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12월 전까지 국군은 8만 명(비정규 5만), 북한군은 6만 명(비정규 3만)으로 수적 우위였다. 하지만 1949년 말 중국에서 국공내전이 정리되면서 1950년 초 경험 많은 조선인 사단 2개(약 3만 명 규모)가 무장한 채 압록강을 넘어 북한군에 합류했다. 이어서 김일성은 소련에 요청해서 3개 사단 규모의 군사 장비 지원을 받아냈다. 이를 통해 6개 사단(약 6만 명) 규모가 증원된다. 1950년 6월 초, 북한은 정규군 12만, 비정규 3만 규모로 확장되나, 국군은 정규군 9만 명, 비정규 5만 명이 한계였다. 개전 후 이틀만에 개성, 의정부 등에서 채병덕 참모총장의 축차투입으로 인해 국군 1, 2, 3, 5, 7, 수도사단 등 6개 사단이(약 6만 명 규모) 완전히 와해된다. 춘천 6사단과 동해안 8사단, 옹진반도의 17독립연대만이 그나마 전력을 유지한 채 철수할 수 있었다. 이로써 포항 전투 무렵에는 부대를 통폐합하여 1, 3, 6, 8, 수도사단만이 남았고, 3사단이 포항일대를 지켜야했다. 3사단은 철수하면서 영덕에서 북한 5사단에게 큰 피해를 주었고, 무사히 포항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하지만 북한 8, 12, 15사단이 국군 수도사단을 돌파해 포항 후방으로 침투하자 포항을 포기하고 철수해야했다. 이때 행정병과 학도병 70여 명이 포항여중에서 추격하던 북한군을 저지했다. 북한 766부대는 일주일 뒤 유엔군 함대의 포격으로 큰 피해를 입고, 북한 12사단에 흡수된다.
사실 학도병은 국군과 북한군에서 모두 동원되었습니다. 특이하게도 북한은 포로들에 대한 강제 징집도 실시했는데, 이는 북한 지역의 인구가 한국에 비해 굉장히 열세였던 것이 원인으로 보입니다. 또한 개전 당시 전선에서는 국군의 병력 열세가 더 컸습니다. 이는 2, 3, 5사단이 각각 대전, 대구, 광주에 나눠서 주둔하고 있었으며, 부대 재편으로 대부분의 부대가 이동 중에 있었기 때문에 전선에 할당된 병력은 실제 한국군의 절반밖에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개전 직전 국군은 1, 6, 7, 8사단과 17독립연대가 약화된 상태로 38도선 인근에 배치되었습니다. 가장 가까운예비대는 서울에 위치한 수도사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도사단도 재편 과정에서 일부 부대가 지방에서 올라오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한편 북한은 개전 직전 38도선 인근으로 주력부대를 이동시켰습니다. 북한군 1, 2, 3, 4, 5, 6, 12, 13, 15사단 등 9개 사단과 105 탱크여단, 603 모터사이클 독립연대, 766과 945 독립연대, 2개의 경비여단 등이 38도선 인근에 집결했습니다. 이중에서 13, 15 사단은 예비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국군은 부대별로 국군 17독립연대 : 1연대(6사단), 3경비여단 국군 1사단 : 1, 6사단(-1), 203탱크연대(105여단) 국군 7사단 : 3, 4, 15사단, 105탱크여단(-1) 국군 6사단 : 2, 12사단, 603 모터사이클 연대 국군 8사단 : 5사단, 766연대, 945연대, 1경비여단 등 모든 전선에서 수적, 물적 열세인 상태에서 기습 침략에 저항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군은 굉장히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국군 6사단은 2개 사단을 상대로 훌륭한 방어를 보여주었으며, 서울 함락 이후 국군의 전면후퇴 직전까지도 춘천에서 밀려나지 않았습니다. 국군 8사단은 분산배치와 후방으로 상륙해온 적에 의해 포위 섬멸 당할 위기에 처했으나, 빠른 기동으로 전력을 유지한 채 후퇴할 수 있었습니다. 17독립연대는 고립된 상태에서도 훌륭하게 저항했고, 또한 전력을 유지한 채 고립을 풀고 철수 했습니다. 훗날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합니다. 국군 1사단은 개성에서 후퇴한 후 임진강에서 방어선을 구축하는데 성공했습니다. 