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영상을 보다 궁금증이 생겨서 댓글 답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학부생인데요! 이탈리아의 남쪽이 빈체제로 인해 양 시칠리아 왕국이.들어섰다고 설명해주신 부분이 이해가 안가서 질문드립니다! 양 시칠리아 왕국은 중세 때 프랑스 앙쥬 백 샤를과 아라곤의 피터의 대결 끝에 생겨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제가 아는게 틀린건가요? 그리고 책에서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이 있을 당시 이탈리아 남부에는 나폴리왕국이 있었다고 나오는거 같은데 혹시 나폴리왕국과 양시칠리아왕귝이 같은 건가요??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항상 유익한 정보 감사해요~
이탈리아 역사를 연구하는 전공자입니다. 영상 잘 봤습니다. 내용 정리 훌륭하고 좋은 지도 많이 활용하셨네요. 다만 한 가지 내용상 오류가 있습니다. 가리발디가 붉은 셔츠단을 이끌고 시칠리아 원정을 떠날 때 샤르데냐 왕국과 카보우르의 지원을 받았다고 언급하셨는데 제가 알기론 아닙니다. 카보우르는 가리발디가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주도적인 인물로 떠오르던 초기부터 그를 경계하고 내심 적대했다는 게(공공연하게 이를 드러낸 경우는 많지 않지만) 최근 50년 사이 이탈리아 사학계에서는 더 널리 인정받는 설입니다. Denis Mack Smith라는 영국 학자의 책을 참고해 보세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가족관계도 잘 살펴보면 신기한 점이 좀 있습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왕비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레오폴트 2세의 10남 라이너 대공의 차녀 아델라이데(독일어로는 아델하이트)였는데,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모후는 레오폴트 2세의 차남인 토스카나 대공 페르디난도 3세의 3녀 마리아 테레사(독일어로는 마리아 테레지아)였기 때문에 아델라이데 왕비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모후 마리아 테레사의 친사촌이라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당이모가 됩니다. 또한 동시에 아델라이데 왕비의 어머니인 마리아 엘리자베타 대공비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고모라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고종사촌이기도 하지요. 좀 복잡하긴 한데, 정리하자면 아델라이데 왕비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고종사촌 겸 오촌 당이모입니다. (부계 4촌, 모계 5촌) 그런데 여기서 좀 신기한 게, 당이모라고 하면 왠지 아델라이데 왕비가 연상이어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델라이데 왕비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보다 오히려 두 살 어립니다. 이건 아델라이데 왕비의 아버지인 라이너 대공이 형들과 나이차가 좀 있는데다 결혼을 약간 늦게 해서 39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아델라이데를 얻은 탓에 사촌언니(이자 시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사와 나이차이가 21살이나 나는데, 마리아 테레사는 19세라는 제법 이른 나이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낳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더 신기한 사실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대립 관계였던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육촌관계라는 것입니다.(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형) 이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외조부인 토스카나 대공 페르디난도 3세가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조부인 프란츠 2세와 형제간이라 그렇습니다.
오늘도 좋은 내용보고갑니다 전 항상 라데츠키 행진곡을 듣는데 라데츠키가 이탈리아 독립운동을 저지햇다는 점에서 요한스트라우스가 작곡하여 헌정햇는데 항상 빈필하모닉 뮤지크페라인에서 1월1일에 연주하는데 이태리 외교관들도 초청을해서 보는데 무슨심정일까 한번생각해보곤합니다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우리나라로서는 받아드릴수없을것같은데...
라데츠키 장군 개인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감정은 긍정적인 편인 것으로 압니다. 이유는 라데츠키가 1848년 밀라노 5일 혁명 실패 후 북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영토(롬바르디아-베네토)의 총독으로 임명됐는데 재임 중 유화, 관용 정책으로 이탈리아인들을 달래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라데츠키는 군인이지만 문화적인 교양도 높아서 당시에 베르디 같은 이탈리아 문화계의 중요 인사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1차대전 종전 100주년인 2018년에 빈필하모닉의 뮤지크페라인 신년음악회에서 이탈리아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를 맡았었습니다.라테츠키 행진곡 연주 때도 불편한 분위기 같은 건 없어 보이더군요.
