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이 분, 개그맨인데 저런 분들이랑 토크하려고 공부 많이한게 눈에 확 들어오네요. 물론 개그맨이 머리가 좋은 건 맞지만, 저렇게 인문 사회 역사 군사까지 다양하게 섭렵하는거 보면, 이 분이랑 가까운 분들이나 자녀될 애들은 지식에 접근하는 진입장벽이 낮아질 수 있다는게 부럽네요. 저 말빨로 이야기하면 깔깔깔 웃으면서 지식이 쑥쑥 들어오는 느낌....부럽습니다.
문종이 몸이 약하단 이미지가 있는데 원랜 이양반이 몸도 좋습니다 머리도 좋아요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했어요 단지 효심이 너무 깊어 어머니와 아버지의 삼년상을 다 치뤄버려서 그럽니다 세종은 신하들 3년상도 대충 3일만 하고 복귀하라고 닥달했는데 심지어 억지로 고기까지 먹임... 일하라고 문종이 몸약해진건 세종때문일지도 ㅋㅋㅋ
수양이 문종 옆에서 기도 못 펴던 시절에 문종이 자기랑 제갈량이랑 비교했는데 수양이 옆에서 '제갈량은 장재(장수의 기질)가 부족한 사람인데 어찌 비교가 됩니까?' 이러는 거 보면 허약은커녕 무인 기질도 보통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죠. 아마 몸이 약하다는 이야기도 허약하다 개념이 아니라 병이 잦다의 개념일 겁니다. 또 FM 3년상 때문에 크게 악영향을 끼쳤을 듯. 진짜 문무겸비 심지어 몸도 좋고 잘 생긴 대단한 인물이었죠. 20년 더 살았으면 문종대왕으로 불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구독하시면 ... 역사를 아시는 분이시네요 ㅋㅋ조선을 노예와 기생의 나라로 만든 장본인이 세종이죠,,그것이 결국에는 조선 패망의 원흉이기도 합니다~그리고 세종이 성군? ...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개 웃지요,,,종모법 분 아니죠... 노예가 제 주인 잘못을 했어도 죄를 고하면 사형시키는 법도 만들었죠 ㅋㅋㅋ..
우선 세종대왕님이 10년을 더 사셨다면 문종님께서는 더 오래 사셨겠죠 문종님께서 일찍 사망하신 이유로 뽑히는 것중 하나가 세종대왕님과 소헌왕후꼐서 연이어 돌아가시는 바람에 3년상을 연이어 지내면서 몸도 마음도 않좋아졌기 떄문이라고 하니깐요. 이미 세종 말년에는 문종이 이미 섭정하고 있었고요. 이렇게 될시 단종이 성인이 된 후에 왕위에 오르고... 말그대로 조선의 역사가 완전히 뒤바뀌었겠죠
구본근,,, 세종대왕은 성군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자체가 악마적 국가이죠..그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면 세종대왕이 노비종모법을 만들어 노예와 기생의 나라로 만든 장본인 입니다,,,조선은 개 돼지처럼 사고 팔리던 노예가 자국민의 50%가 넘었어요,,동서고금 인류 역사 통털어 자국민을 그리 많이 노예로 만들어 거느린 국가는 조선 뿐입니다,, 주자학으로 점치는 나라고 유학자 놈들.. 성리학자 놈들 늘 성인군자 따지며 같은 악마짓 다 했습니다,,노비 종모법 외에도 노비가 자신의 상전의 잘못을 관청에 고하면 사형시키는 법을 만들고 군영을 지을때 기생의 숫자가 딸리는 지역은 주막집 여주인과 그 달이 군인들 몸시중 들게 했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지역은 여염집 결혼한 여자가 몸 시중 들게 했죠,,,중국에 공물로 여자를 보낸다고 지가 직접 심사하고 나중에는 중국에 공물로 여자보낸다고 혼인도 금지시킨 ㅋㅋㅋ 조선이란 나라는 악마적 그 차체입니다~생각을 해보세요~길 지나다 눈에들어오는 사람 둘중 하나가 노예입니다~이해가 가시나요?
@@진격의다마네기센세 너무 단편적이네요. 님의 말은 그법으로 생기는 현상에대해서 비판하는거 같은데 ..이것은 본질이 결여 되있네요. 그때당시에대한 이해 없이 결과만 보고 판단하는것은 정말 짦은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보죠 프랑스에는 애견 학대 금지법이 있어요(우리나라예가 생각나지않네요.) 그법이 세종대왕 시절쯤에는 어떻게 보일까요? 이거 하나만 비교해봐다 현상만가지고 판단하다는건 정말 편협하지 안을 까요? 왜 그걸 만들었을까? 란이해를 하기전에 지금 내가 봤을때 참 머같네로 시비건다는거좀...말그대로 키보드워리어"아니야!! 제는 저런 넘이야. 자이부분봐봐 어때 머같지?" 정말 좁은판단아닐까요?
개인적으로는 세종대왕께서 10년 더 사셨더라면도 있겠지만 사실 문종대왕께서 10년 더 사셨더라면이 생각보다 강합니다. 문종대왕이 10년 더 사셨더라면 단종은 세력이 제대로 있지도 않았던 수양에게 밀려버릴 리가 없었을 것이고 세종 - 문종 - 단종으로 이어지는 황금기가 이루어질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세조가 왕권 강화에 기여를 많이 했다는 점도 물론 있지만, 후대의 숙종의 왕권을 보면 이게 다 완벽한 정통성 때문인데 단종 또한 엄청난 정통성을 지녔기 때문에... 단종 재위기간은 너무 짧아서 성군의 자질이 있었는지, 실제로 성군이 될 군왕이었는지(연산군도 오랜 기간 좋은 군왕이다가 비극적인 부모 이야기를 알게 되고 미쳐버린 케이스니까요)는 알 수가 없으나 최소한 문종대왕은 세종대왕의 아들이고 세종대왕의 업적 중에는 문종대왕의 업적이 서로 섞여있으니 성군의 자질은 충분했을 것이라 예상할 수가 있으니까요.
16세기 이후 보다야 훨씬 덜했지만 조선초기도 어쨋든 유교국가고 기술천대하는 풍조가 적지않았는데 왕이 과학기술,농업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나서서 독려했다는게 정말 그 시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인물.. 조선의 과학기술 수준은 세종대 이후로 최소 3세기이상은 전혀 발전을 못했죠
정조는 미치 비스마르크스타일임 내가 천재니깐 나 없어도 조선 잘돌아가겠지 하면서 붕당에 대한 미봉책을 자신의 천재적 능력으로 막다가 자기 죽으니깐 터져서 조선이 망국 태크탔죠 2제국도 그 복잡한 비스마르크체재를 자기 이외 어느 누구도 유지가 불가능한것을 모르고 물러나니 1머전때 다굴맞고 저세상 갔죠
당시는 친명이였으니까 신인무관이나 새 군인을 뽑아 명에다가 특수부대?처럼 파견해서 명도 돕고, 명 전술도 보고 명의 기술력이나 등등을 보고, 우애도 다지면서 프로전사?를 육성했을 것 같네요. 이후에 부상자등은 조선으로 데려와서 전술, 문화, 기술들을 적은 종이들을 같이 보내고 명 성격에 조선이 기특해서라도 뭐 챙겨줄거고 그렇게 뭔가를 주렁주렁 달고 온 부상자는 거기서 배운 훈련이나 전술, 경험들을 토대로 신인육성, 육성된 신인 파견.. 이런 식으로 굴러갔을 것 같네요. 보내는 인원은 정말 최ㅡㅡㅡㅡ측근 노장이라던지를 함께 보내거나 갓 뽑은 따끈따끈한 장수, 병사를 보낼 것 같은게 이미 정치판에서 몇번 굴러본 문관이나 적당히 굳은 사람은 이용해먹으려 할테니까ㅎ 라는 소설을 써보아따. 하지만 어림도 없지!
