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금전성(가네다죠) 큐슈 후쿠오카의 오노죠 등등 일본 서부에 고대산성 혹은 신룡석이라고 있는게 백제 멸망 직후 백제인들이 참여하여 쌓은 산성들이 꽤 있는데 보면 영낙없는 우리네 산성 모양입니다. 현재 일본 내에서도 찾는 사람들이 제법 있고 유튭에도 이들 소위 조선식산성 답사 영상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과의 연관성을 드러내기 싫어서 그런지 고대산성 이라고 분류합니다.
한반도는 고조선 부여시대엔 마한에 속했고 변한은 북경과 산동반도 지역에 있었는데 변한은 위만이 반란하여 기준왕은 일단의 무리를 이끌고 마한으로 오고 일부는 위그르 지역으로 옮겨가 중마한을 세웠는데 상장 탁을 한으로 세우고 마한 진한 변한 삼체제 나라를 세웠는데 더클라마칸 사막 이름은 더큰나라 마한이란 말이였다.
멕시코라는 나라의 시작은 코르테스 등 스페인 정복자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데, 멕시코가 독립해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스페인 문화의 영향을 자꾸 부정하려는 경향과 비슷하죠. 코르테스의 멕시코 정복은 500년 전 일이고 코르테스가 남긴 기록이 워낙 자세하고 방대해서 사실을 왜곡해가며 억지를 부릴 여지가 원천봉쇄되어 있지만, 한반도 정복자들의 일본열도 정복은 2300년 전 일이라서 눈속임할 여지가 크죠.
일본이 철기를 받아들인곳은 변한이 아니라 백제 입니다. 6세기 까지 덩이쇠로 공급 받았습니다. 기록된 사실만 말씀하시길.. 즉 6세기까지 왜는 청동기 문화이며 열도의 왜를 지칭하지도 않습니다. 왜라는건 피지배계급 즉 왕후장상의 씨가 될수 없는 종족의 일반명사로 최소한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서술된 왜는 열도가 될수 없습니다.
한국인이 up하는 역사의 동영상은 해외로부터의 의견을 철저하게 삭제합니다, 논의를 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구글 검색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국민에 대한 검열이며, 알려져 곤란한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인이 진짜 자국의 역사를 아는 것은 해외에 유학했을 때뿐입니다. 이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남아, 남중국등에서 해안가를 걸처서 동남아인들이 한반도 진출. 그리고 그다음 일본으로 진출. 이들이 야요이. 한국에서는 박혁거세, 일본에선 야요이. 이때 한국엔 조몬인들과 비슷한 신라6부 정가등이 있었고 이들이 조몬인처럼 신석기인들. 또 일본에는 일본식 조몬인들이 있고 이들이 야요이인들에게 밀리고, 야요이인들은 일본의 주축세력이됨.
전방후원분은 한반도측 분묘들의 축조시기가 일본에 비해 1~2세기 늦음. 시기적으로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갈 수 없는 물건임. 그렇다고 임나일본부설은 말이 안 되고, 한강 상실 이후 쪼그라든 백제가 중흥을 위해 일본열도의 세력과 결탁했고, 이 과정에서 왜계 세력이 한반도로 재유입 된 걸로 봐야 함. 역사 가지고 기싸움 하면 안 됨.
당연히 컴플렉스를 느낄수밖에 없음 주로 한반도 도래인들이 세운나라이기 때문임 삼한시대에 230만명 삼국시대에 560만명도래인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음 처음에는 국뽕인줄알고 조사해본결과 한반도대마도루트 캄챠카사할린루트 대만오키나와루트중에 한반도대마도루트가 단연 압도적임 이유는 단순함 지리적으로 가깝고 건너가기 쉽기때문임
@@에르브 해당 논리로 본다면 애당초 국가형태가 없는 왜(지명?국명?)는 도래인/원주민으로 구성되어있었는데 후에 가야,백제가 왜 와 융화되어 '지배층'이 되었다면 왜 공식적으로 가야계,백제계 다 라고 주장하는 역사서는 없는건가요? 있는데 제가 모르는거겠죠..? 가능성이 아닌 사실적 근거가 알고싶네요.
@@박영주-b5q 일본기록이 다 있습니다 사실 천년이상 관서(백제계)가 주도권을 잡다가 도쿠가와집권후에 관동지역(신라계)가 주도권을 잡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간에 메이지유신단행하기전에 이 두지방이 보신전쟁(내전)도 몇차례할정도 사이가 그닥 안좋습니다 지금은 관서랑관동은 서로 지역감정만 남아서 여전히 사이가 그닥 좋지않습니다
@@에르브 그럼 말씀을 인용해서는 과거와 현재 일본의 지배층/지도부는 백제계(덴노,후지와라)와 신라계(도쿠가와)로 나뉘어있으며 이는 관서백제 관동신라 라는 이야기 인가요? 백제인은 워낙 교류가 깊었기에 전성기,퇴쇠기때 일본으로 이주 하여 정착할수도 있으나 신라인은 어떻게 일본에서 정착할수있던걸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한건 그들. 덴노,후지와라,도쿠가와 가문 경우 본인들의 시조가 한반도(백제,신라)로 부터 도래해왔음을 인지 하고 있던것인지 인지 하고있었다면. 왜 임진왜란 때 일제때에는 그 어떤(나의땅이다. 우리조상땅. 등) 표현이 없이 온전히 왜인,일본인이 된것일까요
History flows through and from up north to down south, therefore advanced Korean culture would and could evidently spread to less cultured Japanese islands. Its much a do about nothing kind of situation
@@backdrum 내가 말한게 아니고 동경대 교수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일본인들의 90%가 한반도 이주민이란 사실을 유전학적으로 밝혀냈고, 3~4세기를 전후하여 한반도에서 집단적으로 건너 간 도래인들이 정착하여 지금의 일본을 만들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야.
