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최순호 감독은 1981년 U-20 월드컵 이탈리아 전에서 4:1로 이긴 것과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골을 넣은 걸로 유벤투스에서 어떻게든 영입을 하려고 했을 때 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랬으면 차범근 감독님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할 때처럼 유소년 축구를 기반으로 한 기본기부터 피지컬 강화의 중요성을 좀 더 빠르게 깨달았을 거고, 더 나아가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가 우리나라에도 접목 및 이식이 되었을지도 모르죠. 특히 카테나치오의 경우 우리나라는 세계 무대에서 예나 지금이나 언더 독의 위치인 만큼 말이죠.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 비롯 한국선수들은 모두가 달리기 체력을 기반으로한 달리기축구 스타일인데 단한명 최순호만 유독 남미 메시 스타일 ...키가 큰데도 몸의 유연성을 이용 화려한 플레이는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 등 아시아 축구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선수 였다 .... 복싱으로 말하면 문성길 유명우 비롯 힘체력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 아닌 장정구같은 변칙스타일 이라고 할까
정확히 4:1로 이겼고, 당시 최순호가 에이스 넘버였던 10번을 달고 뛰어 2골 2도움을 기록했죠. 저도 유벤투스로 갈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차범근 감독님이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할 때 유소년 축구를 기반으로 한 기본기부터 피지컬의 중요성을 좀 더 빨리 전파했을 거고,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가 접목 및 이식이 되었겠죠. (우리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세계 무대에서는 언더 독의 위치이니...)
최순호 선수는 87년 프로축구(프로야구 본따서 주말 2연전이 시행된 한편 홈팀이 흰색-원정팀이 유색 유니폼을 입었지만 주말 2연전은 선수들 줄부상 등 문제점이 생겨 1년 만에 폐지됐으며 다음 해부터 홈팀이 유색 - 원정팀이 흰색 유니폼을 입음) 후반기부터 9번에서 14번으로 변경했으며 최순호 선수(185CM)와 마찬가지로 장신(191CM) 공격수였던 차상해 선수가 38번(92년 포철 이적 후 담)에서 14번으로 교체한 93년 10골로 정규시즌 최다골을 기록했지만 다음 해 동계훈련 도중 손목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여 그 해 황선홍 라데 선수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겨 정규 3골(2골은 헤딩)에 그쳤으나 같은 해 9월 27일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친선경기 1차전에서 동점골과 역전골을 기록했는데 이 경기 동영상이 있으면 ㅋㅂㅅ박물관에 올려주십시오.
손흥민 처럼 관리받고 체계적으로 지원받아 키워졌더라면 한국 역사상 축구 재능만으로만 본다면 단연 탑! 저 유연한 중심 이동과 몸 놀림, 상대를 부셔버리는 패스와 골 결정력을 보라. 전성기 때인 86~90년, 특히 86년 멕시코 이탈리아전에서의 부드러운 움직임과 1:1 개인돌파 능력, 발재간은 압권. 정말 비운의 축구선수였다. 프로야구에서는 최동원 선수와 함께. 요즘에 태어났더라면 유소년 축구를 거쳐 유럽 명문팀에서 성장하고 당대에 내노라하는 명 선수가 되고도 남았을텐데.
최순호선수 국내 프로축구에서 많이 못뛰었어요. 1980년대에는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거의 대부분을 합숙으로 보냈고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때문에 국내 프로구단들은 의무적으로 선수들을 차출을 해주다시피했고 최순호선수는 프로에서 1년에 열게임도 채 못뛰다시피 했습니다. 지금의 개념과 완전히 달라요. 그리고 케이리그라는 명칭은 1996년이던가 그때부터 시작했습니다.
박종환이가 1983 청소년축구에서 4강에 올랐다!!그러면 다음대회까지 연임을 시키는게 당연한것인데 축협이것들이 그렇게 안했다!!그리고7년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감독을 앉히는게 정상이다!!하지만 축협이 더러운 작자들이 인맥 지연 학연으로 밀려나서 이회택이가 감독직을 맡았지 ㅠㅠ 아니 1983청소년축구에서 한국최초고 세게가 놀라고 붉은악바란 칭호도 이때 생겨났는데 그러면 당연히 1990성인 월드컵감독으로 했어야햇다!!그다음1994년미국월드컵도 김호가하고 점점 이름값과 인막에 박종환은 밀리다가 결국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감독직으로 발탁돼기 시간문제였다!1하지만 1996 아시안 컵에서 이란한테 6--2로 대패!!이때 알리다에이 란 걸출한 이란 스타에서 4골이나 먹혔다 그레서 공항에 귀국했는데 축협간부들 한명도 안나왔다는 후문이 있었고 그후로 박종환은 월드컵 과는 인연이 없다!!
