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의 아버지 허엽은 참으로 훌륭한 분이다. 당시의 사회상의로 딸을 차별을 두지 않고 배움을 갖도록 하신 것은 대단한 파격이다. 또 난설헌의 오빠 허봉역시 여동생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여 더욱 정진하여 배울 수 있도록 하였으니 그 가족은 모두 파격적이고 진취적인 가문이다. 본받아야 할 사상이다.
@@KimAjin21 , 허균이 너무나도 뛰어난 누님의 시를 그리워 해서 보석같은 그 시를 시집으로 남기어 발간한것은 잘한 일임. 여기에 이의가 있을수 없슴. 못난 경상도 남편넘을 만나 재능도 발휘 못하고 불행해짐. 전적으로 아내를품어주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안한 남편님이 나쁜 넘임. 못난 김성립 때문에 아들, 딸 죽고 아내까지 죽음... 경상도와 결혼하는것은 안좋음..
몇년전에 강릉에 있는 허난설헌 생가에 갖다왔지만 모든 사연 다 두고서라도 27살 꽃다운 나이에 별이 된 사연만 뇌리에 들어오니 너무 아프고 시리고 슬프고 상상을 뒤로하고서라도 아깝디 아깝네요 지금에라도 재조명 되어줘서 감사하네요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하였는데 허난설헌은 이름이 남았네요 ,,,,
기울어져가는 친정, 아버지죽음, 사랑하는 자식들의 죽음, 오빠를 절실히 그리는 시.몇년 후 그 오빠마저 객사. 태중의 아이를 낳아서 키울 의지 마저 잃어버린 외로운 영혼. 너무도 가련해서 60이 다 된 나이에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그치질 않네요. 천재였기에 그 아픔이 보통사람의 천만배는 됐을 겁니다. 난설헌의 묘소를 한번 참배해야 겠습니다. .
못된 집안이니 쓰레기 같은 사람이니 이런 말씀 함부로 하시면 안 됩니다. 성자.립자 .할아버지는 임란때에 전장에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신 후손 들에게 귀감이 되실분입니다. 후에 시신수습 도 못한 안타까운 부분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내와 자식을 돌보지 않은 비정한 지아비로 비춰지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의학에 관심이 많아 허난설헌과 자녀들의 죽음에 대해서 의문을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자료를 검색해 보다가 사망한 원인을 찾았답니다. 두부 간수의 해로움 hiramid.co.kr/bbs/board.php?bo_table=56&wr_id=21&page= 위 주소에서 두부 간수독의 해로움의 사례를 보면... 허난설헌의 집안과 .자식들이 어린나이에 사망한 이유와 허난설헌이 일찍 병들어 죽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허난설헌 아버지 허엽의 호가 초당인데.. 가업으로 강릉에서 두부를 만들어팔았습니다. 강릉 초당두부는 바닷물간수를 콩물에 넣어 굳혀 두부를 만듭니다. 간수독은 맹독으로 ... 고지혈,신경마비..간염,간경화,간암을 유발시키는 독극물인데... 허엽과 그 자식들이 두부를 어릴때부터 엄청 많이 먹어서 혈액적,건강적 해를 입고... 허난설헌은 자신뿐아니라 자녀들까지... 간수독의 피해를 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허난설헌과 같은 지역동네에 살았던걸로 아는 신사임당과 이율곡이 일찍 사망한 것도 두부를 많이 섭취하여 병을 얻은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건물이나 집안 벽체,천장, 바닥에난 구멍과 미세틈에서 방출되는시멘트가스, 라돈가스,화학가스를 차단해야합니다. 유독한 독성 공기를 마시면 혈액오염,혈액독성 유발되서 신경계손상, 인체 장기들이 병들게 됩니다. atopia.co.kr/board/zboard.php?id=jungbo&page=1&sn1=&divpage=10&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7433
의학에 관심이 많아 허난설헌과 자녀들의 죽음에 대해서 의문을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자료를 검색해 보다가 사망한 원인을 찾았답니다. 두부 간수의 해로움 hiramid.co.kr/bbs/board.php?bo_table=56&wr_id=21&page= 위 주소에서 두부 간수독의 해로움의 사례를 보면... 허난설헌의 집안과 .자식들이 어린나이에 사망한 이유와 허난설헌이 일찍 병들어 죽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허난설헌 아버지 허엽의 호가 초당인데.. 가업으로 강릉에서 두부를 만들어팔았습니다. 강릉 초당두부는 바닷물간수를 콩물에 넣어 굳혀 두부를 만듭니다. 간수독은 맹독으로 ... 고지혈,신경마비..간염,간경화,간암을 유발시키는 독극물인데... 허엽과 그 자식들이 두부를 어릴때부터 엄청 많이 먹어서 혈액적,건강적 해를 입고... 허난설헌은 자신뿐아니라 자녀들까지... 간수독의 피해를 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허난설헌과 같은 지역동네에 살았던걸로 아는 신사임당과 이율곡이 일찍 사망한 것도 두부를 많이 섭취하여 병을 얻은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건물이나 집안 벽체,천장, 바닥에난 구멍과 미세틈에서 방출되는시멘트가스, 라돈가스,화학가스를 차단해야합니다. 유독한 독성 공기를 마시면 혈액오염,혈액독성 유발되서 신경계손상, 인체 장기들이 병들게 됩니다. atopia.co.kr/board/zboard.php?id=jungbo&page=1&sn1=&divpage=10&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7433
허난설헌은 신사임당, 황진이와 함께 조선의 3대 여성 천재라고 말 할수 있겠지요. 허난설헌의 머리와 문학성이 워낙 뛰어나 허난설헌이이 만든 한문시는 명나라와 청나라의 필독서가 될 만큼 허난설헌의 천재성은 중국에 까지 널리 알려 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강릉에 가 보면 허난설헌이 작성한 난해한 한문시는 지금 현대 사람들도 이해 하지 못할 정도로 고 차원 이었다고 합니다. 허난설헌이 머리는 천재 였으나 시대를 잘못 타고나 젊은 나리에 요절한것은 정말로 안타까운 것 이다 라고 말 할수 있겠지요. 머리는 그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 났으나 인생의 삶 자체는 비극으로 펼처진 불행한 인생 이었지요
문학을 전공한 사람 입장에서 난설헌이 15세에 시집가서 시댁살이를 했다면 한창 시가 폭발적으로 나와야될 10대후반~20대초반(시는 소설에 비해 전성기가 좀 일찍와요)에 작품일 쓰는데 엄청난 지장이 있었을거 같네요. 현대에도 여성이 결혼을 하면 아니 남자도 마찬가지죠, 예술가들은 결혼하고 작품활동하는게 쉽지 않아요. 혼자 자기만의 세계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니까요. 그래도 쓰기 힘든데 그 당시 여성이 결혼생활을 하며 시를 짓는다, 엄청난 스트레스와 갈등, 고통이 있었으리라 짐작되고 그런것들이 요절에도 영향을 미쳤을거 같네요
碧海浸瑤海(벽해침요해) 靑鸞倚彩鳳(청란의채봉) 芙蓉三九朶(부용삼구타) 紅墮月霜寒(홍타월상한) 푸른 바닷물은 옥 같은 바다에 스며들고 파란 난새가 아름다운 봉새와 어울렸네 연꽃 스물 일곱 송이가 늘어져 차가운 달빛 서리에 붉게 떨어졌네 허난설헌 '몽유광상산시' 1563-1589, 향년 27세.
여성의 시대적 한계만 아니었더라면 더 뛰어난 여성예술가들이 다수 나올 수 있었을텐데... 얼마나 배우고 싶었을까...부모의 반대로 제대로 공부못하고 후에 30대가 넘어서 대학에 들어가신 60년대생 우리엄마만해도 배움의 목마름이 느껴져요... 엄마도 한자 영어 모두 뛰어났고 고등학교때는 반에서 5등안에 안든적이 없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대학을 못가서 제가 유치원때 대학교를 들어가셨죠
천재도 시대와 집안을 잘 타고나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 솔직히 신사임당은 아들 덕분에 더 크게 부각된 부분도 있다. 신사임당의 남편은 적당히 아내의 잘남을 양해하고 상관하지 않았고 게다가 거의 친정의 우산 아래 있었으니 "제 뜨들 시러 펴기"가 쉬웠을 터. 그에 비하면 난설헌은 정말 뭐 하나 괜찮았던 게 없다. 똑똑하고 잘난 형제들이 있었지만 다들 실세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 이리저리 탄압이나 받고.... 결혼을 하니 시갓집은 안동 김씨. 남편은 그릇이 작아서 아내의 뛰어남을 배려하고 인정할 줄 모르는 모지리. 겨우 정 붙일 곳 아이를 낳았으나 모두 사산하거나 어린 나이에 죽어 버리고.... 라는 시를 보면 정말 같은 엄마 입장에서 눈물이 난다. .