임나일본부는 틀린 명칭이 아닙니다. 임나는 일본에서 변한(가야) 지역을 의미하는 표현이고, 임나일본부라는 것이 존재 했다는 것 자체는 학계에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 '임나일본부'를 20세기초 일본 사학자들 처럼 한반도 통치를 위한 기구로 해석하는 설이 부정된거지, 임나일본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게 아닙니다. 현대의 사학계는 한반도에서 철을 수입해 쓰던 야마토(일본) 정권이 안정적인 철 수입을 위해 가야 지역에 관리를 파견해서 철 수입과 관련된 여러 일들을 처리토록 했고, 임나일본부란 이때 파견된 관리 혹은 관리가 머물던 거처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무역 대표부나 대사관과 비슷한 거죠.
@@facentjointsyndrom 애시당초 야마토가 가야 7국을 평정했다는 일본서기 기록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부정하면서 그 기록에 포함된 야마토가 백제에게 침미다례를 주었다는 기록만 취해서 백제가 가야를 정복했다거나 백제가 가야를 복속시키고 임나일본부를 세웠다고 주장하는 것 부터가 앞뒤가 안맞는 해석입니다. 무엇보다 그 일본서기에는 임나일본부에 파견된 관리들의 인적 사항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고 이들이 모두 왜인임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전혀 못하고 있지요. 그래서 근초고왕의 가야 정복설은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 학계에서도 '자의적 해석'이라며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현재는 고고학적 성과를 근거로 가야가 백제나 야마토에 복속되어 지배를 받았던 세력이 아니라 독자적인 세력으로 존속했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그래서 임나일본부도 백제나 야마토가 가야를 복속시킨 결과물이 아니라 가야-야마토 양측 모두 필요해서 합의에 따라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부엉이형-r8t 임나가라 혹은 임나국이 어디인지를 놓고는 여러 썰이 있습니다만, 종종 일본에선 임나는 변한 지역(가야)를 의미하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는 뜻입니다. 마치 금관국을 의미하던 "가야"가 후대에 변한 일대의 여러 나라(가야)들을 모두 의미하는 용도로 쓰인것과 비슷합니다.
잘 좀 알아보고 영상을 만듭시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그건 역사가 아니라 자위에 불과해요. 전방후원분 고분형태는 일본이 원조고 우리나라보다 시대적으로도 앞섭니다. 그건 증거가 있어서 도저히 반박할수 없는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왜의 문명이 한반도 보다 앞서있다는 얘기는 아니고, 예나 지금이나 일본의 영토 경제 인구 모두 한반도의 세배에 달할 정도로 국력이 압도적이었어요. 고대도 마찬가지였구요. 임나일본부도 국내 사학계에서도 사실 다 알면서도 쉬쉬하는 측면이 있는데, 일반인들만 헛소리로 치부하죠. 하지만 세계 사학계에선 정설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국내 학자들도 비난받기 싫으니까 공적인 자리에선 그럴리 없다고 하면서도 자기들끼리 사적으로 만나면 다 맞을 거다라고 합니다. 유적 유물 1차사료의 교차검증등 아무리 연구해봐도 사실이 그런걸 어떡합니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지요. 팩트만 말하자면 고대 한반도의 선진기술이 일본으로 전수된 것은 사실이나, 고대부터 현재까지 한반도가 일본열도의 인구,경제,군사력을 넘어선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 당연한 원칙을 놓고 한일 고대사를 보면 모든게 논리정연하게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그걸 부인하니까 모순이 생기는 거에요.
도래인들이 세운 국가는 일본뿐만 아니라 인도도 아리안(페르시아)이 침범해와서 지금 카스트제도 만들어서 지배층으로 통치했고 네팔과부탄도 티벳(토번)이 건너가서 세움 영국도 켙트족이 먼저 정착했지만 독일에서 게르만족들이 이주해서 섞임 이디오피아도 예멘쪽에서 이주해서 세운나라임(원주민수단니그로 혼혈됨) 심지어 알바니아 마케도니아도 그리스계가 많고 키프러스도 80%그리스계임
모든 문화를 중국으로부터 전수 받았다니 ?ㅋㅋㅋ 일단 이말 부터가 틀린 거 아님? 만약 우리민족이 모두 중국으로부터 전수 받았다면, 중국 첫 인류가 탄생했고, 청동기를 개발했고, 고인돌을 개발해서 써왔고, 철기를 개발했고, 조.기장.보리와 돼지,소,말. 낙타 등에 대한 가축업을 개발했고, 토속신앙과 여러 종교 등 문화의 모든 것을 천지창조 한 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소한 역사와 관련된 유전학적 정보만 살펴보더라도, 우리는 중국과 다른 구석이 많고, 고대국가 이전에는 오히려 북방 유목세력과 가깝다는 건 금방 아는데 ㅋㅋㅋ 또한 우리나라는 중국에게 영향 받은 문화를 왜곡한 것이 없어요, 오히려 너무 중국문화를 많이 처받은 것에 대한 비판이 많죠. ㅋ 헌데 일본은 그들의 역사서인 사기와 서기 부터 왜곡이 범람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위 영상이 하고 있는 거죠 ㅋㅋ
감사합니다 잘볼게요 ㅎㅎ
1949년에 발견된 이와주쿠 유적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포징지로 쓴 문서는 오자나 잘못전달된 자료였거나 초급 관료를 훈련시키기위해 연습으로 적인 글이 아닐까요
감사드리며 환절기 건강하시길........