최순호가 유럽에 진출하지 못한 것이
한국축구사에 가장 안타까운 일로 기록되고 있다, 유럽 빅리그에서 충분히 통하고도
남을 선수였다~
최순호 선수가 아주 골을 계속 잘 넣었다 화이팅 대한민국 선수팀^^^
고정운 → 레버쿠젠에서 오퍼가 왔지만 일화구단 반대로 진출무산
최순호 → 유벤투스에서 오퍼가 왔지만 진출무산
이 두 분은 해외 무대에서 충분히 기대가 되었는데 두고두고 아쉬움.
어째 저때가 지금보다 더 잘하는것 같냐..
게다가 최순호는 명불허전
포항이 이따위로 막지만 않았어도
차범근의 뒤를 잇는 월클 선수가 되었을텐데..
2:55 조병득키퍼 박종환 감독에게 빠따맞을까봐
이미 네트에 공이 박혔는데도 끝까지 쫒아가서 최후의 오버액션..ㅋㅋ
진짜 최순호 감독은 1981년 U-20 월드컵 이탈리아 전에서 4:1로 이긴 것과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골을 넣은 걸로 유벤투스에서 어떻게든 영입을 하려고 했을 때 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랬으면 차범근 감독님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할 때처럼 유소년 축구를 기반으로 한 기본기부터 피지컬 강화의 중요성을 좀 더 빠르게 깨달았을 거고, 더 나아가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가 우리나라에도 접목 및 이식이 되었을지도 모르죠. 특히 카테나치오의 경우 우리나라는 세계 무대에서 예나 지금이나 언더 독의 위치인 만큼 말이죠.
최순호 선수가 박지성, 이영표 또래 정도로만 태어났어도 커리어가 많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 비롯 한국선수들은 모두가 달리기 체력을 기반으로한 달리기축구 스타일인데 단한명 최순호만 유독 남미 메시 스타일 ...키가 큰데도 몸의 유연성을 이용 화려한 플레이는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 등 아시아 축구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선수 였다 .... 복싱으로 말하면 문성길 유명우 비롯 힘체력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 아닌 장정구같은 변칙스타일 이라고 할까
옛날에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vs 해외 팀 (연령대표팀 또는 클럽팀) 경기도 가끔 했었지요.
가장 기억나는 것은 대한민국 국대 vs AC밀란, 유벤투스였습니다.
94-95시즌때 말씀이시군요..
96년5월24, 27일 일겁니다. 왜냐면 2002 월드컵 유치를 놓고 일본과 경쟁하던때에 막판에 국민들의 열기를 과시한다는 목적으로 경기를 가졌죠. 1군이 온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장 핵심 선수들이라 할만한 바조, 웨아, 비알리는 왔었습니다
차붐이 파워와 스피드의 축구라 분데스리가에 적합했다면 섬세한 기술이 돋보이는 최순호가 유벤투스 갔다면 이태리리그에서 잘했을텐데 아쉽네요
시대를 잘못 타고난거죠
이미 최순호는 이 경기 2년전 멕시코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이탈리아 정규 A대표팀을 상대로
엄청난 득점을 했었던...,
당시 BBC 선정 멕시코 월드컵 베스트 골 20에서 박창선 감독의 월드컵 역사 상 첫 골과 함께 순위권에 올랐죠. (박창선은 13위, 최순호는 10위)
@@강규영-y7q 으따 아재 베스트 골 순위까지 기억 하는 분 나말고 또 있었네 ㅋㅋㅋㅋ
조별예선X 조별본선O
@@루키-g1x 조별리그부터가 본선입니다 예선은 월드컵 진출국을 가리기 위해 지역별로 치루는 용어입니다.
