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의 통큰 결단! 프랑스 해군을 공격하다! 왜? ▶결정적 하루 [제2차 세계대전]-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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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6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142

  • @fffoooxxxx7063
    @fffoooxxxx7063 Месяц назад

    진주만을 뛰어넘는 대첩 ㄷ

  • @김철우-x7d
    @김철우-x7d Год назад

    처칠은 한국의 원수

  • @이희수-q5q
    @이희수-q5q 4 месяца назад

    나에게 있을 가장 최악의 경우를 배제한다. 합리적이면서도 혼자서 하기 어려운 결정입니다. 처칠의 결기가 느껴지네요.

  • @chaeminsim
    @chaeminsim 3 года назад +36

    개인적으로 남박사님이 따로 유튜브채널을 열었으면 좋겠네요. 항상 최고의 스토리텔링 감동적입니다. 계속 힘내서 많이 포스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두리네-s3x
    @두리네-s3x Год назад +1

    너무재밌고 정리잘됐네요 이대로 뭍혀있기 아까운 유튜브 채널입니다 널리 알려졌음 좋겠어요

  • @주-s7h
    @주-s7h 3 года назад +7

    이번주도 넘 재밌었습니다. 다음주 예고의 헤어스탈 찰떡. 잘 어울리세요.

  • @에고포비아
    @에고포비아 3 года назад +6

    "정치는 선과 악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악과 그보다 덜한 악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

  • @231-o6y
    @231-o6y 2 года назад

    대영제국에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이렇게 되는거다

  • @Bamzi_maigummi
    @Bamzi_maigummi 3 года назад +4

    보람아죠오쉬 넘 죠와요 👍🏻

  • @johnadams3295
    @johnadams3295 3 года назад

    남박사님은 클라스가 다름

  • @kangsj1977
    @kangsj1977 3 года назад +1

    오늘도 넘나 좋은 컨텐츠 감사합니다!!

  • @charliem432
    @charliem432 3 года назад +3

    연기가 날이 갈 수록 무르익고 있습니다 ㅋ

  • @doau500
    @doau500 3 года назад +4

    평화시에는 또 다르겠지만, 역시 전시상황 같은 중차대한 시점에는 처칠 처럼 결단력이 있는 인물이 잘 어울림.

  • @choichirim6231
    @choichirim6231 3 года назад

    굿이네요. 다시 봤어요.

  • @seokyi8577
    @seokyi8577 2 года назад

    히틀러의 망상이 어? 이게 되네? 로 만들어 과신하게 만든게 프랑스. 개전 전에는 히틀러는 과연 진짜 프랑스 이길 수 있나 조마조마했는데 일주일만에 항복...

  • @Gapsul75
    @Gapsul75 2 года назад

    처칠의 결정에 다를랑에 대한 불신이 있었군요. 잘 들었습니다.

  • @전상윤-h2d
    @전상윤-h2d 3 года назад +8

    진짜 마피아 같음 처칠이

  • @피부암통피
    @피부암통피 3 года назад +5

    보람이형 대전간 유명 장군들 시리즈도 해주세요

  • @유고슬라비아-e1g
    @유고슬라비아-e1g 3 года назад +6

    역시 트롤러 무솔리니

  • @dimmorashuvant3784
    @dimmorashuvant3784 3 года назад +6

    저 해군 날라가서 잔후 식민지는....

  • @fierwalt
    @fierwalt 3 года назад +1

    프랑스는 자신들이 패하고 굴복한 역사를 인정하고 바라보기가 쉽지 않았겠죠.

  • @s740713p
    @s740713p 3 года назад +3

    손실은 짧게 이익은 길게를 여기서 보네... 손익비계산하는건 어떠한 상황에 대입해도 변치않는 진리인거군요

  • @최호준-f5f
    @최호준-f5f 3 года назад +3

    16:53 깜짝이야.

  • @fcpark954
    @fcpark954 3 года назад

    진짜 무솔리니..얌체 자식...

  • @DarkFuse
    @DarkFuse 3 года назад +4

    역시 처칠이다 위기의 리더쉽 배우고갑니다.

  • @Samsunggalaxy58372
    @Samsunggalaxy58372 3 года назад +3

    와... 전함만열척 ㄷㄷ

  • @EsJam_es
    @EsJam_es 3 года назад +4

    비시가 독일편서서 영국이랑 해전 을 시작했다면. 영국 항공 공중전 저리가라 하는 정도의 규모가...

  • @MrRanegade1
    @MrRanegade1 2 года назад

    프랑스가 반대의 상황이였으면 과연 영국 해군을 공격하지 않았을까?
    동맹의 가치보다 자국 이익을 아주 많이 중시하는 프랑스가???

  • @hrcustom
    @hrcustom 2 года назад

    촉각을 다투는 다급한 상황에서까지 간보다가 영-독 모두에게 쳐맞은 꼴. 중립적으로 볼려 해도 불란서 해군에 대한 평이 박할 수 밖에 없네요. 특히 다를랑 이자는 간재비 중에서도 특급 간재비였을 듯.

  • @sangjinkim6380
    @sangjinkim6380 3 года назад +2

    화내시는거 아니죠~?
    참 제대로 영상 만드시는 몇 안되는 참 밀덕!
    흥해라 국방TV(Feat: 얼른얼른 브레이브걸스 영상 풀어내시죠 ^^/)

  • @armirad
    @armirad 3 года назад +3

    벨리앙의 협상론을 처철의 프랑스 해군 공격에 빗대면 딱이내요
    내가 못가지면 너도 못가진다

  • @도날드-r2m
    @도날드-r2m 2 года назад

    프랑스가 겨우 한 달 반만에 항복 ? , ... 나약한 "장개석 군대"도 그렇게는 안 했겠다... 거의 동조자 수준이네, ...

