이라.ㅠ
공민왕때 이미 요동 포기했었슴. 1차 요동정벌 실패로 끝난뒤에 벌어진일이.. 원이 패망하고 밀려나서 북원된때라.. 나하추가 고려에 관직을 달라고도하구.. 요양행성 팽장 유익이 고려에 투항할려던거 다 쌩까구 명나라에 왕 책봉받은게 공민왕임. 그래서 명나라가 요동 접수하구 요새화하기 시작했었슴. 명은 요동에 수군으로 보급했었슴.
고려는 분명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 같습니다 영토는 작지만 군사력은 동아시아 최강이였죠 거란전 1 2 3차까지 하고 지켜내며 3차때 거란군을 몰살시켜 100년간 평화의 시대를 만들었죠 현종 왕도 지도력이 뛰어났으며 명군에 명장 강감찬 장군 외 장병들도 있었기에 강국으로 됐습니다 원나라때는 원나라도 하도 고려가 지겹도록 잘 막아 친구로 지내자고 할 정도였으니 위대한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는 거의 조선만 만듭니다 드라마는 몇작만 빼고 다 이상해요
망상지린다. '근대 이전'엔 일본열도가 만주한반도보다 생산력이 더 높은 지역이라 만주한반도 전체 통합된 국가가 있었어도 일본열도보다 약한 나라였을 수 밖에 없음. 근대이전 만주연해주 전체인구가 고작 150만이였는데 같은 시기 도쿄인구가 100만이였음.1910년 한반도인구가 1700만인데 그 당시 일본인구가 4000만명임.애초에 고려 말은 진짜 조선 말보다도 끔찍한 생지옥이였구요. 권문세족들 깽판 생각하면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아니라 그냥 먹혀서 만주족이랑 일본 전쟁터 됐을거임. 한반도 쟁탈전이 300년은 빨리 일어났을 거
백제 아신왕 때 신라를 침공해 신라가 광개토태왕에게 구원을 요청해 고구려군이 지원을했다는 내용은 있다. 그리고 그런 지원으로 부산일대로 몰려든 왜인 5만은 조용히 물러갔다. 그뒤 고구려군은 그들을 토벌했다는 기록은 없다. 다른 견해로는 이를토대로 당시 왜인 5만은 비류백제의 난민들이 왜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부산과 김해 일대로 몰려든 유민이라고 하는 견해도 많다. 고대사를 거론할 때는 정확한 고증을 토대로 거론해야 한다.... 함부로 논란이 있도록 해서는 안딜 것이다.
명나라 망하려고 작정했나요ㅋㅋㅋㅋㅋㅋㅋ 북방으로 물러난 북원이 칼을 벼르며 여전히 기세등등했고 몽골을 물리쳐낸 저력의 천년 왕국 대월도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싸움 잘하기로 이름난 고려를 치겠다고 동북방에 병력 집중? 상상력이 풍부하면 소설가가 되지만 너무 과하면 망상쟁이가 됩니다.
내용은 맞으나 영토는 아니올시다 조선초도 요하동쪽 만주는 조선 땅 이있읍니다 당연히 고려는 현요하 동쪽은 무조건 고려땅 이었고 고뤄 초기에는 대륙동쪽 북경 주변도 고려 영토 였엇읍니다 조선초 조선왕조 오백년에 나오는 영토이고 세종실록에도 나오는 요하 위쪽 철령에서 두만강 북쪽 7백리 공험진 선춘령까지 1700리가 조선의 국경이라고 주원장도 인정 한 것입니다. 역사 애기만 하지 말고 영토도 제대로 밝혀 애기 합시다. 창피하게 고려가 평양 위쪽이라는 견소리는 하지 말아야지요. 압록강은 부꼉 서쪽에도 있고 요하도 압록강이라 하였읍니다.고구려대 압록은 부꼉 서쪽 세월이 흐르며 현 압록강으로 우리 연토는 후퇴 하였읍니다 원은 고려는 부마국 현제구 왜 일까요 원침공 이전에는 고려가 5천년 넘게 천장의 지위를 물려 받은 후손 입니다.해서 요동 정벌은 북경 주변 태행산맥 동쪽을 회복하려 떠났던 것이다.현재 국사에서 철령이 고성 위에 있엇고 공함진이 원산 위에 이라고 가르키는데 거리가 2백리나 될까 명이 미첫다고 우리나라 동쪽에 국경선을 획정 하냐구 거짓말 작작 하시라구왜.
