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방어전! 공주전투, 대평리전투, 금강방어선에서 북한군 보병사단에 완패한 미군 24사단

Поделиться
HTML-код
  • Опубликовано: 8 сен 2024
  • 금강방어전은 금강을 새로운 방어선으로 설정한 미 24사단이 공주의 금강 남안에 34연대, 대평리의 금강 남안에 19연대를 투입하여, 북한군 3사단, 4사단, 105전차사단의 남진을 저지하고자 수행한 전투입니다.
    미 34연대는 1950년 7월 8일 천안전투에서 패배한 후 공주 방향으로 철수했고, 21연대는 전의와 조치원 전투에서 큰 손실을 입고 7월 12일에 대평리로 철수했습니다. 34연대는 공주, 21연대는 대평리에 방어진지를 구축했으며, 미 24사단장 딘 소장은 금강 남안에서 사단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방어전을 실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딘 소장이 금강방어선을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한강 남쪽에서 방어에 가장 유리한 지형이기도 했으나, 여기서도 밀리면 낙동강까지 방어에 적합한 천연장애물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 24사단은 금강방어선에서 공주전투와 대평리전투를 치루면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신규로 투입된 19연대의 손실이 특히 컸는데, 19연대는 지원포병대대를 포함해 총 병력 3,401명 중에 650명이 손실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1대대는 785명 중 338명을 잃어 병력 손실이 가장 컸고, 2대대는 777명 중 86명, 연대본부는 191명 중 57명, 52포병대대는 393명 중 55명이 손실되었습니다. 1대대 C중대의 경우에는 171명의 중대원 중 3분의 2가 넘는 122명의 손실이 있었습니다. 연대본부와 근무중대, 의무중대 및 4.2인치박격포중대는 장교 34명 중 17명이 7월 16일에 실종되었는데, 그 중 13명이 전사로 확인되었습니다. 여기에 지원배속부대 및 포병부대에서 100여 명의 손실 있었습니다. 또한 장비손실도 막대하여 연대본부와 1대대는 대부분의 차량과 중장비를 상실했고, 52포병대대는 7월 5일 죽미령전투에서 105mm곡사포 5문을 잃은 데 이어, 7월 16일 9문의 105mm곡사포 중 8문을 유기하여 곡사포 1문과 차량 3대만 남게 되었습니다. 북한군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판단되나 전과는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6.25전쟁에 대한 많은 영상이 있지만, 기초적인 사실 조차 확인하지 않은 영상들이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 공영방송의 다큐멘터리도 조차도 사실과 다른 부분을 이야기하는 형편입니다. 6.25전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알기 쉽게 정리하여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참전했던 국군과 미군의 회고록, 미국 논픽션 전쟁사 작가의 간행물, 중공군 참전기록 등 다양한 정보를 교차 검증하여 가장 정확한 6.25전쟁 정보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되어 3년 1개월 2일 만인 1953년 7월 27일 오후 10시, 민족의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상처를 남긴 채 종전이 아닌 휴전의 형태로 정지된 비극적 전쟁입니다.
    자유진영 전사자는 한국군 149,005명, 미국을 포함한 유엔군 40,306명 등 189,311이 희생되었습니다. 공산진영은 북한 294,000명, 중공 197,653명, 소련 315명 등 491,968명이 전사했습니다.
    6.25전쟁으로 인해 민간인을 포함하여 5,991,484명이 희생되었습니다. 5,991,484명의 희생자 중 5,218,480명이 한국인입니다.
    한국인 인명 피해로만 본다면 고구려-수나라 전쟁, 고려-몽골 전쟁,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모든 대외전쟁을 합친 것 보다 많습니다.
    불과 70여 년 전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6.25전쟁은 반만년 한민족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습니다.
    [참고자료]
    6.25전쟁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 주요전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영웅(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중국군의 한국전쟁사(국방부, 군산편찬연구소), 낙동강(류형석, 플래닛미디어), 6.25전쟁 징비록(백선엽, 책밭), 기갑전으로 본 한국전쟁(권주혁, 지식산업사), 6.25전쟁과중공군(박실, 정미디어), 6.25전쟁(존 톨랜드, 바음), 콜디스트 윈터(데이비드 헬버스템, 살림), 이런전쟁(T. R. 페렌바크, 플래닛미디어), 6.25전쟁에서의 소부대 전투기술(러셀 구겔러, 북갤러리), 중국군의 한국전쟁사(중국 군사과학원 군사역사연구부), 한국전쟁(왕수쩡, 글항아리), 중국이 본 한국전쟁(홍학지, 한국학술정보), 항미원조(리펑, 다른생각)
    [영상 출처 : 국가기록원]