결국은 재정의 문제로 귀결이 될 것 같은데 중상주의를 채택하지 않는 한 분명히 한계는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선이 상업을 아주 중시하는 나라였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마 어떤 식으로든 더 큰 영향을 줬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늘 하는데, 이 주제로도 한번 이야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유럽이나 일본같이 지방영주나 귀족이 자치권을 가지고 영지를 운영하다보면 부의 축적을 위해서도 경쟁적으로 수공업과 상업 무역에 투자를 많이하고 그게 다시 자기세수로 돌아오며 지금 금수저들도 상상할수 없는 고가품을 구매할수있는 수요층이 형성되었다 봅니다. 그사이에 브루조아도 성장하고요. 다만 그런 봉건영주/지방자치제는 내전과 약탈 전쟁에 시달린다는게 문제지만... 조선의 강력한 중앙집권제도와 성리학은 그런 수요와 경쟁을 철저하게 억제하는 구조와 이념이니 상업을 중시하는 나라가 못되었을거라 생각합니다.
@@kisear455 글세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건대 .. 팔만한건 뭘 만드냐에따라 다를거고 국가차원에서 공무역을 확대 하거나 사무역이 가능했다면 밀매라도 했겠지요. 하고 북쪽으로 여진 몽고와 연결된다면 초원길을통해 유럽도 갈수있고, 물론 우리입장에서야 직접못가도 몽골은 중계무역이 가능할거 같습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무역로 안정을워해 요동 진출도 생각해볼수 있고.. 명이나 일본에 있는 서양상인과 연결을 꽤한다면 일본보다 빨리 서구화도 될수있지 않을까 합니다. 당시 조선에 경쟁상품은 인삼과 도자기가 주력일거고 동영상에 이야기된 내용처럼 무기계발이 성공한다면 그것또한 엄청난 상품이 될거 같습니다.
아! 그리고 많은 분들이 유목민족의 말자상속을 다르게 보시더라고요. 말자상속이 과연 "나라"에도 가한 일일까요? 기본적으로 말자상속은 재산에 관한 룰입니다. 몽고나 스텝은 가혹한 환경이게에 심지어 자녀를 출산하는것 까지도 함부러 할수 없습니다. 가능한한 터울을 지키려 애쓰지요. 이렇게 태어난 장자는 아버지와 더불어 집안을 건사하다가 일정한 연치나 조건이 되면 아버지가 한몫 크게 떼어 분가시킵니다. 그것도 가장 멀리. 이것은 유목민의 경제기반이 유목-방목에 있으며 이를 건사하기위해서는 거대한 방목지를 필요로 하는데 자식과 아비의 방목지가 겹쳐서야 갓 시작한 아들에게 손해가 날것은 뻔하기 때문이죠. 그 다음 아들은 또 아버지에게서 한 몫을 받아서 장가보다는 가깝게 하지만 아버지의 영지에서 멀리 배당 받습니다. 이것은 자연 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장자는 아ㅓ지와 가장 오래 있었기에 그 무리의 성숙도가 가장 높아 외적을 상대해도 생존할 확률이 높으니까요. 다음 아들들을 장자와 아버지의 영지 사이에 두어 가족의 안전을 도모하죠. 하면 막내는 어떤가요? 막내는 아버지가 죽어야 재산을 상속 받습니다. 위의 형들이 받고 남은 것을. 그래서 겉으로는 정주민의 풍습대로하면 장자가 아닌 막내가 아비를 상속한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비에게 남은게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죠! 이는 각 민족의 경제 영위 방법때문인데 이는 유목민의 한개체가 기동력을 갖추기 시작한 순간부터 외연을 넓혀 삶의 터전을 갖춰야하는것과 정주민 특이 농업경제의 한개체는 안정된 장소에서 장기간 숙련된 노동력으로 땅을 일구여야 한다는 것의 차이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경제상속이 왕국에도 합당한가? 왕국이 경제적 과실처럼 상속의 대상이 된것은 인류역사에 그리 오랜 일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그 많은 피튀기는 왕위계승전쟁이 없었게요? 유목민은 위에서 말씀 드린대로 지경地境이 명확하지 않은 느슨한 유동체로서 경제를 영위해 왔습니다. 이런 단위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다보니 단일 정치체계의 형성은 요원해 보입니다. 그래서 부족연맹체가 비교적 오랫동안 존속되지요. 유목민의 왕(칸)은 이 부족회의에서 뽑습니다. 누구라도 왕노릇 싫어하겠습니까? 다만 유목민 칸은 전체 연맹체외에도 자신의 부족까지 손수 다스려야했으므로 (서양은 비슷한 예로 궁정재상 즉, 궁재宮宰가 왕의 부담을 줄였지요.) 꽤나 번거러웠을테죠! 하지만 우리 고구려백제 신라에도 5부,5방,6부제가 있었던 것 처럼 초원 몽고민에게도 회의가 있었습니다. 바로 쿠릴 타이로요. 다만 징기스칸 이후로는 초원 전부족에게 피선거권이 있었던 쿠릴타이가 징기스칸 이후로는 황금씨족 즉,징기스칸의 자손들로 국한되었을 뿐입니다. 때문에 많은 이들의 생각에 말자상속이 되어야할 몽골의 칸위 계승은 박터지는 집안싸움으로 얼룩져 갑니다. 그게 "전통" 이었으니까! 즉, 한집안의 경제상속과 나라의 대권이 따로 놀았던 것입니다. 공자가 원했던게 이 원리의 일원화 였지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신身과 가家와 국國과 천하天下의 도가 다르지 않은 세상을 꿈꾸었던 것입니다. 그덕에 강력한 독재왕권체제의 등장이 있었지만...........