진보적이고 민주주의한 집안 입니다 불교 지도자 스님들과도 친해고(사명대사 제자들과)천민ㆍ양반등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람의 성품은 다 같으니 어찌 양반이니 상놈이니 서자니 그런것은 우리 사람들의 욕심에서 생긴것 성품과 마음은 다 같은 사람일뿐 이것이 허균집안의 가풍 입니다ᆢ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나에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스물일곱, 짧고 불행한 삶을 살다 간 여인, 자신의 고독과 슬픔을 시로 달래며 섬세한 필치로 노래한 시인. 호는 난설헌(蘭雪軒), 자는 경번(景樊), 이름은 초희(楚姬). 최문희, 《난설헌》, 다산책방, 2011.
조선에서 태어난게 한이라고? 당시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아님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글재주 있다고 남편을 우습게 여기니 자존심 때문이라도 밖으로 도는거지. 남자가 여자보고 학력이 딸린다고 해봐라. 어떨까? 김성립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싸우다 죽었다. 시신이 없어서 옷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런 내용은 방송을 안하고 핍박을 받는 여성만을 강조하는 홍어인민공화국 정권.
지금 시대라면 독신으로 살면서 훌륭한 재능을 떨치고 살았을텐데 시집을 꼭 가야만되는 시대이고 여자의 목소리를 낼수없는 시대이고 남편의 억압속에 시댁시구들의 답답함에 얼마나 속을 끓이며 살았을지.. 여자가 설친다고 암탉이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까지 똑똑하지만 허난설현의 재능과 이상을 펼치지못하고 자식둘까지 잃고 커다란 한을 품고 살았을 허난설헌 예전에 눈물흘렸던적이 있습니다 아까운인재 불행하게 살다간게 가슴아픕니다
오늘은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본명은 ‘허초희’이고, ‘난설헌’은 호입니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조선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남녀의 결혼은 보통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는, 즉 ‘장가’가는 형태였습니다. (물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좀 크면 남자의 집으로 이동합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가 되면 여자가 시집살이를 하는, 즉 ‘시집’가는 형태로 바뀌게 됩니다. 조선 중기에 살았던 허난설헌은 그러한 변화의 시기에 시집가는 결혼을 하게 되며, 이는 그녀의 천재적인 재능을 보았을 때 대단히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참고로 그녀의 마지막 시의 ‘芙蓉三九朶(부용삼구타)’에서 왜 ‘三九(삼구)’가 39가 아니라 27을 의미하는지 궁금해하실 것 같아 설명드립니다. 지금도 우리가 ‘이팔청춘’이라는 말을 할 때의 ‘二八(이팔)’은 28세가 아닌 16세, 즉 2x8=16을 의미합니다. 만약 28세였다면 한자로는 ‘二十八(이십팔)’이라고 써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三九(삼구)’는 3x9=27로 27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는 당시에도 곱셈 개념이 널리 쓰이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과거에 정리해놓은 그녀에 관한 기록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blog.naver.com/jungyoupkim/220948727402 )
엘리트 허균의 마인드가 요즈음 시대에 비춰보면 오리지널 진보 백성을 가벼이 여기면 나라가 골로 간다 인구도 많지 않은 나라에 똑똑한 서자들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기득권들로만 채우는 꼬라지가 조선시대나 지긍 이나 희생한 진보들도 많았건만 개뿔도 달라지지 않아 답답 투표권이 있는 지금 시대에 주권자들의 권리를 포기하고 정치인들을 우상화해서 빨아주는 작금의 꼬라지를 보면 허균은 뭐라고 한탄했을까 홍길동전을 그려낸 허균의 마인드가 새삼 와닿네 세상은 바뀌지 않고 습대로 가는구낭
@@두깨비 , 바~보같은 남편 김성립 입니다. 재능이 있는 아내를 얻은것을 자랑스러워하고 더욱 더 사랑했어야 했습니다. 바~보처럼 무슨 열등감에 빠지고 질투를 합니까? 못난넘입니다, 그렇게 질투를 할바에는 차라리 무식하고 막노동 일 잘하는 시골 촌구석 여인과 결혼했어야 했지요... 뭣하러 대갓집 귀한 따님과 결혼을 합니까? 남자가 되어가지고 쪼잔한 넘,,, 차라리 더욱더 가슴으로 품어주고 사랑했으면 지혜있는 허난설헌의 도움을 받아 더욱더 출세를 했을텐데 ,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예처럼 ~~ 못난 남편 넘이 아들 딸 잃고 보석같은 아내도 잃었네, 바~보 등신 같은 넘,,,,,
신사임당 남편도 이원수로 무능력했고 주막 여인과 정을 나누었고 신사임당 사후 주막여인과 재혼까지 해서 16살율곡 이이가 충격받아 스님이 되기도 했으나 그 시대는 남자가 처가살이 하던 시절이라 친정에서 아이들 키우며 편하게 살아서 상대적으로 몸과 마음이 편했죠. 그에 반해 허난설헌은 시집살이 하던 첫세대였고 개방적인 사상을 가진 허난설헌은 권위적인 남편집안이 싫어지만 집안끼리 정략결혼으로 친정을 떠나 시댁에서 살아서 몸과 마음이 힘들었으니 사회적 풍습도 한 몫했다고 보여지네요.
남매 간의 사이가 좋앗고 그나마 형제들이 누이에 대해 성리학적 사상으로 바라보기 보단 애정과 존중으로 대한것이 더 컷나보다. 그 부모님도 그러햇을 것이고. 아니면 어찌 허난설헌이라고 할지라도 교육의 기회가 잇엇을까. 만약 남자로 태어낫다면 분명 역사책에도 꽤 비중잇는 위인으로 등장할 수도 잇엇겟지. 물론 남자라고하여 모두 출세하고 그런것은 아니엇겟지만 그녀가 가졋던 능력을 기준으로 본다면 분명 현실성잇는 가정이리고 본다. 좋은 가정과 형제들 가운데 잇다가 참 안타깝도다..
남녀 할 거 없이 본디 인간은 저 잘난 맛에 사는 것이고. 야망과 꿈을 갖고 사는 것거늘 왜 여자만 그걸 땅속 깊이 파 묻고 살아야 되나. 그놈의 생식기가 뭐라고. 고려시대에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고려시대엔 남녀가 평등해서 여자들도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재산도 똑같이 나눠줬다. 결혼하면 친정에서 아기낳고 어느정도 커서야 시집에 들어가 살았고. 그러니 모성이 보호되고....
허난설헌 다룬 드라마 안나오나 전에 허난설헌 이분 초상화를 본적 있어요.요즘 시각으로도 미인에요.부친 허엽은 서경덕의 제자거든요.명문가지만 안동김씨 말고 서경덕의 제자나 남명조식의 제자중 한가문과 결혼을 시컸으면 어땟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저 시기만해도 덜 고리타분한 선비들도 꽤 있었거든요.
그때는 안동김씨가 양반가긴 한데 세력가까지는 아니고 아버지들이 어릴때 크면 혼인시키자 그런 약속을 해서 혼인한걸로 알고요.남편이었던 김성립 이분 임진왜란때 의병활동하다 병사했어요.고지식했어도 그시대에 아주 못난 사람도 아니에요.이분도 서른살인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전쟁중 돌아가셔서 늦게 알려졌고 시신을 어떻게 수습했는지 몰라서 시신을 못찿았대요.가족들이 생전쓰던 물품을 관에 넣고 장례를 치뤘다고 해요.방구석역사가 시각으로 어른들이 혼인을 잘못시켜 서로 불행했다로 봅니다.
