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하나님 께서 주시는--지-혜는--하나님을 믿고, 의지 하고, 지혜를 간구/찾는 자에게--주심! 이승만 건국 대통령+박정희/이명박/박근혜 대통령들--다 하나님의 자녀들 이므로--기가 막힌 지혜/아이디어/모략 으로--자유 대한민국을--이 세계의 6천년 역사상--처음 으로--맨 꼴찌 에서--일등 나라로 발전 시킨 지도자들! 물론--50% 이상의--자유 대한민국의 시민들이--미국[특히 많이]+영국 에서 보내준 기독교 선교사님들의--복음의 씨앗을 받아서--하나님의 자녀들이 된것도--필수 중의 필수!!!
제 나이 만 70입니다. 58년에 서울에 이사왔는데 60년대 초반 부산에 사시는 고모부님네로 여름에 놀러 갔었습니다. 국민학교 1,2학년 쯤 됐으라나. 서울에서 부산가는 경부선 열차에서 제일 기억나는건 목이 말라 죽겠는데 아버님께서 움료수를 안 사 주셨던 거. 그리고 창 밖에 보이는 풍경이 정말 나무하나 없는 민둥산이었던 거, 그리고 열차내 시트들이 온전한게 별로 없었던것 등등입니다. 저는 어렸을 적 기억이 대학이후의 기억보다 더 생생합니다. 친구들 이름까지. 대학교 3, 4학년 때는 식목일에는 나무 심으러 갔었지요. 모두들 국민의 당연한 도리로 생각했지요. 그만큼 당시에는 산림녹화가 전 국민의 공감사항이었습니다. 덴마크던가 달가스라는 산림녹화의 영웅이야기도 회자되었고. 아무튼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 무척 가난했었습니다.
가구마다의 목재사용에서 난방은 가을과 겨울에 집중되지만 아궁이에 불지펴야 밥먹어요 겨울엔 난방과 동시에 가능하지만 밥먹는데 쓰이는 나무가 난방에 쓰이는 양보다 더 많음. 난방은 저녁에 불 지피고 새벽에 불 지피면 끝나지만 밥은 하루 3번 지펴야되고 가마솥에 밥짓고 국 끓이려면 난방 한번하는 양이랑 비슷하거나 더 들기도 하는데 난방할 때는 밥도 같이 짓기 때문에 매일같이 산에서 나무해 올 수 있는 봄여름가을엔 쌓인 장작이 없어뵈서 소모량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였던 것이지 산에 나무하러 올라갈 수 없는 눈 쌓인 겨울에 처마밑에 쌓아놓은 장작은 봄에도 씀. 연탄 보급하면서 가스중독사고가 많이 발생했지만 음식하는데 쓰이는 나무가 확 줄어서 자연적으로 죽은 나무만해도 겨울장작 충분해지기 시작했고 따라서 식재한 나무들이 자라는데 손을 안대서 녹화사업 성공한 것임
박정희의 독재와 부정 선거 부패 등 수많은 과오로 박정희를 탐탁치 않게 보는 사람인데 나라를 푸르게 만든 것은 박정희의 공로가 크다는 것을 인정 한다 식목일을 만들고 나라를 푸르게 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인 박정희의 덕에 결국 금수 강산이 되었다 어려서 식목일에 나무 심으러 가면 힘들고 수 십 년 후에 일어날 성과라서 나무를 심으라고 하면 영 마땅치 않았으나 지금은 푸른 금수 강산을 보며 박정희의 영도력에 감탄 한다!