@@fudgfh68449 이탈리아 라 페니체 극장 신년음악회에서 라데츠키 행진곡은 ‘과거 적국’의 음악으로 금기시돼 왔다. 이탈리아인이 지휘한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대신 라 페니체 극장 신년음악회를 생중계한 RAI에 불평을 늘어놓은 무티의 인터뷰는 현재 이탈리아에서 논쟁거리다 이렇게 되어잇는걸 히브리의 노예합창을 부른다는데요..? 음 솔직히 저도 잘모르겟어요 찾아본거라서
함세님~ 영상 너무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드리구요^^ 질문 하나 올립니다. 봉건제 하에서 민족과 국가에 대한 개념을 갖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어떻게 그런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통일에 대한 의지는 농노와 영주 등 모든 신분에게서 나타난 현상인가요?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할 때와 서구역사를 공부함에 있어 영토, 민족, 국가..등에 대한 관념이 다른 것 같아 정리가 잘 안되네요;;; 도와 주셔요~~
안녕하세요. 제가 해당 시대 전공자가 아니라서 조심스럽지만,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츠 1세가 결혼하면서 공식적인 가문의 이름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Habsburg-Lothringen, 즉 합스부르크-로트링엔이 됩니다. 다만 공식적인 이름과는 별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줄여 부르는 것입니다.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저때 공화정은 현대 공화정과는 여러모로 달라서 정치적 불안이 항상 존재했음. 이념의 시대라 반대파에 대한 탄압이 항상 있었는데, 군주제는 국왕이라는 중재자가 있기 때문에 정책의 연속성이 어느 정도 담보되고 정권이 바뀌어도 마음대로 하기 어려웠지만, 공화제는 최고지도자가 바뀔 때마다 피바람이 불어도 견제할 세력이 없었거든. 당장 저때 프랑스만 봐도 공화국이던 기간 내내 끊임없이 혁명과 폭동 봉기를 거치면서 자멸하다가, (물론 지금 와서 보면 암군이지만) 나폴레옹 3세 시기에 그나마 국가 꼴이 돌아갔고. 독일도 제국보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카이저보다 퓌러가 훨씬 거대한 권력을 손에 쥔 채 폭주했었고..
왜 양차대전기를 풍미한 이탈리아의 주력전함도 오늘날 이탈리아 해군의 항모명에도 카보우르라는 이름이 붙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리발디 역시도 전함, 항공모함의 이름으로 공히 쓰이는 이유지요. 우리로 친다면 세종대왕, 이순신 등의 이름을 쓰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요? 여담인데 프랑스의 다음 항모 이름은 리슐리외가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리슐리외가 당대 프랑스 해군을 영국 해군에 맞설 만큼 키운 공적이 있어서…
축구선수 미셸 플라티니와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은 1차 대전 후 프랑스로 이민 간 이탈리아계 프랑스인이네요. 이탈리아 통일 3걸 중 주세페 가리발디와 주세페 마치니의 주세페는 요셉(뜻:더하다)이죠. 카밀로 카보우르의 대부모가 나폴레옹의 여동생 폴린과 매제 카밀로 보르게세인데 대부 이름을 따 카밀로가 되었고 카밀로가 통일의 댓가로 가리발디의 고향인 샤르데냐왕국의 니스를 프랑스에 넘긴 것을 통탄해 했죠.
일단 이탈리아 통일의 외교적 배경에 있어서 사르디니아의 뜬금없는 크림전쟁 참전 그리고 까부르가 가리발디를 제지하는데 있어서 가리발디의 로마 진입을 제일 우려 했다는 점도 추가됐으면 좋겟네요. 전자는 카부르가 프랑스의 호의를 사기 위한 자신의 국력수준에 맞지 않는 대외 군사 행동이였고 이때 세바스토폴 부근으로 영프 함선을 타고 떠나는 사르디니아 군에 대해 카부르가 연설하면서 가서 피를 더 많이 흘릴수록 이탈리아는 통일에 다가간다 라고 말한것이 그의 의도를 잘 설명해주고. 로마는 당시 교황을 프랑스가 보호하는 상태에서 이탈리아군이 이런 프랑스의 영향력을 무시하고 들어갔다간 한계는 있지만 어느정도 모양은 갖춘 이탈리아 통일이 열강의 개입으로 송두리째 무산될까봐 카부르가 현실적 판단으로 가리발디의 낭만적 민족주의 행동을 경제 하려고 했던걸 지적하면 좋을거 같습니다. 어쨋든 이탈리아는 믿을수없이 냉철한 카부르와 터무니없이 낭만적인 가리발디에 이해 이루어졌다는게 역사의 아이러니고 매력인듯
2차 세계대전 때 정확히 1943년 이후 이태리 남부 지역에서 이탈리아 왕국이 연합국🇺🇲🇬🇧🇫🇷한테 항복해서 나치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연합국🇺🇲🇬🇧🇫🇷편에 들었고, 반면에 북부 지역에서 추축국 나치독일의 꼭두각시 하에 1945년에 멸망할 때까지 이탈리아 사회공화국(+베니토 무솔리니)이 짧게 세워졌다.