  • @jeongwanhan
    @jeongwanhan 3 года назад

    ㅋㅋㅋㅋㅋㅋㅋ무솔리니 묘사 왤케 귀엽냐 ㅋㅋㅋㅋㅋ

  • @김수한-u4s6k
    @김수한-u4s6k 3 года назад +4

    선이 세상을 지키는세상 아름다운 결단력이 악을 물리친 사건이군요 남보람 박사님 굿뜨

  • @horyungsuri2193
    @horyungsuri2193 3 года назад

    국방TV 개편이후 가장 맘에 드는 코너. 순리대로 교체했으면 더 좋았겠지

  • @임석근-t5j
    @임석근-t5j 3 года назад +2

    비상사태시 골프장 모임 활성화

  • @cloudjung1329
    @cloudjung1329 3 года назад +7

    정말 프랑스 해군이 독일에게 넘어갔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 하네요

  • @유수윤-m4o
    @유수윤-m4o 3 года назад +8

    히틀러가 처음부터 유럽제패를 상정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면 역사가 어느 정도 바뀌었겠지만 결국 운과 임기응변으로 거둔 승리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네요 제가 처칠이었어도 차선으로 프랑스 해군을 공격했을것 같습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거죠

  • @Iandontdothat
    @Iandontdothat 3 года назад +5

    국빵티비의 지크리프트! 토전사 멸망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국방티비를 다시 보는 이유!!

  • @Jbgmjbgm
    @Jbgmjbgm 3 года назад +14

    비시프랑스,이탈리아,나치독일 해군이 합쳤으면 최소 지중해에서 만큼은 주도권을 잡았을듯 영국 점령지였던 이집트,몰타,지브롤터도 함락됐거나 안됐어도 풍전등화

  • @첨벙-b6w
    @첨벙-b6w 3 года назад

    내가 못 먹을 상대는 버리는게 맞다

  • @rapha1031
    @rapha1031 3 года назад +2

    진짜... 프랑스는 유럽의 중국이 맞네요..;;;
    자기들만 생각하는..

  • @dorianfa4209
    @dorianfa4209 3 года назад +2

    프랑스 해군은 진짜로 멍청하네.
    독일을 상대로 항전을 생각이 있었다면 함대 이끌고 영국쪽으로 가버리면 되는건데.
    어차피 독일이 그걸 막을 능력도 안되었고
    결론은 프랑스 해군도 싸울 의지가 없었다는거. ㅋ
    처칠이 프랑스 해군 공격한것은 최선의 선택이였음.

    • @민수김-e3q
      @민수김-e3q 2 года назад

      그덕에 카사블랑카 해전에서 프랑스군이 박살난답니다

  • @민수김-e3q
    @민수김-e3q 2 года назад

    프랑스군은 알제리나 모로코에 병력이 꽤 많았었는데 주로 외인부대나 파견군등이 그것이죠
    북아프리카에 비시프랑스군은 12만정도였는데 이는 영국군보다 많았습니다(영국군은 7만 남짓)1941년기준)
    나름 정예군이기도 했죠(나머진 당나라군대 수준.......)그리고 북아프리카에서 프랑스군 외인부대가
    전공을 세우긴 합니다.(자유프랑스군 소속)제13외인반여단 2대대와3대대를 주력으로 하는 자유프랑스 제1여단이
    비르 하케임 전투에서 롬멜과 이탈리아군을 격퇴합니다

  • @여준형-z1y
    @여준형-z1y 3 года назад

    그냥 영국이 프랑스 싫어해서 공격했다는게 정설..ㅋㅋㅋㅋ

  • @roughtip
    @roughtip 3 года назад +3

    달리 프랑스를 유럽의 짱꺠라 부르는게 아니죠.

  • @bunningshouse
    @bunningshouse 3 года назад

    무솔리니는 안끼는곳이 없네 ㅋㅋㅋㅋ

  • @user-dq6tf9ms6q
    @user-dq6tf9ms6q 3 года назад +2

    이미 프랑스는 독일 수중에 넘어갔는데 그나마 건재한 해군을 빨리 영국에 넘기라는데 안넘기고 버티는 다를랑 이 인간은 뭐냐 해군으로 독일과 한판 뜰려고 그런 거냐 그러니 영국 해군의 공격을 받지 프랑스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전쟁을 한 건지 승전국 지위를 박탈해야하는 거 아닌가 전후 전범 재판에서 독일 장군도 프랑스가 여기 왜 승전국으로 나오냐고 어처구니없어 했다는 차라리 대한민국이 승전국이 되던가 ㅎㅎ

    • @manhan95
      @manhan95 3 года назад

      이게 히틀러가 나쁜놈, 처칠이 착한놈이라는 전제하에서 깔고 시작하니까 그렇지. 아직 유태인학살도 드러나지 않았던 때고 나치즘이 완벽하게 글러먹은 사상이라는 것도 잘 몰랐던 때라는걸 가정하면, 그냥 일반적인 유럽전쟁과 같은 상황이라는걸 깔고 가야할것 같아요. 북한놈들도 중국하는일에 강짜놓을때가 있는데 비시정권도 뭔가를 쥐고 있어야 히틀러한테 비비죠. ㅎㅎ

  • @myoungkim1680
    @myoungkim1680 3 года назад +12

    이번 편도 대단하네요. 2차대전 if 놀이중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가 처칠이 없었다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칠과 스탈린이 양국의 전쟁의지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2차대전 연합군 수훈갑이라고도 봅니다. 그 전쟁의지가 약했던 프랑스의 말로를 보면 정치적, 사회적인 항전의지를 지키는 것도 정말 중요한 듯.
    다음 아라스 전투도 완전 기대합니다. 건들건들에서 전술적인 부분을 조금 건드렸었는데, 과연 어떤 그림을 그리실지 궁금하네요.

