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다 데드마스크라니 웃음뿐이 안나온다 귀한 금이 넘쳐나는게 아닌데 데드마스크로 조용히 넣고 봉한다고? 저들이 바보가? 금이 아주 차고 넘치면 얇게해서 만들겠냐 귀한 금이고 직접 써야하니까 무게를 고려해 얇게 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야 하기에 화려하고 위풍 있게 만든거지 금관 둘레가 넓은건 안쪽에 가죽이나 옷감을 안감으로 했기 때문이다 지금 처럼 금관이 펴진 상태가 아니라 고깔 모양으로 안감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을거임 안감은 썩어 없어진거구 황금인간의 투구 처럼 고깔 모양인게 금관이다 신라는 북방유목민족계와 스키타이족과 같은 무리가 이동해온거다 그들의 샤먼들이 쓰는 관을 보면 신라금관하고 아주 비슷하다 유목민들은 이동하며 살았기에 특성상 금을 일상품으로 만들어 몸에 지니고 다녔다 아마도 신라로 이동후 적착하게 되면서 그런게 점점 사라진거라고 본다 큰제사나 큰 행사때 과시용으로 쓴거다 평소에 쓰지도 않았고 데드마스크도 아니다
지배층에게는 귀한 금이 넘쳐 나죠 왕이 서민임 ㅎㅎㅎ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금관이 아니라 금동관임 청동에 금막을 씌운 관이죠. 발견된 금관들 위치도 이마 부분이 아닌 턱 부분이고 왕 무덤만이 아닌 왕족으로 추정되는 무덤에서도 이와 같은 형태의 금관이 나온다는 점을 근거로 장례용으로 추론한다는게 그렇게 웃긴 일임 ㅎㅎㅎ
@@별나무-c8e 지배층이라고 금이 넘쳐나지는 않아요 유목민족은 저장이 안되기에 약탈후 금으로 바꿔서 저장을 대신했습니다 그래서 몸에 지니고 다니는 악세사리로 금을 치장하고 다녔습니다 신라에 와서 정착하며 흐름이 바뀐거죠 그리고 금동관은 유리나라에도 많고 세계적으로도 많습니다 금관이 세계적으로 적은거고 금관 맞습니다
진짜 역사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서 댓글 남깁니다. 의문투성이인 한민족의 역사.. 진짜 한민족의 역사에 다가가시고 싶으신 분들은 고대사 굴삭기, 책보고님 영상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천문학으로 당시 고대 수도의 위치 기록을 보면 고구려 - 몽골 일대 백제 - 북경 일대 신라(초기) - 중국 동부 양자강 일대 신라(후기) - 한반도 일대로 나옵니다. -백제의 중심은 북경과 산동 반도입니다. 백제 귀족 성씨 8개 중 대다수가 현 산동 반도에 있습니다. 백제는 패망 후 열도로 건너가 신라+가야+빙하기 전 건너온 고대 한반도인을 통합해 '일본'을 만듭니다. 당시 일본 열도의 가장 강했던 세력이 신라, 가야의 '철기병'이었는데 여기에 건너온 백제인들이 추가로 '철기마병'까지 운용해 지배 세력이 됐습니다. 교토 쪽에 있는 '나라'현도 우연이 아닙니다. 이 나라 현은 신라-가야 세력이 지배하다 열도로 온 백제가 지배하게 됩니다. 또한 일본어의 뿌리는 백제어입니다. -'발해'라고 부르시면 안 됩니다. 이는 한족이 '진국', '후고구려'를 낮추어 부르던 말입니다. '대진국'이라고 부르셔야 합니다. -역사서인 '고려사'에서는 '고려는 동서가 2000리 남북은 1500리'로 '동서가 남북보다 길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교과서에선 남북이 더 길다고 가르칩니다. 