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nSik262 조선초기에는 그런면이 좀 있었지만 건축물 하나에도 성리학의 도리를 담는다 하여 2층건물을 짓지 못하게 했고 화려한 색을 입히지 못하게 했으며 담장을 높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전 고려시대에는 담장을 거의 성높이만큼 쌓은 집들도 많았는데 권문세족이나 더 이전의 호족들은 자신들의 사병이 있었고 집안에 가신도 있었기 때문에 200채 300채씩 되는 칸이 있는 궁궐같은 집을 지어 살았다고 합니다. 이걸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사병혁파를 하면서 모든 사병을 없애버렸고 담장높이는 낮추고 집단장을 못하게 했습니다. 경복궁을 지을때도 정도전이 권위는 있데 화려하지 않게 지으라고 해서 그렇게 지었는데 사실 그것조차도 화려함을 추구했던 고려양식이 남아 있어서 조선후기 고종때 다시 지은 지금의 경복궁보다는 훨씬 화려했다고 합니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지어진 경복궁은 돈을 아끼느라 이전 경복궁보다 덜 화려하게 지었거든요. 유구국에 남은 문헌에 따르면 조선전기때 사신으로 갔던 유구국사진이 조선궁궐의 화려함을 칭송하는 부분이 있는데 특히 기둥을 감싼 용의 기상이 무척 생생했다고 나와 있는데 후기에 지은 경복궁에는 이런 모습은 없죠. 우리가 아는 한옥의 모습은 대부분이 조선후기의 모습이지요.조선전기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한옥도 꽤 화려함을 어느정도 추구했고 고려시대는 더 화려했지만 고려후반부는 전란이 너무 많아서 조선전기보다 오히려 민생의 삶이 궁핍한 관계로 그렇게까지 화려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려가 여진,거란을 다 물리치고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이루어서 동아시아평화200년을 만들었던때는 엄청나게 화려하고 부유하게 살았고 많은 민속경기, 놀이, 화려한 건축물, 무역등이 있었다고 하네요. 우리가 좋게 기억하는 고려의 모습은 바로 이 200년간의 모습인거죠. 이때의 동력으로 몽골침입때 팔만대장경도 만들수 있었으니까요.
@@물소추적-j6c다 맞는 말이긴 함 ㅋㅋㅋㅋㅋ 일단 예전 부여박물관 건물 지었을 때 왜색 논란 한 번 터졌고(물론 좀 오래됬음), 예산이야 말할거도 없고..ㅎㅎ, 단청장 같은 경우는 다 조선시대 단청을 그리는 사람들이라 기술자가 있지만 없는 그런 상황이고. 아무튼 결국 핑계 같다만 점점 더 나아지길 바라는 수밖엔 없는 듯..
당시 삼국시대 건물은 남북조시대와 당나라풍의 건물을 참고해야하는데 당나라풍의 목조건물은 일본에 가장 많이 남아있음. 실사복원하려고 해도 일본풍 따라한다고 욕먹고, 일본애들은 자기네꺼 따라한다고 지랄하고 결국 화려함은 떨어지고 유교색풍이 짙은 조선시대 건물풍을 따르게 됨. 참고로 명나라시대 건물풍이나 예술품, 의상등은 한국에 많이 남아있음. 중국애들은 자기 문화를 스스로 다 없애버리고 이제와서 옆나라들이 잘 보존해온걸 부러워만함. 현재에 와서는 오히려 조선이 유교의 오리지널화 되버림. 주자가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조선에서 죽었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게 아님. 중국애들도 명나라시대 건물이나 의상복원할때 조선풍을 따라하는데 이게 또 한국사람은 우리꺼 따라한다고 지랄함. 드라마에서 명나라시대 의상으로 흰옷에 갓쓰고 나오면 한국꺼 따라했다고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잇음
효명세자 주도하에 그려진 동궐도라는 그림을 보면 조선시대 후기 궁궐 그림이 있는데 몇몇 건물들을 보면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건물들은 일제 시대 대화재로 불타 없어졌습니다. 이렇듯 조선시대만 해도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이 존재하였으나 전쟁과 자연재해 등으로 불타 없어졌습니다. 여러 변고 속에도 화려했던 당시 모습을 가진 건축물은 창덕궁 선정전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무원이나 업자들도 모르지는 않을 것인데, 왜색 논란이 많이 나올까봐 시도하기 힘든 것도 있습니다. (사실 한복, 한옥 현대화하는 분들은 한 번씩 겪는 문제) 고려는 고분에 쓰인 단청들을 보면 무늬나 색이 중국, 일본의 것과 확실히 다른 측면이 꽤 있고, 청기와를 썼었던 데다가 건축술이 꽤 독특해서 괜찮겠지만 백제, 신라는 워낙 일본과 교류가 많았던 터라 복식, 건축이 왜색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죠.
고구려 단청 빼고 과거 단청 스타일 다비슷했어요 색감도 그렇고. 초록색 베이스 까는일본 사무라이 갑옷에 쓰이는 색상이 고대에 중국 한국에서 쓰던 단청색감임. 당나라 그림하고 벽화 많이 남아있는데 색감이 또깥구요. 백제 신라의상도 녹색베이스에 레드로 포인트준거. 신라 양탄자 색감도 동일함. 백제 고구려치마 색감도 도일함
신라 신선들이 사는 곳 황금의 나라로 기록 되어 있고 세공 기술력이 세계 최고였음 100원짜리 동전만한것에 금박지 미세가공 해놓은거 보면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움 지금 기술자들도 수작업으로 할수 없는 경지라고함 황궁을 황금으로 꾸미고 칠하고 했던 나라 그뒤를 이은 고려는 황금도 쓰고 수도 개경 집들은 기왓장을 옥으로 만들어서 쓴 집들이 가득했다하니 우리 선조들의 기술력과 꾸밈은 최고인듯
이런게 진짜죠 어쩐지 우리문화하면 조선시대꺼밖에 생각이 안나는데 영상 잘봤습니다 특히!!... 백제양식 확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게 확실해보이네요 섬세하고 정교한건축양식이.... 고구려 웅장하네요 중국과 맞대결하던나라 다운 건축양식,,.. 신라는 화려하신한네 좀약해보입니다,,
백제의 단청이 마음에 드네요. 저런 건물이라도 있으면 좋겠네요. 고구려의 빨간 기와와 단청, 고려의 구리 기와도 좋구요. 블로그를 보니 청자 기와를 복원한 거라는데 색깔은 구리 기와네요. 청자 기와는 색이 좀 달라요 국립중앙박물관 호수 옆에 청자정인가? 하는 이름으로 복원된 것이 있죠..