  • @davidpark5840
    @davidpark5840 3 года назад +1

    Ganz ausgezeichnet!

  • @pjhpang01
    @pjhpang01 3 года назад +3

    사건발생:영국의 메르스 엘 케비르 공격

  • @lastsailor
    @lastsailor Год назад +1

    프랑스는 승전국까지는 이해해도, 상임이사국에 끼워줬으면 안됨.
    2차대전에서 아무런 기여도 못한 주제에, 순전히 소련 견제대문에 낼름 승전국 지위에 상임이사국에...

  • @juntalk4
    @juntalk4 2 года назад

    왜 쓸라고 안했는지?

  • @에엒따-s3c
    @에엒따-s3c 3 года назад +7

    프랑스 해군이 규모는 좀 됐지만 스트라스브루등 빼고는 전함들이 워낙 구식이라...
    대서양에 나와 독일해군과 합세해도 영국해군에 열세였죠.
    물론 이태리 해군과 합세하면 영국 지중해 함대에 대해서는 우위를 점할수도 있었겠지만요

    • @박세정-k8c
      @박세정-k8c 3 года назад +1

      텅케르크급이랑 리슐리에급은 그래도 나름 쓸만한전함이었는데

    • @manhan95
      @manhan95 3 года назад

      영국해군을 까부수는 것보다도 상당한 타격 정도만 입혀도, 2차대전의 향방은 몰라도, 영국에게는 숨통이 조여오는 거니까요. ㅎㅎ 영국은 믿을게 해군 공군밖에 없는데, 아직까지는 공군은 백중세고 해군밖에 없으니까요 ㅎㅎ

    • @민수김-e3q
      @민수김-e3q 2 года назад

      @@박세정-k8c 됭케르크급은 순양전함입니다.이외에 브르타뉴급같은 전함은 구식이랍니다
      리슐리에급과 됭케르크급은 나름 신형이었지만 양날의 검이죠.(전방집중형 포탑구조)

    • @bkjeong4302
      @bkjeong4302 Год назад

      @@민수김-e3q
      그것보다도 미완성이었습니다. 전함이 완성되야지 작동하지…

  • @m3l0n48
    @m3l0n48 2 года назад

    근데 다를랑 제독이 이해가 안 될 정도인 건 아닌게 화내면서 보복해야지 차원이 아니라 누가봐도 그 상황에선 영국도 적으로 보였을 거 같네요. 막말로 미국 그럼 왜 일본하고 전쟁했어요?ㅋㅋ 자기나라 때렸으면 충분히 적으로 간주할만 하져... 뭐 비시가 괴뢰였냐 아니었냐는 좀 얘기가 있지만 최소한 일단 독일과 전쟁을 최소한 그 순간은 멈춘 상황에서 영국이 공격했으면 적으로 볼만 하지 않은가 싶네여.

  • @rootms2020
    @rootms2020 3 года назад +2

    역시 그래서 프랑스 해군은 아직도 개판이구나 ㅋㅋㅋㅋ

  • @stevenH3427
    @stevenH3427 3 года назад +4

    글쎄요. 군대가 공격 당했으면 반격하는 척이라도 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질적으로 영국을 공격한 것도 아니니까요.

  • @korn4864
    @korn4864 3 года назад +2

    난썸네일 보고 저아저씨가치질걸려 통큰결단 내린줄...

  • @에엒따-s3c
    @에엒따-s3c 3 года назад +5

    그런데 이 공격 여파로 토치 작전때도 미군 단독작전으로 위장했죠
    프랑스쪽이 영국에 대해 이를 갈아서

  • @8합사
    @8합사 3 года назад

    국방tv 구독의 이유. 남보람

  • @두꺼비한의원
    @두꺼비한의원 3 года назад +6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전략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는지와는 별개로 프랑스쪽으로 너무 까시는건 아닌가합니다.
    당시에는 비시 프랑스가 합법적인 정권이었으니 다를랑이 비시 프랑스 해군장관으로 승진한거를 변절로 볼 것까진 없을듯합니다.

    • @dorianfa4209
      @dorianfa4209 3 года назад

      프랑스는 까야 제맛. 그렇게 따지면 이탈리아도 까면 안되지. ㅋ

  • @wind55
    @wind55 3 года назад +3

    체임벌린이나 프랑스해군이 개한미국에도 있는데.....

  • @servant318
    @servant318 3 года назад +2

    야비한 인성을 가진 프랑스인들이 처칠의 생각처럼 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처칠의 결정은 100% 옳았다

  • @안강현-u2e
    @안강현-u2e 3 года назад +1

    1940년에 영국 해군이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었어요?