고려 역시 진짜 강역은 한반도와 만주는 말할 것도 없고 북경과 산동 반도 이남까지입니다. -예맥(우리) 동호(선비[수, 당]-거란[요]-몽고족[원]) 숙신(말갈-여진[금]-만주족[후금,청])은 모두 한민족의 갈래이며, 원나라(동호)와 금-청나라(숙신)가 들어서면서 형, 동생의 관계가 역전됩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던 몽골이 다 쓸어버리던 와중에 괜히 고려만 남겨둔 게 아닙니다. 또 훗날 후금(훗날 청)이 '뿌리를 잊고 이민족에게 사대하는' 조선을 정신 차리게 한 것도 절대 굴욕이 아닙니다. -'여진'이 아니라 '주션Jurchen'이란 발음이 맞습니다. 한문을 그대로 읽다보니 여진이라고 잘못 읽게 된 겁니다. Jucrchen과 Josun이 발음이 비슷한 이유는 (고)조선에서 따온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여진족은 대한민국(조선)을 여진족 파벌 중 하나로 인식했습니다. 때문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때 도와줬습니다. -청 건국자 누르하치의 조상인 먼터무는 이성계의 부하 이지란과 6촌 사이이고, 먼터무는 스스로 이성계를 섬겼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은 129기의 고분군(후한 묘 7기, 북조 묘 2기, 당 묘 33기, 요 묘 33기)에 아파트를 지어 역사를 지우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역사 유물인데 왜 보존하지 않고 그 위에 콘크리트 붓기 바쁠까요? "상식적으로 다가가면 답이 나옵니다." 또 '낙랑군 조선현 사람 무덤'이 '북경'에서 나왔습니다. 식민사학자+일본+한족은 낙랑군이 현 '평양'에 있었다는데.. 무덤은 어째서 '북경'에서 나오나요? 한족, 일본은 과장이나 왜곡이어도 '좋은 건 다 자기네 거'라는데, 대한민국 주류 사학계는 '환단고기와 한민족의 대륙 고대 국가는 환빠'랍니다. 우리나라 역사학계 주류가 되는 사람들의 실태입니다. -일본 열도와 대륙에 사는 한민족의 갈래, 조선족, 고려인 모두 몇만년에서 몇천년을 함께 살아왔고 떨어진지는 고작 몇백년 밖에 안 됐습니다. 우리의 형제들은 스스로를 중국인, 일본인 등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몽골과는 통일 후 연합해야 합니다. -일찍이 우리 한민족(동이족:동쪽의 큰 활을 든 민족)은 동아시아에서 뛰어난 역사(홍산 문화)를 지닌 민족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도 됩니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또 대한민국 사람으로 태어날진 모르겠지만 진짜 역사를 알고 있는 이상 올바른 역사를 알리려는 노력은 해봅니다. 대한민국 만세.
영국에서는 평상시에 쓰는 왕관과 대관식 때 쓰는 왕관이 따로 있는데, 그거랑 비슷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는 금관은 너무 치렁치렁해서 평상시에 쓰는 건 무리일 것 같고 즉위식이나 이에 준하는 큰 행사가 있을 때 잠깐 쓰고 평상시에는 관모와 비슷한 것을 쓰되 구별이 가능하게 차별화한(고구려의 경우는 신하가 검은색, 왕이 흰색 모자) 게 아닐까 싶네요.
답답하다
데드마스크라니 웃음뿐이 안나온다
귀한 금이 넘쳐나는게 아닌데 데드마스크로 조용히 넣고 봉한다고? 저들이 바보가?
