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바이러스 백신 비유는 비슷한거 같지만 적절치 못한거 같습니다 다만 부처는 궁설이요 조사는조 직설이다는 말씀처럼 중국으로 선이 넘어 오면서 조사님들께서 단박에 직설로 가르친것입니다 조사님들 대단하십니다 본론을 바로 가르키셨는데 그 방식이 참 기묘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시간이 색성향미촉법의 압축파일 같아서 시공을 초월한 마음이 허공을 날다가 어느날 그저 무심히 알아지는것 과 같습니다. 눈먼거북이가 바다에서 구멍난 통나무에 머리를 집어넣는것과 같이 그러한것 입니다. 그것은 표현할수 없는 넓은 우주공간에서 딱 맞는 열쇠가 키를 만나는 것이며 그 열쇠는 만능키로 여러 자물쇠를 여는것과 같습니다. 역사는 수많은 지혜를 남겨놓았기 때문입니다. 어떤상이든 고정된 상이 아니며 보살상이든 부처상이든 모든 선지자 상이든 예언자든 성인이든 이미 있어온 에너지를 스캔해 쓰고 있는것이며 부처님께서는 이미 수많은 부처가 마음안에 든것이며 보살들도 모두 알아차리고 그것을 보고 만나는 자마다 곧바로 부처가 될것이다는 것을 아시고 모든것은 자신안에 있으며 알아차림으로 생겨난 것은 사라지지 않고 선업도 악업도 사라지지 않으며 공기중 에너지로 남을것이며 그들은 남자도 아니요 여자도 아니요 귀신도 아니요 신도 아니요 그저 깨달은자 이니라 한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으로 부터 오는 마음이며 바람인가 구름인가 말인가 뜻인가 모두 공한것에서 쉼없이 오고 가고 다만 시와 때가 있을뿐이며 그것을 모르고 가는이가 대부분인것을 보고 깨닫지 못하는 중생심이라 하여 자신이 누구라도 깨닫지 못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중생은 깨닫을수 있습니다. 깊은 성찰과 자연에너지를 살피는 공부를 시키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것 뿐입니다. 십대가 학교를 다니고 남학교 여학교가 따로 있는것은 십대는 서로의 설자리가 따로있으며 군자는 군자의 법을 바로익힐 때이며 남자는 하늘의 도를 처음배울때이며 여자는 땅의도를 처음 배울 때이며 그 처음을 떼면 하늘은 잉태를 할수 있는 연못을 만날수 있고 그때는 하늘이 정한다 하는것 입니다.
실재란 보통, 언어를 통한 인식으로서, 유형(有形)의 우주에 표출된다. 간화선의 화두란, 실재에 대해 인식이 가지는 긴장을 최대화 하여, 실재와 인식의 간극을 없애는 방법이랄 수 있다. 선교일치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치이며, 인식이 실재에 밀려서는 턱뼈를 진화시키는 각고의 노력으로 언어와 개념을 발전시킨 인류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지만, 아직 연구되지 않은 깊은 실재에 있어서는, 그 인식과 언어가 간화선에서의 문지방 넘는 태크닉으로서는 부족하다 할 수 있다. 탄허는 유불선 회통의 입장에서, 넓은 견해에서는, 음양이 곧 진여-생멸인 뜻으로 해석한 것이 있다. 그렇다면 일심이 곧 무극인데, 탄허도 인정한 백봉 거사는 음양과 무극도 넘어선 소식을 찾아야 한다 말했다. 탄허는 범인이 알 수 없는 경지의 선사이시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백봉이 좀 더 원리주의적이라 볼 수 있다. 백봉은 무자화두를 들고 각했고 그의 제자들에게 권하기도 했지만 그를 간화선주의자라 보기는 힘들다. 당-송이 선의 황금기였다해도 화두 해설서 까지 나온 현재의 상황에서 현대 한국인에게 중세 중국 문화 스타일의 언어와 사유 맥락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애매하다고 할 수 있다. 뭐 어느 시대나 개인은 자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긴 하다. Blackpink나 BTS 를 위시한 최신 kpop 아이돌 노래만 듣는 나로서는 나보다 어린 애들의 트로트를 좋아하는 취향이 도통 이해가 안가는 것이다. 최근 경허가 사라지며 남긴 글이라던가 한암의 오도송 관련 경허와 나눈 후일담의 글에선 현대 한국 불교의 근간을 이루는 두 사람이, 현재 한국에서 간화선을 교조화하고 있는 분위기와는 좀 결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들의 문맥과 행간은 자각적인데다, 현대문학이 다루는 비극적 생에 대한 낭만적 태도마저 발견되는 점에서 모더니티를 획득했다 보여진다. 경허와 한암은 선사로서의 빛나는 성취와는 별개로 개인의 삶에서 스러져 가며 침잠한 경험을 한 자들이다. 그것은 한국의 현대사와 관련되어 있으며, 삶의 알레고리에서 두 사람은 삶으로 온전히 돌아온 것이었다. 탄허가 간화선을 인정했다 함은 그러한 의미를 짚어봐야 한다. 이는, 실제로는, 고중근대는 물론 많은 현대의 선사들 전체에 해당한다. 탄허의 강의를 들으면 언어 기호에 있어 화용론의 입장에서 대단히 자각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kalrahari3748 불교계에도 친중 맥락이 있거나 아니면 가끔 일뽕들이 보이는 게 문제, 이미 한국 사상사의 새벽 원효가 일심종지로 다 터 닦아 놓은 바탕에 육조가 들어온 것이지 육조외에 그 밑에 소리지르기만 하는 중국 어린애들이 한게 뭐가 있을까? 육조도 中이라는 제국주의 뙤놈들에 있어서는 오랑케다. 일본은 불교를 받아들일만한 원리적인식이 없으며 그 실체는 야만이다. 수행을 해 본적도 없으며 법을 모르는 파리들은 에프킬라가 답.