@@historywiki 세종실록 59권에 기록되기를 조선 국경은 공험진과 철령 이남이라고 기록되어 잇습니다. 공험진은 유관이 동북9성을 쌓았던 곳으로 두만강 약 700리 북쪽땅이라고 역시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철령 또한 강원도 영흥 철령이 아니라, 압록강 넘어 만주지역에 있는 철령입니다. 우리는 강원도 영흥 촌구석에 원나라가 쌍성총관부를 설치하였고 원나라 말기에 원나라 장수 나하추가 수만 군사를 이끌고 쌍성에 쳐들어 왓는데, 이성계가 무찔렀다는 개소리를 배우고 있지요. 원나라가 수만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오면 수도로 쳐들어 오지 미쳤다고 동해안 촌구석으로 뭔 볼일이 있다고 쳐들어갔겠습니까? 우리가 이런 코메디를 배우고 있습니다,.
고려가 중국을 손봐 주고 싶어 했군. 미군을 이용함도 상전(왕건 우왕등의 유훈 탓 우왕의 뜻은 왕건의 뜻이나 이성계가 따르기에 늙어서 거절한다. 젊은 시절엔 그렇게 했으나 늙어서 안했다.) 가만히 보니 중국을 혼내주고 싶은 고려다. 조선이 못하면 고려 상왕께서 천국에서 하지 않겠는가, 아참 대청이 했지
과거 시리즈로 업로드했던 '고려의 요동정벌' 영상 몰아보기입니다. 사료에도 풍부하게 나와 있으며, 식민사학에서는 애써 외면하는.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입니다. 고려의 마지막 명군 공민왕, 그리고 명장 이성계의 콜라보를 감상해보시죠^^
무신 사천소감(司天少監) 우필흥(于必興)이 상서하여 말하기를,
“「옥룡기(玉龍記)」에서 말하기를 ‘우리나라 땅은 백두산(白頭山)에서 시작하여 지리산(智異山)에서 그치니
(공민왕6년 윤9월)
그 공민왕이 조선종묘에 있다니
오녀산성은 1370년 이성계가 함락 했지만
1372년 이순 안우경이 다시 함락 시키긴 했었습니다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익한 역사 이야기입니다
공민왕때 요동1차원정을 해서 요동성을 점령했는데 실수로 곡식 창고가 불이나서 철수 했다고함 이성계가 추축이었는데 독단적으로 철수한것같음 주위에 고구려유민 부락도 많았고 여진족 부락도 많았는데 곡식을 조달할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 당시에 고구려유민이라는 개념이 존재할수 있슬까요? 그리고 여진족등 그 지역민들이 고려에 호의적이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곡식창고화재가 아니더라도 어짜피 군수지원에 한계가 존재할수밖에 없습니다.
구독 했어여
저때 정벌했어야 했음
저 당시 요동일대에는 많은 고려인이 살고 있었어요
공민왕때 장사성의 난때 원의 요청에 의해서 고려군이 파병했을때
16명의 장수와 2천의 군사를 파명했으나
요동에서 고려군을 추가 모집했서 2만3천의 대군이 됐습니다.
그만큼 당시 요동지역에는 고려인이 많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안정화도 쉽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리고 싸워보니 명군이나 홍건적보다 강하다는
장사성의 군대가 생각만큼 전투력이 강하지 않았기에
최영은 요동 정벌이 가능하다 본겁니다.
고려에 10만 요동에 10만
20만이면 지킬수 있다고 본거죠
영상 어디서 본거 같아서 찾아보니
앞전영상중에 요동정벌 1~3탄 합친거군요. 그래도 재미있게 영상 잘봤습니다.ㅎㅎ 다음영상을 기다리며 기대하겠습니다.
임진왜란 준비하는 동안은 몰아보기 위주로 올라갈 듯합니다.ㅜㅜ 그리고 죄송하게도 내일라이브도 어려울 듯 한것이..내일 광복절을 맞아 또 합동방송이 잡혀버렸기 때문입니다..ㅜㅜ 도마도님 늘 감사드리고요, 임진왜란 빠르게 준비해서 라방 복귀하겠습니다.
@@historywiki 합동방송이라 함은.. 즉.. 앞전에 그.. 아프리카 방송 처럼 타 방송 BJ? 또는
유튜버 분이랑 같이 방송한다? 이말이신지요?
넵 그겁니다~! 제가 커뮤니티에 게시글 적어뒀습니다. 이번엔 아프리카 대표님도 함께하네요 ㅎ
요동 요서의 위치가 저곳이 정확한가요? 그리고 위화도를 위성사진으로 보면 고려군이 5만이나 머무를 장소가 아닌데 1만명도 힘들어 보이는 크기에?
잘 봤습니다 위화도 회군 상황이 좀 궁금했었는데...
처명장군 누군가 했네요. 황산전투에도 참여했던, 이지란까지 합치면 말갈족에 여진족까지 고려의 맹장이었던 참 글로벌한 고려인 것 같아요.
이미 낙랑군부터 한반도는 단일민족은 아니죠.