사회학적으로 풀어보자면, 원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격차가 넘사벽급으로 높던 고대시대나,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시대일수록 궁전, 저택같은 지배계급을 위한 건축물들은 점점 화려해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당장 중세시대 고딕양식의 성당들이나 지금까지 남아있는 성채들과 농노들이 살았던 초가집, 아니면 당장 옆나라에서 다이묘들의 성채나 저택, 고래기름으로 매일 등을 켤만큼 돈이 많았던 어용상인, 죠닌과 농민들의 집을 비교해보면 대충 이 말이 이해되시리라 생각됩니다. 삼국시대에는 신라 골품제도가 유명하지만 백제, 고구려도 유사한 신분차별이 있었고 각자 골품에 따라 집의 크기나 장식방법에도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지배계급의 건물은 화려한데 피지배계급의 건물은 음.... 많이 낙후되었지요. 조선시대에는 지배계급의 검소함을 미덕으로 내세우던 성리학이 지배하던 시절이라 일단 이전시대의 화려함을 확 죽여버리는 단청, 기둥장식, 막새같은 장식기와의 사용이 왕궁과 사찰을 제외하고는 죄다 금지되어서 수수해보이는거지 사실 조선시대 건물들도 틀 안에서 최대한 꾸미려고 애쓴 흔적이 보입니다. 이를테면 검은색 기와는 굽는과정에서 일부러 불완전연소를 유도해서 탄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게 없으면 기와는 회색이나 신라토기같은 흙색이 나옵니다. 황토로 만들면 황토색, 붉은흙으로 만들면 붉은색. 검은색 기와도 사실 장식기법이지요. 그리고 고려시대 청자기와가 화려하기로 유명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왕궁에 한해서는 염초로 만든 유약을 처리한 청기와를 썼습니다. 지금도 창덕궁에 가면 볼 수 있고 청와대의 그 청기와입니다.
기와가 검은건 구울때 일부러 탄화가 일어나게 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이 없으면 그냥 흙 본래의 색깔이 나오죠 신라토기같은 색깔 말입니다. 사실 이 기법이 조선시대쯤에 보편화 된거라 그 전의 기와들은 흙 고유색의 기와가 많았을겁니다. 가령 적색이나 황토색같은것 말이죠. 이렇게 초벌구운걸 유약처리까지 하고 또 구우면 고려시대 청자기와가 나오는 것이고, 염초로 처리하면 조선시대의 청기와가 나옵니다. 조선시대 청기와는 지금도 창덕궁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백제가 일본에 전수해준것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아서 아직까지도 일본인들은 백제를 좋아하는데 당연히 백제 건축양식은 저딴 조선 유교식이 아니라 일본이랑 거의 비슷하거나 더 뛰어났을거임 신라도 그렇고 백제도 그렇고 ㅈㄴ 화려했던 문화인데 왜 다 조선식으로 바꿔서 후져보이게 하냐고... 답답해 죽겠다... 북한은 고구려 문화재 복원 잘했던데 북한보다도 못하냐 자존심 상하게
고구려 백색단청 칠한거 고증 잘하셨네요! 🤩😁 고려는 황제국이었고, 송나라 사신이 고려궁보고 건방질정도 였다 하였으니 장관이었을듯해요. 신라도 교역을 활발히 했고, 수도는 특권층만 살아서 화려했을듯. 실제로 신라보고 평화로운 나라다/금건물이 있고, 개목걸이가 금이었다 이런 기록도 있어서ㅋㅋ 상당히 부유했을 것 같아요. 궁에도 그게 나타났겠죠?
일본왕은 명치시대 전에는 그냥 귀족정도의 지금 말하자면 구에 속할 정도로 적은 땅 백제촌(야마토(한반도가 만들어줌)라는 오오사카 근처 동네)에서 백제왕을 이어받아 살고 있다가.. 나라시대(한반도에서 도래, 나라 걔념을 처음으로 만들어 줌), 평안시다(평양계통이 큰 도시 건설)중국계 성 한국계성주 등이 서로 관계없이 곳곳에 그냥 도시나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인구 1000만명,2차대전 당시, 조선 1500만명 )명치시대 부터 일왕을 명세력이 띄워준 것이고, 백제가 얼마나 회려했다? 는 구라고, 물건을 잘 만들었다고는 하는데.. 일본 성이나 건축물들은 거의 1700년대부터 유럽에 대항하면서 조선의 건축방식도 배우고 급조해서, 화려하고 뭔가 서양픙이 심한 아시안 건축이 된 것이고.. 속지말 것. 고사기 애용은 한반도의 백제시대의 내용이 옮겨가서 지금은 일본발음으로 읽지만 백제에서는 그렇게 읽지 않았고, 일본 사기는 결국 역시 1400~1500년대에 지은 거짓정보 역사서로 백제계가 꾸며낸 것이 대부분이다. 이유는 서양세력의 침략에 나라를 뽐내려고 (자신들은 한국의 신의 혈통 왕가다 라고 , 무시하지 못하게 말이다) 하다. 포루투갈과 스페인이 무기를 팔면서 전국시대를 맞아 다 쑥대밭이 되어서 목조건물이 타고.. 폐허가되면서 옛 일본문화는 망가지고, 서양계 혼혈 성주가 새로 급조하고 , 일본 역사는 아수라장이었으니, 풍신수길(영국해적계통:서양의 프랜시스드레이크를 따른다고 일왕이 그 사람한테 호를 준 것이 풍신,프랜시스 수길,쥬레이키) 그때서야 일본이라는 나라가 통일을 하면서 국가가 되고 일왕 신격화가 시작되니.. 백제가 그닥 대단한,나라는 원래 아님, 혹 그렇다면 어째서 한국에서 백제에 대해 극찬을 안하고 신라가 더 문화적으로 뛰어났고, 고구려가 더 원대했고, 고조선은 인류역사의 근원이라 할까? 그 시대에는 일본이 죠몬싣대(조선의 문화로 만든 섬의 여기저기 정도였고, 원주민은 ...) 아무튼 통일이 되면서, 서양인들이 일본을 쥐락펴락도 하고, 협잡으로 왜란을 일으킴, 덕천가강(네덜란드계통)부터은 안정되고., 한일합방부터는 책도 읽는 나라가 되었고, 지금은 오히려 한국보다 책을 많이 읽게 되는데 .. 조선사람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문화가 전해진다.