이번주제는 세종보다는 정조가 더 어울리지않았을까요?? 세종 뒤를이은 문종도 훌륭한왕인걸로 알고있습니다. 비록 일찍 돌아가셔서 계유정난이 일어나게끔 상황이 벌어졌지만 정조는 의심스러운 죽음이후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망국의 기운이 생겨났기때문에 오히려 정조가 10년 더 살아서 기울어가던 조선의 중흥을 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세종대왕이나 소헌왕후가 각각 10년 살거나 문종이 10년정도 더 왕위를 보위했다면 단종이 찬탈 당할일이 없죠 실제로 수양대군은 부모에게 효도를 극진히 할만큼 효자였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부모 둘중 멀쩡히 살아있는데 보란듯이 왕위를 뺏는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수양은 정통성이 한참 떨어지죠
아무대나 써도 될려나? 만약 안중근의사(장군)께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실패하셨다면 어찌되었을까? 그 예전 로스트메모리즈 영화와 비교해서 한번 진행해주셨으면 재미있을거 같습니다. 왜 중국이 안중근의사 박물관까지 만들었는지 업적이 어느정도의 동북아정세에 영양을 미쳤는지 정확하게 알고 싶습니다.
다들 많이 착각하는게 문종은 병약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문종 단명 이유는 3년상입니다. 이유는 복잡한데 왕은 보통 3년상을 내관에게 대리로 넘기고 보통 정사를 돌봅니다. 하지만 이때 조선초라 유교가 아직 뿌리 내리지 않은 상황이라 왕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는 상황이 많았고... 그래서 문종은 솔선수범 한다고 스스로가 3년상을 합니다. 그것도 정식절차로 꼼수 안 쓰고요. 한 겨울에도 삼베옷 입고 할 정도로... 어머니 3년상 하고 돌아왔더니 몇일 안 있어 아버지가 돌아 가십니다. 말 그대로 줄초상. 막말로 같이 돌아갔으면 같이 3년상 하면 되는데 이건 시차 3년을 두고 돌아가셔서 다시 3년상을 합니다. 둘이 합쳐 6년상을 한거죠. 그렇게 3년상 해 놓고 몸도 못 추스렸는데 다시 3년상을 하고... 몸에 무리 제대로 와서 그러다 단명 합니다. 여기에 와이프라도 있으면 옆에서 챙겨 주기라도 하는데 와이프는 단종 출산하다 사망했지, 유교를 확립한다고 스스로 3년상을 치렀지, 어머니 3년 치렀더니 곧이어 아버지도 3년상이지... 더운 여름 땡볕에도 추운 겨울에도 왕릉 옆에서 6년간 삼베옷 입고 아이고 아이고를 했으니 몸이 안 상하는게 신기할 정도죠... 문종이 너무 과소 평가 되는 감이 있는데 주제를 세종이 10년 보다... 문종이 10년 더 살았다 거나 아니면 문종의 아내가 단종 출산 후 사망하지 않고 살아 있었다면 이라는 주제가 오히려 더 상상력을 더 자극 하지 않을까 생각 듭니다.
물론 세종이 자식들도 오래 살았으면 좋았는데 아쉽게도 세종은 집안운이 좋지 못했어요. 그래도 세종은 진짜 나라 백성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낮추어서 대하는 태도를 갖춘분이여서 세종님께서 돌아가시고 만백성이 앞에서 울고불고 했다고 기록되어있어요. 그러니 세종도 잘했죠. 다만 조선 후기부터가 좀 많이 망했죠. ㅠㅠ
@@두애즈 문종의 빠른죽음은 어머니 3년상 아버지3년상으로 6년상을 지내면서 건강악화로 죽은거라..어머니3년상 하고 10년 쉬고 아버지 3년상 했으면 더살았겠죠. 그렇다면 더욱 왕권 강화되고 단종은 빨라 봐야 25세 정도에나 왕위에 올라 세조가 감히 쿠데타 생각을 못했을겁니다
4:08 박연은 네덜란드인 화약기술자입니다. 효종때에 활동했고요.
세종때 박연과는 다른 인물입니다.
이 채널은 다 좋은데 편집 과정에 오류가 너무 아쉽네요ㅠㅠ
편집자 역사교육좀 합시다
세종때 박연이라는 인물은 조선의 궁중 음악을 발전시킨 인물이죠.
@@김김김-h5f 뭐 이게 하루아침에 되나 사람 바꿀거 아니면 오류 튀어나오면 그때그때 수정하면서 가야할듯
@@조준용-e5t ??:저는 박연폭포보다 유명해지는것이 목표입니다 삼봉영감
화면에서 자막이 잘못 나온 것 같아요. 세종 때의 박연과 조선에 귀화한 박연은 시대가 다른 사람입니다..
귀화한 박연은 네덜란드 사람 맞죠?
@@홍홍이-h8i 벨테브레 맞습니다.
하멜이 조선에 표류 했을때 통역관 역할도 하죠. 효종 쯤 됩니다.
그러고 보니 공교롭게도 세종대왕과 효종의 능 이름도 똑같이 '영릉'이라고 하는군요.(한자는 다르겠지만.)
@앰브로스 전에 샘 해밍턴이랑 누가 호두의 영어단어를 까먹어서 검색하던 장면이....
@@bedenhelm 데이브
4:05 조선 초기 박연이 나오지 않고 16c에 귀화한 박연(벨테브레)이 나오네요?? 영상 또는 자막 처리 실수로 보여집니다.
6:50 박사님이 태종의 죽음을 언급하시는데 세종대왕의 어진이 나오네요. (세종대왕님 2번 돌아가심?!)
허준 이 분, 개그맨인데 저런 분들이랑 토크하려고 공부 많이한게 눈에 확 들어오네요. 물론 개그맨이 머리가 좋은 건 맞지만, 저렇게 인문 사회 역사 군사까지 다양하게 섭렵하는거 보면, 이 분이랑 가까운 분들이나 자녀될 애들은 지식에 접근하는 진입장벽이 낮아질 수 있다는게 부럽네요. 저 말빨로 이야기하면 깔깔깔 웃으면서 지식이 쑥쑥 들어오는 느낌....부럽습니다.
12:21 와 소름. 레알 조선 전기는 남쪽 전면전과 북쪽 뚫고 내려와서 끊났지... 그것까지 걱정하시며 돌아가시다니...
세종대왕보다는 문종대왕이 10년만 더 사셨다면 조선은 많이 다른 모습이었을겁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세종이 10년 더 사셨으면 문종이 대리청정을 10년 더하셨을겁니다.
세종은 치세 말년 동안 건강이 안좋아서 문종이 대리청정했었기때문에 별로 달라질것도 없지요.
하지만 문종이 10년 더살았으면 역사는 어마어마하게 달라지게 되겠지요.
일단 세종이 10년 더 살았다면 문종도 좀 더 오래 살아겠죠. 황후와 세종이 얼마 안가 사망하면서 3년상 이상을 하면서 안그래도 병약한 육체가 피폐 되다는 말이 많습니다.
그렇게되면 세조도 없을것이고 세조가 없으면 경국대전의 성종이 없게 되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합니다
e l 어차피 법전은 왕이 누구든 만들었을 겁니다
역사엔 만약은 없습니다ㅠ(이 10년프로의 컨텐츠도 이해못하는 눈치도 없는새끼임)
문종이 몸이 약하단 이미지가 있는데
원랜 이양반이 몸도 좋습니다
머리도 좋아요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했어요
단지 효심이 너무 깊어 어머니와 아버지의 삼년상을 다 치뤄버려서 그럽니다
세종은 신하들 3년상도 대충 3일만 하고 복귀하라고 닥달했는데
심지어 억지로 고기까지 먹임...
