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절의 비밀】 단오절은 우리 명절인가? 당신이 몰랐던 단오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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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6 фев 2025
  • 엊그제 6월 3일이 음력으로 5월 5일 단오절이었는데 두세 분 구독자께서 단오절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느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단오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미 지났지만 알아두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단오절을 수륏날이라 불렀는데 戌衣날, 水瀨日, 車輪餠으로 적었습니다. 어원은 3가지라 하더군요. 하나는 수뤼취로 떡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수레바퀴처럼 둥글다 하여 수레취, 거륜병이라 하였고, 다른 하나는 여울물에 밥이나 떡을 던져 액운을 띄워 버리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水瀨가 되었다는 설, 3번 째는 ‘수리’는 高, 上, 峰, 神을 의미하는 古語라는 군요. 이미 三國遺事(2) 문무왕 법민조에는 단오를 ‘술의(戌衣)날’이라고 한다 하였고, 고려가요 ‘動動’에는 “五月 五日애 아으 수릿날 아 藥은 즈믄 ᄒᆡ 長存ᄒᆞ샬 藥이라 밥노이다” 라 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꽤 오래전에 시작된 민속 행사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과 중국의 단오절은 그 날짜는 같지만 기원과 행사는 판연히 다릅니다.
    한국의 단오절은 모내기를 마치고 체력보강과 일시 휴식, 벽사와 마을 공동체의 화합을 다지기 위해 치러왔던 민속으로,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 경도잡지, 동경잡기 등에 상세히 실려 있습니다. 그 기원은 우리 땅은 4계절이 뚜렷하여 절기를 그냥 넘기지 않고 신에게 제사를 올리며 풍년을 기원하며 춤추고 노래하기를 좋아하여, 낙천적이며, 협동심이 강한 민족성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날은 그네뛰기(鞦韆), 씨름(角抵, 摔跤), 널뛰기(跳板戲), 농악, 가면극, 다리밟기 등이 있었고, 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石戰(김해)과 烏金簪묻기(삼척. 이상 고려 태조와 관련), 長命縷 등의 놀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민간에서는 쑥(艾蒿, 艾虎)과 익모초를 채취하여 묶어 뒷곁에 달아 말려두었다가 비상약으로, 혹은 火絨으로 썼으며, 특히 수리취를 뜯어 둥그렇게 떡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었으며, 제호탕(醍醐湯. 烏梅肉, 砂仁, 白檀香, 草果 등을 말려 빻아 가루로 한 다음 이를 끓여 청량음료)을 만들어 마셨고, 창포를 삶은 물로 여인들은 머리를 감았고, 그 뿌리는 비녀를 만들어 꽂았으며 남자들은 그 뿌리를 허리에 차고 다녀, 辟邪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합니다. (砂仁: 생강과에 속한 여러해살이 초본식물인 양춘사(陽春砂), 녹각사(綠殼砂) 또는 해남사(海南砂)의 과실로 만든 약재.)
    ○한편 궁중에서는 이날 工曹(尙方)에서 만든 부채를 하사하였는데 특히 全州 南平에서 만든 合竹扇과 團扇에 호랑이 그림을 그린 것을 가장 높이 여겼고 신분에 따라 달리 하였다 합니다.
    아울러 이날 궁중에서는 朱砂로 符籍을 만들어 辟邪招福의 의미를 담아 대문에 붙였는데 그 문장은 “五月五日天中之節, 上得天祿下得地福. 蚩尤之神銅頭鐵額, 赤口赤舌四百四病, 一時消滅, 急急如律令”이라 하였는데 여기에 蚩尤가 거론된 것은 앞으로 연구대상이기도 합니다.
    ○단오를 이야기하면서 강릉 단오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지요.