한가지 궁금합니다. 역사에 무지한 제가 알기로도 삼국시대의 건축물들이 오히려 조선시대의 건축물들보다 더 화려하고 크며, 복층구조로 이루워진 건축물들이 꽤 있었던걸로 아는데... 난방을 어떤 형태로 했는지가 궁금합니다. 물론 우리에게 온돌이란 우수한 난방 기술이 있었다고는하나, 이는 구조상으로나, 당시의 기술로는 복층, 즉 2층이나 3층에는 구현하기 불가능했을것인데, 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의 기후여건상, 삼국 모두가, 아니 가야나 탐라, 또 그 이전의 나라들인 부여나 고조선등들, 또 삼국시대 이후의 발해나 통일신라, 그리고 고려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적극적인 온돌의 적용과 그에따른 좌식문화의 정착으로 단층구조가 주를 이루던 조선시대 이전의 모든 나라들의 건축물들의 경우, 겨울철의 난방은 필수였을것이며, 더욱이 고조선이나 부여, 또 고구려나 발해등의 국가들은 만주지역 대부분과 지금의 중국 영토의 동쪽과 북쪽 영토, 그리고 러시아 영토들중 동남쪽 영토들 즉 시베리아나 사할린등의 영토들을 지배하고, 또 그 위치해있었던바, 겨울철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야 했기에, 어찌보면 온돌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난방시스템이었던바, 1층외에 2층이나 3층등의 복층 구조의 건축물들은 이 온돌을 설치하기가 거의 불가능했을텐데, 어찌 추위를 이겨냈는지, 어떤 난방 방식이나 형태였는지가 매우매우 궁금합니다.
조선시대 건물의 가장 큰 단점은 그놈이 그놈같다는것. 경복궁도 예외가 아닌게 안의 전각들도 다 비슷하게 생겨서 너무 단조롭고 그나마 화려한 경회루도 나중에 지어진건데 그거라도 없었으면 진짜 허전했겠다 싶음. 특히 광화문 넘어 넓은 입구는 건물한채, 풀한포기 안 심어져 있어서 초등학교 운동장 보는듯한 기분도 들고 외국인 들도 왜이리 썰렁하냐고 하더군요. 대체로 궁궐도 그렇고 역사적인 건물들도 다 좋긴한대 비슷하게 생겨서 내가 여기왔었나? 하는 착각도 들어서 보는 재미가 확연히 떨어져버림. 삼국시대 건축물들이 같이 어우러졌으면 진짜 좋겠다 싶은 생각이 항상 드는이유.
제 소견으로는 민족사학자들은 가장 최근 역사인 조선의 문화와 건축물이 역대 한반도 국가들 중 가장 열화됐었다는 것을 민족주의 정서상 인정하기 싫은 거겠죠. 더군다나 백제와 신라같은 나라들의 건축문화양식은 시대적 특성상 일본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골머리를 앓았을 것입니다. 기껏 그 대책으로 나온 것이 대충 조선기와와 양식으로 대체하자였겠죠. 정말 한숨만 나옵니다.
기록을 보면 백제는 빨간색을 많이 썼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일본도 빨간 원색을 많이 쓴 듯...
그래서 기와와 건축양식은 일본, 단청은 옛 백제 단청인 건물도 있는거죠.
진심 삼국시대의 건축물들에게 조선 단청기법을 쓰지 않았으면 했는데 여기에서 자세히 표현해 주셨네요 아름답네요
맞습니다 정말 아름답네요. 하루 빨리 복원되어 눈으로 직접 보길 바랄뿐입니다 ^^
당연히 지금도 기적적으로 남아있는 일본 고대 건축물하고 가장 닮았었을 겁니다. 벡제 장인들이 지은 거니까요.
+송나라
일본의 전통악은 아직도 고려악이라고 해서 고대 한국 문화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고구려악, 신라악, 백제악, 발해악, 부여악까지 남았더군요.
문제는 관련학계에서도 왜색이니 뭐니 해서 부정한다는겁니다. 일본과 같은 방식으로 복원을 할바엔 그냥 조선단청을 채택하겠다는거죠
쇼토쿠 태자가 백제 장인을 불러다가 짓게한 건축물 시텐노지
그리고 백제 건축물의 영향을 받은것으로 강력히 추정되는 호류지 등이 있죠
일본 거 너무 참고하면 또 왜색 논란 나올 수도...
참고로 저것 역시 기록이 부족해서 작가분의 상상이 가미되었음은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저런 시도 자체는 매우 값진 것이죠.
몽골이 황룡사와 서라벌을 불태운건 너무나 큰 민족적 상실입니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현재의 몽골과 전쟁을 해야합니다
@@chikim172
ㅡㅡ 미친거네
황룡사는 없어졌지만 대신 팔만대장경이라는 문화재가 생기기도 했음.. 몽골 침입 없었으면 팔만대장경도 없었을거임
몽골보단 두번의 왜란을 겪으며 소실된게 더 컸음... 북한쪽은 모르겠는데 우리쪽은 다 털림
2차 한국전쟁 나면 북한이 공멸때문에 핵 한국에 쏘지도 못할테니까 차라리 도쿄 오사카 교토에 한방씩 날려서 좃같은쪽바리들 역사고 미래고 싹다 증발시켜버려야함
@@chikim172몽골은 지금 중국 러시아 사이에 껴서 고통받는데 한국이 개발시켜주고 도와주니까 알아서 반 식민지 자처하는 중ㅋㅋㅋ
감사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백제나 신라 건축물들이 현재남아있는 일본 고대 건물이랑 가장 비슷할거 같은데 이런걸 살린 영상물이 전혀 없더라구요. 너무 갑갑했는데 이런걸 만들어 주셔서 너무 좋습니다.
디시인사이드나 인터넷 커뮤니티에가면 복원한 자료 많이 있어요 보니깐 정말 중국과 일본과 비교해도 규모가 정말 웅장하더라고요
ㄹㅇ 분명 유적지에서 저런 색이 아니었다는 증거가 출토되었음에도 유교냄새나는 조선 양식만 주구장창 씀. 북한 그 후진국이 복원한 사찰만 봐도 우리보다 낫던데 하... 답답하다...
내가 대통령되면 망할 조선짝퉁 건물들 색칠부터 다시해야지
조선 건축물은 멋이 하나도 없습니다 한국 문화재의 꽃은 삼국시대와 고려가 역시 근본... 그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은 어디가고 죄다 조선식 한옥마을.. 에휴
조선시대보다 삼국시대가 더 화려했던 시절 같음
삼국시대 때는 조선시대와 다르게 북방식 건축으로 만들었고 쭉 뻗어있으며 깔끔하면서 간결하고 부드러우며 화려하죠.고려시대는 조선시대 건축과 삼국시대의 건축의 중간과정이라고 보면 될것 같은데요?