제가 살았던 부산 온천동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제가 어렸던 1960년대 금강공원이라고 하는 산지기가 있는 금정산을 빼고 모두 벌거숭이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료포대만 있으며 어디서든 지금의 눈썰매처럼 썰매를 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썰매타기 좋은 곳은 성지가 되어 아이들이 모이는 곳도 있었는데 지금의 부곡동 뒷산이었습니다. 그래서 눈이 잘 내리지 않는 부산에서는 겨울만 되면 동네아이들이 함께 모여 부곡동으로 원정을 갈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로 산은 헐벗었는데 지금은 썰매는 커녕 등산길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죠. 새삼 대단한 한국이란는 생각이 드네요. 잘 보고 갑니다.^^
어릴적 땔감을 구하려고 산에 나무하러 다니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당시 박통께서 독일에 가셔서 정상회담하고 돌아 와 독일의 울창한 산림이 가장 부러웠다면서 우리나라도 황폐한 산에 나무를 심어 산림녹화를 이루겠다고 선언하시더니 어느 날 갑자기 입산금지 조치를 취하고 산림감시원을 두어 산에 들어가 나무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시켜 연료 문제로 큰 고통을 느껴 박통을 어른들이 욕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당시 누구나 가난할 때라 연탄을 사서 때는 것도 형편상 힘들뿐만 아니라 수요가 폭증한 연탄 파동으로 입산금지 초기엔 하루에 가구당 2~3장씩만 살 수 있도록 제한하었기에(당시 그 이상 살 형편도 안되긴 했지요), 연탄을 사기 위해 양손에 연탄집게를 하나씩 들고 연탄가게 앞에서 줄서서 오랜 시간을 날마다 기다리던 생각이 납니다. 가난했던 우리 집이 연탄을 사느라 형편이 더 궁핍해졌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런 고통을 감내하였기에 지금 울창한 산림을 갖게 되었고, 그 같은 인기 없는 정책을 강행하는 결단을 내린 박통이 지금은 혜안을 가진 지도자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오대양 육대주에 걸친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우리나라 산림이 열대우림보다 울창하다는 생각이 들었을만큼 산이 우거졌다는 것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경제 발전보다도 산림녹화의 성공을 더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시 한국일보에서도 나무심기 운동을 한것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지...? 평당 얼마씩의 자금을 내서 고향지역에 나무를 심어주는 운동을 한국일보가 맡아서 해주었지요. 주로 이태리 포풀러나무 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고속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그렇게 심어진 이태리포풀러를 많이 봤던 기억이 납니다. 참, 일부 몇만명 빼놓고는 모두 열심히였지요. 그런 날이 다시 올수 있을지....
한국보다 훨씬 나은 토양ㆍ강우량을 가진 여러 나라들도 산림복구에 반복해서 실패하는것을 보면 그당시 그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한 지도자들과 동참한 국민들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것이었는지 새삼 놀라울 따름입니다 아마 대한민국에 고비사막을 영토로 이전해준다면 대한민국은 그 고비사막도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든지 산림이 울창한 환경으로 바꿔놓을겁니다 황사도 함께 없어지고ㆍㆍ 그러니 관리 능력안되는 중공은 고비사막을 한국에 넘겨라 중공 너네도 황사때문에 힘들잖아 중공은 녹색 페인트 신공으로 산림녹화 하고 있다네요 😂😂😂😂😂😂😂😂😂😂
1960년대 10대시절을 지금의 강원랜드가 있는 사북의 지장산기슭에서 살았습니다. 긴 겨울이면 산에 올라 갈참나무 가지를 베어 굵은 쪽은 장작을 만들고 가느다란 잔가지는 아궁이에 불을 땠습니다. 일주일내내 나무를 해다가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장작을 한평만들어서 팔아서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벌었습니다. 당시 물가가 쌀 80kg에 4000원 하던 시절이니까 동원탄좌 광부들의 한달 급여가 6~7천원하던 시절이니 16~17살 소년이 장작을 팔아서 한달에 2000원을 버는 것이 작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1966년 겨울에는 나무를 해서 파는 대신에 좀 체구가 커졌다고 화절령 1030항에 가서 무연탄 상차와 갱도에서 나오는 버럭을 치우는 난장일을 하면서 4000원을 받았습니다. 아궁이애 나무를 때던것은 광산에서 나오는 버럭사이에서 괴탄을 주워다 해결하였지요. 당시에 정선 산골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에 못가는 동무들은 집에서 농사일을 하거나 식구가 많으면 남의집에 머슴살이 갔습니다. 일좀 잘하는 상머슴의 일년 새경이 쌀 8~10가마정도 였는데. . . 광산에 가서 난장일을 하면 그정도는 되니 머슴살이가는 사람이 없어졌고 근본적으로 산골에서 산비탈에 농사짓던(화전민)이 서해안 간척지로 이주를 했습니다. (1990년경에 유아시절에 살았던 대호방조제 근처 초락도에서 만난 농부와 지난시절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는 이곳이 6.25직후에 살았던 옛고향인데 그는 강원도 화전민으로 이주했다고 하다군요, 화전민 이주지는 간척지만도 아닙니다. 만항제~화절령~두위봉을 관통하는 운탄고도 끝자락 질운산에 가면 전지현이 출연했던 엽기적인 그녀의 엽기소나무 주변의 새비재 개척민 이주지 같은것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삼국유사를 편집하여 소설을 쓴게 아닙니다. 아직도 70대 중반에 현역으로 노가다 하는 뇬네가 머리로는 잊고 싶은데 몸이 기억하는 소시적 일기장의 편린이랍니다.