금이 아주 차고 넘치면 얇게해서 만들겠냐
귀한 금이고 직접 써야하니까 무게를 고려해 얇게 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야 하기에 화려하고 위풍 있게 만든거지
금관 둘레가 넓은건 안쪽에 가죽이나 옷감을 안감으로 했기 때문이다
지금 처럼 금관이 펴진 상태가 아니라 고깔 모양으로 안감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을거임
안감은 썩어 없어진거구
황금인간의 투구 처럼 고깔 모양인게 금관이다
신라는 북방유목민족계와 스키타이족과 같은 무리가 이동해온거다
그들의 샤먼들이 쓰는 관을 보면 신라금관하고 아주 비슷하다
유목민들은 이동하며 살았기에 특성상 금을 일상품으로 만들어 몸에 지니고 다녔다
아마도 신라로 이동후 적착하게 되면서 그런게 점점 사라진거라고 본다
큰제사나 큰 행사때 과시용으로 쓴거다
평소에 쓰지도 않았고 데드마스크도 아니다
@@말랑말랑-p3z 예리하시네요 저도 글케 생각함^
지배층에게는 귀한 금이 넘쳐 나죠 왕이 서민임 ㅎㅎㅎ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금관이 아니라 금동관임 청동에 금막을 씌운 관이죠.
발견된 금관들 위치도 이마 부분이 아닌 턱 부분이고 왕 무덤만이 아닌 왕족으로 추정되는 무덤에서도 이와 같은 형태의 금관이 나온다는 점을 근거로 장례용으로 추론한다는게 그렇게 웃긴 일임 ㅎㅎㅎ
@@별나무-c8e 지배층이라고 금이 넘쳐나지는 않아요
유목민족은 저장이 안되기에 약탈후 금으로 바꿔서 저장을 대신했습니다
그래서 몸에 지니고 다니는 악세사리로 금을 치장하고 다녔습니다
신라에 와서 정착하며 흐름이 바뀐거죠
그리고 금동관은 유리나라에도 많고 세계적으로도 많습니다
금관이 세계적으로 적은거고 금관 맞습니다
@@말랑말랑-p3z 금동관인줄 알았는게 금관이군요 대단하구만
안감 지지 역할이면 금관에 실 넣는 구멍같은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한상 현 대전대 교수
저런 폄하적 주장을 하는 인간들은 왜 하나같이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땄을까?
일본에서 박사학위 따면 어김없이 한국에서 한자리 차지하게 되던데 그것도 참 웃김
식민사학자 자격증.
야요이=o1b2-m176=쓰레기=수염없는 원숭이🐒, 야요이=일본=한국, 하급종족
저렇게 얇고 날카로운걸 평상시에는 쓰지 않았을것 같은데.
명나라 초기 궁중복이 옷은 고려옷이고 모자는 곳갈모자임. 왜 그랫을까?
무식하면 저런방송이 나온다. 평시 천을 덧대면 충분히 착용가능하고 살아생전 의례+조회때 살아있을때도충분히 착용하고도 남지
이한상 현 대전대 교수
저런 폄하적 주장을 하는 인간들은 왜 하나같이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땄을까?
일본에서 박사학위 따면 어김없이 한국에서 한자리 차지하게 되던데 그것도 참 웃김
금관 - 의례용
금꼬깔 - 평시용
평시용은 왕에서 왕으로 전해짐.
금관은 장례도 의례니 같이 묻은걸로 추정 됩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하고 있네
하여간 식민사학자들 신라 폄하는 심각할 정도임
만물 식민사관론 ㅋㅋㅋㅋ
@@y94325055 고구려, 왜, 백제 전부 머리에 썼는데 신라만 관을 안쓰고 장례 지낼때 만들어 마스크로 썼다는게 말이 되냐?