@@루키-g1x 아시아 최종예선이라고 하고 대한민국 10회 연속 본선(조별리그) 진출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해외진출을 못해서인지 전성기도 너무 빨리 지나갔고 은퇴도 빨랐음. 찐팬이었는데 넘 안타까웠음.
저 잠비아팀 저때 당시 아프리카 최강이었습니다. 그런데 몃년후 비행기추락참사로 국가대표 전체가 사망하죠
와...진짜 안타깝네요...어떻게 선수 전원이 사망을 하다니...
ㅎㄷㄷ..
서울올림픽 본선에서도 메달권진입은 못했지만 이탈리아 올림픽대표 4대0 으로 뭉갰죠
1981년 호주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한국은 이탈리아를 3:0 인지 3:1 로 이겼음. 그때도 최순호가 박살냈지. 이런 선수가 군대문제와 한국의 소속사 몽니로 해외진출 못했음.
정확히 4:1로 이겼고, 당시 최순호가 에이스 넘버였던 10번을 달고 뛰어 2골 2도움을 기록했죠. 저도 유벤투스로 갈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차범근 감독님이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할 때 유소년 축구를 기반으로 한 기본기부터 피지컬의 중요성을 좀 더 빨리 전파했을 거고,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가 접목 및 이식이 되었겠죠. (우리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세계 무대에서는 언더 독의 위치이니...)
현2024 울국대 감독님 최순호다
[ㅋ ㅂ ㅅ 박물관] 1997 MLB 박찬호 첫 완투승 경기 시카고컵스 vs LA다저스 요청합니다.
어쩜 스트라이커로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마지막 선수가 아닐까...
유벤투스 불발만 아니었으면 지금 최순호는 차범근보다 더 회자되는 선수일지도...
와 최순호가 요즘에 있었다면 이피엘 득점왕 했겠네. 대단한 선수였구나
추억의 명경기👍👍👍
Choi Soon-ho is probably the most gifted player in Korean soccer history. Too bad his career didn't really pan out...
어째 요즘보다 훨 잘하는듯...
실력은 월클이였음
당시 86월드컵에서 너무 큰 상대를 겪은 우리국대가 미국,멕시코는 압도하고 동구의 체코, 유고와 맞짱뜨던 시절임.
최순호 선수 시절 월드클래스에 근접한 레벨이었네.
청소년들 한테 이긴건 인정하지말아야지 아무리 이태리라도
월드 클래스 근접은 너무 갔고, 포텐은 충분했죠. 단지 해외진출이 매우 어려웠던 시대라서 결국 우물안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 했던 아까운 재능.
유벤투스가 탐냈던 재능 ㄷㄷ
베르바토프와 폼이 매우 비슷하네요
유럽에서 뛰었으면 월드클래스로 인정받았을 실력이라고 봅니다. 역대 한국축구선수 중 최고 재능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선수죠.
와 최순호는 그냥 혼자 클래스가 다르네ㅋㅋ
요즘 국대에서 손흥민 보는것 같네
저 신장에 100m11초대라는 준족!^^
야구선수 이대형하고 달리기했으면 접전이었을듯한~^^
한국축구 역대 유일한 장신이면서 부드러운 플레이가 가능한 선수. 황선홍 우성용 최용수 같은 장신 스트라이커 대부분 골만 넣는 타입이면 최순호는 도움도 많이 해서 특별함
최순호 선수는 공부를 꽤 잘한걸로 알고 있어요. 광운대학교애 체육 특기생이 아닌.학력고사로 들어간걸로 알고 있거든요. 전기공학과에요. 거기서 전기 기사 딴걸로 알고 있어요
최순호 첫골뭐냐? 깜놀
최순호 선수는 87년 프로축구(프로야구 본따서 주말 2연전이 시행된 한편 홈팀이 흰색-원정팀이 유색 유니폼을 입었지만 주말 2연전은 선수들 줄부상 등 문제점이 생겨 1년 만에 폐지됐으며 다음 해부터 홈팀이 유색 - 원정팀이 흰색 유니폼을 입음) 후반기부터 9번에서 14번으로 변경했으며 최순호 선수(185CM)와 마찬가지로 장신(191CM) 공격수였던 차상해 선수가 38번(92년 포철 이적 후 담)에서 14번으로 교체한 93년 10골로 정규시즌 최다골을 기록했지만 다음 해 동계훈련 도중 손목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여 그 해 황선홍 라데 선수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겨 정규 3골(2골은 헤딩)에 그쳤으나 같은 해 9월 27일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친선경기 1차전에서 동점골과 역전골을 기록했는데 이 경기 동영상이 있으면 ㅋㅂㅅ박물관에 올려주십시오.