샤르데냐 왕국(feat.카보우르):야 저것들 남쪽에서 너무 빨리 밀고 올라 오는거 아냐..? 미리 가리발디 조져야 될 것 같은데.... 그후... 가리발디:야 이탈리아 남부 니들이 통치해 샤르데냐 왕국(feat.카보우르):어..? 어.. ㄱ..고맙다 야...(은근슬쩍 칼 숨김)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민족주의가 이탈리아 통일의 동력이 된 건 알겠는데, 왜 이탈리아라는 지역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관념이 형성된건가요?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는 혈통, 언어가 상당히 이질적이고 지금도 지역 감정이 심한 것으로 알고있는데, 왜 굳이 이탈리아라는 지역이 통일의 단위가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출신이 아니라 이탈리아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900년 동안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은 후 이탈리아가 프랑스에 최근 양도한 프랑스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모두 이탈리아인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의 가족은 이탈리아 출신이었습니다. 그의 부계 조상인 부오나파르테스는 16세기에 코르시카로 이주한 토스카나 소귀족의 후손이고, 그의 모계 조상인 라몰리노스는 소제노바 귀족 가문의 후손입니다.[15] 부모인 Carlo Maria Bonaparte와 Maria Letizia Ramolino는 아작시오에서 오늘날 Maison Bonaparte로 알려진 "Casa Bonaparte"라는 조상의 집을 유지했습니다.
근대 현대 유럽 이야기는 해주는 채널이 많이 없어서 자주 와서 보게되네요ㅎㅎ 잘보고 갑니다!!
댓글없노 ㅋ
? 형
서로 친하게 지내세요
역사의 두 전설
오잉..두 거물 역사 유튜버의 만남인가.. 이 작품은 "천지창조"라고 부릅시둥..))
진짜 이만한 퀄리티의 영상은 다른곳에 없다
ㅇㅈ
떡상 대기중
웬만한 인강보다 유익합니다.
있음
드물긴 하겠지만
남이탈리아를 거의 통일하면서 이탈리아 전국통일을 이룰 수도 있었을 법한 가리발디가,
시민들의 의견을 완전히 존중해서 샤르데나 왕국에 자신이 통일한 영토를 모두 헌납했다니
어떻게 이런 지도자가 있을 수 있는지 놀랍습니다.
10분상식 세계백과 원래 이태리는 남부랑 북부의 경제적, 정치적 격차가 너무 괴리감이 느껴질만큼 심해서 북부 중심으로 병합되는게 맞죠
그당시 북이탈리아는 대도시고 남이탈리아는 깡촌일정도임
상남자특) 박수칠때 떠남
@@제로프레이 도시개발은 북부가 잘되있긴 했지만 진짜 갑부들은 남부에 있었다고 합니다
@@bluewings8218 스페인 때문에 그런거 아니였음? 한때지배권이였으니
유튜브 역사 채널 중 최고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역사 이야기 자주 부탁드립니다 너무 잘 보고 있습니다
오스만제국의 흥망성쇠와 이후 분열되어진 나라들을 특집으로, 장기간으로 기획해서 풀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스만은 근 현대 유럽역사에 절대로 빼 놓을 수 없는 국가이기에 부탁드립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저를 이 채널로 이끌었고 이틀동안 모든 영상 다 보았어요
구독하고 가고요 ㅎ 같이 공부 하는 친구들 한테 채널 영업 중입니다
모든 영상을 다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
@@user-xg6em6ls3h1 무엇 때문에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공격적인 댓글을 남기시는지는 몰라도
결국 원망하고 미워하고 비난하는 말과 그 마음은 본인에게 돌아갈꺼예요 마음 이쁘게 잘 쓰세요
@@yusoj3725말을 참 선하게 잘하시네요. 공부 열심히 하세요.
저도 열공 합니다!