    이는 국가무형문화재 13호이며 2005년 11월 25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정식 등재되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이의제기가 있었지만, 이는 등재신청의 이유에 대해 “기원은 중국이나 민속행사로서의 전승가치”를 주장하여 아무런 문제 없이 성사되었던 것입니다. 江陵은 옛 하슬라, 臨瀛으로 대도호부가 있었으며, 貊國의 문화중심지였고, 동해안 최대의 문화도시로서, 고래로 신사임당, 율곡, 허균, 허난설헌, 매월당 김시습 등 문화 인물과 경포호, 오죽헌, 소금강, 대관령 등 경승지를 품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 남대천에서 치러지는 단오제는 기원은 성황제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지며 대관령 산신의 신위를 맞아오는 것을 시작으로 괃대(挂대)에 오색천을 펄럭이며 鞦韆, 씨름, 농악, 다리밟기, 사물놀이, 여섯과장의 ‘강릉관노가면극’, 그리고 먹거리 장터, 강릉단오장터, 축구대회 결승전, 3월부터 집집마다 부뚜막에 쌀을 모아둔 것을 합해 수뤼치 떡과 술을 빚어 제전에 올리며, 팔도 굿판, 먹거리 난장 등, 그야말로 음력 5월5일 최고의 축제요, 가장 아름다운 우리나라 표준적인 민속문화 행사지요.
    아마 가 보신 분들은 크게 만족하였을 것이고, 외국인들도 우리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직접 보고 감동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중국의 단오절을 살펴볼까요? ‘端’은 方, ‘午’는 中(得中), 正南의 뜻입니다. 端午節 외에도 天中節, 重五節, 端陽節, 龍船節, 女兒節, 詩人節, 躱兒節 등으로 부르며, 春節, 淸明節, 仲秋節과 함께 사대명절의 하나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2006년에는 중국 국무원에서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으로, 2008년에는 법정 공휴일로, 그리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그 기원은 아주 오래되었는데요, 남방 오월지역(지금의 강소, 절강)에서 용을 토템으로 하면서 용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이 5월5일은 “仲夏端午”이며 ‘蒼龍七宿’가 정남중앙에 위치하여, 이는 周易의 乾卦 5효 ‘飛龍在天’을 상징하여 길상의 날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천상숭배와 토템제사 형태가 발전하여 풍속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지요.
    그리고 이날에는 우리처럼 창포로 머리를 감기도 하고 한창 자란 약초를 채취하여 말려두었다가 비상약으로 쓰고자 하는 발상도 하였지요. 즉 대대례기(夏小正 5월)에 “蓄蘭. 󰄮爲沐浴也”라 하였고, 金履祥은 “爲沐浴及佩也, 卽今澤蘭, 俗名壓草, 香可辟不祥, 亦可爲藥”이라 함. 한편 戴禮는 “洪云: 「蘭, 香草也, 綠葉紫莖. 名醫別錄云: 󰡔蘭草, 四五月采. 禮案: 沐浴卽今端陽浴蘭湯也. 九歌 雲中君云: 浴蘭湯兮沐芳澤. 五月五日俗謂之五毒日, 故浴蘭以自潔, 淸辟不祥也”라 하여 端午節에 목욕에 쓰기 위한 것이라 하여 이미 하나라 때 그 풍습이 있었던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중국의 이 날은 북쪽 중원지역과 남쪽 초와 오월지방이 판연히 달라요. 남쪽에서는 전국시대 굴원과 연계를 시키면서 남방 米作農業, 水系문화로 발전하고 정착하였는데, 북쪽에서는 도리어 不祥, 不吉의 의미가 이어졌어요. 史記(맹상군열전)에 靖郭君(田嬰)의 첩이 아들을 낳았는데 5월5일이었어요. 정곽군이 기르지 못하도록 하였지만 첩은 몰래 길렀고 그가 자라서 나중에 아버지를 만나자 놀란 정곽군이 화를 내었지요. 아들이 ‘왜 자신을 버리라’고 했는지를 물었더니 “5월5일 태어난 아이는 키가 문설주만큼 자라면 아비를 해친다더라”라고 하였지요. 그러자 “그럼 문설주 높이를 올리면 되지 어찌 아들을 없애라 합니까?”라고 반문하여 똑똑함을 인정받아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이가 戰國四公子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齊나라 孟嘗君 田文입니다. 그래서인지 북쪽 하북 풍속에는 이날 우물물을 긷지 않으며, 중원지역에서는 이날 돌을 넘기지 않은 갓난아이는 외할머니집으로 보내 숨겨놓는 날이라 하여 타오절(躱午節), 혹 躱兒節이라 부르기도 한답니다.