@Paris 고려는 포함하면 안되죠... 고려때까지만해도 다층건물도 많았고..건물에 금박장식과 금 또는 동으로만든 용&물고기 문양의 화려한 치미를 사용하였는데요... 그리고... 청자기와도 유행했고.. 드문경우로 기와 겉에 금을 입힌 금기와도 이었다고 했습니다..신라때부터이어져오던 금입택도 존재했는데.. 잦은 전쟁으로 없어졌다고 합니다.. 정확히는 몽골
오히려 조선시대가 몽골 영향받아서 북방식일듯
@@ChunSik262 조선초기에는 그런면이 좀 있었지만 건축물 하나에도 성리학의 도리를 담는다 하여 2층건물을 짓지 못하게 했고 화려한 색을 입히지 못하게 했으며 담장을 높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전 고려시대에는 담장을 거의 성높이만큼 쌓은 집들도 많았는데 권문세족이나 더 이전의 호족들은 자신들의 사병이 있었고 집안에 가신도 있었기 때문에 200채 300채씩 되는 칸이 있는 궁궐같은 집을 지어 살았다고 합니다. 이걸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사병혁파를 하면서 모든 사병을 없애버렸고 담장높이는 낮추고 집단장을 못하게 했습니다. 경복궁을 지을때도 정도전이 권위는 있데 화려하지 않게 지으라고 해서 그렇게 지었는데 사실 그것조차도 화려함을 추구했던 고려양식이 남아 있어서 조선후기 고종때 다시 지은 지금의 경복궁보다는 훨씬 화려했다고 합니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지어진 경복궁은 돈을 아끼느라 이전 경복궁보다 덜 화려하게 지었거든요. 유구국에 남은 문헌에 따르면 조선전기때 사신으로 갔던 유구국사진이 조선궁궐의 화려함을 칭송하는 부분이 있는데 특히 기둥을 감싼 용의 기상이 무척 생생했다고 나와 있는데 후기에 지은 경복궁에는 이런 모습은 없죠. 우리가 아는 한옥의 모습은 대부분이 조선후기의 모습이지요.조선전기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한옥도 꽤 화려함을 어느정도 추구했고 고려시대는 더 화려했지만 고려후반부는 전란이 너무 많아서 조선전기보다 오히려 민생의 삶이 궁핍한 관계로 그렇게까지 화려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려가 여진,거란을 다 물리치고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이루어서 동아시아평화200년을 만들었던때는 엄청나게 화려하고 부유하게 살았고 많은 민속경기, 놀이, 화려한 건축물, 무역등이 있었다고 하네요. 우리가 좋게 기억하는 고려의 모습은 바로 이 200년간의 모습인거죠. 이때의 동력으로 몽골침입때 팔만대장경도 만들수 있었으니까요.
조선때도 삼국시대 건축 복원을 조선시대 스타일로 복원 했듯이 현재 우리도 망가진건축물을 점점 신식으로 복원해나가겠죠?? 허물어져가는거보단 나으니 지켜나가기만한다면 좋겠네요 천년 후 후손들도 지금 현재 건축물보면 경이로움을 느끼겠네요
진짜 찐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모습 다 복원하면 문화가 더 융성해 질텐데 조서단청이라니 역사모르는 나도 고구려는 붉은 백단청이라 알고있는데
사실상 백제 신라 건축물은 일본 나라 교토 오사카에 있는 건축물 보면 될꺼 같습니다.
설계부터 기술자까지 도래인들이 지었는데 건축기법이나 미적인 부분이 다르지 않을껄로 보임
현재 우리나라 건축물이나 다리 등도 누가 설계했냐에 따라 엄청 다르게 보이듯이요
당장 고려 그림들 보더라도 기둥색이 붉고 기둥을 금박으로 꾸며놨는데 왜 이걸 고증안하는거지?
왜색이 어쩌고 예산이 어쩌고 단청장이 어쩌고 고증이 어쩌고 핑계는 많음 ㅋㅋ
@@물소추적-j6c다 맞는 말이긴 함 ㅋㅋㅋㅋㅋ 일단 예전 부여박물관 건물 지었을 때 왜색 논란 한 번 터졌고(물론 좀 오래됬음), 예산이야 말할거도 없고..ㅎㅎ, 단청장 같은 경우는 다 조선시대 단청을 그리는 사람들이라 기술자가 있지만 없는 그런 상황이고. 아무튼 결국 핑계 같다만 점점 더 나아지길 바라는 수밖엔 없는 듯..
당시 삼국시대 건물은 남북조시대와 당나라풍의 건물을 참고해야하는데 당나라풍의 목조건물은 일본에 가장 많이 남아있음. 실사복원하려고 해도 일본풍 따라한다고 욕먹고, 일본애들은 자기네꺼 따라한다고 지랄하고 결국 화려함은 떨어지고 유교색풍이 짙은 조선시대 건물풍을 따르게 됨.
참고로 명나라시대 건물풍이나 예술품, 의상등은 한국에 많이 남아있음. 중국애들은 자기 문화를 스스로 다 없애버리고 이제와서 옆나라들이 잘 보존해온걸 부러워만함. 현재에 와서는 오히려 조선이 유교의 오리지널화 되버림. 주자가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조선에서 죽었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게 아님. 중국애들도 명나라시대 건물이나 의상복원할때 조선풍을 따라하는데 이게 또 한국사람은 우리꺼 따라한다고 지랄함. 드라마에서 명나라시대 의상으로 흰옷에 갓쓰고 나오면 한국꺼 따라했다고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잇음
넘나 궁금했어요!사극에는 항상 조선시대 비슷하게만 나와서 ㅠㅠ 맞지 않는다고 느꼈었는데 조선이랑 몇천년 차이인데 건축기술이 같을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삼국시대 고려까지 엄청 화려했네요 ~ 조선시대 건축물보단 삼국 고려때 건축물이 더 예뻐요!
ㄹㅇ
유물은 신라가 대박이지...지금까지 당시 금으로 만든 관이 전세계에서 10개가 남아있는데 그중 6개가 신라꺼ㄷㄷ
전 세계에서 로마와 더불어 유이하게 천년의 역사를 품었던 나라이니까요..
우리 국민들이 삼국시대와 고려 양식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라요. 그렇기에
단청색이나 형태만 달라져도 왜색이니
중국색이니 하면서 항의를 하도 해서
복원 전문가들도 보수적 조선식으로
복원만 하니까 너무 한숨만 나와요 ㅜ
저대로 복원했으면 좋겠다 규모 색상 미감 전부 이제 조선건축에서 좀 벗어나자
일본이 백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는데 놀랍네요.