잘 알지 못했던 이탈리아의 이 시기 역사가 잘 정리되네요. 넘 유익하네요. 곳곳에 꿀잼이 섞여있어 완벽하네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
사르데나 왕국을 보면 선제적인 양보와 적절한 타협이 결국 통일 왕국을 먹는 힘을 보여주네요
잘 보고 갑니다. 저는 아마 몇 번은 더 봐야 확실히 알 수 있을거 같아요.....따흑
매우 유익한 채널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르데냐왕국 국왕이 입헌군주제 채택과 열강들과의 외교술 가리발디의 남부이탈리아지역 무상양도등이 이탈리아가 통일국가로 가게된 진정한 이유였군요. 좋은영상 잘보았습니다.
핵심만 꼭 찝어내어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내는 당신은 정말..
넘모 잼있고 유익하다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ㅎㅎ 혹시 크림전쟁에 대한 영상도 올려주실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뮌헨협정 영상보다가 혹시 리소르지멘토에 대해 다루신 것도 있나 찾아봤는데 역시 있었네요!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이탈리아 여행 재밌어요 개인적으론 물의도시 베네치아가 젤 인상깊었구요 로마도 재미있었습니다 버스타고 고속도로 풍경보는것도 재미있구요 우리나라는 산만보이지만 이탈리아는 초원들판이 있어서 풍경하나하나가 좋았어요
이탈리아 책인 에서 전쟁, 군인 얘기가 많이 나와서 의아했는데 영상 보니 배경이 이해되네요..! 전달력 최고👏🏻👏🏻
오늘 영상도 재밌게 잘 보고 갑니다 ^^
제가 구독하고 있는 역사 관련 유튜브 채널 중에 가장 양질의 컨텐츠를 가진 채널입니다.
그나저나 독일에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다는데 몸 조심하시길...
너무잘보고가요
신선한 교양채널 느낌이 나요!!!
왠만한 유럽국가의 민족들도 국가없이 존재했던 시기가 오래 존재했고, 베트남도 천년동안 중국에게 직접 지배당한걸 생각해보면 한국은 일제시대 외에는 자신만의 나라를 계속 가졌던게 정말 대단한거 같네요.
구독자 30만 갑시다
너무 퀄리티가 높은데 100만 금방 가시겠네용 효기심채널에 버금가는 채널로 성장할 수 있을듯
잘 봤습니다~무엇보다 가리발디...멋있어요. 존경 받을만 하네요~역시!!
이탈리아가 탄생한것까지 다루다니 오늘도 유익한 영상 고맙습니다.
애니메이션도 너무 귀엽고 설명도 정말 깔끔하네요😊
나:자야지!!
유튜브:이탈리아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아??
최고의 퀄러티!!! 감사합니다~
로마제국이후 근대사에서는 빛좋은 개살구인나라...
하지만 지금은 엄청난 역사적 유산들을 가진나라
좋은 영상 감사해요
가리발디가 대단한 인물이네요. 저 정도 권력과 힘을 차지한 많은 다른 인물들이 욕심에 돌아 패망하거나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거를 생각해보면.. 현재 이탈리아를 만든 일등공신이 아닐까.
ㄹㅇ 퀄리티, 적절함이 초절정 ..
🙇🏻♂️🙏🏻🔥🔥🔥🔥
안녕하세요. 영상을 보다 궁금증이 생겨서 댓글 답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학부생인데요! 이탈리아의 남쪽이 빈체제로 인해 양 시칠리아 왕국이.들어섰다고 설명해주신 부분이 이해가 안가서 질문드립니다!
양 시칠리아 왕국은 중세 때 프랑스 앙쥬 백 샤를과 아라곤의 피터의 대결 끝에 생겨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제가 아는게 틀린건가요? 그리고 책에서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이 있을 당시 이탈리아 남부에는 나폴리왕국이 있었다고 나오는거 같은데 혹시 나폴리왕국과 양시칠리아왕귝이 같은 건가요??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항상 유익한 정보 감사해요~
잘 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역사를 연구하는 전공자입니다. 영상 잘 봤습니다. 내용 정리 훌륭하고 좋은 지도 많이 활용하셨네요. 다만 한 가지 내용상 오류가 있습니다. 가리발디가 붉은 셔츠단을 이끌고 시칠리아 원정을 떠날 때 샤르데냐 왕국과 카보우르의 지원을 받았다고 언급하셨는데 제가 알기론 아닙니다. 카보우르는 가리발디가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주도적인 인물로 떠오르던 초기부터 그를 경계하고 내심 적대했다는 게(공공연하게 이를 드러낸 경우는 많지 않지만) 최근 50년 사이 이탈리아 사학계에서는 더 널리 인정받는 설입니다. Denis Mack Smith라는 영국 학자의 책을 참고해 보세요.