주인공이 여성이라 능력을 펼치지 못했다는 주제를 다뤄놓고 '여류시인'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 아이러니네요. 신여성들의 문예활동을 싸잡아 비하하는 의미로 통용되었고, 이후 문학계에서 비판과 담론을 거쳐 최근에는 지양되는 표현입니다. 일반 시청자들은 무지와 관성에 의해 쓸 수 있을지 몰라도 방송에서, 그것도 허난설헌을 다루면서 여류시인이라 칭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방송 취지도 좋고 제작에도 공을 들인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
근데 이미 조선시대부터 허난설헌의 시는 표절이라는 시비가 많았음.이에 대해 현재까지도 논문이 나오고 있을 정도니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蘭雪軒集中金鳳花染指歌. 全取明人拂鏡火星流夜月. 畫眉紅雨過春山之句而點化爲之. 遊仙詞中二篇. 卽唐曹唐詩. 送宮人入道一律. 則乃明人唐震詩也. 其他樂府宮詞等作. 多竊取古詩. 故洪參議慶臣, 許正郞䙗. 乃其一家人. 常言. 蘭雪軒詩二三篇外. 皆是僞作. 而其白玉樓上樑文. 亦許筠與李再榮所撰云. 난설헌의 모음 가운데, 금봉화(金鳳花)로 손가락을 물들이는 노래는, 모두 명(明)사람의 「거울에 떨치니 불티가 밤달에 흐르고, 눈썹을 그리니 붉은 비가 봄메를 지나도다」의 글귀를 점화(點化)하여 이를 함이라. 유선사(遊仙詞) 가운데 두 편은, 곧 당(唐) 조당(曹唐)의 시요, 궁인(宮人)이 입도(入道)함을 보내는 한 가락은, 곧 명(明)사람 당진(唐震)의 시이라. 기타 악부(樂府), 궁사(宮詞) 따위의 작(作)은 옛 시를 훔치어 가짐이 많더라. 까닭에 참의(參議) 홍경신(洪慶臣)과 정랑(正郞) 허적(許嫡)은 곧 한집 사람으로, 늘 말하되, "난설헌의 시는 2, 3편을 빼고는 모두 위작이라. 그리고 그의 백옥루상량문(白玉樓上樑文)도 또한 허균이 이재영(李再榮)과 더불어 지은 바이라"라 하더라. 난설헌이 중국 시를 좋아하여 점화를 했거나 난설헌 사후에 그의 동생 허균이 난설헌집을 편찬하면서 절취하였을 가능성도 있음
그런데 그렇게 개방적이고 남녀 평등하게 학식을 배려했던 아버지는 왜 하필 1세기나 앞서 시댁으로 난설헌을 보냈는지 가슴을 칠 일이다. 게다가 그 보수적인 안동 김씨 집안이라니! 친정에서 살았다면 맘껏 시를 쓰고 어쩌면 양가 집안의 배려 하에 신사임당과 교류할 수도 있었겠네요. 같은 강릉이잖아요? 27세 이름 없는 천재 시인의 요절이라니? 동생 허균의 탄식대로 살아선 부부 금술이 안 좋고, 죽어선 제사 지내줄 자식도 없이, 활활 타는 시와 함께 영혼만이라도 훨훨 자유롭게 속박이 없는 세상으로 갔을까? 하지만 지금도 허난설헌의 아픔은 정도의 문제이지 여전히 진행형이다.
조선시대 여인은 재능이 있어도,인격을 인정 받아도 사회적규제에 빛을 발하지 못했구나! 지금의 나는 많이 배우지 못해서 배워야 함을 알고서 몇년간 매일 글을 쓰니 자신감이 하늘에 닿는데~~~ 알아도 모른척 해야하는 현실은 과거와 다를 바가 없네~~~ 한문을 깨치면 새로운 세계가 보인다길래 이제서야 천자문 시작하네~~~ 생각의 시간을 써도 현실에 나타나기 힘든세상 "허난설헌"이 있었고, 2020년 현재 불혹이 지나 꿈 키우는 내가 있다네~
8세에 이미 수준 높은 시를 지었을 정도의 천재성에 그림까지 뛰어났는데... 혁명적 가풍의 명문가 집안은 사랑 넘치고 남녀 차별을 두지 않았지만 시대가 암흑기 조선이었으니... 참.. 망할 사대주의. 결혼하고 남귀여가로 친정에서 살기라도 했으면 그나마 나았을텐데.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허난설헌의 아버지 허엽은 참으로 훌륭한 분이다.
당시의 사회상의로 딸을 차별을 두지 않고 배움을 갖도록 하신 것은 대단한 파격이다. 또 난설헌의 오빠 허봉역시 여동생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여 더욱 정진하여 배울 수 있도록 하였으니 그 가족은 모두 파격적이고 진취적인 가문이다. 본받아야 할 사상이다.
명문가에선 차별을 안두었죠
우리도 현실을 살고 그당시도 현실을 사는것은 같죠
여자는 글을 배울 필요가 없었던것이지요
지금 잣대로 비교함 안돼죠
다만 글을 가르친것은 확실히 다른 분위기이긴 합니다만
@@이괴록 무지한분ᆢ글. 배우는 것을. 어찌 여자는 필요없다 하나요?
글을 통해. 지식ㆍ지혜를얻고
의식을. 넓히는. 시작이저요ᆢ
수학도. 배우고ᆢ선생님 무지해요
Mm7.
맞습니다ᆢ
사회는. 남성중심이지만.
금수로 살순없서니. 가르치고
성품을. 닦도록. 교육을ᆢ
정희왕후도 글을 몰랏더라구요
정말 놀라워
금수저 집안에서 동생은 허균이고,
아버지는 허엽, 아버지 허엽은 이황의 제자...당시 시대 상황이 그렇다고 해도,
예나 지금이나 출생 배경이 남달라야 빛도 보는 것임을 알게 해주는 역사적 인물
허난설헌 가족들이 대단한 집안이네.. 조선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인격을 존중해주는.. ㅜㅜ아깝다..
그 재능의 끝을 보지 못한것.. 삶들이.. 허균의 사상도..
너무 가슴아픈 허난설헌의 슬픈 이야기네요!!♥♥
얼마나 찢어지는 가슴아픈 사연이면 27살의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 갔을까요~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가슴이 너무아파요~
천재적 재능이
시대에 사회에 희생되고 말았네요.
참안타까운 비극입니다...
너무 가슴이 아프네요. 아마도 더좋은 세상에 환생했 을 거라 믿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깝네요. 후진적인 친영제도 들여온 조선이 원망스러워요. 안타까운 여성 인재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참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 아릿다운 나이에 가야만 했던 조선의 천재. 눈물이 계속 쏟아집니다.
허난설헌의 아버지도 대단분이고
오빠들도 참 좋은분이었는데
가족사의 안타까운 죽음에
마음이 아프네요
동생허균이 난설헌이 27세에 죽자 시집을원망하며 시와그림을 모두불태워버려 오늘날 전해지지않은 이유라고합니다
@@yhm1044 뭔소리냐.. 난설헌이 유언으로 자기가 쓴 글들 모두 태워버리라고 해서 다 없애버린거고, 그러나 지금 허난설헌 시집이 남겨진 이유는 암기천재 동생인 허균이 외우고 있던 누나의 시들을 나중에 문집으로 만든 거다.
@@yhm1044 헌난설헌이 다 불태우라했는데 허균이 걍 시집 만들어버림ㅋ
@@KimAjin21 , 허균이 너무나도 뛰어난 누님의 시를 그리워 해서 보석같은 그 시를 시집으로 남기어 발간한것은 잘한 일임. 여기에 이의가 있을수 없슴.
못난 경상도 남편넘을 만나 재능도 발휘 못하고 불행해짐. 전적으로 아내를품어주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안한 남편님이 나쁜 넘임. 못난 김성립 때문에 아들, 딸 죽고 아내까지 죽음... 경상도와 결혼하는것은 안좋음..
시대를 앞선 천재여류시인
허난설헌
가슴 저밑바닥에서 안타까움에
저며옵니다.
자손만대 그분의 시가 전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두 아이들 을 먼저 보내구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요 ...젊은 나이에 ...
저도 자식을 나아보니 그 심정 너무나도 와 닿습니다.
뼈속까지 스며드는 외로움을
시와함께 살다간 여인
당신을 존경합니다
난설님의 아까운 재능들이 가슴아프네요 허균집안의 예술과 재능이 시절을 잘못만나 참으로 가슴아프네요
한편의 역사공부 제대로 의미깊게 잘 했습니다
허난설현 천재여류 시인을 통해 시대와 역사를 알게되 감명깊었습니다
양심 없 막무관하게권력과
욕심으로살아온쓰레기같이살아는인간들은다잡아쳐넣어야한다
안타깝고 안타깝네요..