대마도 금전성(가네다죠) 큐슈 후쿠오카의 오노죠 등등 일본 서부에 고대산성 혹은 신룡석이라고 있는게 백제 멸망 직후 백제인들이 참여하여 쌓은 산성들이 꽤 있는데 보면 영낙없는 우리네 산성 모양입니다. 현재 일본 내에서도 찾는 사람들이 제법 있고 유튭에도 이들 소위 조선식산성 답사 영상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과의 연관성을 드러내기 싫어서 그런지 고대산성 이라고 분류합니다.
3:30 디지몬 토우몬의 모티브 입니다.
어떤 역사 학자분이 하신말씀이 생각나네요. 일본은 고대사에 한국은 근대사에 열등감이 있어서 그렇게 서로 지랄하고 게거품을 문다구요.
일본은 고대사 컴플렉스가 있어서 역사왜곡을하고 한국은 근대사 컴플렉스가 있어서 일본을 무시한다 ㅋㅋㅋ
끝에 다를 '더'로 하지만 않으시면 듣기 더더 좋을 것 같아요
응원합니다!
별 난리를 다떠네ㅋㅋㅋㅋ
일본 원주민은 거의 조몬인이고
나머지는 전부 여러차례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주민들임
한반도도 만주. 요동. 요서. 산동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으니. 밀고. 밀린 것임
한반도는 고조선 부여시대엔 마한에 속했고 변한은 북경과 산동반도 지역에 있었는데 변한은 위만이 반란하여 기준왕은 일단의 무리를 이끌고 마한으로 오고 일부는 위그르 지역으로 옮겨가 중마한을 세웠는데 상장 탁을 한으로 세우고 마한 진한 변한 삼체제 나라를 세웠는데 더클라마칸 사막 이름은 더큰나라 마한이란 말이였다.
형님........쩜 .....xxxxxx쩜쩜쩜
멕시코라는 나라의 시작은 코르테스 등 스페인 정복자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데, 멕시코가 독립해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스페인 문화의 영향을 자꾸 부정하려는 경향과 비슷하죠. 코르테스의 멕시코 정복은 500년 전 일이고 코르테스가 남긴 기록이 워낙 자세하고 방대해서 사실을 왜곡해가며 억지를 부릴 여지가 원천봉쇄되어 있지만, 한반도 정복자들의 일본열도 정복은 2300년 전 일이라서 눈속임할 여지가 크죠.
라틴아메리카가 대부분이 스페인혈통 브라질만 포루투갈식민지라서 포루투갈어사용함 쿠바카스트로도 할아버지가 스페인서부농장주였음 순수혈통도 있지만 혼혈이되어서 지금은 히스패닉으로 통함 아르헨티나 칠레는 독일계도 많이 이주했지만 그래도 라틴혈통이 대부분임
日本の事が大好きなんだね💕
일본이 철기를 받아들인곳은 변한이 아니라 백제 입니다.
6세기 까지 덩이쇠로 공급 받았습니다. 기록된 사실만 말씀하시길.. 즉 6세기까지 왜는 청동기 문화이며 열도의 왜를 지칭하지도 않습니다.
왜라는건 피지배계급 즉 왕후장상의 씨가 될수 없는 종족의 일반명사로 최소한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서술된 왜는 열도가 될수 없습니다.
무슨 백제에서 철기를 받아들임? 철기는 가야임 이건 빼박임
@@Ross6437-k2w 사서 보고 말씀하시는거죠?.
삼국시대는 사실상 일본과 한국의 공동역사.
꽤배기머리 귀여워
야마타이의 삼족오 곤지아들 게이타이..이런나라한테 식민지를 당한것인가
그만큼 조선이라는 나라가 썩었다는 것
영국은 미국한테 상대가 되냐? ㅋㅋㅋ
@@Ross6437-k2w너는 걍인도ㅋㅋ
@@ZARDVANA 너는 파키스탄이냐 ㅋㅋㅋ
@@Ross6437-k2w 도끼 용광로에 넣으면 되는데 갈고 앉았네ㅋㅋㅋㅋㅋ
제레미 다이아몬드 x
제러드 다이아몬드 o
일본인 친구도, 일본 유학도, 일본에 살아보지도 못한 일본 에니 오타쿠들이 시답지도 않은 댓글달면서 아는척 해대네...
마한 목지국 진왕 가문이 부여족 여인을 가야에서 결합하며 일본을 통일하며 무덤양식도
바뀌는것으로 보임니다
천황가는 한번도 끝이지않습니다
본론만 말하쇼 좀ㅜ
입구 들가자마자 일본꼽주시네ㅋㅋㅋㅋ
백제 가야 신라인들이 가서 만든거
삼국시대에도 일본인과는 대화가 안통했다는데 삼국인이 일본을 만들엇당께? 😂
@@노무현-k3j 지금도 잘통하는데 무슨???ㅋㅋㅋㅋㅋ일본인들은 역사를 안배우니 ...역사에 대해 아는게 없지 안타깝다.