7사단은 2개 연대밖에 없었고, 적 기갑부대의 공격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도망치지 않고, 소총만으로 전차부대의 공격에 저항했습니다. 놀랍게도 국군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4개 전방 사단 중 3개 사단이 현지 방어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7사단은 가장 강력한 북한군의 공격에 노출되었고, 결국 방어에 실패했습니다. 7사단의 후퇴를 따라, 다른 부대들도 측면을 보호하기 위해 철수해야했습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국군과 북한군은 신흥국가임에도 굉장한 전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량은 전쟁 초기에 빠르게 고갈되었고, 이후 전쟁은 유엔군과 중공군이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초기 내전의 형태에서 후기 국제전-대리전의 양상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당시 남한 인구는 북한보다 많았지만 병력 격차가 난 이유는 북한은 서울을 점령하고 서울에서 병력을 증원함 이 과정에서 남한 국민중에 살기 위해서 북한군에 강제 징병 당한 경우도 있었음 무기만 많다고 병력이 늘어나지 않죠 당시 국군은 무기도 인적 자원도 부족했던 때임 전쟁 초기 서부전선에서 축차전술이 많은 아군 손실을 발생시킴 아군이 후퇴도 안한 상태에서 다리를 폭파한것 때문에 가지고 있던 무기도 버리고 도망을 쳐야했죠 당시 대한민국에 유능한 지휘관이 있었다면 좀 달라졌을듯
쓰고 버리기 좋았던 학도병 정규군이 아니었기에 말로만 학도병이지 기록도 제대로 안 남아있던 경우가 허다했음 그래서 학도병 참전용사들은 이를 갈고있고 근데 또 전쟁나면 또 학도병 징집하게 될 것이 분명한게 낙동강 방어선에서 못 막았으면 부산에서 막다가 바다에 빠져죽는 상황이었음에도 끝까지 여성징병은 하지 않았음
저렇게 나라를 구했는데 장사리 상륙작전은 묻히고 포항방어선을 지켰던 학도병은 찾지 못해 대접도 못 받는데, 광주민주화 혜택은 가짜 진짜 공개도 없고, 김정은은 위원장이라 부르면서 지역이 다르다고 2찍이라 부르면서 멸시하는 꼴을보면, 뭐든지 한쪽으로 쏠리지 말고 균형이 중요한것 같다
당시 증학교는 5년제로 현 고교와도 동급이고 당시 학생들 대부분 냐이가 많았고 자원한 학생 전부 덩치도 크고 학교에서 향도정도는 다했다. 나중에 상당수는 장교자원이 된다. 또 대부분 사령부에서 행정보조나 전선에 나가도 전령 등 수행했다. 호칭도 학생이야. 당시에는 중학이 가방끈이 길어서 병사들이 함부로 하지 못했다.
@WHCAV-u5p 이걸 이렇게 커버치네 ㅋㅋㅋㅋㅋ 소년병은 국제법상 불법이야 그리고 그 당시 덩치가 컸다고 기록도 없고 내가 말하는건 14살부터 16살을 말하는거고 고등학생도 만18세미만은 소년병으로 들어간단다. 그리고 영양상태도 좋지 않았고 덩치가 크다는건 상부에 보고하는데 그게 확실한 기록도 아닌데 선동하고 있네요. 애초에 만18세는 국제법상 위법이예요. 아저씨 이건 나라에서도 커버 못치는건데 여기서 커버치고 있네 진짜 역겹네
@@WHCAV-u5p 지금의 여자들 꼬라지 실태를 비꼬는 말이잖습니까? 1950년 전쟁에 폐미가 어딨고? 남녀가 어딨습니까? 학생인데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전쟁에 목숨을 잃어간거지요. 이때도 여자들은 잘 숨어 있었겠죠. 지금 대한민국에 전쟁나서 군캉스 이지랄하는 폐미들도 잘 숨서 남자들은 뭐하냐? 군인들은 뭐하냐고!? 이지랄 시전하겠죠.
안타깝고 억울한 것들 중 하나는 6.25때 학도병이나 지원병들 명단기록이 제대로 남지 않아 전사했어도 참전기록이나 전사자 기록이 않되어 유공자로 분류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장사리 상륙작전은 대부분 학도병들이 상륙작전했었어요. 많은 사상자가 나왔기도 하고 지금 현재 장사리가면 학도병들 기리는 상륙정모형 기념박물관이 있음.
제 할아버지가 딱 그러시네요
안타깝습니다. 꽃다운 어린나이에 ㅠㅠ.. 숭고한희생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영면 하소서..😢
18..
