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부촌 평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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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2 окт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6

  • @다온-k4t
    @다온-k4t 2 месяца назад +3

    닭장같은 아파트들로 넘쳐나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이런 동네가 있다는게 너무 멋지고 아름답죠?

  • @Vincent-qw3pn
    @Vincent-qw3pn 2 месяца назад +3

    서울에서 태어나 계속 살아 왔던 까닭에 서울 지역의 주택 지구를 좀 안다고 할 수 있다. 현 부동산 업에 종사 하는 연령대는 부동산 업계의 세대 교체가 된 탓으로 거의 1970년도 이후 태어난 세대로 알고 있다. 서울 중심가 고급 주택가에는 한국 전쟁 이전에 건축 된 고급 주택들이 전란으로 인하여 거의 파괴 되고 1954년도 서울 수복 후에 새로 건축 된 것이 대부분이다. 당시 부유한 계층이 몰려 살 던 곳이 중구 필동, 예장동, 종로구 구기동, 가회동, 청운동, 성북동 등이었다. 모두 4대 문 안에 주택 지역으로 교통이 편리 하고 차량 접근성이 좋은 탓이었다. 또 한 A 학군이 모두 4대 문 안에 몰려 있었다. 평창동은 서울 중심에서 다소 벗어난 북한산 자락에 개발 된 택지 지구로 차량 접근성이 떨어지고 자가용 차량이 보편화 되지 않거나 부유층도 아이들 통학에 차량을 내어 줄 정도가 되지 못하였다. 국산 차는 가내 수공업 형태의 조립 차량으로 크기가 매우 작았다. 부유층은 미군 부대를 통하거나 많은 돈을 들여 외제 중고차를 수입하여 자가용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볼보 S60은 7 천 만원 수준으로 고급 차량이라고 할 수 없지만 50~60년대 부유층에게는 최고급 차량 이었다. 따라서 평창동에 사는 아이들의 통학은 매우 불편 하였다. 더구나 택지 구획 정리가 되지 않은 탓에 주택 부지가 반 듯 하거나 이면 도로가 직선을 이루고 있지 않아 동네 전체적으로는 매우 산만 하다. 더구나 산자락에 형성된 주택 지구여서 경사가 심하고 간선도로까지 걸어 내려와 대중 교통을 이용 하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1970년도 이후부터 박정희 정권이 강남 지구 일대를 계획 도시로 개발 하게 되어 강남 지구의 단독 주택 부지는 거의 부유층이 점거하여 고급 주택을 짓게 되어 대거 몰려 살았다. 주거지로서 평창동이 좋은 점은 교통 접근성은 불리 하나 주택에서 내려다 보는 서울의 정경이 좋고 산 자락에 지어진 탓으로 공기가 청량 하고 동네에 수목이 풍부 하다는 것이다.

  • @모모-g7k
    @모모-g7k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이런데 살고싶다

    • @sumtingwong5451
      @sumtingwong5451 3 месяца назад

      교통이 좀...

    • @mathematicallogic7721
      @mathematicallogic7721 3 месяца назад +2

      @@sumtingwong5451 자가용 운전자들은 전혀 불편한거 못 느낌

    • @jscho1269
      @jscho1269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저두요~~~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나만의 공간에서 살고 싶어요. 평창동은 진짜 땅 기운 자체가 너무 좋더라구요.