라데 오랫만에 들어보네요.... 라데 데니소비치.... 브레멘인가... 이동국 이적했을때 함께 뛰었다고 하던데... 그이후는 잘 모르겠네요...
@@아름다운세상을찾아서 2003년부터 알 와흐다에서 뛰다가 2004년 은퇴하셨습니다.
몇 안되는 최고 중의 한명이지요. 최고는 손흥민이구요.
A대표가 20세 이하팀 상대로 앞선다고 하늘 다 가진 듯 그렇게도 좋아할 때였죠 우리 수준이
차붐 다음 레전드가 최순호가 됐어야 하는데 너무 아쉬움.
손흥민 처럼 관리받고 체계적으로 지원받아 키워졌더라면 한국 역사상 축구 재능만으로만 본다면 단연 탑!
저 유연한 중심 이동과 몸 놀림, 상대를 부셔버리는 패스와 골 결정력을 보라.
전성기 때인 86~90년, 특히 86년 멕시코 이탈리아전에서의 부드러운 움직임과 1:1 개인돌파 능력, 발재간은 압권.
정말 비운의 축구선수였다.
프로야구에서는 최동원 선수와 함께.
요즘에 태어났더라면 유소년 축구를 거쳐 유럽 명문팀에서 성장하고 당대에 내노라하는 명 선수가 되고도 남았을텐데.
옛날 아나운서들이 중계도 잘함
서기원 원종관 조춘제 지금 그런 아나운서들이 없고
참 그시절이 우리 나라에 스포츠 전성기 아쉽네요
그전에 임택근 아나운서님
20세 이하팀이었군요. 제가 어릴 때도 우리가.이탈리아를? 이제야 진실을 알게 되네요
돌아가신 원종관 캐스터 목소리 네요.
지난번에 이동국 선수가 본인 입으로 나는 케이리그 레전드 다 라고 발언 한적이 있는데
최순호 선수시절 보니깐 이시대에 최순호 선수가 선수로 뛰었으면 이동국 선수는 레전드 랑은 거리가 안되네요
ㅋㅋ
원조 수퍼소닉~!저 피지컬에 100m 11초4즈음!상대 선수를 주력으로 압도~
시대를 잘못태어난 테그니션... 최순호...
32살에 대한민국 국대로서 94미국월드컵 갔으면 엄청났을텐데....아쉬움
최순호가 우리나라 역대 재능 탑3 안에 들어간다고 했더니 얼라들한테 존나 공격받았다. 솔직히 차범근 최순호는 우리나라 시스템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선수가 나온거다..
성인대표가 20세이하 청소년팀을 불러서 이긴게 자랑스러운가요?
왜 차범근만 부각되는지 안타깝다.
최순호가 우리나라에 전무후무했던 스트라이커의 스탠다드였는데.
그러게요
아무리 봐도 손흥민보다 최순호가 훨 더 나은 선수같음 흥민이 개인기 없고 투박하고 헤딩 못하고 동남아 선수도 못 제치던데 최순호는
정말 축구도사네 못하는게 없어 유벤투스 갔어야 했는데
최상국 골 전에
슈팅은 이태호가 한거인디 ㅎ
잠비아전 첫골… 요즘 사라진 브라질 쌈바축구가
저기서 나오내~ㅋㅋ
I want South Korea vs kuwait Olympics Los Angeles 1984
유벤투스 갔어야….
성인 국가 대표팀하고 20세 이하 이태리 대표하고 대결한다는게 말이 되나.....
아나운서 원종관 캐스터..
잠비아 선수들은 누가 누군지 구별을 못 하겠네.