걍 고기빙패로 쓰고 땡처리냐?
👹👹👹👹👹👹
니미 광주는 확인 안되어도 국가유공자 시켜주더니
나도 저시대하곤 거리가 멀지만
다시금 이땅에 언젠가 저런날이 또 온다면
그때 저 분들처럼 아무 이유도 댓가도 없이
나설수 있을지..
감사드립니다 모든 분들게
나설겁니다 우린 대한민국 사람이기에 그 어느 누가 내 밀기전에 우린 내가 사랑하는 날 사랑하는 모든 이를 위해
나라를 사랑해서?. 적어도 타국탓만하며 이 국토를 전쟁으로 이끈 한국인을 사랑해서는 아닐거다.
가족이 우선임 전 재산 달러나 금화 한다름
@@82sinoai아니 이제 다를것임 옛날과 다르게 모두가 지식을 배웠고 참전용사분들은 나라가 위험할때 목숨내놓고 싸웠지만 국가는
참전용사분들의 고통에 눈을 감고 아무것도 하지않음 국민들의 무조건 적인 충성은 이젠 없음
@@82sinoai넌 나서라 난 튈테니까 항상 고맙다
이진태의 대대장님이 진급해서 사단장님이 되셨네
세계관 혼합ㅋㅋㅋㅋㅋㅋ
이진태는 어디있나요
깃발부대장 리진태소좌
깃발부대 리진태소좌를 설득하러간 이진석하사.
그래서 진태 소원 안들어쥬고 ㅌㅌ 한거구나ㅠㅠ
ㅋㅋ 저도 비슷한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이미.... ㅋㅋ
1949년 12월 전까지 국군은 8만 명(비정규 5만), 북한군은 6만 명(비정규 3만)으로 수적 우위였다. 하지만 1949년 말 중국에서 국공내전이 정리되면서 1950년 초 경험 많은 조선인 사단 2개(약 3만 명 규모)가 무장한 채 압록강을 넘어 북한군에 합류했다. 이어서 김일성은 소련에 요청해서 3개 사단 규모의 군사 장비 지원을 받아냈다. 이를 통해 6개 사단(약 6만 명) 규모가 증원된다. 1950년 6월 초, 북한은 정규군 12만, 비정규 3만 규모로 확장되나, 국군은 정규군 9만 명, 비정규 5만 명이 한계였다.
개전 후 이틀만에 개성, 의정부 등에서 채병덕 참모총장의 축차투입으로 인해 국군 1, 2, 3, 5, 7, 수도사단 등 6개 사단이(약 6만 명 규모) 완전히 와해된다. 춘천 6사단과 동해안 8사단, 옹진반도의 17독립연대만이 그나마 전력을 유지한 채 철수할 수 있었다. 이로써 포항 전투 무렵에는 부대를 통폐합하여 1, 3, 6, 8, 수도사단만이 남았고, 3사단이 포항일대를 지켜야했다.
3사단은 철수하면서 영덕에서 북한 5사단에게 큰 피해를 주었고, 무사히 포항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하지만 북한 8, 12, 15사단이 국군 수도사단을 돌파해 포항 후방으로 침투하자 포항을 포기하고 철수해야했다. 이때 행정병과 학도병 70여 명이 포항여중에서 추격하던 북한군을 저지했다. 북한 766부대는 일주일 뒤 유엔군 함대의 포격으로 큰 피해를 입고, 북한 12사단에 흡수된다.
하 진짜 당시 무능한 축차투입.... 육사 초기 기수도 병사로 투입...
비슷한인원으로 치러오는인원이셀까요 방어군이셀까요? 전쟁도안해본 학도병을.
사실 학도병은 국군과 북한군에서 모두 동원되었습니다. 특이하게도 북한은 포로들에 대한 강제 징집도 실시했는데, 이는 북한 지역의 인구가 한국에 비해 굉장히 열세였던 것이 원인으로 보입니다.