Комментарии • 14

  • @user-tm5fw8uk9k
    @user-tm5fw8uk9k 8 месяцев назад +7

    사실... 아직도 잘 모르지만... 한국전쟁이 가장 순수하게 자유진영을 지키려는 전쟁이었다고...
    아까운 미국 청년들, 한국 청년들... 한국은 중학생 아이들까지... 너무 많았던 피난민들...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 이후 전쟁들은 정말 많이 왜곡되었다고요... 그렇게 들었습니다...

  • @user-yv3cj2ch8h
    @user-yv3cj2ch8h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

    공주와 대평리사이에 있는 엄마고향 에서 엄청나게 북한군과 미군이 싸웠다고
    엄마한테 어린시절 들었던기억이나요
    지금은 그곳이 군부대로 있어요

  • @user-cd1by2vf5f
    @user-cd1by2vf5f Месяц назад +1

    미 19연대 연대장과 후임 지휘관들이 계속해서 저격당하는데도 대비하지 않고 계속 당하기만 하는게 당시 미군 지휘관들의 전시대비상태와 훈련상태가 최악이었음을 알수있다. 지휘부가 우왕좌왕하는건 34연대보다는 훨씬 덜하지만 효율적인 벙력 운용과 전술행동이 아쉽다.

  • @user-ep5ur2og3c
    @user-ep5ur2og3c 8 месяцев назад +5

    호랑이와 하이에나
    한 개인의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물며 그 무수한 개인의 집합체인 국가나 민족단위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지도자를 선출해야하는 지금, 과연 무엇을 판단의 기준과 지표로 삼아야하는가?
    천인이면 천색이요, 만인이면 만설이 분분할 것이 분명코도 지당하다 아니할 수 없다.
    그러한 즉, 필부인 나도 천색만설 중, 비루한 첨언을 하나 더 보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름지기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수단은 신언서판이라는 고색창연한 방법이 있다. 부연하면 그 사람의 몸가짐과 말투와 글씨와 구체적 상황에서의 판단력의 적합도를 형량한다는 뜻일게다. 참으로 이설을 제기하기 어려운 진리임을 부정키 어렵다. 하지만 이것은 지근거리에서 직접 관찰이 가능한 조건에서는 합당하다 하겠으나, 각종 언론과 방송 등 매스미디어의 제한적이고 상이한 보도나 전달로 인해서 그 진실된 전모를 보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는게 작금의 현실이다. 기자는 진실을 보도하지 않고, 방송은 사실을 외면함으로써 이미 스스로 언론이기를 포기한지 오래다. 학문을 빙자하여 그릇된 이념을 전파하는 지식판매원이 교수이고 학자연 하고, 종교와 공존할 수 없는 헤겔좌파 유물론을 신봉하는 위선자들이 소위 종교지도자라고 추앙 받는 세태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이 나라가 과연 정상인지, 아니면 나 자신이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지 몾하고 홀로 고립되고 이미 진작에 화석화된 전근대적 사고의 도그마에 매몰된 골동품이지는 아닌지, 우려와 염려와 심려에 기우 까지 보태서 심한 비탄에 빠지기도 한다. 그야말로 곡필부권, 곡학아세, 혹세무민이 천하를 뒤덮고, 그 기세는 가히 범접불허 유아독존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는 지경이다. 각설하고 적반하장이라! 도둑이 매도 아닌 몽둥이도 아닌, 서슬 퍼런 칼을 들고 질곡에서 신음하는 가련하고 피폐한 백성을 도둑이라고 징치하려들고, 소위 착한가격이라는 무식한 유행어를 만들어 시장을 통제하려 드는 바, 이는 가히 도덕선생이 경제학을 재해석하는게 지극히 당연한 세상이 되었다. 아무리 배가 고플지라도 내년에 농사 지을 씨나락은 남겨두고서 떡을 해 먹든, 술을 해 먹든 해야할 것인데, 지금 당장 배를 채우자고 분배의 정의를 외치는 것이야말로 시대의 양심이라고 칭송하는게 작금의 지성인이요, 지도자라 자칭한다.
