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국검 ( 배국진 사범님 시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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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5 ноя 2024
  • 검술 본국검(本國劍)
    승정원일기 현종 14년 3월 11일 신사 1673년자 기사에서부터 시험을 본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 검술이다. 이후 주로 어영청에서 수련되었고, 계속해서 기록에 등장하다가 사도세자가 만든 무예신보에 12기가 추가되면서 처음으로 기록되었고, 현존하는 사료에는 무예도보통지 3권에 수록되어 있다. 이후 순조 20년(1820, 경진) 10월 2일자 어영청중순등록(御營廳中旬謄錄)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시험을 본 기록이 등장하지 않는다.
    민족전통검술을 복원하고자 하는 연구가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쌍수도는 임진왜란 당시 중국 명나라에서 수입한 것이 너무나도 확실하고, 제독검도 이여송의 검을 예로 들며 참장 낙상지에게 배웠다고 쓰여져 있다. 그러다 보니 순수 한국 검술인 조선세법/예도와 본국검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특히 조선세법은 무비지의 저자 모원의가 조선에서 되찾았다고 하여 조선 출처임을 명백히 하고 있고, 예도총보는 조선의 군관인 고만흥의 아버지 고후점이 전수한 검술이며 조선세법에서 유래된 것으로 역시 조선사람이 전수한 검술이다. 그리고 본국검은 무예도보통지에 쓰여진 대로라면 신라의 검객 황창랑을 시조로 삼는다고 하고 있어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의 검술이 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고찰은 아래 본국검 신라 기원설 단락 참고.
    그러나 실제 쓰이는 세법의 이름을 보면, 향전살적, 진전살적, 견적출검과 같은 중국 기효신서 장도의 4글자 명칭과, 표두압정/좌협수두/백원출동 같은 조선세법의 명칭이 섞여 있다. 단순히 명칭만 같은 것이 아니라 동작도 유사하다. 즉 아무리 시대를 낮춰도 명나라의 척계광 장군이 왜구의 진중에서 카게류 전서를 획득하여 기효신서 장도를 창작하는 자료를 얻은 1561년 이전으로는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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