또한 개전 당시 전선에서는 국군의 병력 열세가 더 컸습니다. 이는 2, 3, 5사단이 각각 대전, 대구, 광주에 나눠서 주둔하고 있었으며, 부대 재편으로 대부분의 부대가 이동 중에 있었기 때문에 전선에 할당된 병력은 실제 한국군의 절반밖에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개전 직전 국군은 1, 6, 7, 8사단과 17독립연대가 약화된 상태로 38도선 인근에 배치되었습니다. 가장 가까운예비대는 서울에 위치한 수도사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도사단도 재편 과정에서 일부 부대가 지방에서 올라오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한편 북한은 개전 직전 38도선 인근으로 주력부대를 이동시켰습니다. 북한군 1, 2, 3, 4, 5, 6, 12, 13, 15사단 등 9개 사단과 105 탱크여단, 603 모터사이클 독립연대, 766과 945 독립연대, 2개의 경비여단 등이 38도선 인근에 집결했습니다. 이중에서 13, 15 사단은 예비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국군은 부대별로
국군 17독립연대 : 1연대(6사단), 3경비여단
국군 1사단 : 1, 6사단(-1), 203탱크연대(105여단)
국군 7사단 : 3, 4, 15사단, 105탱크여단(-1)
국군 6사단 : 2, 12사단, 603 모터사이클 연대
국군 8사단 : 5사단, 766연대, 945연대, 1경비여단
등 모든 전선에서 수적, 물적 열세인 상태에서 기습 침략에 저항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군은 굉장히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국군 6사단은 2개 사단을 상대로 훌륭한 방어를 보여주었으며, 서울 함락 이후 국군의 전면후퇴 직전까지도 춘천에서 밀려나지 않았습니다. 국군 8사단은 분산배치와 후방으로 상륙해온 적에 의해 포위 섬멸 당할 위기에 처했으나, 빠른 기동으로 전력을 유지한 채 후퇴할 수 있었습니다. 17독립연대는 고립된 상태에서도 훌륭하게 저항했고, 또한 전력을 유지한 채 고립을 풀고 철수 했습니다. 훗날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합니다. 국군 1사단은 개성에서 후퇴한 후 임진강에서 방어선을 구축하는데 성공했습니다. 7사단은 2개 연대밖에 없었고, 적 기갑부대의 공격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도망치지 않고, 소총만으로 전차부대의 공격에 저항했습니다.
놀랍게도 국군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4개 전방 사단 중 3개 사단이 현지 방어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7사단은 가장 강력한 북한군의 공격에 노출되었고, 결국 방어에 실패했습니다. 7사단의 후퇴를 따라, 다른 부대들도 측면을 보호하기 위해 철수해야했습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국군과 북한군은 신흥국가임에도 굉장한 전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량은 전쟁 초기에 빠르게 고갈되었고, 이후 전쟁은 유엔군과 중공군이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초기 내전의 형태에서 후기 국제전-대리전의 양상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안타깝고 억울한 일 중 하나는 6.25 때 학도병이나 지원병들 명단 기록이 제대로 안 남아서 전사했어도 참전 기록이나 전사자로 분류되지 못해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거죠.*
왜 안 보였나 했더니!
이거 댓글 프사 터치해서 채널 들어가봤더니 미친 좌표 나옴ㅋ
프사 한 번만 터치해봐, 이건 놓치기엔 너무 대단한 내용이야.
요거 요거 댓글 프사 터치했더요거 대단한 거 터짐ㅋㅋ
레전드다 이건ㅋㅋ
영화로 보는 한국전쟁 순서. 1)태극기휘날리며 2)포화속으로 3)인천상륙작전+장사리:잊혀진 영웅들 4)고지전
태극기를 휘날리며는 포화속으로랑 인천상륙작전까지 다 포괄하는 타임라인이긴해
저 사단장님은 그중 세편의 영화에 출연하심. 태극기 휘날리며, 포화속으로, 인천상륙작전. 대대장->사단장->인민군 서울지역 사령관
@@Ska-n2o 포괄은 맞습니다
장사리는 도대체 왜 들어간걸까 아직도 의문스러움 존나무능함
하아~ 이런분들의 국가보상은 흐지부지고
도대체 국가가 뭔가싶다
순국선열 이름없는 학도병및
전몰병사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들을 욕하지마라 이런비극을 일으킨 공산당 김일성을 욕하라
소련 / 중공도
런승만은 욕 먹어야지
@@lililllo애초에 김일성 없었으면 욕먹을 일도 없었고 런승만 없었으면 일제랑 묶여서 전범국 처리 당했을 꺼임
@@lililllo그럼 피난 안 가고 서울에 남아서 북한군에 국군통수권자 잡히고 한반도 싸그리 북한에 내주리? 그 상황에 밑으로 안 내려가는 게 이상한거다
무능한 이승만을 욕해야지 멍청아 최전방 사단병력을 지 지킨다고 부산으로 뺀 멍청이
당시 남한 인구는 북한보다 많았지만 병력 격차가 난 이유는
북한은 서울을 점령하고 서울에서 병력을 증원함
이 과정에서 남한 국민중에 살기 위해서 북한군에 강제 징병 당한 경우도 있었음
무기만 많다고 병력이 늘어나지 않죠
당시 국군은 무기도 인적 자원도 부족했던 때임
전쟁 초기 서부전선에서 축차전술이 많은 아군 손실을 발생시킴
아군이 후퇴도 안한 상태에서 다리를 폭파한것 때문에 가지고 있던 무기도 버리고 도망을 쳐야했죠
당시 대한민국에 유능한 지휘관이 있었다면 좀 달라졌을듯
일단 기습당햇으니....그것도 문제지만 한강다리를 끊으니 남아잇던 2개사단 병력이 .... 그저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께 감사할따름 그리고 이름도없이 죽어간 학도병 여러분께 숙연해질뿐
저때도 그랬듯이 자유 진영끼리는 도와야지
@@rtb4619적의 정찰대가 서울시내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철수도하기전에 다리폭파함.