곧 있으면 이탈리아에 여행가는데 이탈리아에 대해서 알게되어 좋내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가족관계도 잘 살펴보면 신기한 점이 좀 있습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왕비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레오폴트 2세의 10남 라이너 대공의 차녀 아델라이데(독일어로는 아델하이트)였는데,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모후는 레오폴트 2세의 차남인 토스카나 대공 페르디난도 3세의 3녀 마리아 테레사(독일어로는 마리아 테레지아)였기 때문에 아델라이데 왕비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모후 마리아 테레사의 친사촌이라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당이모가 됩니다. 또한 동시에 아델라이데 왕비의 어머니인 마리아 엘리자베타 대공비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고모라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고종사촌이기도 하지요.
좀 복잡하긴 한데, 정리하자면 아델라이데 왕비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고종사촌 겸 오촌 당이모입니다. (부계 4촌, 모계 5촌)
그런데 여기서 좀 신기한 게, 당이모라고 하면 왠지 아델라이데 왕비가 연상이어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델라이데 왕비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보다 오히려 두 살 어립니다.
이건 아델라이데 왕비의 아버지인 라이너 대공이 형들과 나이차가 좀 있는데다 결혼을 약간 늦게 해서 39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아델라이데를 얻은 탓에 사촌언니(이자 시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사와 나이차이가 21살이나 나는데, 마리아 테레사는 19세라는 제법 이른 나이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낳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더 신기한 사실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대립 관계였던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육촌관계라는 것입니다.(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형) 이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외조부인 토스카나 대공 페르디난도 3세가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조부인 프란츠 2세와 형제간이라 그렇습니다.
역덕인데 너무 재밌네요 ㅎㅎ 불어 발음 넘나 섹시하시던데 불어전공인가요?
감사합니다. 저는 독일현대사 연구자입니다!
퀄리티 끝내줍니다. 지금 이 영상에서 보는 이탈리아의 역사를 보니 마치 우리나라의 분단된 역사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나라와 이탈리아 역사의 평행이론을 정리하는듯한 모습이네요.
다음엔 그란콜롬비아에 분활과탄생을다뤄주세요
오늘도 좋은 내용보고갑니다
전 항상 라데츠키 행진곡을 듣는데 라데츠키가 이탈리아 독립운동을 저지햇다는 점에서 요한스트라우스가 작곡하여 헌정햇는데
항상 빈필하모닉 뮤지크페라인에서 1월1일에 연주하는데
이태리 외교관들도 초청을해서 보는데 무슨심정일까 한번생각해보곤합니다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우리나라로서는 받아드릴수없을것같은데...
라데츠키 장군 개인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감정은 긍정적인 편인 것으로 압니다. 이유는 라데츠키가 1848년 밀라노 5일 혁명 실패 후 북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영토(롬바르디아-베네토)의 총독으로 임명됐는데 재임 중 유화, 관용 정책으로 이탈리아인들을 달래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라데츠키는 군인이지만 문화적인 교양도 높아서 당시에 베르디 같은 이탈리아 문화계의 중요 인사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1차대전 종전 100주년인 2018년에 빈필하모닉의 뮤지크페라인 신년음악회에서 이탈리아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를 맡았었습니다.라테츠키 행진곡 연주 때도 불편한 분위기 같은 건 없어 보이더군요.
@@fudgfh68449 이탈리아 라 페니체 극장 신년음악회에서 라데츠키 행진곡은 ‘과거 적국’의 음악으로 금기시돼 왔다. 이탈리아인이 지휘한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대신 라 페니체 극장 신년음악회를 생중계한 RAI에 불평을 늘어놓은 무티의 인터뷰는 현재 이탈리아에서 논쟁거리다
이렇게 되어잇는걸
히브리의 노예합창을 부른다는데요..?
음 솔직히 저도 잘모르겟어요 찾아본거라서
태초에 나폴레옹이 않
있었다. 진짜 패기 쩌네요
근대 이탈리아 를 알게되었네요 랑도바르드 왕국이후 에서 이탈리아 통일전까지의 자료가 잘없던데 추가로 해주시면 안되나요 운영자님 항상 궁금했는데
태초에 나폴레옹이 잇엇다
신성로마제국에서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독일 제국이 만들어지게 되는 독일어를 쓰는 독일민족국가 설립
독일역사 보다가 봣엇네요
카톨릭 국가에서 교황령을 공격하는개 쉽지 않았을건대...암만 정교가 분리됬다지만..
