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팥방에서 어제 우연히 일본 역사 관련하여 검색 중 발견하여 그 쪽은 다 듣고 오늘은 여기까지 왔네요. ^^ 국어와 일본어의 계통적 유사성에 관심이 많습니다. 논문 보내주시면 흥미롭게 읽을 것 같아서요. venice.jelmano@gmail.com 감사합니다.
예전 임진왜란 포로들 관련 역사스페셜 보고 비슷한 영상들 찾아봤는데 왕족들도 끌려갔다는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역사스페셜에서도 나왔고요. 임해군의 누이와 아들, 딸이 끌려갔고 임해군의 아들이 일본에서 유명한 일연스님이 되었다고 봤습니다. 나중에 이러한 내용의 영상도 한번 다루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
일연이 니치렌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니치렌은 1222년 생입니다. 임해군의 아들일 수는 없죠 다른 일연이라는 승려가 있었다 해도 신빙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선원록에는 왕의 아들이 아닌 좀 떨어진 방계 왕족이라도 변고가 있었다면 기록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 임해군의 아들이 납치되었다는 기록은 없는 걸로 압니다
일본보다는 중국이 가능성이 높겠지요. 서방이 중국 포위작전에 나선 상황에서 한국 일본이 여기에 참여하는 모습을 갖추고 있으니까요. 현재의 안보위협 요인이 제거되고 나면 그땐 또 모르죠.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손을 뗀다면 독도 문제라는 불씨가 타오를 수도 있을 것이고요. 당장에는 일본과 손을 잡아야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고 미국이 중간에 있으니 일본과 전쟁을 치를 일은 당분간 없을 것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후로는 조선과 관계를 맺긴 했지만 어쨌든 일본이 여지 껏 우리나라에게 그런게 아니라 이 모든 일에 풍신수길 한 사람으로 비극이었다는 건 알아야 할 듯? 일본 자국은 물론이고, 조선도 뼈아픈 시대를 걸친 역사긴 한데 더 자세히 알아야할 것은 임진왜란에서 풍신수길은 조선 민심을 얻는데 주력한 듯 함. 고려(조선)에 가서 하지 말아야할 것! 내용보면 잔혹하기는 커녕 민간을 헤치는 모습 자체를 볼 수가 없음. 조선 각처에 식량을 내온 만큼 사무라이 직분을 주는 등등 일본의 체계를 구축하는 모습도 있었던 걸로 기억. 이순신장군의 활약과 의병, 당시 일본인들이 치욕스럽게 느꼈던 진주성전투(김시민장군)로 풍신수길은 임진 때와 다르게 정유 때부터는 코베고 귀베고 진주성은 개미조차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고 그 때 참관한 일본 승려가 지옥이나 다름없다는 말도 함. 전쟁에 있어서 임진과 정유 동안 지옥이었던 것이 아니라 정유 이후로 지옥이었음. 그 때까지는 일본보다 더 지긋지긋했던 나라가 명나라라고 했음. 정작 민가 턴건 명나라라서 당시 조선 백성이 두 나라 두고 한 비유가 왜는 장빗, 명은 참빗이라고 명이 그 만큼 조선 백성의 벼룩의 간도 뺏어먹었다 들음. 혹시나 해서 무조건 적인 반사로 흘러가는 정세를 안 보고 일본의 만행으로만 볼까봐 몇자 적습니다.
임진왜란때는 조선인에 대한 대우가 좋았다고 하던데요 전쟁이 길어지며 패색이 짓어진 정유재란때 본격적으로 노예 사냥이 있었다고 알고있씁니다 이런 전란을 감당하기 힘든 조선이 병자호란까지 격으며 50만명이 넘는 백성들이 노예로 전락했으니 무능한 왕조로 인해 고통을 격은 백성들에 대해 위로를 표하고 싶네요 ㅠ.ㅠ
주인장님 안녕하세요 ~! 최신영상은 좀 그래서 그래도 관련 시대인 이곳에 댓글 질문 남겨봅니다 ㅜㅜ 혹시 최근 넷플릭스에 나온 전,란 보셨는지요?? 임란때 배경인데 나무위키로 보니 극중 왜군 장수이자 고니시 부대의 선봉장이라고 소개되는 역활인 깃카와 겐신은 성씨도 그렇고 행적에서 깃카와 히로이에가 모티브가 됐을거라고 하던데 어느정도 타당한 얘기일까요? 코랑 귀로 전공 챙기는게 일반적이지만 깃카와도 상당히 흉악했다고 본것같아서요 그리고 잠깐 지나가는 식으로 중조류라는 일종의 짧은검을 쓰는 유파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이때 주인공(강동원)이 남원에서 토끼머리(?)뿔 투구를 쓴 왜장이 하는걸 눈여겨 보고 따라했다고 하는데 이와관련해서 추측되는 장수가있을까요? 중조류를 쓰고 토끼뿔투구를 쓴 남원 전투에 참전한 왜장이 누군지 너무 궁금합니다. 대략 이 두가지인데 그래도 즐겨보는 채널 주인장분께 여쭤보고싶어서요 ㅎㅎ 시간되실때 아시는 선에서 답변주시면 대단히감사하겠습니다 즐거운하루되세요~!