프로토콜은 맞지만 타이밍이 매우 부적절했음.
서울대병원에있던 부상병들도 다 버림받아 학살당했고
@@rtb4619그리고 축차투입도 의정부 축선에 부대들 마구잡이로 축차투입한것도 맞음.
축차투입하니 다들 각개격파당했고 육사10기생들은 죄다 소총수로 차출당해서 소모당함.
이 모든게 채병덕의 작품
@@rtb4619한강교 폭파해서 전군 보유차량의 50%,물자 무기의 60%를 상실함.
그 차량들과 물자 탄약들은 북괴군이 접수해서 다시 국군을 공격하는데 쓰고.
한강전투 이후부터는 물자와 탄약이 소개가 불가능하면 미공군이 공습으로 날려버림
이러던 대대장이 예비군복입고 어리버리 얼타던 영화가 '라이터를 켜라'였죠?
차승원은 거기서도 악역으로 나오고...
^-^
아그러네 ㅋㅋㅋ 생각해보니까 그건 너무 옛날영화라 기억이안남
@@gyusa9827그래도 이영화랑 7년차이 밖에 안남 ㅋㅋㅋ
대위라는걸 보면 대대장이 아니고 중대장으로 보입니다.
@@0602-x9i와 포화속으로가 그렇게 오래 됨?
차승원 귀순해서 해병대 입대했네
선배님들의 높은 의와 뜻을 깊이 새기고 지켜나가겟읍니다 가슴깊이 감사를올립니다
평화로울때 전쟁을 준비해야 함.약하다고 생각들면 이웃 국가는 반드시 쳐들어옴.
유럽 그리고 중동
다음은 아시아임.
중국과 대만 전쟁은 피할수가 없다봄.
한국도 피해를 덜 보려면~국방비를 최대치로 늘려야 한다봄
🟥낙동강 전선 밀리면 대한 민국 포기 할려고
했었다는 한국 전쟁사의 슬픈 뒷이야기.....
나라를 지켜준 애국 참전 용사님들의 영령앞에
감사의 예를 올립니다.....!!
내일 3시 15분에 그
내용이 올라옵니다
저 당시 참모총장 나이가 33살 정일권 중장이었지
채병덕장군입니다
@@고재만-p7b 저때 참모총장 정일권 맞습니다.
채병덕은 7월 초 이미 해임되었고 7월 27일에 전사했습니다
그리고 포항여중전투는 8월 10~11일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규모는 잘 모르겠는데 1개사단이 적 3개사단을 상대해야된다는게 와.. 참...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호국열사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ㅠㅠ
저 시점이 인천상륙작전 시작하기전 직전인가요???
저 사단장님은 태휘에서도 나오시던데 여기도 나오셨네
네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정한 자유국가를 만든 영웅들 ㅠ
이런 나라에서 전쟁이 나면 어찌 목숨걸고 싸울수 있을까
당시의 상황이 학도병들을 제대로 기록에 남기지 못할만큼 긴박하고 힘들었던건 사실이다. 그래도 전후에 그들을 기억해주고 대우해줬어야 한다. 비록 경제발전이 좀 느려지더라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어도 말이다. 그점이 박정희에게 가장 아쉬운 부분
그.군보안사 정보대 싸그리 동원해서라도 찾아냈어야지.
퉷!
@@지옥의카니발 찾기는 찾았는데...