어렸을때는 신동이었고 더 자라지 못한 선수일지도? K리그 총 몇경기 몇골이었는지요? 최순호 선수가 세계적인 선수였다명 K리그 기록이 엽기였을텐데....KBO 선동열처럼... 80~90년대초 축구 최고 스타는 차범근 최순호. 김주성이었죠 ㅋ
최순호선수 국내 프로축구에서 많이 못뛰었어요. 1980년대에는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거의 대부분을 합숙으로 보냈고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때문에 국내 프로구단들은 의무적으로 선수들을 차출을 해주다시피했고 최순호선수는 프로에서 1년에 열게임도 채 못뛰다시피 했습니다.
지금의 개념과 완전히 달라요. 그리고 케이리그라는 명칭은 1996년이던가 그때부터 시작했습니다.
최순호 선수는
역대 최고의 선수
입니다
다른말 필요 없습니
다
한 10년 앞선 축구
를 했다고 보면 됩니다
누구누구 어쩌꾸
저쩌구 말이 필요
없습니다
펠레 보다 더 잘했
다고 봅니다
최순호 커리어가 얼마나 기괴하냐면 A매치 출전경기수랑 소속팀 출전경기수가 비슷함 ㅋ
축구 스타일이 체형이나 포지션 보면 베르캄프 같네
지단처럼 공을 쉽게 찬다
요즘 애들은 최순호를 황희찬 아래로 평가하더라 ㅋㅋㅋ
대표팀 대 이태리 20세 이하???세상에
A대표팀이 u20이랑 하네...
프랑스 🇫🇷 로데스에서뜀
이탈리아가 저렇게 무너질 팀이 아닐텐데 연령별 대표팀 제일 낮은 팀이 온 건가..? 아님 무슨 대학선발팀 뭐 이런건가..? 88년이면 이탈리아가 이미 월드컵을 세번이나 우승한 이후일텐데 우리가 5:1로 이긴건 좀 이해가 안 가네요ㅎ
이탈리아 20세이하팀이라고 자막 나왔는데요
난 당신이 더 이해가 안 감ㅋ
U21 소속 세리에c에 포함된 선수들이었습니다
ruclips.net/video/sE1JN4Y5Ry4/видео.html
우리나라GK 특징이 있네 박스 밖으로 나오는것 조병득 최인영 김병지
한국국대가ㅋㅋ이태리 20세이하 데리고 하네ㅡㅋㅋ
저때가 훨신잘했지
내가 산 증인 일명 박스컵
당신 서울운동장 이화면은 잠실
박종환이가 1983 청소년축구에서 4강에 올랐다!!그러면 다음대회까지 연임을 시키는게 당연한것인데 축협이것들이 그렇게 안했다!!그리고7년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감독을 앉히는게 정상이다!!하지만 축협이 더러운 작자들이 인맥 지연 학연으로 밀려나서 이회택이가 감독직을 맡았지 ㅠㅠ 아니 1983청소년축구에서 한국최초고 세게가 놀라고 붉은악바란 칭호도 이때 생겨났는데 그러면 당연히 1990성인 월드컵감독으로 했어야햇다!!그다음1994년미국월드컵도 김호가하고 점점 이름값과 인막에 박종환은 밀리다가 결국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감독직으로 발탁돼기 시간문제였다!1하지만 1996 아시안 컵에서 이란한테 6--2로 대패!!이때 알리다에이 란 걸출한 이란 스타에서 4골이나 먹혔다 그레서 공항에 귀국했는데 축협간부들 한명도 안나왔다는 후문이 있었고 그후로 박종환은 월드컵 과는 인연이 없다!!
우리나라 월드컵 실점의 3분의1은 수준낮은 골키퍼때문이었지! 변호영 조병득 ㅋㅋ
조병득은 월드컵과 인연이 없었어요. 오연교와 최인영이 무슨 이유에선지 조병득을 밀어내고 한국팀을 말아먹었음
1986년은 오연교였습니다. 1990년 골키퍼 에이스는 김풍주였는데 갑자기 최인영이 등장해서 의아했었죠. 그 최인영이 1994년 완전히 말아먹었죠.
차범근 처럼 유럽무대를 누비고 있어야할 선수인데..딱히 타이틀 의미도 없는 국내친선대회를 뛰고있는 재능낭비ㅜㅜ
저당시엔 무지 그 자체라서
개회식을 올림픽 같이 했네
조규성보다 낫노 ㅋㅋ
외국 청소년대표팀과 시합 하는건 도대체 무슨 개념?
유벤투스에서 구애를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