일단 말씀하신 드라마는 본 적은 없습니다. 적으신 글로만 판단해 보건데, 고증과는 아무 상관 없는 액션물에 가까운 내용으로 보여지고요. 토끼머리 장수의 뭔가를 보고 따라했다는 것에서 영상 속에서 뭔가 의미를 찾는건 넌센스로 보입니다. 다만 토끼 모양의 투구가 뭔지 모르겠지만, 느낌으로는 토도 타카토라 정도를 모티브로 하지 않았나... 아래 링크 참고하세요. marutake.shop/items/5e721aff0fe71945e070ed87
5월4일 선조는 개성에서 다시 평양으로 도주하려고 하면서 윤두수(尹斗壽)에게 이렇게 물었다. “적병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 절반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데 사실인가?”( 25년 5월4일) 선조가 조선을 버리고 도주하려 했던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 조선 백성들이 대거 일본군에 가담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도 선조가 듣기에는 일본군의 절반이나 된다고 할 정도로 많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조선의 병역제도와 조세제도 때문이었다
임진왜란에 대해선 일본 국내 영향이 가장 크겠지만 사실 조선 국내상황도 50프로 정도 됩니다. 조선이 강성했다면 감히 일본이 꿈도 못 꿨을 전쟁이지만 조선은 약 200년간 작은 난 정도지 대규모 전쟁이 없었던 관계로 평화에 물들어 군시스템이 엉망이었습니다. 작은 왜구들의 변에도 군시스템이 엉망이라 제대로 대응을 못했고 당시 여러가지 병역비리로 체제가 갖춰져 있어도 빠른 대응이 불가능했죠. 군적에 이름만 있지 대립제 군포제등으로 사람이 비어 있는게 태반이었으니까요. 왜는 이런 조선의 사정을 알고 덤빈 겁니다. 지금이야 우리가 북한 일본 중국등을 잠재적 적들이라 생각해 병역에 한치의 선처도 없이 집행하지만 당시 중국 본토일은 어버이의 나라 명이 알아서 해주겠지 일본은 우리가 가르치고 먹을거 주면서 키우는 개같이 미개한 존재로 여기며 우습게 봤기에 실질적으로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보니 군체계가 개판이었던 탓이 큽니다. 그에 반해 일본은 백년간의 내전으로 국토는 황폐해졌으나 싸움만은 도가튼 용장들이 많은 상황이었으니 상황이 참 절묘했던 상황이죠. 일본국내의 물적 인적 황폐함을 조선에서 채우려던 도요토미의 계책은 적중했고 결국 임란이후 우리의 기술자들이 만든 물건들과 노예처분으로 일본은 부를 축적했으니 참 통탄할 노릇입니다. 앞으로 천년간 전쟁이 없다해도 다시는 병역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뼈저린 교훈이 되길 바랍니다.
5월4일 선조는 개성에서 다시 평양으로 도주하려고 하면서 윤두수(尹斗壽)에게 이렇게 물었다. “적병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 절반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데 사실인가?”( 25년 5월4일) 선조가 조선을 버리고 도주하려 했던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 조선 백성들이 대거 일본군에 가담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도 선조가 듣기에는 일본군의 절반이나 된다고 할 정도로 많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조선의 병역제도와 조세제도 때문이었다
5월4일 선조는 개성에서 다시 평양으로 도주하려고 하면서 윤두수(尹斗壽)에게 이렇게 물었다. “적병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 절반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데 사실인가?”( 25년 5월4일) 선조가 조선을 버리고 도주하려 했던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 조선 백성들이 대거 일본군에 가담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도 선조가 듣기에는 일본군의 절반이나 된다고 할 정도로 많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조선의 병역제도와 조세제도 때문이었다
끌려간 노예들에 대한 세세한 기록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만 결과는 뻔하겠지요. 베니스의 개성상인이라는 소설이 임진왜란 기간 동안 이렇게 끌려간 노예에 대한 이야기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물론, 그림 속 주인공이 조선인 노예가 아니라 중국인 이라는 것으로 판명되었지요.