정부에서 아직 공식적으로 추모 안함
박정희는 절대 못하죠
@@NERD8327 18👹
승수형 요즘 티비 왜안나와
복귀좀 허세요 그립네요
저 사단장 태극기에서 장동건한테 사기친사람아닌가 ㅋㅋㅋ 태극훈장따면 동생 전역시켜주겠다고
진급하심
ㅋㅋㅋ 장교상이시긴함
훈장이 나오는시점에 진급해서 딴데감
맞음. 고의로 기망할 목적
태극기휘날리며에서 사기 친사람아니고 사기친새끼하기전에 대대장이었음
아무리 폭력에 무감각해진 시대였다지만 미성년자들 총알받이는 진짜 잔인하네..
전쟁앞에서 씨발 폭력에 무감각해진 시대 ㅇㅈㄹ하네 ㅋㅋㅋㅋㅋㅋ 진짜 개빡대가리새낀기
쓰고 버리기 좋았던 학도병
정규군이 아니었기에 말로만 학도병이지 기록도 제대로 안 남아있던 경우가 허다했음
그래서 학도병 참전용사들은 이를 갈고있고
근데 또 전쟁나면 또 학도병 징집하게 될 것이 분명한게
낙동강 방어선에서 못 막았으면 부산에서 막다가 바다에 빠져죽는 상황이었음에도
끝까지 여성징병은 하지 않았음
우크라와 더불어 지킬 가치가 없는 서윗한 쓰레기나라ㅋ
백! 골!
위인들이 참전용사가 되야하는데 엉뚱한 인간들이 참전용사 혜택받고 있는 뼈아픈 현실 ㅠㅠ
이렇는데도 전쟁을 다시하려고 자꾸하는거같아서 모지리에게 국민들 생명을 좌지우지하게 될거같다는 생각을해본다
전쟁은 군인신분 남자들에게 제일 큰 고통이다
당시 미국은 소련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미군도 철수시키고 한국군에게는 중화기도 보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소련은 북한에 전차, 화포, 항공기 등을 지원하고 전쟁을 일으키게 도와줌. 그게 전력 차이가 심하게 난 이유임.
자기 부하가 그렇게 소중한데...
어째서 장성들은 멋진 군복 차려입고, 행사장에 올 수 있지?
난 솔직히 장성들의 멋진 군복과 장군도가 이해가 안돼.
유공자 인정받아도 나라에서 주는대우는 없음 연금조금.유공자훈장 그이외 별쓸모없는 해택 몆개...다시한번 전쟁이 일어난다면 저렇게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할 사람이 몆명이나 있을까...죽어도 재대로 인정도 못받고 살아돌아온대도 재대로된 대우도 없음 사회에선 존경심은 커녕 배려조차 없이 조롱만 난무하고 더 말해 뭘할까 나라가 개판인걸
이렇게 지킨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연놈들이 많다
포화속으로ㆍㆍ
학도병들의 이야기
포항,태백 등등 중고등학생들이 전쟁에 참전
요즘 젏은이들은 한국전이 미국.다국적군들로 방어했다고 생각하더라..물론 틀린말은 아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패했겠지.
하지만 치열한 그어떤 전투에서도 선봉은 한국군이였다.가장 먼저 피를뿌렸고 가장늦게 빠졌다. 조상들의 희생정신을 잊지말자.
빨리 돈 벌어서 이민 가야지.. 나라 지키다 죽으면 개죽음이라는 걸 이 나라가 증명함.
울할매가 포항 흥해읍에 살았는데 그시절 말도 안되게 포격이 이어지고 사촌이 피난가는길에 포맞고 죽고 그 애기가 품에 안겨 울고 있었다고 하더라
그럭저럭인 영화인데 탑이 출연해 중2병 영화 분위기 . 더럽게 어색함
진짜 대한민국의 패망 위기였죠.
미국정부조차 아차하면 남은 한국사람들 데리고 남태평양 이름모른 섬에 이주할 계획도 고려했으니깐요.
난...., 내 라이타를 찾고싶을 뿐입니다~!!
연기 진짜 한숨나오네
잊어서는 안됨
전시상황인데 한국군인원에 무슨지원병력이고. 그냥 죽을듯 살듯 하는게맞지 지금도전쟁나면 그럴거고
소대장 할때도 똑같았다
밑에서 욕하기만 바쁘지... 윗사람도 고뇌에 시달리는데
지금은;;;;;; 저렇게 나라에 희생할 사람이 정말 없다는거다.