임진왜란만 아니였다면 우리도 중층 쌍하앙건물을 볼 수 있었을텐데...
삼국시대 건축물들이 제대로 복원 되었으면 좋겠네요.. 왜 이런거에는 세금을 안쓸까요
맞아요.
지금 사적지로만 남아있는 곳이 많은데... 그곳을 파기 힘들면 다른 절에서 저런 삼국시대 고층 목조건축을 지어서 정체성을 살렸으면 좋겠네요.
백제가 일본한태 건축기술을 알려줘서 지금일본 건축물보면 백제와 많이닮아있다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고대로 가면 갈수록 한중일 서울 비슷했다가 팩트.
와....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울줄 몰랐네요
조선시대와 거의 비슷할 줄 알았는데
놀랐어요 😲
효명세자 주도하에 그려진 동궐도라는 그림을 보면 조선시대 후기 궁궐 그림이 있는데 몇몇 건물들을 보면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건물들은 일제 시대 대화재로 불타 없어졌습니다. 이렇듯 조선시대만 해도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이 존재하였으나 전쟁과 자연재해 등으로 불타 없어졌습니다. 여러 변고 속에도 화려했던 당시 모습을 가진 건축물은 창덕궁 선정전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백제 문화단지 복원한 대목장이 백제건축물에 대한 이해가 있었는지 싶네요
관련 사료나 논문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고구려 수정궁은 축구장 16개 규모라 했는데, 전체가 궁금하군요.
공무원이나 업자들도 모르지는 않을 것인데, 왜색 논란이 많이 나올까봐 시도하기 힘든 것도 있습니다. (사실 한복, 한옥 현대화하는 분들은 한 번씩 겪는 문제) 고려는 고분에 쓰인 단청들을 보면 무늬나 색이 중국, 일본의 것과 확실히 다른 측면이 꽤 있고, 청기와를 썼었던 데다가 건축술이 꽤 독특해서 괜찮겠지만 백제, 신라는 워낙 일본과 교류가 많았던 터라 복식, 건축이 왜색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죠.
고구려 단청 빼고 과거 단청 스타일 다비슷했어요 색감도 그렇고. 초록색 베이스 까는일본 사무라이 갑옷에 쓰이는 색상이 고대에 중국 한국에서 쓰던 단청색감임. 당나라 그림하고 벽화 많이 남아있는데 색감이 또깥구요. 백제 신라의상도 녹색베이스에 레드로 포인트준거. 신라 양탄자 색감도 동일함. 백제 고구려치마 색감도 도일함
굳이 그런 생각할 필요 없을거같은데 한옥도 좀 다양해졌으면 좋겠어요 다를게없으니 별로 보러가고싶은 생각도 안드네요
맞아요 유럽 같은 경우에도 고딕 로마네스크 바실리카 로코코 있잖아요 그렇듯 시대별로 건축 양식이 다양했을텐 아쉽네요.
백제 양식이 일본 느낌이 난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고대 일본이 백제 양식을 차용해서 그런거임.
백제가 먼저임
원본 링크 없나요? 더 보고 싶습니다. 이런 영상 많이 제작해주세요
여기나오는 이미지는 모두 한류문화콘텐츠 연구소라는 네이버 카페에서 사람들이 그때 시대를 상상해서 만들어넨 그래픽 이미지에요 팩트라고 보기는 좀 그렇죠.....
신라 신선들이 사는 곳 황금의 나라로 기록 되어 있고 세공 기술력이 세계 최고였음 100원짜리 동전만한것에 금박지 미세가공 해놓은거 보면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움 지금 기술자들도 수작업으로 할수 없는 경지라고함 황궁을 황금으로 꾸미고 칠하고 했던 나라 그뒤를 이은 고려는 황금도 쓰고 수도 개경 집들은 기왓장을 옥으로 만들어서 쓴 집들이 가득했다하니 우리 선조들의 기술력과 꾸밈은 최고인듯
이런게 진짜죠 어쩐지 우리문화하면 조선시대꺼밖에 생각이 안나는데 영상 잘봤습니다 특히!!... 백제양식 확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게 확실해보이네요 섬세하고 정교한건축양식이.... 고구려 웅장하네요 중국과 맞대결하던나라 다운 건축양식,,.. 신라는
화려하신한네 좀약해보입니다,,
쥑입니다!!
가슴이 뛰네요~!!
하루 빨리 복원되었음 좋겠습니다.
백제 문화단지... 단청고증이라도 제대로 하지...
아마 문화적 이질감과 왜색 논란을 최소화하고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색만 그럴 뿐 문양은 상당히 고증이 잘 되었다 하네요.
음악이 딱 어울려요 진짜
근데 황룡사 9층탑은 몽골군 아니어도 보존못했을 가능성이 높음 ㅋㅋㅋ나무로 만들어서 관리도 힘들고 몽골군 말고도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많이나서....허..
네 맞아요 번개 맞고 불나고, 방화로 불나고 여러 변수 때문에 지금까지 원형 보존하긴 어려웠을거 같네요
음악이 참 잘 어울리군요
백제 건축물이 일본닮은건 백제껄 일본이 따라해서임
가야테마파크가면 더 웃깁니다ㅋㅋ완전 엉터리 복원.
백제의 단청이 마음에 드네요. 저런 건물이라도 있으면 좋겠네요. 고구려의 빨간 기와와 단청, 고려의 구리 기와도 좋구요. 블로그를 보니 청자 기와를 복원한 거라는데 색깔은 구리 기와네요. 청자 기와는 색이 좀 달라요 국립중앙박물관 호수 옆에 청자정인가? 하는 이름으로 복원된 것이 있죠..
사회학적으로 풀어보자면, 원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격차가 넘사벽급으로 높던 고대시대나,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시대일수록 궁전, 저택같은 지배계급을 위한 건축물들은 점점 화려해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당장 중세시대 고딕양식의 성당들이나 지금까지 남아있는 성채들과 농노들이 살았던 초가집, 아니면 당장 옆나라에서 다이묘들의 성채나 저택, 고래기름으로 매일 등을 켤만큼 돈이 많았던 어용상인, 죠닌과 농민들의 집을 비교해보면 대충 이 말이 이해되시리라 생각됩니다. 삼국시대에는 신라 골품제도가 유명하지만 백제, 고구려도 유사한 신분차별이 있었고 각자 골품에 따라 집의 크기나 장식방법에도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지배계급의 건물은 화려한데 피지배계급의 건물은 음.... 많이 낙후되었지요. 조선시대에는 지배계급의 검소함을 미덕으로 내세우던 성리학이 지배하던 시절이라 일단 이전시대의 화려함을 확 죽여버리는 단청, 기둥장식, 막새같은 장식기와의 사용이 왕궁과 사찰을 제외하고는 죄다 금지되어서 수수해보이는거지 사실 조선시대 건물들도 틀 안에서 최대한 꾸미려고 애쓴 흔적이 보입니다.