    • @박세정-k8c
      @박세정-k8c 3 года назад

      아크로얄 퓨리어스가 있었음

    • @manhan95
      @manhan95 3 года назад

      사실 대형급은 아니어도 항모는 영국놈들의 발상인걸로 국방TV에서 본거같네요. 일본이 건조는 좀 빨랐지만요

    • @seokyi8577
      @seokyi8577 2 года назад

      저때 신기술은 사실 독일보다 영국임. 제트전투기도 사실 독일이 급한나머지 불완전한 상태로 실전배치가 빨랐을 뿐이고 영국도 3개울 후 바로 제트전투기 미티어 실전배치함

    • @scz8333
      @scz8333 Год назад

      최초의 제트기 항모 이착륙:1945년 12월3일, 놀라운 2차대전 전시 기술발전 속도
      ruclips.net/video/PNoUBil7A3c/видео.html
      2차대전 종전된지 불과 몇 개월 후인, 1945년 12월3일 북해 거친 바다,
      경사장갑갑판의 영항모 오션에서 세계 최초의 제트 함재기 이착륙이 일어났습니다. 착륙 후 이륙 순으로 성공했습니다.
      에릭 윙클 브라운 이라는 테스트 파일럿은 487종의 연합국과 추축국 비행기를 시험 비행한 깨지지 않을 세계 최다 기종 테스트 비행사입니다. 영국해군 조종사로 2차대전에 참전했다 테스트 파일럿으로 전향했습니다. 최다 기종, 최다 항모 이착륙 기록, 기타 수 많은 기록이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특히 최다 기종은 아마도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겁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신기종이 많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또한 에릭은 1944년 영공군의 모스키토 폭격기를 항모에 최초로 착함시켰고, 종전 직후 독일의 제트기와 로켓 항공기등 추축국 항공기들을 테스트 했습니다. 소련의 인류 최초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글라이더, 복엽기, 전투기, 폭격기, 민항기, 헬기, 수직이착륙기 등 거의 모든 기종을 포함한 487종.)
      제트기를 항모 갑판 거의 끝에서 착륙시켜 아주 짧은 거리에서 멈춘 놀라운 착함 모습입니다.
      전쟁이 조금만 더 지속되었다면, 영국과 미국은 제트 함재기로 태평양 하늘을 휩쓸었을 겁니다.
      미국 일본 항모와 달리, 지중해와 북해라는 육지로부터 가까워 적 공군력에 노출되기 쉬운 조건이라 영국 항모는 장갑갑판을 먼저 도입하게 되었고, 지중해에서
      여러 직격탄에서도 단 1척도 격침되지 않았습니다. 1945년 정도엔 벌써 경사갑판으로 개조된 영국 장갑항모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미국도 이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장갑갑판, 경사갑판, 광학식 착륙유도장치, 증기 캐터펄터 등 항모에 필수적인 거의 모든 요소들이
      영국 해군에서 도입되어 미국으로 이전되었습니다. 미국이 도입하지는 않았지만 항모의 스키점프대 역시 마찬가지죠.
      유명한 고성능 미 함재기 콜세어의 항모 사용도 미해군이 아닌 영해군이 먼저 도입했습니다.
      전방동체가 크고 길어 항모 착함시 시야를 막아 미 해군은 해병항공대 육상기지 사용으로 돌리고 항모 도입 하지 않았지만, 영국 해군이 새로운 착륙방법을
      만들어 최초로 항모에 탑재했고 미항모에 그 착함 방식이 이전되었습니다. 직선 경로로 착함하지 않고, 선회하면서 착함하는 방식으로 시야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curved approch : 영 해군이 개발한 corsair 착륙법, corsair 전방 시야가 좋지 않아 항모 접근시 관측하기 용이하도록
      (항모 주변을 곡선을 그리며 선회하며 항모 좌현에서 접근하며 측면에서 갑판을 보며 고도를 맞추어 착륙) 7분35초 이후 보기를
      ruclips.net/video/rNcV13uayxw/видео.html
      풍족한 상태 보다는 조금은 결핍되거나 불리한 상태가 창조성 이끄는.
      풍족했던 미국은 그냥 항모 크기를 키우는 선택을 했지만, 쪼들렸던 영국은 경사각을 주어 갑판 효율을 극대화 해야만 했고
      + 태평양에서 저성능의 일본 항공기를 상대했던 미국은 핼켓으로 충분해 콜세어를 해병 지상기지 항공기로 돌렸지만, 지중해 북해에서 고성능 독일기 위협 때문에
      영국은 고성능 콜세어 반드시 항모 운영해야만 했기에 새로운 착함법 개발로 몰려버린.
      ------------------------------------> 미 해군 최초의 장갑 항모 미드웨이급은 2차대전말 건조 중지 후 재설계 들어간.
      ------------------------------------> 대전 말 영국 해군이 경사갑판 선보이자 건조 멈추고 경사장갑갑판으로 재설계해 종전 한참 후에 완성된.
      2차대전 영국 항모 거친 바다 악천후 속 작전 모습.
