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누구도 열망함 없이 구원받지 않습니다" 존 맥아더 - 죄인이 구원을 열망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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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4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7

  • @금사과911
    @금사과911 Год назад

    아멘!

  • @이영래-n2q
    @이영래-n2q 4 года назад +4

    아멘! 하나님께서 열망했을때 찾아오셨습니다.
    참되신 하나님 언제나 감사합니다.말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english_bible
    @english_bible 4 года назад +8

    Amen!! 하나님은 결코 무신론자자들을 그들의 의지에 반해 강제로 천국에 데리고 가시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들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에 절대 그러실 수 없는 분입니다. CS Lewis가 한 말이 기억나네요.

    • @퓨어-l9i
      @퓨어-l9i 2 года назад

      그들의 자유의지라고 하는 것도 죄와 부패의 본성안에서의 자유 입니다, 즉 죄를 선택할 수 있는자유만 있다는거지요. 하나님의주권적인은혜와 자비 없이는 하나님을 열망할 수가 없습니다 아멘!

  • @구슬이-g7y
    @구슬이-g7y 4 года назад +4

    그렇다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까운 사람일수록 힘들지만 포기할 수 없으니까요...

  • @seongilyeo984
    @seongilyeo984 4 года назад +3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없다. 자꾸 사람들이 자유의지를 말하고 강조하는데, 자유의지는 종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죄의 종에게 자유의지가 있나? 죄의 종은 죄에 사로잡혀 의지가 박탈 되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면서 의의 종이 된다. 이제서야 의지가 작동하게 된다. 의지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지 죄에게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우상을 선택하는 것이 어떻게 의지라고 할 수 있나? 사탄에게 사로잡힌 포로다.
    자유를 얻어야만 의지가 작동된다. 자유의지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안에서 깨닫게된 의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자유의지다. 인격은 자유안에서만 존재한다.
    아담이 죄에 사로잡히면서 죄의 포로가 되었다. 무슨 의지로 선악과를 먹었나? 하나님을 향한 의지였나 죄에 사로잡힌 노예였나. 죄에 사로잡힌 노예다.
    죄는 의지로 짓는 것이 아니다. 종이나 포로는 시키는대로 하는 존재지 의지로 시키는 것을 거부하는 존재가 아니다. 어떻게 인간이 죄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찾았나. No, Never.

  • @빌라델비아선교회-v4x
    @빌라델비아선교회-v4x 4 года назад +4

    안녕하세요.
    구원을 관심있으신 분들께 도움 될 글하나 올려봅니다. 감사합니다~
    구원의 양심은 선한 양심이다. 성경에서는 선한 양심에 대해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는 양심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뭔가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그 전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양심이 분명하다. 영적인 상태가 바뀐 것이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이 살아났다 하는 말씀처럼,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살아났다 하는 것처럼 살아난 영이다. 아무래도 죽어있는 영보다 더 생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 생기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더 공평성을 가진다. 더 치우치지 않는다. 신앙의 활력이 있다.