    지금도 단오절은 북방에서는 그리 대단하지 않지만 남방, 즉 강소, 절강, 호북, 호남, 복건, 광동, 대만, 홍콩 및 해외 중국인 등에게는 아주 대단한 성황을 이루고 있습니다.
    ○중국인은 이날을 굴원과 연계시켜 모든 활동이 이루어지지만 聞一多라는 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굴원 이전에 이미 百越族의 용토템과 연관되어 이루어지던 제사와 물놀이 행사에 굴원이 나중에 얹혀진 것이라고 해요. 그래서 浴蘭, 挂艾, 打午水, 划龍船, 放紙龍, 挂菖蒲 등은 그 이전부터 있어온 풍습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날 관련을 시킨 인물도 굴원 외에 오자서, 조아, 개자추까지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는 魏晉 시대 속제해기, 금조, 풍속통, 형초세세기 등에 언급되면서 轉化된 것입니다.
    ○자! 그럼 굴원(전339-278)과의 고사를 살펴볼까요? 전국 후기 초나라 삼려대부의 하나이며 楚 懷王에게 張儀에게 속지 말라고 직간을 서슴지 않았다가 추방을 당한 인물이며, 중국문학사에 있어서 楚辭라는 장르를 개발한 최고이며 최초의 개인 시인, 애국시인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이날을 ‘시인절’로도 불러요. 그의 어부사라는 글은 누구나 한문책에서 배웠을 겁니다.
    그런 그가 결국 조정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汨羅水에 몸을 던져 죽었는데 이날이 5월5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를 추모하는 백성들이 곧바로 쪽배(獨木船)를 저어 나섰는데 이것이 ‘龍舟比塞’, ‘용선젓기’, ‘화룡선’이라는 오늘날의 행사가 되었고, 다시 그를 찾지 못하자, 물속 물고기나 악어가 굴원의 시신을 훼손하지 말고 이것을 먹으라고 던진 것이 ‘粽子’라는 것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용토템으로 인해 放紙鳶(龍鳶)이 되었고, 그 외 五黃, 鹹鴨蛋, 綠豆餻 등의 시절 음식을 즐기게 된 것입니다.
    ○ 그 외 관련 인물로는 전국시대 伍子胥와도 연관을 짓는데, 오자서는 초나라 평왕이 태자를 위해 얻은 며느리를 차지하는 것을 보고 간언을 한 伍奢의 아들로 평왕의 박해를 피해 오나라 부차에게 옮겨가 크게 공을 세웠지만 결국 억울한 죽음으로 말가죽에 싸여 장강에 던져진 날이 5월5일이라 하여 관련을 지은 것이구요, 또 동한 때 曹娥라는 효녀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강에 익사하여 그 시체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14세의 나이로 그는 강 연안을 따라 뛰다가 그만 시신을 찾겠다고 강에 뛰어들었는데 5일이 지난 후 아버지의 시체를 껴안은 채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날이 5월5일이었다 하여 관련을 시켜 이어온 것이랍니다. 그런가 하면 蔡邕의 琴操라는 책에는 개자추도 이와 연관을 시키고 있기는 하지만 좀 거리감이 있는 것 같아요. 좌우간 단오는 米作農業, 水系活動의 절정을 이루는 초여름 행사임에는 한국이나 중국이 똑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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