일본이 과욕을 부리면서 도조 히데키가 총리에 취임하지 않았다면 조선은 독립하지 못했을 겁니다. 만주사변 일으키지 않고 조선 먹은 선에서 마무리했다면 조선만큼은 완벽히 식민지로 가져갔겠지요. 그 과욕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개되었고 결국 원폭 2방에 일본이 항복하면서 우리는 운좋게 얼떨결에 해방된 것이니까...
경상도 방언으로 남자애를 머시마 머스마 -> 머슴아이 같이 딸내미,딸래미 -> 딸냄(램)아이 -> 떼루ㅁ아 아닐까요..?
오오. 딸내미. 들어 본 것 중 가장 그럴 듯 한 것 같습니다. 어린 여자아이.. ! 감사합니다.
마자 마자 ㅎㅎㅎ
논문수준의 자료 잘 보았습니다
임진왜란을 다룬 그어떤 유투버들보다도 독특하고 깊이있는 내용에 항상 감탄하고 있습니다.
혹시 방송에 나왔던 논문 관심 있으신 분들은 메일주소 남겨주세요. pdf파일로 된 논문 보내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팥방에서 어제 우연히 일본 역사 관련하여 검색 중 발견하여 그 쪽은 다 듣고 오늘은 여기까지 왔네요. ^^ 국어와 일본어의 계통적 유사성에 관심이 많습니다. 논문 보내주시면 흥미롭게 읽을 것 같아서요. venice.jelmano@gmail.com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조선인 노예에 관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습니다. 자료를 보내주시면 너무나 도움이 될 듯 합니다 ... picasso6339@naver.com 감사합니다
역사에서 얻는 교훈이 큽니다
위정자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
두번다시 이런 뼈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정신차려야겠습니다
두 번 다시라고 말하기에는 1번은 임진왜란이고 2번은 한일 합방이고 3번째는 1970년대 일본 이주 노동자 4번째는 현대 한국의 취업난으로 일본으로 가는 노동자까지 연속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하지 않는다...
일본은 선거제도를 도입 자유민주화 되어, 군국주의가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친북 친중 세력의 준동으로, 나라상황이 최악입니다.
가슴아프지만 꼭 알아야할 역사지식이네요.
추천박고갑니다.♥
영상 고맙습니다. 잘 모르던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고맙습니다
역사의 한부분을 알게돼었네요^^
코 가쿠세이에는 작은 가쿠세이, 즉 어린 여자아이로 생각됩니다, 한자 작을 '소' 의 일어음독이 '코' 로 알고있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그 생각을 해보긴 했는데... 논문을 읽어보니(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일본어랑 한국어를 섞어서 만든 단어는 없어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개인적인 추정 후보군에서 제외했습니다만, 합리적인 유추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자리 창출이라.... 일리가 있는 흥미로운 관점이군요.
영화 하라키리를 보면 노숙자가 된 사무라이들이 목숨을 담보로 구걸하는 시대적 상황이 나오는데
무관하지 않은거 같네요.
좋은 영상 늘 감사합니다. ^^
하라키리... 원본도 리메이크도 참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납니다. 타케미츠로 할복하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이 풀렸던 기억이 나네요... 시청 감사합니다.
영상 흥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
팟캐에서 유툽으로 따라온 팬입니다
흥하소서 👑👑👑
※※ AKECHI 光秀님과 사무라이로망
스님을 같이 뵙게될줄이야 ㅋㅋ
두 무림의 고수님들~
아시가루 인사드립니다요 ~
두분 정치성향이 극단적으로 다르기는 함
좋은영상 늘 감사드립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재미있으셨다면 다행이네요 !
