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들 폐태자(廢太子) 양용(楊勇): 능력은 나름 좋았으나 은근슬쩍 여자를 밝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로 인해 어머니 문헌황후에게 미움을 받았고 결국 둘째 양광이 사치와 방탕하다는 모함까지 하면서 결국 폐태자되어 방릉왕(房陵王)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양광이 찬탈을 하면서 우문지급을 보내 목졸라 죽였다. 둘째 아들 진왕(晉王) 양광(楊廣): 수양제 항목 참조. 셋째 아들 진왕(秦王) 양준(楊俊): 사치를 심하게 하고 여색을 밝혔으며 백성을 착취했다. 그의 바람기가 얼마나 심했던지, 그의 부인이 남편을 독살하기 위해 독약을 넣은 과일을 먹고 양준은 병을 얻어 죽었다. 하지만 양준은 그나마 일찍 죽은 터라 다른 형제들에 비하면 그렇게 비참한 말로는 아니었다. 대신 수나라 관련 창작물에선 등장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넷째 아들 촉왕(蜀王) 양수(楊秀): 평소 행실이 양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양광처럼 욕심이 많아서 감히 황제가 되고자 하는 야욕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둘째형 양광의 술수에 걸려들어서 거세되었다. 막내 아들 한왕(漢王) 양량(楊諒): 그나마 수문제의 자식들 중에서는 정상이었지만 외지에서 세력을 키우며 황위를 노렸다. 수문제가 양광에게 죽자 그는 형에게 죽기 싫어서 장례를 치르러 장안으로 오지 않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군사적으로 무능했기에 양광에게 패배하여 포로가 되어버린 뒤 죽었다. 이처럼 수문제의 다섯 아들들은 한결같이 재물과 여색을 탐했거나 서로 우애할 줄을 몰랐다. 애초에 자식들이 하나 같이 이 모양이니 비록 가식이었으나 유일하게 능력이 있으면서 근면하고 검소한 것처럼 행동하는 양광에게 눈이 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마도 중국 역사상 최악으로 아들 복이 없는 황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양광이 황궁에서 반란을 일으켜 인수궁을 포위했을 때, 수 문제는 “만약 황후가 살아있다면 짐이 이런 처지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출처: 수문제 나무위키
북방민족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버지의 첩실중 임신가능한 나이에 있는 첩실들은 장성한 아들들이 나누어 가지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웠을 겁니다. 형사취수제라고요. 척박한 환경에서 민족... 부족을 유지하기 위해선 미래세대가 나와야 했습니다. 유교적 관점에서 아버지 첩실들을 재혼도 못 하게 하고 모시고만 살면 출산가능한 나이대의 여성들이 아이를 남기지 못하고 소모 되는 겁니다. 지금식으로 재혼을 허락하면 다른집안에 시집가서 그 집안 아이를 낳는다면...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집안이 밀릴 수가 있죠. 그래서 그런 풍습이 있었습니다. 수양제의 아버지 수문제는 한족이지만 어머니 독고황후는 선비족출신입니다. 수양제에게도 북방민족의 풍습이 남아있을 수 있는거죠. 지금의 관점으로 6세기, 7세기 경에 일어난 일을 무조건 패륜이라고 비난하긴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수양제가 죽을 때 강남(지금의 중국 양주)에 있다 우문화급, 지급형제의 난으로 죽었는데... 수양제의 아들, 손자, 첩실까지 다 죽었는데... 황후인 소비는 살아남습니다. 소비가 어질고 인품이 있기도 했지만 우문화급과 내연의 관계였습니다. 소비는 여기저기 팔려다니긴 하지만 80을 넘길만큼 천수를 누립니다. 일국의 신화와 황후가 내연관계가 될 만큼 그 당시엔 유교사상이 그렇게 일반적인건 아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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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다시 보기 천일야사
매주 화요일 밤 11시 20분 방송
연개소문 김갑수 보고 오신분 👍
갑수형님도 그렇지만 진부인 배우가 존예라서 여기도 그럴까 기대하고옴
나
천일야사재미있다
첫째 아들 폐태자(廢太子) 양용(楊勇): 능력은 나름 좋았으나 은근슬쩍 여자를 밝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로 인해 어머니 문헌황후에게 미움을 받았고 결국 둘째 양광이 사치와 방탕하다는 모함까지 하면서 결국 폐태자되어 방릉왕(房陵王)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양광이 찬탈을 하면서 우문지급을 보내 목졸라 죽였다.
둘째 아들 진왕(晉王) 양광(楊廣): 수양제 항목 참조.
셋째 아들 진왕(秦王) 양준(楊俊): 사치를 심하게 하고 여색을 밝혔으며 백성을 착취했다. 그의 바람기가 얼마나 심했던지, 그의 부인이 남편을 독살하기 위해 독약을 넣은 과일을 먹고 양준은 병을 얻어 죽었다. 하지만 양준은 그나마 일찍 죽은 터라 다른 형제들에 비하면 그렇게 비참한 말로는 아니었다. 대신 수나라 관련 창작물에선 등장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넷째 아들 촉왕(蜀王) 양수(楊秀): 평소 행실이 양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양광처럼 욕심이 많아서 감히 황제가 되고자 하는 야욕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둘째형 양광의 술수에 걸려들어서 거세되었다.