가리발디 짱멋남
너무재밌이
영상 잘봣습니다. 나중에 근대 포르투갈이랑 스페인과 2차대전때 활동도 알려주세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의 기원도 알고 싶습니다!!
분할통치가 시작될 당시 동로마제국와 서로마제국의 정서나 인종구성은 차이가 아주 컸나요? 이탈리아왕국이 1400년 뒤에 계승을 했다고 말씀을 하셔서 문득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8:06 우리 같은 범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정말 대담하게 했네요.!
서로마가 망하고 1500년을 찢어져 있던 이탈리아 반도 통일의 순간!
ㅡ 아직 바티칸과 산마리노 같은 나라는 있지만.... 세력의 의미는 없으니..
가리발디는 진짜 이탈리아 인들한테는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어쌔신크리드 스토리 정리 영상보다가 갑자기 이탈리아 역사나오니 당황스럽네 ㅋㅋ
꿀잼
하지만 지금 이탈리아 정치 상황은...
함세님~ 영상 너무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드리구요^^ 질문 하나 올립니다. 봉건제 하에서 민족과 국가에 대한 개념을 갖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어떻게 그런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통일에 대한 의지는 농노와 영주 등 모든 신분에게서 나타난 현상인가요?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할 때와 서구역사를 공부함에 있어 영토, 민족, 국가..등에 대한 관념이 다른 것 같아 정리가 잘 안되네요;;; 도와 주셔요~~
불가능은 없다라고 외친 나폴레옹도 탈모는 극복 못했어 ㅠㅠ
ㅋㅋㅋ사실 지금도 이태리나 프랑스는 대머리의 민족이죠 ㅋㅋ제약회사 사장이였으면 좋았을텐데 ㅋㅋㅋ
8:43 지도 북부에 Sud Tirol (Alto Adige) 지역을 오스트리아로부터 빼았은 건 없네요...마지막 퍼즐인데...
Süd-tirol ist nicht italien.. nicht... nicht... 꼴까닥
혹시 독일사연구하신다니까 여쭤봐도 될까요 프란츠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가 결혼하면서 로트링엔 가문이라고 말안하고 합스부르크 가문이라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게르만경우 살리카법으로 인해 여성왕위승계를 인정하지않는데 로트링엔으로 바뀌는게 맞을것 같은 추측인데 궁금하여 여쭤봅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해당 시대 전공자가 아니라서 조심스럽지만,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츠 1세가 결혼하면서 공식적인 가문의 이름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Habsburg-Lothringen, 즉 합스부르크-로트링엔이 됩니다. 다만 공식적인 이름과는 별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줄여 부르는 것입니다.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historytogether 죄송해요 독일 근대사가 아니고 현대사네요 그래도 감사드립니다 항상응원합니다
왜 이탈리아에 대한 민족의식이 있었던건가요? 로마제국은 이탈리아를 포함해서 더 크지않았었나요? 당시사람들이 가지고있었던 이탈리아 민족의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제가 유럽역사를 세세하게는 몰라서요 영상이 큰도움이 되네요 :)
다만 오스트리아가 쾨니히그레츠에서 혼 빠지는 와중에서도 이태리가 리싸해전에서 반갈죽 남으로써 크로아티아 아드리아 해변 지역 영토까지 점령하려는 야심은 좌절되었읍니다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백성들이 공화정이 아닌 왕정을 원했다는 게 신기하네요.
저때 공화정은 현대 공화정과는 여러모로 달라서 정치적 불안이 항상 존재했음. 이념의 시대라 반대파에 대한 탄압이 항상 있었는데, 군주제는 국왕이라는 중재자가 있기 때문에 정책의 연속성이 어느 정도 담보되고 정권이 바뀌어도 마음대로 하기 어려웠지만, 공화제는 최고지도자가 바뀔 때마다 피바람이 불어도 견제할 세력이 없었거든. 당장 저때 프랑스만 봐도 공화국이던 기간 내내 끊임없이 혁명과 폭동 봉기를 거치면서 자멸하다가, (물론 지금 와서 보면 암군이지만) 나폴레옹 3세 시기에 그나마 국가 꼴이 돌아갔고. 독일도 제국보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카이저보다 퓌러가 훨씬 거대한 권력을 손에 쥔 채 폭주했었고..
사실 현대에도 비슷한 민주주의 수준에서도 입헌군주국인 영국, 일본,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같은 나라들보다 공화국인 한국, 미국, 프랑스같은 나라들의 정치적 대립이 평균적으로 더 심각한 편이기도 함.