시대와 사회의 울타리 속에서
그 울분을 어찌 다 삮히며 살았을지
답답함을 시로 아무리 풀어내봐도 풀리지 않았을 겁니다 안타깝습니다
제가 존경하고 문학소녀적부터 좋아하던 분이라서 이분에 대한 소설책도 읽었는뎨 시대에맞지않게
너무 뛰어나고 특별했던 이분은 신사임당처럼 결혼후에 시어머니 남편때문에 고통스런 삶을실다가 아까운 나이에 돌아가셨더라구요
친정의 자유럽고 차별없던 성장기를보낸 허난설헌님으로선 숨막히는 하루히루였겠지요 소설보다
실제의 이야기 감명깊게 잘 보았읍니다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세요
눈물이 납니다 어찌도 그렇게 오빠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딸 아들을 보내니
살고픈 마음보다 죽음이 앞선는지도
모른다 아 아 슬프도다 설헌의 마음은
훗날에 한국인의 숨은 신비의. 속세였던것이다
재능을가진 허난설헌의 삶이 가슴아프네요 늦게라도 그녀의 시가 부활되서 넘 다행이에요~~
안녕하세요 님요
백만번천만번 동감합니다
감사합니다 화이팅합시다
@*
몇년전에 강릉에 있는 허난설헌
생가에 갖다왔지만
모든 사연 다 두고서라도
27살 꽃다운 나이에 별이
된 사연만 뇌리에 들어오니
너무 아프고 시리고 슬프고
상상을 뒤로하고서라도
아깝디 아깝네요 지금에라도
재조명 되어줘서 감사하네요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하였는데 허난설헌은
이름이 남았네요 ,,,,
갔다왔지만
@@melvinmanhoef4 나이들면 그렇게 돼요 의미없어요
일본에도 전해졌다네요.명을통해 베트남까지 그녀의 시와 문장이 전해졌다네요.
기울어져가는 친정, 아버지죽음, 사랑하는 자식들의 죽음, 오빠를 절실히 그리는 시.몇년 후 그 오빠마저 객사. 태중의 아이를 낳아서 키울 의지 마저 잃어버린 외로운 영혼. 너무도 가련해서 60이 다 된 나이에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그치질 않네요. 천재였기에 그 아픔이 보통사람의 천만배는 됐을 겁니다. 난설헌의 묘소를 한번 참배해야 겠습니다. .
그렇게 잘키운딸을 못된집안에 쓰레기놈한테 시집을보낸거지 ㅠ좀더신중하게 알아보고 시집을보내던가 그냥 안보내는게 나았을것을 안타깝다
그 김성립도 임진왜란 때 죽습니다
조선 중기때 안동 김씨 가문은 대단한 집안이였습니다. 다만 김 성립은 난설헌에 비하면 훨씬 못난 사내였던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집안끼리 정략적인 혼례라 어쩔수 없었지만
스물 입곱살에 부용꽃 처럼 출중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죽음이 한스럽습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쓰레기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한 목숨바친 장수이기도 하죠
못된 집안이니 쓰레기 같은 사람이니 이런 말씀 함부로 하시면 안 됩니다.
성자.립자 .할아버지는 임란때에 전장에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신 후손 들에게 귀감이 되실분입니다.
후에 시신수습 도 못한 안타까운 부분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내와 자식을 돌보지 않은 비정한 지아비로 비춰지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대부분 천재들은 시대를 잘못나서 고생만 하다가 요절하더라...
시집살이만 안했어도 재능이 폭발했을텐데
동감입니다
의학에 관심이 많아 허난설헌과 자녀들의 죽음에 대해서 의문을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자료를 검색해 보다가 사망한 원인을 찾았답니다.
두부 간수의 해로움 hiramid.co.kr/bbs/board.php?bo_table=56&wr_id=21&page=
위 주소에서 두부 간수독의 해로움의 사례를 보면... 허난설헌의 집안과 .자식들이 어린나이에 사망한 이유와 허난설헌이 일찍 병들어 죽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허난설헌 아버지 허엽의 호가 초당인데.. 가업으로 강릉에서 두부를 만들어팔았습니다.
강릉 초당두부는 바닷물간수를 콩물에 넣어 굳혀 두부를 만듭니다.
간수독은 맹독으로 ...
고지혈,신경마비..간염,간경화,간암을 유발시키는 독극물인데... 허엽과 그 자식들이 두부를 어릴때부터 엄청 많이 먹어서
혈액적,건강적 해를 입고... 허난설헌은 자신뿐아니라 자녀들까지... 간수독의 피해를 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허난설헌과 같은 지역동네에 살았던걸로 아는 신사임당과 이율곡이 일찍 사망한 것도 두부를 많이 섭취하여 병을 얻은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건물이나 집안 벽체,천장, 바닥에난 구멍과 미세틈에서 방출되는시멘트가스, 라돈가스,화학가스를 차단해야합니다. 유독한 독성 공기를 마시면 혈액오염,혈액독성 유발되서 신경계손상, 인체 장기들이 병들게 됩니다. atopia.co.kr/board/zboard.php?id=jungbo&page=1&sn1=&divpage=10&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7433
¹¹¹가노라삼각산아다시보자자한강수요고국산천을..더나고저하련만을시절이하수상하니올돌말둥하여라
동가입니다
너무나 눈물납니다
@@air5210 와..대박입니다..
난설헌 그림보고 할 말을 잃음..... 아주 섬세하면서도 무척 현대적인 화풍이라 믿어지지 않을정도. 재주가 많아도 너무 많았고 시대를 앞서 태어나도 너무일찍 태어나 요절한건가..혹시 환생해 이미 이 시대에 공존하고있는건 아닌지 ㅜ ㅜ 안타깝다...
의학에 관심이 많아 허난설헌과 자녀들의 죽음에 대해서 의문을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자료를 검색해 보다가 사망한 원인을 찾았답니다.
두부 간수의 해로움 hiramid.co.kr/bbs/board.php?bo_table=56&wr_id=21&page=
위 주소에서 두부 간수독의 해로움의 사례를 보면... 허난설헌의 집안과 .자식들이 어린나이에 사망한 이유와 허난설헌이 일찍 병들어 죽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허난설헌 아버지 허엽의 호가 초당인데.. 가업으로 강릉에서 두부를 만들어팔았습니다.
강릉 초당두부는 바닷물간수를 콩물에 넣어 굳혀 두부를 만듭니다.
간수독은 맹독으로 ...
고지혈,신경마비..간염,간경화,간암을 유발시키는 독극물인데... 허엽과 그 자식들이 두부를 어릴때부터 엄청 많이 먹어서
혈액적,건강적 해를 입고... 허난설헌은 자신뿐아니라 자녀들까지... 간수독의 피해를 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허난설헌과 같은 지역동네에 살았던걸로 아는 신사임당과 이율곡이 일찍 사망한 것도 두부를 많이 섭취하여 병을 얻은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건물이나 집안 벽체,천장, 바닥에난 구멍과 미세틈에서 방출되는시멘트가스, 라돈가스,화학가스를 차단해야합니다. 유독한 독성 공기를 마시면 혈액오염,혈액독성 유발되서 신경계손상, 인체 장기들이 병들게 됩니다. atopia.co.kr/board/zboard.php?id=jungbo&page=1&sn1=&divpage=10&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7433
..
ㅡㄷ
@@air5210 허엽이 두부를 팔았다는 말에 웃고갑니다. 경기도관찰사를 지낸 명문거족에게 그게 할말입니까?
@@air5210 감사합니다
@@air5210 너무 어이없는 글에 실소를 금할수 없군요
글쓰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시집살이 생각만해도 소름돋아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많은 시간을 구박받고 자기 자신을 개발못하고 시들어진
우리네 어머니들의 인생사
한번 보내면 친정에서 안받아줬다는...
근데 그 어머니들이 자기 며느리한테 똑같이 함
아닌데 이런 며느리가 커거 착한시어머가 되는데
@@Erica0200 진짜 그게 너무 잘못된 관습
울 엄마도 내가 신랑땜에 집에 갓더니 집에 들오지도 못하게하고 쫓겨남 ㅎ
사위가 어떤 잘못을 햇는지 알아보고 사위도 잘못햇으면 꾸짖어야지
@@정창훈-k5i 2 류형이 잇어요
닮는사람 반대인사람
저는 반대로 갑니다
허난설헌과 허균 남매는 성리학의 근본을 잘못 이해한 그 당시 집권세력에 의해 희생된 천재 남매였습니다. 과거에 거듭 떨어지고 아내의 능력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기 시작했던 허난설헌 남편의 모습이 은근히 마음에 와닿기 시작하네요.