@@노무현-k3j대화가 왜 안통해 사투리가 안 통한거지 ㅋㅋㅋ
일본의 전방후원군이 우리나라 남부 지방의 장고형 고분보다 시기적으로 앞섭니다. 우리나라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고 그에 대한 해석들이 여럿 존재할 뿐입니다.
일본 원주민은 죠몬인인데 그들의 문화에 전방후원분이 있었시유? 아니쥬 백제왕의 무덤이쥬 😅😅
여기서 환두대도 청동거울등이 나왔시유
역사는 날조로 꼬와놨고 한반도는 돌아가야할
조상들의 땅이나 굽히지는 못하겠고 한국에 대한 히스테리는 어찌보면 이해가
한국인이 up하는 역사의 동영상은 해외로부터의 의견을 철저하게 삭제합니다, 논의를 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구글 검색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국민에 대한 검열이며, 알려져 곤란한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인이 진짜 자국의 역사를 아는 것은 해외에 유학했을 때뿐입니다. 이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저런거에 컴플렉스를 같냐 ㅋㅋ 구석기 있으면 어떻고 없느면 어떰
갖
이런건 우리나라가 할 말은 아닌듯
이 영상 만든 유튜버가 국뽕에 차 있는 듯😮
📛고유명사는 한자를 병기했으면 더 좋았는데...🇰🇷📛
히미코 여왕은 김수로 왕의 딸로 동생의 도움으로 열도에 최초의 나라를 세웠고 가야계가 대거 열도로 이주하였다.
동남아, 남중국등에서 해안가를 걸처서 동남아인들이 한반도 진출. 그리고 그다음 일본으로 진출. 이들이 야요이. 한국에서는 박혁거세, 일본에선 야요이. 이때 한국엔 조몬인들과 비슷한 신라6부 정가등이 있었고 이들이 조몬인처럼 신석기인들. 또 일본에는 일본식 조몬인들이 있고 이들이 야요이인들에게 밀리고, 야요이인들은 일본의 주축세력이됨.
헛소리도 참신하게 하네유 😮😮😮
문사와 역사 연구도 협력하여 잃어버린 한반도와 만주 그리고 왜열도에서의 우리의 역사를 재정립해나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야마토 정권때 천황이라는 용어는 없었음 대왕이라고 불렀는데 후대에 천황이라는 이름으로 의도적으로 바꿈
한반도에도 왕이라는 칭호는 없었어요. 후대에 신라 지증왕때에 처음 중공식 칭제인 왕이라는 칭호를 쓰면서 그 이전 지배자들을 소급적용해서 왕이라고 부르는거죠. 그 이전엔 거서간.차차웅.마립간.이사금 등등 정치적인 이름이 아닌 제사장 성격의 이름으로 불리웠어요.
중국의 황제와 동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전방후원분은 한반도측 분묘들의 축조시기가 일본에 비해 1~2세기 늦음. 시기적으로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갈 수 없는 물건임. 그렇다고 임나일본부설은 말이 안 되고, 한강 상실 이후 쪼그라든 백제가 중흥을 위해 일본열도의 세력과 결탁했고, 이 과정에서 왜계 세력이 한반도로 재유입 된 걸로 봐야 함. 역사 가지고 기싸움 하면 안 됨.
전북인가 충남인가에서 더 이른시기에 만들어진 고분 발견 됐어요
@@Yes_Na 몇년전 전남대에서 전남지역 전방후원분 수백기를 발굴조사하고
무덤의 주인을 알아내기위한 유전자 검사도 했는데,
죄다 일본계 유전자만 나왔음.
당초 전남대는 전방후원분이 한국의 고유문화라는 증명을 하겠다고 호기롭게 나섰다가,
고고학계에서 만류했던 속사정을 그제서야 깨닫곤 발굴을 중단해 버렸음. ㅋㅋ
@@Yes_Na지금도 반일이니?
ㄴㄴㄴ 백제가 고구려한테 얻어터지는 사이 영산강 침미다례가 일시적으로 독립했고 이 침미다례가 북규슈 왜왕국인 츠쿠시왕국이랑 연계한거임 그뒤에 침미다례는 백제에게 츠쿠시국은 야마토에게 흡수
웃기는소리하고있네 전방후원분은 한국수출품이다 오사카 사카이시에 있는 전방후원분 즉 닌토쿠왕릉에서 기마민족 유물이 나와 보스톤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그리고 사이토바루고분. 타카마츠고분에서도 대성동고분에서 나온 유물과 똑같은 유물이 나왔다 역사를 거지같이 배우지마라
일본 역사에 꼭 나오는 신화속 인물 태양신 아마테라스 이자나미 이자나기
당연히 컴플렉스를 느낄수밖에 없음 주로 한반도 도래인들이 세운나라이기 때문임 삼한시대에 230만명 삼국시대에 560만명도래인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음 처음에는 국뽕인줄알고 조사해본결과 한반도대마도루트 캄챠카사할린루트 대만오키나와루트중에 한반도대마도루트가 단연 압도적임 이유는 단순함 지리적으로 가깝고 건너가기 쉽기때문임
일본 극우를 제외하곤 일본역사 학자 상당부분 고대사 쪽에서는 한국쪽에 인정하는 편이죠.