이를테면 검은색 기와는 굽는과정에서 일부러 불완전연소를 유도해서 탄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게 없으면 기와는 회색이나 신라토기같은 흙색이 나옵니다. 황토로 만들면 황토색, 붉은흙으로 만들면 붉은색. 검은색 기와도 사실 장식기법이지요. 그리고 고려시대 청자기와가 화려하기로 유명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왕궁에 한해서는 염초로 만든 유약을 처리한 청기와를 썼습니다. 지금도 창덕궁에 가면 볼 수 있고 청와대의 그 청기와입니다.
유교는 질병이다 ㄹㅇ
실제로....... 고구려는 검정색의 지붕이 많았을까요... 아니면..... 자금성 처럼.... 갈색 느낌의 지붕이 많았을까요....
매체에서는.. 워낙 고구려 ! 하면 검정색만 떠올라서요 !!!! 갑옷 부터 해서... 등등......
안학궁에서는 적색 기와가 발견되기도 했다네요.
기와가 검은건 구울때 일부러 탄화가 일어나게 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이 없으면 그냥 흙 본래의 색깔이 나오죠 신라토기같은 색깔 말입니다. 사실 이 기법이 조선시대쯤에 보편화 된거라 그 전의 기와들은 흙 고유색의 기와가 많았을겁니다. 가령 적색이나 황토색같은것 말이죠. 이렇게 초벌구운걸 유약처리까지 하고 또 구우면 고려시대 청자기와가 나오는 것이고, 염초로 처리하면 조선시대의 청기와가 나옵니다. 조선시대 청기와는 지금도 창덕궁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조선시대때가 젤 구린거같냐. 삼국시대때가 훨낫네. 정부는 이런것들좀 제대로나 복구좀 하지.
놀란게 일본애들이 확실히 우리 삼국시대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었나보네요. 일본문화재 특유의 색감이 난거 보고 한류의 힘이 참 대단하다싶습니다.
당나라가 기원인데 당나라 당시 그림 꽤 많이 남아있음 걍 똑같음
님의 사고의 순서가 거꾸로 되었습니다. 일본에 백제 건축물이 남아있으니 그것을 보고 백제 양식을 유추하는 건데요.
백제 기술자들이 가서 지은것들이 남아있으니.. 그것들중에 이 영상속 건축물이랑 비슷한것들이 있긴함 그런것보면 백제가 문화적으로 대단하긴 했을듯
ㅇㅇ 저거 다 백제때 일본으료 넘어간거임..
신라나 백제나 ㅈㄴ 화려했는데 이 망할 정부는 북조선도 안하는 조선시대 색칠공부나 ㅈㄴ 하고있고 짜증남 걍
조선이 다망쳐놨네;;
조선시대 건축물이 우리에게 익숙해서 그런거
백제가 일본에 전수해준것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아서 아직까지도 일본인들은 백제를 좋아하는데 당연히 백제 건축양식은 저딴 조선 유교식이 아니라 일본이랑 거의 비슷하거나 더 뛰어났을거임
신라도 그렇고 백제도 그렇고 ㅈㄴ 화려했던 문화인데 왜 다 조선식으로 바꿔서 후져보이게 하냐고... 답답해 죽겠다... 북한은 고구려 문화재 복원 잘했던데 북한보다도 못하냐 자존심 상하게
@@user-hf2sp5sn7c 당연히 더 뛰어나죠 일본 최초의 절도 백제가 지어줌
Tistory에연재 중이신분 맞죠?
참고로 저 백제문화단지의 건축물들은 백제라기보단 고려 후기 건축물이라고 보는게 맞을듯
현재 역사학자들이 다 물러나야 ᆢ 그리고 진실된 역사를 밝혀야 해결될듯 합니다
- 환 -
망하면.전부.부정하고.없에는것에만.몰두하고.참으로.대한민국은.알수없는.나라네요.일본처럼.후대에게.남겨두질.않네요.희한하지요.민족들이.절대로.안남겨두네요.몰라.다몰라.기록조차.안남겨두네요.너무나도.안타깝네요.다잘사는.모습이.보기싫나보네요
고구려 백색단청 칠한거 고증 잘하셨네요! 🤩😁
고려는 황제국이었고, 송나라 사신이 고려궁보고 건방질정도 였다 하였으니 장관이었을듯해요.
신라도 교역을 활발히 했고, 수도는 특권층만 살아서
화려했을듯. 실제로 신라보고 평화로운 나라다/금건물이 있고, 개목걸이가 금이었다 이런 기록도 있어서ㅋㅋ
상당히 부유했을 것 같아요. 궁에도 그게 나타났겠죠?
솔직히 고구려 브금은 드라마 연개소문이나 아니면 태왕사신기 브금으로 틀었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대조영 브금은 왠지 발해에 어울릴거 같구요
와 첨에 백제 목탑은 뭔가 티베트 느낌도 난다
티베트도 불교국가 백제도 불교국가 또 수나라, 당나라 영향도 많이 받았을테니 비슷할만도 하겠죠 ㅎ
신라는 황금지붕이라서 사치가 극에 달한다고 하더군요 조선경복궁도 지붕이 장난아니라들었는데 궁금해요 어떤느낌일지
근데 ㅈ선 건축물 말고 저런건 안 짓나요?우리나라 볼거리좀 많아지면 좋겠고 중,일에 비해 개 구려서 못버틸거 같아요
제가 겁나 부자 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게 그거에요. 있는 자료 최대한 써서 복원하고 십습니다.
하고 싶어도 옛날 모습을 몰라서 고증을 못함
근데 중국에 비교하면 안되는게, 거긴 땅덩이가 너무 커서 몇백개의 나라가 있었음. 그리고, 중앙아시아나 다른 문화권 근처에 사니까 색다른 양식들이 엄청 많고, 국가유산도 많은거임.
한국은 고립되어있고, 땅덩어리도 작아서, 국가유산이 중국에 비해 없는거임..