저렇게 고생한사람들 무시하면 누가 나라를 위해 희생을하나
걱정입니다 진짜
나라가 국민을 생각하지않는데 뭐하러 지키겠습니까.
정말 우리나라 근현대사 역사는 주야장천 눈물만.... 뭐 좀 하는거 우리 후손이 좀 해주세요 제발...고구려 백제 신라에 그 영역을.... 우리 선조가 망해도 이정도 현무5 만들고 천궁 만들고 탐지자산 만들고 했지않음....
저렇게 지킨 나라가 어쩌따 이렇게 ㅠㅠ
사람을 갉아먹던게 전쟁이지…
저렇게 나라를 구했는데 장사리 상륙작전은 묻히고 포항방어선을 지켰던 학도병은 찾지 못해 대접도 못 받는데, 광주민주화 혜택은 가짜 진짜 공개도 없고, 김정은은 위원장이라 부르면서 지역이 다르다고 2찍이라 부르면서 멸시하는 꼴을보면, 뭐든지 한쪽으로 쏠리지 말고 균형이 중요한것 같다
6.25에 대한민국을 수호한 호국영령들에게 묵념을.
그리고 타지에와서 남의 나라를 위해 함께 희생해준 un군들에게도 묵념...
감사합니다.
김준섭이 누구임
영화 초반에 북한군 총검에 찔려죽는 군인일거임
중대장이 아끼던 부하 탑 구해주고 사망
초반에 소대단위로 지원나가는 부하입니다. 총맞고 총검에 찔리고해서 죽는걸로 나옵니다.
나임
@@김준섭-o2q문섭이 동생이가?
마음이 아파
저분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대대장이였는데 ㅋㅋ
감사합니다.
사단장 성우임? 성우 발성 같은데?
무뢰한에나온 사람임 전직형사로나오는
옛날 태극기 휘날리며 대대장이었음
@@Rock-band-holic아 그 무공훈장 따오면
동생 제대 시켜준다는?
진급이 빠르긴하네.. 낙동강전선에서 사단장 단거임?
3사단 93년 군번 백골 ~~
예비군 훈련 잘 받고, 대위로 재입대 했네.
방산비리 똥별 굿
승우 왜 연기 어색하지 ㅋㅋ
지금 군대에서 저런 명령하면 다 도망갈것 같은데? 뒤지러 가라는거냐고 개같이 따질듯
옛날이든 지금이든 지킬사람은 지키고 도망갈 사람은 도망간다.
@cyh25cyh 옛날이랑 다름
6.25때. 고위직 아들은 전쟁에 참여 했을까 부산 유흥가 에서 흥청망청 잘놀았다 그들에게 전쟁은 딴동네 인듯 니뽄 도 미군정에 협조 잘하면 탄탄한 😂😂😂
간첩이냐?
남자는 강제징병에 전역하고도 예비군까지 빨아먹는데, 여자는 기초구급법이나 전시상황 행동강령 교육 조차 받지않음. 휴전국가라며 왜?
3사단 백골 💀 부대 사단기를 빼앗기고 이후에 백골을 사단기로 정했다는 썰
피는 젊은이들이 흘리고 훈장은 늙이들이 받는다
마지막에 TOP임?
조국을 지킨 호국영령들이 지금의 이 나라를 보면 어찌생각 하실지... 지금 대한민국은 그때와 같습니다. ㅜ
살아도 백골 죽어도 백골 필사즉생 골육지정
포화속으로
전쟁은 어떠한 이유로든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강력한 국군이 있어야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위가 감히 사단장한테...ㄷㄷ
장사...
저런분들 때문에 지금 한국이 있는데 지금 간첩들이 천지야
학도병들 중학생들인데 한국여자들은 중학생도 저렇게 지키는데 대체 어디에 있는거냐?
당시 증학교는 5년제로 현 고교와도 동급이고 당시 학생들 대부분 냐이가 많았고 자원한 학생 전부 덩치도 크고 학교에서 향도정도는 다했다.
나중에 상당수는 장교자원이 된다.
또 대부분 사령부에서 행정보조나 전선에 나가도 전령 등 수행했다.
호칭도 학생이야.
당시에는 중학이 가방끈이 길어서 병사들이 함부로 하지 못했다.