예전 임진왜란 포로들 관련 역사스페셜 보고 비슷한 영상들 찾아봤는데 왕족들도 끌려갔다는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역사스페셜에서도 나왔고요. 임해군의 누이와 아들, 딸이 끌려갔고 임해군의 아들이 일본에서 유명한 일연스님이 되었다고 봤습니다. 나중에 이러한 내용의 영상도 한번 다루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
일연이 니치렌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니치렌은 1222년 생입니다. 임해군의 아들일 수는 없죠
다른 일연이라는 승려가 있었다 해도 신빙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선원록에는 왕의 아들이 아닌 좀 떨어진 방계 왕족이라도 변고가 있었다면 기록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 임해군의 아들이 납치되었다는 기록은 없는 걸로 압니다
가슴아프지만 알아야 이길수있는것 잊지 않는것 아니겠읍니까내용이 너무 탄탄하네요. 임진왜란의 실상에 대해 더많은 기록들이 알려져야됩니다. 이후 일제 시대까지 시원하게 알려주세요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가려고요.... 구독자 여러분들하고 모여서 공부도 하고... 그러고 싶네요.
잘 보았어요. ^^
귀무덤이 교토뿐만 아니라 오카야마현이나 후쿠오카현, 대마도에도 발견되는데에는 저런 약탈이 성행했기 때문이겠죠.
역사 탐방식으로 귀무덤을 찾아 다닌 적이 있었는데, 이런 부분의 지식은 처음 접하네요. 잘 보았습니다.
조선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시대 당시 일본 내에서도 귀를 베거나 코를 베는 행위는 있었습니다. 전공을 인정받는 수단이었으니까요.
역시 객관적이고 정확한 개꿀잼채널!
저거보면 사람은 배워야하고 기술이 있어야함
쏘련조차 나치과학자들은 살려둠
열공이 답이다
공부 열심히 하십시다 !!!
좋은 영상 늘 감사합니다.
역사에서 배운다 했습니다. 일본과 또는 중국과의 전쟁이 앞으로 절대로 없다가 맞을까요. 앞으로 살면서 1번 쯤은 일어 날 수 있지 않을까? 가 맞을까요.
일본보다는 중국이 가능성이 높겠지요. 서방이 중국 포위작전에 나선 상황에서 한국 일본이 여기에 참여하는 모습을 갖추고 있으니까요.
현재의 안보위협 요인이 제거되고 나면 그땐 또 모르죠.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손을 뗀다면 독도 문제라는 불씨가 타오를 수도 있을 것이고요.
당장에는 일본과 손을 잡아야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고 미국이 중간에 있으니 일본과 전쟁을 치를 일은 당분간 없을 것입니다.
도공들 사츠마번으로 많이 끌려갔죠
사츠마야끼가 군고구마를 뜻하기도 하는데 조선의 도공들이 사츠마번에서 만든 도자기를 의미하기도합니다
와.. 저 세키기하라 라는 영화를 어제
넷플릭스에서 발견하고… 오늘 내일 안에 보려고 하고 있었는데..타이밍 소름이네요……..영상 올리신 건 이 년 전인 건데.. 와… 좀 더 눈여겨 봐야겠습니다!
정주행 중이시네요. 뒤로 갈 수록 에도시대 이야기로 수렴됩니다만 재미있게 즐겨주세요.
@@samurairomance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데 라디오처럼 들으며 정주행 하고 있습니다~!^^ 재밌게 잘 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흥미로운 내용 잘보았습니다
高麗詞の事에 관한 내용을 인터넷으로 찾아뵜는데 한국 사이트는 언급된것이 하나고 없고 일본에도 상당히 제한적인데 이것에 대한 내용을 추가적으로 알만한 자료는 어떻게 접근하면 될까요
감사합니다
1592 임진왜란에서 나왔었던 회화였군요. "고운 각시 데리러오라"
도쿠가와 이에야스 후로는 조선과 관계를 맺긴 했지만 어쨌든 일본이 여지 껏 우리나라에게 그런게 아니라 이 모든 일에 풍신수길 한 사람으로 비극이었다는 건 알아야 할 듯?
일본 자국은 물론이고, 조선도 뼈아픈 시대를 걸친 역사긴 한데 더 자세히 알아야할 것은 임진왜란에서 풍신수길은 조선 민심을 얻는데 주력한 듯 함.
