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3:1~5_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_배성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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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17 янв 2025
- ◦ 요약
2024년도 마지막 주일에, 이 한 해를 돌아보시면서 자신에게 몇 점 정도 주실 수 있으신가?
혹시 복을 복으로 인식못하고, 그 복을 놓쳐버린 것은 없으신가? 또 받은 복이 크고,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잊고 싶지 않은 복은 무엇이 있는가?
사람은 현재에 누리는 복을 그 당시에는 바로 보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소중한 의미를 깨닫는 경우가 많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을 살아갈 때는 무엇이 소중한지, 무엇을 잘하고 있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잘 모르고, 그저 ‘달리는 기관차’처럼 바쁘게 살면 잘사는 줄 알고 살아가지만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고 나서야 후회도 많고, 부끄러움도 생기게 된다.
오늘 본문은 다윗 왕이 나이가 많이든 노년에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며 하나님께 노래한 시편이다. 다윗은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면서 축약적으로, 강력하게 고백하고 있다. 2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인생을 돌아볼 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택, 은혜가 너무나 크고 놀라워서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면서 그 은혜를 절대로 잊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는 고백이다.
성도여러분!
지난 한 해를 되돌아 볼 때, 그리고 우리의 지난 날을 되돌아 볼 때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은혜’가 무엇이 있었나?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은택이 무엇이 있었는가?
다윗이 고백한 잊지 못할 은택은 무엇을 말하는가?
첫째는 자신의 죄가 용서함 받은 것이라고 했다. 3절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세상의 많은 일들은 사람과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으 죄의 문제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사람이 용서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시면 안되는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생애를 뒤돌아볼 때 엄청나게 많은 죄를 지었던 사람이었다. 많은 죄 중에 대표적인 것이 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였던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에게 지은 죄를 숨기기 위해서 우리야를 죽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죄로 인식도 못하고 있다가 나단선지자의 지적을 받고서야 비로서 침상이 적도록, 눈물로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죄 사함의 문제를 12절에서 다시 이렇게 노랬했다. 12절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성도여러분!
만약 내가 지은 ‘죄가 죄’라고 느끼지 못하면 이런 감격은 없다. ‘나만’ 지은 죄가 아닌데 ‘세상이 다 그런데’ 한다면 이런 은혜는 없다.
다윗이 노래했던 그 ‘죄사함의 은혜’를 은혜로 바로 깨닫고, 하나님께 바르게 감사할 수 있는 영혼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윗이 노래한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은택은 ‘병을 고쳐주심’이었다. 3절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여기서 말하는 ‘병’이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5번 밖에 사용되지 않은 단어다. 굉장히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다. 무슨 큰 암이나, 죽을 병에서만 고쳐주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크고 작은 질병이 만연해있는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셨고, 또 치료해주실 것을 확실히 믿고 그 은혜를 찬양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지금 온갖 크고 작은 질병 가운데 고통받고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모든 병을 고쳐’주시는 은혜가 바로 지금 이시간에 부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 하나의 은택은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신 은혜’였다. 4절 상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또 하나는 ‘사랑과 자비로 덮어’이었다. 4절 하… ‘…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다윗이 죄를 짓고 실수했던 수 많은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다스리지 않으시고 ‘인자와 긍휼’로 대해주셨음을 찬양했다.
우리가 보냈던 지난 시간을 하나님께서 ‘공의’로만 판단하셨다면 우리가 지금 이 시간에, 이렇게 앉아 있지 못할 수도 없는 것이다.
예레미야애가 3:22~23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이 있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공의’가 아니라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있었기에 오늘,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씌워주셨던 ‘인자와 긍휼의 관’이 새해에도 변함없이 씌워지는 은혜가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또 하나는 ‘좋은 것으로 소원을 만족케 해주심’이었다. 5절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우리는 ‘나의 소원’대로 다~ 되는 것을 ‘은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이런 감사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소원, 그 이상의 삶을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데로, 우리가 바라는데도 다 되었다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고, 성공한 삶이 되었을까?
이 한해의 마지막 주일을 함께 지키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무엇을 감사하고 있는가? 무엇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까?
1860년 9월 8일에 ‘Lady Elgin’라는 증기유람선(Steamer)한 척이 미국의 미시간호수에 침몰했다. 그 배에는 승객만 350명 이상이 타고 있었는데… 승무원을 포함해서 약 300명이 익사했다. 그러는 와중에 Northwerstern Uni. 학생이었던 Edward Spencer라는 학생은 6시간동안 17명의 승객을 구조했다. 이 일은 매스컴에서 크게 보도가 됐다.
이 기사를 보고 감동을 받은 루우벤 아쳐 토레이(Reuben A. Torrey. 1856~1928)목사님이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다가 LA에서 설교를 하는 중에 “자기 생명도 귀한데 사력을 다해 17명의 목숨을 건진 아름다운 일이 있었다”고 높이 칭찬을 했다. 설교가 끝나자 머리가 허연 노인 한 사람이 손을 들고는 자기가 바로 그 청년이었다고 했다.
토레이목사님이 그분을 앞에 나오게하여 청중들 앞에서 물었다. “그 사건 뒤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잔뜩 기대하며 듣던 청중들 앞에서 그 노인이 잠깐 생각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중 한 사람도 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은 구조받은 17명이 모두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고 비난하기 전에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고, 보통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문제는 우리는 사람에게 은혜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수많은 은혜, 은택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성도여러분!
이 한해를 되돌아봐도, 우리의 생을 되돌아봐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던 순간은 한 순간도 없었다. 정말 그렇게 고백한다면 오늘 우리 모두 다윗의 고백을 함께 하기를 원한다.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않는 성도들에게 새해에도 이전보다 더 큰 은택,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