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625 막 끝나고 마을로 돌아왔을때 동네 초가집 다 무너지고 기와집도 몇채 없는데 그거도 기왓당이 제대로 남른게 없을정도였어요. 55, 56, 57. 특히 흉년이 심했고요 사람들이 산레가서 나무껍질 풀피리 호들삐기 불고요 나물죽 쑤어먹어야 했어요. 버섯 따먹자가 독버섯에 아기들 많이 죽었고요, 먹을수 있는건 뭐든 먹어야 했어요. 정말 가난한 촌은 저랬어요. 옷도 무명 적삼 한복 잆고요. 서울에나 가야 번듯한 이층집이 있는거죠
드라마 진짜 잘봤다. 결말보고 살짝 의아했던게 향이란 아이가 부모 오빠 동생 다 죽고 없을때 유일하게 가지고 있었던게 장농 가득한 돈이었다. 동생 굶어죽일거 알고도 팔아넘긴 애가 물론 홀홀단신이 되었단 사실에 각성하고 동생이라도 구해야 한다 생각했을수 있지만 그보다 그돈으로 그렇게 하고 싶었단 미술공부하고 혼자 하고픈대로 왜 안살았지? 왜 그선택지를 택하지 않았지? 동생을 대신 굶겨죽게 보낼 정도의 멘탈임 외면도 가능했을듯 한데... 그게 문득..궁금했다. 물론 드라마 되려면 향이가 돈다발 들고 갔어야 하지만 😅 진짜 간만에 초몰입한 드라마! 😊
일단 돈들고 갔다오던 시점에 아부지가 향이 따귀를 때리며 얘길하죠. '뭘 하고 다녔는진 모르지만 너희엄마는 너 보내는것도 계속 반대했었다'며..그 과정에 어머니가 비관해서 삶을 마감한걸 두 눈으로 목격합니다. 그 사건이 있고 학교미술 선생과 향이 반친구가 와서 향이를 북돋아주는 멘트와 초자병을 주고 빠져나가는 씬이 있었죠. 그래도 그걸로 일해 다시 멘탈을 부여잡고 있는 와중, 뱃일을 하러 나간 아버지와 오빠들을 위해 밥까지 차려놓죠. 그러나 아버지와 오빠도 바닷가에서 실종이 되어버렸고, 향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그래도 살아보려 발버둥쳤던 그 모먼트들이 싹 다 날아가버렸습니다. 그래도 내 동생이라도 다시 데려와서 잘 살아보자 다짐하며 그 노병희 집 안 창고에 들어갔다가 동생이 최만월에게 죽는걸 목격한 상태+이때까지 있었던 모든 불행들 이게 다 합치면서 질긴 악귀가 되고말죠. 심지어 물한모금 못마시고도 일주일 동안이나 버텼다고 하니... 독하고 질긴 악귀였지만 11화만 보고도 노병희의 악행이 악귀보다 더하네요ㄷㄷ
악귀가 한이 많다곤 해도, 자신의 대한 단서를 남겼단 이유로 자신의 은인(=신승주 교사)도 죽였다는 점에서 자신이 쓰던 방식으로 매우 비참하게 죽은건 자업자득이라고 봅니다. 헌데 나병희는 악귀의 이름을 자백한 시점에서 악귀의 살해대상이 되었을텐데 왜 악귀 소멸법을 염해상이나 이홍새에게 알려주지 않은걸까요? 알려줬다면 죽지는 않았을텐데.
@@이하늘-c3g드라마 마지막회에서도 죽기전 다잉메세지를 남기면서 한말이 나혼자 죽을순 없다고 했었음. 끝까지 탐욕으로 가득차서는 악귀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자신을 죽이니까 앙갚음 하듯 다잉메세지 남긴것. 누구에게도 미안하다는 마음 자체가 없던 사이코패스임. 그런면에선 악귀와 똑같음.
나병희는 악귀를 설득시킬 자신이 있었던거죠!! 여지껏 협력해왔고 둘사이 구호처럼 내가살면 너도 살고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 이 룰을 지킬수 있을거라 믿은거죠! 하지만 상대는 악귀! 결국 향이한테 배신당하고 나병희도 마지막 죽기직전 메세지를 남김으로서 둘만의 룰은 결국 지켜진거죠!!