일하라고
문종이 몸약해진건 세종때문일지도 ㅋㅋㅋ
궁녀들중에 문종보고 반해서 쫓겨났다는 사람도 있다던데 ㅋㅋㅋㅋㅋ
수양이 문종 옆에서 기도 못 펴던 시절에 문종이 자기랑 제갈량이랑 비교했는데 수양이 옆에서 '제갈량은 장재(장수의 기질)가 부족한 사람인데 어찌 비교가 됩니까?' 이러는 거 보면 허약은커녕 무인 기질도 보통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죠. 아마 몸이 약하다는 이야기도 허약하다 개념이 아니라 병이 잦다의 개념일 겁니다. 또 FM 3년상 때문에 크게 악영향을 끼쳤을 듯. 진짜 문무겸비 심지어 몸도 좋고 잘 생긴 대단한 인물이었죠. 20년 더 살았으면 문종대왕으로 불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성계의 핏줄이니까요
수양, 안평 같은 사람들이 반항할 엄두를 못낸 인물이죠.
태조(무)+세종(문)=문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죠.
3년상 원래대로 치르면 보디빌더급에 신체를 가지고있는사람도 걸어다니는 병원처럼된다던데
와 진짜 형 임박사님 콜랍는 신의한수였음 앞으로도 기대함
군면제자도 국방TV 구독하게 만든 임용한 박사님 너무 치트키 아닙니까? ㅋㅋㅋㅋ 바로 구독 알림설정 박고 보겠습니다.
세종대왕께서 피의 숙청을 하고 형제들을 죽이며 나라의 기반을 다진 아버지를 보고 자랐으니 책임감 사명감이 어마어마하셨을거예요
진짜 세종 업적도 업적이지만 정말 열심히 사셨다.... 너무 존경스러운데
준이형 이 프로 너무 재밋네요ㅋㅋㅋ
정조가 20년 더 사셨더라면도 찍어주세요:)
오류가 있어서 댓글 남깁니다.
4:03 위 영상에서 띄우는 박연은 세종대왕대 박연이 아니라 인조 시절 당시 네덜란드 출신의 박연입니다. 혹시라도 영상 그림보고 세종 시절 박연이 네덜란드 출신이라고 오해할까봐 댓글 씁니다.
박사님 진짜 마르셨네요ㅋㅋㅋㅋㅋ
토전사 초반으로 돌아가고이는것 같아요ㅎㅎ
대왕님께서 공무, 공부, 연구에 집중을 하고 스트레스도 쌓이다 보니 몸이 망가지셨던지라... '세종이 10년 더 집권했다면'이라는 말은 즉 '세종이 건강했다면'이라는 명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황희 과로사 성삼문 과로사 조말생과로사 김종서 죽을때까지 육진에서 노가다 ㅋㅋㅋㅋ
@@오로라민규C 세종대왕이 10년 더 살았다면 이라고 가정이 있는데 무슨 사육신이야 ㅡㅡ
황희 노인네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일하다가 과로사로 궁안에서 죽을지도
김종서는 글쎄.. 변방에서 세운공이 어찌됐든 적지 않았으니 세종이 더 살고 아니고 상관없이 결국 중앙에서 당상관은 충분히 했을 인물입니다
@@ukikaze9930 세종은 전문가 위주 인재 선발이라 김종서가 무장일을 잘 했으면 계속 무장으로 썼을 거임.
ㅋㅋㅋㅋ
와 저시대에 남자도 육아휴직을 줬었다니 헐 대단하다진짜 지금도 가기 힘든 휴직인데
문종이 3년상 무난하게 해서 오래 살았다면도 흥미로울 것 같네요 ㅎㅎ
문종이 3년을 더 살아다고 하며는 아마도 세조는 쿠테타을 못 해쓸 것이다 그리고 아주 아주 안전적으로 단종이 왕위을 받아서 단종의 아들이 왕위을 이어서 받아게지요
태종이 세종 고기 먹이도록 유언을 남기듯이 그렇게만 했어도... 아니면 양녕만 제대로 쳐내었더라면...
사실상 쿠데타는 꿈도 못꾸겠죠. 문종이 살아있었으면 어떻게든 세조(수양대군)가 허튼생각못하게 꺽어버렸을테니. 그렇게 되면 단종이 더 성장해서 왕위에 올랐을테니.
사실 문종도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였죠 세조도 문종 살아있을때는 쥐죽은듯 살았으니 깝치지 못하고
그 대에서 제대로 지내서 있었다면 아직도 왕권이 있었을지도 모를정도에요... ㅎㅎ 세조가 뒤엎는 바람에 망할 나라가 되고
그 망할 나라 덕분에 민주주의가 그나마 자리를 잡은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 물론 세조가 잘했단건 아니에요 ㅎㅎ;
20분이 길지않을까 생각해서 조심스럽게 눌렀는데 시간가는줄 모르고 보았습니다 ㅋㅋ
군사제도 개편... 와... 잠이 확깨네요 ㅎㅎ
한가지.. 단순히 국뽕에 기반한 감상적인 상상이 아닌 그 속에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다음 영상 기대하겠습니다~ ㅎㅎ
아들(수양)이 웬수네ㅋㅋㅋㅋ 어떻게 아버지가 한 거를 다 망치냐ㅋㅋㅋㅋ
노비종모법이나 터치하지
수양이놈이 저지른 가장 큰 패착 3가지는 두고두고 조선을 좀먹게 됩니다. 1. 검,창버리고 활만 주력 채택 2. 화약병기 전면 취소 3. 훈구파에게 과대 권력을 주면서 그에 반발현상으로 훗날 사림이라는 씹선비 집단을 탄생시킴.
@@구독하면프사주움 노비종모법은 당시 필요했던 거고 그걸 걸고 넘어지는건 친일학자들이 일전 근대화론을 주장하기위한 논리로 사용하는겁니다 좀 알고말합시다 그리고 노비는 중세의 농노랑 비슷하지 로마나 미국초기 노예랑은 다릅니다
구독하시면 ... 역사를 아시는 분이시네요 ㅋㅋ조선을 노예와 기생의 나라로 만든 장본인이 세종이죠,,그것이 결국에는 조선 패망의 원흉이기도 합니다~그리고 세종이 성군? ...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개 웃지요,,,종모법 분 아니죠... 노예가 제 주인 잘못을 했어도 죄를 고하면 사형시키는 법도 만들었죠 ㅋㅋㅋ..
@@진격의다마네기센세 쯔쯧 시대의 배경을 보고 성군을 판단해야지. 현 사회의 시선으로 보면 옛날 왕들 중 성군이 어디있습니까? 영상 보신거 맞죠?
세종대왕 후속으로 문종이 10년 더 사셨다면..?은 어떠신지요?
