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배우는 원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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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8 фе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70

  • @corea359
    @corea359 6 дней назад +18

    만주는 한반도의 3배가 넘는 곳입니다. 한반도가 압록강유역, 한강유역, 낙동강, 두만강, 금강, 섬진강 등의 지역이 있듯이 만주에도 송화강, 요하, 청하, 혼하, 혼강, 태자하, 벽류하, 유하, 대릉하, 휘발하, 부이강, 교하, 음마하, 이통하, 랍림하, 목릉하, 수분하(솔빈강), 모란강, 오소리강, 눈강, 흑룡강, 삼강평원의 칠성하 등등 많은 지역이 있고 선학(先學)들의 연구로 과거 여러 세력들의 대략적인 비정이 되어 있고 고고학연구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자료의 양이 다르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상세한 한반도에 비해 만주 지역에 대해서는 다소 뭉뜽그려 그려지는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역대 중국 정사 25사의 외국열전들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비록 중국 시각에서 기록되었으나 한국 고대사에서도 중국 정사의 동이전 기록들이 가뭄의 단비와 같듯이 기본적인 계보, 정보들을 접할 수 있는 자료들입니다.

  • @바르게살자-z3x
    @바르게살자-z3x 2 дня назад +3

    한반도내에 유주? 한사군이? 맞아요? 정말 모르겠어서 그런거예요~ 공손씨 영토가 한반도 북부? 맞아요?

  • @종간-j1g
    @종간-j1g День назад +1

    국뽕들 분노한거 웃기면 개추 ㅋㅋㅋ
    역사 1도 모르는것들이 불만은 겁나 많아요

  • @gggg33333ee
    @gggg33333ee 4 дня назад +2

    솔직히 ... 만주는 중국에서 독립된 자주국가가 건국 되었어야 했음 ... 만주지역의 역사를 보면 봉건사회 + 절대왕권이 반복되는 신기한 지역이다 보니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풍습 , 민족 , 언어 , 종교가 있었음 . 청나라가 한족에 동화되면서 그 모습이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만약 독립된 국가로 남았다면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대등한 현대적인 국가가 되었을꺼임 .

  • @corea359
    @corea359 6 дней назад +4

    오류 추가.. 고막해가 왜 3세기에 나올까요..
    삼국지 시대에는 아직 동호의 잔당 선비족과 오환족이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고막해는 위서(북위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에 처음 등장하는데
    4세기 모용부에게 격파되어 흩어진 우문부의 잔당들이 송막에 모여 산 것이 그 시초입니다.
    즉, 337~348년 사이 흩어졌다가 어느 시점에 송막에 모여 집단을 이루고, 388년 북위 태조가 고막해 원정을 한 것이 고막해의 첫 시작입니다. 200년대 초기에 오환이 비운 자리에 고막해가 들어가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선비연합이란 것도 연합이 아니라.. 선비제부(鮮卑諸部)이겠지요. 거란8부, 말갈7부, 고막해5부, 실위20여부처럼 선비도 여러부가 있었지요.(모용부,단부,우문부,탁발부 등)

    • @칸의장우산
      @칸의장우산 6 дней назад +1

      이런 상세한 역사들은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요? 위서 같은 외국 열전 자료들은 한문으로 되어 있는 것을 직접 공부하시는 건가요?

    • @MirsAcademy
      @MirsAcademy  5 дней назад +5

      고막해 건은 영문 위키피디아에 기재된 오류를 그대로 수용한 것 같습니다. 다음 영상에서 수정하겠습니다.
      선비의 경우 단석괴가 여러 부(部)의 연합을 이루었던 것으로 알았는데 아닌가요?