사실 배움에 대한 욕심은 나쁜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마을을 지킨답시고 아이 한명을 죽이는데 찬성한 사람들 그리고 돈을 벌기위해 태자귀를 만들려는 염씨 집안과 악귀에 최만월의 집착과 욕망에 비할까 물론 악귀가 된 후 삶에 대한 집착, 부자에 대한 집착에 죽어서도 남을 해치게 되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누구라도 상관 없는거 같습니다 다만 첫짼 집에 대를 잇는다던가 훗날 가장노릇을해야 했기에 그리고 남잔 노동력이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둘째 나 그밑으로 그리고 남자보단 여자가선호된거 같습니다 극중에 보면 둘째여야 했습니다라고 하지만 그이유로 첫짼 대를 이어야 하니깐 식의 이유가 나오지요
미술쌤인 신승주가 '미술의 이해'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그 책안에 악귀의 단서(달그림과 향이 이름 등)가 있어서 악귀가 미리 죽인 거 아닐까요? 염승옥이나 염재우가 악귀 소멸을 위해 그를 만나려 할수도 있으니까요. 아니면 염승욱이 악귀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그를 수소문했을수도 있고요. 악귀는 자신의 정체를 파헤치거나 알게된 사람들을 죽이기도 했던거 같아요(서문춘 형사처럼)
어촌 마을이 설정이니 충분히 가능하구요. 조선시대 개화기에도 그렇지만 번화가를 제외하고 50~60년대에 아궁이에 불을때는 초가집 형태의 집이 많았다고 합니다. 실제 제가 지방에서 버려진 폐가들을 본적도 다수 있는데...이곳에서 과연 사람이 살았을까 싶게 비좁고 허름하고, 아예 갓지었을때도 저는 못살고 도망갔을거 같은 구조의 집도 있더군요. 지방의 군소재지의 면리 단위의 작은 마을들을 살펴보시면 70~80년대 지은 집도 현재 시선에선 못살것같이 빈약하고 낙후된 환경이란걸 짐작하실수 있습니다. 초가집이라는 것은...사극이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모습이 크게 미화된채 보이는것을 참고하시면 좋으실거 같습니다. 실제는 이 바닥에서 가족이 다 누워서 잘 수 있나 판단안될정도로 좁아요
농촌도 농촌이지만 어촌인 경우엔 뭐든 발전이 내륙보단 훨씬 느리죠. 70년도에도 목단이 입은거 마냥 한복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흔하게 있었다고 합니다. 집도 물론 초가집이 대부분이였다고 함. 저 어릴때(90년대) 어촌쪽 놀러가면 화장실을 푸세식을 썼던게 기억남. 미술 선생은 당연히 배운 집 자식이니 저런 옷차림이겠죠?ㅎㅎ 참고로 저 시대에 한창 젊은 나이였던 어촌에 사신 할머님께 들은 얘깁니다 안 겪어본 사람의 막연한 추측보단 훨씬 신빙성 있죠😊
시골촌은 아무래도 발달이 느리니 그렇죠. 지금도 시골촌마을가면 아주 많이 볼수 있어요. 폐쇄적이고 무조건 형님.동생하는 관계로 큰일이 나도 신고는 커녕 오히려 신고한 사람한테 죽을놈 취급하는 아주 우매한 곳입니다. 설현이랑 임시완이 찍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않아라는 드라마가 시골사람들 성향과 비슷합니다.
1954년 625 막 끝나고 마을로 돌아왔을때 동네 초가집 다 무너지고 기와집도 몇채 없는데 그거도 기왓당이 제대로 남른게 없을정도였어요. 55, 56, 57. 특히 흉년이 심했고요 사람들이 산레가서 나무껍질 풀피리 호들삐기 불고요 나물죽 쑤어먹어야 했어요. 버섯 따먹자가 독버섯에 아기들 많이 죽었고요, 먹을수 있는건 뭐든 먹어야 했어요.