문종의 세자 시절 행적을 통해 짐작해 본 조선의 모습과 세조의 모습 비교해보는 것도 잼날듯요 ㅎㅎ
우선 세종대왕님이 10년을 더 사셨다면 문종님께서는 더 오래 사셨겠죠
문종님께서 일찍 사망하신 이유로 뽑히는 것중 하나가 세종대왕님과 소헌왕후꼐서 연이어 돌아가시는 바람에 3년상을 연이어 지내면서 몸도 마음도 않좋아졌기 떄문이라고 하니깐요.
이미 세종 말년에는 문종이 이미 섭정하고 있었고요.
이렇게 될시 단종이 성인이 된 후에 왕위에 오르고... 말그대로 조선의 역사가 완전히 뒤바뀌었겠죠
@@양사람 미투
@@양사람 않좋아졌기->안 좋아졌기 ^^
@@양사람 ㅇㅈ 3년상 한번만 치루어도 왠만한 질병이 오는데 두번치뤘으니......
세종대왕은 한글(훈민정음) 창제와 압록강-백두산 천지-두만강의 국경을 정립하신 것만으로도 차고 넘치게 위대한 분임. 한글의 위대함은 말할 것도 없고, 전세계에 섬나라를 제외하고 이런 완벽에 가까운 자연국경선을 구축한 나라 자체가 없음.
응 부민고소방지법~~
@@user-ge5yr2hg7 응 제대로 조사하고 와~
@@arsenalatleletico9874 응 팩트
@@user-ge5yr2hg7 팩트라는데 무슨 팩트?ㅎ
@@arsenalatleletico9874 세종이 부민고소방지법만든게 팩트라고 한글못읽어?
정말 세종대왕님 같은 지도자가 필요한 현시대입니다ㅠㅠ
드디어 잘 들립니다... 감사합니다!
일단 세종대왕께서 아직 살아계셨다면 음.. 지금 시대가 달라졌겠죠. 좀더 사회가 평탄했겠죠 ㅠㅠ 지금 시대 사람들중에 세종대왕같은 마음과 생각을 가지신 사람 인재가 나와야하는데 ㅠㅍ
그 악마같은 자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 님도 개 돼지 처럼 사고 팔리던 노예나 여자분이면 아마 기생이 되어 있을 껄요~
@@진격의다마네기센세 세종대왕이 악마?
구본근,,, 세종대왕은 성군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자체가 악마적 국가이죠..그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면 세종대왕이 노비종모법을 만들어 노예와 기생의 나라로 만든 장본인 입니다,,,조선은 개 돼지처럼 사고 팔리던 노예가 자국민의 50%가 넘었어요,,동서고금 인류 역사 통털어 자국민을 그리 많이 노예로 만들어 거느린 국가는 조선 뿐입니다,, 주자학으로 점치는 나라고 유학자 놈들.. 성리학자 놈들 늘 성인군자 따지며 같은 악마짓 다 했습니다,,노비 종모법 외에도 노비가 자신의 상전의 잘못을 관청에 고하면 사형시키는 법을 만들고 군영을 지을때 기생의 숫자가 딸리는 지역은 주막집 여주인과 그 달이 군인들 몸시중 들게 했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지역은 여염집 결혼한 여자가 몸 시중 들게 했죠,,,중국에 공물로 여자를 보낸다고 지가 직접 심사하고 나중에는 중국에 공물로 여자보낸다고 혼인도 금지시킨 ㅋㅋㅋ 조선이란 나라는 악마적 그 차체입니다~생각을 해보세요~길 지나다 눈에들어오는 사람 둘중 하나가 노예입니다~이해가 가시나요?
@@진격의다마네기센세 너무 단편적이네요. 님의 말은 그법으로 생기는 현상에대해서 비판하는거 같은데 ..이것은 본질이 결여 되있네요. 그때당시에대한 이해 없이 결과만 보고 판단하는것은 정말 짦은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보죠 프랑스에는 애견 학대 금지법이 있어요(우리나라예가 생각나지않네요.) 그법이 세종대왕 시절쯤에는 어떻게 보일까요? 이거 하나만 비교해봐다 현상만가지고 판단하다는건 정말 편협하지 안을 까요? 왜 그걸 만들었을까? 란이해를 하기전에 지금 내가 봤을때 참 머같네로 시비건다는거좀...말그대로 키보드워리어"아니야!! 제는 저런 넘이야. 자이부분봐봐 어때 머같지?" 정말 좁은판단아닐까요?
그때 노비보다 지금 고3이 더 고민이 많을듯. 역사를 저런식ㅇ.로 보는 인간도 있네 ㅋㅋ
개인적으로는 세종대왕께서 10년 더 사셨더라면도 있겠지만 사실 문종대왕께서 10년 더 사셨더라면이 생각보다 강합니다. 문종대왕이 10년 더 사셨더라면 단종은 세력이 제대로 있지도 않았던 수양에게 밀려버릴 리가 없었을 것이고 세종 - 문종 - 단종으로 이어지는 황금기가 이루어질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세조가 왕권 강화에 기여를 많이 했다는 점도 물론 있지만, 후대의 숙종의 왕권을 보면 이게 다 완벽한 정통성 때문인데 단종 또한 엄청난 정통성을 지녔기 때문에... 단종 재위기간은 너무 짧아서 성군의 자질이 있었는지, 실제로 성군이 될 군왕이었는지(연산군도 오랜 기간 좋은 군왕이다가 비극적인 부모 이야기를 알게 되고 미쳐버린 케이스니까요)는 알 수가 없으나 최소한 문종대왕은 세종대왕의 아들이고 세종대왕의 업적 중에는 문종대왕의 업적이 서로 섞여있으니 성군의 자질은 충분했을 것이라 예상할 수가 있으니까요.
13:27
선조 : ........
4:05 이때의 박연은 설명한 네덜란드인이 아닌걸로 알고있는데 아닌가요?
박다엘 네네 박연 자막이 1595 년으로 되있는데
세종대왕님 재위기간은 그로부터 150년정도 전입니다 ㅋㅋ
흠 10년이 참 크긴크죠. 문종10년 단종까지 안정적이게 갔다면 계유정난이 일어날수가 없죠 이게 장자적자계승으로 2대가 고대로 이어질확률이 커지는거니까 명분상
박사님 팬이에요!!! 박사님 말씀하시는거에 많은걸 배워가요!
박사님 전공이 이쪽이라 다른 if와 다르게 혼자서도 많이 생각해보신티가 나네요 ㅋㅋ
이야, 역시 갓 세종대왕님
부랑민이 아니라 '부락민'이라고 말씀하신것 같은데, 자막 잘못된듯 합니다.
치세 마지막 거의 10년은 문종대왕이 거의 대리로 일하셨다던데..지병인 당뇨가 악화되어 더 사시긴 거의 불가능..
현대의 복지정책, 공익사업, 천문학,음악, 농학 등등 심지어 식습관까지 보면
존경을 넘어서 미래에서온 사람이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듭니당..
요즘 지도자들중에도 세종 발끝애 미치는 사람이 하나도 없죠.. 거의 대부분의 학문에 그 시대에서 최고점에 이른 세기의 천재
식습관 ㅋㅋㅋ 고기좋아!