      ruclips.net/video/BTTOFtbZ8uw/видео.html
      -------------------------------> 북해와 북대서양의 저런 거친 해양 조건에서,
      -------------------------------> 미국 일본의 개방형 격납고로 작전은 불가능합니다. 저런 이유로 영국 해군은 폐쇄형 격납고 선택.
      -------------------------------> 2차대전 후 함재기 가격이 치솟고 + 항공 전자장비 탑재 늘면서, 함재기 보호 필요성 때문에 미 해군 역시 폐쇄형 격납고 채택.
      위키백과 인용
      (1943년 11월 영국 해군은 보우트사가 납품한 95 기의 F4U-1 커세어를 커세어 MK I 으로 분류하여 배치하였다.[62] 첫 비행중대는 미국 동부 연안에서 결성되어 훈련을 받은 뒤 대서양을 건넜다. 영국 해군은 커세어를 항공모함에 탑재하고 즉시 작전에 투입하였다. 작전이 실행되자 다수의 커세어의 착륙 특성 문제가 드러났고, 다수의 커세어가 이 과정에서 파손되었지만 영국 해군으로선 달리 방도가 없었다.
      영국 해군에 납품되는 커세어는 영국의 항공모함의 격납고 크기에 맞추기 위해 윙팁이 8 인치(200 mm)정도 짧았다.[63] 주익의 폭을 줄인데다 갑판의 활주로도 짧은 영국의 항공모함에서 운용된 커세어는 미국의 경우 보다 오히려 착륙 사고가 적었는데, 영국 해군의 조종사들은 착륙시 갑판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좌현 방향으로 돌아서 접근하면서 하반각을 이루는 날개뿌리 너머로 활주로를 확인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방법은 미국 해군의 함상 커세어 운용에도 전파되었다.[64]
      영국 해군은 F4U-1A 커세어를 차례로 도입하여 510 기를 추가로 배치하고 커세어 MK II로 호칭하였다. 커세어 MK II중 마지막 150기는 F4U-1D였으나 별도의 구분 없이 모두 MK II로 분류되었다.[65] 이후 도입된 F3A-1 커세어 334 기와 F3A-1D 96기는 커세어 MK III[66] 400 기의 FG-1/1A와 457 기의 FG-1D는 커세어 MK IV로 호칭되었다.[67] 실제 전투에 투입된 기종은 MK II와 MK IV 뿐이었다.[68] 몇 가지 개량을 거친 뒤 영국 해군은 아무런 문제 없이 커세어를 함상 전투기로 운용하였다. 심지어는 갑판이 작은 호위 항공모함에서도 이착륙에 문제가 없었다. 영국은 총 2,012 기의 커세어를 공급받았다.[46]
      영국의 첫 함대 항공단은 미국 퀀셋 포인트 항공 기지에서 결성된 1830 비행 중대로 HMA 일러스리어스에 배속되었다.[69] 1945년 7월에서 8월사이 영국의 함대 항공단 소속 1834, 1836, 1841, 1842 비행 중대는 일본 본토 공격에 참가하였다.[70] )
      유투브 게시물 댓글 인용
      (Altered Beast
      2년 전
      The F4U was notoriously difficult to land on a carrier because of the huge elongated nose and massive Pratt & Whitney R2800 engine. Being a tail dragger the attitude of the aircraft on the ground was almost impossible to achieve accurate forward visibility. As with many big radial engine fighters of the period such deck take offs and landings were very risky and resulted in considerable losses. So much so that the US marines who flew Corsairs operated them from ground based airstrips. It wasnt until the British who effectively solved this problem but implementing the curved approach for deck landings that led to US navy pilots adopting the same method. Like many other examples of great ingenuity the British learned to adapt and overcome. It should also be noted that British aircraft test pilot Eric "winkleman" Brown was responsible for many feats of aerial genius. Even making several successful carrier landings in the TR-33 Sea Mosquito. As well as later going on to become the first pilot to successfully land a jet aircraft on the deck of a carrier. He was a true aviation legend, sadly missed..... )