정말 가난한 촌은 저랬어요. 옷도 무명 적삼 한복 잆고요. 서울에나 가야 번듯한 이층집이 있는거죠
그래서 전 이해가 안가더라구요 그런 시기에 여자애를 중학교까지 보냈다는 설정이...그건 오히려 부자만 가능했죠
깔끔한 정리 감사해요!
정리 개깔끔하다
손더게스트 이후 한국에서 이런 장르물이 나올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그것도 공중파에서!!! 손더게스트를 몇번을 본지 몰라요ㅠㅠ 이런거 또 만들어주세요
오 손더게스트 팬 ~ 저도요
실제로 60년대초까지 인심공양이 일어났으면 섬같은경우는 용왕님에게 산재물로 동내 바보들을 잡아서 했다고함
인심공양-인신공양
재물-제물
동내-동네
@@user-rl8cj1lu4f 아 속 시원
일어났으면 - 일어났으며
ㅋㅋㅋㅋ 대체 맞춤법 몇개가 틀리는거지
출처라도 적지
향이같은 애들은 널리고 널렸지만 김해숙과 무당같은 진짜 악귀는 흔치않지...진짜 악귀는 돈에 눈뒤집혀서 무슨짓이든 하는 김해숙과 무당
마을 사람들이 모를리가 있나요
향이 부모님부터 다 알고 있는데요 목단이 끌려갈때 스스스 하고 뒤에서 나오는 마을 사람들 다 공범색히들인데
악귀보면서 저장면 너무 슬펐어요 ㅠ
드라마 진짜 잘봤다. 결말보고 살짝 의아했던게 향이란 아이가 부모 오빠 동생 다 죽고 없을때 유일하게 가지고 있었던게 장농 가득한 돈이었다. 동생 굶어죽일거 알고도 팔아넘긴 애가 물론 홀홀단신이 되었단 사실에 각성하고 동생이라도 구해야 한다 생각했을수 있지만 그보다 그돈으로 그렇게 하고 싶었단 미술공부하고 혼자 하고픈대로 왜 안살았지? 왜 그선택지를 택하지 않았지? 동생을 대신 굶겨죽게 보낼 정도의 멘탈임 외면도 가능했을듯 한데... 그게 문득..궁금했다. 물론 드라마 되려면 향이가 돈다발 들고 갔어야 하지만 😅 진짜 간만에 초몰입한 드라마! 😊
일단 돈들고 갔다오던 시점에 아부지가 향이 따귀를 때리며 얘길하죠. '뭘 하고 다녔는진 모르지만 너희엄마는 너 보내는것도 계속 반대했었다'며..그 과정에 어머니가 비관해서 삶을 마감한걸 두 눈으로 목격합니다. 그 사건이 있고 학교미술 선생과 향이 반친구가 와서 향이를 북돋아주는 멘트와 초자병을 주고 빠져나가는 씬이 있었죠. 그래도 그걸로 일해 다시 멘탈을 부여잡고 있는 와중, 뱃일을 하러 나간 아버지와 오빠들을 위해 밥까지 차려놓죠. 그러나 아버지와 오빠도 바닷가에서 실종이 되어버렸고, 향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그래도 살아보려 발버둥쳤던 그 모먼트들이 싹 다 날아가버렸습니다. 그래도 내 동생이라도 다시 데려와서 잘 살아보자 다짐하며 그 노병희 집 안 창고에 들어갔다가 동생이 최만월에게 죽는걸 목격한 상태+이때까지 있었던 모든 불행들 이게 다 합치면서 질긴 악귀가 되고말죠.
심지어 물한모금 못마시고도 일주일 동안이나 버텼다고 하니...
독하고 질긴 악귀였지만 11화만 보고도 노병희의 악행이 악귀보다 더하네요ㄷㄷ
드라마 마지막 편을 보고 이향이에 대한 여운이 가시질 않네요. 가난과 욕망 그리고 사랑에 대한 목마름. 뭔가 이성적인 판단 보다는 가족애에 이끌려 돈을 싸들고 최만월에게 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소망마져 짓밟아 악귀로 만든 사람들이 진정한 악귀겠지요.
저는 약간 다 죽어 나가니깐 자기도 죽을까봐 공포심에 그런건가 싶어요 ,, 개인적으로 그돈이면 혼자 즐겁게 사는게 맞다고 생각들지망 어린 여자애니깐 현명하게 생각 하기 어려웠을지도 !!