고려(조선)에 가서 하지 말아야할 것! 내용보면 잔혹하기는 커녕 민간을 헤치는 모습 자체를 볼 수가 없음. 조선 각처에 식량을 내온 만큼 사무라이 직분을 주는 등등 일본의 체계를 구축하는 모습도 있었던 걸로 기억. 이순신장군의 활약과 의병, 당시 일본인들이 치욕스럽게 느꼈던 진주성전투(김시민장군)로 풍신수길은 임진 때와 다르게 정유 때부터는 코베고 귀베고 진주성은 개미조차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고 그 때 참관한 일본 승려가 지옥이나 다름없다는 말도 함.
전쟁에 있어서 임진과 정유 동안 지옥이었던 것이 아니라 정유 이후로 지옥이었음. 그 때까지는 일본보다 더 지긋지긋했던 나라가 명나라라고 했음.
정작 민가 턴건 명나라라서 당시 조선 백성이 두 나라 두고 한 비유가 왜는 장빗, 명은 참빗이라고 명이 그 만큼 조선 백성의 벼룩의 간도 뺏어먹었다 들음.
혹시나 해서 무조건 적인 반사로 흘러가는 정세를 안 보고 일본의 만행으로만 볼까봐 몇자 적습니다.
포루투칼 상인들에게 팔려간 조선인 노예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조선말기에 전 국민의 40~50%가 노비(노예)였던 점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끌려가면 노예, 안끌려가면 노비…예나 지금이나 일반 국민의 삶이란 이렇게 힘들었나 봅니다.
임진왜란때는 조선인에 대한 대우가 좋았다고 하던데요 전쟁이 길어지며 패색이 짓어진 정유재란때 본격적으로 노예 사냥이 있었다고 알고있씁니다 이런 전란을 감당하기 힘든 조선이 병자호란까지 격으며 50만명이 넘는 백성들이 노예로 전락했으니 무능한 왕조로 인해 고통을 격은 백성들에 대해 위로를 표하고 싶네요 ㅠ.ㅠ
조선 역사는 뭐랄까... 저도 답답해서 잘 안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과 연결된 역사 지식 정도만 조금 있는 편이라 중세사, 즉 조선역사에 대해서는 언급을 잘 안하려 합니다. 다른 분들의 조언이 필요한 부분이지요.
코가구세이는 어린 소녀를 말함"코"작다란 뜻으로 쓰임
주인장님 안녕하세요 ~! 최신영상은 좀 그래서 그래도 관련 시대인 이곳에 댓글 질문 남겨봅니다 ㅜㅜ
혹시 최근 넷플릭스에 나온 전,란
보셨는지요??
임란때 배경인데 나무위키로 보니
극중 왜군 장수이자 고니시 부대의
선봉장이라고 소개되는 역활인
깃카와 겐신은 성씨도 그렇고 행적에서 깃카와 히로이에가 모티브가 됐을거라고 하던데
어느정도 타당한 얘기일까요?
코랑 귀로 전공 챙기는게 일반적이지만 깃카와도 상당히
흉악했다고 본것같아서요
그리고 잠깐 지나가는 식으로
중조류라는 일종의 짧은검을 쓰는 유파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이때 주인공(강동원)이 남원에서
토끼머리(?)뿔 투구를 쓴 왜장이
하는걸 눈여겨 보고 따라했다고 하는데 이와관련해서 추측되는
장수가있을까요?
중조류를 쓰고 토끼뿔투구를 쓴
남원 전투에 참전한 왜장이 누군지
너무 궁금합니다.
대략 이 두가지인데 그래도 즐겨보는 채널 주인장분께 여쭤보고싶어서요 ㅎㅎ
시간되실때 아시는 선에서 답변주시면 대단히감사하겠습니다 즐거운하루되세요~!
일단 말씀하신 드라마는 본 적은 없습니다.
적으신 글로만 판단해 보건데, 고증과는 아무 상관 없는 액션물에 가까운 내용으로 보여지고요. 토끼머리 장수의 뭔가를 보고 따라했다는 것에서 영상 속에서 뭔가 의미를 찾는건 넌센스로 보입니다.
다만 토끼 모양의 투구가 뭔지 모르겠지만, 느낌으로는 토도 타카토라 정도를 모티브로 하지 않았나... 아래 링크 참고하세요.
marutake.shop/items/5e721aff0fe71945e070ed87
오오시마 타타야스: 04:59 가덕도에 비행장이 들어선다던데?!
가덕도.. 그대로 진행될까요. ㅋ
정주행 중이시네요. 앞으로 잘 부턱드립니다.