    • @scz8333
      @scz8333 Год назад

      1945년 종전 무렵 영국 태평양 함대, task force 57
      오키나와 상륙전 task force 50 소속 미영 각기 1개씩 2개 항모전단 중 하나인 영국측 함대.
      함대항모 4(모두 장갑항모), 호위항모 15, 전함 4, 순양함 11, 구축함 약 40, 잠수함 약 30. 기타 수 많은 보급함. 탑재 함재기 약 750기
      탑재된 함대방공전투기의 과반 이상은 콜세어. 방공 전투기로는 콜세어, 핼켓, 씨파이어. 뇌격기와 급강하폭격기도 미제 영국제 기체 섞인.
      43년 5월 튀니지에서 독-이 추축국 25만 항복 및
      43년 하반기 대서양 전투에서의 결정적 승리 후 독일 유보트 함대 철수로
      영국 해군에 대한 독일의 압력이 많이 약화되어 인도양과 태평양으로의 전개 여력이 매우 커짐.
      하지만 미 해군 총사령관인 킹 제독과
      태평양의 미 함대 최고 지휘부 내 할시 제독 등은 영국해군의 태평양 진입 반대.
      처칠과 루즈벨트의 담판에 의해 영국해군이 태평양 해전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지만 보급 문제 때문에 준비가 필요.
      44년 2월 영해군성은 각종 보급선 약 130척, 톤수로 약 150만톤의 보급이 필요하다고 추산.
      1945년 영국 해군 일부 파견, 그것도 단 몇 개월간 보급에 투입된 물량 150만톤은 이태리가 전쟁 전 기간 손실당한 200만톤에 비교될 정도.
      태평양의 영함대 보급 거점으로 필리핀을 제안했지만 미국측 거부로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호주와 인도 등 기존 영국령 사용.
      일본군과 실제 교전했던 대다수 미 해군 장병들은 영국해군의 참전을 반겼지만,
      미 해군 최상부의 입장은 전혀 달랐던 것. 전쟁 때 마다 흔히 일어나는 정치적 목적, 즉 미 해군 단독의 승리를 더 원했던 것.
      1. 카미카제에 거의 동시에 2 군데 공격당한 HMS Victorious
      ruclips.net/video/85Pe5zXPa5s/видео.html
      2. 카미카제 공격당하는 HMS Indefatigable 45년 4월1일
      ruclips.net/video/5p6Ll7PKepA/видео.html
      3. 카미카제 공격당하는 HMS Illustrious 45년 4월6일
      ruclips.net/video/y_sqoDQTgqM/видео.html
      4. 카미카제 공격당하는 HMS Formidable 45년 5월4일
      ruclips.net/video/u57eMtz-PAE/видео.html -----------------> 5분50초 ~ 6분50초, 장갑갑판 패인 부분 시멘트로 복구.
      카미카제에 직격당하는 영 장갑항모들.
      나무갑판이었던 미 항모와 달리 직격당한 후에도 잔해 치우고 바로 작전 가능했습니다.
      카미카제에 손상당한 함교 부분과 화재 진압 및 직격당한 장갑갑판 일부가 조금 패인 모습 보이고, 저 때 이미 출격했던
      영 콜세어는 쾌속 건조 시멘트로 장갑갑판 패인 부분 메꾼 후 착륙했다고 합니다. 즉 시멘트 붓고 건조하고 갑판 정리 뒤 바로 항모 작전 가능.
      -----------------------------------> 여기 영상에는 카미카제 공격당해 불타고 완전 무력화된 미 항모 플랭클린 모습도 나옵니다. 장갑갑판은 차원이 다른 방어력.
      2번 영상 초반부에 항모 내 레이더 관제실 모습이 나옵니다.
      2차대전 후반기면 영국과 미국은 거의 동일한 레이더와 관제 시스템을 갖추었습니다.
      저 무렵이면 이미 함대 대공포의 포탄도 근접신관이 장착된 최신형 포탄 사용. 지상 방공포의 경우 최전선 사용은 금지되었지만,
      해군의 함대 방공포탄은 적군에 노획될 위험이 없었기에 최우선적으로 배치되었습니다. 유럽에서의 지상 방공포대엔 영국 본토의
      v-1 요격용으로 제공되었습니다. 영국이 미국에 제공한 마그네트론과 근접신관 기술로 미국이 대량 생산 공급한 레이더와 근접신관.
      씨파이어는 육상기인 스핏파이어를 급하게 개조했기에,
      약한 착륙기어와 착륙기어간 좁은 간격으로 착륙 때의 비전투 손실율이 매우 컸습니다.
      ruclips.net/video/MnVJJ9BVLGU/видео.html : Seafire: The killer fleet fighter
      2차대전 영국 항모 조종사들은 씨파이어 보다는 항모 착함 때 더 튼튼했던 핼켓과 콜세어를 선호했다고.
      F4U Corsair: 'Black Sheep' of the RN
      ruclips.net/video/quo-AgC4ZiU/видео.html
      F4U Corsair: Taming the beast
      ruclips.net/video/lH5XSwyb_EU/видео.html
      ----------------------------------------> 이 2편의 영상은 항모 착함시 매우 위험했던 콜세어를 영국 해군이 길들이며, 새로운 착함법 curved approach 만드는 과정.
      2차대전 미 함재기 최고 성능 기체 콜세어,
      항모 운영은 미 해군 아닌 영국 해군이 시작. 콜세어 앞 부분이 길고 커서
      항모 착함 때 전방 시야를 가려 미 해군은 항모 도입 포기하고 해병대 육상 기지 항공기로 사용.
      하지만 영국 해군은 지중해에서 고성능 독일기를 상대해야 했기에 콜세어를 반드시 사용해야 했고 결국 새로운 항모 착함법 개발.
      직선 아닌 항모 좌현에서 선회하며 날개 아래 쪽으로 갑판을 보며 착함. 미 항모에 착함법 이전되며 미 항모도 콜세어를 주력 함재기로.
      지중해, 북해 전장 특성상 독일 공군 상대는 영국 해군 아닌
      영국공군이 주역이였기에 함재기 개발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 미제 함재기 의존율이 높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대전 말 영해군의 주력 방공전투기는 미제 콜세어였고, 종전 직후에야 영국제 고성능 씨퓨리가 배치됩니다.
      하지만 이미 45년 12월에 영국은 제트 함재기의 항모 이착륙 실험에 성공했기에 고성능 프로렐러 함재기는 수명이 매우 짧았고.
      콜세어와 씨퓨리 모두 한국전쟁에서 미그15기 격추 전과를 세웠죠. 미그기 격추한 씨퓨리는 현재 호주 비행 동호인 소유라고 합니다.
      미그기 격추시킨 콜세어는 그 공중전에서 다른 미그기에게 격추당했다고.
      4. 씨퓨리 Hawker Sea Fury - Awesome Footage of the fastest piston fighter ever
      ruclips.net/video/K11NTbaxzvs/видео.html
      ( 기록용으로 개조된 씨퓨리는 프로펠러기 비공인 최고속도 기록도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으론 시속 약 870km/h )
      ( 미국-영국-독일의 2차대전 당시 프로펠러기 최고 속도는 대략 시속 750km/h )
      ( 씨퓨리는 2차대전 종전 직후 배치되었고 종전 후 속도 기록용으로 개조된 엔진 최대 출력은 3500마력 정도.)
      ( 씨퓨리는 독일의 도살새 포케불프와 외형이 비슷한 느낌. )

  • @남자탁용삼
    @남자탁용삼 3 года назад +4

    영국이 프랑스해군을 공격한 이유가 뭘까??!