말걀여진이 외국인인가? 니 조상임
@@miju-wt1cr 너의 조상이기도 함. 병자호란 후금, 청이 말갈족이고, 정말 많은 조선 여자가 애베고 조선으로 돌아옴.
그때 만들어진 속어가 '화냥년
@@miju-wt1cr 말갈은 배신자죠. 고려 왕건이 금수와 같은 종족이라고 했던. 뭐 고조선부터 고구려까지 강역으로 볼때 같이 국가만들었던 민족들인 것은 부정 못하고요.
@@miju-wt1cr 그러게 말입니다.
이미 백제부터가 졸본등에서 소서녀와 남하한 무리이고
그 지역 작은 나라들을 합병하여 고구려인데 조선이 말갈 여진을 우습게 여긴건
이성계의 반역 건국의 합리화와 중국에 대한 사대를 합리화 하기 위해 한 것이라 봅니다.
저때 공민왕의 아내 노국공주가 죽음. 그때 중놈들이 제사를 지내야 된다고 해서.
거기다 국고를 때려박음. 그래서, 요동으로 갈 보급품이 부족해서, 지킨지 못 하고 퇴각하게 되었음.
그래서 조선이 건국되었을때, 불교를 상당히 배척했었음.
오호?! 재미있는 사실이군요 영상 만들 때 좀더 연구했다면 이 내용이 들어갈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대한민국 국토와 영토 어디까지인가?
역사영토TV
조선이 서술한 고려역사 믿고자빠졌네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만들어 일본군몰살시켰단 북한역사를 믿고말겠다
훌륭한 군주가 갑자기 이상해졌다로 서술하는건 그 쿠데타 이해시키기위한것에 불과함
의자왕 연산군 고려왕등등
이성계가 전북전주출신이 아니고
중국전주출신임 이민족 통치반감을 막기위해 지껄인 출신세탁이지 이성계는 고려로 귀화한 중국인임
러사아태생 김정일이 백두산태생 이라고 지껄인거랑 똑같은목적이다
분명 전라도전주 출신이라고 믿고살겠고 세조가 활한방으로 사슴 6마리 관통시켜죽였단 실록기록도 믿고살겠지
이런사람들 유전자랑 같으니 북한사람들이 저렇게 통치받고사는거임ㅉㅉ
고려국경에 천리장성 있다던데 구글 지도에는 없던데 어떻게 된거죠?
공민왕 대단합니다. 국사책애서도 이런면을 알려주지 않으니...ㅠ
오오
55
잘볼께요^^
일차 원정때 점령했던 지역은 바로 철수했습니다. 점령하자 마자 그냥 철군했습니다. 2차 원정을 시작할 무렵엔 아무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성계 병력이 요동성으로 출병했을때에는 대략 15000명 ~20000명 정도뿐이니 5만에서 십만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정보입니다.
이 말이 일리가 있는게... 제2차 요동정벌군이 보급부대 포함해서 5만 이었음... 최영이 위화도 회군한 이성계 막은 군사가 5,000도 안 됐다... 말 그대로 고려 전군 탈탈 털어서 갔다는 소리... 근데 보급부대 없이 7일치 식량만 가지고 간 1차 원정군이 5-10만? 말도 안ㄷㅚ는 소리임... 보급부대는 최소한도로 잡아도 전투부대의 1/2은 잡아야 함... 5만명 중 실ㅈㅔ로 싸울 수 있는 군사는 많이야 3만 5천... 그게 보통 본대의
개소리 ㄴ 보급병력포함 5만명이었음 1만~2만명은 선넘었지 모르면 댓글좀 달지마러
식량이 불탔음;
강조 시대에 귀주대첩 이럴때 30만 20만씩 했던거 기억들 하지?
1차 요동정벌때 이성계가 이끈게 만오천명이었슴 (기병 5천 보병 1만).. 2차 요동정벌땐 고려에서 병사 끌어모아서 간거라 5만이 맞는말임.
16:46 -> 아니 저건 스리랑카의 옛 왕궁터 잖아~~! 여기서 왜 나와??
중국 소수민족 흡수하여, 요동, 요서 까지 차지하여 북진 통일 해야 한다 !!! 대한민국의 과제 입니다 !!!
아 안타깝네요
우리가 말해야 하는 건 ‘독도는 우리땅’이 아니고 ‘간도는 우리땅’이라는 거임... 독도는 가만 놔둬도 우리땅인 데... 한국의 영토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는 헌법부터 뜯어 고쳐야 함... 1979년 평양을 방문한 마오쩌둥이 김일송에게 ‘간도는 오래 전부터 조선의 영토이니 원한다면 돌려줄 의향이 있다’ 이게 중국 외교부가 공개한 공식 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임... 공민왕도 간도가 우리땅이라고 생각했으니 수복하려고 한 거임...