좋은내용 매우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배경음악 빼주시면 더 잘들리겠습니다 듣는데 괴롭네요
투표했던게 드디어 나와서 잘봤습니다. 주로 여성포로들 문구들인데 참 묘하네요 뜻이.. 카쿠세이는 아래 해석하신 분뜻대로 미성년 여시종을 의미하는것 같은데 데루마는 중세국어를 알아야 음차될것같다는 느낌입니다만 저 시대 여성포로들 지칭에서 딸에게 준다면 양반이나 중인급 신분의 교양을 배운여성을 지칭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카쿠세이가 어린여성을 지칭한다면 딸에 필요한건 미용과 교양선생겸 딸보다 연상의 성인여성 시종격의 존재밖에 생각이 안들어서요..
논문 관심 있으시면 보내드릴게요. 메일 주소 남겨주세요. 6000원 짜리 논문...ㅠㅠ
다테 마사무네, 사나다도 꼭 해주세요!!
임진왜란 당시 생각했던거보다 조선이 더 가난해서 약탈할게 너무 없어 왜군이 깜짝 놀랐다는,,,
5월4일 선조는 개성에서 다시 평양으로 도주하려고 하면서 윤두수(尹斗壽)에게 이렇게 물었다. “적병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 절반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데 사실인가?”( 25년 5월4일) 선조가 조선을 버리고 도주하려 했던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 조선 백성들이 대거 일본군에 가담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도 선조가 듣기에는 일본군의 절반이나 된다고 할 정도로 많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조선의 병역제도와 조세제도 때문이었다
유럽에 팔려간 조선인의 기록이 유럽에도 남아 있는 지 궁금하네요
언제한번 이삼평도공에 대한 이야기좀 부탁드립니다 아리타자기가 얼마나 유명하길레
싶기도하고요 ㅎㅎ
워낙 유명하신 분이고, 자료도 상당히 많아서 조금만 검색해 보셔도 많이 나오는 분야니까요. 제가 이야기한다고 해도 뭔가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만한 것이 없을 테마라서....^^;
포르투갈 스페인 노예선이 조선까지 들어와서 노예를 사갔다는 말도 있던데요. 왜란후 사쓰마 번에서는 조선인 도공을 이용해 도자기를 생산하고 한글 사전까지 만들어 조선과 무역하려 하려 했던것 같습니다.
말그대로 대항해 시대군요... 조선까지 직접 들어온 것은 몰랐습니다!! 생각해보면 업자들이 조선까지 와 있는 판에 물류비용 절약하려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samurairomance 고니시유키나가 가 진해웅천에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스페인 신부를 초청해서 미사를 드렸다는것만 보더 라도 ...스페인 신부가 1년을 조선에 있었다고 합니다.
꽃각시 ㄷㄷ 당대 미의 기준이 궁금하네요
세키가하라는 예상은 했었지만 조선인들도 참전했었나보네요ㄷㄷ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찾아봤지만 제가 인용한 신문기사 이외의 정보는 아직 소득이 없네요. 가장 황당한 것은 일본에 끌려간 포로가 일본군 신분으로 정유재란에 참전한 케이스가 아닐까 싶네요. 실제 있었다고 하니까요.
데루마는 도령아닐까요
고가쿠세이 코(아들자) + 가쿠세이 꼬마각시 아닐까요
코카쿠세이는 어린소녀일듯하오 ~~~
코 고 고이 ㅡ 사랑스럽다 어리다 고어 ♥
확실하진 않지만 추론 입니다
세상사 아이러니한게, 도공들은 조선에 있어봐야 빨리기만 했을텐데, 일본가서는 죽어서 신대접도 받고있으니...
조선에 있었으면 노비죠;;;;
ㅂ 발음이 ㅇ 발음으로 나중에 바뀌었다니 하니 코분은 당시 발음이었거나 사투리였을거같네요
테루마는 확실치는 않지만 ~~
손재주가 좋은 여자가 아닐까 하는 ~~
테 ~~ 일본어로 손 손재주 ♥
그럴수 있겠네요.
카다카나로 쓰는 글자는 외래어 입니다
즉 고유 일본어 뜻이 아님
그나마 이순신 장군님이 재해권을 장악해주신덕에 7~10만정도만 끌려 간거 아닌가 십내요....
