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과 이 세상의 작가이신 하나님이 그 분의 뜻대로 이루어가시지만 그 안에 디테일들은 저희가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자유의지를 주셨음을 봅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신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야기가 더욱 깊고 넓게 흘러갈 수 있도록 열심히 저의 역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리고 저의 기도가 제 마음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것으로 응답해주신다는 것에 너무 안심이 됩니다. 가장 선한 길로 이끌어주실 주님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God is in control of our prayers. My prayers for my needs can be dangerous for others. I’ve never thought about that. Prayers can be dangerous. Today, I learned a different perspective of prayers. 참 감사하죠..? 진짜 주님이 내 기도를 다 들어주셨다면… 무서웠을것 같기도 해요.. 어렸을때 저는 공룡이 대고 싶다고 기도했던것 같은데.. ㅎㅎㅎ
세상은 ‘기도 무용론’을 주장하며 그럴싸하게 기도가 의미없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변함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조금만 더 이해한다면 오히려 우리를 위해 기도의 응답권이 하나님께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텐데 말이죠. 나같이 작은 자에게도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시고, 그로인해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할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기도의 효력도 응답권도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이 신앙에서 큰 안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 이유는 연약한 사람이 아닌 전지전능 하신 분이신 우리의 기도를 쥐고 계신다는 것은 그 응답이 무엇이기에 우리에가 가장 좋은 것을 허락하신다는 것이 약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연극 plot 안에서 내가 디테일을 정하고 애드립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다.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시고 존엄성을 주셨다. 행동의 결과는 나의 몫이지만 내 기도에 대한 결과의 몫은 오직 하나님의 권리이시며 그분의 몫이다. 하나님의 연극에 동참함으로 나는 하나님의 스토리를 함께 써나가고 역사를 써나간다. 이 모든 게 전지전능하셔서 모든 것을 완벽히 해내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그렇지 않은 나에게 주신 특권이라는 것을 다시 느낀다. 노동=기도라는 건, 하나님께 기도로 구하며 나 또한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구함과 실천이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는 것인데 내가 원한다고 밀고 나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쓰는데 동참하는 것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을 더 알아가야 한다.
어짜피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시고, 악을 막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내 안에 찾아올 때가 있다. 겉으로는 전적인 하나님께 의지하는것 같지만, 사실, 나의 진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기 싫어서, 책임을 지기 싫어서 일때가 더 많다. 그렇기에 기도를 하기 싫을때, 필요하지 않다고 느낄때, 나의 동기를 잘 보아야한다. 기도를 하지 않는 순간, 나의 존엄과 존재 가치가 깎이는 일이다.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주셨고, 동역자로 부르셨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때에, 그안에서 마음껏 누리게 하셨다. 하나님안에서 너무 높아질 이유도, 너무 낮아질 이유도 없다. 매 삶의 순간마다 기도를 놓치 않도록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 삶과 이 세상의 작가이신 하나님이 그 분의 뜻대로 이루어가시지만 그 안에 디테일들은 저희가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자유의지를 주셨음을 봅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신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야기가 더욱 깊고 넓게 흘러갈 수 있도록 열심히 저의 역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리고 저의 기도가 제 마음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것으로 응답해주신다는 것에 너무 안심이 됩니다. 가장 선한 길로 이끌어주실 주님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God is in control of our prayers. My prayers for my needs can be dangerous for others. I’ve never thought about that. Prayers can be dangerous. Today, I learned a different perspective of prayers.
참 감사하죠..? 진짜 주님이 내 기도를 다 들어주셨다면… 무서웠을것 같기도 해요.. 어렸을때 저는 공룡이 대고 싶다고 기도했던것 같은데.. ㅎㅎㅎ
세상은 ‘기도 무용론’을 주장하며 그럴싸하게 기도가 의미없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변함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조금만 더 이해한다면 오히려 우리를 위해 기도의 응답권이 하나님께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텐데 말이죠.
나같이 작은 자에게도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시고, 그로인해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할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기도의 효력도 응답권도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이 신앙에서 큰 안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 이유는 연약한 사람이 아닌 전지전능 하신 분이신 우리의 기도를 쥐고 계신다는 것은 그 응답이 무엇이기에 우리에가 가장 좋은 것을 허락하신다는 것이 약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연극 plot 안에서 내가 디테일을 정하고 애드립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다.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시고 존엄성을 주셨다. 행동의 결과는 나의 몫이지만 내 기도에 대한 결과의 몫은 오직 하나님의 권리이시며 그분의 몫이다. 하나님의 연극에 동참함으로 나는 하나님의 스토리를 함께 써나가고 역사를 써나간다. 이 모든 게 전지전능하셔서 모든 것을 완벽히 해내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그렇지 않은 나에게 주신 특권이라는 것을 다시 느낀다. 노동=기도라는 건, 하나님께 기도로 구하며 나 또한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구함과 실천이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는 것인데 내가 원한다고 밀고 나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쓰는데 동참하는 것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을 더 알아가야 한다.
어짜피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시고, 악을 막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내 안에 찾아올 때가 있다. 겉으로는 전적인 하나님께 의지하는것 같지만, 사실, 나의 진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기 싫어서, 책임을 지기 싫어서 일때가 더 많다. 그렇기에 기도를 하기 싫을때, 필요하지 않다고 느낄때, 나의 동기를 잘 보아야한다. 기도를 하지 않는 순간, 나의 존엄과 존재 가치가 깎이는 일이다.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주셨고, 동역자로 부르셨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때에, 그안에서 마음껏 누리게 하셨다. 하나님안에서 너무 높아질 이유도, 너무 낮아질 이유도 없다. 매 삶의 순간마다 기도를 놓치 않도록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