늦은 가을이되면 일단 장작을 사들이고 김장을 하지요. 방에는 석유 호롱불과 30촉짜리 전등이 있었구요. 이때 시골에는 촛불과 관솔불이라는 것이 있었구요. 이것이 1970년대에 구공탄 땔감과 석유로 바뀝니다. 아궁이에는 29공탄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부억에는 석유곤로가 놓였습니다. 30촉 백열등은 아주아주 신기한 형광등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곧 얼마 안되어 1980년대에 석유곤로는 프로판개스로 바뀌기 시작했고 29공탄 아궁이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도시가스와 전기로 변합니다. 생각해보세요. 10년 주기로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느라고 허리가 휘청거렸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답니다.
중학교때까지 시골의 중학교에 다녔습니다.토요일만 되면 나무젓가락으로 만들던지 아니면 하여튼 집게을 만들어 가지고 학교에 갑니다. 2시간 마치고 전교생 전부 산으로 출동 왜 출동했을까요? 바로 송충이 잡으러갔습니다.빈 라면 봉지나 비닐봉지에 가득 잡아야 집으로 보내줬습니다.지금이나 방제을 헬기나 드론으로 하지요 그땐 몸빵이죠 몸빵 당시에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몰랐고 그저 수업 안하고 야외로 와서 퍼득 송충이 잡고 집에 가는것만 생각했죠
활착률에 대한 얘기는 안하시네요. 활착률이 100%가 되었던 건, 심은 나무에 대한 책임 소재를 담당 공무원에게 지어줘서 나무가 시들어 죽게 되면, 담당공무원이 책임을 지게 끔 하였는데, 해당 공무원은 진급에 불이익이 돌아 갈까 싶어, 심은 나무외 추가 나무를 대기해 놓고 있다가, 해당 나무가 시들어 죽게 되면, 예비로 키웠던 나무를 얾겨 심어 활착률이 100%가 되었던 것이 였죠. 예비로 비축한 나무 때문에, 실제론 100%가 넘었던 것이 였습니다. : )
실제로 활착률이 100%가 넘기도 했다는데요 왜냐면 보통 나무를 심었을때 말라죽는게 있을수 있잖아요 ? 그래서 약간더 보낸다고 해요 근데 심엇던 나무가 잘자라게 되면 여유로 보내준 나무들도 나중에 심게 되니까 실제론 100%가 넘게 됐죠 그리고 당시 박정희 정부에서는 해당지역 공무원들이 승진할려면 나무들이 잘자라게 해야 혜택이 돌아갈수 있었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임했다고 본거 같아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하나님 께서 주시는--지-혜는--하나님을 믿고, 의지 하고, 지혜를 간구/찾는 자에게--주심! 이승만 건국 대통령+박정희/이명박/박근혜 대통령들--다 하나님의 자녀들 이므로--기가 막힌 지혜/아이디어/모략 으로--자유 대한민국을--이 세계의 6천년 역사상--처음 으로--맨 꼴찌 에서--일등 나라로 발전 시킨 지도자들! 물론--50% 이상의--자유 대한민국의 시민들이--미국[특히 많이]+영국 에서 보내준 기독교 선교사님들의--복음의 씨앗을 받아서--하나님의 자녀들이 된것도--필수 중의 필수!!!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하나님 께서 주시는--지-혜는--하나님을 믿고, 의지 하고, 지혜를 간구/찾는 자에게--주심! 이승만 건국 대통령+박정희/이명박/박근혜 대통령들--다 하나님의 자녀들 이므로--기가 막힌 지혜/아이디어/모략 으로--자유 대한민국을--이 세계의 6천년 역사상--처음 으로--맨 꼴찌 에서--일등 나라로 발전 시킨 지도자들! 물론--50% 이상의--자유 대한민국의 시민들이--미국[특히 많이]+영국 에서 보내준 기독교 선교사님들의--복음의 씨앗을 받아서--하나님의 자녀들이 된것도--필수 중의 필수!!!
1962년 봄, 군사정권의 워커힐 건설 계획이 알려지자 일본의 유력 주간지들은 일제히 “한국의 군사정권이 미군 장병을 끌어들이기 위해 술과 여자와 도박판 위주의 위락시설을 짓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미국 언론도 같은 해 10월, “이 시설은 매춘굴, 카지노, 미인 호스티스 등을 갖추고 있다”고 보도했으며, 이에 미국 부인단체가 유엔군 사령부와 한국 정부에 강력 항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박정희 대통령이 애용한다.