그래도 세상 자기핏줄이 다그렇게되었는데 돈이 다뭔소용인가 싶지않을까요ㅠㅠㅠ마음이너무아팟어요
네 저도 드라마 잘봤습니다. 향이는 미술에 재능이 있지만 맘껏할 수도 없는 가난 즉 돈이 있으면 뭐든 다 행복할 것 같았지만 막상 돈이 있어도 가족이 없으면 불행하다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 같네요ㅠㅠ
저 당시 중학교에 간 것만 봐도 대단한 능력이고
악귀가 한이 많다곤 해도, 자신의 대한 단서를 남겼단 이유로 자신의 은인(=신승주 교사)도 죽였다는 점에서 자신이 쓰던 방식으로 매우 비참하게 죽은건 자업자득이라고 봅니다.
헌데 나병희는 악귀의 이름을 자백한 시점에서 악귀의 살해대상이 되었을텐데 왜 악귀 소멸법을 염해상이나 이홍새에게 알려주지 않은걸까요? 알려줬다면 죽지는 않았을텐데.
소멸법 다잉메시지로 남기고 죽었어요
@@정인택-i2r 나만 죽을수 없지, 너도 당해봐라 인가요?
@@이하늘-c3g드라마 마지막회에서도 죽기전 다잉메세지를 남기면서 한말이 나혼자 죽을순 없다고 했었음.
끝까지 탐욕으로 가득차서는 악귀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자신을 죽이니까 앙갚음 하듯 다잉메세지 남긴것.
누구에게도 미안하다는 마음 자체가 없던 사이코패스임.
그런면에선 악귀와 똑같음.
@@suason4648 사망시 붉은 멍자국이 있었다고 합니다.
나병희는 악귀를 설득시킬 자신이 있었던거죠!! 여지껏 협력해왔고 둘사이 구호처럼 내가살면 너도 살고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 이 룰을 지킬수 있을거라 믿은거죠! 하지만 상대는 악귀! 결국 향이한테 배신당하고 나병희도 마지막 죽기직전 메세지를 남김으로서 둘만의 룰은 결국 지켜진거죠!!
사실 배움에 대한 욕심은 나쁜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마을을 지킨답시고 아이 한명을 죽이는데 찬성한 사람들 그리고 돈을 벌기위해 태자귀를 만들려는 염씨 집안과 악귀에 최만월의 집착과 욕망에 비할까 물론 악귀가 된 후 삶에 대한 집착, 부자에 대한 집착에 죽어서도 남을 해치게 되었지만...
3:10 에 나오는 이목단 아버지는 시간 관계상 이목단아버지가 먼저 배가 침몰해서 죽은 후 향이가 돈들고 목단이 찾으러갔을때 목단이는 아직 살아있었으니 옥외티 인걸까요?
이 남자분은 장진리 이장님인 거 같아요. 최만월의 요청으로 마을 소녀들을 모집할 때도 이장님이 등장하시거든요(00:31) 그리고 협조한 사람들에게 어음을 나눠주는 장면에도 등장하시고요. 최만월의 지시로 이장님이 이목단 시신을 염하고 나무에 매달아둔 거 같습니다.
목단이가 돌아왔을 땐 가족이 다 죽었기때문에 이장님이 시신을 수습해준거죠
옥외티는 오타 내신거죠?
@@view_class 아~맞네요~ 감사합니다.
저 의식 한 사람이 아버지가 아닐 수도 있음 저 모습은 염해상 교수가 설명할 때 보여주는 예시? 같은 거
무당도 사악한 기운을가진자는 멀리해야하는이유다
애초에 태자귀 만드는 무당도 사악한 거죠. 애 굶겨죽여 만드는 행동인데. 무당들 돈에 미치면 별짓 다합니다. 돈!돈!돈하면서 엄청 밝혀요
저렇게 찢어지게가난한데 58년 저시대에 교복입고 학교를 갈 수 있었다는게 제일 놀랍긴했어요.....사실 그때학교못간 아이들 많은디ㅠ...