사는것은 별것도 아니라 다만 좋을것도 싫을것도 없는 무망한 것이며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자신의 내면에서 내는 중도심을 알아야 여자를 만나도 사건사고로 인한 법에 저촉되지 않을것이며 사건사고로 천둥과 우뢰같은 형벌을 당하지 않게되니 하늘같은 덕망과 지혜를 얻을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자리를 박차고 도망하거나 땅의도를 모르는 여자를 만나 얽메이거나 폭언폭행 도박에 치우치거나 술에 취하거나 하는 하늘이 거부하는 여러일로 일생을 살게될 것이다.
수백년 간화선에서 남은 건 '할' 하나밖에 없다. 간화선은 법 공부를 하는 스님들에겐 유용한 방편일지 모르나 먹고사니즘에 빠진 일반 대중에겐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무엇. '할'을 알고 모르는 데서 깨달음을 얻는 게 아니다. 화두란 생각을 끊고(위빠싸나), 생각이 끊어진 자리에 머무르게(사마타) 하기 위한 트릭에 불과. 근기가 중급인 사람은 왜 '할'을 했는지에 대해 깊은 의심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일체의 생각이 순간적으로 끊어지는 상태에 도달한다. 생각, 곧 육근 육식에 의존한 상이 사라진 그 자리, 그리하여 일체 고가 사라지는 자리를 보게 되고, 이 자리가 공의 자리임을 깨닫게 된다. 근기가 상급인 사람은 '할' 일성에 단박에 일체의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보게 되고, 공의 자리임을 깨닫게 된다. 이 자리는 "몰라" 하는 순간 들어갈 수 있는 자리다. 물론 고수에게 해당하는 심법. 나처럼 근기가 하급인 사람은 설령 '할' 소리에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보고도 본 지를 모르며, 설령 봤다 해도 그게 뭔 자리인지도 모른다. 단지 멍한 상태에 머물다 깨어날 뿐이다. 한데, 바로 멍 때리는 자리가 바로 그 자리다. 의식이 명료한(지혜로운) 상태에서 똑똑히 보는가, 의식이 흐리멍텅한(무지한) 상태에서 보는가의 차이다. 전자는 얼씨구나 하고 그 자리에 들어가 앉는데, 후자는 뒤통수 한 대 맞은 기분으로 끝난다. 한데 문광스님은 보기 드문 학승이시네요. 슬쩍 슬쩍 방편도 알려주시고... 루시드 드림(자각몽)이란 영화를 보면, 저 문광스님이 말씀하신 "몰라" 하는 그자리에 들어가면 알 수 있게 되는 현상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허가야~? 어린 것들을 상대로 희롱하고 횡포를 부리니 재미있냐~? 2005년에 도덕성 판단 심리검사가 있다더라. 왜 하느님이 당신같은 이를 굳이 보내셔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실까 궁금했다. 너나 나나 누구나 사는 게 다 고통이니 하느님을 원망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예수님을 비롯한 많은 성인들이 겪었던 그 처절한 고통을 생각해보면서 위로를 받는다. 사는 게 고통이니 해탈하고 열반에 들겠냐고 물으면, 나는 인간 세상이 좋다. 하느님의 위대하심도 이 인간세상이 아니면 어찌 알겠는가~?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소명이고 과제이며 나처럼 하찮은 존재가 하느님의 큰 뜻을 어찌 헤아려 그 도구로서의 역할과 소임을 할 수 있을지는 모흐겠으나, 여하튼 이 인간 세상은 아름답다. 처절하게 아름다운 이들과 함께 위대한 하느님의 큰 뜻을 이룰 수 있다면 그 도구로서 더 이상 뭘 더 바라겠느냐~?