    • @칸의장우산
      @칸의장우산 5 дней назад

      @@MirsAcademy 단석괴 사후에 화련 등의 리더십 부족으로 선비 연합이 급속도로 해체되어 이렇게 서술하신 것 같아요

    • @corea359
      @corea359 5 дней назад

      @@칸의장우산 단석괴는 2세기 중반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합니다. 단석괴가 여러 선비족들을 아우르고 비어있던 몽골고원까지 장악한 것은 2세기 후반입니다. 그런데 이영상에서는 1세기 이미 선비 연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단석괴 재위기라 하더라도 연합이라는 단어가 적절한지 여부가 갈립니다. 연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문제부터요. 북방 민족들의 여러부와 그중 영향력을 가장 크게 행사한 부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 양상이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말이죠. 한때 한국사에서 변한 이후 여러 가야국들을 가야연합이라 불렀으나 사실 들여다 보면 김해 금관가야든, 후기의 고령 대가야든 전체를 주도하여, 전체를 연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세력이나 입김이 더 강하였다 정도이고, 함안 아라가야(안라국) 등 제3의 제4의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백제,고구려,신라와 외교하는 등 다양한 양상들이 나타났기에 근래에는 가야연합이 아닌 가야제국(諸國)이라 부르고 있죠. 마찬가지로 선비족의 여러 부들도 단석괴 계열이 잘나갈 때는 단부, 중원진출 후 동북부는 모용부, 서북부는 우문부, 북부는 탁발부 등 서로 각기 경쟁하였습니다.

    • @corea359
      @corea359 5 дней назад

      @@MirsAcademy 부여의 영역이었다가 고구려 대무신왕 이후 고구려 영역 내지는 부여와 고구려의 경계가 되었던 휘발하 유역에 잘못 표시된 숙신에 대해 적은 댓글이 지워졌네요. 어째서 지워졌을까요..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4 дня назад +1

    등주,래주,빈주,제주가 요가 산서와 산동에 도착.
    산동에 도착 (대명여지도 초기본,초중본). 산해위가 부각되면서 한번더 이동.

  • @brgb90
    @brgb90 2 дня назад

    숙신이 왜 백두산에 있나요.. ㅋㅋㅋㅋ

  • @배달의민족-o8q
    @배달의민족-o8q 3 дня назад +1

    전형적인 역사왜곡이네 ㅎㅎ 참기가 찬다 ㅎ 이러니 중국이나 일본이 좋아하지 ㅎㅎ

  • @이정엽-i9k
    @이정엽-i9k 2 дня назад

    고구려 시작과 끝은 북평, 어양, 산곡, 태원 오늘 날 산서성과 하북성 지명이다. 한서와 삼국사기 모두 이 지역을 얘기하고 있지. 고구려가 얼마나 큰 나라였는지 모르지? 날조된 역사 어서 바꾸자.

  • @zanzamaha-z1o
    @zanzamaha-z1o 4 дня назад

    삼한 지역에는 일본어계 언어를 쓰는 주민들이 살고 있었나요? 살고 있었다면 얼마나 살고 있었나요?
    역사룡님 영상을 보면, 원시 일본어계 집단이 현재 열도지역까지 도달하려면 반드시 한반도를 거쳐가야 할 듯 한데,
    그들이 한반도에서 언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끼쳤는지 궁금합니다.

    • @Mk.11-q9i
      @Mk.11-q9i 3 дня назад

      일본어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독립되어 발전되어온 언어이고, 한국어는 알타이족으로 분류가 되는게 일반적이나, 일본어는 따로 독립된 언어로 보는 것이 일반적임.
      삼한 지역에는 일본어계 언어를 쓰는 주민들이 살고 있었나요? 살고 있었다면 얼마나 살고 있었나요?
      라는 답변에 대해서 답변을 드리자면(짧은 식견으로,,)
      이미 삼한시대까지 왔을 때 쯔음이면 한반도와 일본에 이미 인간이 정착을 하고 있었고 그 상태에서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열도와 반도가 따로 분리되어 각자의 언어가 발전해왔기 때문에 일본어계 집단이 한반도에 남았을 것으로 보는 일은 학계에선 잘은 다루어지지는 않는 것 같네요.
      한국어와 일본어가 각자 독립된 언어이고 고립어 인데도 불구하고 왜이렇게 유사한 부분이 많냐 하면.. 백제와 야마토 정권 간의 교류를 통해 당시 중국의 선진 문물의 일종인 "한자"와 유교, 불교 등을 야마토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배우기 시작하면서 언어의 유사성이 깊어진 것 같네요.
      반도 일본어설 이라고 해서 '알렉산더 보빈'의 가설이 있는데 백제어가 일본어에 상당부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이걸 기준으로 보고 한반도에서의 일본어계 집단을 다소 크게 확장시켜 백제 전체로 본다면 큰 영향이라고는 할 순 있을듯.

