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막연하게 '이쁘다', '조상님의 기술 멋져' 이런식의 내용이 아니라 철저한 근거자료, 기록을 통해 추리하듯 들어가는 내용에 감탄만 나왔습니다. 부여석조 영상부터 연달아 2개의 영상을 본 시간이 정말 최근 유튜브에서 본 시간 중 가장 알차고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한국 국가유산의 관한 채널은 답사채널 외에 그렇게 관심가는 곳이 없었는데 오늘 영상 보는 내내 감탄만 했습니다. 다만 원본 되는 비석과 그 탑본이 언제, 어떤 이유로 사라졌는지가 궁금하네요. 원본이 남아있었다면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었을텐데요.
흥미롭네요.순서가 정림사지 오층탑에 먼저 새기고 그 이유는 이 탑이 백제 도성의 랜드마크이기 때문에 그 다음 왕궁에 있던 부여석조에 새기고 이후 유인원의 기공비가 새워졌다라고 보았는데...비석 형태의 평제비가 존재했고 유인원이 기공비가 새워질 당시에 정림사지 오층탑과 부여석조에 복각 되었다.
그냥 내 생각입니다만 당나라군들이 이국땅에서의 일시적인 승리로 인한 뭔가 모를 두려움 철군에 대한 불안함과 조급함으로 인해 후세에 기록이라도 서둘러 잔 뜩 남겨두려고 여기 저기 덕지덕지 복각을 잔 뜩 해둔게 아닌가 싶습니다. 왜 비근한 예로 오늘날에도 전두환 처럼 장군으로서 쿠데타를 성공한 후 자신의 취약한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념우표며 기념주화이며 자신의 치적을 기록으로 하나라도 더 남기려고 안간힘을 썻던 것과 비슷한 심경이 아니었나 합니다. 특히 사마천 이후 기록이야 말로 역사라고 생각했던 중국의 역사의식에서 그 인식이 절정에 달했던 당나라였으니 만큼 소정방 유인원 이근행을 비롯 당장들의 기록유산에 대한 유혹과 경쟁도 그만큼 치열했었다고 봅니다
정말...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막연하게 '이쁘다', '조상님의 기술 멋져' 이런식의 내용이 아니라 철저한 근거자료, 기록을 통해 추리하듯 들어가는 내용에 감탄만 나왔습니다. 부여석조 영상부터 연달아 2개의 영상을 본 시간이 정말 최근 유튜브에서 본 시간 중 가장 알차고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한국 국가유산의 관한 채널은 답사채널 외에 그렇게 관심가는 곳이 없었는데 오늘 영상 보는 내내 감탄만 했습니다. 다만 원본 되는 비석과 그 탑본이 언제, 어떤 이유로 사라졌는지가 궁금하네요. 원본이 남아있었다면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었을텐데요.
귀한 시간 내어 영상을 봐 주신 것도 감사한데 알차고 기억에 남을것 같다는 말씀에 더 힘내서 영상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들어습니다.
영상 재밌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흥미롭네요.순서가 정림사지 오층탑에 먼저 새기고 그 이유는 이 탑이 백제 도성의 랜드마크이기 때문에 그 다음 왕궁에 있던 부여석조에 새기고 이후 유인원의 기공비가 새워졌다라고 보았는데...비석 형태의 평제비가 존재했고 유인원이 기공비가 새워질 당시에 정림사지 오층탑과 부여석조에 복각 되었다.
영상 흥미롭게 시청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신기하지. 저기가 백제의 수도였다는 유물 유적은 없고 백제가 망한 증거만 남아있다는 거....
그냥 내 생각입니다만 당나라군들이 이국땅에서의 일시적인 승리로 인한 뭔가 모를 두려움 철군에 대한 불안함과 조급함으로 인해 후세에 기록이라도 서둘러 잔 뜩 남겨두려고 여기 저기 덕지덕지 복각을 잔 뜩 해둔게 아닌가 싶습니다. 왜 비근한 예로 오늘날에도 전두환 처럼 장군으로서 쿠데타를 성공한 후 자신의 취약한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념우표며 기념주화이며 자신의 치적을 기록으로 하나라도 더 남기려고 안간힘을 썻던 것과 비슷한 심경이 아니었나 합니다. 특히 사마천 이후 기록이야 말로 역사라고 생각했던 중국의 역사의식에서 그 인식이 절정에 달했던 당나라였으니 만큼 소정방 유인원 이근행을 비롯 당장들의 기록유산에 대한 유혹과 경쟁도 그만큼 치열했었다고 봅니다
당나라 놈들이 바보도 아니고 정식 비석 하나 못구해서 불교 탑과 유물에 낙서하듯 승리 흔적을 남겨? ㅎㅎㅎㅎ
올바른 지적 입니다.
배신자들이.너무많응게
조작된 유적을 뭘 그리 따질일이 있는지.
제작년도 규명부터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