감사합니다 ‥
솔직하고 인간적이네~!
한국불교의 보배십니다~!
“向上一路: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 千聖不傳 向上一路: 1,000명의 성인도 전할 수 없으며 언어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최상의 경지.” 참으로 훌륭하신 문광스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스님 항상 알기쉽게 가르쳐주셔서 요즘 스님강의하신거 찾아보고 있습니다ㆍ감사합니다()
스님 법문잘듣고 있습니다
참선을 매년하면서도
목말라있던 법문을 듣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항상좋은 법문잘부탁드립니다
스님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세요
문광스님법문듣는데빠저있습니다너무강사합니다
우리나라 국운이 돌아온듯합니다 저로서는 부처님믿은지 40년만에
속시원한법문 조금씩 알아
열심히 믿고 공부하고 싶습니다 어리석은 저의같은불자에게는단비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디성불하소서
목소리가 속속 들어옵니다 너무 좋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나는 이어려운 강의를 잘알아 듣지도 못하면서 왜 자꾸 듣는지 모르겠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 같은 느낌이다
근데 찾아서 듣는다ㅋㅋㅋㅋ
감사합니다 스님~~가려운곳을 시원하게 효자손처럼 긁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화엄경 강의도 잘 듣고있습니다.
스님 표정 에서
공이 느껴집니다
문광스님.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_()_
스님 영상 전부 찾아봅니다
스님 법문은 가슴에 쏙쏙 박힙니다
탄허스님의 향상일로는 다석선생님의 말씀, 사람이 머리를 하늘로 두고 있는 까닭과 똑 같네요.
문광스님ᆢ
오늘도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조사선사님들 너무나 훌륭하십니다 ~~고맙습니다_()()()_
요즘 문광스님 강의듣느라 뉴스도 끊었읍니다.
저두요🙏🙏
문광스님 강의 항상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열강 시리즈 감사합니다
형상일로 다음회 기대합니다
기다리던 영상이 와서 너무 기쁜 마음으로 시청합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매우 유익하고 재미있는 강의였습니다. 감사 또 감사합니다!!!
귀한 법문 늘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바이러스 백신 비유는 비슷한거 같지만 적절치 못한거 같습니다 다만 부처는 궁설이요 조사는조 직설이다는 말씀처럼 중국으로 선이 넘어 오면서 조사님들께서 단박에 직설로 가르친것입니다 조사님들 대단하십니다 본론을 바로 가르키셨는데 그 방식이 참 기묘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이제야 스님의 법문이 귀에 들어오네요 감사합니다 🙏
🙏🙏🙏
나무약사불 나무일광보살 나무월광보살
옴바아라 아니바라 닙다야 사바하
결국 내마음이 본디부처인데 여기저기 물어볼거있냐 이거군요...
정치유튜브는 몇만? 먹방유튜브는 몇십만?
노래유튜브는 배백만이 수두룩한데, 다이아몬드같은 이런 귀한 유튜브 시청자는 고작 몆천이라니? 헐
공감 합니다
금강보석을 모르고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봅니다
나무관세음보살 합장
세상을 통째로 과거현재미래 를 보게 되면 싸움의 연속입니다.
선을 찾고서야 지우개가 자신안에 있어 나쁜 역사를 지울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수 있음 입니다.
고요한 마음으로 세상을 볼수도 있었는데 악한 자신 선한자신에 얽메어 중도에선 자신을 찾지 않고 살았던 것입니다.
시간이 색성향미촉법의 압축파일 같아서 시공을 초월한 마음이 허공을 날다가 어느날 그저 무심히 알아지는것 과 같습니다.
눈먼거북이가 바다에서 구멍난 통나무에 머리를 집어넣는것과 같이 그러한것 입니다.
그것은 표현할수 없는 넓은 우주공간에서 딱 맞는 열쇠가 키를 만나는 것이며 그 열쇠는 만능키로 여러 자물쇠를 여는것과 같습니다.