사보이 왕조
왜 양차대전기를 풍미한 이탈리아의 주력전함도 오늘날 이탈리아 해군의 항모명에도 카보우르라는 이름이 붙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리발디 역시도 전함, 항공모함의 이름으로 공히 쓰이는 이유지요. 우리로 친다면 세종대왕, 이순신 등의 이름을 쓰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요?
여담인데 프랑스의 다음 항모 이름은 리슐리외가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리슐리외가 당대 프랑스 해군을 영국 해군에 맞설 만큼 키운 공적이 있어서…
잼네
궁금해요!
프랑스는 왜 언제부터 로마교황령에 군대를 주둔시켜놓고 있었나요???
학교에서 이렇게 세계사 수업을 받았다면 얼마나 쉽고 좋았을까? 의미없는 연도나 외우면서 시간보내는 것보다
맞아요. 저도 학창시절에 역사를 이렇게 배우지 못한 것이 진짜 아쉽습니다...
이런 통일된 이탈리아를 꿀꺽 삼킨게 하필...
"그"나라...
@@user-tu9vq9bj4r 그 나라가 아니라 그 파시스트...
@@jyb3232 엥 거기는 공산주의 아닌가 파시스트?
@As Df 아 무솔리니 난 그나라인줄
중국.......?
9분뚝딱이네
가리발디가 진짜 영웅이네
축구선수 미셸 플라티니와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은 1차 대전 후 프랑스로 이민 간 이탈리아계 프랑스인이네요. 이탈리아 통일 3걸 중 주세페 가리발디와 주세페 마치니의 주세페는 요셉(뜻:더하다)이죠. 카밀로 카보우르의 대부모가 나폴레옹의 여동생 폴린과 매제 카밀로 보르게세인데 대부 이름을 따 카밀로가 되었고 카밀로가 통일의 댓가로 가리발디의 고향인 샤르데냐왕국의 니스를 프랑스에 넘긴 것을 통탄해 했죠.
일단 이탈리아 통일의 외교적 배경에 있어서 사르디니아의 뜬금없는 크림전쟁 참전 그리고 까부르가 가리발디를 제지하는데 있어서 가리발디의 로마 진입을 제일 우려 했다는 점도 추가됐으면 좋겟네요. 전자는 카부르가 프랑스의 호의를 사기 위한 자신의 국력수준에 맞지 않는 대외 군사 행동이였고 이때 세바스토폴 부근으로 영프 함선을 타고 떠나는 사르디니아 군에 대해 카부르가 연설하면서 가서 피를 더 많이 흘릴수록 이탈리아는 통일에 다가간다 라고 말한것이 그의 의도를 잘 설명해주고. 로마는 당시 교황을 프랑스가 보호하는 상태에서 이탈리아군이 이런 프랑스의 영향력을 무시하고 들어갔다간 한계는 있지만 어느정도 모양은 갖춘 이탈리아 통일이 열강의 개입으로 송두리째 무산될까봐 카부르가 현실적 판단으로 가리발디의 낭만적 민족주의 행동을 경제 하려고 했던걸 지적하면 좋을거 같습니다.
어쨋든 이탈리아는 믿을수없이 냉철한 카부르와 터무니없이 낭만적인 가리발디에 이해 이루어졌다는게 역사의 아이러니고 매력인듯
가리발디... 어디에나 있는 독립투사 정도로 생각했는데 훨씬 멋진 인물이군요
정작 이탈리아 북부와 나폴리 즉 남부 이탈리아와의 지역감정은 우리의 영 호남 갈등을 우습게 보죠ㅋㅋㅋ
에스파냐와 이태리는 지역감정이 최고조인 나라죠 이태리는 로마제국 이후 지금 이태리의 유명도시들은 각자 아예 다른 나라로서 존재했었고 에스파냐는 뭐 카탈루냐 지방이랑 카스티야 지방의 갈등은 이루 말 할것도 없구요
@@bnojay7507 에스파냐는 사실 지역 역사를 따지기엔 너무 옛날 얘기고.. 제2공화국 및 프랑코 독재 시절 받은 차별이 좀 컸던듯
외교의 힘
세계사 교과서에 근대이탈아 딸랑 가리발디랑 카보우르 까르보나라맠 배우죠 ㅋㅋ
에마누엘레 2세가 엠마뉴엘레 2세인가요?
열강의 훼방에도 통일이 되려면 그 통일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야 하는군요. ㅠㅠ
목소리가 굉장히 졸림,,, 아직 안자고 싶은데 왜 날 재우는 거죠??