    • @kimx5
      @kimx5 2 дня назад

      그냥 지배적인 토착민 수준이라 봐야겠죠. 중부와 남부에서.. 더 쉽게 설명해서 세형 동검 영역 정도겠네요. 즉 한마디로 중부 남부 그 자체. 한반도 북부에도 어느정도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남중국 해안가를 가로질러 요서요동루트로 한반도에 진입했을 가능성 충분히 있음), 다만 한반도 동북지역은 옥저로 대표되는 물질문화권인 것 같고(예전에 본 바로는 부여-속말말갈-옥저로 이어지는 일련의 물질문화가 있다고 했는데 이름 기억 안남), 한반도 서북부는 기층민이 반도일본어족 집단에 극소수 한나라발 중국어 화자가 약간 섞여있을 가능성.. 그냥 대체로 한반도 대부분 지역이겠군요. 한국어족은 기원전 한참 전에 한반도에 정착한 일본어족보다는 좀 더 늦게 남만주와 한반도에 온 것으로 보이고 오자마자 매우 강력한 군사활동을 벌여 몽골계와 퉁구스계 그리고 한사군과 반도일본어족이 장악한 만주와 한반도를 비집고 들어가 최후의 정복자집단이 되었을 가능성 높고

  • @오영삼-x4t
    @오영삼-x4t День назад

    차이나!!

  • @toshikawa-z4w
    @toshikawa-z4w 6 дней назад +3

    부여정도는 주요 국가로 표시하는게 좀 더 올바를 듯 합니다.

    • @하하하-h1r
      @하하하-h1r 4 дня назад

      문제는 부여가 기록이 남지 않아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중국에서 남긴 기록뿐이라 기껏 남은게, 풍습과 선비족에게 나라가 망해서 연해주 쪽으로 이동해 동부여를 세웠다더라 같은 이야기일 뿐이고, 이 와중 기존 부여는 어찌저찌 제건하여 북부여가 되었다고는 하는데, 이 과정이 명확히 나오지 않기도 하여, 부여는 많은 부분이 미스테리로 쌓여있어. 주요국가로 쓰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요 국가로 표시하려면 전쟁기록 같은 것도 어느정도 표기해야하기도 하니까요.)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4 дня назад +1

    북평(大都)의 도착.
    (대명여지도 초기본,초중본,중초본) 북방지역의 상실.
    上都의 도착 (초중본) (흉노,거란,금,여진,원나라의 과거史가 북방에 도착하는 토대가 됨)

  • @Hongcacola99
    @Hongcacola99 4 дня назад +3

    이런영상엔 항상 민족주의 국뽕사관을 가진 사람과 자학주의 식민사관을 가진 사람들이 넘치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이상한 사람들 무시하시고 좋은영상 계속 만들어주세요

    • @dolgum826
      @dolgum826 3 дня назад

      너무 국뽕도 짜증나지만 이딴 동북공정 역사왜곡은 더 역겹다

  • @크라이-z7k
    @크라이-z7k 4 дня назад

    삼국지도 한번 해주세요

  • @lIlIllIIlIlIlllIIlI
    @lIlIllIIlIlIlllIIlI 5 дней назад +1

    을불은 어디 소금을 가져다 팔았을까요

    • @corea359
      @corea359 5 дней назад

      미천왕은 중국 진나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 태어났습니다.
      이미 중국 위촉오 3국시대 기록에 옥저가 고구려에 복속하여 짐승가죽, 물고기, 소금을 바쳤다고 하니 함경도~연해주 동해안의 옥저에서 들어온 소금일 수도 있겠죠. 미천왕의 증손자인 광개토왕 때는 고구려를 약탈하던 시라무넨강 상류 비려(거란으로 추정)를 응징하면서 그 지역의 암염(육지의 바위에서 나는 소금)을 확보하였습니다.