ㅋㅋ그당시에 560만명이 넘어갔다고? 국뽕인줄알고 조사해봤어요?ㅋㅋ삼한시대추정인구가 600만명이 안되는데 우리조상들이 다넘어갔나?ㅋㅋㅋㅋㅋㅋ또 극우가 어쩌고댓글도 역겹고ㅋㅋ 진짜 영감들 유튜브 다삭제시켜야함
@@창현박-x4x 삼국시대가 역사가 긴데~한번에 다 건너간나요? 고구려가 남하정책으로 백제계가 건너가고 백제가 멸망하고 건너가고 가야도 마찬가지임 그전에 꾸준히 이주했고 가야멸망해서 신라에 합병하고 나머지는 대규모로 이동했어요 고구려도 발해랑중국이랑 흡수하고 나머지 이주했음 신라도 마찬가지임 일본기록에 관동지역으로 신라계가 대거이동한 기록도 있어요 아직도 군마현이랑가나가와현에는 신라계유물이 출토가됩니다 규슈랑대마도 이끼섬에 가야계유물이 출토되고 관서지역에는 백제계유물이 출토됨 그리고 지역명도 가야계랑백제계지명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이통계는 일본 사학계에서 발표한것임 다만~고려통일이후에 맥이 끊어져서 더이상 이주는 없었을뿐임
국뽕 틀딱들 댓글보면 일본 극우나 중국 동북공정보다 더 한 쓰레기들임 대한민국의 수치들
당시 인구가 얼마라고 몇백만명이….ㅋㅋㅋ 상식적으로 좀 …. 제발….
유럽을 뒤집어 엎었던 게르만민족 대이동이 75만명임. 조선초 한반도 전체 인구가 550만명이었음… 미친다 정말
우리나라도 외지인이ㅡ만드느나라다.. 단군설화나 난생설화를 보며누알 수 있다..
일본 왕족이 백제 부여씨 후손이면..ㅋㅋ
임진 부터해서 흠흠~~
가야계가 세우고 백제계가 계승한것임 대체로 덴노계랑후지와라계는 백제. 도쿠가와계는 신라계랑관련있습니다
@@에르브
해당 논리로 본다면
애당초 국가형태가 없는 왜(지명?국명?)는 도래인/원주민으로 구성되어있었는데
후에 가야,백제가 왜 와 융화되어
'지배층'이 되었다면
왜 공식적으로 가야계,백제계 다 라고
주장하는 역사서는 없는건가요?
있는데 제가 모르는거겠죠..?
가능성이 아닌 사실적 근거가 알고싶네요.
@@박영주-b5q 일본기록이 다 있습니다 사실 천년이상 관서(백제계)가 주도권을 잡다가 도쿠가와집권후에 관동지역(신라계)가 주도권을 잡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간에 메이지유신단행하기전에 이 두지방이 보신전쟁(내전)도 몇차례할정도 사이가 그닥 안좋습니다 지금은 관서랑관동은 서로 지역감정만 남아서 여전히 사이가 그닥 좋지않습니다
@@에르브 그럼 말씀을 인용해서는 과거와 현재 일본의 지배층/지도부는 백제계(덴노,후지와라)와 신라계(도쿠가와)로 나뉘어있으며
이는 관서백제 관동신라 라는 이야기 인가요?
백제인은 워낙 교류가 깊었기에
전성기,퇴쇠기때 일본으로
이주 하여 정착할수도 있으나
신라인은 어떻게 일본에서 정착할수있던걸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한건
그들.
덴노,후지와라,도쿠가와 가문 경우
본인들의 시조가 한반도(백제,신라)로 부터 도래해왔음을 인지 하고 있던것인지
인지 하고있었다면.
왜 임진왜란 때 일제때에는
그 어떤(나의땅이다. 우리조상땅. 등)
표현이 없이
온전히 왜인,일본인이 된것일까요
솔직하게 말해서 일본은 임진왜란 때에도 민족 개념이 없어서 딱히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서로 갈라진지가 수백년이 넘게 흘렀는데, 안쓸만도 하죠. 일본에서 민족 개념이 생기는건 에도시대 이후부터 입니다.
삼국시대부터 삼국끼리는 언어가 통해도 일본과는 안통했다는 기록이많은데 일본인이 후손?
다통했지 다 동이족인데 사투리만 다르지 지금도 사투리는 모른당께 ㅋㅋㅋ 😅
당신의 고대 역사 개념은
전삼한. 후삼한부터
받아들여야
식민지사학애서 벋어날 수 있습니다
일본에 고대 천황이라는 말은 없었고 대왕 이렇게 불렀다고 하던데
나라지역에서 시작함
나 ㅡ 본인
라 ㅡ 태양신. 대지. 고향
포장지 얘기는 말도 안되는듯 합니다
발로 뛰며 조사하고, 한자한자 기록한걸 포장지로 썼다??
택도 없는 소리로 들립니다
History flows through and from up north to down south, therefore advanced Korean culture would and could evidently spread to less cultured Japanese islands.
Its much a do about nothing kind of situation
고조선, 부여 시기의 한반도와 열도는 마한에 속했고 변한은 북경지역과 산동반도에 있었는데 기준왕때 위만이 반란하여 기준왕은 신하들과 마한지역으로 왔는데 마한세력에 흡수 되었다.
이들 왕족들은 박혁거세의 계림과 김수로의 가야로 발전 하였다
누가 구석기에 컴플렉스를 느낀다디? 모자란앤가
ㅎ ㅎㅎ
한마디로 요약하면 일본은 한반도의 분국, 복사판.