테루마, 코카쿠세이. 이런용어들로 조선인 노예를 지칭했다니 굉장히 화가나네요. 테루마는 어원이 뭘지 모르겠지만 사투리같은거로 생각하면비슷한단어가 있을것같아요.
노예를 지칭했다기 보다는... 그냥 그 당시 일본어로 번역되었던 일반 단어 표현인 것이지요. 노예를 확보하기 위해서 필요한 단어였다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samurairomance 그렇군요. 모르고 지나칠수도있던부분인데 잘알아갑니다.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저도 경상도에서 딸래미 라고 하듯이 데루마의 어원 같네요
비참한 관노취급의 도공들에겐 일본군은 신의 손길이라고 볼 수 있었죠...
전후 조선에서 몇차례나 포로 귀환을 목적으로 방문해 직접 조선인들에게 같이 귀환하자고 했지만 극소수만이 응하고 전부 거부했죠 ㅋㅋ
일단 가서 후한 대접을 받은 사람일때야 와보니 괜찮네 하는거고 도공중에서도 다수는 일단 고향땅에서 끌려가는건데 즐겁게 갈일은 없죠 성공한 사람들에야 물어보면 그러는거고 기록에 남지도 않은 수많은 도공 포로들은 그냥 노예처럼 살다 죽었을텐데
코카쿠세이는 어린각시 같습니다
일본어에 코무스메가 계집아이 느낌이니
(무스메 / 코무스메)
딸에게 주고싶다가 코가쿠세이였으니
어린여자아이를 주고싶다 일듯합니다
임진왜란에 대해선 일본 국내 영향이 가장 크겠지만 사실 조선 국내상황도 50프로 정도 됩니다. 조선이 강성했다면 감히 일본이 꿈도 못 꿨을 전쟁이지만 조선은 약 200년간 작은 난 정도지 대규모 전쟁이 없었던 관계로 평화에 물들어 군시스템이 엉망이었습니다. 작은 왜구들의 변에도 군시스템이 엉망이라 제대로 대응을 못했고 당시 여러가지 병역비리로 체제가 갖춰져 있어도 빠른 대응이 불가능했죠. 군적에 이름만 있지 대립제 군포제등으로 사람이 비어 있는게 태반이었으니까요. 왜는 이런 조선의 사정을 알고 덤빈 겁니다. 지금이야 우리가 북한 일본 중국등을 잠재적 적들이라 생각해 병역에 한치의 선처도 없이 집행하지만 당시 중국 본토일은 어버이의 나라 명이 알아서 해주겠지 일본은 우리가 가르치고 먹을거 주면서 키우는 개같이 미개한 존재로 여기며 우습게 봤기에 실질적으로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보니 군체계가 개판이었던 탓이 큽니다. 그에 반해 일본은 백년간의 내전으로 국토는 황폐해졌으나 싸움만은 도가튼 용장들이 많은 상황이었으니 상황이 참 절묘했던 상황이죠. 일본국내의 물적 인적 황폐함을 조선에서 채우려던 도요토미의 계책은 적중했고 결국 임란이후 우리의 기술자들이 만든 물건들과 노예처분으로 일본은 부를 축적했으니 참 통탄할 노릇입니다. 앞으로 천년간 전쟁이 없다해도 다시는 병역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뼈저린 교훈이 되길 바랍니다.
5월4일 선조는 개성에서 다시 평양으로 도주하려고 하면서 윤두수(尹斗壽)에게 이렇게 물었다. “적병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 절반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데 사실인가?”( 25년 5월4일) 선조가 조선을 버리고 도주하려 했던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 조선 백성들이 대거 일본군에 가담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도 선조가 듣기에는 일본군의 절반이나 된다고 할 정도로 많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조선의 병역제도와 조세제도 때문이었다
지구상에 나올 수 있는 모든 범죄는 다한 임진왜란 시기 일본. 3살 때부터 목자르는 연습, 한국의 과거급제 인문학 공부.
ㅋㅋㅋ 테루마는 딸내미이려나...
라임이 대충 맞는 듯 하네요 !!
참 이런거 보면 조선이 저렇게 국토가 유린당할정도로 무능했나는 생각에 통탄합니다. 일본이 얕잡아 볼 만도 합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을 무시하는 민족이라고들 하잖아요. --;
저는 일본을 좋아하지만, 국가적으로 보면 두렵기 그지없는 나라인데 말입니다.