허난설헌은 신사임당, 황진이와 함께 조선의 3대 여성 천재라고 말 할수 있겠지요. 허난설헌의 머리와 문학성이 워낙 뛰어나 허난설헌이이 만든 한문시는 명나라와 청나라의 필독서가 될 만큼 허난설헌의 천재성은 중국에 까지 널리 알려 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강릉에 가 보면 허난설헌이 작성한 난해한 한문시는 지금 현대 사람들도 이해 하지 못할 정도로 고 차원 이었다고 합니다. 허난설헌이 머리는 천재 였으나 시대를 잘못 타고나 젊은 나리에 요절한것은 정말로 안타까운 것 이다 라고 말 할수 있겠지요. 머리는 그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 났으나 인생의 삶 자체는 비극으로 펼처진 불행한 인생 이었지요
재생목록으로 공유합니다. 허난설헌의 묘가 있는 경기광주 시민입니다. 광주에서는 '허난설헌문화제'를 기획 중입니다.
허경영의 역사인식...시대를 앞선 허경영
당행입니다
그곳을 방문 해야겠네요
@@ccdvvh '
@@김혜영-f4y 저하고 같이가요~♡
@@김혜영-f4y 저도 허난설헌 경기광주 찾고싶어요~♡♡♡
너무 안타깝다 ㅠㅠㅠ 사회가 받아들여주지 못한 앞서 간 한 여성 ㅡ 이제 그 부분 거울삼아 빛이 되는 여성들 나와주길🙏🏻그녀의 삶에 공감하는 모든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 더 나은 세상 되기를
허난설헌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나네요 아까운 허난설헌 좋은집에 시집 갔으면 요절하지 않고 역사에 길이 남을 시를 더욱더 많이 남겼을껄!!!..
0
시집을 안갔어야죠 무지한 조선
거꾸로 남편이 저 작자라서 한의 시가 나온겁니다
하나님✝️ ❤ 은혜로
항상 건강 하세요
@@billionairet7658 타고난 천재였다는데 뭔소리
허난설헌의 시는 물 흐르듯 서술하는 시대를 가늠하기 어려울만큼 현대적인 감각이며 뛰어난 필력이다~~ 잠시 그 시대로 시간여행하며 안타까움에 잠긴다
문학을 전공한 사람 입장에서 난설헌이 15세에 시집가서 시댁살이를 했다면 한창 시가 폭발적으로 나와야될 10대후반~20대초반(시는 소설에 비해 전성기가 좀 일찍와요)에 작품일 쓰는데 엄청난 지장이 있었을거 같네요. 현대에도 여성이 결혼을 하면 아니 남자도 마찬가지죠, 예술가들은 결혼하고 작품활동하는게 쉽지 않아요. 혼자 자기만의 세계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니까요. 그래도 쓰기 힘든데 그 당시 여성이 결혼생활을 하며 시를 짓는다, 엄청난 스트레스와 갈등, 고통이 있었으리라 짐작되고 그런것들이 요절에도 영향을 미쳤을거 같네요
碧海浸瑤海(벽해침요해)
靑鸞倚彩鳳(청란의채봉)
芙蓉三九朶(부용삼구타)
紅墮月霜寒(홍타월상한)
푸른 바닷물은 옥 같은 바다에 스며들고
파란 난새가 아름다운 봉새와 어울렸네
연꽃 스물 일곱 송이가 늘어져
차가운 달빛 서리에 붉게 떨어졌네
허난설헌 '몽유광상산시'
1563-1589, 향년 27세.
감사합니다😍😍😍
조선시선이란 책이 조선에서 중구에 건너갔다니 허난설헌님은 대단한 여류시인이셨네여
진심으로 좋은공부 감사합니다
여성의 시대적 한계만 아니었더라면 더 뛰어난 여성예술가들이 다수 나올 수 있었을텐데... 얼마나 배우고 싶었을까...부모의 반대로 제대로 공부못하고 후에 30대가 넘어서 대학에 들어가신 60년대생 우리엄마만해도 배움의 목마름이 느껴져요... 엄마도 한자 영어 모두 뛰어났고 고등학교때는 반에서 5등안에 안든적이 없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대학을 못가서 제가 유치원때 대학교를 들어가셨죠
碧海浸瑤海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靑鸞倚彩鸞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芙蓉三九朶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紅墮月霜寒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난설헌의 애닮은 삶에 기슴이 매지네요
자신이 스물일곱에 죽으리라는걸 미리 예언한 시이죠
가슴이 메어져 오네요.가슴이 아프네요.
멋잇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 여시인의 안타까운 삶이 가슴아프긴해도 이런
조상이계셨다는것이 자랑스럽네요
한국의사대부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우리나라가 떠받들던 중국에서는 널리
알려지고 인정받았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허난설헌님시 감사히 수첩에 잘 적어두고 시간날때마다
보려고해요 고맙고 감사합니다
신사임당.황진이모두좋아하는 분들입니다 드라마 책으로도 몇번씩
보았구요 행복하세요☆♡☆
천재도 시대와 집안을 잘 타고나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
솔직히 신사임당은 아들 덕분에 더 크게 부각된 부분도 있다. 신사임당의 남편은 적당히 아내의 잘남을 양해하고 상관하지 않았고 게다가 거의 친정의 우산 아래 있었으니 "제 뜨들 시러 펴기"가 쉬웠을 터.
그에 비하면 난설헌은 정말 뭐 하나 괜찮았던 게 없다.
똑똑하고 잘난 형제들이 있었지만 다들 실세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 이리저리 탄압이나 받고....
결혼을 하니 시갓집은 안동 김씨. 남편은 그릇이 작아서 아내의 뛰어남을 배려하고 인정할 줄 모르는 모지리.
겨우 정 붙일 곳 아이를 낳았으나 모두 사산하거나 어린 나이에 죽어 버리고.... 라는 시를 보면 정말 같은 엄마 입장에서 눈물이 난다.
.
무시무시한 안동김씨들 ㅡ
갑질도 그런 갑질이 없었을듯
서슬퍼런 안동김씨 그와
동급인 안동권씨인 난 누규 ?
넌 아냐
신사임당의 친정은
엄청난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친정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의 숫자가
100명이 넘었습니다.
그러니 신사임당의 남편도
처갓집인 강릉 오죽헌에 와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신사임당이 살았던
강릉 오죽헌에 가보세요.
터가 매우 넓습니다.
@@MahalalelLeeDokyun 그리고 신사임당이 겨우 60년 연상이지만 신사임당때는 아직도 조선 초기 여성한테 관대하던 시대를 살고 있어서 그런것도 잇어여
진보적이고 민주주의한 집안 입니다
불교 지도자 스님들과도 친해고(사명대사 제자들과)천민ㆍ양반등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람의 성품은 다 같으니 어찌 양반이니 상놈이니 서자니 그런것은 우리 사람들의 욕심에서 생긴것 성품과 마음은 다 같은 사람일뿐 이것이 허균집안의 가풍 입니다ᆢ
그러나 시대의 전언을 뛰어 넘지는 못했지요ㅠ
난설헌이 그런 집안에 간겄도 그렇고
고된 시집살이가 가슴깊은곳에서 울리는고동이 한편의 드라마틱하고 고즈넉한 마음의글이 시 로서 표현하므로서 뜻깊은 시가되지않았을까요
조선시대나 내 어머니 시대는 여자를 학문을 가르치지 않아 서럽게 살아온 삶을 산 증인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좋은 세상인데 그 시대에 산 여성들 절절한 한이 맺힌 삶을 나는 내 어머니를 통해 보게 되었다 너무 슬프다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나에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스물일곱, 짧고 불행한 삶을 살다 간 여인, 자신의 고독과 슬픔을 시로 달래며 섬세한 필치로 노래한 시인. 호는 난설헌(蘭雪軒), 자는 경번(景樊), 이름은 초희(楚姬).
최문희, 《난설헌》, 다산책방, 2011.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doogie8760 허엽(許曄)은 두 번째 부인 강릉 김씨에게서 봉, 초희, 균 삼 남매를 얻었다.
쓰레기 중국육교문화권에서
태어난 죄죠~ㄷ
이책을구입해서 보고싶네요
제가본책은 너무 소설적이라서
좀더 사실에 근접한것을 읽고싶었는데
감사합니다 이 가을이 가기전에 사러가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조선에서 태어난게 한이라고? 당시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아님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글재주 있다고 남편을 우습게 여기니 자존심 때문이라도 밖으로 도는거지. 남자가 여자보고 학력이 딸린다고 해봐라. 어떨까?
김성립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싸우다 죽었다. 시신이 없어서 옷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런 내용은 방송을 안하고 핍박을 받는 여성만을 강조하는 홍어인민공화국 정권.