국뽕이지
@@backdrum 사실에 기반한 국뽕은 괜찮아.
@@lovelove0613 사실이 아니거든
@@backdrum 내가 말한게 아니고 동경대 교수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일본인들의 90%가 한반도 이주민이란 사실을 유전학적으로 밝혀냈고, 3~4세기를 전후하여 한반도에서 집단적으로 건너 간 도래인들이 정착하여 지금의 일본을 만들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야.
@@backdrum 사실이다 공부좀하자 제발 빛은 한반도로부터 검색해서 봐라
일본은 한국,중국,몽골도 관심이 없었음
몽골은 여몽연합군으로 쳐들어갔음 날씨때문에 실패했지만
@@주주-m1g신라구라는 해적들이 일본본토까지 들어가서 약탈 한적도 많았다고 하죠
참 말들 많네. 가서 살아봤냐? 사실처럼 말하지말자. 그냥 내생각은 이렇고 근거는 이거다라고 말하자. 😊
일본 답다ㅋ😊
🤓☝️
가스라이팅
임나일본부는 틀린 명칭이 아닙니다. 임나는 일본에서 변한(가야) 지역을 의미하는 표현이고, 임나일본부라는 것이 존재 했다는 것 자체는 학계에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 '임나일본부'를 20세기초 일본 사학자들 처럼 한반도 통치를 위한 기구로 해석하는 설이 부정된거지, 임나일본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게 아닙니다.
현대의 사학계는 한반도에서 철을 수입해 쓰던 야마토(일본) 정권이 안정적인 철 수입을 위해 가야 지역에 관리를 파견해서 철 수입과 관련된 여러 일들을 처리토록 했고, 임나일본부란 이때 파견된 관리 혹은 관리가 머물던 거처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무역 대표부나 대사관과 비슷한 거죠.
임라일본부는 사실이죠
@@facentjointsyndrom 애시당초 야마토가 가야 7국을 평정했다는 일본서기 기록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부정하면서 그 기록에 포함된 야마토가 백제에게 침미다례를 주었다는 기록만 취해서 백제가 가야를 정복했다거나 백제가 가야를 복속시키고 임나일본부를 세웠다고 주장하는 것 부터가 앞뒤가 안맞는 해석입니다. 무엇보다 그 일본서기에는 임나일본부에 파견된 관리들의 인적 사항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고 이들이 모두 왜인임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전혀 못하고 있지요. 그래서 근초고왕의 가야 정복설은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 학계에서도 '자의적 해석'이라며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현재는 고고학적 성과를 근거로 가야가 백제나 야마토에 복속되어 지배를 받았던 세력이 아니라 독자적인 세력으로 존속했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그래서 임나일본부도 백제나 야마토가 가야를 복속시킨 결과물이 아니라 가야-야마토 양측 모두 필요해서 합의에 따라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독자수 늘리려 증거에 기반하는 한국 역사학계의 주류설을 왜곡하는구나. 전방후원분 등
태극기부대류와 반대쪽 극단
임나는 변한이 아니고 고대김해 금관가야 를 임나가라 라고 함 임나는 오직 김해뿐임
@@부엉이형-r8t
임나가라 혹은 임나국이 어디인지를 놓고는 여러 썰이 있습니다만, 종종 일본에선 임나는 변한 지역(가야)를 의미하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는 뜻입니다.
마치 금관국을 의미하던 "가야"가 후대에 변한 일대의 여러 나라(가야)들을 모두 의미하는 용도로 쓰인것과 비슷합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한반도에서 넘어갔다고 현대 한국인과 완전동일민족이아니야~ ㅋㅋㅋ
@@노무현-k3j 맞아~~~~~~~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노무현-k3j 맞아~~~~~~~맞다구~~~~~
교과서 배우지 맙시다
역사를 너무 환빠들 시선으로 보네...
전형적인 국뽕 역사
잘 좀 알아보고 영상을 만듭시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그건 역사가 아니라 자위에 불과해요. 전방후원분 고분형태는 일본이 원조고 우리나라보다 시대적으로도 앞섭니다. 그건 증거가 있어서 도저히 반박할수 없는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왜의 문명이 한반도 보다 앞서있다는 얘기는 아니고, 예나 지금이나 일본의 영토 경제 인구 모두 한반도의 세배에 달할 정도로 국력이 압도적이었어요. 고대도 마찬가지였구요. 임나일본부도 국내 사학계에서도 사실 다 알면서도 쉬쉬하는 측면이 있는데, 일반인들만 헛소리로 치부하죠. 하지만 세계 사학계에선 정설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국내 학자들도 비난받기 싫으니까 공적인 자리에선 그럴리 없다고 하면서도 자기들끼리 사적으로 만나면 다 맞을 거다라고 합니다. 유적 유물 1차사료의 교차검증등 아무리 연구해봐도 사실이 그런걸 어떡합니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지요. 팩트만 말하자면 고대 한반도의 선진기술이 일본으로 전수된 것은 사실이나, 고대부터 현재까지 한반도가 일본열도의 인구,경제,군사력을 넘어선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 당연한 원칙을 놓고 한일 고대사를 보면 모든게 논리정연하게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그걸 부인하니까 모순이 생기는 거에요.