사실 이 영상 지도가 잘못됐죠. 고려시절 압록은 현재 랴오허죠. 요동은 랴오허의 서쪽이고.
간도를 수복하니 뭐니 하는건 조선시대 얘기고 고려시대에는 만주지역까지 영역이었음
고구려 2대 태황 유리태황의 무덤이 북경에 있는데 차이나 놈들은 유리국의 왕 무덤이라고 속이고 있는데.. 유리왕의 무덤이 북경에 있다면 지금 요동은 지금의 요동이 아닌 지역에 위치 하고 있었다라고 대략 이야기 할수 있을듯. 하네요..
요동 요서의 요는 변방, 즉 국가의 끝지역을 말합니다. 이 말은 국가의 영토크기에 따라 요동요서의 위치가 계속 달라진다는거지요. 고구려초기때만해도 중국의 영토는 지금처럼 크지 않았고 여러 민족이 난립하던 시기였고 현재의 북경은 당시에 중국에 속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동북쪽에 치우쳐있지요. 북경을 완전한 중국땅으로 인식하게 된건 명나라때 주원장사후 황위를 찬탈한 영락제때부터입니다. 원래 영락제는 황자시절에 황위다툼에서 배제되며 변방인 북경에 살게된것인데 그가 황제가 되자 그의 본거지인 북경으로 수도를 옮겼고 이로서 북경이 중국역사의 중심이 된거지요. 중국땅 전체로 보면 북경은 너무 북쪽에 위치해 있죠.
북경에 있는 무덤이 고구려 유리왕의 무덤이란 근거는??
@@ego6929 황하 본류는 주기적인 범람으로 바뀌었는데 춘추전국시대엔 황하가 북경쪽으로 흘렀어요.애초에 황하로 연결되었고 화북평야로 이어진 같은 문화권이였고 북경은 연나라가 위치했던 곳이고 만리장성 이남이며 저 지역에서 발견되는 청동기는 전형적인 중국식 청동기임. 애초에 신석기시대부터 요서내륙지역이 사막화되고 해안선을 따라가는 좁은 길은 뻘밭이라 만주랑 중국대륙은 차단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음
@@PrettyT-rex저거 그냥 국뽕사관임
@@ego6929
원의 수도가 북경이지 싶네요.
요동을 차지했어도 지키기 힘들었을걸.. 북원과 연합했으면 모를까.
그 북원은 회군 몇달전에 명나라한테 털려서 나가리
여진과 연합하면 가능
위화도 회군 시점으로보면 북원이 멸망당한게 딱 한달전임
애초에 고려 영토였음. 역사 관심있으면 제대로 찾아보세요
@@빅토르망치-e7z 요동은 애초 고구려->발해->거란->금->원나라 땅이다가.. 공민왕때 요동정벌하다 실패한뒤엔 명나라 땅이었슴.
다 정벌해놓고… 점령을 해서 다스릴 능력이 없던 비운의… 나라
왕건이 말햇던 북방정책을 달성한 공민왕을 왜 사극에서 공민대왕이라고 하겠나 싶었더니 ㅋㅋㅋ ㄹㅇ 대단하긴 햇다..
고려의 최전성기인 문종 시기 정도 아니면 사실상 고려가 요동을 편입시킬 국력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입장에서 요동은 가지고 와봐야 중국 통일왕조에게 끊임없이 침공당할 땅입니다. 지킬수가 없음. 딱 하나 요동을 편입하고 지킬수 있는 상황이라면 일본을 병탄해서 일본의 군사자원과 생산력을 등에 업고 할 수는 있겠지요. 그리고 일본 왜구의 벌쳐질로 중국 대륙의 해안가를 어지럽힌다면 가능 할 수도 있었겠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불가능하죠.
징기즈칸 원나라보다 쿠빌라이 원나라가 맞는 표현 인듯
어이구 저기 우리땅과해안선발해만을 지금도찾지못하다니
진짜저때 지켰으면 아 이쉽다 군량과 군수품들
고려의 동북 9성이나 1차 요동 정벌의 실패, 훗날 조선의 4군 6진을 보자면, 영토를 넓히는 것보다 그 얻은 영토를 지키는 것이 더 힘들고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고구려 장수왕이나 조선의 세종이 위대한 임금으로 평가받는 것이겠죠.