하나 정정해 드리자면.... 돈 받아 먹으면서 바꾸다가, 다시 감찰 나온다고 하자 ㅈ될거 같다라는 생각을 하고 빠른 번식과 끝기가 있는 아카시아, 칡 등으로 온 산을 도배를 했음.... 비용도 저렴하니 빠르게 푸른 산으로 만들 수 있고 겉으로 보기에도 좋기 때문에 1석2조의 효과였음.... 그 때가 언제다....? (풉)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하나님 께서 주시는--지-혜는--하나님을 믿고, 의지 하고, 지혜를 간구/찾는 자에게--주심! 이승만 건국 대통령+박정희/이명박/박근혜 대통령들--다 하나님의 자녀들 이므로--기가 막힌 지혜/아이디어/모략 으로--자유 대한민국을--이 세계의 6천년 역사상--처음 으로--맨 꼴찌 에서--일등 나라로 발전 시킨 지도자들! 물론--50% 이상의--자유 대한민국의 시민들이--미국[특히 많이]+영국 에서 보내준 기독교 선교사님들의--복음의 씨앗을 받아서--하나님의 자녀들이 된것도--필수 중의 필수!!!
박정히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한국은 시작부터 남달랐네요
한국인들은 삐땀눈물로 뭐든지 마음먹고하면 끝짱을 내버린다.. 남에게 신세지기 싫어하는 한국이 세계은행에서 지원받았으니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을지.. 한국인들 정말 대단합니다!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이 독보적 입니다.
산림복구.
세계에서 찿아볼래야 찿을수도 없죠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하나님 께서 주시는--지-혜는--하나님을 믿고, 의지 하고, 지혜를 간구/찾는 자에게--주심! 이승만 건국 대통령+박정희/이명박/박근혜 대통령들--다 하나님의 자녀들 이므로--기가 막힌 지혜/아이디어/모략 으로--자유 대한민국을--이 세계의 6천년 역사상--처음 으로--맨 꼴찌 에서--일등 나라로 발전 시킨 지도자들! 물론--50% 이상의--자유 대한민국의 시민들이--미국[특히 많이]+영국 에서 보내준 기독교 선교사님들의--복음의 씨앗을 받아서--하나님의 자녀들이 된것도--필수 중의 필수!!!
저는 지금 67살입니다. 지금은 서울에 살지만 초등학교 때는 부산에서 살았지요. 황령산으로 나무를 심으러 가던 일이 생각 나네요. 우리 민족은 한다하면 하는 민족이 아닙니까?
제 나이 만 70입니다. 58년에 서울에 이사왔는데 60년대 초반 부산에 사시는 고모부님네로 여름에 놀러 갔었습니다. 국민학교 1,2학년 쯤 됐으라나. 서울에서 부산가는 경부선 열차에서 제일 기억나는건 목이 말라 죽겠는데 아버님께서 움료수를 안 사 주셨던 거. 그리고 창 밖에 보이는 풍경이 정말 나무하나 없는 민둥산이었던 거, 그리고 열차내 시트들이 온전한게 별로 없었던것 등등입니다.
저는 어렸을 적 기억이 대학이후의 기억보다 더 생생합니다. 친구들 이름까지. 대학교 3, 4학년 때는 식목일에는 나무 심으러 갔었지요. 모두들 국민의 당연한 도리로 생각했지요. 그만큼 당시에는 산림녹화가 전 국민의 공감사항이었습니다. 덴마크던가 달가스라는 산림녹화의 영웅이야기도 회자되었고. 아무튼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 무척 가난했었습니다.
그 삼림을 박대통령이 이루셨고, 그걸 개판으로 만들어 놓은게 X문가 민주일당이고
이제 그것도 모자라서 태양광으로 온 산을 반 대머리 山으로 만들었죠.
우리 어머니가 당시 사방 공사에 동원되었으며, 포대기로 나를 업고 산에 다니셨다고 하더군요.
어릴 적엔 집 주변의 산이 정말 벌거숭이 산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밀림 수준이 되었습니다.
아주 훌륭한
기사입니다!
잊을 수가 없다...1975년까지 아궁이에 불 때고 살았다.
1975년부터 연탄으로 집 난방을 해결했음. 그것도 좀 사는집은
몇백장씩 쌓아놓고 살았는데, 어린 시절의 나는 연탄 2장 사와 그러면
가서 두장 사들고 집에 오곤 했다. 참 엄청 발전했어~~
한국인은 참으로 잘났다, 잘났어.
우리나라.조상님들은.참지혜로워네요..조상님들이.그렇게.하셔기에.지금우리들이.편안한.생활을하고있네요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의.위인들께..감사드려요
조상님들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렇게 한 거죠.
무슨 조선시대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세대에도 경험한 일들입니다.
식목일에 학교가서 나무 심으러 동원되었으니 말입니다. 물론 우리네 부모님 세대는 직접 사방 공사를 다니셨죠.
@@asfreeas할아버지 할머니는
조상이 아닌가요?