2차 세계대전 때 정확히 1943년 이후 이태리 남부 지역에서 이탈리아 왕국이 연합국🇺🇲🇬🇧🇫🇷한테 항복해서 나치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연합국🇺🇲🇬🇧🇫🇷편에 들었고, 반면에 북부 지역에서 추축국 나치독일의 꼭두각시 하에 1945년에 멸망할 때까지 이탈리아 사회공화국(+베니토 무솔리니)이 짧게 세워졌다.
파스타!파스타!
지금은 바이러스와 혈투중..
지금은 진정되는 분위기죠 방심은 금물이지만
그림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으로 들라크루아가 그린 것입니다. 이것은 프랑스 혁명을 나타낸 그림이 아니고, 1830년 샤를 10세의 실각을 불러온 7월 혁명을 그린 것입니다.
말씀해주신 것이 맞습니다. 다만 해당 그림이 대중적으로 프랑스 혁명 전반을 표현할 때 대표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사용했습니다.
@@historytogether 대중적으로 쓰인다고 헤도, 틀린 것은 틀린 것입니다. 대중적으로 잘못 사용되는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바스티유 습격같은 그림을 사용하는 편이 어떨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영상 만들 때 남겨주신 의견을 참고해서 만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바티칸시티(로마교황령)가원래이탈리아반도에서제일 영토가넓었는데
나폴레옹이 진짜 대단하긴 하구나 전쟁 이외에도 여러 부분에서 세계에 영향을 끼쳤네
근대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민족주의인데 그 민족주의의 창시자가 나폴레옹이니..
나폴레옹 덕에 근대 국가가 생긴 건가
명예혁명으로 시기상 앞섰던 영국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세계라 해도 과언이 아닐듯
이태리 왕국 (1861~19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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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공화국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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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
샤르데냐 왕국(feat.카보우르):야 저것들 남쪽에서 너무 빨리 밀고 올라 오는거 아냐..?
미리 가리발디 조져야 될 것 같은데....
그후...
가리발디:야 이탈리아 남부 니들이 통치해
샤르데냐 왕국(feat.카보우르):어..? 어.. ㄱ..고맙다 야...(은근슬쩍 칼 숨김)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민족주의가 이탈리아 통일의 동력이 된 건 알겠는데, 왜 이탈리아라는 지역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관념이 형성된건가요?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는 혈통, 언어가 상당히 이질적이고 지금도 지역 감정이 심한 것으로 알고있는데, 왜 굳이 이탈리아라는 지역이 통일의 단위가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역사적으로 주변 강대국에 휘둘린 국가는 패권 잡았을때 미친짓을 한다
@@siriul 한반도에 있던 나라중 패권국이 없어요
가리발디 진짜 멋있는 상남자네
안녕하세요
진짜 퀄리티 쩝니다^^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저로써 많이 받아갑니다^^
가리발디와 카보우르의 공통점 둘 다 이탈리아 해군의 항공모함 이름으로 쓰였음.. 글고 카보우르함은 한국해군의 경항모 사업의 롤모델이었음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모두 스페인의 식민지 였었네.
스페인이 대단했네요ㅠ
대영제국 이전의 세계 패권국이었음
이탈리아인의 오스트리아에 대한 적개심은 이탈리아 국가에 "오스트리아의 독수리는 이미 깃털이 다 빠졌다" 라는 가사에서도 드러남
나폴레옹은 프랑스 출신이 아니라 이탈리아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900년 동안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은 후 이탈리아가 프랑스에 최근 양도한 프랑스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모두 이탈리아인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의 가족은 이탈리아 출신이었습니다. 그의 부계 조상인 부오나파르테스는 16세기에 코르시카로 이주한 토스카나 소귀족의 후손이고, 그의 모계 조상인 라몰리노스는 소제노바 귀족 가문의 후손입니다.[15] 부모인 Carlo Maria Bonaparte와 Maria Letizia Ramolino는 아작시오에서 오늘날 Maison Bonaparte로 알려진 "Casa Bonaparte"라는 조상의 집을 유지했습니다.
나플레옹 그는 얼마나 많은 역사에 손을 대었는가?.........
워싱턴 가리발디 같은 사람은 자신의 권력을 포기해서 존경받는듯
글쎄,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코르시카섬이 계속 이탈리아 땅으로 남았다면 나폴레옹은 이탈리아인이었을거고 그렇게 되면 18~19세기 이탈리아가 초강대국이 되어서 옆나라로 영토확장을 했을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