    • @하하하-h1r
      @하하하-h1r 4 дня назад

      흠.... 당시의 고구려는 산골짜기에 위치한 국가였고, 주변 세력들의 정리도 그닥이었습니다. 그래서 고구려 내부에서 소금을 얻으려면, 재일 쉬운것은 암염이지만, 그 일대는 암염이 안나니 불가능하고, 특정 식물을 태워 소금을 얻는 방법이 있으나 해당 특성을 가지는 식물은 만주에서 생장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이조차도 불가능, 가축의 분뇨를 말리고 태우고, 물에 녹여 얻는 방법도 있으나, 이는 비효율적입니다. 결론은 을불은 개마고원을 넘거나, 한사군을 넘어갈 수 있는 지혜나 한사군 관계자들과의 자그마한 연줄, 아니면 요동,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일대의 지리에 능한 사람이거나, 혹은 이 셋을 무시할 수 있는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 입니다. 흠..... 이렇게 말하고 보니, 을불이 마냥 소금장수라고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 @팀킬-w1q
      @팀킬-w1q 4 дня назад

      @@하하하-h1r 소설을 잘도 쓰는군

    • @하하하-h1r
      @하하하-h1r 3 дня назад

      @@팀킬-w1q 우선 지금의 비즈니스 맨과 당시의 상인을 동일 선상에 두어서는 안됩니다. 중세에 칭기즈칸이 금나라를 정벌하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이 이슬람 상인들의 길안내였고, 이라크와 이란의 정벌에 큰 역할을 한 것이 베네치아 상인들의 길안내 였습니다. 심지어 소금은 당시 동아시아의 전쟁물자 중 하나입니다. 심지어 을불이 생존해 있을 당시 한사군도 멀쩡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동해안을 제외하면 바닷가가 없었던 고구려는 어쩌면 한사군을 통해서도 일정량 소금을 공급받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느쪽이든 이 과정에서 소금장수는 그 일대의 지리를 거의 완벽하게 외우고 다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심지어 미천왕 시절 한사군이 고구려에 복속되므로, 이때의 일이 아예 연관이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 @하하하-h1r
      @하하하-h1r 3 дня назад

      참고로 미천왕의 이름이 을불입니다.

  • @fantasia3960
    @fantasia3960 4 дня назад +5

    한사군 위치가 이상한 것 같다. 한반도 내에 없었다는 게 정론인데.

    • @HistoryGark
      @HistoryGark День назад +1

      한반도 내에 있었다는 게 정론이겠죠

    • @UnitedKorea-w1s
      @UnitedKorea-w1s День назад

      그럼 어캐 대륙으로 부터 선진 문물어 오고 한자 도입이 되냐 ㅡㅡ 가까운 한사군 통해서 다 들어왔는데

  • @응아아아-e4d
    @응아아아-e4d 4 дня назад +3

    황해표기는 잘못입니다 서해표기로 고쳐주세요

    • @팀킬-w1q
      @팀킬-w1q 4 дня назад

      @@zanzamaha-z1o 무식한 화교가 분탕을 치고 있네

    • @Mk.11-q9i
      @Mk.11-q9i 3 дня назад

      둘다 맞습니다.. 한 번 지적하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는 것이 지명 논쟁입니다

  • @동해-q2i
    @동해-q2i 2 дня назад

    한반도 왼쪽이 황해?...서해라고 똑바로 써라.
    공부 더하고 유튜브 해라.
    식민사관학자야.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4 дня назад +1

    형주,공안,강릉,적벽 등이 호광성에 도착.
    대명여지도 (중기본,중초본,중중기본)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4 дня назад +1

    요가 산서,산동에 도착하기전 출발지의 요. 元 ~ 요의 전체,이서북편,이남남편,요동의 일부(홍복원)
    北元 ~ 요의 절반,이서북편. 명초기 20년사 이전을 홍건적.
    明初 20년 ~ 요의 절반,이남남편,요동의 접경
    明初 20년 후반기 ~ 요의 전체,이남남편,요동의 일부 명초기 20년사가 ㅇㄱ .

    • @Mk.11-q9i
      @Mk.11-q9i 3 дня назад

      적다가 졸으신건가요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3 дня назад +1

      @Mk.11-q9i
      개인적인 공부를 위한 소소한 댓글입니다.
      보시는 분들의 시각이 맞다고 봅니다.

