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HD] 선비의 절개 연꽃으로 피다 - 남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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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1 сен 2024
  •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조선 명종 7년(1552)에 나라에서 ‘남계’라는 사액을 내려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 36년(1603)에 나촌으로 옮겨 지었다가, 광해군 4년(1612) 옛 터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지었다. 숙종 때 강익과 정온을 더하여 모셨다. 따로 사당을 짓고 유호인과 정홍서를 모셨다가, 고종 5년(1868)에 이는 훼철되었다. 앞쪽 낮은 곳에는 공부하는 강학공간을 두었고 뒤쪽 높은 곳에는 사당을 두어 제향공간을 이룬 전학후문에 배치를 하였다.
    정여창을 모신 서원은 전국적으로 9곳에 이르며, 그중 주된 곳이 남계서원이다.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남계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Комментарии • 2

  • @우보천리여종구
    @우보천리여종구 2 года назад

    남계서원 개평마을 내고향
    즐감합니다 구독하고갑니다 응원합니다

  • @vidanofficial
    @vidanofficial 3 года назад +1

    역사적 인물에 대하여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 꼭 한번 방문해보고 싶은 장소입니다.
    저희 비단도 영상에나온 정여창 선생에 관한 이야기를 소재로 국악기로 표현하여 곡을 써보았는데요 ~
    저희 채널오셔서 역사다큐와 함께 ' 동방의 연꽃' 들어봐주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