    • @화산동미나리
      @화산동미나리 3 года назад +3

      지미 여태 설명해주니까...먼 개똥같은 소리래...소에 경읽기네 젠장할~

  • @치즈피자치즈추가
    @치즈피자치즈추가 3 года назад +3

    하지만 갈리폴리가 출동하면 어떨까요? 쓸데없이 오스만을 적으로 만들고 그로인해 벌어지고 최악의 결과로 끝났던 갈리폴리 전투까지 비슷한 상황으로 보여서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많이 설득력이 있지요. 그것도 당사자인 처칠이 그 때와 비슷한 판단을 하려하니.... 그 후로 비시프랑스가 오스만처럼 독일에 아예 붙어버리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을까요

    • @drjohnnam
      @drjohnnam 3 года назад

      갈!

    • @치즈피자치즈추가
      @치즈피자치즈추가 3 года назад

      @@drjohnnam 리!

    • @DasReich
      @DasReich 3 года назад

      폴!

    • @kml565
      @kml565 3 года назад

      @@DasReich 리!

    • @scz8333
      @scz8333 Год назад

      갈리폴리 영국이 패하고 거기서 철수했지만,
      오스만투르크는 소수의 영국 파견군에게 중동 각지에서 패배하고 최종 항복.
      저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아라비아의 로렌스, 반투르크 아랍반군 봉기를 유도하면서 소수의 영국군 투입으로 승리.
      저 때 사우디아라비아 등 현 아랍 왕국들이 오스만투르크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고, 팔레스타인-시리아-이라크 등은 위임통치령으로
      바뀌면서 오스만투르크는 현 터키 영토로 쪼그라 든 것. 2차대전 후에 위임통치령에서 이스라엘, 시리아, 이라크, 쿠웨이트 등이 독립.
      특히 쿠웨이트는 유전 밀집도가 매우 높은 지역이었는데 영국이 석유 이권 통제를 위해 의도적으로 이라크에서 떼어내 별도록 독립시킴.
      1990년 걸프전 이라크가 쿠웨이트 침공할 때, 애초 쿠웨이트는 이라크의 한 주였다면서 원래 자기 영토 찾겠다면서 침공.
      영국은 삽질해도 어지간해선 전쟁에선 안집니다.
      삽질했다지만 호주와 뉴질랜드는 영국 보호령에서 자치령으로 바뀌고 독립된 국가로 나아간 계기.
      갈리폴리 상륙지에서 해마다 열리는 기념 행사, 영-호-뉴-터 4개국 공동 행사로 열리며 호주와 뉴질랜드 독립의 상징.
      다른 국가들이었다면 갈리폴리급 대규모 삽질했다면 분명 중동에서 완전 축출되었을 것. 하지만 영국은 정반대.
      갈리폴리 전투를 지휘했던 오스만투르크의 장군이 바로 케말 파샤.
      1차대전 패전 후 오스만투르크 왕정이 붕괴하고, 전쟁 영웅이었던 케말 파샤가 공화정 터키의 지도자가 됨.
      케말 파샤는 1차대전 패전에서 서구화 방식의 근대화를 선택했고, 알파벳 사용과 이슬람의 정치 간섭을 철저히 배제.
      그랬던 터키 공화국이 현 터키 대통령 취임과 함께 다시 이슬람 근본주의로 되돌아가고 있는 중. 이슬람화하는 터키를
      다시 케말파샤의 공화정으로 되돌리려했던 쿠데타 시도가 터키 국민들의 개입으로 실패하기도.
      오스만투르크의 1차대전 패전 트라우마로 인해,
      2차대전 초중반 승승장구하던 독일의 거듭된 동맹 요청에도 끝까지 거부하며 중립.
      갈리폴리에서 영국을 막아냈지만 결국 소수의 영국군에게 중동 지역에서 패배해 제국이 해체된 충격 때문임.
      그 깟 전함 2척 때문에 1차대전 독일에 줄섰다, 오스만투르크는 제국을 해체당했다면 좀 이상하죠.
      즉 한 국가의 운명이 좌지우지 되는 상황에서 그 깟 전함 2척으로 결정이 되지는 않았을 것. 다른 더 결정적 요인들이 있는.
      1차대전 직전 독일과 영국의 중동 아프리카 정책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독일의 3B 영국의 3C 정책. 독일의 베를린-비잔티움-바그다드. 비잔티움이 현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
      영국에 대한 트라우마는 터키만이 아니라 스페인도 강했죠.
      2차대전 초기 독일이 깃발 날릴 때, 지브롤타 점령을 위한 육상 통로를 내달라는 요청 끝까지 거부.
      독일이 제 아무리 승리하고 잘 나가도, 전쟁의 승리를 확신할 수 없었기에 독일과의 군사동맹과 침공로 통과 모두 거부.
      이유는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에게 격파된 이후에도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 시기 트라팔가에서 결정적 패배를 당한 충격.
      스페인 프랑코 총통은 중립지킨 행운으로 전후에 전범으로 처리되지 않았고.

  • @이창욱-y6s
    @이창욱-y6s 3 года назад

    이런일이 있었네요! 우리가 중국도 일본도 싫어 하듯이... 프랑스도 그랬네요. 나찌가 프랑스 해군을 잘 회유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런지?