솔직히 고려의 왕건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멸명한 발해의 유민들을 포섭하여 나중에 서북부의 땅을 확정했기에 고려의 건국자이자 후삼국을 통일했던 고려의 왕건도 정말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고려 때부터 북진이 어려워진 건 9-11세기에 걸친 소빙하기로 만주가 생산력이 급감하면서 발해인들 수십만이 고려로 유입되었고 남은 발해인은 요,금에 의해 강제이주당하고 민족말살 당해서 현지 예맥계 집단이 절멸한 게 큼. 인프라랑 거점 구축을 처음부터 다시해야하는 지경이였음
공민왕의 실책은 직접 친정하지 않은 것
@@Gogury 해전을 많이한 이유는 제해권을 중요시하기 때문임.예나 지금이나 사람, 식량 운반은 배를 통해 운반하는 게 육로로 운반하는 것보다 몇십배 효율이 좋아요. 한국의 지명이 중국이랑 비슷해지는 건 후기신라 때 지명을 한화 즉 한자를 이용해 중국식으로 바꿧기 때문임. 그 이전엔 삼국이나 삼국이 등장하기 이전의 지명을 중구난방으로 쓰고 한자 표기 방법도 다 달랐는데 '나주' '상주' '명주' 이런식으로 후기 신라 때 전국토가 다 지명이 이렇게 바뀜. 망상도 적당히 좀
세종대왕의 4군 6진 정책이 없었다면 함경도는 지금쯤 중국땅이었을듯, 세종대왕님께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표함
숨가뻐!
고려의 요동 정벌보다 군사력 그대로 기존 영토 방어를 철저히 하고 내치에 주력하였어야 되었습니다.
(개혁군주) 공민왕 (천호장 이자춘 & 이성계) (기철기황후) 우왕창왕 공양왕;
아니 나는 이런전쟁중이라는걸 왜 몰라을까요 사기가충천합니다 그저 쿠데타만듣었지요
오녀산성 지키던 원나라장수 이름이 고안위네요. 만주 살던 고씨면..고구려 고씨 후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나라 발해상온 고청명 같은 사람도 거란군 소속 발해유민들로 구성된 부대 이끌고 고려 침공하는데 왔다가 거기서 죽었으니.. 자기 조상이 누군지도 모르고 사는 유민후손들이라.ㅠ
아쉽다
이성계가 회군을 할때 어떤 이익을 들고
왕이된건가? 궁금하다.
정복한 땅도 땅이지만 그 만한 영토를 지키고 유지할만한 힘이 있을때나 가능한것이죠 영토정복은 실질적으로 고려에게 그만한 힘이 있었을까요. 대단히 어렵고 불가능했을거라고봅니다.
책보고 동영상 참고하세요.
원나라 망하기 직전에 요동이랑 만주땅먹고 명나라 세워지고 화친 맺으면 됬었을수도
참고로 주원장은 한족이 아니라 회족이라고 한족이 한탄합니다
님 말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한족이 아니라 한탄한다했으니 이슬람믿는 한족이 아니라 중국 정착내지는 한족화한 무슬림이라는건데, 주원장 출신지나 초기 근거지로 봤을 때 신빙성이 그게 더 없어보이는데 혹시 출처가…
@@전도사-j6x 지 희망사항이죠ㅋㅋㅋ제대로 된 출처가 있을리가 있나요
그지 가 지 태생을 어찌 알겠는가 ㅎ
명교 자체가 티벳쪽 종교 였으니....
@@날씨왜이래 너야말로 무슨 헛소리? 근거하나 못댈것이ㅋ
고려는 확장, 조선은 현상 유지로 한자를 아는 양반의 세상 실현!
공민왕때나 가능했던일. 우왕은 요동정벌을 감히 실행할수있는 수준이아님. 그래서 이성계가 4대불가론을 올리게됨.
공민왕때 시행된 요동정벌때 교훈.
요동은 공격은 가능해도 방어시엔 반드시 보급이 필요한작전처. 원래가 옛고구려땅이 척박한 곳이라 자급자족이 안됨.
따라서 보급이 끝내지게 잘되거나, 주변을 약탈하면어 버텨야 되는곳.
공민왕때 이미 요동 포기했었슴. 1차 요동정벌 실패로 끝난뒤에 벌어진일이.. 원이 패망하고 밀려나서 북원된때라.. 나하추가 고려에 관직을 달라고도하구.. 요양행성 팽장 유익이 고려에 투항할려던거 다 쌩까구 명나라에 왕 책봉받은게 공민왕임. 그래서 명나라가 요동 접수하구 요새화하기 시작했었슴. 명은 요동에 수군으로 보급했었슴.
뻥이다
여기가 아니다
다음 영상이 재밌길...
고려는 분명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 같습니다 영토는 작지만 군사력은 동아시아 최강이였죠 거란전 1 2 3차까지 하고 지켜내며 3차때 거란군을 몰살시켜 100년간 평화의 시대를 만들었죠 현종 왕도 지도력이 뛰어났으며 명군에 명장 강감찬 장군 외 장병들도 있었기에 강국으로 됐습니다 원나라때는 원나라도 하도 고려가 지겹도록 잘 막아 친구로 지내자고 할 정도였으니 위대한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는 거의 조선만 만듭니다 드라마는 몇작만 빼고 다 이상해요
기록이....부족해요 ㅠ
강감찬이 명장은 아닙니다. 문신임. 양규 김숙흥 지체문 대도수등이 더 명장
1350년대도 요동성이 요동의 중심 성이었나?