    그야말로 가난을 무기화하여 땀과 눈물로 부를 획득한 근면성실한 이들을 악으로 규정하여 타도와 절멸의 대상으로 가르친다. 한 마디로 21세기판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선동한다. 도덕과 경제의 원리를 구분하지 몾하는 이데올로기의 맹신자들이 유능한 경제전문가라고 자신을 포장한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실수나 과오는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공과라 칭한다. 특히 역사적 인물에게는 후세들에게 공과의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데, 공칠과삼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공이 과 보다 많으면 무난한 인물이라는 뜻으로, 다소 흠결이 있더라도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인간으로서는 가히 존경할만한 인물이라는 역사평가의 보편타당한 기준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인된 평가기준 조차도 갖가지 트집잡기로 부정하고, 나아가 폄훼하거나 왜곡하여 명예를 실추 시키고 모욕하기를 서슴치 않는다. 즉 역사를 왜곡 날조하여 자신의 불순한 목적달성의 도구로 악용한다. 이들은 호랑이나 사자가 아니다. 그저 들개나 하이에나처럼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약자나 자기들 패거리가 아닌 대상들을 집단으로 집요하게 공격하다가, 자기들의 패거리가 충분히 수가 많아지면 호랑이나 사자에게 달려든다. 참으로 비열하고 혐오스러운 치사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이들에게는 진리와 진실과 진정이 없다. 그렇지 아니한가? 진리의 반대는 무리이고 진실의 반대는 허위이며 진정의 반대는 가식이지 않는가!
    밝은 태양 아래서는 곰팡이가 슬지 않는다. 사회의 음습한 구석구석에서 이들은 창궐한다.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유명한 대석학은 정의의 본질은 평등이라고 갈파했다. 그런데 평등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본시 천학무식한 필부이기에 나의 무지와 과문의 탓이겠지만, 나는 아직껏 이에 관한 명징한 답변을 주는 대스승을 알지 몾한다. 그런 소이로 나는 내 스스로의 어설픈 정의(定義)를 내린다. 평등의 본질은 (자연은 본질적으로 불평등하다는 것을 진리로 인정하되, 인간의 도덕과 윤리의식으로 자연상태의 본질적불평등을 최대한 완화시키려는 이타적이고도 실천적 행동이다. )라고.
    그렇다. 세상은 정의가 지배해야 마땅하다. 기회는 평등해야하고 과정은 공정해야하고 그 결과는 정의로워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과연 이러한 세상에 살고 있는가?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멀지 않은 과거에 건국과 중흥이라는 호랑이가 있었다. 나는 육십년 전 임인년 출생이다. 내가 태어나기 불과 일년 전 신축년에 5, 16 군사혁명이 있었다. 미군의 잉여구호물자 즉, 미국과 자유우방국들의 원조물자인 덩어리진 우유와 옥수수가루와 밀가루를 먹고 자랐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고 내가 발을 딛고 사는 이곳은 대한민국이지만, 나의 신체를 구성하는 뼈와 살과 피가 이들 자유우방국들이 보내준 영양분으로 인해 자라고 배우고 또, 내 후손들에게 생명을 전달해줄 수가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6, 25 전쟁시에 수도사단과 8사단 등에 소속된 보병장교로서 낙동강전선에서 피를 흘리며 싸웠다. 