저 주장을 했던 이한상이라는 인간은 일본 유학은 물론이고 억양마저 일본억양인데 그런사람 말을 그대로 믿는거 보면 확실히 국민들이 이상함
고구려, 왜, 백제 전부 머리에 썼는데 신라만 관을 안쓰고 장례 지낼때 만들어 마스크로 썼다는게 말이 안됨
저 주장을 했던 이한상이라는 사람은 일본 유학은 물론이고 억양마저 일본억양인데 그런사람 말을 그대로 믿는거 보면 확실히 국민들이 이상함
중국은 물론이고 백제, 일본 보다 화려하고 위엄있는 위세품이기 때문에 무조건 깍아내리는거죠
@@y94325055 실제 저 주장을 한 사람이 일본에서 박사 학위 딴 사람임
전혀 무관하진 않지
1:54 이 복식도 만만찮게 불편한데
사극 보면 저 늘어뜨린 부분이 찰랑거려서 고개도 못 돌림
어쩌면 금관보다 저 모자가 훨씬 불편할지도 모르고
불편하다고 무조건 부장품이라는건 말도 안되는 논리인듯
아 글을 쓸줄 알면 누군지 좀 밝히게 이름 좀 써놓지
24년전 영상ㄷㄷ
기록이 없으니 학자들의 추측과 상상일테니 누구의 주장도 틀린건 없죠.어느주장이 더 합리적이냐의 문제..비난하지도 말고 아는척할일도 아닌데 댓글들은 왜 난리?
어차피 진덕여왕때 대당외교 펼치면서 2000년 역사에 잊지못할 곤룡포와 익선관으로 없애버린 금관인데 의미가 있나.
중국도 수나라때부터 용포랑 익선관 비슷한 복두를 썼다네요 신라 중후기도 비슷할거에요
그냥 행사할때만 잠깐 눈깔 사진찍고 모셔둔다.😢
신라의 금관총은 극락을 믿는 신앙 때문일 수 있습니다.
평소에 쓰던 모자는 아닐거임. 그리고 신라, 가야는 제정 일치 사회라 왕의 위용이 더욱 강조되던 사회였음.
반면 고구려나 백제는 군정 일치라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음.
진짜 역사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서 댓글 남깁니다.
의문투성이인 한민족의 역사..
진짜 한민족의 역사에 다가가시고 싶으신 분들은 고대사 굴삭기, 책보고님 영상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천문학으로 당시 고대 수도의 위치 기록을 보면
고구려 - 몽골 일대
백제 - 북경 일대
신라(초기) - 중국 동부 양자강 일대
신라(후기) - 한반도 일대로 나옵니다.
-백제의 중심은 북경과 산동 반도입니다.
백제 귀족 성씨 8개 중 대다수가 현 산동 반도에 있습니다.
백제는 패망 후 열도로 건너가 신라+가야+빙하기 전 건너온 고대 한반도인을 통합해 '일본'을 만듭니다.
당시 일본 열도의 가장 강했던 세력이 신라, 가야의 '철기병'이었는데 여기에 건너온 백제인들이 추가로 '철기마병'까지 운용해 지배 세력이 됐습니다.
교토 쪽에 있는 '나라'현도 우연이 아닙니다.
이 나라 현은 신라-가야 세력이 지배하다 열도로 온 백제가 지배하게 됩니다.
또한 일본어의 뿌리는 백제어입니다.
-'발해'라고 부르시면 안 됩니다.
이는 한족이 '진국', '후고구려'를 낮추어 부르던 말입니다.
'대진국'이라고 부르셔야 합니다.
-역사서인 '고려사'에서는 '고려는 동서가 2000리 남북은 1500리'로 '동서가 남북보다 길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교과서에선 남북이 더 길다고 가르칩니다.
고려 역시 진짜 강역은 한반도와 만주는 말할 것도 없고 북경과 산동 반도 이남까지입니다.
-예맥(우리)
동호(선비[수, 당]-거란[요]-몽고족[원])
숙신(말갈-여진[금]-만주족[후금,청])은
모두 한민족의 갈래이며, 원나라(동호)와 금-청나라(숙신)가 들어서면서 형, 동생의 관계가 역전됩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던 몽골이 다 쓸어버리던 와중에 괜히 고려만 남겨둔 게 아닙니다.
또 훗날 후금(훗날 청)이 '뿌리를 잊고 이민족에게 사대하는' 조선을 정신 차리게 한 것도 절대 굴욕이 아닙니다.