일본 원주민은 죠몬인인데 어떻게 전방후원분이 일제유? 그리고 거기서 한반도 유물과 똑같은 유물이 나왔는데 우째 일제꺼유 ㅋㅋㅋ 청동거울 환두대도등 ㅋㅋㅋ
@@Ross6437-k2w 잘 모르고 무식하면 그냥 가만히 있으세요
@@davidmin1954 나랑 논쟁 해볼껴 넌 그냥 빤스런이야 ㅋㅋㅋ 사카이시에 있는 전방후원분에서 기마민족 유물이 출토되어 지금 보스톤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그리고 사이토바루고분 타카마츠츠카고분에서 가야 지역인 대성동 고분에서 기마민족의 금동신발 마구등이 출토 됐다
이게 일본인의 유물이냐 ㅋㅋㅋ 무식하긴 ㅋㅋㅋ
@@davidmin1954 発表概要:
国立遺伝学研究所集団遺伝研究部門(総合研究大学院大学生命科学研究科遺伝学専攻教授兼任)の斎藤成也教授、東京大学大学院医学系研究科人類遺伝学専攻分野の徳永勝士教授、東京大学大学院理学系研究科・理学部の尾本惠市名誉教授を中心とする研究グループは、日本列島人(アイヌ人、琉球人、本土人)のゲノム解析により、現代日本列島人は、縄文人の系統と、弥生系渡来人の系統の混血であることを支持する結果を得た。
これまでの遺伝学的研究では、アイヌ人と沖縄人の近縁性を支持する結果はいくつか得られていたが、決定的なものではなかった。今回、研究グループは、ヒトゲノム中のSNP(単一塩基多型)(注1)を示す100万塩基サイトを一挙に調べることができるシステムを用いて、アイヌ人36個体分、琉球人35個体分を含む日本列島人のDNA分析を行った。
その結果、アイヌ人と琉球人が遺伝的にもっとも近縁であり、両者の中間に位置する本土人は、琉球人に次いでアイヌ人に近いことが示された。一方、本土人は集団としては韓国人と同じクラスター(注2)に属することも分かった。さらに、他の30人類集団のデータとの比較より日本列島人の特異性が示された。このことは、現代日本列島には旧石器時代から日本列島に住む縄文人の系統と弥生系渡来人の系統が共存するという、二重構造説を強く支持する。また、アイヌ人はさらに別の第三の系統(ニブヒなどのオホーツク沿岸居住民)との遺伝子交流があり、本土人との混血と第三の系統との混血が共存するために個体間の多様性がきわめて大きいこともわかった。
日本列島における人類集団の遺伝的多様性を明確にすることは、人類学的観点のみならず、ゲノム医学にとっても大きな意義がある。将来は、これら集団間の表現型の違いとゲノムの違いを結びつけることが期待される。
@@davidmin1954 왜의5왕 찬ㆍ진ㆍ제ㆍ흥ㆍ무는 백제왕 근구수왕 전지왕 개로왕 문주왕 동성왕 宋書に記された倭の五王(わのごおう)とは、5世紀に、南朝の東晋や宋に朝貢して「倭国王」と叙授された倭国の五人の王、すなわち讃、珍、済、興、武を指します。「倭の五王」の遣使(世修貢職)の記録が『古事記』、『日本書紀』に見られないことや、ヤマト王権の大王が、「倭の五王」のような讃、珍、済、興、武など一字の中国風の名を名乗ったという記録は存在しないため、「倭の五王」は近畿主体のヤマト王権の大王ではないとする説も江戸時代からありました。「讃」→履中天皇、「珍」→反正天皇、「済」→允恭天皇、「興」→安康天皇、「武」→雄略天皇・・・倭の五王の遣使は413年から477年までに少なくとも9回が確認されますが、このうち421年の倭王讃による遣使は東晋に対してですが、425年から477年までの倭王珍・倭王済・倭王興は、いずれも南宋に対するもので、479年倭王武の遣使は南斉対するものです。五王の朝貢年は中国史書からは明らかですが、記紀には(東晋・南宋・南斉の首都・建康(南京市の古称)への)朝獻記録がまったくありません。このため遣使年に在位していた天皇名を推定することで終わっています。具体的なきめてに欠けているのです。
井上光貞『日本の歴史1 神話から歴史へ』中央公論社〈中公文庫〉、1973年10月。ISBN 4-12-200041-6。
佐伯有清 編『雄略天皇とその時代』吉川弘文館、1988年2月。ISBN 978-4-642-02145-6。
安本美典『倭の五王の謎』廣済堂出版〈廣済堂文庫〉、1992年9月。ISBN 4-331-65153-3。
安本美典『大和朝廷の起源』勉誠出版、2005年7月。ISBN 978-4-585-05324-8。
直木孝次郎『直木孝次郎古代を語る6 古代国家の形成―雄略朝から継体・欽明朝へ』吉川弘文館、2009年3月。ISBN 978-4-642-07887-0。
森公章『倭の五王 5世紀の東アジアと倭王群像』山川出版社〈日本史リブレット 人 002〉、2010年4月。ISBN 978-4-634-54802-2。
上田正昭『私の日本古代史 上 天皇とは何ものか−縄文から倭の五王まで』新潮社〈新潮選書〉、2012年12月。ISBN 978-4-106-03720-7。
河内春人『倭の五王−王位継承と五世紀の東アジア』中央公論社〈中公新書〉、2018年1月。ISBN 978-4-121-02470-1。