허난설헌 편 감동적인 영상이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정확하게는 왜 양난 이후 조선 중기후기에 사림파 때 태어났을까지. 훈구파 때 고려말 조선초기에는 그래도 여자 대접이 저 정도로 형편없진 않았음.
정말 시대를 잘못만나 자기가 가진 것을 마음껏 누려보지 못하고 슬픈 한을 안고 이세상 살이를 마감하니 너무 마음이 아프나 다행히 그주옥 같은 시가 중국에서나마 전한다니 다행입니다
옛날에 얼마나 많은 천재들이 신분제도, 남존여비에 눌려 저렇게 소리소문없이 살다 갔을까?
잘난 척 하면 명대로 못 산다
속 시원하네요!
@@cmczzz .. 이건 또 무슨 소리!!!
@@cmczzz 낭중지추. 성인 도인이 아닌바에야 아무리 숨기려해도 빼어난 총기를 어찌 숨길수 있을까.
@@cmczzz 시대를. 앞서간. 천제입니다ᆢ
그렇게. 그렇게. 인류가. 발전ㆍ진화 합니다ᆢ윈시부터21세기~흐러흘러 22세기ᆢ
조선의 사회는 가부장적이다 여성들이 살아가기에는 너무 괴롭고 고달프다 오호라
허난설헌... 인간복제해서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해주고싶을정도로 안타까운 얘기네요. 그리고 그녀가 마음껏 시와 그림을 창작하게 해주고싶네
구독자가 왜이리많나요
이유가뭐지
지금 시대라면 독신으로 살면서
훌륭한 재능을 떨치고 살았을텐데
시집을 꼭 가야만되는 시대이고
여자의 목소리를 낼수없는 시대이고
남편의 억압속에 시댁시구들의 답답함에
얼마나 속을 끓이며 살았을지..
여자가 설친다고 암탉이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까지
똑똑하지만 허난설현의 재능과 이상을 펼치지못하고 자식둘까지 잃고
커다란 한을 품고 살았을 허난설헌
예전에 눈물흘렸던적이 있습니다
아까운인재 불행하게 살다간게 가슴아픕니다
허씨 집안 남매들은 다 재주가 많았지만 허난설현의 비극적인 인생과 역사에서 역적으로 기록되어버린 허균. 명문가 였던 집안은 몰락하게 되어버렸다는 점이 참 씁쓸하다. 앞날을 모르고 허엽은 공부를 가르치고 특출난 남매들을 보며 자랑스러워 헸겠지.
'역적이 된 것'이 아니고.... '역적으로 몰려'가 옳은 표현일 겁니다.
당시의 역적죄는 대부분 모함 이엇음
오늘은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본명은 ‘허초희’이고, ‘난설헌’은 호입니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조선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남녀의 결혼은 보통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는, 즉 ‘장가’가는 형태였습니다. (물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좀 크면 남자의 집으로 이동합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가 되면 여자가 시집살이를 하는, 즉 ‘시집’가는 형태로 바뀌게 됩니다. 조선 중기에 살았던 허난설헌은 그러한 변화의 시기에 시집가는 결혼을 하게 되며, 이는 그녀의 천재적인 재능을 보았을 때 대단히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참고로 그녀의 마지막 시의 ‘芙蓉三九朶(부용삼구타)’에서 왜 ‘三九(삼구)’가 39가 아니라 27을 의미하는지 궁금해하실 것 같아 설명드립니다. 지금도 우리가 ‘이팔청춘’이라는 말을 할 때의 ‘二八(이팔)’은 28세가 아닌 16세, 즉 2x8=16을 의미합니다. 만약 28세였다면 한자로는 ‘二十八(이십팔)’이라고 써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三九(삼구)’는 3x9=27로 27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는 당시에도 곱셈 개념이 널리 쓰이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과거에 정리해놓은 그녀에 관한 기록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blog.naver.com/jungyoupkim/220948727402 )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강호의 제현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아주 유익합니다.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임을 알아서인지 차마 보지는 못하겠고 댓글과 좋아요만 남기고 갑니다.ㅠㅜ 조선은 망테크를 탈 수밖에 없었던 왕조가 맞는듯 합니다.
가슴 아프다~~~
열통터져~~~
남편을 잘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느 놈을 만나도 똑같을 것 같습니다. 자기 잘못도 있다는 걸 알아야지 애꿎은 남편 탓만 해서 되겠습니까?
참고로 김성립 장군은 임란때 나라를 위해서 자기 한 목숨을 다 바친 진정 애국자 이십니다.
허난설헌 남편은 남들보다 젊은 나이에 과거 합격하고 의병장으로 왜군과 싸워 전사한 위인이다ㅋㅋ 무식한거 자랑하지좀 마라
초등학교 2학년 때 짝궁이 허씨에 이름이 외자였는데 그림을 너무 잘 그리고 성품도 차분해서 나이가 든 후에도 간혹 그 친구가 떠오릅니다. 아무래도 허씨 집안에 고유하게 내려오는 문예인의 DNA가 어디서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참 멋진 집안입니다.
난설헌의 삼한..
천재인데 조선에 그것도 여자로 태어나..
난봉꾼 남편만나 요절..
슬프다
처음으로 가슴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허난설헌 이다 그녀가
태어난 그곳에 가고싶다
죽기전에 수없이 가고싶다
아니 갈것이다 오늘 난 다시하번
가슴이 아프다 이럿듯 그리워보긴
첨음 인듯하다.내가슴에 새겨야 할 허난설헌!
허난설헌는 시댁과 남편한테 버림받고 자식들 까지 병으로 잃다가 본인도 슬픔과 고통에 병마에 쓸쓸히 죽고 동생 허균 마저도 역모 모함에 능지처참을 당했으니 남매의 말년이 왜이리 참혹할꼬... ㅜㅜ ㅠㅠ
안타깝네요
가인박명...ㅠ ㅠ
엘리트 허균의 마인드가 요즈음
시대에 비춰보면 오리지널 진보
백성을 가벼이 여기면 나라가 골로
간다 인구도 많지 않은 나라에 똑똑한
서자들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기득권들로만 채우는 꼬라지가
조선시대나 지긍 이나 희생한 진보들도 많았건만 개뿔도 달라지지
않아 답답 투표권이 있는 지금 시대에
주권자들의 권리를 포기하고 정치인들을 우상화해서 빨아주는
작금의 꼬라지를 보면 허균은 뭐라고
한탄했을까 홍길동전을 그려낸
허균의 마인드가 새삼 와닿네
세상은 바뀌지 않고 습대로 가는구낭
ㅏㅏㅓㅓ
권소형 감독은
종부들 제사 지내다 죽겠구나
집안 노인들 자기들 젯밥 먹구싶어서 못놓는듯
한심
시간과 공간에 잠시 머무는 인생 입니다.
허난설헌 -
'' 여성으로 태어난것이 한이요.
" 조선땅에 태어난것이 한0/요..
" 김성립 아내가 된것이 한이요...
너무나 그립고 가슴아픔 사에 눈물만 흘러..
내가 저 시대에 태어나 허초희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게 할수있게 물심양면으로 ~
도와을껄 ~
김성립 아내가 된것이 한이요???
그러니 남 편에게 사랑을 못 받는 것이요 그걸아시오.!
그렇게 콧대가 높고 잘난 척을 하니 어느 남자가 눈을 돌리지 않겠어 본인 잘못도 있다는 걸 알아야지 어디 하늘 같은 남편을 한이 된다고 표현하고...ㅉ ㅉ
님 김성립이 어떤 인물인지 이 영상 하나로만 알고있죠.. 구글링이라도 해보세요 김성립은 위인입니다..
@@두깨비 , 바~보같은 남편 김성립 입니다. 재능이 있는 아내를 얻은것을 자랑스러워하고 더욱 더 사랑했어야 했습니다.
바~보처럼 무슨 열등감에 빠지고 질투를 합니까? 못난넘입니다, 그렇게 질투를 할바에는 차라리 무식하고 막노동 일 잘하는 시골 촌구석 여인과 결혼했어야 했지요... 뭣하러 대갓집 귀한 따님과 결혼을 합니까?
남자가 되어가지고 쪼잔한 넘,,, 차라리 더욱더 가슴으로 품어주고 사랑했으면 지혜있는 허난설헌의 도움을 받아 더욱더 출세를 했을텐데 ,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예처럼 ~~
못난 남편 넘이 아들 딸 잃고 보석같은 아내도 잃었네, 바~보 등신 같은 넘,,,,,
신사임당은 결혼하고 나서도 그냥 강릉 친정에서 살면서 아들도 훌륭하게 키우고 작품활동도 했고, 허난설헌은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시집에서 고생하면서.. 안타깝네요
사임당님과 난설헌님은 거의 동시대 여성들이었고
자택도 그리 멀지않은 이웃이었지요
가보았는데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신사임당의 친정은
엄청난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친정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의 숫자가
100명이 넘었습니다.