@WHCAV-u5p 이걸 이렇게 커버치네 ㅋㅋㅋㅋㅋ 소년병은 국제법상 불법이야 그리고 그 당시 덩치가 컸다고 기록도 없고 내가 말하는건 14살부터 16살을 말하는거고 고등학생도 만18세미만은 소년병으로 들어간단다. 그리고 영양상태도 좋지 않았고 덩치가 크다는건 상부에 보고하는데 그게 확실한 기록도 아닌데 선동하고 있네요. 애초에 만18세는 국제법상 위법이예요. 아저씨 이건 나라에서도 커버 못치는건데 여기서 커버치고 있네 진짜 역겹네
@WHCAV-u5p 소년병은 국제법 위반이라 6.25.로 참전한 소년병은 국가유공자로 인정도 안해주던데 ㅋㅋㅋㅋㅋ 이딴거 커버 치는 사람이 있네 ㅋㅋㅋㅋㅋ 이딴 나라에 이런 국민성이면 전쟁나면 도망치거나 깜빵가는게 개이득이지
@@WHCAV-u5p 지금의 여자들 꼬라지 실태를 비꼬는 말이잖습니까?
1950년 전쟁에 폐미가 어딨고? 남녀가 어딨습니까?
학생인데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전쟁에 목숨을 잃어간거지요.
이때도 여자들은 잘 숨어 있었겠죠.
지금 대한민국에 전쟁나서 군캉스 이지랄하는 폐미들도 잘 숨서 남자들은 뭐하냐? 군인들은 뭐하냐고!? 이지랄 시전하겠죠.
한국뿐인줄 아냐
우크라봐라 여자들 클럽가서 러군들이랑 ㅅㅅ파티한다고 난리다 이스라엘 일본 여자들이 특이하게 우수한 민족성을 가진 거임
바다의 아니고 바다에
이거 지금 3차 전쟁나면 우리 군 현실임
어쩔수 없지
미안해 내가 먼저 간다
탑 캐스팅은 진짜 신의 실수다
탑보다는 권상우가 더 실수임
호국영령의 명복을 빕니다
유사국가 최대성차별 강제징용 배상해라
저 태극기 휘날리며 대대장으로 나오던데 저기서 밀려가지고 대대장으로 강등당했나보네
대한민국 🇰🇷 백골부대 🇰🇷 38선 최선봉돌파 국군의날 제정 살아도백골 죽어도백골 필사즉생 골육지정
ㅠㅠ 군대 면피자가 대통령이 되는 드러븐세상
예 옆에 있었는데 뽕맞아서 기억이 없십니다
장사해수욕장
백골!
제목좀 띠워주는게 어려움 ?
포화속으로 입니다
설명란에는 표시를 하는데
앞으로는 화면애도 표시할게요
@순샄-j5f 감사합니다
@@권철현-o1e닌 설명란 클릭해서 보는게 어려움?
손가락이 없나
@@Why-kw3kw 쇼츠 설명란까지 찾아보는건 거의 없어서 대부분 영상에 추가한다. 니 손가락 달아준 니 애미가 불쌍타ㅠㅠ
백골
낙동강 전투는 8사단이지~영천대회전~~
이게 실화러니 ...
대위가 말대꾸?;
투스타한테?;
한국전쟁 영화의 한계
살아도 白백骨골! 죽어도 白백骨골! 必필死사卽즉生생 骨골育육之지情정![20] 白백骨골! 白백骨골! 파이팅!
625때 국군분들이 진짜 독립군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귀한 희생 대영웅분들
실제 만주나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와 독립군들 대부분이 전쟁 발발후 북한에 가담해 가장 먼저 쳐들어왔음. 그럼에도 단지 독립운동가였다는 점 하나만으로 그부분은 전부 없애고 미화하는게 ㅈㄴ 어이없음.
탑이 안나왔음 더 잘됐을텐데
이래도 대리전 지꺼리는 ..
사단장이 떠넘기고 혼자 살려고 했다.
전쟁경험 많은 조선족 중공군은 아마 독립운동하던 자들 아닐까..?
민주당에서 하는 행태를 보면 참..구분을 지어야지..독립운동가들과 빨갱이로 넘어간 독립운동가를 구분 지어야됨
만주와 중국에서 활동하던 대부분의 독립군들이 한국전쟁 당시 맨앞에서 밀고들어왔음. 나는 진짜 독립운동가라는 이유로 독립군이 일반인에게 저지른 만행과 학살들, 그리고 공산 사회주의 이념마저도 미화시키는게 너무 어이가없다
와 김승우 연기 드럽게 못하네
??
아... 3사단...
가엾어라... 1 대 3
여자로 태어나서 다행이넹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