    중생은 산 영이다. 산 영은 산 영의 특징이 있다. 양심만 선해진 것이 아니라 생기가 있다. 마른 뼈같이 영이 죽은 사람에게 생기가 불어 들어와 군대같이 일어섰다고 하였는데 중생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나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부분 자기 영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 채 수십 년간 종교 생활 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라는 말씀이 있다. 죽은 영이 아니라 산영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아 간다고 하였다. 종교인들도 하나님을 다 찾는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찾는다. 그런데 그냥 찾는 것이 아니다. 그냥 기도한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해 찾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영의 활동이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죽은 영에서는 별로 감각이 없었는데 산영이 되니 지각하는 것도 많아지고, 깨닫는 것도 많아지고, 느끼는 것도많아지니 당연히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그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다. 영의 소욕이 달라진 것이다. 영의 의지, 욕구, 감정,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영의 지.정.의가 달라진 것이다. 새롭고 산영이 된 것이다. 생기 있고 생명력 있는 영이 된 것이다.
    중생은 구원의 첫 출발이다. 그치만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 사람들은 교회만 열심히 가도 안주한다. 진리를 알려고도 하지 않고, 영적 성장에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영이 죽어있어 그렇다.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고민하지도 않는다. 어느 정도 사람들이 알아주고, 인정해 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영이 죽어 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고민하기도 하고, 갈망하기도 하고, 진리를 찾아 추구하고... 산 영은 그러하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고 안달을 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열망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열심을 낸다. 그것이 생기 있는 영이다. 지를 해결하는데 더 적극성을 보인다.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싸움이 시작이 된다. 대부분 죄와 피터지게 싸우지는 않는다. 적극성이 있는 것이다. 간절한 기도가 일상이 되고, 더 간절한 기도를 하지 못해 안달이 나고, 더 충만한 은혜를 얻지 못해 안달이 나고... 하나님을 향해 찾아간다는 이 말에는 상당히 많은 뜻이 담겨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보화와 보물들을 소유하기 위해 밤낮으로 적극적인 활동들을 하게 된다. 진리를 배우는데 열심을 낸다. 산 영이 그렇다. 그래서 성경에서 구원 받은 사람들을 보면 다시는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

    성경을 읽으며 자신을 잘 깨달아야 구원이 이루어진다. 그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자신을 찔러 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구원으로 속히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믿음과 죄의식이 없이는 안 된다. 거기에 눌리는 것이 아니라 참된 회개와 구원에 대한 갈망을 더 이끌어 내게 된다. 자신이 깨끗하고 의롭다고 생각하는 만큼 거기서 뭣하러 탈출하고 싶어하겠는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 자리를 탈출하고 싶고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죄의 무게가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다윗은 견딜 수 없는 죄의 무게를 느꼈다. 다윗과 같은 죄가 아니더라도 양심의 악함을 깨달으면 얼마든지 탈출하고 싶지 그 속에서 계속 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못 깨달으면 그런 심정이 생길 수 없다. 이대로가 좋은데 뭣 하러 회개하고 발버둥 치겠는가. 또 그것을 탈출할 믿음이 있냐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교회생활도 말씀을 듣는 것도 다 성경을 근거로 되어야 한다. 그러면 매일매일이 기회가 된다. 인생들에게 날마다 구원을 주시기 원하신다. 날마다 구원과 변화에 도전장을 내밀어야 한다. 구원받았다고 끝이 아니다. 더 영광스런 구원의 여정이 남아 있다. 날마다 도전해야 한다. 구원의 믿음을 얻기 위해, 죄악을 척결하기 위해, 악한 양심을 버리고 선한 양심이 되기 위해 날마다 도전해야 한다. 왜 도전을 못하는가? 되든 안되든 날마다 도전하는 것이 정상이다. 구원의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재미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다. 다른 재미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재미가 최고의 재미이다. 그런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주려고 해야 한다. 곳간에서 인심난다. 구원받는 데에 몰입했으면 벌써 구원 받았을 텐데. 상대방이 자신을 무시하나 안하나 이런것에 관심이 많으니 구원이 안된다. 안타까운 삶이다. 푯대를 구원에 맞추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변화에 맞추어야 한다.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 선을 행하려 할수록 쓸데없는데 관심이 덜 간다. 복음전파에 열을 올리고, 구원에 촛점을 맞추고, 구원 받기위해 기도에 힘쓸 것이다. 구원 받기에 좋은 흐름이 되는 것이다. 구원의 정로를 가면 속히 속히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구원은 침노하는 것이다. 소극적인 사람은 구원 못 받는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속 도전해야 한다. 달라고 해야 한다. 자신에게 선한 양심을 달라고 적극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받을 가능성이 많지 줄거면 주고 말거면 말라는 식의 사람이 잘 받겠는가. 구원도, 변화도 도전장을 내밀어야 한다. 모든 환경과 분위기를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