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일 (토)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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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4 фев 2025
- 민 22:36∼41
(36) 발락은 발람이 온다 함을 듣고 모압 변경의 끝 아르논 가에 있는 성읍까지 가서 그를 영접하고
(37) 발락은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특별히 사람을 보내어 그대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그대가 어찌 내게 오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어찌 그대를 높여 존귀하게 하지 못하겠느냐
(38)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말할 능력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
(39) 발람이 발락과 동행하여 기럇후솟에 이르러서는
(40) 발락이 소와 양을 잡아 발람과 그와 함께 한 고관들을 대접하였더라
(41) 아침에 발락이 발람과 함께 하고 그를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 오르매 발람이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 끝까지 보니라
본문은 모압 왕 발락이 거짓 선지자 발람을 환대하는 내용입니다. 모압 왕이 일개 선지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모압 변경 끝까지 가서 영접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발람을 믿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모압의 운명이 발람에게 있다고 믿는 모습입니다.
고대사회는 신들의 세상이었습니다. 한 민족의 흥망성쇠는 그 민족이 섬기는 신의 능력에 달려 있었습니다. 만약 적국과 전쟁을 치르게 되면 그것은 단순히 인간들끼리의 전쟁이 아니라 자국이 섬기는 신과 적국이 섬기는 신과의 전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전쟁에서 패한 국가는 승리한 국가의 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자국을 보호할 수 없는 신을 더 이상 섬길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압 왕 발락도 이런 생각 때문에 이스라엘과 전쟁하기 전에 저들을 저주할 수 있다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영험한 능력이 있는 선지자 발람을 애타게 기다렸던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 발람을 만난 모압 왕 발락은 자신이 얼마나 발람 선지자를 기다렸는지를 설명합니다. 자신뿐 아니라 모압에게 있어서 발람 선지자는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이런 대접을 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선지자는 그렇게 존경받는 위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 발람은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애초에 모압 왕의 초청을 받은 것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주면 복채를 두둑이 준다는 말 때문에 모압까지 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한 오는 길에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함부로 저주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임의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한 전할 뿐이라고 합니다.
이 말이 겉으로는 대단히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이중적인 속마음을 숨기는 말입니다. 복채를 두둑이 받고는 싶고 그렇다고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기는 싫은 그런 복잡한 생각을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발람 선지자를 위해서 모압 왕 발락은 극진한 대접을 합니다. 보통의 일반 선지자가 받을 수 없는 그런 대접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거짓 선지자 발람은 모압 왕 발락과 함께 바알의 산당에 올라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을 보게 됩니다.
세상에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자신은 종교가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지만 그런 자들도 무엇인가를 믿고 살아갑니다. 아무 것도 없다고 믿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그 사람에게는 종교입니다.
중간지대가 없으니 하나님도 믿고 다른 신도 믿고 또 필요하면 아무 신도 없다고 믿고 살 수 없습니다.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참 신이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실 분으로 믿는다면 끝까지 하나님만 믿고 섬겨야 합니다. 우유부단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