-'여진'이 아니라 '주션Jurchen'이란 발음이 맞습니다.
한문을 그대로 읽다보니 여진이라고 잘못 읽게 된 겁니다.
Jucrchen과 Josun이 발음이 비슷한 이유는 (고)조선에서 따온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여진족은 대한민국(조선)을 여진족 파벌 중 하나로 인식했습니다.
때문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때 도와줬습니다.
-청 건국자 누르하치의 조상인 먼터무는 이성계의 부하 이지란과 6촌 사이이고, 먼터무는 스스로 이성계를 섬겼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은 129기의 고분군(후한 묘 7기, 북조 묘 2기, 당 묘 33기, 요 묘 33기)에 아파트를 지어 역사를 지우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역사 유물인데 왜 보존하지 않고 그 위에 콘크리트 붓기 바쁠까요?
"상식적으로 다가가면 답이 나옵니다."
또 '낙랑군 조선현 사람 무덤'이 '북경'에서 나왔습니다.
식민사학자+일본+한족은 낙랑군이 현 '평양'에 있었다는데.. 무덤은 어째서 '북경'에서 나오나요?
한족, 일본은 과장이나 왜곡이어도 '좋은 건 다 자기네 거'라는데, 대한민국 주류 사학계는 '환단고기와 한민족의 대륙 고대 국가는 환빠'랍니다.
우리나라 역사학계 주류가 되는 사람들의 실태입니다.
-일본 열도와 대륙에 사는 한민족의 갈래, 조선족, 고려인 모두 몇만년에서 몇천년을 함께 살아왔고 떨어진지는 고작 몇백년 밖에 안 됐습니다.
우리의 형제들은 스스로를 중국인, 일본인 등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몽골과는 통일 후 연합해야 합니다.
-일찍이 우리 한민족(동이족:동쪽의 큰 활을 든 민족)은 동아시아에서 뛰어난 역사(홍산 문화)를 지닌 민족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도 됩니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또 대한민국 사람으로 태어날진 모르겠지만 진짜 역사를 알고 있는 이상 올바른 역사를 알리려는 노력은 해봅니다.
대한민국 만세.
신라시대라면 사람들이 작았을수도 있으니 머리둘레 따진다면 왕자가 아닌 왕일지도 모른다
왕 수
뻥이요.
헐
사극에서 신라왕이 금관을 쓰고 나타나는데 내는 어색했음. 저것을 머리에 착용하고 일상생활이 가능했을까? 중요한 행사 때에만 착용은 가능했을까? 의자에 앉거나 설 경우 허리를 구부리면 금관은 벗어질텐데.
영국에서는 평상시에 쓰는 왕관과 대관식 때 쓰는 왕관이 따로 있는데, 그거랑 비슷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는 금관은 너무 치렁치렁해서 평상시에 쓰는 건 무리일 것 같고 즉위식이나 이에 준하는 큰 행사가 있을 때 잠깐 쓰고 평상시에는 관모와 비슷한 것을 쓰되 구별이 가능하게 차별화한(고구려의 경우는 신하가 검은색, 왕이 흰색 모자) 게 아닐까 싶네요.
참으로기술력이 대단하군요.꼭 신라일까요? 어느시대나라것인지 꼭밝혀지길...
이 좋은 프로그램에 사회자는ᆢ유재석해주지요ㅠㅜ
금관 실제론 쓴 선덕여왕 이요원 씨 한테 대번 마 물어보면 될듯~😅
그러니까 금관은 서양의 데드 마스크와 비슷한 사자의 얼굴 가면?
무슨 한국인의 조상이냐?
금에 환장하는 흉노족 신라왕 상도들의 조상이지
황금숭배 흉노족의 금으로 만든 인간숭배 금인. 전형적인 흉노족의 전통.
저거 관이 아니고 빤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