    • @Mk.11-q9i
      @Mk.11-q9i 3 дня назад

      북원과 명초 간 역사인건가여? 북로남왜 중 북로의 역사를 ㄷ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3 дня назад +1

      @Mk.11-q9i
      왼쪽 제목부를 보시면,
      요가 산서,산동에 도착하기전 출발지의 요.

  • @dolgum826
    @dolgum826 3 дня назад +1

    동북공정 하냐? 역사왜곡 오지네

  • @User0083rrt5vxssoervzjkboz
    @User0083rrt5vxssoervzjkboz 2 дня назад

    개판이네

  • @산천은유구한데
    @산천은유구한데 5 дней назад

    사기의 한자 해는 하 라고 했는데..
    백년하청이라는 말을 보면 하는 황하, 해는 하이므로 해도 황하 ...

  • @Sinkmalchi
    @Sinkmalchi 4 дня назад +3

    동북공정+식민사학 지도 가지고 고생하셨네. 지형은 고려하지 않은 선 긋고 땅따먹기 지도 아닌가요?

    • @하하하-h1r
      @하하하-h1r 4 дня назад +3

      실례지만 어디가 오류인가요? 고막해 부분은 오류일 수도 있지만.... 그외에는 오류라 할 부분이 없어보입니다. 마힐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식민사관을 말하고 계시는데, 일본입장에서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의 문화권을 축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과장하는 것이 훗날 내선일체가 잘 마무리되면, 만주지역의 지배권을 확립하기 좋은 명분이 되므로, 이득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 치하에 일본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를 축소하는 것이 무슨 이득이 된다고 이들의 영향권을 축소시킵니까? 오히려 중국은 현재 수많은 이민족의 땅을 영향 아래에 두고 있으므로 고조선, 고구려의 영향권 축소와 역사 왜곡이 이득이 됩니다. 근데, 일제가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런 행동을 합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유물로 남은 영향권, 역사서, 식민지 당시의 일제의 입장 등을 모두 생각해봐도 말이 되지 않는 발언인 것 같습니다.

    • @하하하-h1r
      @하하하-h1r 4 дня назад +6

      그리고 당시의 국경을 정확히 긋는 것은 상당히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당시의 명칭이 무엇을 뜻하는 지도 완벽하게 알지도 못하고, 무엇보다도 당시의 국경이라는 것도 대략적으로 정해놓은 것에 불가하여, 완벽히 그 시간 그대로 그어놓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하며, 당시의 기록서와 유물등을 근거로 대략적인 추정을 한 것일 뿐입니다.

    • @gpt_rule_the_world
      @gpt_rule_the_world 4 дня назад +3

      뭐만하면 식민사학 타령..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한 것도 식민사학임?

    • @Mk.11-q9i
      @Mk.11-q9i 3 дня назад +1

      틀니 냄새 존나 내뿜는 이상한 환뽕 틀튜브 쳐보면서 뽕 채우고 여기왔네 ㅋ
      지가 유튜브로 쳐 배운 "ㅈ문"지식과 소위 "한단고기"같은 되도않는 책 들고와서 삼국사기 삼국유서 이외 중국의 역사 서적들을 반영한 지도에 대해 비판하는 모습. 아름답다 아름다워~
      일단 이거 보고 식민사학 동북공정ㅇㅈㄹ 떨엇으니 환단고기를 지지한다는 거겠지.. 대륙백제니 대륙신라니 뭐니.. 근데 이런 새끼들 특이 환단고기에 대해 자세히 읽어본 적도 없고 걍 틀튜브 쳐보고 무지성 비난부터 하고 보는거임 ㅋ

  • @팀킬-w1q
    @팀킬-w1q 4 дня назад +1

    또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에 따르면 읍루는 한나라 이래로 부여에 복속되었다가 서기 220년에서 226년 사이에 떨어져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부여가 읍루를 지배했다는 사실을 반영시키지 않았습니까?

    • @kimx5
      @kimx5 2 дня назад

      어.. 확실히 이건 맞군요. 부여가 개별 읍루 부락들을 통제하고 영향력을 끼치던 건 분명 기록된 사실이고 정황상 매우 그래보이긴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