아무리 욕심이많아도 형편이안되면 못보냈을텐데..흠
이게 팩트지
그만큼 꿈 많고 하고싶은게 많던 소녀였던거죠. 오빠도 못가는 학교를 본인만 다녔던거 보면요
이향이가 악귀가 된 이후의 일생도 정리해수실수 있나요?
저희가 다른 콘텐츠들을 준비 중이라 악귀 추가 영상은 어려울듯 합니다. 죄송합니다😥
궁금한게 목단이는 악귀가 되지도 않은건가요ㅠㅠ?
아직 너무 순수해서 너무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괴롭게 죽은거같아요...
무당 태자귀가됨. 무당이 목단이 손가락 갖고있었음
근데 왜 나병희는 자기 집으로 숨어들어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집자체가 금줄같은거일수도
향이정도면 엘리트죠. 😅😅
슬프네..
결국 사회가 만들어낸 악귀임 결국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되었고 두 번 다시 향이 같은 사회가 만들어낸 악귀가 나타서는 안됨
이거 납득이 안되는게 58년도에 여자가 중학교를 다닌다? 심지어 가난한데 학교를 다녔다고? 저 당시엔 국졸만 한 여자가 많았다 진정 가난했다면 아예 학교를 가지 않았지
보는내내 궁금했는데 악귀를 만들어서 무지성으로 돈을 버는게 가능한설정인가요?
어느정도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제재하는 방해자를 제거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돈과 권력을 얻을 수 있지않을까.. 그래서 악귀를 이용해 더 큰 돈과 권력을 얻었던 건가.. 저는 이렇게 생각해봤습니다😅
회사가 캐피탈임
못할 것도 없음
악귀의 두번째 숙주가 경쟁사 사장을 제거하는데 악귀의 힘을 악용했습니다.
경쟁사 제거하고 방해하는 검사 죽이고
독과점이 가능하게 되는거죠
@@haim2697ㄴ57777
최만월이 나병희에게 “대대로 태자귀를 만드는 일을 해왔지만 이번 (귀신)은 다르다.”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어서 태자귀랑 악귀를 구분할 수 없는 것 같은데… 태자귀가 곧 악귀가 된 것인데 태자귀 의식 따로, 악귀 의식 따로 각각 했다는건 좀 이상하네요
6
이런스타일보고싶으시면 문근영나오는 마을아치아라의비밀보세요 그것도재밋음
조선이 멸망해서 정말 다행 입니다😢
조선이 멸망한게 갑자기 왜?
성악설.....진리임...
가난이 부른 비극
지금같으면 엄청난 아동학대겠죠..
버그베어 테이밍보다 빡세네 ..
(향모녀가 나보구 외계인라구 한거 생각난다. ㅏ하... 너무 괴롭혀서 그런가... 하ㅏㅎ..)
빨간댕기...얘기도 초등학생때 들었음
80년다 아니90년대에도경기도 농촌 아궁이 불 때는집 다슼
염승욱 나명희 부부 할머니 집에서 사진 봤어요 일본에서 살았다고
1도 안슬픔. 아무리 슬픈 같은 과거가 있었다 해도. 악귀로 행했던일들은 용서가 안될정도로 ㅈ같은 행동이였음. 잘뒈졌다고 생각함.
통수×3 의 향연 허허
윤미 ~ 이향이 ??
정치병자 ㄷㄷ
쥴리이~
태자귀의 조건이
둘째 인지 ?
둘째딸 인지 ??
저는 태자귀의 조건이 둘째이고, 둘째인 여자아이 중에 선발하는 거라고 봤는데, 그러면 목단이가 최만월을 따라갈때 마을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은 있었지만 그냥 봤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누구라도 상관 없는거 같습니다 다만 첫짼 집에 대를 잇는다던가 훗날 가장노릇을해야 했기에 그리고 남잔 노동력이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둘째 나 그밑으로 그리고 남자보단 여자가선호된거 같습니다 극중에 보면 둘째여야 했습니다라고 하지만 그이유로 첫짼 대를 이어야 하니깐 식의 이유가 나오지요
@@view_class 목단이가 따라가는데 마을사람들이 보는 모습은
마을사람들 모두 한 편이라는 걸 연출로 보여준 거라고 봄
둘째 딸을 설정한걸 보면 아무래도 둘째. 특히나 그 시절이면 여자아이가 설움이 많을 거 같네요.. 지금도 다둥이 집보면 둘째아이들이 피해의식이 많은 데 저시절엔 더 했겠죠... 우리 엄마가 딱 저 케이스..