ㄴㄴ 심양성
만약 요동성의 창고를 온전히 획득했어도 요동은 당시 북쪽 나하추 + 서쪽 명 + 동쪽 여진으로 둘러 쌓여 있어서 방어가 불가능했음
나하추, 여진과 손잡고 과거 고구려 전성기때처럼 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죠.
공민왕 능력이면 외교전으로 유지 가능했을수도... 고구려가 진출했던 시기도 각 나라별로 다 찢어져 있어서 그랬던거라..
조선정부가 이런분들처럼 백날 공격당할꺼리만 생각하고 있으니 조선이 외적 쳐들어오면 쉽게 도성까지 오지 못 하게 하려고 도로정비도 안 했던거임
@@historywiki 나하추 여진이 굳이 고려를 택할 이유가 없음. 원. 명이 있는데 왜 굳이 고려에?
여진은 이성계 영향력으로 제어 가능했고 나하추의20만 대군있다해도 이성계의 가별초 부대의 힘이라면 대적가능함
저 당시 한민족은 요동도 넘볼 정도로 기계가 살아있었지만... 지금의 한민족은 둘로 갈라져 있고 그나마 살만한 한국은 미국과 일본에 굽신거리며 사는 조그만 섬나라 신세다...
이성계가 걍 요동 정벌하고 고구려 땅 되찾음 얼마나 좋앗겟냐 망국 조선도 없엇을거고 임진란 병자호란 일제시대 전부 없을텐데
대한민국 국토와 영토 어디까지인가?
역사영토TV
ㅋㅋㅋㅋㅋ 응 못찾아 4군6진도 조선영토로 굳히는데 100년이 걸렷는데
그랬으면 명나라한테 나라뻇기고 세종이 만든 한글도 없었으니 한자쓰는 중국놈들 됐을거임;
망상지린다. '근대 이전'엔 일본열도가 만주한반도보다 생산력이 더 높은 지역이라 만주한반도 전체 통합된 국가가 있었어도 일본열도보다 약한 나라였을 수 밖에 없음. 근대이전 만주연해주 전체인구가 고작 150만이였는데 같은 시기 도쿄인구가 100만이였음.1910년 한반도인구가 1700만인데 그 당시 일본인구가 4000만명임.애초에 고려 말은 진짜 조선 말보다도 끔찍한 생지옥이였구요. 권문세족들 깽판 생각하면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아니라 그냥 먹혀서 만주족이랑 일본 전쟁터 됐을거임. 한반도 쟁탈전이 300년은 빨리 일어났을 거
이성계처럼 전쟁을 잘하는 군인이니까 그게 불가능하다는걸 아는거지 뭔 개소리를 하는거여 로마제국도 나중가선 추하게 망한거 모르나
괜한 요동성은 털어서 죽써숴 개줬네
백제 아신왕 때 신라를 침공해 신라가 광개토태왕에게 구원을 요청해
고구려군이 지원을했다는 내용은 있다.
그리고 그런 지원으로 부산일대로 몰려든 왜인 5만은 조용히 물러갔다.
그뒤 고구려군은 그들을 토벌했다는 기록은 없다.
다른 견해로는 이를토대로
당시 왜인 5만은 비류백제의 난민들이 왜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부산과 김해 일대로 몰려든 유민이라고 하는 견해도 많다.
고대사를 거론할 때는 정확한 고증을 토대로 거론해야 한다....
함부로 논란이 있도록 해서는 안딜 것이다.
오... 이 내용을 아시는군요
저때 고려가 명나라 공격했으면 명나라는 몽골 베트남 정벌하던 병력을 전부 한반도로 보냈을거고 그럼 당연히 오늘날의 한국은 없음 이성계는 애초에 한국역사상 군재 원탑이었고 그런 인물이 회군으로 판단내렸으면 끝난 것.
그런데 몽골 베트남은 잘있잔요. 회군은 결과적으로 시도도 안해보고 포기한건데..
왕명 거역한 쿠테타
만고역적 이성계
명나라 망하려고 작정했나요ㅋㅋㅋㅋㅋㅋㅋ 북방으로 물러난 북원이 칼을 벼르며 여전히 기세등등했고 몽골을 물리쳐낸 저력의 천년 왕국 대월도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싸움 잘하기로 이름난 고려를 치겠다고 동북방에 병력 집중? 상상력이 풍부하면 소설가가 되지만 너무 과하면 망상쟁이가 됩니다.