뭔말인지
가구마다의 목재사용에서 난방은 가을과 겨울에 집중되지만 아궁이에 불지펴야 밥먹어요 겨울엔 난방과 동시에 가능하지만 밥먹는데 쓰이는 나무가 난방에 쓰이는 양보다 더 많음.
난방은 저녁에 불 지피고 새벽에 불 지피면 끝나지만 밥은 하루 3번 지펴야되고 가마솥에 밥짓고 국 끓이려면 난방 한번하는 양이랑 비슷하거나 더 들기도 하는데 난방할 때는 밥도 같이 짓기 때문에 매일같이 산에서 나무해 올 수 있는 봄여름가을엔 쌓인 장작이 없어뵈서 소모량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였던 것이지 산에 나무하러 올라갈 수 없는 눈 쌓인 겨울에 처마밑에 쌓아놓은 장작은 봄에도 씀.
연탄 보급하면서 가스중독사고가 많이 발생했지만 음식하는데 쓰이는 나무가 확 줄어서 자연적으로 죽은 나무만해도 겨울장작 충분해지기 시작했고 따라서 식재한 나무들이 자라는데 손을 안대서 녹화사업 성공한 것임
박정희의 독재와 부정 선거 부패 등 수많은 과오로
박정희를 탐탁치 않게 보는 사람인데 나라를 푸르게 만든 것은
박정희의 공로가 크다는 것을 인정 한다
식목일을 만들고 나라를 푸르게 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인 박정희의 덕에
결국 금수 강산이 되었다
어려서 식목일에 나무 심으러 가면 힘들고 수 십 년 후에 일어날 성과라서 나무를 심으라고 하면
영 마땅치 않았으나 지금은 푸른 금수 강산을 보며 박정희의 영도력에 감탄 한다!
제가 살았던 부산 온천동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제가 어렸던 1960년대 금강공원이라고 하는 산지기가 있는 금정산을 빼고 모두 벌거숭이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료포대만 있으며 어디서든 지금의 눈썰매처럼 썰매를 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썰매타기 좋은 곳은 성지가 되어 아이들이 모이는 곳도 있었는데
지금의 부곡동 뒷산이었습니다. 그래서 눈이 잘 내리지 않는 부산에서는 겨울만 되면 동네아이들이 함께 모여 부곡동으로 원정을 갈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로 산은 헐벗었는데 지금은 썰매는 커녕 등산길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죠. 새삼 대단한 한국이란는 생각이 드네요. 잘 보고 갑니다.^^
어릴적 땔감을 구하려고 산에 나무하러 다니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당시 박통께서 독일에 가셔서 정상회담하고 돌아 와 독일의 울창한 산림이 가장 부러웠다면서 우리나라도 황폐한 산에 나무를 심어 산림녹화를 이루겠다고 선언하시더니 어느 날 갑자기 입산금지 조치를 취하고 산림감시원을 두어 산에 들어가 나무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시켜 연료 문제로 큰 고통을 느껴 박통을 어른들이 욕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당시 누구나 가난할 때라 연탄을 사서 때는 것도 형편상 힘들뿐만 아니라 수요가 폭증한 연탄 파동으로 입산금지 초기엔 하루에 가구당 2~3장씩만 살 수 있도록 제한하었기에(당시 그 이상 살 형편도 안되긴 했지요), 연탄을 사기 위해 양손에 연탄집게를 하나씩 들고 연탄가게 앞에서 줄서서 오랜 시간을 날마다 기다리던 생각이 납니다.
가난했던 우리 집이 연탄을 사느라 형편이 더 궁핍해졌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런 고통을 감내하였기에 지금 울창한 산림을 갖게 되었고, 그 같은 인기 없는 정책을 강행하는 결단을 내린 박통이 지금은 혜안을 가진 지도자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오대양 육대주에 걸친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우리나라 산림이 열대우림보다 울창하다는 생각이 들었을만큼 산이 우거졌다는 것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경제 발전보다도 산림녹화의 성공을 더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안녀 ~~~ㅇ
오늘도 늦었지만
선 좋아요 댓글
후 감상
왜냐고?
재미주의 이니까 ㅋㅋㅋ
아임에프 세계발전 은행 우리도.만은도움주는 나라되서 다행 임다
우리나라가 크게 발전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당시 사방공사 하면 미국원조 해준 밀가루 배급 받았습니다
또 아카시아 씨앗도 훑어서가면 배급 줬고요...참으로 먹고살기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잊었던 사실을 다시 되집어주셔서 기분 좋게 보고 갑니다....그랬었지요.
