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의 오리와 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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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7 фев 2025
  • 청계천의 오리와 잉어를 보면서...
    언제 보아도 신기하다.
    서울 시내에 실개천이 아닌
    커다란 개천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가!
    그리고
    거기에 오리들이 헤엄치고
    팔뚝만한 잉어들이 한 두 마리가 아니고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둑에 앉아 자세히 바라보면
    작은 아주 작은 물고기들이 오몰오몰
    꼼지락 꼼지락 놀고 있다.
    며칠 전에 생일이였다.
    종로5가 효제루에서 짬뽕을 먹고
    둘이서 청계천을 걸었다.
    나이들어가니 생일도 그리 즐겁지 않다.
    한 살 한 살 먹어감은 결국은
    죽음을 향한 발걸음이 아닌가?
    청계천의 잉어를 보면
    삼십여년 전에 기르던 잉어가 생각난다.
    우리 젊은 날의 음악다방은
    음악이 고프고
    사랑이 고픈 젊은이들의 아지트였다.
    가장 좋은 명당자리는
    금빛 금붕어들이 멋지게 헤엄치는
    커다란 수족관 앞이였다.
    성냥쌓기를 하면서 연인을 기다리고
    친구를 기다렸던 젊은 날과 함께
    내가 길렸던 잉어가 떠오른다.
    아이들 중학생이였을 때
    커다란 수족관을 사고
    2층 아저씨가 잡아온 잉어 한 마리를
    금붕어와 함께 길렀다.
    어항을 똑똑 노크하면
    모두들 몰려와서
    "밥 주세요."
    "빨리 밥 주세요." 하면서 입을 뻐끔인다.
    딸은 그 때부터 생선을 안 먹었다.
    어릴 때 그리도 잘 먹었는데
    어항의 잉어를 보면 생선을 먹을 수가
    없단다.
    노벨문학상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처럼
    아버지에게 뺌을 맞고
    급기야는 정신병원에 입원해도
    고기를 절대 먹지않는 주인공처럼
    딸은 지금 마흔이 넘었는데도
    생선을 즐겨하지 않는다.
    손바닥만한 잉어가
    칠팔년을 기르다보니 팔뚝만하게
    자랐다.
    사람에게만 얼굴이 있는가?
    소에게도 고양이에게도
    모두 각기 다른 얼굴이 있다.
    잉어를 오래 기르다보니
    잉어에게도 이병헌처럼 잘 생긴 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우리집 잉어를 보고
    아주 잘 생겼다고 하나같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그런데
    세월 앞에 장사없다고
    그 잉어가 어느 날보니 내장이 나올듯이
    비늘이 떨어지고 똑바로 헤엄도 못치고
    배가 하늘을 향하고 등이 땅으로
    뒤집혀서 폭풍에 중심잃은 조각배처럼
    이리 저리 둥둥 떠다니는 것이
    아닌가!
    '아니...이게 왠일이냐.'
    강아지가 아프면 동물병원가는데
    잉어가 아프면 어느 병원에 가야 하는가?
    참으로 막막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다른 물고기에게도
    전염된다고 빨리 건져서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야단법석이다.
    어찌 그리 헌신짝버리듯이
    숨도 안 떨어졌는데 버릴 수가 있는가!
    궁리 궁리끝에 무식한 생각으로
    약국에 가서 마이신을 몇 알 샀다.
    커다란 대야에 마이신을 타고
    잉어를 넣어 두었다.
    배 쪽의 비늘은 거의 떨어져나가고
    겨우 아가미에서 헐떡헐떡 숨을
    쉬고 있었으니 살아날 확률은 1%도
    아닌 빵퍼센트 였지만
    숨이 안 끊어져서 차마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기적.
    그렇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며칠이 지나다보니
    뒤집혀진 몸이 바로 서고
    배에 비늘도 옛날처럼 멋지게
    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숨이 끊어져야 죽는 것이다.
    여명이 얼마입니다.
    그렇지만 모른다.
    내 인생의 모래시계가 얼마나 남았는지
    그 누가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그 후
    삼사년을 잉어는 잘 살다 죽었다.
    나는 하얀 백지에 염을 하듯이
    잉어를 싸서 한강이 바라보이는 한강변에
    묻어주고 수족관을 이웃에게 주고
    다시는 기르지 않는다.
    잉어 무덤에 나는 사죄를 하였다.
    나는 너를 사랑하였지만
    그 사랑이 너의 자유를 옳아 메고
    좁은 유리 수족관에서
    또한 얼마나 답답하였니?
    미안하다.
    저 넓은 한강에서 마음껏 훨훨 친구들과
    헤엄치면 얼마나 좋았을텐데
    내 이기적인 사랑이 너의 삶을
    망쳤으니 이제야 사과한 들 무슨
    소용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사과는 하고 이별하고 싶다.
    내 사랑하던 잉어야.
    우리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만나
    신랑 각시 되어 살아보지 않을래?
    사람이나 동물이나
    살아있는 것은 모두가 이별을 한다.
    만날 때 이별을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이별 앞에 가슴을 치게 한다.
    이제는
    사람도 동물도 새로 만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것 같아....
    양희은의 청아한 목소리로 불려지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가사가
    울먹 울먹하면서 떠 오른다.
    사랑도
    이별도
    모두 무섭다.
    그저 지금의 현실에서 쓸쓸하지만
    조용히 흔적없이 어느 날 사라지고 싶다.
    20241014...내 생일날에