@@P7ejfjr ㅋㅋ ㅇㅈ 중국은 애초에 다민족국가라서
@@노야진린의바다 중국에 있는 한국땅 찾고싶음, 만주까지 되찾으면 좋을듯..ㅠㅠ
불가능이지만
일본왕은 명치시대 전에는 그냥 귀족정도의 지금 말하자면 구에 속할 정도로 적은 땅 백제촌(야마토(한반도가 만들어줌)라는 오오사카 근처 동네)에서 백제왕을 이어받아 살고 있다가.. 나라시대(한반도에서 도래, 나라 걔념을 처음으로 만들어 줌), 평안시다(평양계통이 큰 도시 건설)중국계 성 한국계성주 등이 서로 관계없이 곳곳에 그냥 도시나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인구 1000만명,2차대전 당시, 조선 1500만명 )명치시대 부터 일왕을 명세력이 띄워준 것이고, 백제가 얼마나 회려했다? 는 구라고, 물건을 잘 만들었다고는 하는데.. 일본 성이나 건축물들은 거의 1700년대부터 유럽에 대항하면서 조선의 건축방식도 배우고 급조해서, 화려하고 뭔가 서양픙이 심한 아시안 건축이 된 것이고.. 속지말 것. 고사기 애용은 한반도의 백제시대의 내용이 옮겨가서 지금은 일본발음으로 읽지만 백제에서는 그렇게 읽지 않았고, 일본 사기는 결국 역시 1400~1500년대에 지은 거짓정보 역사서로 백제계가 꾸며낸 것이 대부분이다. 이유는 서양세력의 침략에 나라를 뽐내려고 (자신들은 한국의 신의 혈통 왕가다 라고 , 무시하지 못하게 말이다) 하다. 포루투갈과 스페인이 무기를 팔면서 전국시대를 맞아 다 쑥대밭이 되어서 목조건물이 타고.. 폐허가되면서 옛 일본문화는 망가지고, 서양계 혼혈 성주가 새로 급조하고 , 일본 역사는 아수라장이었으니, 풍신수길(영국해적계통:서양의 프랜시스드레이크를 따른다고 일왕이 그 사람한테 호를 준 것이 풍신,프랜시스 수길,쥬레이키) 그때서야 일본이라는 나라가 통일을 하면서 국가가 되고 일왕 신격화가 시작되니.. 백제가 그닥 대단한,나라는 원래 아님, 혹 그렇다면 어째서 한국에서 백제에 대해 극찬을 안하고 신라가 더 문화적으로 뛰어났고, 고구려가 더 원대했고, 고조선은 인류역사의 근원이라 할까? 그 시대에는 일본이 죠몬싣대(조선의 문화로 만든 섬의 여기저기 정도였고, 원주민은 ...) 아무튼 통일이 되면서, 서양인들이 일본을 쥐락펴락도 하고, 협잡으로 왜란을 일으킴, 덕천가강(네덜란드계통)부터은 안정되고., 한일합방부터는 책도 읽는 나라가 되었고, 지금은 오히려 한국보다 책을 많이 읽게 되는데
.. 조선사람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문화가 전해진다.
어쩐지 백제라면서 조선시대 건물 닮았더라... 그리고 고구려 나오니 브금이 대조영...ㄷㄷ
영주시 부석사는 신라시대에 지어졌으니 방문해보세용 ^^
한가지 궁금합니다.
역사에 무지한 제가 알기로도
삼국시대의 건축물들이 오히려
조선시대의 건축물들보다 더 화려하고
크며, 복층구조로 이루워진 건축물들이
꽤 있었던걸로 아는데...
난방을 어떤 형태로 했는지가
궁금합니다.
물론 우리에게 온돌이란 우수한
난방 기술이 있었다고는하나,
이는 구조상으로나, 당시의 기술로는
복층, 즉 2층이나 3층에는 구현하기
불가능했을것인데, 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의 기후여건상, 삼국 모두가,
아니 가야나 탐라, 또 그 이전의
나라들인 부여나 고조선등들,
또 삼국시대 이후의 발해나 통일신라,
그리고 고려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적극적인 온돌의 적용과
그에따른 좌식문화의 정착으로
단층구조가 주를 이루던
조선시대 이전의 모든 나라들의
건축물들의 경우,
겨울철의 난방은 필수였을것이며,
더욱이 고조선이나 부여, 또 고구려나
발해등의 국가들은 만주지역 대부분과
지금의 중국 영토의 동쪽과 북쪽 영토,
그리고 러시아 영토들중 동남쪽 영토들
즉 시베리아나 사할린등의 영토들을
지배하고, 또 그 위치해있었던바,
겨울철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야
했기에, 어찌보면 온돌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난방시스템이었던바,
1층외에 2층이나 3층등의 복층 구조의
건축물들은 이 온돌을 설치하기가
거의 불가능했을텐데,
어찌 추위를 이겨냈는지, 어떤 난방
방식이나 형태였는지가 매우매우
궁금합니다.
ㄹㅇ 이쁘기는 한데 저거 상상이죠? 실제로 저렇게 지었다는 기록이 있나요?
너무 상상같은데...
충분히 그 시대 사료 수집해서 만들었습니다.
@@슈퍼너드_리보 와 님 혼자서요? 대박...
@@짓밟기 아뇨, 티스토리에서 활동하시는 분의 허락을 구하고 사진을 가져온 듯합니다.
사비도성 복원에 채색된 단청이 조선시대 단청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삼국시대 단청인건가요? 저는 이쪽 전공은 아니고 그냥 역사를 좋아하는 학생일뿐이라 저도 정확하게는 잘 몰라서 ^^ ;;
네 매우 잘 고증되었지요. 모양만. 대신 시민들의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조선시대 단청색과 유사하게 복원했어요. 색깔만요.
@@노지웅-z2r 그러니까 문양은 고증이 잘 되었는데 색깔은 조선시대 상록하단을 사용했다는 말씀이신가요?
@@커싄 네네. 당대 단청모양에 상록하단에나 쓰일 색조합을 입힌거죠.
지금 남아있는 신라시대 건축물하고 좀 다르지 않나용? 불국사라던가 그런것들 보면 조선시대랑 크게 다르다고는 못느끼겠는데//큼
지금 남아있는 건축물은 조선 후기에 복원 되어서 그럽니다. 임진왜란 때 많이 훼손 되었죠
@@슈퍼너드_리보 오 그렇군요// 신라 서라벌 모습 복원한 영상이나 사진들도 전부 조선스타일이었는데 진짜 저런 모습이었으면 진짜 화려했겠네요
정말 인간의 욕심이 한도끝도 없습니다. 전세계 "돈"이라는걸 이길수있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고구려가 당나라를 꺽고 중원의 대국이 되어야됏는데 참으로 아쉽네요 ㅠㅠ
만약 그런 쪽으로 갔다면 우리는 지금쯤 중국에 동화되어 중국인으로 살고 있겠죠.