7~80년 동네 야산만 가도 먹거리 천지엿는데 지금은 아무리 찿아도 하나도 안보임오니요
아는 사람만 아는, 한국의 농림 축산 부분은 정말 외국에서 보면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발전을 이루었죠. 다 갈아 넣은 결과...
재미있었습니다. 좋아요!!!!!!!!!!
당시 한국일보에서도 나무심기 운동을 한것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지...? 평당 얼마씩의 자금을 내서 고향지역에 나무를 심어주는 운동을 한국일보가 맡아서 해주었지요. 주로 이태리 포풀러나무 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고속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그렇게 심어진 이태리포풀러를 많이 봤던 기억이 납니다. 참, 일부 몇만명 빼놓고는 모두 열심히였지요. 그런 날이 다시 올수 있을지....
어느 종자는 홍천을 민둥 산으로 만들었는데. 평산 망둥이로 살고있는데 아시나요?
그 예날 아궁이의 결함 구조로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자가 나왔을 웃지못할 서글픈일이 있었음.ㅋㅋ
장작구입 적지 않은 금액 부담이 되기도.ㅋㅋ
한국보다 훨씬 나은
토양ㆍ강우량을 가진
여러 나라들도
산림복구에 반복해서 실패하는것을 보면
그당시 그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한
지도자들과 동참한 국민들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것이었는지
새삼 놀라울 따름입니다
아마 대한민국에 고비사막을
영토로 이전해준다면
대한민국은 그 고비사막도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든지
산림이 울창한 환경으로
바꿔놓을겁니다
황사도 함께 없어지고ㆍㆍ
그러니 관리 능력안되는
중공은 고비사막을 한국에 넘겨라
중공 너네도 황사때문에 힘들잖아
중공은 녹색 페인트 신공으로
산림녹화 하고 있다네요
😂😂😂😂😂😂😂😂😂😂
이 영상 내용 예전에 올렸던 것 같은데요
우리나라 사람이 머리가 똑똑하니 훗날을 생각해 제대로 된 대처법을 생각했죠
저작권 때문에 삭제한 영상 리폼해서 업로드한거에요
잼 하 이뽀여
오호
1960년대 10대시절을 지금의 강원랜드가 있는 사북의 지장산기슭에서 살았습니다. 긴 겨울이면 산에 올라 갈참나무 가지를 베어 굵은 쪽은 장작을 만들고 가느다란 잔가지는 아궁이에 불을 땠습니다. 일주일내내 나무를 해다가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장작을 한평만들어서 팔아서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벌었습니다. 당시 물가가 쌀 80kg에 4000원 하던 시절이니까 동원탄좌 광부들의 한달 급여가 6~7천원하던 시절이니 16~17살 소년이 장작을 팔아서 한달에 2000원을 버는 것이 작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1966년 겨울에는 나무를 해서 파는 대신에 좀 체구가 커졌다고 화절령 1030항에 가서 무연탄 상차와 갱도에서 나오는 버럭을 치우는 난장일을 하면서 4000원을 받았습니다. 아궁이애 나무를 때던것은 광산에서 나오는 버럭사이에서 괴탄을 주워다 해결하였지요.
당시에 정선 산골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에 못가는 동무들은 집에서 농사일을 하거나 식구가 많으면 남의집에 머슴살이 갔습니다. 일좀 잘하는 상머슴의 일년 새경이 쌀 8~10가마정도 였는데. . . 광산에 가서 난장일을 하면 그정도는 되니 머슴살이가는 사람이 없어졌고 근본적으로 산골에서 산비탈에 농사짓던(화전민)이 서해안 간척지로 이주를 했습니다. (1990년경에 유아시절에 살았던 대호방조제 근처 초락도에서 만난 농부와 지난시절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는 이곳이 6.25직후에 살았던 옛고향인데 그는 강원도 화전민으로 이주했다고 하다군요, 화전민 이주지는 간척지만도 아닙니다. 만항제~화절령~두위봉을 관통하는 운탄고도 끝자락 질운산에 가면 전지현이 출연했던 엽기적인 그녀의 엽기소나무 주변의 새비재 개척민 이주지 같은것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삼국유사를 편집하여 소설을 쓴게 아닙니다.
아직도 70대 중반에 현역으로 노가다 하는 뇬네가 머리로는 잊고 싶은데 몸이 기억하는 소시적 일기장의 편린이랍니다.