@@이원호-e7r 세종대왕님은 근손실을 막기위해 고기를 드신게 아닐까...라는 생각 ㅋㅋ
16세기 이후 보다야 훨씬 덜했지만 조선초기도 어쨋든 유교국가고 기술천대하는 풍조가 적지않았는데 왕이 과학기술,농업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나서서 독려했다는게 정말 그 시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인물.. 조선의 과학기술 수준은 세종대 이후로 최소 3세기이상은 전혀 발전을 못했죠
@@kan_pan ㅋㅋ 실제로 뇌가 엄청 열량을 많이 소비하죠
지금 약 7분 정도 봤는데 전 사실 10년 더 살았다면 단종이 어찌 되었을까가 궁금하네요 ㅎㅎ
좃밥은 오래 살아도 좃밥이야
@@김리크 세종 10년후면 단종도 10년 후인데? 재위할 때 이미 20살이 넘는다 숙종급 정통성을 가진 왕이 자기 정치 할 나이인데 수양이 뭘 하냐?
아마도 수양대군 왕이될가능성없을것이구 문종단명하지않을듯 그리고 단종이 오래살고 왕노릇했을듯
뒤늦게 봤는데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ㅋㅋ
이런 컨텐츠 너무 좋아요.
어느세 사운드가 이렇게 좋아진거죠? ㅋㅋㅋㅋ 핀마이크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쫓아 여기까지 왔네요. ㅋㅋ
국빙티비 - 인문학 - 레드뭐시기 - 여기까지 ㅎㅎ
더욱 많이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세종대왕의 업적은 지금까지도 우리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의 업적과 철학은 세상 모든 사람이 이 사회의 주인이 되는 그 날까지 쭈~~욱 계승되어 갈 것이다.
정말 임용한 박사님 정말 혜박하시네요!!!
잘봤습니다~~~다음엔 정조 10년 부탁드려요~ 정말 역사에서 너무 아쉬운 죽음...정조 이후 조선이 급격하게 무너진 것 같아서요.
정조는 미치 비스마르크스타일임 내가 천재니깐 나 없어도 조선 잘돌아가겠지 하면서 붕당에 대한 미봉책을 자신의 천재적 능력으로 막다가 자기 죽으니깐 터져서 조선이 망국 태크탔죠 2제국도 그 복잡한 비스마르크체재를 자기 이외 어느 누구도 유지가 불가능한것을 모르고 물러나니 1머전때 다굴맞고 저세상 갔죠
10년을 더 살았다면 무엇보다 단종이 제대로된 국왕이 될수 있었겠네요
문종이 일찍 단명한것이 삼년상 하다가 된거여서. 계산 다시 하면 단종이 조금더 늦게 즉위 가능 하겠죠.
수양이 그렇게 문종을 좋아 했으니.
역사는 완전히 바뀌게되는겁니다 세조의 쿠데타와 즉위도없을거고 그후대도 단종의 후손이었겠고... 당신과 나 또한 이세상에 없을겁니다
사실 이 주제를 처음 봤을때 당연히 계유정난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했었는데 딱 그 앞에서 끊네요.ㅎㅎㅎ
근데 국방정책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을 것이다...
오히려 수양대군이 왕이되긴 힘들었을거라는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보다 이쪽이 더 흥미로운데요? ㅎ
황희:어우! 끔찍한 소리...
ㅋㅋ뒤에 관리비 명세서 시선강탈 ㅋㅋㅋ
임용한 박사님 체중감량 한 10kg 이상 하신거 같습니다! 대단하십니다!
당시는 친명이였으니까 신인무관이나 새 군인을 뽑아 명에다가 특수부대?처럼 파견해서 명도 돕고, 명 전술도 보고 명의 기술력이나 등등을 보고, 우애도 다지면서 프로전사?를 육성했을 것 같네요.
이후에 부상자등은 조선으로 데려와서 전술, 문화, 기술들을 적은 종이들을 같이 보내고 명 성격에 조선이 기특해서라도 뭐 챙겨줄거고 그렇게 뭔가를 주렁주렁 달고 온 부상자는 거기서 배운 훈련이나 전술, 경험들을 토대로 신인육성, 육성된 신인 파견.. 이런 식으로 굴러갔을 것 같네요.
보내는 인원은 정말 최ㅡㅡㅡㅡ측근 노장이라던지를 함께 보내거나 갓 뽑은 따끈따끈한 장수, 병사를 보낼 것 같은게
이미 정치판에서 몇번 굴러본 문관이나 적당히 굳은 사람은 이용해먹으려 할테니까ㅎ
라는 소설을 써보아따. 하지만 어림도 없지!
꿀잼이다!!! 2편 빨리 업로드 해주세요 제발요 ㅠㅠ
담주가 너무 기대됩니다
허준님 개진상 이프시리즈 정말 사랑하고있습니다!!! 앞으로도 쭈욱!! 번성해주세요!!!
동영상에 오류가 있는데요. 4:05초에 나오는 음악가 박연은 1378년생으로, 네덜란드 출신으로 귀화한 박연(1595년생)과는 다른 분입니다.
전 제목보구선 세종의 아들 문종이 걱정됐네요 ㅋㅋ
대리청정만 하다가 끝났을듯;;
근데 또 단종이 쫓겨날일도 없었을수도 있으니 소설쓰기시작하면 끝이없네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어쩌다가 이순신장군편보고 구독해서
이것도 보러왔습니다ㅋㅋ세종편도 재밌을것같네요
결국은 재정의 문제로 귀결이 될 것 같은데 중상주의를 채택하지 않는 한 분명히 한계는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선이 상업을 아주 중시하는 나라였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마 어떤 식으로든 더 큰 영향을 줬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늘 하는데, 이 주제로도 한번 이야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려가 몽골 이전까지 동북아의 강자이자 가장 부국강병이었던 나라였는데..해상무역의 몰락으로 나라의 부가 줄어들면서 사농공상으로 찌그러들었죠..
유럽이나 일본같이 지방영주나 귀족이 자치권을 가지고 영지를 운영하다보면 부의 축적을 위해서도 경쟁적으로 수공업과 상업 무역에 투자를 많이하고 그게 다시 자기세수로 돌아오며 지금 금수저들도 상상할수 없는 고가품을 구매할수있는 수요층이 형성되었다 봅니다. 그사이에 브루조아도 성장하고요. 다만 그런 봉건영주/지방자치제는 내전과 약탈 전쟁에 시달린다는게 문제지만... 조선의 강력한 중앙집권제도와 성리학은 그런 수요와 경쟁을 철저하게 억제하는 구조와 이념이니 상업을 중시하는 나라가 못되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안병욱-r6q 그걸떠나서 어디에 팔건데요? 당시 명이나 일본다 해금정책 펼친거로 아는데 그리고 팔상품이 있기는 한가요?
@@kisear455 글세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건대 .. 팔만한건 뭘 만드냐에따라 다를거고 국가차원에서 공무역을 확대 하거나 사무역이 가능했다면 밀매라도 했겠지요. 하고 북쪽으로 여진 몽고와 연결된다면 초원길을통해 유럽도 갈수있고, 물론 우리입장에서야 직접못가도 몽골은 중계무역이 가능할거 같습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무역로 안정을워해 요동 진출도 생각해볼수 있고.. 명이나 일본에 있는 서양상인과 연결을 꽤한다면 일본보다 빨리 서구화도 될수있지 않을까 합니다.