당장 16 ~ 17세기까지만 해도 중국과는 전혀 다른 문화를 갖고 살던 여진이 청 제국을 세운 뒤에 중국에 동화되어 지금은 그들의 언어도, 풍습도 다 잃어버렸죠.
@@Kim-rw7yu 여진이 다른 문화를 갔고 있다는 점으로 보면....... 뭐.. 고구려 / 발해 등등... 우리 한민족/만주족은.. 문화가 중국과 달랐다는 점 인 가요 ???
@@jinyumin99 역사적으로 봤을 때 중원 먹은 나라들은 한번도 끝이 좋은 적이 없었음. 몽골 하나 정도만 소련 덕분에 살았고
님 혹시 신라 부분 브금좀 알려 주실수 있나요?
저도 찾아보고 싶어요! 관련 참고자료 있음 공유 부탁드려요
어떤 데이터를 근거로 만든건가요?
해당 블로그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사실 조선시대 건축물도 그리 누추한 건 아닌게 초기에 지어진 경복궁 같은건 주요전각 지붕을 고려처럼 청자지붕으로 하고 임진왜란때 전소된 경복궁을 조선후기에 엄청난 규모로 복원을 해버려서 조선도 궁궐만큼은 나쁘지 않음
하지만 단청은 조선후기가 더 화려함. 초기 조선궁전은 단청 그리는걸 별로 안 좋아해서 초기 궁전그림 보면 색이 단순함.
@@userkoreakorea 후기쯤 가야 그 세세한 문양들이 나오는 거군요?
조선시대 건물의 가장 큰 단점은 그놈이 그놈같다는것. 경복궁도 예외가 아닌게 안의 전각들도 다 비슷하게 생겨서 너무 단조롭고 그나마 화려한 경회루도 나중에 지어진건데 그거라도 없었으면 진짜 허전했겠다 싶음. 특히 광화문 넘어 넓은 입구는 건물한채, 풀한포기 안 심어져 있어서 초등학교 운동장 보는듯한 기분도 들고 외국인 들도 왜이리 썰렁하냐고 하더군요. 대체로 궁궐도 그렇고 역사적인 건물들도 다 좋긴한대 비슷하게 생겨서 내가 여기왔었나? 하는 착각도 들어서 보는 재미가 확연히 떨어져버림. 삼국시대 건축물들이 같이 어우러졌으면 진짜 좋겠다 싶은 생각이 항상 드는이유.
어느분이 모델링 했는지 알수 있을까요?
vpb192kh.tistory.com 여기 참고하시면 됩니다.
이거 원본 어디가면 볼수 있나요?
황룡사 9층 목탑은 야만적인 몽골새끼들만 아니었어도 진짜 아까움
중국도 저당시 저정도로 화려하지 않았는데..잘했지만 기둥에는 단청이 전체적으로는 안그려졌을듯요. 황제국인 고려도 저정도는 아니였거든요. 백제시대 건축물 기록을 봐도 지나치게 화려하지도,소박하지도 않았다고 해요.
제 소견으로는 민족사학자들은 가장 최근 역사인 조선의 문화와 건축물이 역대 한반도 국가들 중 가장 열화됐었다는 것을 민족주의 정서상 인정하기 싫은 거겠죠. 더군다나 백제와 신라같은 나라들의 건축문화양식은 시대적 특성상 일본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골머리를 앓았을 것입니다. 기껏 그 대책으로 나온 것이 대충 조선기와와 양식으로 대체하자였겠죠. 정말 한숨만 나옵니다.
무슨 프로그램으로 작업하신겁니까?
생각해보니 백제 건물에서 왜색이 나는건 매우 당연한듯
황룡사9층탑이 9층이 아니네요? ㅎ
일부 짤린듯 해요. 너무커서
나머지 단청같은건 벽화참고한거 같은데 황금기와는 발견된적이 없을텐데 그냥 작가의 참고사항인듯
프로그램은 뭘 쓰셨습니까?
저는 영상 제작만 했을분 프로그램 모델링에 대한 문의는 링크된 블로그에 가셔야 됩니다.
@@슈퍼너드_리보 모델링하신분이랑 서로 다른분인가 보군요.
백제것은.일본가면.볼수있네요.백제망하고.기술자들이.일본가서.백제거랑.똑같이만들어져.있네요.한국에서는.백제것.거의없네요.일본가면볼수있네요
백제는 그럴수 있다 쳐도 고구려(강화도쪽) 신라는 도대체 뭘까요?
내부도 볼수있으면 좋을텐데 아쉽네용
삼국시대 고증이 있나요. 없어요. 그냥 동화책에서. 환상속에서 그리는 그림일뿐이다
그냥 고증없으면. 맘데로 좋게 상상할수있다는거지
코끼리를 그려야 하는데 토끼를 그려놓고 이거 코끼리다 하는것보다는 나아 보이죠 적어도 코끼리 코는 회화나 역사적 유물들 사이에서 구할 수 있죠
중국남북조 양나라 건축양식이랑 많이 닮았을거같은데 . 거기서 배워온거니까
권력자 귀족들은 화려해도 일반백성은 움집에서 살았습니다
화려한 귀족들의 저택도 일반 백성들의 저택도 우리 역사의 하나이죠.
좌빨마인드 우웩
움집보다는 약간? 나은 수준. 초가집보다는 못하고..
각 시대별 사찰건축물도 부탁드립니다
단청이 문제라더니 이건 더 그냥 소설이잖아;
백제 예술적 감각 운운 하길래 괜히 기대룰 해봤다 ㅋ
백제[는 아름답고 세련됬고 고구려는 위엄이있고 신라는 백제와 비슷한데 고급스러워 보이질 않네요 ㅋ 고려는 고구려풍이 더 높고 신라풍과 섞인 형태같네요 ㅋ
어떻게 복원하셨는지 궁금 합니다.알려주세요 ㅋ
백제 무왕이 일본 쇼군인데 일본 건물하고 그냥 똑같다고 보면 됨
무왕있을 때는 쇼군이 있지도 않았는데 뭔 소리야
중국에 가면 고구리(고구려) 신라 백제 고리(고려) 건축, 유물 많이 볼 수있다.!!!왜? 대륙에 있었으니깐~!!
당호(唐胡)와 몽고(蒙古), 요금(遼金) 비적새키들만 아니었으면....
임진왜란에 왜구에 홍건적에 6.25도 잊지말라고!
이런것도 자료라니... 문화재공부좀 더하셨으면 좋겠네요
어디가 문젤까요??
관련 근거는?
작가의 상상력이 팩트가 되서는 곤란하다는
블로그 가면 제작에 관련된 자료들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 구라를 쳐?
중국에 넘쳐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