사북 지장산 현 메인카지노입니다 동원탄좌에서 지장산사택을지어서 직원들이 주거했습니다. 참오레전 추억이 생각납니다
늦은 가을이되면 일단 장작을 사들이고 김장을 하지요. 방에는 석유 호롱불과 30촉짜리 전등이 있었구요. 이때 시골에는 촛불과 관솔불이라는 것이 있었구요. 이것이 1970년대에 구공탄 땔감과 석유로 바뀝니다. 아궁이에는 29공탄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부억에는 석유곤로가 놓였습니다. 30촉 백열등은 아주아주 신기한 형광등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곧 얼마 안되어 1980년대에 석유곤로는 프로판개스로 바뀌기 시작했고 29공탄 아궁이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도시가스와 전기로 변합니다. 생각해보세요. 10년 주기로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느라고 허리가 휘청거렸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답니다.
잼하 재미주의님 휴일인 오늘도
영상을ㅎㅎ 잘 보고갑니다
나도만70세로서 부산거주하며 중딩때 모든학교가 할당제로 산에 나무심고 가을에는송충이 잡고하였지요 그렇게가꾸고 한 산들이 이앞의 정권에서는 태양광발전한다고 온산의 나무들을 베어내어 산시태가 많이발생하였자요 특히 호남자방이 더심하였지요 그리하여 중국산 태앙광설비들이 산시태에 붕괴되어 2차오염까지 발생시겼지요 어덯게 가꾸고 키운나무들인데 참 한심합니다 후손들이 알기나할까요 박정희 대통령이 그립습니다
잘보고가용
리키태 소나무는 왜 빼요? 그 박사님 성함이 기억안나는대 그분 공이 컷죠
4월 5일 식목일에는 학교로 끌려나가 단체로 산에 가서 나무 심었다
그냥 거저 되는 일은 없다
안녕!
유한켐벌리....이 강산을 푸르게 푸르게...
😊
중학교때까지 시골의 중학교에 다녔습니다.토요일만 되면 나무젓가락으로 만들던지 아니면 하여튼 집게을 만들어 가지고 학교에 갑니다. 2시간 마치고 전교생 전부 산으로 출동 왜 출동했을까요? 바로 송충이 잡으러갔습니다.빈 라면 봉지나 비닐봉지에 가득 잡아야 집으로 보내줬습니다.지금이나 방제을 헬기나 드론으로 하지요 그땐 몸빵이죠 몸빵 당시에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몰랐고 그저 수업 안하고 야외로 와서 퍼득 송충이 잡고 집에 가는것만 생각했죠
활착률에 대한 얘기는 안하시네요. 활착률이 100%가 되었던 건, 심은 나무에 대한 책임 소재를 담당 공무원에게 지어줘서 나무가 시들어 죽게 되면, 담당공무원이 책임을 지게 끔 하였는데, 해당 공무원은 진급에 불이익이 돌아 갈까 싶어, 심은 나무외 추가 나무를 대기해 놓고 있다가, 해당 나무가 시들어 죽게 되면, 예비로 키웠던 나무를 얾겨 심어 활착률이 100%가 되었던 것이 였죠. 예비로 비축한 나무 때문에, 실제론 100%가 넘었던 것이 였습니다. : )
❤
박정희 대통령의 산림복구 산업 덕을 우리는 누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활착률이 100%가 넘기도 했다는데요
왜냐면 보통 나무를 심었을때 말라죽는게 있을수 있잖아요 ? 그래서 약간더 보낸다고 해요
근데 심엇던 나무가 잘자라게 되면 여유로 보내준 나무들도 나중에 심게 되니까 실제론 100%가 넘게 됐죠
그리고 당시 박정희 정부에서는 해당지역 공무원들이 승진할려면 나무들이 잘자라게 해야 혜택이 돌아갈수 있었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임했다고 본거 같아요
다른 개도국에서는 실패했어도 우리는 성공.! 이런게 가능했던게 바로 대단한 리더쉽 ! 바로 박정희 대통령 ! 여러 오점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우리나라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 리더쉽의 대통령 임에는 틀림없다
국민성이 뛰어난 것이지... 저 당시는 들개 한마리 잡아다놓고 대통령 시켰어도 저만큼은 했습니다.
아니 진짜 우리 대한민국은 국가란 이런것이다라는 표본이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표본.
박정희 대통령이 정부차원에서 추진한 사업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업적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공무원이 수시로 나가 화전민 상황을 체크했고, 박대통령 지시에 의해 화전민을 지원했습니다.
이렇게 고생해서 복구한 산림은
우리 정치하는 놈들과 기득권에 의해 불타고 있었음 땅투기를 위해 강제로 산을 태워야 개발할수 있으니깐 이게 나라꼴임
박정희대통령의 훌륭한 리더쉽. .
100%였던 이유는 별다른 게 없나보죠??