당시 조선에 경쟁상품은 인삼과 도자기가 주력일거고 동영상에 이야기된 내용처럼 무기계발이 성공한다면 그것또한 엄청난 상품이 될거 같습니다.
참고로 16세기 도자기를 만들수 있는 나라는 중국, 베트남, 조선 인데 조선은 중국도자기와 견줄만한 품질 이라네요.
허준 티비는 못 참지 ㅋㅋ 일단 구독 넣어야지
참 재밌네요. 잘 봤습니다.
아, 세종 시기에 왕족의 정치 참여에 대해 이렇게도 해석하셨귀요. 많은 걸 배웠습니다ㅠ
세종 후반부가 세자인 문종이 전면에 나온걸 봐선 10년 더 사시는건 너무 가혹한거 같네요 ㅎㅎ
비판에 시력저하에 당뇨 등등 달고 사셨는데 ㅜㅜ
세종대왕이 만든 노비법에 대해서 설명해주실수 있나요?
우와!!!재밌다!!!심장이 쿵쾅!!!
근데 훈구학파가 몰락하는 게 중종 이후니 어차피 큰 차이가 있었을까도 싶음..그래도 문종 단종으로 치세가 이어졌다면 연산군 같은 암군이 나오진 안 았겠죠..
역사는 승자의 기록임 연산군이 과연 암군이었을까요? 중종때부터 공신세력에 외척까지... 왕권이 흔들린거보면 왕권이 강해지는걸 바라지않은 세력에의해 권력에서 밀렸다고밖에 볼수없음.
소리 커지니까 듣기 좋네요
아! 그리고 많은 분들이 유목민족의 말자상속을 다르게 보시더라고요.
말자상속이 과연 "나라"에도 가한 일일까요?
기본적으로 말자상속은 재산에 관한 룰입니다. 몽고나 스텝은 가혹한 환경이게에 심지어 자녀를 출산하는것 까지도 함부러 할수 없습니다.
가능한한 터울을 지키려 애쓰지요.
이렇게 태어난 장자는 아버지와 더불어 집안을 건사하다가 일정한 연치나 조건이 되면 아버지가 한몫 크게 떼어 분가시킵니다.
그것도 가장 멀리. 이것은 유목민의 경제기반이 유목-방목에 있으며 이를 건사하기위해서는 거대한 방목지를 필요로 하는데 자식과 아비의 방목지가
겹쳐서야 갓 시작한 아들에게 손해가 날것은 뻔하기 때문이죠.
그 다음 아들은 또 아버지에게서 한 몫을 받아서 장가보다는 가깝게 하지만 아버지의 영지에서 멀리 배당 받습니다.
이것은 자연 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장자는 아ㅓ지와 가장 오래 있었기에 그 무리의 성숙도가 가장 높아 외적을 상대해도 생존할 확률이 높으니까요.
다음 아들들을 장자와 아버지의 영지 사이에 두어 가족의 안전을 도모하죠.
하면 막내는 어떤가요? 막내는 아버지가 죽어야 재산을 상속 받습니다. 위의 형들이 받고 남은 것을.
그래서 겉으로는 정주민의 풍습대로하면 장자가 아닌 막내가 아비를 상속한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비에게 남은게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죠!
이는 각 민족의 경제 영위 방법때문인데 이는 유목민의 한개체가 기동력을 갖추기 시작한 순간부터 외연을 넓혀 삶의 터전을 갖춰야하는것과
정주민 특이 농업경제의 한개체는 안정된 장소에서 장기간 숙련된 노동력으로 땅을 일구여야 한다는 것의 차이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경제상속이 왕국에도 합당한가? 왕국이 경제적 과실처럼 상속의 대상이 된것은 인류역사에 그리 오랜 일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그 많은 피튀기는 왕위계승전쟁이 없었게요?
유목민은 위에서 말씀 드린대로 지경地境이 명확하지 않은 느슨한 유동체로서 경제를 영위해 왔습니다. 이런 단위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다보니
단일 정치체계의 형성은 요원해 보입니다. 그래서 부족연맹체가 비교적 오랫동안 존속되지요.
유목민의 왕(칸)은 이 부족회의에서 뽑습니다. 누구라도 왕노릇 싫어하겠습니까?
다만 유목민 칸은 전체 연맹체외에도 자신의 부족까지 손수 다스려야했으므로 (서양은 비슷한 예로 궁정재상 즉, 궁재宮宰가 왕의 부담을 줄였지요.) 꽤나 번거러웠을테죠!
하지만 우리 고구려백제 신라에도 5부,5방,6부제가 있었던 것 처럼 초원 몽고민에게도 회의가 있었습니다. 바로 쿠릴 타이로요.
다만 징기스칸 이후로는 초원 전부족에게 피선거권이 있었던 쿠릴타이가 징기스칸 이후로는 황금씨족 즉,징기스칸의 자손들로 국한되었을 뿐입니다.
때문에 많은 이들의 생각에 말자상속이 되어야할 몽골의 칸위 계승은 박터지는 집안싸움으로 얼룩져 갑니다. 그게 "전통" 이었으니까!
즉, 한집안의 경제상속과 나라의 대권이 따로 놀았던 것입니다.
공자가 원했던게 이 원리의 일원화 였지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신身과 가家와 국國과 천하天下의 도가 다르지 않은 세상을 꿈꾸었던 것입니다.
그덕에 강력한 독재왕권체제의 등장이 있었지만...........
정조도 해주세요!!
켠왕라이브 끝나고 보고 갑니다 ㅋㅋ
이번주제는 세종보다는 정조가 더 어울리지않았을까요?? 세종 뒤를이은 문종도 훌륭한왕인걸로 알고있습니다. 비록 일찍 돌아가셔서 계유정난이 일어나게끔 상황이 벌어졌지만 정조는 의심스러운 죽음이후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망국의 기운이 생겨났기때문에 오히려 정조가 10년 더 살아서 기울어가던 조선의 중흥을 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전혀요 오히려 정조때부터 대놓고 세도정치 증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숙종때부터 보이기 시작합니다 환국으로 정당을 다 부수니 왕이 의지할 세력이 외척밖에 없었죠
20분 순삭 ㄷㄷ 빨리 다음편도 올려주세요
세종대왕이나 소헌왕후가 각각 10년 살거나 문종이 10년정도 더 왕위를 보위했다면 단종이 찬탈 당할일이 없죠
실제로 수양대군은 부모에게 효도를 극진히 할만큼 효자였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부모 둘중 멀쩡히 살아있는데
보란듯이 왕위를 뺏는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수양은
정통성이 한참 떨어지죠
아무대나 써도 될려나? 만약 안중근의사(장군)께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실패하셨다면 어찌되었을까? 그 예전 로스트메모리즈 영화와 비교해서 한번 진행해주셨으면 재미있을거 같습니다.