Комментарии • 1

  • @김석순
    @김석순  3 месяца назад

    청계천의 오리와 잉어를 보면서...
    언제 보아도 신기하다.
    서울 시내에 실개천이 아닌
    커다란 개천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가!
    그리고
    거기에 오리들이 헤엄치고
    팔뚝만한 잉어들이 한 두 마리가 아니고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둑에 앉아 자세히 바라보면
    작은 아주 작은 물고기들이 오몰오몰
    꼼지락 꼼지락 놀고 있다.
    며칠 전에 생일이였다.
    종로5가 효제루에서 짬뽕을 먹고
    둘이서 청계천을 걸었다.
    나이들어가니 생일도 그리 즐겁지 않다.
    한 살 한 살 먹어감은 결국은
    죽음을 향한 발걸음이 아닌가?
    청계천의 잉어를 보면
    삼십여년 전에 기르던 잉어가 생각난다.
    우리 젊은 날의 음악다방은
    음악이 고프고
    사랑이 고픈 젊은이들의 아지트였다.
    가장 좋은 명당자리는
    금빛 금붕어들이 멋지게 헤엄치는
    커다란 수족관 앞이였다.
    성냥쌓기를 하면서 연인을 기다리고
    친구를 기다렸던 젊은 날과 함께
    내가 길렸던 잉어가 떠오른다.
    아이들 중학생이였을 때
    커다란 수족관을 사고
    2층 아저씨가 잡아온 잉어 한 마리를
    금붕어와 함께 길렀다.
    어항을 똑똑 노크하면
    모두들 몰려와서
    "밥 주세요."
    "빨리 밥 주세요." 하면서 입을 뻐끔인다.
    딸은 그 때부터 생선을 안 먹었다.
    어릴 때 그리도 잘 먹었는데
    어항의 잉어를 보면 생선을 먹을 수가
    없단다.
    노벨문학상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처럼
    아버지에게 뺌을 맞고
    급기야는 정신병원에 입원해도
    고기를 절대 먹지않는 주인공처럼
    딸은 지금 마흔이 넘었는데도
    생선을 즐겨하지 않는다.
    손바닥만한 잉어가
    칠팔년을 기르다보니 팔뚝만하게
    자랐다.
    사람에게만 얼굴이 있는가?
    소에게도 고양이에게도
    모두 각기 다른 얼굴이 있다.
    잉어를 오래 기르다보니
    잉어에게도 이병헌처럼 잘 생긴 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우리집 잉어를 보고
    아주 잘 생겼다고 하나같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그런데
    세월 앞에 장사없다고
    그 잉어가 어느 날보니 내장이 나올듯이
    비늘이 떨어지고 똑바로 헤엄도 못치고
    배가 하늘을 향하고 등이 땅으로
    뒤집혀서 폭풍에 중심잃은 조각배처럼
    이리 저리 둥둥 떠다니는 것이
    아닌가!
    '아니...이게 왠일이냐.'
    강아지가 아프면 동물병원가는데
    잉어가 아프면 어느 병원에 가야 하는가?
    참으로 막막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다른 물고기에게도
    전염된다고 빨리 건져서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야단법석이다.
    어찌 그리 헌신짝버리듯이
    숨도 안 떨어졌는데 버릴 수가 있는가!
    궁리 궁리끝에 무식한 생각으로
    약국에 가서 마이신을 몇 알 샀다.
    커다란 대야에 마이신을 타고
    잉어를 넣어 두었다.
    배 쪽의 비늘은 거의 떨어져나가고
    겨우 아가미에서 헐떡헐떡 숨을
    쉬고 있었으니 살아날 확률은 1%도
    아닌 빵퍼센트 였지만
    숨이 안 끊어져서 차마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기적.
    그렇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며칠이 지나다보니
    뒤집혀진 몸이 바로 서고
    배에 비늘도 옛날처럼 멋지게
    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숨이 끊어져야 죽는 것이다.
    여명이 얼마입니다.
    그렇지만 모른다.
    내 인생의 모래시계가 얼마나 남았는지
    그 누가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그 후
    삼사년을 잉어는 잘 살다 죽었다.
    나는 하얀 백지에 염을 하듯이
    잉어를 싸서 한강이 바라보이는 한강변에
    묻어주고 수족관을 이웃에게 주고
    다시는 기르지 않는다.
    잉어 무덤에 나는 사죄를 하였다.
    나는 너를 사랑하였지만
    그 사랑이 너의 자유를 옳아 메고
    좁은 유리 수족관에서
    또한 얼마나 답답하였니?
    미안하다.
    저 넓은 한강에서 마음껏 훨훨 친구들과
    헤엄치면 얼마나 좋았을텐데
    내 이기적인 사랑이 너의 삶을
    망쳤으니 이제야 사과한 들 무슨
    소용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사과는 하고 이별하고 싶다.
    내 사랑하던 잉어야.
    우리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만나
    신랑 각시 되어 살아보지 않을래?
    사람이나 동물이나
    살아있는 것은 모두가 이별을 한다.
    만날 때 이별을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이별 앞에 가슴을 치게 한다.
    이제는
    사람도 동물도 새로 만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것 같아....
    양희은의 청아한 목소리로 불려지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가사가
    울먹 울먹하면서 떠 오른다.
    사랑도
    이별도
    모두 무섭다.
    그저 지금의 현실에서 쓸쓸하지만
    조용히 흔적없이 어느 날 사라지고 싶다.
    20241014...내 생일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