막내 아들 한왕(漢王) 양량(楊諒): 그나마 수문제의 자식들 중에서는 정상이었지만 외지에서 세력을 키우며 황위를 노렸다. 수문제가 양광에게 죽자 그는 형에게 죽기 싫어서 장례를 치르러 장안으로 오지 않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군사적으로 무능했기에 양광에게 패배하여 포로가 되어버린 뒤 죽었다.
이처럼 수문제의 다섯 아들들은 한결같이 재물과 여색을 탐했거나 서로 우애할 줄을 몰랐다. 애초에 자식들이 하나 같이 이 모양이니 비록 가식이었으나 유일하게 능력이 있으면서 근면하고 검소한 것처럼 행동하는 양광에게 눈이 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마도 중국 역사상 최악으로 아들 복이 없는 황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양광이 황궁에서 반란을 일으켜 인수궁을 포위했을 때, 수 문제는 “만약 황후가 살아있다면 짐이 이런 처지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출처: 수문제 나무위키
연개소문에서 갑수형 버프 제대로 탔지 ㅎ
그건 아니지..양광이가 진나라 멸망시키고 얻은 전리품은데..애비라는 작자가 아들의 전리품을 가로채갔으니...
대운하랑 만리장성 까지는 좋았는데 각종 궁전과 사치 고구려 원정까지만 안갔어도 ㅋ
이쁜이 윤희씨가 왕후역으로 출연하셔네요
이쁜이 민지씨가 수문제후궁역으로 출연하셔네요
민지님 sns아시나요?
수양제 연기는 김갑수님이 잘하심
천일야사
이거 병사가 2명밖에 없어, 반란군이 이렇게 적었나..
황제성!
중국폭군3대 흐흐흐흐
혜자님이네여
군주가 이러니
나라가 망하지
임금은 하늘이 내리는 것인데
왕위찬탈을 했으니...
히틀러나 스탈린 김일성도 하늘이 내림?
순진하긴
연개소문 수양제 보다 여기보니까 노잼이네 진부인도 연개소문에 나온 진부인이 더 이쁨
수양제가 아빠의 첩을 건드리는거는 근친상간죄겠다
정사= 아버지 황제가 죽자 진부인은 귀비로 삼아 자신의 애첩으로 삼았다.
후에 진귀비가 죽자 수양제는 매우 슬퍼하였다. ㅅㅂ
드라마 고증이 완전 개판이네 . 작가가 무식한 인간이네 . 수양제는 황제의 죽음은 따로있다고 목매달아 죽었는데 지꼴리는대로 갈겨놓고 드라마늘 만들어놨네 .
아들의 여자를 탐낸 황제도 있는데
사실 이게 더 이해못할 일이죠, 유목민족 피가 섞인 관롱집단인데 유목민족 문화 관점에서도 작품이 제작될 필요가 있을듯
중국의 군주 중 저 정도는 흔합니다.
손님에게 부인을 내주는 나라도 있지아마
천년제국 시이일라
근데 첩이면 남주니
아들한데 넘기는게 낮지안나
진짜근친도 만연시대에
다들 발연기에 비쥬얼도 이상함
북방민족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버지의 첩실중 임신가능한 나이에 있는 첩실들은 장성한 아들들이 나누어 가지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웠을 겁니다.
형사취수제라고요.
척박한 환경에서 민족... 부족을 유지하기 위해선 미래세대가 나와야 했습니다.
유교적 관점에서 아버지 첩실들을 재혼도 못 하게 하고 모시고만 살면 출산가능한 나이대의 여성들이 아이를 남기지 못하고 소모 되는 겁니다.
지금식으로 재혼을 허락하면 다른집안에 시집가서 그 집안 아이를 낳는다면...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집안이 밀릴 수가 있죠.
그래서 그런 풍습이 있었습니다.
수양제의 아버지 수문제는 한족이지만
어머니 독고황후는 선비족출신입니다.
수양제에게도 북방민족의 풍습이 남아있을 수 있는거죠.
지금의 관점으로 6세기, 7세기 경에 일어난 일을 무조건 패륜이라고 비난하긴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수양제가 죽을 때 강남(지금의 중국 양주)에 있다 우문화급, 지급형제의 난으로 죽었는데...
수양제의 아들, 손자, 첩실까지 다 죽었는데...
황후인 소비는 살아남습니다.
소비가 어질고 인품이 있기도 했지만 우문화급과 내연의 관계였습니다.
소비는 여기저기 팔려다니긴 하지만 80을 넘길만큼 천수를 누립니다.
일국의 신화와 황후가 내연관계가 될 만큼 그 당시엔 유교사상이 그렇게 일반적인건 아니었던 겁니다.
독고? 독고영재!!
우문화급 부럽습니다. 다른 이도 아닌 황후랑... 유부녀 중 최싱급 아닌가. 유부녀들가 취향인 애들은 우문화급을 롤모델로 삼을듯.
형사취수제 라면 말그대로 .부사취수제아니고. 아버지가 아니라 형제 안닌가요..중국에선 근대까지 그런풍습이 있는걸로 알고있는데요
고구려도 형사취수제 관습있었다고 하드라구여 고구려 산상왕도 대표적인 예시
우뮨화급이 소비와 내연의 관계에 있었다라는 근거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