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개를 넘어서면 제 44회 장진호 전투 후편
HTML-код
- Опубликовано: 7 фев 2025
- 마침내 해병대원들은 유담리를 떠난 11월 27일부터 14일간 140km의 혈로를 뚫고 흥남까지 철수 작전에 성공한 것이다.
같은 날 제10군단은 한반도 동북부에서 완전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현재 남은 병력은 총원 10만 5천 명에 전차 및 기타 차량 1만 7,500대였다. 병력은 중공군을 약간 상회하였고, 압도적인 기갑/항공 전력에 보급까지 빠방했지만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도쿄에 있는 맥아더가 싸움을 포기했다.
미군은 이들을 후퇴시키고자 정규항모 4척, 경항모 1척, 호위항모 2척을 배치했다.
화력지원용으로 중순양함 2척, 구축함 6척, 로켓함 3척이 배치되어 총합 2백 척이 됭케르크 철수작전 이후 최대 규모로 해상 철수 작전을 수행하였다.
미 해병1사단이 장진호에서 사투를 벌릴 때, 그보다 북쪽에 있던 미 7보병사단과 한국군 1보병사단은 큰 방해를 받지 않고 철수할 수 있었다.
미 해병1사단이 철수할 때는 미 보병3사단이 후위를 맞아 엄호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은 장진호 전투에서 이미 사실상 괴멸한 상태라 쫓아오지 못해 이렇다 할 전투가 없었다. ]
해병대는 12월 15일 흥남 부두를 떠났고 한국군은 물론 피난민 10만 명과 동승하였다. 전차의 경우 미 해병 1사단의 경우 M26 85대와 M4 12대를 가지고 장진호로 진격하였으나, 흥남 철수 때는 M26 69대와 M4 5대만 LST에 실려 철수 할 수 있었다.
이들 해병대는 12월 15일에서 17일까지 모두부산에 도착하였다.
12월 24일 흥남항에 남은 마지막 병력인 미 육군 제3사단 직할 제10공병전투대대와 미 해군 UDT 3팀 소속 UDT 1개 분대(8명)가 흥남 부두를 대폭발로 날려버려 황무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