미술쌤 왜죽임??
미술쌤인 신승주가 '미술의 이해'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그 책안에 악귀의 단서(달그림과 향이 이름 등)가 있어서 악귀가 미리 죽인 거 아닐까요? 염승옥이나 염재우가 악귀 소멸을 위해 그를 만나려 할수도 있으니까요. 아니면 염승욱이 악귀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그를 수소문했을수도 있고요. 악귀는 자신의 정체를 파헤치거나 알게된 사람들을 죽이기도 했던거 같아요(서문춘 형사처럼)
58년도 시골의 배경이 실제로 저정도 옷차림과 집들일까요
저런 배경은 조선시대말 배경 같은데
일제시대라도 저정도 초췌한 배경은 아닐듯
그리고 미술선생은 옷 입은게 너무 지금시대 현대식입니다
머리스타일도 그렇고
저 시대의 미남인물과 매칭이 안되서 억지같네요
어촌 마을이 설정이니 충분히 가능하구요. 조선시대 개화기에도 그렇지만 번화가를 제외하고 50~60년대에 아궁이에 불을때는 초가집 형태의 집이 많았다고 합니다. 실제 제가 지방에서 버려진 폐가들을 본적도 다수 있는데...이곳에서 과연 사람이 살았을까 싶게 비좁고 허름하고, 아예 갓지었을때도 저는 못살고 도망갔을거 같은 구조의 집도 있더군요. 지방의 군소재지의 면리 단위의 작은 마을들을 살펴보시면 70~80년대 지은 집도 현재 시선에선 못살것같이 빈약하고 낙후된 환경이란걸 짐작하실수 있습니다.
초가집이라는 것은...사극이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모습이 크게 미화된채 보이는것을 참고하시면 좋으실거 같습니다. 실제는 이 바닥에서 가족이 다 누워서 잘 수 있나 판단안될정도로 좁아요
감사합니다^^
80년대 후반에 초 1이었는데 제천에 계신 할아버지 집이 악귀에 나온 집과 비슷했음.
옷차림얘기는 다들왜뺌
농촌도 농촌이지만 어촌인 경우엔 뭐든 발전이 내륙보단 훨씬 느리죠. 70년도에도 목단이 입은거 마냥 한복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흔하게 있었다고 합니다. 집도 물론 초가집이 대부분이였다고 함. 저 어릴때(90년대) 어촌쪽 놀러가면 화장실을 푸세식을 썼던게 기억남. 미술 선생은 당연히 배운 집 자식이니 저런 옷차림이겠죠?ㅎㅎ 참고로 저 시대에 한창 젊은 나이였던 어촌에 사신 할머님께 들은 얘깁니다 안 겪어본 사람의 막연한 추측보단 훨씬 신빙성 있죠😊
지금 국힘인간들 장관들 보면.....충분히 그런짓을 하고도 남을것들
향이도 짠하고 목단이도 짠하고 ㅜㅜ
우리나라가 얼마나 우매한 민족이였는지 ......,
염매는 우리나라뿐 아니라...중국 일본에서도 실제 있었던 일이며 국가마다 법으로 금지되어있다고 합니다
일단 당신은 우매함
다른나라에서도 인신공양 같은것 많이 했어요 그 당시에는 신에게 의지할수밖에 없는 현실임
민속학을 미신으로만 치부하다니.. 당신이 겪어보지 않았다고 어리석게 미신에 의지한다고 판단해서는안되요. 세상에는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도 많답니다
시골촌은 아무래도 발달이 느리니 그렇죠. 지금도 시골촌마을가면 아주 많이 볼수 있어요. 폐쇄적이고 무조건 형님.동생하는 관계로 큰일이 나도 신고는 커녕 오히려 신고한 사람한테 죽을놈 취급하는 아주 우매한 곳입니다. 설현이랑 임시완이 찍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않아라는 드라마가 시골사람들 성향과 비슷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