@@samurairomance 일본에 당당한 건 좋지만. 무시하고 일부러 눈을 감으려한다면 불이익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ack3145 역사가 증명해 주잖아요. 임진왜란. 식민지시대... 이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5월4일 선조는 개성에서 다시 평양으로 도주하려고 하면서 윤두수(尹斗壽)에게 이렇게 물었다. “적병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 절반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데 사실인가?”( 25년 5월4일) 선조가 조선을 버리고 도주하려 했던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 조선 백성들이 대거 일본군에 가담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도 선조가 듣기에는 일본군의 절반이나 된다고 할 정도로 많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조선의 병역제도와 조세제도 때문이었다
유럽에간 조선인은 어떻게 됬죠?
끌려간 노예들에 대한 세세한 기록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만 결과는 뻔하겠지요.
베니스의 개성상인이라는 소설이 임진왜란 기간 동안 이렇게 끌려간 노예에 대한 이야기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물론, 그림 속 주인공이 조선인 노예가 아니라 중국인 이라는 것으로 판명되었지요.
그래서 조선 반도에 미남미녀가 씨가 말라버렸구나. ㅋ 축구선수나 야구선수 얼굴을 보면 일본 남자는 잘생김. 반면 조선 선수들은 하나같이
코가쿠세이는... 코가 가쿠세이... 꼬마 각시... 어린 여자아이를 뜻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한국말을 일본어로 쓴 거 같은데... 테루마는 뭔지 짐작도 안 가네요.
아줌마? 할멈? 어쩌면 산파 같이 어떠한 특정 기술을 가진 직군의 여성을 뜻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네요.
결국 어리고 귀여운 여자아이하고 손재주가 좋은 바느질 솜씨있는 여자아이 잡아오라는 코 와 테 일듯
추론이니 너무 맹신은 하지마시고 ~~
진실은 아주 저 멀리에 ~~~♥
우리 외할머니 할아버지도 조선노비 30명 거느리셨다고 했는데 지금은 해방되서 잘살겠지
그시절은 노비가 아니고 머슴입니다
노비는 종속이고 머슴은 계약입니다
나쁜짓 많이했네 일본 .... 그러ㅇ니 원폭 2방이나 맞지
일본이 과욕을 부리면서 도조 히데키가 총리에 취임하지 않았다면 조선은 독립하지 못했을 겁니다. 만주사변 일으키지 않고 조선 먹은 선에서 마무리했다면 조선만큼은 완벽히 식민지로 가져갔겠지요. 그 과욕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개되었고 결국 원폭 2방에 일본이 항복하면서 우리는 운좋게 얼떨결에 해방된 것이니까...
언젠가 일본을 응징해줄 날이 올까요?
글쎄요... 응징할 날은 고사하고 또 당하지만 않으면 다행인데... 제 생각엔 또 당할 것 같아요. 그 전에 우리 국민성이 올라오면 다행이지만..
ㅋㅋ일본이 세계 경제규모 3위인데 일본을 이기고 싶으면 일본 밑의 독일, 프랑스, 영국부터 이기고 올라와야 될듯?
피로인 검색 ㄱㄱ 일본이 더 좋음.
비지엠이 80년대 오락같아요
좋지 않나요?
그러고 보니 지금 일본의 이쁜 야동 주인공들은 당시 잡혀간 조선인 혈통일 가능성이 크다
이 영상을 3번은 보았다..눈물만 흐른다..그런대도 지소미아 연장해야한다고 하는사람들 일본제품 사는사람들아 그리고 일본 여행가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아 배알도 없냐..
아직 임진왜란 직후에 사나 보네
이런애들 특징이 한국영토 일본보다 더 철저히 아작낸 몽골과 중국에게는 찍소리도 못함ㅋㅋ
아무리 생각해도 한번은 일본한테 되갚아줘야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우리 한국인은 빚을 지고는 못사는 민족이니까
지도에 독도 표기 바랍니다.
독도 소개하는 영상이 아니기 때문에 필요없어 보입니다.
어휴;;;;;;;;
독도 소개 영상이 아니더라고 지도에 표기는 필수 아닐까요?
무슨말씀하시려는지 알겠습니다만, 독도에 유난 떠는 것이 분쟁지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 없다고 봅니다.
미친 놈들이 아무자리나 애국심 주입하려하네
일본을 용서할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일본을 알고 ..이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