@@독튜브-o3k 위화도 회군 몇달전에 명나라가 초원 까지 쳐들어가서 북원 개박살내고 망합니다.영락제 때는 카라코룸 초토화 시켜서 유목민부족 집단수준으로 문명격하시키고 대월도 점령당해서 일시적으로 멸망하고 20여년간 지배당했음. 전성기 고려면 몰라도 요동먹고도 보급할 여력없어서 버려야만 할정도로 내정 개판나고 17만 원정하던 고려가 보급병포함 5만명 간신히 모으는 국가로 전락했고 중국에서 쫓겨난 홍건적 잔당한테 수도 털린 게 불과 얼마전이였음.그리고 위화도에 주둔하는 사이에 양광도는 왜구한테 개털리고 있었어서 회군 직후 바로 왜구 소탕하러 가야했음.고려는 당시에 원정할 힘도 없었고 명나라랑 붙을 여건도 안됐어요.
위화도 회군사건 조작된 역사기록 기능성이 높습니다 한마디로 위화도문제 조작된 가능성있다고 알고있습니다
이성계 신격화된 과장된 내용이네요. 역사서는 자신 위주로 쓰여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합리적의심) 저는 사료를 토대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만들었고요, 그래도 동북면 번호 출신이 고려라는 나라를 뒤엎고 개국을 할 수 있었다는건 이성계가 전설적인 무장이었음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과장된건 없음
과장은 없지만조선은 자주적인 나라가안됨 국호이름조차 맘대로못해서 명나라가서 화령(이성계의 고향)국할까요?하다 주원장 니네 조선해!!사료에나옴 이것만봐도 조선은 자주적이지못하고 학문의 다양성도 외부문물교류도없고 이러다 사회는 퇴보 정체 결국 일제36년지배하에 꿀꺼등 유럽같은 경우다닥다닥 붙어있다보니 싸우고싸우고하다보니 전반적으로 뭔가발전함 조선은 명나라하나만섬기지하고 15세기만반짝 이후가 노답인 나라가되어버림
@@jsgun6170 ㄴㄴ 정확히는 화령,조선중에서 정해달라고 함
조선입장에서는 조선이라는 이름을 더원했고 주원장이 조선이라고 정해준거임
@@jsgun6170 조선 초에는 괜찮았는데 세조 이후로 개판된거임
고려의 최대영토 조선보다 컸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조차 세종이란 칭호를 반대했죠
홍건적은 회족입니다
저게 고려입니까?
공부 다시 하시기 바랍니다
조선사편수회가 그리 좋습니까
등주도 어딘지 제대로 모르면서 역사를 설명하시려 합니까?
이성계 신격화 ㅋㅋ
고려사료를 전부소각시키 는 우를 조선초의 임금들 이 한 짓은 왕조의 정통성
결여가 부끄러웠기때문
내용은 맞으나 영토는 아니올시다 조선초도 요하동쪽 만주는 조선 땅 이있읍니다 당연히 고려는 현요하 동쪽은 무조건 고려땅 이었고 고뤄 초기에는 대륙동쪽 북경 주변도 고려 영토 였엇읍니다 조선초 조선왕조 오백년에 나오는 영토이고 세종실록에도 나오는 요하 위쪽 철령에서 두만강 북쪽 7백리 공험진 선춘령까지 1700리가 조선의 국경이라고 주원장도 인정 한 것입니다. 역사 애기만 하지 말고 영토도 제대로 밝혀 애기 합시다. 창피하게 고려가 평양 위쪽이라는 견소리는 하지 말아야지요. 압록강은 부꼉 서쪽에도 있고 요하도 압록강이라 하였읍니다.고구려대 압록은 부꼉 서쪽 세월이 흐르며 현 압록강으로 우리 연토는 후퇴 하였읍니다 원은 고려는 부마국 현제구 왜 일까요 원침공 이전에는 고려가 5천년 넘게 천장의 지위를 물려 받은 후손 입니다.해서 요동 정벌은 북경 주변 태행산맥 동쪽을 회복하려 떠났던 것이다.현재 국사에서 철령이 고성 위에 있엇고 공함진이 원산 위에 이라고 가르키는데 거리가 2백리나 될까 명이 미첫다고 우리나라 동쪽에 국경선을 획정 하냐구 거짓말 작작 하시라구왜.
오자가 많네요
학계의 검증된 주류역사만 다룹니다
이런 주장 하실거면 유튭채널 하나 파세요
@@historywiki 그런 주장하는 유튭 많습니다
@@historywiki 세종실록 59권에 기록되기를 조선 국경은 공험진과 철령 이남이라고 기록되어 잇습니다. 공험진은 유관이 동북9성을 쌓았던 곳으로 두만강 약 700리 북쪽땅이라고 역시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철령 또한 강원도 영흥 철령이 아니라, 압록강 넘어 만주지역에 있는 철령입니다.