앗싸 1 등
재미주의님 가장중요한것을 빼먹었네요 현명하고 청렴한지도자 덕이죠 실패한나라 뒤에는부패한 지도자와관리들이 있고요 국민들은 어느나라라도 열심히합니다 대한민국민만 열심히 하는게아니고요
청렴하다고 할 수는 없죠. 80년대까지 대한민국은 부정부패로 악명 높은 나라였습니다. 지금의 베트남 수준의 평가를 받았죠.
[세나박]
세상에 나쁜 박정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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Ду жо 쓰니까 😂
ㅎ, ...당연하제, 김일성과 호형호제 하는 사이인뎅???!!!!!!!!!!!!!!!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아부지ㅡ 입산금지 위반하고 솔잎 긁어다 불피웠다가 끌려가서 ㄷ지게 맞고 . . .
막내동생 ㅡ 얼음어는 방에서 자다가 얼어죽었다
녹화사업 박정희각하 만세
어쩌면 한국전쟁으로 전국이 쑥대밭이 된 것이 모든 것을 리셋하고 새출발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을 수 있다고 생각되네요.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이유 중 하나가 신대륙에 정착한 이주민들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새출발했기 때문이 것인 것처럼요.
남북한 합쳐서 300만명이나 사망 또는 실종된 전쟁이 새출발의 기반이라구요?
그리고, 신대륙에 아무것도 없었다구요? 인디언이라고 불렸던 원주민들은 아무것도 아닌가요?
조선시대를 유지했다면 ㅋㅋㅋ 아직도 북한꼴이겠죠
툭하면 일제탓 하는데, 조선 말기 방문한 서양 외교관, 선교사, 여행가 들도 죄다 조선엔 산들이 죄다 벌거숭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그보다 수백년전 하멜 표류기에도, 남한산성에 나무가 없어서 십마일 넘게 가야만 땔감을 구할수 있었다고 기록해놨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하나님 께서 주시는--지-혜는--하나님을 믿고, 의지 하고, 지혜를 간구/찾는 자에게--주심! 이승만 건국 대통령+박정희/이명박/박근혜 대통령들--다 하나님의 자녀들 이므로--기가 막힌 지혜/아이디어/모략 으로--자유 대한민국을--이 세계의 6천년 역사상--처음 으로--맨 꼴찌 에서--일등 나라로 발전 시킨 지도자들! 물론--50% 이상의--자유 대한민국의 시민들이--미국[특히 많이]+영국 에서 보내준 기독교 선교사님들의--복음의 씨앗을 받아서--하나님의 자녀들이 된것도--필수 중의 필수!!!
다 고박정희 대통령님의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세종대왕님이 보다 더 나은 최고의 국가 지도자 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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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봄, 군사정권의 워커힐 건설 계획이 알려지자 일본의 유력 주간지들은 일제히 “한국의 군사정권이 미군 장병을 끌어들이기 위해 술과 여자와 도박판 위주의 위락시설을 짓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미국 언론도 같은 해 10월, “이 시설은 매춘굴, 카지노, 미인 호스티스 등을 갖추고 있다”고 보도했으며, 이에 미국 부인단체가 유엔군 사령부와 한국 정부에 강력 항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 그 대신 박정희 대통령이 애용한다.
산림하면 박정희의 식목정책인데 이걸 쏙 빼고 말하는 재미주의
좀 실망
하나 정정해 드리자면....
돈 받아 먹으면서 바꾸다가, 다시 감찰 나온다고 하자 ㅈ될거 같다라는 생각을 하고 빠른 번식과 끝기가 있는 아카시아, 칡 등으로 온 산을 도배를 했음.... 비용도 저렴하니 빠르게 푸른 산으로 만들 수 있고 겉으로 보기에도 좋기 때문에 1석2조의 효과였음....
그 때가 언제다....? (풉)
옛날에 나왔던 내용인대 또 우려먹내 적당히 하세요 사골유튜버님
고생고생하며 기적같은 일를 해놓고 태양광 한답시고 나무를 베어버렸으니....ㅉㅉ
박정희가 이루어논 업적이니, 좌빨들이 얄미워서 아름드리 나무들 배어버리고,
중국에서 수입한 태양광판으로 뒤덮어논거지.
오날 조선의 청산은 다 박통 덕이다...그리운 박정희
ㅋㅋ, ...게 조~까는 소리, 더불어 참으로 어리석은 소리. ...어리석다의 시작은 비유해서, 생각 자체가 존만 하다는 이야기!!!!!!!!!
이런게 모두다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이 계셨기 때문이지요
ㅋㅎㅎㅎ, ...게 좉~까는 소리, 제발 공부 좀 하그라 이 모지라!!!!!!!!!!!!!!!!
내가 박정희 까는게 전문인데, 이건 잘한거라고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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