그러니 신사임당의 남편도
처갓집인 강릉 오죽헌에 와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신사임당이 살았던
강릉 오죽헌에 가보세요.
터가 매우 넓습니다.
@@초록숲속-m8g @ㅁㅁㅁ+00
시집은지옥이다
초록숲속 다
평화로운 시대에 태여 났서야 할 인물이 시대를 잘 못 만나 빛을 잃어 구나. 애통하다.
눈물이 난다
허균을 본다음 허난설헌을 보는데 초반부터 눈물이 난다
가슴 아픈 역사입니다 미련한이조선 지금의 정치인들처럼 답답람에 가슴이 답답합니다
친정에서 살았더라면..이런가슴아픈 역사는 ...너무아프다
허초희 호 난설헌~
친영 아니었다면 더 자유롭게 뜻을 펼쳐 보였을것이고
자녀까지 잃은 그 슬픔과
남편에게서까지 사랑을 받지 못한 그 심정
내내 내가슴만 애일뿐입니다.ㅠㅠㅠ
허난설헌 몆번을 읽어도 슬프고 가슴아픈이야기
글,글씨 잘 쓰는 사람들 진심 부러움ㆍ
신사임당,허난설헌 멋있다~~👍
허난설헌이 시와 그림하고 결혼했다면 조선역사상 최고의 시인이 되었을텐데 너무안타깝습니다.
가을빛 무르익어 온 들이 곱습디다 강가를 거닐다 정자위에 오르니 어디선가 멋쟁이 사내 술병들고 옵디다.
조선시대 여류시인(기생)의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시이다
계속됀 과거급제 낙방에 실망해 방탕한 생활을한 지아비. 두 남매에 병사. 친정 아버지에 객사. 사랑하던 오라버니에 술중독. 사랑하던 동생은 역적으로 내몰려 능지처참..여기에 무슨희망을 기대 했으랴..결국 27세에 요절
의
천재들은 결혼하는게
아님
에가 아니고 의가 맞습니다
그리고 허균은 나이 50살에 죽습니다
허난설헌이 죽고난 오랜 후에 죽었어요
원망하려니 허균의 능지처참까지 들먹이네 누이가 죽고 한참 후의 일인데
우리나라 여자들은 결혼을 하지마라. 혼자 살면서 재능을 마음껏 펼쳐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 이분은 글씨도 그림도 남성적으로 힘이 있음. 너무 비극적인 삶을 살고 동생 균도 비극적 ...
반면 사임당은 나름 편한삶을 살고 그건 그림에 고스란히 나타남.
어떤 남자를 만났느냐에 따라 삶이 이리 완전히 달라지는 겁니다.
허난설헌의시 태워버린것도
일찍돌아가신것도
안탑깝기그지없네요ᆢ
조선ᆢ 관습불합리하고
바람핀남편이야속합니다ᆢ
신사임당의 친정은
엄청난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친정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의 숫자가
100명이 넘었습니다.
그러니 신사임당의 남편도
처갓집인 강릉 오죽헌에 와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신사임당이 살았던
강릉 오죽헌에 가보세요.
터가 매우 넓습니다.
신사임당 남편도 이원수로 무능력했고 주막 여인과 정을 나누었고 신사임당 사후 주막여인과 재혼까지 해서 16살율곡 이이가 충격받아 스님이 되기도 했으나
그 시대는 남자가 처가살이 하던 시절이라
친정에서 아이들 키우며 편하게 살아서 상대적으로 몸과 마음이 편했죠.
그에 반해 허난설헌은 시집살이 하던 첫세대였고 개방적인 사상을 가진 허난설헌은 권위적인 남편집안이 싫어지만
집안끼리 정략결혼으로 친정을 떠나 시댁에서 살아서 몸과 마음이 힘들었으니
사회적 풍습도 한 몫했다고 보여지네요.
남매 간의 사이가 좋앗고 그나마 형제들이 누이에 대해 성리학적 사상으로 바라보기 보단 애정과 존중으로 대한것이 더 컷나보다. 그 부모님도 그러햇을 것이고. 아니면 어찌 허난설헌이라고 할지라도 교육의 기회가 잇엇을까. 만약 남자로 태어낫다면 분명 역사책에도 꽤 비중잇는 위인으로 등장할 수도 잇엇겟지. 물론 남자라고하여 모두 출세하고 그런것은 아니엇겟지만 그녀가 가졋던 능력을 기준으로 본다면 분명 현실성잇는 가정이리고 본다. 좋은 가정과 형제들 가운데 잇다가 참 안타깝도다..
!
아버지 객사하시고
두 자식 모두 병사하고
정신적인 삶에 눈 뜨게 해준
버팀목이엿던 오라비도 객사하고
한 집안이 이렇게 무너질 수 잇나
넘 슬프다
인생이란 알 수가 없다 ㆍㆍ
부친 초당선생이 대단하신 듯... 그 시절에 양성평등이라...
남녀 할 거 없이 본디 인간은 저 잘난 맛에 사는 것이고.
야망과 꿈을 갖고 사는 것거늘 왜 여자만 그걸 땅속 깊이 파 묻고 살아야 되나.
그놈의 생식기가 뭐라고.
고려시대에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고려시대엔 남녀가 평등해서 여자들도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재산도 똑같이 나눠줬다.
결혼하면 친정에서 아기낳고 어느정도 커서야
시집에 들어가 살았고.
그러니 모성이 보호되고....
우리나라 여자들은 결혼하지 말고 재능을 마음껏 펼쳐야 함. 남자들은 평범하게 살면서 외국여자와 결혼하여 살면 된다
허난설헌 다룬 드라마 안나오나 전에 허난설헌 이분 초상화를 본적 있어요.요즘 시각으로도 미인에요.부친 허엽은 서경덕의 제자거든요.명문가지만 안동김씨 말고 서경덕의 제자나 남명조식의 제자중 한가문과 결혼을 시컸으면 어땟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저 시기만해도 덜 고리타분한 선비들도 꽤 있었거든요.
누가 주인공을 할지.... 정말 연기 잘하는 분이 ...
진짜 이분 얘기 사극으로 만들어지면 좋을 거 같아요
아비가 남편감을 최악으로 골라줬어.
안동김씨 권력만 보고.
그때는 안동김씨가 양반가긴 한데 세력가까지는 아니고 아버지들이 어릴때 크면 혼인시키자 그런 약속을 해서 혼인한걸로 알고요.남편이었던 김성립 이분 임진왜란때 의병활동하다 병사했어요.고지식했어도 그시대에 아주 못난 사람도 아니에요.이분도 서른살인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전쟁중 돌아가셔서 늦게 알려졌고 시신을 어떻게 수습했는지 몰라서 시신을 못찿았대요.가족들이 생전쓰던 물품을 관에 넣고 장례를 치뤘다고 해요.방구석역사가 시각으로 어른들이 혼인을 잘못시켜 서로 불행했다로 봅니다.
저도 오래전부터 했던생각이예요~~ ㅜ ㅜ
무엇엔가 남보다 앞선다는 것은 시기와 질투를 유발하지. 지금도.
멋진 그녀 뒤엔 아버지와 오빠와 동생이 있었구나. 멋진 여자여!
허봉 역활을 하신배우
이름은 모르겠으나
중국에서 구해온 시집을
건내주면소 허난설헌를
바라보는 표정연기
대단한 연기 실력입니다
박수보내드립니다
조선의 역사는 참으로 부끄러운게 많다. 그 성리학은 또 뭔가..
저 시대때는 조선에서 태어났건 프랑스에서 태어났건 여자들은 다 힘들었죠. 한반도에서는 고조선 같은 고대때는 생산력을 지닌 여성들이 지도자였지만, 철기 시대때부터 전쟁이 중요시되고, 전쟁에 더 적합한 신체를 갖춘 남자들이 득세를 하는 모양이 2000년 정도 이어져옴.