우리는 강원도 영흥 촌구석에 원나라가 쌍성총관부를 설치하였고 원나라 말기에 원나라 장수 나하추가 수만 군사를 이끌고 쌍성에 쳐들어 왓는데, 이성계가 무찔렀다는 개소리를 배우고 있지요. 원나라가 수만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오면 수도로 쳐들어 오지 미쳤다고 동해안 촌구석으로 뭔 볼일이 있다고 쳐들어갔겠습니까?
우리가 이런 코메디를 배우고 있습니다,.
뭘 먹어야 이런 주장하나여?
고려가 중국을 손봐 주고 싶어 했군.
미군을 이용함도 상전(왕건 우왕등의 유훈 탓 우왕의 뜻은 왕건의 뜻이나 이성계가 따르기에 늙어서 거절한다. 젊은 시절엔 그렇게 했으나 늙어서 안했다.) 가만히 보니 중국을 혼내주고 싶은 고려다. 조선이 못하면 고려 상왕께서 천국에서 하지 않겠는가, 아참 대청이 했지
강강약약 이나라에뿌리가
위화도회군에서부터...
전주이씨...쿠테타2번 원나라배신1번
3번에배신을하고도
지금잘지냄 역사상그런집안은없음
바로잡아아됩니다
뭐하면 나라 망할 때까지 중국이랑 싸우면 되지. 고조선, 고구려, 백제가 누구한테 망했는지 생각하면 고려가 요동정벌했을 경우 딱 답이 나오지 않나?
위화도를 찾아라. 역사책에서 말하는거 말고. ㅡㅡ
주류 학계의 검증된 역사만 다루는 채널임
소설이야~~
정도전은 이세상에 태어나지 말아야 할 인간이었다
정도전 개혁 아니였음 고려 전국토는 권문세족들의 봉건영지화 되어서 모든 백성들이 소작농, 노비인 상황으로 근대까지 왔을걸요. 애초에 고려가 끔찍하게 썩어빠져서 정도전 같은 인물이 생길 수밖에 없던거임.
에구
식견을 넓히세요
정도전의 요동 도모 찾아봅시다
역적 이성계가 회군만 하지 않았으면 광개토대왕이 역사에 둘이나 존재할건데..
역적?ㅋㅋㅋㅋㅋ통일 된 중국에 이성계가 까불었으면 진작에 흡수 합병 되어 조선성 됐을걸?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니? 왜 항상 우리쪽이 승리할 거라고만 상상함??
@@PrettyT-rex 하이고 대국에 충성 열심히 하세요 너나
@@최운식-d5yㅋㅋ 철수안햇으면 3달이내로 이성계 찢겨죽엇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발 나 뇌없고 그냥 뽕만 오지게 맞앗어요 이런 댓글은 니 대가리속에서만 가지고잇어
일생을 외적이랑 싸운 영웅보고 역적 ㅇㅈㄹ 이성계 아니었으면 진작에 신장 티벳처럼 됐겠지 망해가던 고려가 무슨 수로 전성기 명나라랑 싸울건데 무식한 것아 ㅋㅋ 이성계가 진정한 영웅이지 한반도가 중국에 안먹힌 결정적 이유
@@PrettyT-rex 600여년이지난일을 정확히알수는없으나
그때 주원장은 만주쪽은신경쓸겨를이없었음
이성계 조민수 두장군이힘을합해서 공격했으면 요동.요서.지방은 고구려가정복했던지역이므로 주원장도 굳이싸울뜻이없었을수도 ~~~~
대충5만병력이면 가능했을수도있음 정도전이 회군해서 오손도손잘살자꼬드겨서그런듯~~
(후에 청의누루하치가 명과조선을칠때 조선인구 600~800만 명나라 1억5천만명정도 근데~ 누루하치의만주족 50~80만정도라함 ) 또한 이성계의 소국이대국을어쩌고하는말은 핑계임 세계사를봐도 소국이 대국이된예는많음 ..
그때부터 정도전과 작전들어갔을거임 ~~
우리의역사 ~~ 우리민족은 21세기현재도 좁은땅에서 아웅다웅서로싸우고 외세에휘둘리며 서로이간질에 더러운꼴을못버렸음 북돼지와 갱상도.전라도 지금도 내부적으론 후후삼국시대 아닌감 ?????
미국눈치보랴 짱깨에휘둘리랴 북돼지는꽥꽥거리지 일본엔이기지도못하믄서 개기려만하지 조선시대의역사를보듯 탁상공론에 주딩이만털고들있으니 양아치가 큰소리치는세상이되질않나 . 앞으로라도 자랑스런역사를만들인물이나오려나 ~~~~
적어도 지배는 못했어도 조선시대의 사대에 시작은 없었겠지...
진짜 없었을지도 모르죠. 고려가 명나라한테 정복당해서.
이성계가 오른판단한거야
=전주이씨
짱꽐라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