역사는 수많은 지혜를 남겨놓았기 때문입니다. 어떤상이든 고정된 상이 아니며 보살상이든 부처상이든 모든 선지자 상이든 예언자든 성인이든 이미 있어온 에너지를 스캔해 쓰고 있는것이며
부처님께서는 이미 수많은 부처가 마음안에 든것이며 보살들도 모두 알아차리고 그것을 보고 만나는 자마다 곧바로 부처가 될것이다는 것을 아시고 모든것은 자신안에 있으며 알아차림으로 생겨난 것은 사라지지 않고 선업도 악업도 사라지지 않으며 공기중 에너지로 남을것이며 그들은
남자도 아니요
여자도 아니요
귀신도 아니요
신도 아니요
그저 깨달은자 이니라
한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으로 부터 오는 마음이며 바람인가 구름인가 말인가 뜻인가 모두 공한것에서 쉼없이 오고 가고 다만 시와 때가 있을뿐이며 그것을 모르고 가는이가 대부분인것을 보고 깨닫지 못하는 중생심이라 하여 자신이 누구라도 깨닫지 못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중생은 깨닫을수 있습니다.
깊은 성찰과 자연에너지를 살피는 공부를 시키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것 뿐입니다.
십대가 학교를 다니고 남학교 여학교가 따로 있는것은 십대는 서로의 설자리가 따로있으며 군자는 군자의 법을 바로익힐 때이며 남자는 하늘의 도를 처음배울때이며 여자는 땅의도를 처음 배울 때이며 그 처음을 떼면 하늘은 잉태를 할수 있는 연못을 만날수 있고 그때는 하늘이 정한다 하는것 입니다.
실재란 보통, 언어를 통한 인식으로서, 유형(有形)의 우주에 표출된다.
간화선의 화두란, 실재에 대해 인식이 가지는 긴장을 최대화 하여, 실재와 인식의 간극을 없애는 방법이랄 수 있다.
선교일치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치이며, 인식이 실재에 밀려서는 턱뼈를 진화시키는 각고의 노력으로 언어와 개념을 발전시킨 인류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지만,
아직 연구되지 않은 깊은 실재에 있어서는, 그 인식과 언어가 간화선에서의 문지방 넘는 태크닉으로서는 부족하다 할 수 있다.
탄허는 유불선 회통의 입장에서, 넓은 견해에서는, 음양이 곧 진여-생멸인 뜻으로 해석한 것이 있다.
그렇다면 일심이 곧 무극인데, 탄허도 인정한 백봉 거사는 음양과 무극도 넘어선 소식을 찾아야 한다 말했다.
탄허는 범인이 알 수 없는 경지의 선사이시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백봉이 좀 더 원리주의적이라 볼 수 있다.
백봉은 무자화두를 들고 각했고 그의 제자들에게 권하기도 했지만 그를 간화선주의자라 보기는 힘들다.
당-송이 선의 황금기였다해도 화두 해설서 까지 나온 현재의 상황에서
현대 한국인에게 중세 중국 문화 스타일의 언어와 사유 맥락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애매하다고 할 수 있다.
뭐 어느 시대나 개인은 자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긴 하다.
Blackpink나 BTS 를 위시한 최신 kpop 아이돌 노래만 듣는 나로서는
나보다 어린 애들의 트로트를 좋아하는 취향이 도통 이해가 안가는 것이다.
최근 경허가 사라지며 남긴 글이라던가 한암의 오도송 관련 경허와 나눈 후일담의 글에선
현대 한국 불교의 근간을 이루는 두 사람이, 현재 한국에서 간화선을 교조화하고 있는 분위기와는 좀 결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들의 문맥과 행간은 자각적인데다, 현대문학이 다루는 비극적 생에 대한 낭만적 태도마저 발견되는 점에서 모더니티를 획득했다 보여진다.
경허와 한암은 선사로서의 빛나는 성취와는 별개로 개인의 삶에서 스러져 가며 침잠한 경험을 한 자들이다.
그것은 한국의 현대사와 관련되어 있으며, 삶의 알레고리에서 두 사람은 삶으로 온전히 돌아온 것이었다.
탄허가 간화선을 인정했다 함은 그러한 의미를 짚어봐야 한다.
이는, 실제로는, 고중근대는 물론 많은 현대의 선사들 전체에 해당한다.
탄허의 강의를 들으면 언어 기호에 있어 화용론의 입장에서 대단히 자각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kalrahari3748
불교계에도 친중 맥락이 있거나 아니면 가끔 일뽕들이 보이는 게 문제,
이미 한국 사상사의 새벽 원효가 일심종지로 다 터 닦아 놓은 바탕에 육조가 들어온 것이지
육조외에 그 밑에 소리지르기만 하는 중국 어린애들이 한게 뭐가 있을까?