  • @디달-c4m
    @디달-c4m 3 года назад +1

    맞았으면 당연히 보복해야지

  • @bonjoure74
    @bonjoure74 3 года назад +1

    드뎌 1등 ^^

  • @yc5076
    @yc5076 3 года назад +3

    프랑스해군이 영국해군 반격한건 당연한 처사 아닌가? 어찌보면 국가간 군사동맹 먼저깬건 영국이니 그에 맞는 벌은 받았어야지. 프랑스군이 영국 본토공격안한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할듯

  • @humanplusscience4449
    @humanplusscience4449 3 года назад +3

    달리 생각해보면 처칠의 공격 명령에 빡쳐서 다를랑이 비시 정권에 협력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 @진승우-o5u
    @진승우-o5u 3 года назад

    독일해군+이탈리아 해군이 영국해군과 비등비등하다는것은 좀 아닌거 같습니다 이탈리아와 독일은 힝공모함도 1척도 없었을 뿐더러 전함도 그리 많지 않았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 @stoner63a9
      @stoner63a9 3 года назад

      @Jay Park 그렇다고 해도 저때 독일 해군은 절망적인 상황이었음. 해군 제독 레더가 "이제 우리는 멋지게 죽을 일만 남았다"고 함...
      애초에 영국 본토 항공전이 일어났던 이유 중 하나가 독일 해군에 상륙함이 없어서...

    • @윤희열-x4l
      @윤희열-x4l 2 года назад

      근데 이때는 아직 항모가 주도적인 시대가 아니여서 항모는 부차적인 전력으로 취급됐고 전함세력 수만 보면 영국이 넬슨급3척,퀸엘급 5척,리벤지급 5척에 후드,리나운급 2척 이였고 독일은 비스마르크급 2척
      샤른호르스트급 2척,이탈리아가 리토리오급 2척에 콘테 디 카보우르급,카이오 두일리오급 각각 2척 그리고 프랑스 리슐리외급 1척 됭케르크급 2척 브로타뉴급 3척으로 영국 총 합 15척 독,이,프 총합 16척으로 비등비등했음 물론 영국 구식 전함 재취역하면 모르겠지만 영국은 함대를 전 세계에 나누어 놔야되는걸 고려하면 이건 꽤 위협적이라 봐야 됨

    • @진승우-o5u
      @진승우-o5u 2 года назад

      @@윤희열-x4l하지만, 태평양 전장에서 일본과 미국의 산호해 해전, 미드웨이 해전, 진주만 공습, 과달카날 전역 해전 등을 보면 항공모함의 역할이 중대하다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항공모함에는 전술폭격기부터 시작해서 함재 전투기, 함재 뇌격기까지 전함은 항공모함 앞에서 힘을 잘 못쓴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 @윤희열-x4l
      @윤희열-x4l 2 года назад

      @@진승우-o5u 그게 아니라 저때는 사람들의 인식이 항모보단 전함이 훨신 큰 위협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윤희열-x4l
      @윤희열-x4l 2 года назад

      @@진승우-o5u 그리고 지중해 전역같이 영국이 주로 싸웠던 해역에서는 전투 위치가 육지와 가깝기 때문에 항모 없이도 항공세력의 도움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 @노진혁-x1f
    @노진혁-x1f 3 года назад

    그저 혐성 ㅋㅋ

  • @yangseunghee5245
    @yangseunghee5245 3 года назад +1

    이건 너무 처칠 기준으로 해석하는거 같은데 ㅋㅋㅋㅋ
    일단 처칠 입장에서야 최악에 수를 미리 제거 했다는 거 이해는 하겠음.
    근데 쳐맞은 프랑스가 거기에 원한을 가지는 건 당연한거 아닌가. 거기에 영국 해군을 공격한다는 선택지는 당연히 따라오는거고. 프랑스 심리를 이해 못하겠다고 할 정도는 아닌거 같은데?

    • @dorianfa4209
      @dorianfa4209 3 года назад +1

      프랑스 해군은 본토가 독일군한테 탈탈 털리면, 영국해군한테 같이 붙어서 뭐라도 할 생각을 해야지. 그런것도 안하고 뻘짓이나 해대고 있는데.
      그럼 욕처 먹어야지.

    • @manhan95
      @manhan95 3 года назад +1

      @@dorianfa4209 그거는 민족주의적인 관점이지. 아직까지는 나치가 본토를 유린하고 약탈, 파괴를 한것도 아니고 군인끼리 전쟁하다가 깔끔하게 항복한 상황인데. 영국한테 붙기를 왜 붙음. 영국놈이 가서 깨부순건 납득가능하고 프랑스가 비협조적이고 보복하는게 납득이 안돼는건 무슨 모순임 둘다 저 새끼는 남이나 다름없음이라는 동일한 발상에서 출발하는데. 물론 히틀러같은 또라이한테 부역하는건 개짓이지만 영상에도 봤다시피 아직 히틀러가 또라이라는 걸 모르던 때라니까?

    • @hihi-mz1lo
      @hihi-mz1lo 2 года назад

      저 분은 처칠을 너무 좋게보는 입장임

  • @hkoo3205
    @hkoo3205 3 года назад

    부럽네요.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면 야당인 국힘이나 폐지 장사하는 소위 언론들이 영국 처럼 했을까요. 답은 다 아니까 생략하겠습니다

  • @대천사가브리엘-y2p
    @대천사가브리엘-y2p 3 года назад

    말이 두서도 없고 전문성도 없고...

    • @dorianfa4209
      @dorianfa4209 3 года назад +1

      뭐래? 재미있는데. 너 글쓰는게 두서도 없고 전문성도 없고 그러네.

    • @manhan95
      @manhan95 3 года назад +2

      그거는 니가 전문성이 있을때나 씨부릴 수 있는 워딩이랍니다. 뭐하시는 분인데요? 국방부 전사 연구소에라도 계신가요?

  • @gamevideochannel1550
    @gamevideochannel1550 Год назад +1

    항상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