주인공이 여성이라 능력을 펼치지 못했다는 주제를 다뤄놓고 '여류시인'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 아이러니네요. 신여성들의 문예활동을 싸잡아 비하하는 의미로 통용되었고, 이후 문학계에서 비판과 담론을 거쳐 최근에는 지양되는 표현입니다. 일반 시청자들은 무지와 관성에 의해 쓸 수 있을지 몰라도 방송에서, 그것도 허난설헌을 다루면서 여류시인이라 칭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방송 취지도 좋고 제작에도 공을 들인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
@@mskang8281 그저 여성을 뜻 하는거면 그저 남성을 뜻하는 남류시인이라는 말도 있어야겠죠
난설헌이 유럽에서 태어났으면 여성인권을 높이는 마녀로 몰려 처형 당했을 가능성 99.99%. 당시 12,000여명이 마녀사냥으로 화형을 당했지.
딱 그정도네요
허난설헌 당시 조선이 낳은 최고의 시인 이었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시 당하고 멸시 되어야
했던 시대.... 현대에 태어 났다면 그 명성을
떨치고 능력을 ㅇㅈ 받았을것임
근데 이미 조선시대부터 허난설헌의 시는 표절이라는 시비가 많았음.이에 대해 현재까지도 논문이 나오고 있을 정도니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蘭雪軒集中金鳳花染指歌. 全取明人拂鏡火星流夜月. 畫眉紅雨過春山之句而點化爲之. 遊仙詞中二篇. 卽唐曹唐詩. 送宮人入道一律. 則乃明人唐震詩也. 其他樂府宮詞等作. 多竊取古詩. 故洪參議慶臣, 許正郞䙗. 乃其一家人. 常言. 蘭雪軒詩二三篇外. 皆是僞作. 而其白玉樓上樑文. 亦許筠與李再榮所撰云.
난설헌의 모음 가운데, 금봉화(金鳳花)로 손가락을 물들이는 노래는, 모두 명(明)사람의 「거울에 떨치니 불티가 밤달에 흐르고, 눈썹을 그리니 붉은 비가 봄메를 지나도다」의 글귀를 점화(點化)하여 이를 함이라. 유선사(遊仙詞) 가운데 두 편은, 곧 당(唐) 조당(曹唐)의 시요, 궁인(宮人)이 입도(入道)함을 보내는 한 가락은, 곧 명(明)사람 당진(唐震)의 시이라. 기타 악부(樂府), 궁사(宮詞) 따위의 작(作)은 옛 시를 훔치어 가짐이 많더라. 까닭에 참의(參議) 홍경신(洪慶臣)과 정랑(正郞) 허적(許嫡)은 곧 한집 사람으로, 늘 말하되, "난설헌의 시는 2, 3편을 빼고는 모두 위작이라. 그리고 그의 백옥루상량문(白玉樓上樑文)도 또한 허균이 이재영(李再榮)과 더불어 지은 바이라"라 하더라.
난설헌이 중국 시를 좋아하여 점화를 했거나 난설헌 사후에 그의 동생 허균이 난설헌집을 편찬하면서 절취하였을 가능성도 있음
요즘 같으면 소녀시대나 투애니원 같은거지요.
@@traviatoil6650 ㅇㅈ요.
안타깝고 애툿하다.
나도 허난설헌 시 한수
제목: 投蓮子
해맑은 가을 호수 옥처럼 새파란데
秋淨長湖碧玉流
연꽃 우거진 곳에 목란배를 매었네
荷花深處繫蘭舟
물 건너 님을 만나 연꽃 따 던지고
逢郞隔水投蓮子
행여나 뉘 봤을까 한나절 부끄러웠네
遙被人知半日羞
독야청청하리라
미스터선샤인에서 고애신이 읊던시네
저도 이 시를 좋아합니다
서예를 배울때 난설헌님시도 즐겨썼었답니다
참 사랑스런 설레는글이지요^^
중국의 여류 시인들은 당시 인기가 많아 새로운 시를 쓰면 대중음악처럼 시중에 널리 퍼졌다는데 우리나라는 그놈의 성리학 때문에 여성 차별이 심하여 안타까운 일이 많았죠.
참으로 안타까운 인물이였군요
신사임당 처럼 친정에서 결혼생활 했더라면 크게 유명세를 탔었을 인물아였기에 몹시 아쉬움을 금할길 없습니다
허난설헌 , 윤용하 !!!
두 분 천재께서 요절 하신걸 생각하면 너무나 슬픕니다.
저두요.
사임당은 억수로 잘난 아들들 덕에 빛이 날수가 있었고
난설헌은 현명하고도 애민정신이 뛰어나 궁휼히 여기며 가슴이 따뜻한 분 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박지원 같은 이마저 저런 걸 보면 역시 차별에 대해 열린생각이란 건 다른 재능과는 전혀 상관없는 거란 생각이 드네. 허씨 집안 같은 사람들만 있었다면 그래도 우리나라에 좀 더 빌전적인 영향을 주었을 텐데 안타깝다.
박지원이 비판한게 아니고
허난설헌 외에 여성인재가
드러날 수 없는 것을 비판한 거지요
뭐가 불꽃같은 삶이란 건지. 그냥 아쉽고 아까운 삶 같은데.
그러게요.! 똑같은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댓글이 보여서 반갑네요
두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심정.... 가늠이 안된다..ㅠㅠ
난설헌! 아,,, 눈물이 나고 가슴이 미어집니다!
눈물나네요. 음...저도 그녀 특집을 만들어야겠습니다.
허난설?
반가의여식으로 태어나 고지식자의 학문에도
여자를 억압했던 사회제도를
원망했던 똑똑한여인
그게 기득권 남자들이 자기의 영력 지키기 아니겠습니까?
당시 양반이 몇이나 되었는지 한번 생각 해 본적이 있으신지요?
유학이 이때 부터 조선을 망하게 하는 시초가 되던 시기 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렇게 개방적이고 남녀 평등하게 학식을 배려했던 아버지는 왜 하필 1세기나 앞서 시댁으로 난설헌을 보냈는지 가슴을 칠 일이다. 게다가 그 보수적인 안동 김씨 집안이라니!
친정에서 살았다면 맘껏 시를 쓰고 어쩌면 양가 집안의 배려 하에 신사임당과 교류할 수도 있었겠네요. 같은 강릉이잖아요?
27세 이름 없는 천재 시인의 요절이라니? 동생 허균의 탄식대로 살아선 부부 금술이 안 좋고, 죽어선 제사 지내줄 자식도 없이, 활활 타는 시와 함께 영혼만이라도 훨훨 자유롭게 속박이 없는 세상으로 갔을까? 하지만 지금도 허난설헌의 아픔은 정도의 문제이지 여전히 진행형이다.
우리나라와 우리겨레 역사상 최고의 문화를 꽃피웠던 조선.아깝다 여자라는 이유로 재능을 피울수 없었음이. 난설헌.균 최고의 남매다 그들의 이야기를 얼굴은 알수없지만 아마 최고의 미남.미녀 였으리라
조선시대 여인은 재능이 있어도,인격을 인정 받아도 사회적규제에 빛을 발하지 못했구나!
지금의 나는 많이 배우지 못해서 배워야 함을
알고서 몇년간 매일 글을 쓰니 자신감이 하늘에
닿는데~~~
알아도 모른척 해야하는 현실은 과거와 다를 바가 없네~~~
한문을 깨치면 새로운 세계가 보인다길래 이제서야 천자문 시작하네~~~
생각의 시간을 써도 현실에 나타나기 힘든세상
"허난설헌"이 있었고,
2020년 현재
불혹이 지나 꿈 키우는 내가 있다네~
가슴이 아프다
안녕하세요
참으로
안타깝네요
꽃도피기전에
세상을 하직하다니
참말로
세상이세월이무상하군요
허난설헌씨는
어딘가에ㆍ타어나셨겠죠
감동받았네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멍청한 중국사대주의 사상때문에 엄한 시집살이로 힘들고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어버지와 오라버니도 잇따라 돌아가셧으니 그 허망함이 얼마나 컷었을지요..가진 재능을 못다 피우고 젊은 나이에 요절 하셧다니 정말 안타깝네요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네요. 어찌 이 한 분 뿐일까요?~~
넘 안타깝다~ㅠㅠ
아까운 천재 허난설헌~~ㅠㅠ
불운의 시대에 탄생하여 큰뜻을
이루지 못한 천재적녀류 시인에대해 아쉬움을
금할수 없다!!!
ㅁ
8세에 이미 수준 높은 시를 지었을 정도의 천재성에 그림까지 뛰어났는데... 혁명적 가풍의 명문가 집안은 사랑 넘치고 남녀 차별을 두지 않았지만 시대가 암흑기 조선이었으니... 참.. 망할 사대주의. 결혼하고 남귀여가로 친정에서 살기라도 했으면 그나마 나았을텐데.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눈물이 난다.. 시를 듣는데 ㅜ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