육조도 中이라는 제국주의 뙤놈들에 있어서는 오랑케다.
일본은 불교를 받아들일만한 원리적인식이 없으며 그 실체는 야만이다.
수행을 해 본적도 없으며 법을 모르는 파리들은 에프킬라가 답.
사는것은 별것도 아니라 다만 좋을것도 싫을것도 없는 무망한 것이며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자신의 내면에서 내는 중도심을 알아야 여자를 만나도 사건사고로 인한 법에 저촉되지 않을것이며 사건사고로 천둥과 우뢰같은 형벌을 당하지 않게되니 하늘같은 덕망과 지혜를 얻을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자리를 박차고 도망하거나 땅의도를 모르는 여자를 만나 얽메이거나 폭언폭행 도박에 치우치거나 술에 취하거나 하는 하늘이 거부하는 여러일로 일생을 살게될 것이다.
방이든 할이든
귀가 먹는구나...
소리를 보게 되면 조용하구나
열반은 적정하니
소리를 보고 맛도 보고 냄새도 보니 조용하구나
수백년 간화선에서 남은 건 '할' 하나밖에 없다.
간화선은 법 공부를 하는 스님들에겐 유용한 방편일지 모르나 먹고사니즘에 빠진 일반 대중에겐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무엇.
'할'을 알고 모르는 데서 깨달음을 얻는 게 아니다.
화두란 생각을 끊고(위빠싸나), 생각이 끊어진 자리에 머무르게(사마타) 하기 위한 트릭에 불과.
근기가 중급인 사람은 왜 '할'을 했는지에 대해 깊은 의심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일체의 생각이 순간적으로 끊어지는 상태에 도달한다.
생각, 곧 육근 육식에 의존한 상이 사라진 그 자리, 그리하여 일체 고가 사라지는 자리를 보게 되고, 이 자리가 공의 자리임을 깨닫게 된다.
근기가 상급인 사람은 '할' 일성에 단박에 일체의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보게 되고, 공의 자리임을 깨닫게 된다.
이 자리는 "몰라" 하는 순간 들어갈 수 있는 자리다. 물론 고수에게 해당하는 심법.
나처럼 근기가 하급인 사람은 설령 '할' 소리에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보고도 본 지를 모르며, 설령 봤다 해도 그게 뭔 자리인지도 모른다.
단지 멍한 상태에 머물다 깨어날 뿐이다. 한데, 바로 멍 때리는 자리가 바로 그 자리다.
의식이 명료한(지혜로운) 상태에서 똑똑히 보는가, 의식이 흐리멍텅한(무지한) 상태에서 보는가의 차이다.
전자는 얼씨구나 하고 그 자리에 들어가 앉는데, 후자는 뒤통수 한 대 맞은 기분으로 끝난다.
한데 문광스님은 보기 드문 학승이시네요.
슬쩍 슬쩍 방편도 알려주시고...
루시드 드림(자각몽)이란 영화를 보면, 저 문광스님이 말씀하신 "몰라" 하는 그자리에 들어가면 알 수 있게 되는 현상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허가야~? 어린 것들을 상대로 희롱하고 횡포를 부리니 재미있냐~? 2005년에 도덕성 판단 심리검사가 있다더라.
왜 하느님이 당신같은 이를 굳이 보내셔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실까 궁금했다. 너나 나나 누구나 사는 게 다 고통이니 하느님을 원망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예수님을 비롯한 많은 성인들이 겪었던 그 처절한 고통을 생각해보면서 위로를 받는다. 사는 게 고통이니 해탈하고 열반에 들겠냐고 물으면, 나는 인간 세상이 좋다. 하느님의 위대하심도 이 인간세상이 아니면 어찌 알겠는가~?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소명이고 과제이며 나처럼 하찮은 존재가 하느님의 큰 뜻을 어찌 헤아려 그 도구로서의 역할과 소임을 할 수 있을지는 모흐겠으나, 여하튼 이 인간 세상은 아름답다. 처절하게 아름다운 이들과 함께 위대한 하느님의 큰 뜻을 이룰 수 있다면 그 도구로서 더 이상 뭘 더 바라겠느냐~?
탄허사상 말고 싣다르타 사상 이야기 해보시게 수행자답게
남들다아는거
왜 설명을 하시다 맙니까? 탄허스님도 그러하고 간화선에 대한 정의도 하다말고 ... 마무리를 하시고 넘어가셔야 하는데 괜히 건드리셨네요 아쉽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배움이 되었습니다
문광스님의 강의는 최고이십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