왜 중국이 안중근의사 박물관까지 만들었는지 업적이 어느정도의 동북아정세에 영양을 미쳤는지 정확하게 알고 싶습니다.
정조도 해주세요 ㅎㅎ
박사님 너무 멋져요 진짜
박사님 만수무강하세요!
임진왜란 초기 대응에는 확실히 달라졌겠죠!!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마음이 드네요~
허준님 이것도 해주실수 있나요 만약 2차세계대전을 독일이 승리를 했다면
울펜슈타인이네
@@LebronOhtani 딱 보자마자 이거생각난 ㅋㅋ
독일이 승리하고 일본이 미드웨이해전에서 이겼더라면 흠;;; 우린 일본어 쓰고있겠죠...
역시 믿고 보는 교수님입니다.
문종이 10년 더 사셨으면 조선이 국방적으로 더 강했을수도
문종.... 정말 10년만 더 사셨스면 조선은 얼마나 번성했을까요?....
@@최우진어머니입니다 조선의 전성기는 더 길었을것 같고 집현전도 계속 유지되었을테니 학문적으로도 많이 발전하고 북방을 더 안정화시키셨겠죠
하다못해 단종이 수양대군 몰래 눈피해 도망쳐서 제대로 성장한다음 반정 일으켰다면...달라졌을지도..
세종이 10년 더 즉위했더라면 문종의 죽음을 보고 저 어린 단종에 대한 고민을 했겠죠
(세종의 수명이 는다고 문종의 지병이 고쳐지진 않을테니까)
그리곤 가장 야망이 크고 영향력이 큰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을까 상상해보네요
그건 아닙니다.
문종의 단명 이유중 하나가 3년상 이라서요.
다들 많이 착각하는게 문종은 병약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문종 단명 이유는 3년상입니다.
이유는 복잡한데 왕은 보통 3년상을 내관에게 대리로 넘기고 보통 정사를 돌봅니다.
하지만 이때 조선초라 유교가 아직 뿌리 내리지 않은 상황이라 왕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는 상황이 많았고...
그래서 문종은 솔선수범 한다고 스스로가 3년상을 합니다. 그것도 정식절차로 꼼수 안 쓰고요. 한 겨울에도 삼베옷 입고 할 정도로...
어머니 3년상 하고 돌아왔더니 몇일 안 있어 아버지가 돌아 가십니다. 말 그대로 줄초상.
막말로 같이 돌아갔으면 같이 3년상 하면 되는데 이건 시차 3년을 두고 돌아가셔서 다시 3년상을 합니다. 둘이 합쳐 6년상을 한거죠.
그렇게 3년상 해 놓고 몸도 못 추스렸는데 다시 3년상을 하고... 몸에 무리 제대로 와서 그러다 단명 합니다.
여기에 와이프라도 있으면 옆에서 챙겨 주기라도 하는데 와이프는 단종 출산하다 사망했지,
유교를 확립한다고 스스로 3년상을 치렀지, 어머니 3년 치렀더니 곧이어 아버지도 3년상이지...
더운 여름 땡볕에도 추운 겨울에도 왕릉 옆에서 6년간 삼베옷 입고 아이고 아이고를 했으니 몸이 안 상하는게 신기할 정도죠...
문종이 너무 과소 평가 되는 감이 있는데 주제를 세종이 10년 보다...
문종이 10년 더 살았다 거나 아니면 문종의 아내가 단종 출산 후 사망하지 않고 살아 있었다면 이라는 주제가
오히려 더 상상력을 더 자극 하지 않을까 생각 듭니다.
문종의 세자시절 업적이 세종대왕업적으로 알고있는것도 많지요
좋아요 누르고 봅니다 ㅎㅎ
세종대왕이 10년 더 사는것 보다는 문종이 20년 아니 적어도 10년만 더 살았어도.....세종이 10년 더 살았어도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겠지만 다음 세대가 그걸 유지 발전시키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문종이 더 오래 살았음 싶음
물론 세종이 자식들도 오래 살았으면 좋았는데 아쉽게도 세종은 집안운이 좋지 못했어요. 그래도 세종은 진짜 나라 백성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낮추어서 대하는 태도를 갖춘분이여서 세종님께서 돌아가시고 만백성이 앞에서 울고불고 했다고 기록되어있어요. 그러니 세종도 잘했죠. 다만 조선 후기부터가 좀 많이 망했죠. ㅠㅠ
1빠당 혹시 살빼느라 무리하셔서 심장 안좋아지시는건가요 ㅠ
52세 세종 대왕님께서 10년이 아니라 아예 80세 영조만큼 장수 하셨다면 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 시스템은 좋은건 백업,업뎃 아니다 싶음 포맷 이3가지가 되면서 일본,명 깝칠 생각도 못했을듯(...) 물론 세조는 세종 눈치보면서 단종이나 보살폈겠지.
혹시 정도전이 만약 이방원을 이겼더라면?(왕자의 난에서 죽지 않았더라면?)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두나 일본어 쓰고 있으려나
명나라에 우리민족 씨말려서 니하오 거리고 살고 잇을수도 ㅋㅋㅋ...
박사님~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13:30 박사님 피셜 선조 인조는 쓰레기다
10년만 더 사셨으면 문종과 단종이 차례대로 기반을 다졌기에 정말 수양의 쿠데타는 꿈도 못꿨을 가능성이 컸겠죠...
Orgalog Gunter 문종이 세종재위 중 돌아가시고 수양이 왕위를 물려받았을 가능성도 있지않나요
@@두애즈 문종의 빠른죽음은 어머니 3년상 아버지3년상으로 6년상을 지내면서 건강악화로 죽은거라..어머니3년상 하고 10년 쉬고 아버지 3년상 했으면 더살았겠죠. 그렇다면 더욱 왕권 강화되고 단종은 빨라 봐야 25세 정도에나 왕위에 올라 세조가 감히 쿠데타 생각을 못했을겁니다
이경재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와 너무 재밌다!
만약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이순신 장군님이 돌아가신 이후 조선이 멸망하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섰다면 어떻게 됐을까에 대해서 다뤄주세요!
4:05 이 사람은 설명이 잘못 돼있네요. 인조 때인가 표류해서 중용된 사람이라 세종과 시대상으로 무관한 사람입니다.
빨리 2탄 올려주세요!!!
박연에 대한 설명에 오류가 있음. 여기서의 박연은 조선 세종때의 음악가였고 조선으로 귀화한 네덜란드인이었던 박연은 본명 얀 야너스 벨테브레로 조선 효종시기의 인물임.
세종이 운동 좀 했더라면 ...
그것보다 문종이 10년만 더 살았더라면
넘 재밌다 ㅌㅋㅋㅋ
만약에 세종대왕께서 지금까지 살아 계셨다면?
조선에 최초로 정상적이고 아랫사람들을 잘 아껴주는 진정한 지도자가 세종대왕님이랑 정조(?)대왕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10년 더 살아계셨다면
군사적인 기술에도 힘을 썼을거에요
그럼 일본놈들도 쳐들어가지도 않을텐데
끊기 신공!!! 다음편 어여 올려주세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