瀧音能之『「日本書紀」と「宋書」で読み解く!謎の四世紀と倭の五王』青春出版社〈青春新書INTELLIGENCE〉、2018年8月。これらは今やみな骨董品 です。
私は梁書と三国史記を対比して、王名とその遣使年に一致があることを遂につきとめました。双方の資料に集中して分析してみました。
*[---]の中は日本書紀に出現する表記名。
宋書→梁書=百済の諱と王名=日本書紀の表記名
「賛」→須=(餘・須・第14代・近仇首王):[貴須王]
「珍」→余映=(餘映・第18代腆支王):[直支王]
「済」→餘慶=(餘慶・第21代・蓋鹵王):[加須利君]
「興」→牟都=(餘都・第22代・文周王):[汶洲王]
「武」→牟太=(牟大・第24代・東城王):[末多王] *第二章三部後小論に(「倭の五王の後裔」・稲荷山の鉄剣などに詳述)
・梁書では倭の五王の後の二代まで書かれている。これは何を意味するのだろうか。百済王系譜、その連続性と一致する。このことは倭の五王が百済王であることは如実に語っている。もはや否定できないといえよう。
「隆」→餘隆=(第25代・武寧王・(斯摩)(「嶋君しまぎみ・嶋郎」→億計天皇に比定、その状況、父を殺されたことや、また弟が先に天皇になった経緯が近似している。嶋郎は弘計天皇と同母、母は荑媛(はえひめ・書記、これは倭王武と倭王隆が同母であること。嶋郎が先に生まれていることを示します。)
이런 주장 역겹네요. 자기들은 중국으로부터 모든 문화를 전수받았으면서 오리발 내밀면서 독자적인 문화라고 강조하더니 정작 지들은 일본에 문화를 건네줘요? 10분쯤 보다가 역겨워 더이상 못 봐주겠네요 이런 국뽕 유튭들때문에 정작 진짜 역사공부는 안하죠.
조금만 생각해봐도 지리상으로 문화 오가기 가장 적합한 지역이 한반도란 걸 알 텐데 조금 더 객관적으로 살아보세요
영상에 나오지 않나요? 도왜인이 일본 성립에 영향을 줬다는 건 우리가 콧대 높아질 것도 일본이 기분 나빠할 것도 아닙니다
역겨우면 보지마세요 뭐더러 13개나 댓글싸면서 열심히 보셨어요 ㅋㅋㅋㅋㅋ누가칼들고 이거보라고 협박함? 지가클릭해서 쳐봐놓고 ㅋㅋㅋX병을하고잇네 ㅋㅋ
도래인들이 세운 국가는 일본뿐만 아니라 인도도 아리안(페르시아)이 침범해와서 지금 카스트제도 만들어서 지배층으로 통치했고 네팔과부탄도 티벳(토번)이 건너가서 세움 영국도 켙트족이 먼저 정착했지만 독일에서 게르만족들이 이주해서 섞임 이디오피아도 예멘쪽에서 이주해서 세운나라임(원주민수단니그로 혼혈됨) 심지어 알바니아 마케도니아도 그리스계가 많고 키프러스도 80%그리스계임
모든 문화를 중국으로부터 전수 받았다니 ?ㅋㅋㅋ 일단 이말 부터가 틀린 거 아님?
만약 우리민족이 모두 중국으로부터 전수 받았다면, 중국 첫 인류가 탄생했고, 청동기를 개발했고, 고인돌을 개발해서 써왔고, 철기를 개발했고, 조.기장.보리와 돼지,소,말. 낙타 등에 대한 가축업을 개발했고, 토속신앙과 여러 종교 등 문화의 모든 것을 천지창조 한 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소한 역사와 관련된 유전학적 정보만 살펴보더라도, 우리는 중국과 다른 구석이 많고, 고대국가 이전에는 오히려 북방 유목세력과 가깝다는 건 금방 아는데 ㅋㅋㅋ
또한 우리나라는 중국에게 영향 받은 문화를 왜곡한 것이 없어요, 오히려 너무 중국문화를 많이 처받은 것에 대한 비판이 많죠. ㅋ 헌데 일본은 그들의 역사서인 사기와 서기 부터 왜곡이 범람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위 영상이 하고 있는 거죠 ㅋㅋ
일본은 우리 민족이랑께....반일하지 말랑께
사무라이란 말은 우리나라 싸울아비라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아니에요. 사무라이란 말은 侍(시종 시)라고 쓰는데, 시중을 드는 사람이라는 뜻 입니다.
ㅋㅋㅋㅋㅋㅋ
싸울아비 라는 표현 자체가 20세기에 만들어졌습니다. 무사(武士)를 순우리말로 풀어서 "싸울아비"라고 했던거죠.
중세 국어를 보면 "싸우다"는 "싸호다"였습니다. 싸울아비가 고대어였다면 싸울아비가 아니라 싸홀아비 였겠지요.
어쩜 이리 뻔뻔하게 말을할까 확인도 안하구 확정적으로
친일교수가 우리를 조롱하기위해 만들어 퍼트린겁니다 아무연관성이 없다는건 일본어를 조금만 공부해봐도 알수있는 사실입니다
줄무니.ㅡ 조몬시대네. 조몽시대는 1만 5천년 까지 올라간 답니다.ㅡ 조몬토기의 아류 토기가 아무르강 하류로 전해지고 이어서 중류로 이어졌다가 요하문명의 신락문화. 흥륭와 문화로 이어집니다.ㅡ
구석기 사기친것과 우익이 뭔상관이냐?
이게 뭐가 문제인가?
신궁황후 이런에이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