북진도 했고 1, 4 후퇴도 당했고, 그 후 중동부전선의 고지전도 겪었다. 총 세번의 부상을 입고, 그 중 한 번은 허파에 총탄이 박히는 중상이었다. 그 때 나의 아버지를 살린건 국군이 아니라 미군포병대의 전방관측장교였다. 피범벅이 되어 정신을 잃은 아버지를 그 미군장교와 짚차의 운전병이 발견하고 후송해주어서 살아날 수 있었다. 그 더 이전에는 미국의 태평양 전쟁의 참전으로 인하여 나의 조부모님들이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 될 수 있었다. 이것이 지금 내가 이곳에서 이 글을 쓸 수 있게된 인과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친미파다. 비난을 하던, 비판을 하던 감수하겠다. 그러나 이 말은 꼭 해야겠다. 한 개인이던 국가던 도움을 받았다면 보은은 몾할지라도 배신하거나 은혜를 원수로 갚아선 안 된다. 그것은 금수도 하지 않는다. 소위 강남좌파는 반미는 직업이고 반일은 부업이며 친중종북은 취미활동이라고 한다. 나는 시골뜨기 출신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오히려 자랑스럽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의 국가대전략이 친미(親美). 연러(聯露),협일(協日).호중 (互中). 통북(統北)이라고 감히 천명한다. 비웃어도 좋다. 다만 그 대안을 제시하고 필요충분한 국제정치학적 논거를 적시하라. 그리고 나는 핵잠수함에 핵항공모함에 핵폭격기에 단 한발이면 유라시아대륙을 몽땅 날릴 수 있는 고위력 수소폭탄도 가지고 싶다. 왜냐하면 다시는 나의 할아버지가 겪어야했던 식민지의 피지배민족이 되기 싫기 때문이다. 짚신을 신고 눈 보라 휘몰아치는 만주벌판을 헤메이며, 아무런 보상도 확신도 없이 독립투쟁을 할 만큼, 나는 고매한 인격과 자질을 갖추지 몾했기에 그렇다. 또한 나의 아버지가 겪었던 참혹한 전쟁이 싫고 더군다나 그 필설로 형언키 불가능한 총포탄의 부상통증과 풍우한서와 굶주림의 기약 없는 고통의 세월을 묵묵히 인내하며 견뎌낼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사랑하는 나의 후손들에게도 그러한 비극이 재현되지 않기를 간곡히 열망하기 때문이다. 이제 머지 않아 이나라의 미래가 걸린 투표일이다.
    독선, 위선, 허위, 가식, 불의, 부정, 부패, 이율배반, 교언영색, 양두구육 등 가히 아름답지 몾한 이런 단어들이 그저 사전 속에만 머물러 있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대석학은 일찍이 갈파했다.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통치자를 가진다.
    자유대한민국에서 가장 몾난 필부
    涯黎 謹抄

  • @user-mh3tw9rk5y
    @user-mh3tw9rk5y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영상감사합니다.이런 자료 어디서 구해서 하실까요ㄷㄷ

    • @user-is5cn8hm1o
      @user-is5cn8hm1o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영상 소개글에 자료출처를 표기했습니다.

  • @jefflee2339
    @jefflee2339 8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인민군도 무능했으니 저정도였지. 만약 진짜 대부대 지휘경험 있는 유능한 지휘관이 적절하게 지휘했으면.. 7월 말에 끝.

  • @user-br9fx8kz4d
    @user-br9fx8kz4d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3사단5연대25중대27대대3 중대. 기병대대 2사단포병부대8중대. 곡사포대4중대역락통신대1연대2사단5중대공격 하다. 후튀했다는. 말을. 길게.도. 지루하게 설명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